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서는 멈칫하더니 침묵했다.이 모습을 본 난희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런 헛된 희망을 품으면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그러나 침서는 덤덤하게 답했다.“시간이 나면 보자꾸나.”난희는 순간 두 눈을 반짝이며 깜짝 놀란 얼굴로 침서를 바라보았다.“장군…”침서는 무심하게 시선을 옮기고 더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난희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장군, 마침 겨울이니 시간이 있지 않습니까?”“봄이 되면 다시 바빠지지 않습니까.”그러나 침서는 단호하게 말했다.“지금 네 몸으로는 외출할 수 없다.”이 말을 들은 난희는 멈칫하더니 더욱 흥분했다.침서의 이런 대답은 정말 난희와 운무산을 찾아 떠날 생각이 있다는 뜻이었다.“그럼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봄? 봄이면 장군께서 바쁘지 않습니까? 그때 정녕 운무산을 찾는다고 해도 어떻게 다른 계절도 따뜻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까?”난희는 진지하게 침서를 바라보았다.침서는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겼다가 덤덤하게 답했다.“내가 떠나려면,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있겠냐?”“봄에 찾으면 여름, 가을, 겨울까지 그곳에서 살아보는 거다. 그렇다면 운무산이 정녕 사계절 모두 봄처럼 따뜻한지 알 수 있겠지.”이 말을 들은 난희는 가슴이 벅차올라 눈물을 흘렸다.침서는 한 번도 다정하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없었다.고개를 돌리자, 침서는 눈물을 흘리는 난희의 모습을 보았다.“어찌 눈물을 흘리는 것이냐?”침서는 살짝 놀랐다.“운무산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느냐? 어찌 우는 것이냐?”이 말을 들은 난희는 가슴이 더욱 벅차올랐다. 침서는 난희가 했던 말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침서는 난희가 운무산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여기까지 생각한 난희는 결국 참지 못하고 침서의 품에 와락 안겼다.“장군…”“우리 함께 이곳을 떠나면 안 됩니까?”“장군은 너무 오랫동안 낙요 한 사람만 바라보면서 힘들게 살아오셨습니다.”“낙요는 장군을 연모하지 않습니다.
침서도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하지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그를 잡고 있는 건, 낙요 뿐만이 아니었다.침서는 눈보라를 무릅쓰고 정원을 나섰다.멀지 않은 곳에서, 고묘묘는 침서가 정원을 떠날 때까지 몰래 지켜보았다.그녀는 눈빛에는 증오가 가득 담겨 있었다.침서가 밥과 반찬을 들고 방에서 오랫동안 있었으니, 난희가 깨어난 게 분명했다!낙요를 어떻게 떼어냈는데, 지금은 또 난희와 침서를 빼앗아야 한다니!이제는 그 고인의 방법이 효력이 나타나길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고묘묘는 정원을 흘겨보더니 이를 악물고 떠났다.-눈보라가 끊임없이 몰아치고, 앞길은 새하얀 눈으로 뒤덮였다.차가운 바람이 눈을 타고 불어오자,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마차를 가득 채웠다.낙요는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그녀는 마차 문을 열고 소리쳤다.“눈을 피할 곳을 찾는 게 어떻소? 여기는 너무 춥소.”마차 밖에서 말을 몰던 부진환은 눈사람이 될 정도로 눈에 뒤덮였다.“시간은 충분하오?”“넉넉하오. 금풍산은 백성의 거처와 멀리 떨어져 있으니 백성이 다치진 않을 것이오. 눈이 내려 산길을 오르기 힘들 테니 채굴 속도도 늦어질 것이고.”부진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그렇다면 주위에서 객잔을 찾아보겠소.”뒤의 마차에서, 송천초는 꾸벅꾸벅 졸고 있는 초경을 보며 못 말린다는 표정을 지었다.그렇게 송천초는 초경을 옆에 두고 지금까지 마차를 끈 계진을 대신하려고 했다.송천초가 몸을 일으키자, 초경은 다시 송천초를 감싸 안으며 어렴풋이 말을 내뱉었다.“가지 마…”송천초는 초경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으나, 불쌍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파 다시 앉았다.그러고는 두꺼운 망토로 초경의 몸을 감싸고, 자신의 망토까지 자리에 겹쳐 초경을 눕혔다.그러나 잠이 든 초경은 여전히 송천초의 손을 꽉 잡으며 말했다.“가지 마, 지켜줄게…”송천초는 한심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지금 아주 안전하니, 지켜주지 않아도 됩니다.”“손을 놓고 푹 주무세요.”송천
침서는 초조한 얼굴로 급히 달려와 난희를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그러고는 난희를 침상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그러나 난희의 안색은 매우 창백했다.침서는 곧바로 난희의 맥을 짚었다. 그러나 침서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난희는 허약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장군의 말을 어기고 밖에 나가서 죄송합니다…”난희는 점점 힘이 빠졌고, 손조차 무겁게 느껴져 들지 못했다.침서의 안색은 더욱 어두워졌다. 어찌 생명력이 이렇게나 빨리 사라지고 있단 말인가.엊저녁에도 멀쩡하던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이렇게 되었다니.찬 바람을 맞았다고 해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침서는 곧바로 사람을 불러 뜨거운 물을 들고 왔다. 물 온도를 느껴본 후, 침서는 곧바로 난희를 안고 목욕통에 앉혔다.침서는 이런 방법으로 몸과 혼백을 계속 융합시키려고 했다.난희는 물속에 들어가더니 안색이 점점 돌아오기 시작했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창백해지면서 핏기가 전혀 돌지 않았다.난희는 힘없이 목욕통에 기댄 채 입을 열었다.“장군…”“저… 죽는 겁니까…?”“사람을 부활시키는 방법이… 이렇게 쉬울 리가 없지 않습니까…”난희는 눈꺼풀이 무겁다 못해 금방이라도 잠이 들 것 같았다.난희는 몸에 힘이 다 빠져 말을 하는 것조차 버거웠다.침서는 어두운 안색으로 다시 맥을 짚어보았으니, 전혀 호전이 없었다.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걸까!침서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보통 이런 상황은 일어날 수가 없었다.이틀 동안 난희의 몸을 살펴보며 몸과 혼백이 매우 잘 융합된 것을 확인했는데, 대체 어디에 문제가 생긴 걸까!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것도 소용이 없으니, 침서는 초조하게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이때, 난희가 침서의 손을 잡고 말했다.“장군…”“눈을 보고 싶습니다…”“조금 전에 장군께 춤을 춰 드렸습니다.”“보셨습니까?”침서는 멈칫하더니 대답했다.“보았다.”“우선 쉬고 있어라, 내가 약을 달여 오겠다.”말을 마친 침서는 곧바로 방에
침서는 눈밭에 앉아 있었다. 눈꽃은 난희의 몸 위로 떨어졌다.잠시 뒤, 난희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짧은 순간, 생명력이 삽시에 빠져나갔다.침서는 난희를 안고 눈밭에 한참을 앉아있었다. 이토록 미안한 마음이 든 적은 처음이었다.그는 난희를 구할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실패했다.이름만 들어도 모두를 공포에 떨게 할 수 있는 여국의 대장군이자 미친 염라대왕이라고 불리는 침서에게 그가 하지 못할 일은 없을 듯했다.그러나 그는 주변 사람들조차 지키지 못했다.난희조차 구하지 못했다.침서의 눈빛이 조금씩 날카로워졌다. 그가 주먹을 꽉 쥐었다.같은 시각 고묘묘는 마당 밖의 멀지 않은 곳에서 관찰하고 있었다. 그는 살짝 열린 문틈으로 침서가 난희를 안고 눈밭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았다.고묘묘는 의기양양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한참이 지나도 꼼짝하지 않는 걸 보니 난희는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다.그녀가 찾은 사람은 확실히 대단했다.그렇게 많은 돈을 들인 보람이 있었다.침서는 마당에 오랫동안 있었다. 얼마나 오래 있었던 건지 그의 어깨와 머리 위로 흰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침서는 마음이 무거웠다.마침내 그는 몸을 일으켜 난희를 안고 방으로 돌아갔다.그리고 부하더러 난희의 시체를 장군 저택 밖으로 옮겨 산 위에 묻어주라고 했다.시체를 보고 의아함을 느낀 저택의 다른 여인들을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묻기 위해 함께 침서를 찾아갔다.그러나 침서는 짜증 가득한 얼굴로 호통을 쳤다.“다들 꺼지거라!”여인들은 화들짝 놀라서 서둘러 방을 나섰다.고묘묘는 몰래 그 모습을 지켜보며 우쭐했다.난희를 처리했으니 다른 여자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앞으로 천천히 처리해버리면 됐다.그 뒤로 며칠 동안 침서는 자신을 방 안에 가두고 먹지도, 미시지도 않았다.저택의 사람들은 침서는 기분이 아주 나빴기에 감히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못했다.-객전에서 하루 묵은 뒤, 그다음 날 눈이 그쳤고 일행은 강화로 떠났다.강화에 도착한 뒤 크게 주목받지 않기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 뒤 호신부를 목에 걸고 옷 안에 넣었다.낙요는 원래 두 사람은 밖에 있으라고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특수했기에 누가 거기에 남든 위험했다.그 때문에 결국 모두 함께 들어가기로 했다.그들은 곧 동굴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깊숙이 들어갈수록 음산한 기운이 뚜렷이 느껴졌다.촛불 하나가 전부 타들어 갈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그들은 등불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주위는 어두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낙요는 가장 앞에서 걷고 초경은 송천초를 보호하면서 맨 끝에서 걸었고 낙오되는 사람이 없게 그들을 지켜줬다.불빛 아래, 벽에서 금빛이 번쩍거렸다.안으로 들어갈수록 바닥에 새로운 흙이 보였다.김옥한은 멈춰 서서 벽을 살폈고 곧이어 바닥에서 고리 같은 걸 발견했다.그 위에는 부적이 그려져 있었다.김옥한의 표정은 심각했다.“예전에 저희 아버지께서는 여기까지 파셨습니다.”“그들은 어떻게 파고 들어간 걸까요?”낙요는 공기 속에서 피비린내를 맡고 대답했다.“안으로 들어가 보면 알 수 있을 것이오.”“김량이 감히 안으로 들어갔다는 건 그만큼 준비를 많이 했다는 것이겠지.”역시나 계속해 앞으로 걸어가자 바닥에 쓰러져있는 시체가 보였다.그 시체는 머리가 없었고, 온몸은 피로 붉게 물들어 있어서 불빛으로 시체를 비춰 보았을 때 김옥한은 화들짝 놀랐다.“이건... 김죽?”낙요는 쭈그리고 앉아 힐끗 본 뒤 손가락으로 피를 톡 찍어 냄새를 맡아보았다.“이건 닭 피군요.”“그들은 김죽의 시체로 진법을 파괴했을 것입니다.”“김량도 참 잔인한 사람이군요. 죽은 아들까지 이용하는 걸 보면.”“갑시다, 다들 조심하십시오.”“앞에서도 피비린내가 납니다. 김죽의 시체는 있는 건 아닐 것입니다.”낙요가 귀띔했다.그래서 사람들은 마음의 준비가 된 상태로 바닥에 잔뜩 널브러진 시체들을 보았다.비록 각오는 했다지만 그래도 소름이 돋고 등골이 오싹했다.시체들이 전부 기괴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어떤 이는 바닥에 무릎을
시체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낙요가 부적을 상대방의 이마에 붙이고 분심검을 휘둘러 머리를 벤 뒤에야 움직임이 멈췄다.같은 방법으로 다른 시체들도 연달아 처리한 뒤에야 그들은 무사히 그곳을 통과할 수 있었다.안으로 들어갈수록 길을 막는 시체들이 계속해 나왔다.그러나 경험이 있었기에 그다음에는 더욱 순조로웠고 다친 사람도 없었다.“이상하군. 이 주검들은 다 길을 막고 있다. 마치... 우리를 막으려는 듯 말이다.”“김량이 그들을 조종해서일까? 아니면 동굴 안에 뭔가 있는 걸까?”부진환이 의아한 듯 묻자 낙요가 대답했다.“기운을 보니 동굴 안의 것이 그들을 조종하는 것 같습니다.”“그것은 왜 우리가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것일까?”낙요는 고개를 저었다.“모르겠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서 보시지요.”하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지세에 점점 낮아지고 깊어졌다.그리고 처음으로 갈림길이 나왔다.낙요 일행은 갈림길 앞에 서서 의아함을 느꼈다.“김 현령은 이렇게 깊은 곳까지 파지 못했을 것입니다. 김량은 사람들을 데리고 온 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깊은 곳까지 팔 수 있었을까요? 게다가 갈림길까지 있다니.”주락이 의뭉스레 말했다.다들 의아하기는 마찬가지였다.부진환은 벽 쪽에 다가가 만져본 뒤 말했다.“이건 최근에 파놓은 것이 아닌 듯하군.”“벽이 비교적 매끈하고 이 주위로 새로운 흙들이 없는 걸 보면 김량이 파놓은 건 아닌 것 같소.”“만약 김 현령이 예전에 한 번 파보았을 때 이렇게 깊숙한 곳까지 파지 못했다면, 이 동굴이 이미 그가 오기 전에 이렇게 깊이 파였다는 걸 의미하오.”“그저 누군가 흙이나 돌로 막은 것이겠지.”그 말에 김옥한은 깜짝 놀랐다.“이 안을... 누가 팠을까요?”낙요가 물었다.“이 동굴이 어쩌다 생겼는지 알고 있소?”김옥한이 고개를 저었다.“모릅니다. 제가 아는 것이라고는 제 어머니가 제 아버지에게 지도를 줬다는 것뿐입니다. 제 어머니께서는 이 일을 거론한 적이 없으십니다.”“예전에 제게 삼촌 둘이 있었는
낙요는 순간 몸을 흠칫 떨면서 고개를 홱 돌렸다.그러나 부진환만 보였다.“조금 전에 당신이 얘기했습니까?”부진환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그래. 왜 그러느냐?”“환각을 본 것이냐?”부진환은 조금 걱정스러운 듯 그녀를 보다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이 떨어지지 않게 말이다.낙요는 조금 전에 들었던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것은 확실히 여자의 목소리가 맞았다.그녀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의 옆에 있는 사람은 부진환이 맞았다.그러고 보면 그 여인이 꽤 대단한 듯했다.그러나 그들이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앞에서 광풍이 휘몰아치면서 엄청난 모래바람이 일었다.사람들은 손을 들어 코와 입을 막았다.바람이 멈춘 순간, 몸을 돌린 낙요는 아무도 없는 걸 발견했다.“부진환!”“계진!”“송천초?”낙요는 그들의 이름을 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그녀는 황급히 걸어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 보았지만 한참을 달려보아도 송천초 일행은 보이지 않았다.낙요는 이내 냉정함을 되찾고 걸음을 멈추었다.정말 낙오되었다고 해도 이렇게 멀리 떨어질 리는 없었다. 그러니 함정에 빠진 걸 것이다.낙요는 눈을 감고 평정심을 되찾은 뒤 나침반을 들고 황급히 바람이 불었던 곳으로 향했다.반쯤 걸었는데 예상대로 나침반이 반응을 보이며 방향을 가리켰다.낙요는 손바닥에 피를 내어 부문을 적은 뒤 손바닥을 힘껏 내밀었다.그 순간 주위에 꼈던 안개가 천천히 흩어졌다.곧이어 낙요는 앞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었다.다들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낙요는 빠른 걸음으로 그곳으로 달려갔고 바람이 불었던 그곳으로 돌아갔다. 다들 제자리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낙요는 안도했다.부진환이 빠르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왜 갑자기 사라진 것이냐?”낙요가 의아한 듯 물었다.“언제 제가 사라진 것을 발견했습니까?”부진환이 대답했다.“바람이 멈추고 나니 네가 보이지 않았다.”“우리는 감히 섣불리 움직일 수 없어 이곳에서 널
고막을 찢을 듯한 소리에 소름이 끼쳤다.그 순간 부진환이었던 것이 천천히 녹아 바닥에 옷만 남았다.사람들은 전부 깜짝 놀라,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낙요를 바라보았다.“세자는 어떻게 된 겁니까?”계진이 놀라서 물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눈앞의 동료를 살폈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날카로운 빛이 번뜩였다.부적을 던지자 모든 이들이 검은 연기가 되었다.바닥에 널브러진 옷들을 본 낙요는 무척이나 곤혹스러웠다.환각에서 벗어난 줄 알았는데 왜 또 홀린 것일까?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걸까?이 동굴에 있는 것은 상당히 대단했다.곧이어 낙요는 길을 찾기 시작했다. 얼른 다른 사람들과 만나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상대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낙요는 이내 부적을 몇 개 꺼내 피로 부적 하나를 그려서 쓰자 바닥에 있던 옷가지들도 사라졌다.곧이어 주변에 약간의 변화가 생기며 덜 추워졌다.그러나 여전히 어두컴컴했다.이번에는 환각에서 빠져나온 듯했다.낙요는 계속해 앞으로 걸으며 다른 사람들을 찾았다.등불을 들고 양쪽 벽을 살펴보았지만, 기호 같은 건 없었다.어쩌면 다들 상황이 다른 걸지도 몰랐다. 만약 흩어지게 된다면 기호를 남겨서 동료와 연락해야 했다.낙요는 한참을 걸었지만, 갈림길은 없었다. 그래서 쭉 가다 보면 일행들을 찾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역시나 얼마 지나지 않아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낙요가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을 때 그녀는 어둠 속에서 부진환과 계진이 한창 싸우고 있는 걸 보았다.두 사람은 서로 원수라고 생각하는 건지 아주 매섭게 공격했고 둘 다 피투성이였다.이 동굴은 넓지 않아 실력을 전부 발휘하기가 쉽지 않았기에 한참을 싸웠지만, 여전히 승패가 갈리지 않았다.낙요는 곧바로 부적을 붙여서 그들을 환각에서 꺼내주었다.두 사람의 눈빛이 또렷해졌을 때 그들은 그제야 서로 보고 깜짝 놀랐다.“왜 당신이지?”낙요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환각에 당했습니다.”“어디를 다쳤습니까? 빨리 치료하세요.”낙요는 허리를 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