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에 낙요는 눈살을 찌푸리고 그를 바라봤다.“무엇 때문입니까?”진익이 설명했다.“당신은 아주 오래전부터 침서와 왕래하지 않았소.”“침서는 대장군의 자리에 앉기 위해 몇 번이나 당신을 해쳤소.”“그는 당신을 속여 취혼산으로 데려간 뒤 악귀가 당신을 습격한 사이 기회를 틈타 당신의 고원단(固元丹)을 빼앗았소.”“그리고 자신의 경쟁상대를 없애기 위해 당신을 이용했었소. 위험에 빠진 당신은 살기 위해 적을 죽였지.”“그런 일을 침서는 수없이 많이 했소.”“하지만 당신은 이제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오.”그 말을 들은 낙요는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진익이 한 얘기들은 마치 그녀에게 벌어진 적 없는 일 같았다.그녀는 문득 문제를 발견하고는 그를 차갑게 노려보았다.“이렇게 은밀한 일들을 황자께선 어떻게 알고 계시는 겁니까?”“황자께서 침서가 그렇게 많은 짓을 했다는 걸 알면 침서의 성정으로는 일찍 황자를 죽였을 텐데요!”“어떻게 지금까지 살아있는 겁니까?”진익은 그녀의 질문에 흠칫했다.그는 시선을 옮기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믿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시오. 어쨌든 난 거짓말한 적이 없으니 말이오.”진익은 솔직히 얘기하기 껄끄러웠다. 그는 어릴 때 너무 약하고 자신감이 없던 탓에 재능도 있고 실력도 강한 낙요에게 말을 걸기가 쑥스러웠다.그러나 마음속으로는 그녀와 대화하고 싶고 그녀의 가르침을 받고 싶었다.그래서 다른 이들보다 낙요를 훨씬 더 신경 썼다.가끔은 그녀를 따라다니기도 해서 많은 일들을 알고 있는 것이다.물론 침서가 이 사실을 알게 할 수는 없었다.그리고 진익은 실력도 약하고 황자가 아니었다면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심지어 황자라고 얘기해도 그를 의식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침서는 당연히 그가 안중에도 없었다.낙요는 진익의 그 두 마디 설명을 듣고 그의 말을 믿을 수 없다고 여겼다.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됐습니다. 침서가 절 속였다고 하더
부진환은 그 말을 할 때 눈빛이 아주 복잡했다. 마치 그 말을 낙요에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낙요는 아주 이상함을 느꼈다.“됐소.”낙요는 걸음을 옮겼고 부진환은 계속해 낙요를 뒤따랐다.낙요는 덤덤히 말했다.“날 따라올 필요 없소.”그러나 부진환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그렇게 따라가다가 결국 참지 못한 낙요가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왜 날 따라다니는 것이오?”부진환은 그윽한 눈빛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제가 왜 대제사장님께 이렇게 잘해주는 건지 궁금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지금 그 이유를 들으시겠습니까?”낙요는 살짝 당황했다.-막사 안.숯불을 피우니 아주 따뜻했다.구십칠은 뜨거운 차를 한 주전자 가져왔고 주락도 데려왔다.네 사람은 화로를 중간에 두고 둘러앉았고 낙요는 몸을 살짝 웅크린 채로 담요를 덮고 나른하게 의자에 앉아있었다.“말하시오. 날이 밝기 전에 할 말을 다 하시오.”낙요는 아주 피곤했다.그녀는 아직 진익이 한 말을 다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녀는 잠깐 주의력을 옮겨 정신이 말짱해진 뒤에 온심동의 일을 제대로 조사할 생각이었다.온심동이 취혼산에서 죽었다면 우유가 뭔가를 알고 있을 것이다.“대제사장님.”부진환이 뜨거운 차를 한 잔 건네자 낙요는 정신이 돌아왔다.구십칠이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대제사장님, 당신이 낙청연일지도 모릅니다!”그 말에 찻잔을 들었던 낙요가 몸을 흠칫 떨어 차가 흘러나왔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구십칠을 바라봤다.“때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나와 이런 재미 없는 농담을 하는 것이지?”“난 몹시 피곤하오.”그러나 구십칠, 부진환, 주락, 세 사람의 표정은 아주 엄숙했고 미간 사이에서는 걱정과 긴장이 보였다.그리하여 낙요는 불편함을 느꼈다.부진환이 계속해 말했다.“대제사장님, 그는 장난을 친 것이 아닙니다.”“우리가 말을 다 끝낸 뒤에 다시 의심스러운 부분을 지적하시는 건 어떻습니까?”낙요는 괜히 긴장됐다.“좋소.”부진환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낙청연은 과거
“그래서 저는 여국까지 쫓아갔습니다.”“전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여서 죽기 전에 낙청연을 데리고 여국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곧 낙청연이 원하는 것이 대제사장 자리임을 발견하였습니다.”“그것은 줄곧 그녀가 원하던 것이었습니다.”“그리고 낙청연은 확실히 해냈습니다!”“겨우 한 걸음 모자랐지만...”낙요는 거기까지 들은 뒤 미간을 구기고 중얼거렸다.“낙청연은 천궐국 사람인데 왜 대제사장의 자리에 집착한 것이지? 게다가 그걸 위해 목숨까지 바치다니.”“그럴 가치가 없는데 말이오.”부진환은 낙요를 물끄러미 바라봤다.“그녀가 바로 낙요이기 때문입니다!”“그녀는 과거 여국의 대제사장이었습니다.”“그녀는 여국으로 돌아가 복수할 생각이었습니다!”그 순간, 낙요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부진환은 낙요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계속해 말했다.“그녀는 과거 직접 제게 자신이 낙요라고 말했습니다.”“전 비록 그녀가 어쩌다가 낙청연이 됐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그녀는 절대 절 속이지 않았을 겁니다.”낙요는 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온몸이 굳어버렸다.내가 낙청연이라니?내가 어떻게 낙청연이란 말인가?구십칠이 황급히 말했다.“낙청연은 취혼산에서 죽었습니다. 사고가 일어난 날 침서가 곧바로 그녀의 시체를 가져갔습니다.”“그런데 며칠 뒤 시체를 부진환에게 돌려줬습니다.”“그리고 그 뒤로 대제사장님이 갑자기 나타났습니다.”“아무런 예고도 없이 말입니다. 누구도 대제사장님이 어떻게 도성 안으로 들어갔는지 알지 못합니다. 대제사장님은 갑자기 침서의 저택에 나타났습니다.”“그래서 저희는 분명 침서가 모종의 방법으로 당신을 되살려 다시 낙요로 돌아가게 했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낙요는 미간을 구기고 중얼거렸다.“의심?”“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증명할 증거가 없다는 말이 아니오?”부진환은 초조한 마음에 말했다.“대제사장님!”“그만 말하시오.”낙요가 그를 말렸다.“당신들이 말한 건 잘 고민해 보겠소.”“하지만 당신들의 말을 무턱대고
부진환은 낙요의 발을 주무르며 혈 자리를 눌러줬다. 찌릿찌릿한 감각과 약간의 통증이 느껴졌지만 아주 편안했다.“당신들이 얘기한 일, 또 누구에게 알렸소?”부진환이 대답했다.“저희만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님 한 명에게만 얘기했습니다.”낙요는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이 일은 외부인에게 얘기하면 아니되오. 누구라도 알려줘서는 안 되오.”“그렇지 않으면 죽임당할 수도 있소.”부진환은 나직하게 웃음을 터뜨렸다.낙요는 살짝 놀라더니 눈을 뜨고 그를 바라봤다.“뭘 웃는 것이오?”부진환은 웃으며 말했다.“기뻐서 그럽니다.”“대제사장님께서는 조금 전에 외부인에게 얘기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 말은 저희를 자기편으로 생각한단 뜻이겠지요.”“맞습니까?”낙요는 당황했다. 그녀는 그 점을 생각하지 못했다.“그게 중요하오?”부진환은 웃으며 대답했다.“대제사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이 일은 절대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을 겁니다.”“이것은 우리만의 비밀입니다.”부진환은 포근한 미소를 지으며 낙요를 지긋이 바라봤다.낙요는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그녀가 별안간 말했다.“백서에게도 얘기하지 마시오.”“백서요?”부진환은 놀란 표정이었다.“당연히 그자에게 얘기하지 않을 겁니다.”“저와 그자는 아무 사이 아닙니다.”낙요는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아무 사이 아니라고? 두 사람은 생사를 함께 하지 않았소?”부진환은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같이 감금됐었던 적이 있었을 뿐이지요.”“저희가 함께 겪었던 일이야말로 생사를 함께 한 것입니다.”그 말을 할 때 부진환은 무척 진지한 표정이었다.낙요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구겼다.“난 기억나지 않소.”“앞으로 그런 얘기는 내게 하지 마시오.”낙요는 그럴 때마다 부진환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낙요는 그것이 매우 불편했다.부진환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낙요는 눈을 감았다. 머릿속이 엉망이라 얼른 잠이 들고 싶었다.비몽사몽이던 그녀는 아주 짧은 꿈을 꾼
그 비명은 사람들을 모여들게 했다. 낙요는 곧바로 그들에게 전부 돌아가라고 했다.곧이어 낙요는 부적 하나를 꺼내 그 병사의 이마에 붙이며 호통을 쳤다.“나오거라!”한 여인이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녀는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낙요를 바라보며 미친 듯이 소리쳤다.“내 몸이야! 내 몸이라고!”그리고는 낙요를 덮쳐 삽시에 그녀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극심한 통증과 함께 낙요는 혼백이 몸속을 유영하는 기분을 확실히 느꼈다. 눈앞의 모든 것이 흐릿하게 보이고 겹쳐 보였다.그녀는 그 혼백이 곧장 그녀의 몸 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강할 줄은 몰랐다. 부진환도 깜짝 놀랐다. 그는 황급히 낙요를 부축했다.“대제사장님, 대제사장님!”그의 목소리를 들은 낙요는 그의 옷깃을 꽉 쥐었다.“날, 날 데리고 돌아가시오.”부진환은 곧바로 낙요를 안아 들고 다급히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곧 구십칠과 주락이 도착했다.“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오?”부진환이 분부했다.“당신들은 밖에서 기다리시오. 아무도 들여보내지 마시오.”“알겠소.”부진환은 낙요를 침상 위로 내려놓았다.그러나 극심한 통증에 몸부림치던 그녀는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대제사장님!”부진환은 황급히 다가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대제사장님, 왜 그러십니까?”“제가 뭘 하면 됩니까?”그는 낙요가 무언가에 습격당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볼 수 없었다.“나침반을 가져오시오!”낙요는 숨이 막혔다. 그녀는 놀랍게도 그것이 그녀의 몸을 거의 다 차지했음을 발견했다.그녀의 영혼은 반복적으로 몸 밖으로 튕겨 나가고 있었다.찢길 듯한 극심한 통증에 낙요의 이마에 파란 핏줄이 섰다.부진환은 황급히 손을 뻗어 낙요의 몸에서 나침반을 찾았다. 그러고는 곧바로 그것으로 낙요의 몸을 비췄다.금빛이 쏘아짐과 동시에 귓가에서 여인의 처절한 비명과 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낙요는 그 기회를 틈타 신속히 몸을 되찾았다. 그녀는 부적을 움켜쥐더니 곧바로 손을 뻗어 여인의 목을 졸랐다.그러
침서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낙요의 안색이 좋지 않자 그는 걱정스레 말했다.“왜 그러느냐? 안색이 왜 이렇게 나쁜 것이냐?”“악몽을 꾸었습니다.”침서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말했다.“내가 안신향(安神香)을 주마. 푹 쉬거라.”말을 마친 뒤 고개를 돌린 그는 부진환을 보자 눈빛이 삽시에 싸늘해졌다.“당신이 여긴 왜 있는 것이오? 누가 들어오라고 했소?”부진환은 고개를 숙였다.낙요는 바닥에 있는 대야를 보고 말했다.“제가 대야를 들고 나가라고 부른 겁니다.”“얼른 나가시오.”부진환은 고개를 끄덕인 뒤 곧바로 대야를 들고 막사를 나갔다.낙요는 침상에 앉아 피곤한 얼굴로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침서를 바라봤다.“당신도 나가세요. 전 푹 쉬고 싶습니다.”침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말했다.“그러면 편히 쉬거라.”침서는 막사를 떠났다.구십칠과 주락은 이미 밖에 없었다.침서는 조금 의아함을 느꼈다.그가 노예곡에 있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듯했다.-낙요는 푹 쉬고 싶었고 또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나 날이 어슴푸레 밝기 시작할 때 밖의 소란스러움에 눈이 떠졌다.“그만!”“대제사장님께서는 저들을 풀어줄 것이라고 했소! 그런데 지금 약조를 지키지 않으려는 것이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의아한 얼굴로 밖을 바라봤다. 밖은 싸움이 일어난 건지 소란스러웠다.낙요는 황급히 신발을 신고, 옷을 입고 밖으로 뛰쳐나갔다.밖에서 봉시가 병사들과 싸우고 있었다.그들의 앞에는 노예곡의 사람들이 무릎 꿇고 있었고 옆에 있던 병사들은 장검을 들고 그들의 머리를 자르려 하고 있었다.봉시는 노예곡의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과 다툰 것이다.“그만!”낙요가 호통을 치자 곧바로 조용해졌다.봉시는 앞에 있던 병사를 힘껏 걷어차고 공격을 멈췄다.봉시는 곧장 낙요의 앞으로 걸어가 따져 물었다.“대제사장, 나와 무고한 백성들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약조하지 않았소? 왜 약속을 어기려는 것이오?”낙요는 눈살을 찌푸
낙요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차가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봤다.“그러니 마음대로 죽일 수 있단 말입니까?”“그것도 제 명령인 척하면서 말입니까?”“침서, 당신이 눈치채지 못했을 리는 없겠지요. 그들은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입니다. 대부분은 무공조차 할 줄 모르지요.”“그들은 다른 사람의 함정에 빠져 노예곡으로 끌려오게 된 겁니다. 그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아주 억울한 일이지요.”“그런데 당신은 심지어 그들을 죽이려고 했습니다!”침서는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겨우 노예 몇 명일 뿐인데 그게 그리 중요하더냐?”“무공을 할 줄 알든 모르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그는 그들의 목숨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처럼 냉담한 어조로 말했다.낙요는 순간 화가 치밀어올랐다.“그들은 당신에게 사람도 아니다, 이 말입니까?”“그래서 이렇게 거만하게 말 한마디로 그들의 생사를 결정하려는 것이겠지요!”“하, 제가 당신에게 그렇게 말을 많이 해서 무슨 소용이 있나 싶습니다. 미친 염라대왕이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군요.”낙요는 말을 마친 뒤 돌아서서 씩씩거리면서 떠났다.“낙요야! 낙요야!”침서는 뒤에서 그녀를 몇 번이나 불렀지만 낙요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침서는 미간을 구기고 괴로워했다. 그는 낙요가 겨우 이런 일로 화를 내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걸음을 옮겨 막사를 떠났다.-잠시 뒤, 봉시가 쫓아왔다.“대제사장.”봉시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낙요는 그가 뭘 걱정하는지 알고 있었다.“걱정하지 마시오. 난 당신과 약조를 했으니 그들을 해치지 않을 것이오.”그러나 봉시는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그 일이 아니오!”“그러면 무슨 일이오?”봉시는 걱정 가득한 얼굴이었다.“도궁, 비견 그자들이 날 협박하려고 노예곡 사람들을 많이 잡아들였소.”그 말에 낙요의 안색이 달라졌다.그녀는 노예곡에 아직 사람이 남아있다는 걸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가봐야겠소.”낙요는 부랴부랴 벼랑 끝으로 향했다.마침 아래를 볼 수 있
낙요는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그를 따라 줄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봉시는 그녀를 붙잡을 생각이었으나 한발 늦었다. 그는 낙요가 걱정되어 그녀를 따라 노예곡으로 들어갔다.낙요가 안전히 착지하자 검 여러 개가 그녀의 목을 겨누었다.낙요는 매서운 눈빛으로 덤덤히 손을 들어 장검을 치우며 비견을 바라봤다.“내가 도망칠 생각이었다면 당신을 따라 내려오지 않았을 것이오.”비견을 실눈을 뜨며 의미심장하게 낙요를 훑어보았다. 그는 더 손을 쓰지 않았다.낙요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고 아래 일부 동굴은 파지 않은 걸 발견했다.낙요는 고개를 돌려 비견에게 조건을 얘기했다.“이 동굴들에도 사람이 꽤 있을 것이오. 난 사람을 시켜 동굴을 파게 할 것이오. 이자들은 전부 위로 올려보내야 하오.”비견은 그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낙요는 그들이 잡은 여인과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당신들이 잡은 인질로 충분하오.”“당신들은 그들을 잡고 있으면 위에서 사람이 내려온다고 해도 당신들에게 손을 쓰지 않을 것이오.”“저자들은 전부 내 명령을 따르오.”비견이 대답하기도 전에 낙요가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난 당신의 조건을 승낙했고. 그리고 이건 내 조건이오.”비견은 이를 악물었다.“좋소!”어차피 그들의 손에는 이미 인질이 있었다.그렇게 그들은 각자 구역을 정해 놓고 돌로 벽을 쌓았다.낙요는 구십칠에게 사람을 데리고 내려오게 했고 계속해 동굴을 파게 했다.그리고 본인은 도궁, 비견에게 잡혀 벽의 반대 쪽으로 향하게 되었다.한 무리의 사람들이 검을 들고 그들을 에워쌌다.그들은 낙요를 죽어라 노려보았다. 그녀가 혹시라도 수작을 부릴까 봐서 말이다.구십칠은 사람을 데리고 동굴을 파기 시작했고 비견은 그들이 공격할 의도가 없음을 확인한 후에야 사람을 시켜 낙요를 방 안에 가둬놓았다.다른 인질들은 다른 방에 갇혔다.비견은 방 안으로 들어왔다.“이제 취혼부를 풀 수 있겠소?”낙요가 대답했다.“그렇소.”“금혼부를 하나 풀 때마다 사람을 한 명 풀어 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