“집안의 수치는 감춰야 한다고 하지만 내 오늘만큼은 너와 함께 창피를 당할 것이다. 그래야 네가 정신을 차리겠지!”낙용은 분노한 얼굴로 화를 내면서 낙운희를 문 앞까지 끌고 갔다.낙운희는 아픈지 낙용의 옷자락을 잡으며 말했다.“어머니, 사람도 많은데 집에 가서 얘기하시지요!”낙용은 엄숙한 목소리로 그녀를 호되게 꾸짖었다.“네가 잘못했으니 네가 책임져야지! 집안에서 숨긴다고 다 숨겨지는 건 아니란 말이다! 태부부가 아니었으면 넌 이미 사람들한테 호되게 매를 맞았을 것이다.”낙청연 또한 이러한 상황에 지레 겁을 먹었다. 그녀는 낙용 고고가 낙운희를 끌고 직접 이곳까지 행차할 줄은 몰랐다.낙청연을 본 낙용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평온을 유지하면서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내 딸이 경솔해 큰 잘못을 저질렀소. 내가 어머니로서 잘 교육하지 못한 탓이오. 그래서 오늘 저 신산에게 직접 사과하러 왔소.”낙용은 그 말과 함께 허리를 숙이며 예를 갖추려 했고 낙청연은 다급히 그녀를 말렸다.“낙 부인 아니십니까?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 없습니다.”낙용이 낙운희를 혼쭐내 자신을 헐뜯고 자신의 명성을 더럽히지만 않으면 되었다.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거나 낙운희의 모든 돈을 몰수하는 것으로 충분히 낙운희의 만행을 멈출 수 있을 것이었다.그런데 낙용은 짐짓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오늘 크게 혼쭐나지 않으면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를 것이오.”말을 마친 뒤 그녀는 낙운희를 보며 말했다.“얼른 저 공자께 사과하거라.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이렇게 비열한 수법으로 사람을 해치지 않겠다고, 다른 사람을 모함하지 않겠다고 맹세하거라!”낙운희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얼굴에는 눈물을 흘린 흔적이 있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당당하게 울먹이며 말했다.“큰 손실을 본 것도 아니니 돈을 배상하면 그만 아닙니까?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 있습니까?”낙용은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 그녀는 다시금 낙운희의 귀를 잡아당겼고 화가 나서 열불이 날 지경이었다.“너는 큰 손실을
낙운희가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낙용이 다시 낙운희를 내리누르며 무릎을 꿇렸고 조금 전 사람을 죽일 듯하던 기세는 깡그리 사라져버렸다.“사과하거라!”낙용은 매서운 말투로 꾸짖었고 낙운희는 굴욕감을 느꼈다. 구경꾼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저 신산의 앞에 무릎 꿇고 사과하다니, 앞으로 어떻게 수도에서 얼굴을 들고 다닌다는 말인가!하지만 낙운희는 굴욕감을 참으며 억울한 얼굴로 울먹거리며 말했다.“제가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낙운희가 사과하자 낙용은 그제야 그녀를 놓아주었다.“오늘 일을 똑똑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헤아려야 한다. 앞으로 또 이런 짓거리를 꾸며 태부부와 네 할아버지의 얼굴에 먹칠한다면 우리 낙씨 가문에 남아있을 생각은 말거라!”낙용의 단호한 어조에 낙운희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충격받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그녀의 어머니는 정녕 그녀와 연을 끊을 생각인 건가?“어머니, 제가 잘못한 건 맞지만 이럴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낙운희는 이러한 방법으로 저낙을 상대하는 것이 옳지 않음을 알고 있었지만 저낙이 먼저 그녀를 속였다.말을 마친 뒤 낙운희는 몸을 일으키더니 낙청연을 노려보고는 곧장 도망쳤다.“너!”낙용이 뭐라 더 말하려는데 낙운희는 이미 저 멀리 사라진 뒤였다.낙용은 다시 고개를 돌려 낙청연을 보며 말했다.“저 공자, 나와 얘기 좀 나누게나.”낙청연은 낙용과 함께 점포 안으로 들어갔고 문을 닫았다.낙용은 자리에 앉으며 한숨을 쉬었다.“최근 큰딸의 혼사에 온 신경을 쏟아붓다 보니 둘째에게 소홀했소. 쟤가 밖에서 저러고 다니는 줄은 정말 몰랐소. 자네가 입은 손실은 우리가 배상하겠소. 그리고 저 공자를 모함했던 그 뜬 소문들도 내가 다 바로 잡을 것이오. 혹시 또 다른 요구가 있다면 편히 얘기하시오.”낙청연이 대답했다.“없습니다. 이렇게 마무리 지을 수 있다면 만족합니다. 다만 낙 부인께 충고 하나 해드리자면 낙운희 소저의 곁에 있는 서송원이라는 작자는 절대 좋은 사람이
낙랑랑은 깜짝 놀랐다.“날 위해서라니?”낙운희는 눈시울이 빨개진 채로 억지로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어머니께서 혼처를 정하시는 게 싫으면 싫다고 하세요! 반항하고 거절하란 말입니다. 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혼자 슬퍼하십니까? 언니는 어릴 때부터 그랬지요. 제가 얼마나 마음이 아픈 줄 아십니까? 어머니께서 언니의 혼처를 물색하기 위해 단단히 마음을 먹었으니 제가 밖에서 사고라도 좀 쳐야 언니한테 덜 신경을 쓰지 않겠습니까?”낙운희는 많이 억울했다.그녀는 어릴 적부터 낙랑랑이 어머니한테 혼이 나는 모습을 많이 보았었다. 낙랑랑은 항상 소심하고 겁이 많아 어머니가 뭐라 하든 감히 반항하지 못했다.그래서 그녀는 언니처럼 되고 싶지 않았고 어머니가 뭐라 하든 그 말에 따르지 않았다.저낙의 일도 굳이 매일 사람을 보내 소란을 피울 필요가 없었다.하지만 어머니가 언니의 혼처를 알아보기 시작한 뒤로 낙랑랑은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그래서 그녀는 일부러 크게 사고를 쳐서 낙용이 낙랑랑의 혼처에 신경 쓸 틈이 없게 만들 생각이었다.그녀는 단지 자신만의 방법으로 낙랑랑을 지키고 싶었던 것이었다.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인가?어머니에게 끌려가 억지로 무릎을 꿇고 사과했고 저택으로 돌아온 뒤에는 낙랑랑이 이유도 묻지 않고 그녀를 꾸짖었다.낙랑랑은 그 말에 흠칫했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를 바라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운희야…”낙운희는 눈물을 닦으며 결연히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운희야!”뒤쫓아가려 했으나 낙운희는 저 멀리 도망갔다.낙운희의 뛰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낙랑랑은 조금 전 그녀가 했던 말을 되새겼고, 그 순간 눈물을 왈칵 쏟으며 바닥에 주저앉았다.“미안하구나… 언니는 몰랐다…”낙랑랑은 소맷자락을 꼭 쥐었다.그녀는 운희가 그녀를 위해 이렇게 많은 일을 했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낙랑랑은 그녀의 어머니처럼 낙운희가 고집이 세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어떤 일들은 그녀가 일부러 한 것일지
“그렇게 타일렀는데도 못 알아들은 것이냐? 너도 네 동생처럼 날 속태워 죽일 셈이냐?”낙용은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소맷자락을 휘날리며 자리를 떴고 낙랑랑은 순간 심장이 철렁하는 기분에 긴장한 듯 옷소매를 손에 꼭 쥐었다.낙용이 화를 내며 떠나는 모습에 낙랑랑은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글썽였다.—섭정왕부.소유는 빠른 걸음으로 서방 안으로 들어가 밀서를 건넸다.“왕야, 조금 알아냈습니다.”부진환은 고개조차 들지 않고 평온한 얼굴로 글씨를 연습했다.“말하거라.”소유는 밀서를 꺼내 보더니 정중한 어투로 말했다.“왕야, 별원쪽 뱀 굴에서 발견한 자객들은 무극문(無極門)의 사람인 듯 합니다.”그 결과를 듣고도 부진환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예상했던 일이다. 낙청연과 관련이 있는 자들이니 엄씨 가문 말고 누가 있겠느냐?”비아냥 섞인 어조였다. 낙청연이 엄씨 가문에서 보내온 첩자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는 몇 번이나 마음이 약해졌다. 부진환은 사뭇 차가워진 눈빛으로 물었다.“뱀 굴에 들어간 자들의 목적은 알아냈느냐?”소유는 고개를 끄덕였다.“알아냈습니다. 뱀의 쓸개를 위해서라더군요. 최근 누군가 수도 내 각 약방에서 파는 뱀의 쓸개가 전부 사들였다고 합니다. 또 연줄을 이용해 고가로 뱀의 쓸개를 사들인 자도 있다고 하더군요. 엄씨 가문의 공자가 여인을 한 명 구했는데 그 여인의 상처를 치료해주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수도 안의 약방에서 파는 뱀의 쓸개는 그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습니다.”그 말에 부진환은 살짝 놀랐는지 붓을 들고 있던 손이 잠깐 멈칫했다. 곧이어 그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며 물었다.“뱀의 쓸개라 하였느냐? 엄씨 가문에서 이렇게 공을 들여 사람을 구하려 하다니, 예사 인물이 아닌가 보구나. 게다가 낙청연까지 이용해 뱀 굴로 들어가 뱀의 쓸개를 취하려 하다니.”부진환의 목소리는 서릿발처럼 싸늘했다.소유는 그의 말에서 어쩐지 질투가 느껴진다고 생각했다.소유는 저도 모르게 편을 들며 말했다.
“두통이 있지는 않으나 낙씨 가문 둘째 아씨를 더…”소유는 감히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부진환은 눈을 번쩍 뜨면서 차가운 어조로 물었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냐?”“더 챙기시는 듯합니다. 비록 왕야께서는 둘째 아씨와 만나지 않으려 하시지만 장미가 아씨에게 무엇이 필요하다고 하면 전부 챙겨주셨지요. 그쪽에는 지금 계집종이 6명이 될 겁니다. 솔직히 얘기하면 왕비 마마라고 해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시중을 들지는 않을 것입니다.”그 말에 부진환은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난 그 애가 날 귀찮게 할까 봐 최대한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다. 잘 챙겨주다니? 대체 뭘 보고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냐?”소유는 더는 얘기를 이어갈 용기가 없어 입을 다물었다.부진환은 더욱 심란해졌고 호흡도 거칠어져 아예 방에서 나갔다.“왕야, 어디 가십니까?”부진환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꾸했다.“내게 진짜 문제가 있는 건지 보러 갈 것이다!”소유는 유감스럽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저 신산을 찾는다고 해도 소용없었다. 저 신산은 왕야를 봐주지 않을 것이고 간다고 해도 퇴짜 맞고 돌아올 것이었다. 위풍당당한 섭정왕은 그런 취급을 받으면서도 왜 굳이 그곳에 가는 것일까?부진환이 전원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누군가 나타나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형님!”뒷짐을 지고 있던 부진환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면서 바닥에 무릎을 꿇은 부운주를 쳐다봤다. 그는 날이 몹시도 추운데 겉옷도 입지 않고 얇은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마르고 약한 몸은 바람이 불면 당장이라도 사라질 듯했다.그는 단 한 번도 자기 동생을 박하게 대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추운 겨울날 일부러 이런 차림을 하고 있다니, 누가 봤으면 형인 그가 동생을 괴롭힌다고 오해할지도 몰랐다.“형님! 얘기를 들어보니 청…”하마터면 청연이라고 이름을 부를 뻔했던 부운주는 얼른 말을 바꿨다.“별원에 계신 형수님께서 목숨이 위태롭다고 들었습니다. 그게 사실입니까? 형수님은 왕비입니다, 형님. 형님께서 왕비를 내쫓는다
부운주는 그 말에 다시 차가운 눈빛을 하고 탁자 옆에 앉았다.“낙청연은 어떠냐?”고 신의는 가볍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오황자께서는 진짜 그녀를 걱정하시는 겁니까? 별원에서 섭정왕부로 돌아올 능력이 없다면 쓸모없는 패라는 걸 의미하지요. 태후께서도 그녀를 남겨두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 오황자께서도 태후를 찾아가 그녀를 구해달라고 할 필요는 없으십니다.”고 신의는 덤덤한 어조로 말하며 부운주의 앞에 약을 내려놓았다.부운주는 어두운 표정으로 미간을 구기며 그를 바라보았다.“너희들이 그녀와 형님 사이를 이간질했지. 그 때문에 그녀는 큰 피해를 보았는데 너희들은 그저 그녀를 쓸모없는 패 취급을 한다는 말이냐?”부운주는 마음이 급해져서 기침하기 시작했다.고 신의는 옷소매에 손을 넣고 무심히 서성거리며 말했다.“오황자께서는 잊으셨습니까? 낙청연은 처음부터 그저 이용당할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그녀는 단지 태후의 목적을 이뤄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뿐, 태후께서 나서 그녀를 구해 줄 필요는 없지요. 오황자께서는 그녀를 위해 충분히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왕부의 모든 사람이 보았지요. 만약 그녀가 돌아온다면 그녀는 오황자께서 얼마나 그녀를 챙겼는지를 알게 될 것이고 성심성의껏 오황자를 위해 움직일 것입니다.”“날이 춥습니다. 오황자께서는 건강에 유의하십시오.”말을 마친 뒤 고 신의는 방에서 나갔다.울컥 화가 치밀어오른 부운주는 창백해질 정도로 주먹을 꽉 쥐더니 탁자를 힘껏 내리쳤다.—겨울이라 그런지 눈이 자주 내렸다. 날이 맑게 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저녁이 되니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살을 에는 듯한 바람에 두 볼이 빨갛게 얼 정도였다.점포에 잠깐 앉아있었으나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 낙청연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후원에 있던 지초와 송천초는 화로 앞에서 몸을 녹이고 있었다.“역시 낙 부인께서 나서시니 효과가 뚜렷합니다. 차루(茶樓)와 주루(酒樓)에서 소문이 퍼지고 있으니 앞으로 장사가 잘될 듯합니다.”“오늘 저녁 우
숲을 지날 때 광선이 완전히 사라지면서 주위가 살기로 가득 찼다.매서운 소리와 함께 갈고리가 달린 쇠사슬이 마차 바퀴를 강타했고 그로 인해 빠르게 달리던 마차는 순간 멈추게 됐다.곧이어 말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사람을 실은 마차가 비탈길에 굴러떨어졌다.마차가 전복하는 순간, 낙청연은 곧바로 차에서 뛰었으나 굴러떨어지는 마차와 부딪혀 비탈길에서 몇 바퀴를 굴렀다.어슴푸레한 빛을 빌려 검은 옷을 자들이 숲속으로 뛰어 들어갔다.서송원은 마차 안을 확인하더니 노기 어린 음성으로 말했다.“사람이 없군! 당장 찾아!”검은 옷을 입은 자들은 마차 주위를 수색하기 시작했다.주위를 둘러보니 낙청연은 그들에게 단단히 포위되어 빠져나갈 구멍이 전혀 없었다.나무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그녀는 몰래 비수를 빼 들었다.자신과 가장 가까이 있던 사내와 서서히 가까워지자 그녀는 일부러 눈을 밟아 소리를 냈고 그 사내를 자신의 쪽으로 유인했다.사내는 곧장 그곳으로 달려왔고 낙청연은 몰래 그의 등 뒤에 섰다. 그녀는 거칠게 사내의 입을 틀어막더니 단숨에 그의 목을 베었다.낙청연은 육중한 몸을 조심스레 바닥에 눕힌 뒤 똑같은 방법으로 그다음 사내를 죽였다.그러나 이번에는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던 서송원이 그녀의 기척을 느꼈다.“저기 있다!”서송원은 큰 소리로 외치며 검을 들고 낙청연을 향해 돌진했다.낙청연은 곧바로 나무 뒤에 몸을 숨겼고 서송원의 목을 향해 비수를 휘둘렀으나 서송원은 재빨리 검을 들어 그녀의 공격을 막아냈고 도리어 그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낙청연은 날쌘 몸짓으로 공격을 피하며 반격하려 했지만 두 사람은 힘 차이가 극명했고 낙청연은 그를 크게 상처 입히지 못했다.그리고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일제히 그녀를 공격하기 시작했다.낙청연은 어쩔 수 없이 나무가 있는 지형적 우세를 이용해 치명적인 공격을 피하며 반격할 기회를 찾았다. 서슬 퍼런 칼날이 매섭게 목을 가르자 선혈이 그녀의 옷자락을 적셨다.그렇게 연이어 세 명이 처치당하자 서송원은 화가 나서
죽음이 그녀를 덮쳐오려던 순간, 갑자기 나타난 팔이 그녀의 허리를 힘껏 끌어안았다. 뒤이어 하늘과 땅이 뒤집히는 느낌과 함께 그녀는 갑자기 나타난 사람에게 안겨 안전하게 착지했다.고개를 드는 순간 낙청연은 깜짝 놀랐다.미약한 빛이었으나 그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가 별처럼 빛나고 있는 게 보였고 그 순간 그녀는 넋을 잃었다.정신을 차린 뒤 그녀는 곧바로 부진환을 밀어내며 그와 거리를 벌렸다.차가운 바람이 불어오자 볼이 뜨거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의 차가운 손가락은 그녀의 면사를 지나쳐 그녀의 목에 닿았고, 차갑고 이상한 느낌에 낙청연은 몸을 움찔 떨면서 그의 손길을 피했다.“뭐 하는 짓입니까!”부진환은 그녀의 반응에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손가락에 묻은 피를 보여주었다.손을 뻗어 목을 만져본 낙청연은 그제야 목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위험천만한 순간이었지만 다행히도 상처가 깊지는 않았다.낙청연은 얼른 손수건을 꺼내 상처를 감쌌다.멀지 않은 곳에서 부진환을 본 서송원은 작게 욕을 읊조렸다.“제기랄! 가자!”그들은 섭정왕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산 채로 붙잡혀 고문당하지 않으려면 당장 도망가야 했다.서송원 일당은 곧바로 도망갔고 낙청연은 그들을 쫓으려 했으나 부진환이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쫓지 마시오. 저자들은 훈련받은 자객들이라 경공이 대단하오. 당신은 그들을 쫓지 못할 것이오.”그의 차가운 손이 손목에 닿자 낙청연은 몸이 얼어붙었다.부진환도 잠깐 멈칫하더니 그녀의 손목을 물끄러미 보다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조금 전 그들과 싸울 때 보니 움직임은 날쌔지만 힘이 부족하더군. 사내치고는 손목이 너무 가는 것 같소.”낙청연은 곧바로 손을 빼냈다. 괜히 찔려서 그의 시선을 마주하지 못한 그녀는 앞으로 걸어갔다.“섭정왕께서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제 뒤를 밟으셨습니까?”부진환은 뒷짐을 진 채로 그녀의 뒤를 따르며 덤덤히 대꾸했다.“자네를 찾아가려 했는데 때마침 저자들이 자네를 미행하길래 지켜봤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