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훼향은 더는 손찌검할 엄두가 나지 않는지 손을 거두어들였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면서 몸을 떨던 그녀는 성난 얼굴로 반박했다.“섭정왕께서는 사람들 앞에서 왕비의 편을 들어주려 하시는 겁니까?”“다들 보았다시피 왕비가 저에게 발길질하는 바람에 전 물에 빠졌습니다. 왕비는 절 죽일 계획이었단 말입니다! 그런데 섭정왕께서는 이 죄를 그냥 묻어버릴 생각이십니까? 오늘 저에게 합당한 이유를 주지 않으신다면 이 일을 폐하께 고하겠습니다!”류훼향은 극도로 화가 난 상태였다. 진태위의 손주며느리로서 이러한 모욕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류훼향은 오늘 낙청연에게 크게 한 방 먹이지 않으면 절대 그만두지 않을 기세였다.그런데 사람들 틈 사이에서 지켜보고 있던 부경한은 잠깐 흠칫하더니 이내 흥미진진하다는 듯이 웃음을 띠었다.황제가 옆에서 구경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부진환의 얼굴에 언뜻 언짢은 듯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고 그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껴있는 부경한을 힐끗댔다.류훼향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으나 황제가 그곳에 있으니 제멋대로 굴 수는 없었다.“본왕이 왕비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와는 다르군.”부진환은 엄청난 위압감이 담긴 목소리로 싸늘하게 말했고 그 말에 옆에 있던 낙청연은 잠시 흠칫했다. 그녀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들어 부진환을 바라봤다.그가 외부인 앞에서 그녀를 왕비라 칭하고, 그녀의 편을 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눈앞에 있는 자의 얼굴은 여전히 더없이 차가워 보였지만 예전처럼 그렇게 밉지는 않았다.불현듯 계략이 떠오른 낙청연은 부진환의 소맷자락을 잡아당기면서 눈물을 닦았다.“왕야…”“전 입이 백 개라도 해명할 방법이 없습니다.”낙청연은 억울한 얼굴로 류훼향을 가리키며 말했다.“저들이 먼저 저를 비웃었습니다. 저를 돼지우리에서 도망친 암퇘지라고 했지요. 저는 그런 모욕이 익숙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 왕야의 체면을 생각해야 했습니다.””제가 암퇘지라면 왕야는 뭐가 됩니까?”낙청연은 점점 더 서럽게 울기 시작했고
“인제 보니 류 소저는 굳이 궁으로 가서 시비를 가를 생각인 것 같군. 그러면 같이 가지.”그러나 류훼향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호위들이 기세등등하게 몰려와 나란히 서더니 길을 하나 만들어 주었다.류훼향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추워서인지 아니면 겁에 질린 것인지 온몸이 덜덜 떨렸다.회현루의 주인장은 형세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것을 보고 얼른 끼어들며 말했다.“여러분 모두 회현루에 오셨으니 다들 친구 아니겠습니까? 웃는 얼굴이 부를 가져다준다는 데 화목하게 지내는 게 좋지요.”“이 일은 저희 회현루에서 일어난 일이고 또 각자 주장하는 바가 있으니 저희 회현루의 규칙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건 어떻습니까?”“그리고 회현루를 나서면 은혜든 원한이든 전부 다 없는 셈 치는 겁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회현루는 대부분 특별한 신분의 귀족 공자들이나 아씨들을 대접했고 오늘은 섭정왕까지 회현루에 왔다.그래서 주인장은 최대한 일을 무마시키려 했다. 혹시나 진짜 궁에까지 이 일이 알려진다면 회현루가 손해를 볼지도 몰랐다.주인장의 말에 류훼향은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하고 말했다.“그래요. 주인장의 말이 맞습니다. 회현루의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요. 왕비, 그럴 용기가 있습니까?”부환은 미간을 구긴 채로 고개를 돌려 낙청연을 바라보았다. 그는 낙청연에게 승낙하지 말라고 눈치를 줄 셈이었다.그런데 낙청연은 생각지도 않고 곧바로 대답했다.“당연하지요.”그녀의 대답에 류훼향은 득의양양한 얼굴로 웃었다.“그래, 승낙했으니 무르면 안 됩니다. 오늘 물에 빠진 사람은 저이니 뭘 겨룰지는 제가 결정할 것입니다.”낙청연의 눈동자에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류훼향이 말한 것이 무예를 겨루는 것임을 눈치챈 낙청연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정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이 회현루의 규칙이 무엇인지는 알아야겠습니다.”부진환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현명하게 굴더니 왜 갑자기 멍청하게 남의 함정에 빠지려 하는 것인지 몰랐다.“낙청연
부진환은 미간을 구기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낙청연, 진짜로 멍청한 것이냐 아니면 멍청한 척하는 것이냐? 류훼향이 일부러 함정을 파놓은 것인데 눈치채지 못한 것이냐?”낙청연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왕야, 걱정하지 마십시오. 왕야께서 체면을 잃을 일은 없을 것입니다.”부진환은 낙청연의 어조에서 조롱을 읽어내고는 더욱더 미간을 좁혔다.“본왕이 체면 때문에 이런다고 생각하는 것이냐?”“아닙니까?”낙청연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설마 날 보호하려고 그런 것일까?그런 생각은 꿈에도 할 리가 없었다.체면 때문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일까?낙청연이 이기든 지든, 체면을 잃든 어찌 되든 그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그가 걱정하고 신경 쓰는 것은 무엇일까?부진환은 갑자기 더없이 냉랭해진 목소리로 말했다.“본왕을 실망시키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경고가 담긴 말투였다.말을 마치고 난 후 부진환은 먼저 걸음을 옮겼고 낙청연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면서 자조했다. 그는 그녀가 그의 마음을 꿰뚫어 보자 역정을 냈다.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좋은 구경거리를 보기 위해 회현루에 모여들었다.하지만 회현루는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기에 밖에는 구경하러 온 백성들로 가득했다.회현루 안에서 점원은 탁자마다 차를 올렸고 사람들은 낙청연과 류훼향의 겨루기를 기다렸다.부경한도 몇몇 공자들과 함께 회현루에 들어가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황제가 그곳에 있음을 눈치챈 자는 아무도 없었다.회현루 안은 비교적 조용한 편이었지만 밖은 왈가불가 떠드는 소리로 가득했다.“류 소저의 부군은 젊었을 적 어용 화사였소. 최근 몇 년간 류 소저도 그를 따라 여러 가지 재간을 배웠다고 들었는데, 내가 보기에 류 소저가 왕비보다 서화(書畫)에 더 능할 것 같소.”“내 생각도 그렇소. 왕비는 그닥 이름도 없거니와 소문을 들어보니 아주 무능하다고 하던데 아마 참패할 것 같네.”“그러게 말이오. 동의하지 말아야 했는데, 너무 무모했소.”낙청연은 부진환의 옆
그녀의 목소리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지 않았더라면 수수한 옷차림을 한 여인이 류훼향일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낙운희와 위운하도 도착했고 마침 그녀의 왼쪽에 자리를 잡았다.낙운희는 자리에 앉을 때 낙청연을 쏘아보며 말했다.“훼향 언니의 노여움을 샀으니 망신당할 준비나 하시지요!”“할아버지가 왜 당신을 손녀라고 인정했는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당신이 창피를 당하든 말든 상관없지만 저희 집안에 폐를 끼치지는 마시지요! 저희 태부부는 줄곧 좋은 평판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당신 때문에 다 망하게 생겼잖습니까?”낙운희는 할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언니까지 왜 모두 낙청연을 좋아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낙청연은 생긴 것도 별로고 재간도 없으며 심지어 비겁한 수단을 써서 섭정왕비가 되었다.그래서 낙운희는 낙청연이 아주 미웠고 현재는 그녀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했다.낙청연은 콧방귀를 뀌면서 느긋하게 말했다.“네가 말하지 않는다면 이곳에 나와 태부부를 연결 지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당신!”낙운희는 화가 난 얼굴로 낙청연을 노려봤다.바로 그때 류훼향이 낙청연을 바라보며 말했다.“왕비, 우리의 약속을 기억합니까?”낙청연은 성가시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당연히 기억합니다. 무엇으로 겨루실 겁니까?”모두들 학수고대하는 눈치였다.사실 그들 모두 이번 시합에서 누가 이기고 질지는 뻔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단지 낙청연이 지고 난 뒤 섭정왕이 그녀에게 무릎을 꿇게 할는지가 궁금할 뿐이었다.비록 창피를 당하는 건 낙청연 본인이겠지만 부진환도 그 때문에 체면이 깎이게 될 것이니 말이다.구경꾼들은 그 모습을 구경하러 온 것이었다.낙청연과 류훼향의 실력은 굳이 비교할 필요가 없었고 낙청연이 이길 거라 생각하는 사람도 없었다.류훼향이 입을 열었다.“서화를 겨루지요!”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류훼향의 부군 진백리는 과거 어용 화사였고 궁에 걸려있는 태상황과 태후의 초상화는 진백리가 그린 것이었다.류훼향의 그림 실력은 낙청연
“도박을 한 번 해볼 생각이다. 진백리가 이 그림을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구나. 기회가 있다면 그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그 말에 온계람은 깜짝 놀라더니 이내 감격한 듯 대꾸했다.“감사합니다!”그녀는 낙청연이 시합하는 중요한 시각에도 자신의 일을 신경 써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낙청연은 그녀를 진심으로 도우려 하고 있었고 온계람은 무척 고마웠다.—사람이 많은 곳에 시합이 있으면 노름판도 있기 마련이다.밖에서는 누군가 큰 소리로 외치며 낙청연이 이길지 류훼향이 이길지 노름을 벌이고 있었다.원래는 성세가 그리 크지 않았는데 섭정왕이 그곳에 도착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러 왔다.“난 류훼향한테 걸겠소.”“나도 류훼향이오!”“난 삼 냥을 걸겠소!”밖은 소란스러웠고 낙청연은 한참을 들었으나 자신의 이름은 듣지 못했다.낙청연의 눈동자에 순간 돈에 대한 욕망이 일렁였다.그녀는 참지 못하고 손을 들어 병풍을 열어젖혔고, 사람들은 그녀의 행동에 깜짝 놀랐다. 아직 시간이 다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패배를 인정하려는 것일까?그런데 낙청연은 고개를 내밀고는 부진환을 바라보며 말했다.“왕야, 저에게 백 냥을 빌려주시지요!”부진환은 미간을 사정없이 구겼다. 낙청연은 대체 뭘 어쩌고 싶은 거지?부진환은 저도 모르게 손에서 땀이 났다. 그는 불쾌한 어조로 물었다.“뭘 할 생각이냐?”“저에게 백 냥을 걸어 제 체면 좀 살려주시지요. 너무 창피하지 않습니까?”낙청연은 머쓱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부진환은 돌연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미간 사이에 먹구름이 잔뜩 꼈다.부끄러운 걸 알면서도 저런 얘기를 한다는 게 어이가 없었다.“가서 천 냥을 걸 거라.”부진환은 두 장의 은표(銀票)를 꺼내 객사의 점원에게 건넸다.점원은 섭정왕의 뜻을 이해하고는 은표를 들고 판돈을 거는 것도 모자라 큰 목소리로 외쳤다.“섭정왕께서는 왕비 마마가 이기는 데 천 냥을 거신답니다!”부진환은 순간 멈칫했다.사람들은 의논하고 있었다.“섭정왕은 왕비에게 정말
온계람의 형체는 그림 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그로 인해 그 미인도(美人圖)는 생명을 가지게 됐다.마지막 향의 재가 떨어지자 주인장이 큰 목소리로 말했다.“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두 분은 붓을 멈추어 주시지요.”뒤이어 두 명의 점원이 안으로 들어가 그림 위에 남겨진 서명을 종이로 가렸고 그림을 말아 병풍 안에서 가지고 나왔다.류훼향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차분하고 느긋하게 병풍에서 나왔고, 낙운희는 흥분한 표정으로 손뼉을 쳤다.“훼향 언니, 대단하십니다.”낙청연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작게 웃었다.“아직 결과도 나오지 않았는데 어찌 그리 기뻐하는 것이냐?”비록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류훼향이 이길 것이라 확신했다. 그들은 단지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곧이어 회현루의 점원이 두 그림을 펼쳐 들고 탁자마다 돌면서 잠시 머물렀다. 옆에 있던 두 점원은 광주리를 들고 그 자리에 있는 손님들이 투표하게 했다.두 장의 그림이 펼쳐지는 순간 감탄이 들려왔다.“웃는 얼굴이 그야말로 절색이오! 눈망울도 아주 아름답소. 그림 안의 미인이 마치 날 향해 웃는 것만 같소.”한 공자가 넋을 놓은 채로 말했다.옆에 있던 공자도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나 또한 그렇소! 그림 안의 사람이 진짜 살아있는 것만 같군. 따스한 봄날이 연상되는 아름다움이오. 미인의 미소 한 번에 세상 모든 것이 색을 잃은 것만 같은 기분이오…”류훼향과 낙청연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아직 그 그림을 보지 못했으나 공자들의 감탄하는 모습을 보니 기대감이 솟구쳤다.그렇게 한 바퀴 돌고 나니 두 광주리 중 하나는 텅 비었고 하나는 가득 차 있었다.칭찬하는 소리는 끊이지 않았고 수많은 이들이 그림을 더 오래도록 보고 싶어 했다.“류 소저의 그림이 이렇게 생생할 줄은 상상도 못 했소! 역시 진백리에게서 가르침을 얻은 사람답소!”“내가 보기에 이 그림은 진백리가 그린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난 것 같소! 정말 굉장한 그림이오.”류훼향은 사람들의 칭찬하는 말에 득의양
류훼향은 죽첨이 하나만 담긴 광주리를 보더니 참지 못하고 비웃었다.“승패가 결정 난 것 같으니 억지 부리지 마십시오.”낙청연은 코웃음을 치면서 대꾸했다.“아직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기뻐하시기에는 이르지 않습니까?”주인장은 점원을 데리고 중간에 서면서 말했다.“투표 결과는 여러분들도 다 보셨겠지요. 이긴 그림은 이것입니다. 지금 누가 이 그림을 그린 것인지 알려 드리겠습니다!”화폭이 촤르륵 펼쳐졌고 마치 살아있는 듯 생생한 미인도가 사람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류훼향은 여전히 득의양양한 얼굴로 낙청연을 노려보고 있었다.그에 낙청연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주인장이 입을 열었다.“오늘 승부에서 이긴 미인도의 이름은 계람입니다. 이 그림은…”사람들은 모두 평온한 얼굴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들의 머릿속에는 자연스레 류훼향의 이름이 이어졌다.그러나 주인장의 이어진 말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안색이 돌변했다.“섭정왕비, 낙청연이 그린 그림입니다!”그 순간 류훼향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했다.공기가 얼어붙고 정적이 감돌았다.주인장의 말에 회현루에 있던 모든 이들이 경악했다.그들은 주인장이 이름을 가렸던 종이를 떼는 것을 멍하니 바라봤다. 절색의 미인이 그려진 미인도 위에 쓰인 것은 낙청연의 이름이 맞았다.회현루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이게 무슨 일이오? 저 그림을 낙청연이 그렸다니? 그럴 리가!”“세상에나, 낙청연이 그린 그림이었소?”“낙청연은 아무런 재능도 없다고 하지 않았소? 승상 대감이 그녀를 얼마나 혐오했었는데, 어찌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가 있단 말이오?”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부진환도 깜짝 놀랐고 미간을 구겼다.저 그림이 낙청연이 그린 것이라니?그럴 리가, 대체 어떻게 한 것일까?류훼향은 그 말에 돌처럼 굳어있었고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모든 게 꿈만 같았다.자신이 낙청연에게 지다니?게다가 낙청연이 그린 것은 온계람이었다. 류훼향은 순간 등골이 오싹했고
“저 죽첨은 섭정왕의 것이 아닙니까? 그건 섭정왕도 왕비의 그림 실력을 믿지 않는다는 거겠지요. 왕비가 어떻게 이런 미인도를 그려낼 수 있겠습니까?”“다른 사람들은 얘기할 것도 없지요. 다들 제가 저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왕비가 어떻게 저런 그림을 그리겠습니까?”류훼향은 다급한 마음에 발을 동동 굴렀다. 그녀는 절대 낙청연이 그 정도의 실력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부진환이 어두워진 눈빛으로 입을 열려고 할 때 낙청연이 먼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웃었다.“류 소저는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시는 것 같군요. 왕야께서 텅 빈 광주리에 죽첨을 넣은 것이 과연 저에게 투표해주기 위해서였을까요?”“왕야께서는 제 그림 실력을 믿고 있었습니다. 류 소저에게 투표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류 소저가 창피해할까 선심을 써서 류 소저께 투표해주신 것이죠.”“분명 좋은 마음으로 한 일인데 어찌 이리 모함하십니까?”낙청연이 의미심장하게 질문하자 류훼향은 순간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주위 사람들도 쑥덕거리기 시작했다.“그렇군. 난 또 섭정왕이 눈이 좋지 않은 줄 알았네. 사실은 투표해주는 사람이 없어 류훼향의 체면을 지켜주려 그런 것이었군.”“하지만 겨우 하나뿐인데, 텅 빈 광주리보다 낫다고 하기는 어렵겠소.”죽첨 하나가 들어 있는 게 더욱 쪽팔린 일이었다.그 유일한 죽첨마저도 상대의 부군이 선심을 쓰듯 베푼 것이기 때문이다.아주 치욕적인 일이었다.부진환의 잔뜩 구겨졌던 미간이 조금 풀렸다. 낙청연은 의외로 반응이 빨랐다.꽤 총명하군!류훼향은 주위에서 수군덕대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그녀는 창피하다 못해 쥐구멍이라도 찾아서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낙운희도 깜짝 놀라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누가 이기고 졌는지는 너무 명백한 일이었다. 그림 위에 남겨진 서명도 낙청연의 것이 맞았기에 어떻게 더 항변할 수가 없었다.류훼향은 조바심이 났지만 어쩔 수 없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왕비, 당신이 그린 그림 속의 여인이 누군지 아
“그럼, 동하국을 공격하려는 계획을 늦추려는 것이오? 그 여인을 상대로 우리는 이길 수 있을지 모를 일이오.”부진환이 사색에 잠긴 그때, 갑자기 옆에 누군가 걸어와 당당하게 말했다.“얼마나 대단한지 내가 한 번 만나보겠소.”걸어온 사람은 초경과 송천초였다.“방금 말한 그 사람이 정말 보통 사람의 실력을 뛰어넘었다면 나밖에 상대할 사람이 없을 것이오.”“불필요한 희생을 피하려면 나한테 지도를 주시오. 내가 만나보고 오겠소.”“그 여인을 해결한 후 다시 동하국을 공격해도 늦지 않았소.”그의 말을 듣고 부진환은 곰곰이 생각하다 지도를 건네주었다.“좋소. 가서 상황을 알아보고 상대의 실력을 파악하시오.”“어찌 됐든 동하국의 땅이니, 무슨 위험이 있을지 모르오. 꼭 조심하시오.”초경은 지도를 건네받았다.“좋소. 지금 바로 출발하겠소.”초경은 지도를 품에 넣으며 몸을 돌려 송천초를 바라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곧 돌아올 것이오.”송천초가 고개를 끄덕였다.“조심하십시오.”그리고 초경은 동하국으로 떠났다.그의 속도로 반나절도 걸리지 않아 바다에 있는 그 나라를 찾았다. 비교적 큰 섬을 찾으면 되는 일이니 어려운 것 없었다.바다에서 나타난 그를 보고 동하국 병사들은 깜짝 놀라 적의 기습이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다들 모여들어 해안가에 칼을 겨누었지만 가까이 온 사람이 초경 한 명인 것을 보고 외쳤다.“감히 이곳에 혼자 오다니!”“당장 생포하거라!”병사들이 그를 에워쌌지만, 초경이 소매를 휘두르자 다들 멀리 날아갔다.동하국 사람들은 깜짝 놀라 더 이상 그를 얕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초경의 상대가 아니었다.압도적인 초경의 힘 앞에서 그들은 조금도 반항할 힘이 없었다.그렇게 초경은 동하국 왕궁까지 쳐들어갔다.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자, 누군가 다급히 소리쳤다.“약사를 부르거라! 어서 약사를 부르거라!”기세등등하게 쳐들어온 적을 보고 동하국은 대량의 병사를 보내 그가 궁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려 헀다.동하국 왕은 이미
부소는 잠깐 멈칫했다.옥교는 슬픈 표정으로 눈물을 닦으며 방을 나섰다.부소는 미간을 찌푸리고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부원뢰를 보다 이불을 덮어 주고 방을 나갔다.방을 나가자마자 부소는 의원 일꾼에게 돈을 주며 술과 음식을 준비하라 했다.옥교는 이해하지 못했다.“어찌 정말...”부소는 난감한 듯 입을 열었다.“아마도 괜찮을 것이오.”“폐부를 다쳐 약으로 치료도 못 하는 상황에 어찌 기운이 가득한 말투로 말한다는 말이오?”“의원에게 물어야겠소.”옥교는 깜짝 놀라 그의 뒤를 따랐다.부소는 의원을 찾아 다시 물으려 했지만, 의원은 그의 눈빛을 피하며 핑계를 쓰고 그를 피하려 했다.그럴수록 부소는 의원을 보내지 않았다.결국 의원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아버님이 그렇게 말하라 협박했소.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귀신을 풀어서 나를 잡아먹겠다고 했소.”“정말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했네.”“그는 내상을 입었지만 치명적이진 않아 약을 먹고 한 달 정도 조리하면 완쾌할 수 있소.”그 말을 듣고 옥교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눈물을 닦기도 전에 다급히 물었다.“정말입니까? 괜찮으신 겁니까?”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사실이오!”“이번에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았네.”부소는 그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리고 화가 치밀어 오른 표정을 지었다.“이 늙은이가 감히 나를 놀리다니!”부소는 화가 치밀어 올라 뒷마당으로 걸어갔다. 옥교는 그가 부원뢰를 찾아가 싸울까 봐 얼른 그를 붙잡고 설득했다.“아버님을 푹 쉬게 하시오. 몸이 괜찮은 것도 좋은 일 아니오? 괜히 놀란 일이니, 걱정하지 마시오!”부소는 여전히 화가 났다.“누가 이렇게 자신을 저주하는 것이오?”비록 말은 그렇게 내뱉었지만 적어도 아버지가 살아 계시니, 부소도 마음이 조금 놓였다.“참, 동하국의 위치를 탐사한 대오의 사상자가 심각한 터라 돌보러 가겠소. 아버지를 잘 챙겨주시오.”옥교가 고개를 끄덕였다.“좋소. 어서 가보시오. 아버님은 내가 돌보겠소.”-부소는 바로 막사로
부소는 깜짝 놀라 다급히 부원뢰를 업으려 했다.“아버지를 데리고 도성에 가서 의술이 더 뛰어난 의원을 찾겠습니다!”“분명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부원뢰는 부소의 손을 잡아당겼다.“콜록... 내 몸은 내가 잘 알고 있다. 난 시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사람은 결국 죽을 테니, 그렇게 걱정하지 말거라.”부원뢰는 힘없이 말하며 그를 위로하려 억지 미소를 지으며 부소의 손등을 두드렸다.“어떻게 이럴 수가...”부소는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부원뢰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나도 생각지 못했다.”“네가 장가를 가고 아이를 낳는 것도 보지 못했는데, 아쉬움을 품고 가야 할 것 같구나.”말을 마치고 그는 옆에서 눈시울을 붉히고 있는 옥교를 보며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아가씨, 하나만 묻겠네. 부소가 마음에 드느냐?”옥교는 멈칫하다 저도 몰래 고개를 돌려 부소를 바라보았다.부원뢰가 말했다.“너에게 물은 것이니, 부소를 보지 말거라.”“내가 곧 죽는다고 해서 듣기 좋은 말로 위로하려 하지 말거라. 난 그저 사실을 듣고 싶을 뿐이다.”옥교는 조금 쑥스러웠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부원뢰는 그녀의 손을 잡고 품에서 피로 물든 옥팔찌 하나를 꺼내 꼼꼼히 닦은 후 옥교에게 건네주었다.“이 팔찌는 부소 어머니의 혼수다. 이번에 이곳으로 온 것도 부소 어머니의 임무를 받고 온 것이다. 네가 참 마음에 드는구나. 앞으로 두 사람이 함께 있든 아니든 이 팔찌를 받기를 바란다.”“내 소원을 들어준다고 생각하거라. 그렇지 않으면 죽어서도 부소 어머니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될 것이다.”옥교는 그 말을 듣고 놀라기도 했고 난처하기도 했다.그녀는 부소의 마음도 모르는데 어떻게 며느리의 신분을 의미하는 받을 수 있겠는가.게다가 이 옥팔찌는 너무도 귀하다.부소도 그녀가 난처한 것을 알고 말했다.“그냥 받으시오.”옥교는 그제야 팔찌를 받았다.그녀는 나중에 부소에게 돌려주기로 생각했다. 그녀는 부소가 아버지의 아쉬움을 달래
눈시울을 붉히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송천초의 모습을 보며 초경은 마음이 아프면서도 못내 기뻤다.그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뽀뽀했다.그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가치가 있다고 하면 가치가 있는 것이오!”초경은 별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로 그녀를 부드럽게 바라보았다. 그의 확고한 눈빛에 송천초는 저도 몰래 팔을 들어 그의 목을 휘감고 더욱 적극적인 대답을 했다....송천초는 날이 밝자마자 깨어났다.그녀는 옆에 누워 있는 초경을 보고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그에게서 시선을 돌리려 하지 않았다.“뭘 그렇게 보는 것이오? 그렇게 좋소?”갑자기 눈을 뜬 초경이 입꼬리를 올렸다.“깨어나셨습니까?”“본디 잠이 많지 않소.”초경은 말하면서 얼굴을 쓰다듬고 있던 송천초의 손을 잡고 잡아당겼다.“왜 그러시오? 아침부터 왜 그리 걱정이 많은 것이오?”“다음 생에 당신처럼 잘해 주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송천초는 그의 손을 꼭 잡고 진지하게 그를 바라보았다.“다음 생에 꼭 일찍 저를 찾아오십시오.”“다음 생이 지나도 마찬가지입니다.”초경은 그녀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좋소. 다음 생에도 앞으로도 꼭 일찍 찾아 지켜줄 것이오.”“평생 지켜줄 것이오.”그 말을 듣고 송천초가 진지하게 말했다.“그럼, 수명도 아껴야지 않겠습니까? 수명이 줄면 어찌 저를 평생 지켜줄 수 있습니까?”초경은 멈칫하다 마음이 따뜻해져 그녀를 꼭 안았다.“좋소. 자네의 말을 듣고 소중히 아끼겠소.”“하지만 동하국을 없애는 일은 이미 부진환에게 승낙했으니, 약속을 어길 순 없지 않소?”“걱정하지 마시오. 이 일은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오.”“앞으로 뭐든 자네의 말을 듣고 수명을 소중히 여기며 평생 당신을 지켜줄 것이오.”송천초도 그를 꼭 껴안았다.“좋습니다.”-며칠 후, 이한도 쪽에서 고강해를 미끼로 삼아 그를 구하려는 사람을 몇 명 잡았다.심문하자, 그들은 모두 왕자를 구하러
막사로 돌아간 후 부진환은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는 고강해를 미끼로 삼으려고 이한도로 데려갔다.그리고 동하국에 소식을 전해 투항을 권했다.3일도 지나지 않아 동하국 선박이 이한도 부근에 와서 고강해가 정말 이한도에 있는지 알아보려 했다.그와 동시에 송천초와 초경도 청주를 찾아왔다.부진환은 소식을 듣고 직접 맞이하러 가서 열정적으로 접대했다.세 사람은 정원에 술과 안주를 준비했다.부진환은 술을 따르고 말했다.“여제께서 두 사람이 올 것이라 편지를 보냈는데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소. 왜 며칠 더 놀다 오지 않은 것이오?”송천초가 눈썹을 치켜올렸다.“이젠 여제라 부르는 것입니까? 괜히 낯설어 보이십니다.”부진환은 멈칫하다 웃으며 답했다.“보는 눈도 많은데 마음대로 여제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예의가 아니지 않소. 이미 여제라 부르는 것이 익숙하오.”“하긴 여국의 부 태사시니, 여제께 무례를 범하며 안 되시지요. 이렇게 빨리 여국으로 오실 줄 몰랐습니다. 부 태사 같은 분은 정말 흔치 않습니다.”“자, 제가 한 잔 드리지요!”송천초는 술잔을 들고 단숨에 다 마셨고 부진환도 잔을 들어 술을 마셨다.두 사람은 전쟁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지만, 초경이 마음이 급한 듯 먼저 입을 열었다.“동하국과의 전쟁은 어떻게 되었소?”“동하국 위치는 알아낸 것이오? 내가 가서 그들을 죽일 것이오.”“절대 늦어서는 안 되오.”부진환은 살짝 당황했다.“그리 조급해하는 것이오?”초경은 천천히 음식을 먹으며 물었다.“빨리 없애는 것이 좋지 않소?”“일찍 끝내야 천초가 매일 같이 걱정을 하지 않을 것이오.”부진환이 웃으며 답했다.“동하국의 위치는 이미 사람을 보내 알아보고 있소. 아마 곧 소식이 있을 것이오.”“하지만 자네는 이제 보통 사람이 아니오. 나라 사이의 전쟁에 끼어들면 수위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소?”사실 이 일은 초경이 나설 일이 아니다.평소 송천초를 지키기 위해 사람을 몇 명 죽이는 것은 괜찮지만, 나라 사이의 전쟁은 결코
고강해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소. 그들이 원하는 것은 열쇠요.”“하지만 다들 열쇠가 가짜라는 것을 모르고 있소.”부진환은 곰곰이 생각하다 또 좋은 계획이 떠올랐다.그가 물었다.“당신을 대신한 형제들과 고옥서 남매를 제외하고 몇 명의 성인 형제자매가 있는 것이오?”고강해는 생각하다 답했다.“아홉 명이 더 있소.”이 숫자에 부진환은 살짝 놀랐다.동하국 왕의 자식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아홉 명 전부 동하국에 있는 것이오? 왜 나타나지 않는 것이오?”고강해가 답했다.“우리는 서로 싸우는 사이라 아무도 서로 굴복하고 지휘받는 것을 원하지 않소.”“그래서 따로 병사를 통솔하고 있소. 그래야 공로를 세워도 다른 사람과 나눌 필요가 없소.”“내가 잡히자, 고옥서가 오지 않았는가?”부진환은 그 말을 듣고 가볍게 웃었다.“그렇게 서로 싸우면서 뿔뿔이 흩어져 어찌 여국을 상대하려는 것이오?”고강해가 말했다.“우리에게는 약사가 있소.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지 자네는 모르오.”“여국의 풍수사가 강하다고 하지만, 그녀의 손가락 하나에도 비길 수 없소.”그 말을 듣고 부진환이 물었다.“전쟁을 오랫동안 했는데, 그 대단하다는 약사는 왜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오?”“정말 궁지에 몰리지 않은 이상 약사는 동하국을 떠나지 않을 것이오.”“약사는 스무살에 동하국으로 왔고 이미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소. 하지만 약사는 아직도 스무살 때의 얼굴을 유지하고 있소. 어찌 비긴다는 말이오?”“약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여국을 평정할 수 있소.”비록 부진환은 이런 허풍을 믿지 않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적을 얕볼 순 없다.“약사가 그렇게 대단하면 어찌 이렇게 많은 동하국 사람의 희생이 필요하오? 어차피 약사는 동하국 사람이 아니니, 동하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지 않을 것이오.”부진환이 단번에 중점을 꼬집어 말하자 고강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부진환이 말을 이었다.“게다가 당신이 잡혀도 아무도 구하지 않을 것이오.”“형제자매들은 자네가 죽기를
“왜 계속 당신을 남겨두었는지 알고 있소?”부진환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고강해는 고개를 떨구고 힘없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동하국 왕자이기 때문에 남겨 두면 반드시 쓸모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소.”“하지만 동하국 사람이 당신을 죽이려 할 줄은 생각지 못했소.”고강해는 그 말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오?”“자네는 이젠 아무런 가치가 없소.”고강해는 자신의 처지를 비웃듯 입꼬리를 올리고 답했다.“사실 난 잡힌 순간부터 아무런 가치도 없었소.”“동하국에는 황자가 많으니, 나 하나 없다고 문제 될 것 없소.”“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나를 죽이려 할 줄은 몰랐소. 도망가는 와중에도 나를 쏘려고 했소.”“하지만 우리는 형제 사이의 정이 없었소. 그저 경쟁과 싸움뿐이었소.”부진환은 그가 많은 말을 하자, 계속 물었다.“그저 싸우는 사이라면 어찌 자네를 그렇게 미워하는 것이오? 구하지 않는 것도 망정이지, 왜 죽이려 하는 것이오?”고강해가 답했다.“그들은 나한테서 무언가를 얻으려 하오.”“만약 그것을 얻는다면 새로운 왕자가 될 수 있소.”부진환은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고옥서가 고옥언을 구할 때, 그는 옆 방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고 고강해 시체에서 뭔가를 갖고 가겠다는 것을 들었다.“그게 무엇이오?”고강해는 대답하지 않고 느릿느릿 말을 이었다.“우리 동하국에는 존경받는 약사가 있소.”“하지만 과거 그녀는 동하국의 제압을 받던 일반 의원이었소. 독을 만들 줄 알기에 우리의 핍박을 받고 독을 만들었소.”“그녀는 여국인이지만 진법으로 인해 밖으로 나와 다시는 돌아가지 못했소. 그렇게 떠돌다 그녀는 동하국으로 왔고 늘 여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소.”“그녀의 계획은 줄곧 실패했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홀로 바다에 갔소. 그날 그녀는 파도 때문에 배가 뒤집혔지만, 마침 바다 밑에서 보물을 발견했소.”“오래된 침몰선이 해저에서 거대한 궁전이 된 듯한 모습이었고, 그녀는 그 안에서 많은 보물을 얻었고 특
고강해는 절망에 휩싸여 눈을 감고 죽음을 맞이했다.하지만 이때, 옆에서 화살이 날아가 정확히 고옥서가 쏜 화살을 떨구었다.고옥서는 그 모습을 보고 화를 내며 활을 내던지고 재빨리 마차를 이끌고 그곳을 떠났다.이내 그 마차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났다.병사들도 신속히 그들의 뒤를 쫓았고 성문에 걸린 고강해도 내려져 감옥으로 데려갔다.고옥서와 고옥언은 바닷가로 도망쳐 작은 배를 찾아 먼저 숨을 곳을 찾기로 했다.하지만 너무 빨리 쫓아온 병사들 때문에 두 사람은 숨을 곳 없이 훤히 모습을 드러냈다.두 사람은 힘껏 노를 저어 떠나려 했다.바다에서 힘에 부쳐 곧 쫓기려는 그때, 눈앞에 동하국의 배 한 척이 나타났다.그리고 배 위에는 동하국 깃발이 달려 있었다. 고옥서는 미리 계획한 배가 마침 인근에 왔다고 추측했다.두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본 듯이 배 위에 있는 사람에게 인사를 했고 곧 배에 올랐다.“어서 돌아가거라! 병사가 쫓아왔다!”고옥서가 다급히 명을 내렸다.하지만 배는 바다에 멈춰 꼼짝도 하지 않았다.고옥서는 눈살을 찌푸리고 배 위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무엇들 하는 게냐? 귀가 먹은 것이냐?”비록 배 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동하국 병사였지만 이상하게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고 그녀의 말도 신경 쓰지 않았다.고옥서는 병사들이 곧 쫓아올 것 같아 조바심을 내며 그들에게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다.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았으며 배도 움직이지 않았다.고옥서는 어딘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끼고 고옥언을 끌고 배에서 뛰어내리려 했다.하지만 그때, 선실에서 청주군 병사들이 뛰어나와 단번에 그들을 포위했다.배에서 뛰어 내리려 해도 이젠 뛸 수 없었다.그리고 추격하던 병사들도 가까이 도착해 그들의 배를 겹겹이 에워쌌다. 그리고 배 위에는 부소가 서 있었다!그녀는 놀란 나머지 절망스러웠다. 고옥서는 화를 내며 동하국 사람을 붙잡았다.“적들을 도와 우리에게 함정을 파놓은 것이냐?”상대는 울먹이는 말
결국 다들 시선을 부소에게로 옮겼다.부소는 멍하니 자기를 가리키며 물었다.“나한테 가라는 것이오?”“그것도 아니지 않소?”부진환이 말했다.“주락과 계진 둘 다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미인계에 넘어가게 생겼소?”“자네의 연기가 비슷할 것 같소.”부소가 다급히 말했다.“다른 사람을 찾으면 되지 않소?”“다른 사람은 마음이 놓이지 않소.”부소는 한참 고민하다 잔에 담긴 차를 단숨에 다 마셨다.“가면 될 것 아니오!”“좋은 소식 기다리시오!”부소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부진환이 그를 불러 세웠다.“오늘 이미 심문을 받았으니, 지금 가는 것은 너무 티가 날 것이오. 급할 것 없이, 내일 다시 가시오.”-다음 날 저녁.부소는 부진환이 말한 대로 고옥서를 심문하러 갔다.부 태사가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고옥서는 전쟁 때문에 그가 오지 못했다고 생각했다.역시 부진환의 추측대로 고옥서의 계략 중 하나가 바로 미인계였다.부 태사에게는 통하지 않았지만, 부소는 다르다.한바탕 유혹하고 난 후, 고옥서는 기회를 잡아 부소와 단둘이 있게 되었다. 그녀는 고옥언이 갇힌 위치를 알아내고 부소가 방심한 틈을 타서 독 가루를 뿌려 그를 쓰러트렸고 감옥 문 열쇠를 훔쳐냈다.그리고 그녀는 독으로 감옥을 지키고 있던 옥졸을 쓰러트리고 고옥언이 갇힏 곳을 찾아 고옥언을 구출했다.“누나!”고옥언은 감격에 겨웠다.“어찌 온 것입니까? 동하국이 청주성을 뚫은 것입니까?”고옥서는 사방을 경계하며 말했다.“아니다. 홀로 너를 구하려 들어온 것이다.”“일단 이곳을 떠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두 사람은 조용히 감옥을 떠나려 했다. 하지만 감옥 끝에 있는 철문을 보고 고옥언이 발걸음을 멈추었다.“누나. 고강해가 저곳에 갇혀 있는 것 같습니다.”“데리고 가실 겁니까?”고옥서는 바로 거절했다.“안 된다. 너무 위험한 상황이라, 우리도 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누나. 저는 그저 고강해가 지니고 있는 열쇠를 말한 것입니다.”그 말을 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