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서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너의 분부인데 당연히 서둘러야지.”선혈이 바닥에 스며들자, 침서가 분부했다. “가져가서 태우거라. 피가 사방에 떨어져 아주 더럽구나.”부하는 곧 사람 머리를 가져갔다.곧이어 침서가 또 물었다. “어젯밤에 부진환이 다쳤다고 들었다. 상처가 어떠하냐? 내가 가서 좀 보고 와야겠다.”낙요는 잠시 멍해 있더니, 그를 불렀다.“부진환은 괜찮습니다.”“오늘 당신은 부진환 때문에 오신 겁니까?”침서는 웃으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당연히 너를 보러 온 것이지.”“다만 네 사람이니, 당연히 신경 써야지.”비록 침서는 전혀 적의가 없어 보였지만, 낙요는 별로 침서와 부진환을 만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둘러댔다. “낙정 때문에, 어젯밤에 한잠도 못 잤습니다. 오늘 마침 날씨도 좋은데, 저와 함께 나가서 좀 걸으시는 게 어떠십니까?”침서는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래.”두 사람은 저택에서 나오면서 침서가 말했다. “아요, 봄이 되면, 나와 함께 산으로 바람 쐬러 가자.”“산속의 경치는 사람의 모든 고민을 잊게 한단다.”낙요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좋습니다.”“그러고 보니, 저는 별로 먼 길을 떠나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겨울이 가면, 세상 곳곳을 구경 다니고 싶습니다.”낙요는 늘 자신은 어느 한 곳에 구속되어 있는 몸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침서는 생각도 하지 않고, 선뜻 지지했다.“너만 원한다면 내가 너와 함께 모든 산천을 걷고, 끝없는 초원을 밟겠다.”낙요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먼 곳의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우유를 알고 있습니까?”“우유의 사부 탁성은 그해 자유를 찾아 떠났습니다. 그는 반평생을 자유롭게 산 셈입니다.”“하지만 그는 자기 제자를 버렸습니다.”“우유는 그동안 제사 일족에서 잘 지내지 못했습니다. 이미 다른 사람의 사부가 되었으면 우유에게 재주를 가르치는 것이 탁성 삼촌의 책임입니다.”“탁성은 어쩌면 감정이 풍부한 사람일 수도 있지만, 그는 절대 책임감
“그러게, 말입니다. 진씨 집안은 간덩이가 부었나 봅니다. 어찌 감히 대제사장과 미친 염라대왕을 모독한답니까? 대제사장과 미친 염라대왕에게 밉보였으니, 감옥에 들어간 겁니다.”“글쎄, 오늘 지나면 참수한다고 들었습니다.”“쌤통이야!”“그러게, 말입니다!”“그러고 보니, 이 미친 염라대왕은 사람을 삼대 베듯 죽이는데, 여인을 달랠 줄도 알고, 참 그에게 이렇게 부드러운 면도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미친 염라대왕은 단지 칭호일 뿐이요. 침서도 그저 사람이라고! 사람이면 칠정 육욕을 벗어날 수 없소!”두 사람은 밖에서 잠깐 듣더니, 낙요가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침서는 빠른 걸음으로 따라가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아요.”낙요는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침서는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너는?”“너도 저자들처럼 나를 사람으로 생각하느냐? 아니면 염라대왕으로 생각하느냐?”낙요는 저도 몰래 웃음을 터뜨렸다. “당연히 사람으로 생각합니다.”그녀는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저는 당신이 사람을 죽일 때의 모습을 별로 본 적이 없어서, 줄곧 당신을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오히려 사람을 삼대 베듯 죽이는 염라대왕으로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게다가 제가 당신을 두려워하는 걸 본 적이 있습니까?”낙요는 해맑게 웃었다.그녀의 미소는 마치 한줄기 따스한 빛처럼 침서의 가슴 깊숙한 곳까지 비춰주었다.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요, 너의 이 말만 있으면 나에겐 충분하다.”낙요는 또 고개를 들고 그를 쳐다보더니, 웃으며 물었다. “그럼, 이제부터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됩니까?”“저는 다른 사람이 당신을 미친 염라대왕이라고 부르는 것도 싫습니다.”침서는 잠시 멍해 있더니, 약간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여전히 고개를 끄덕이었다. “알겠다.”바로 뒤에 두 사람은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갔다. 그들은 비교적 조용한 거리를 돌
“예! 알겠습니다.”계진이 물러간 후, 낙요는 밀실로 들어갔다.다시 그 등잔 속의 여인을 보니, 그녀의 혼백은 이미 매우 선명했다.다만 낙요를 보더니, 삽시에 분노가 폭발했다. “내 몸을 돌려줘! 이 도둑년!”낙요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분노로 인해 흉악해진 여인의 얼굴을 보더니, 이미 의식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왜 이 몸을 네 것이라고 하느냐? 네 얼굴과 내 얼굴은 완전히 다르게 생겼는데 말이다.”여인은 더없이 분노했다. “변명하지 말거라! 넌 침서의 새로운 연인이겠구나! 그렇지 않으면 그가 어찌 이 몸을 너에게 주었겠느냐?”“너의 기쁨도 얼마 가지 못할 것이다. 그가 싫증 나면, 너도 나와 똑같은 꼴을 면치 못할 거니까!”“그는 이 몸을 또 다른 사람에게 줄 것이다!”마침내, 그녀는 마침내 예전처럼 광기를 부리지 않았다.이미 정신을 차렸고 이성을 찾았다.낙요는 속으로 기뻤지만, 동시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그렇다면, 이 여인은 확실히 이 몸을 차지한 적이 있었다.하지만 그녀의 말을 들어보면, 이 몸의 원래 주인은 아닌 것 같았다.오히려 이 몸을 물건처럼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다는 것처럼 말했다.“말뿐이지 증거가 없으니, 나는 너의 말을 믿지 않는다.”“나와 침서의 관계를 이간질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마라!”낙요는 일부로 말로 자극했다.그 여인은 과연 급해하더니, 노하여 말했다. “그때 침서가 나를 구해줄 수 있다고 속였어. 그래서 나는 집에서 도망쳐 나와 그와 함께 떠난 거야.”“나는 단지 어두운 과거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그에게 6년 동안 감금될 줄은 생각도 못 했어!”“내가 갇혀 있는 동안, 그는 매일 달콤한 말로 나를 달랬어. 그는 한 가지 중요한 일을 끝내고 나면, 나와 혼인하여 영원히 함께한다고 약속했어.”“나는 그의 아내가 될 것이고, 또한 유일한 아내가 될 거라고 했으며, 그때가 되면, 우리는 성대하게 결혼식을 올릴 것이며, 나에게 정당한 명분도 준다고 했어.”“하지만, 6
낙요의 눈동자가 반짝이더니, 즉시 몸을 돌려 밀실에서 나왔다.원래는 계진과 동행하려고 했으나, 계진이 대제사장 저택을 떠나면, 침서의 주의를 끌 것 같았다.하필 이때, 부진환이 왔다.“대제사장, 침서가 다녀갔습니까? 혹시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낙요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 “그건 왜 묻는 거요?”낙요는 말하며 밖으로 걸어갔다.부진환은 빠른 걸음으로 쫓아가 캐물었다. “혹시 침서가 계진에 관해 물었습니까?”낙요는 부진환이 왜 계진을 물어보는지 알 수 없었다.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뭐요?”“그럼, 대제사장께서 일단 제 말을 좀 들어보십시오.” 부진환은 약간 조급해졌다.이건 계진의 생사와 관련된 문제다.그가 소홀했다. 낙정과 말을 섞었다. 그리고 낙정은 침서의 손에 죽었으니, 침서는 아마도 그가 벙어리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하지만 낙요는 말을 타고 떠나려고 했다. “돌아와서 다시 얘기하자고.”말을 채찍질하여 떠나려고 하는데 부진환이 말고삐를 잡고 말했다. “대제사장, 언제 돌아오실 겁니까?”낙요는 부진환의 다급해하는 모습을 보더니 말했다. “그럼, 나와 함께 가면서 길에서 얘기하자고.”부진환은 고개를 끄덕이었다. “좋습니다.”곧이어 말을 타고 낙요의 뒤를 따라갔다.두 사람은 함께 말을 타고 성을 빠져나갔다.그들은 오랫동안 달렸고, 가는 길 내내 부진환은 얘기할 기회를 찾지 못했다.하지만 낙요는 부진환의 몸을 생각하여, 차를 파는 노점을 지날 때 잠깐 멈췄다.그들은 차 한 주전자를 시켰고,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부진환은 궁금해서 물었다. “대제사장, 지금 어디 가시는 겁니까? 왜 한 사람도 데리고 가지 않는 겁니까?”낙요는 막 찻잔을 들고 차를 마시려고 하더니, 고개를 들고 그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당신은 사람이 아니요?”부진환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곧이어 그는 또 말했다. “대제사장을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저는 지금 대제사장을 보호할 능력이 없습니다. 만약 위험에 처하면 오히려
밤이 되자, 숲속에서 불을 피워 놓고 밤을 지낼 수밖에 없었다.다행히 곧 봄이었기에, 이 시기의 밤은 혹독한 겨울처럼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두 사람은 바람을 피해, 불을 피워 놓고, 불더미 앞에 앉았다.낙요는 무릎에 턱을 괴고, 넋을 잃고 불더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부진환이 서서히 입을 열었다. “이번에 바람 쐬러 나오신 게 아니시지요?”낙요는 잠시 멍해 있더니, 고개를 들고 부진환을 쳐다보았다.부진환은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는 줄곧 호젓한 길로만 달렸습니다. 분명 더 좋은 큰길이 있었지만, 하필이면 아무도 없는 곳으로만 달렸습니다.”“분명 밤에는 객잔에 머무를 수 있지만, 하필 지금 숲속에서 떨고 있습니다.”낙요는 시선을 옮겨 계속해서 불더미를 바라보면서 서서히 입을 열었다.“사실 이번에 몇 가지 일을 조사하러 가는 거요.”“몇 가지… 아주 중요한 일을 조사하러 가는 거요.”부진환은 불빛에 비친 낙요의 근심 어린 눈동자를 보더니, 그녀 곁으로 바짝 다가가 앉았다.“대제사장, 제가 지킬 테니 좀 주무십시오.”낙요는 무릎을 껴안고, 얼굴을 무릎 안으로 파묻더니, 잠깐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밤바람은 여전히 약간 한기를 지녔고, 특히 잠이 들자, 더욱 추웠다.부진환은 곁에서 지키고 있었으며, 불더미를 더욱 세게 지펴놓고, 낙요를 살펴보았다. 그녀는 온몸을 힘껏 웅크리고 있었으며, 몹시 추워 보였다.그는 바람의 방향을 확인해 보더니, 곧이어 방향을 바꾸어 앉아, 낙요에게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었다.초저녁에 낙요는 약간 추워서 잠을 잘 이룰 수 없었지만, 한밤중이 되었을 때, 그녀는 전혀 추위를 느끼지 못했으며, 아주 편안하게 푹 잤다.낙요는 날이 밝아서야 눈을 떴다. 깨어났을 때, 자신이 부진환의 품속에 누워있는 걸 발견했다.어쩐지 한밤중에 전혀 춥지 않았다.하지만 고개를 들어보니, 부진환의 입술은 얼어서 하얗게 질렸고 불더미를 보니, 막 꺼지려고 했다.낙요는 다급히 일어나 앉더니, 꽁꽁 얼어붙은 부진환의 손을 따뜻하게 녹여주
부진환이 물었다.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신 분은 혹시 할머니입니까?”“할머니는 지금… “할아버지는 슬픈 어투로 말했다. “그녀는 2년 전에 돌아갔소.”“허허허, 내가 괜한 말을 했구먼. 어서 출발하시오.”“그렇지 않으면, 날이 어둡기 전에 도착할 수 없소.”이 말을 하며 할아버지는 주머니를 꺼내 그들에게 건량을 좀 넣어주고, 또 물 두 주전자를 가져다주었다.그리고 또 궁전(弓箭) 두 개를 부진환의 등에 메어주며 당부했다.“그 산길은 몹시 험난한데 당신들은 어찌 무기 하나 몸에 지니지 않았소? 이 궁전은 내가 젊었을 쓰던 건데, 날카롭기 그지없소. 가져가서 호신용으로 쓰시오.”부진환은 거절하려고 했지만, 할아버지의 호의를 저버릴 수 없어, 그냥 받았다.“할아버지 감사합니다.”“그럼, 우린 출발하겠습니다.”두 사람은 방에서 나왔다. 할아버지는 두 사람을 문밖까지 바래다주며 손을 흔들었다.바로 이때, 낙요가 몸을 돌렸는데, 이 집 상공에 한 줄기의 핏빛 기운이 떠도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낙요는 순간 흠칫 놀라 발걸음을 멈췄다.다시 할아버지를 보니, 머리 위에 핏빛 날카로운 칼이 떠 있었다.어찌 된 일일까?왔을 때만 해도 할아버지에게 혈재가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방금 나타난 것이다.보아하니 하늘이 도와주라는 뜻인 것 같다.“왜 그러십니까?” 낙요가 걸음을 멈추자, 부진환이 궁금해하며 물었다.낙요는 급히 몸을 돌려 되돌아갔다.할아버지도 몹시 의아했다. “왜 돌아온 것이오? 혹시 잊은 물건이 있소?”낙요는 몸에 은표 백 냥 밖에 없었다. 그건 원래 임장음의 가족에게 주려던 거였다.그 외 그녀에겐 은량이 없었다.낙요는 부진환을 쳐다보더니 물었다. “혹시 돈을 가져왔소?”부진환은 품속에서 쇄은 몇 냥을 꺼냈다. “급히 떠나는 바람에 많지 않습니다.”낙요는 받아 쥐더니, 할아버지 손에 쥐여주었다.“이럴 필요 없소. 그저 밥 한 끼 먹었을 뿐이요.” 할아버지는 연신 거절했다.낙요는 또 손목의 옥팔찌와 머리에 꽂은 구슬 비녀
눈을 감으니, 낙요의 눈앞에 두 눈이 시뻘건 할아버지가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나타났다.낙요는 그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분명 야수가 사람을 공격할 때의 모습이었다.할아버지도 저렇게 변한다고?갑자기 그 두 눈이 시뻘건 할아버지가 그녀에게 달려들었다.낙요는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짐을 다 정리했소, 바로 떠나겠소.”할아버지가 대문을 나섰다.뒤이어 낙요와 부진환은 할아버지를 배웅했고, 할아버지가 관도에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할아버지는 가장 가까운 마을로 가셨고, 반 시진이 걸리지 않았다.이윽고 낙요와 부진환도 계속해서 가던 길을 가며 부진환이 궁금해하며 물었다. “그 할아버지에게 어째서 갑자기 재앙이 생긴 겁니까? 우리 때문입니까?”낙요는 무거운 표정으로 머리를 흔들었다. “모르겠소.”“혹시 연등회가 있었던 그날 밤, 우리가 숲까지 쫓아가서 십여 명을 죽였던 걸 기억하오?”“그 사람들은 그때 비록 인간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 이미 사람의 혼백을 가지고 있지 않았소. 체내에는 이미 짐승의 혼이었소.”“할아버지의 모습은 그들과 똑같았소.”이 말을 들은 부진환은 몹시 놀라 했다. “사람의 몸에 짐승의 혼이라는 말씀입니까? 어쩐지 그날 밤 그들은 고통을 참는 능력이 아주 강하고 유난히 사납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낙요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건 이미 처음 아닙니다.”“누군가 분명 몰래 사람으로 실험하는 겁니다.”“이 사람들을 훈련하면 유난히 사나운 부대가 될 것 같지 않습니까?”“내가 처음 만났던 것부터 지금까지 만나 본 것들을 보면, 점점 더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부진환은 듣더니 표정이 무거워졌다.“지난번 연등회에서 그들은 당신을 성 밖으로 유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 걸 보면 진씨 집안과 그 짐승의 혼은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진씨 집안과 관련이 있는 사람이라면… 황후가 아니겠습니까?”낙요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말했다. “그리고 낙정도 가능성이 있소.”“비록 제사 일족에는 그런 사문 외도가 없지만,
그 한마디에 부진환은 말문이 탁 막혔다.그는 죄책감에 가득 차 무거운 어투로 답했다.“그때는 확실히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말입니다.”“하지만 그 속에는 아주 많은 오해가 있었습니다.”“부득이한 이ㅡ유도 아주 많았습니다.”“대제사장이 본 것처럼 낙정은 저를 제어할 수 있습니다. 가끔은 저도 모르게 낙청연에게 상처를 줄 때도 많았습니다.”“그래서 낙청연이 떠난 후, 저는 쭉 죄책감 속에서 살아왔습니다.”“저를 용서하는 것도, 저와 화해하는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제가 여국에 온 것은, 그저 낙청연을 도와주고 지켜주고 싶었던 것입니다.”“목숨을 바치라고 해도 기꺼이 바칠 것입니다.”부진환은 무거운 어투로 유독 간절하게 말했다.이 말을 들은 낙요는 가슴이 답답하다 못해 꽉 막힌 것 같아 대답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길을 재촉하여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산 정상에 도착했다.숲을 지나자 시야가 넓어졌고, 석양의 빛이 그들을 비추었다.산 정상에 서니 앞의 모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낙요는 임장음이 말한 위치를 첫눈에 알아보았다.그 마을의 서쪽 산 밑에는 저택이 하나밖에 없어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심지어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가자.”낙요가 발길을 옮기려는 순간, 부진환은 낙요의 팔을 덥석 잡고 끌어당겼다.낙요는 고개를 돌려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부진환을 바라보았다. 부진환은 눈앞에 펼쳐진 풍경과 하늘을 보며 입을 열었다.“이리 아름다운 경치는 보기 드뭅니다.”“오래 걸었는데 잠시만 쉽시다.”말을 마친 부진환은 자리에 앉았다.낙요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석양이 저무는 풍경을 선명하게 보는 기회는 흔치 않았기에 낙요도 여유롭게 자리에 누웠다.석양이 땅을 비췄고, 멀지 않은 곳의 가옥들에도 은은한 광택이 어른거렸다.먼 곳의 태양이 서서히 저무는 광경을 보니, 낙요의 마음도 어쩌다 평온해졌고 번뇌도 사라지는 것 같았다.태양이 모습을 완전히 감췄고, 마지막 한 줄기의 빛도 풀밭에서 사그라들었다.“이제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