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규는 또다시 대제사장의 은혜에 깜짝 놀라 급히 입을 열었다.“대제사장은 제 일에 신경 쓰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그저 계집종일 뿐…”낙요는 덤덤하게 웃으며 답했다.“너만을 위한 게 아니다.”“이 사이의 관계를 알아내야 한다.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닌 것 같구나.”“그러니 도와줄 수 있겠느냐?”월규는 급히 일어서며 대답했다.“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시키는 것 무엇이든 다 하겠습니다.”“제 목숨도 대제사장의 것입니다.”대제사장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노예영에서 어떻게 고문당하고 있을지 몰랐다.노예영은 주로 노예를 길들이는 목적으로 지어져 여인은 보통 좋은 결말을 맞이하지 못했다.월규는 죽어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다.그러나 이렇게 대제사장이 구해줬고, 대제사장부의 계집종이 되었다.“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다. 앉거라.”낙요는 온화한 어투로 말했다.월규는 또 고분고분 앉았다.낙요는 말을 이어갔다.“요 며칠은 부에 있지 말고 나가서 돌아다니거라. 응계천 쪽 사람이 너를 찾아내서 쫓아오는지 보자꾸나.”“부잣집에서 계집종을 하고 있다는 말만 하고, 대제사장부 얘기는 꺼내지 말거라.”“내가 너를 구했다는 건 알게 해선 안 된다.”“계진을 보내 암암리에 보호해 줄 것이니 걱정하지 말거라.”낙요는 알아야 했다. 응계천은 대체 어떤 관계로 월규를 노예영에 보냈는지 말이다.노예영은 극악무도한 악인들만 잡아놓는 곳이다. 오살의 죄도 노예영에 갇히지 않는데, 월규 같은 일은 죄도 아니었다.규정을 눈에 두지도 않는다니, 누가 감히 이런 짓을 벌이는 것일까?월규는 고개를 끄덕였다.“예, 알겠습니다.”“그만 돌아가거라, 이제 유단청을 불러오라.”유단청은 곧바로 도착했다.낙요는 그의 상황을 물어보았다. 그러나 유단청도 큰 죄목이 아니었다.재주로 낭자들의 돈을 사기 치다가 관부의 사람들에게 잡혔고, 무공이 뛰어난 데다 환각 가루가 있는 탓에 관부의 사람 몇 명을 다치게 했다.그러나 다시 붙잡히니 노예영에 들어가게 되었다.이 말을 들은 낙요는 의문
부진환이었다니!오늘 그 생선튀김은 부진환이 만든 것이었다는 말인가?부진환은 생선을 튀겨 정리를 마친 후 주방을 나서려고 했다.낙요는 당황했지만 몸을 돌려 빠르게 떠났다.낙요는 발소리를 낮추고 재빨리 방으로 도망쳤다.방문을 닫고 낙요는 방안을 서성이며 왜 당황했는지 알지 못했다. 아마도 한밤중에 배가 고파 주방에 가서 음식을 찾았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일 것이다.낙요는 때때로 창밖을 보기도 했다.아직도 오지 않았다.설마 낙요를 위해 만든 생선튀김이 아니란 말인가?이 생각을 한 낙요는 화가 나 의자에 앉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낙요는 깜짝 놀라 애써 침착하게 답했다.“들어오시오.”문을 연 사람은 부진환이었다.향기로운 냄새와 함께 말이다.부진환은 방문을 닫고 낙요를 보며 물었다.“대제사장, 이 늦은 시간에도 나갔던 것입니까?”“누가 나갔다고 하였소?”낙요는 서늘한 어투로 답했다.부진환은 낙요의 신발을 보며 말했다.“대제사장의 신발에 눈이 가득합니다.”낙요는 고개를 떨궈 바닥을 바라보았다. 신발에 눈이 가득할 뿐만 아니라 바닥도 축축한 흔적이 있었다.순간 난처해진 낙요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부진환을 바라보며 물었다.“나를 심문하는 것이오?”부진환이 급히 답했다.“아닙니다.”“대제사장께서 며칠 동안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모두 걱정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드실지는 모르겠지만 특별히 간식거리를 만들었습니다.”낙요는 그 향기를 맡으니 침이 꼴깍 넘어갈 지경이었다.하지만 낙요는 대제사장이니 절대 티를 낼 수 없었다.낙요는 덤덤한 눈빛으로 힐끔 쳐다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요즘은 입맛이 없어서 말이오.”“그래도 한밤중에 만들어 왔으니 먹어볼 수밖에.”낙요는 난감한 모습이었다.그러나 부진환은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맛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부진환은 급히 접시를 올려놓고 젓가락을 건넸다.낙요는 젓가락으로 생선튀김을 집어 먹었다. 바삭하고 향긋한 것이 입맛을 확 돋
부진환은 물건을 내려놓았다. 그의 시선이 돌연 생선튀김을 담아두었던 빈 접시로 향했다.왜 빈 것일까?부진환은 의아한 표정으로 낙요를 바라봤다.낙요는 곧바로 그의 시선을 느꼈다.“대제사장님, 이것은...”낙요는 애써 침착한 척 말했다.“아, 그것 말이오? 계진이 좋아하길래 전부 계진에게 줬소.”계진은 당황스러웠다. 비록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소, 내가 먹었소.”부진환은 고개를 끄덕인 뒤 빈 접시를 거두어 갔다.곧이어 계진은 부진환과 함께 방을 나섰다.계진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당신이 만든 생선튀김 맛이 좋더군. 또 한 번 해주시오.”부진환은 살짝 당황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소.”두 사람이 다 떠난 뒤에야 낙요는 느긋하게 접시를 들고 다과를 한 입 먹었다.맛이 꽤 좋았다.비록 주방장이 한 것만큼 맛있지는 않지만 신기하게도 싫지 않았다.낙요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꽤 맛있었다.그렇게 낙요는 차와 함께 다과를 몇 개나 해치웠다.그러고는 옷을 갈아입고 입궁하여 황제를 배알했다.그녀는 지금 노예영이 사람을 잡아들이는 규칙에 관해 물었다.그 질문을 들은 황제는 무척 의아해했다.“그 규칙은 과거 제사 일족이 정한 것이 아니냐? 대제사장은 그 사실을 잊은 것인가?”“잊지 않았습니다. 다만 폐하께 확인해 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 규칙은 지금까지 변한 적 없는 게 맞습니까?”그녀는 자신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아 그사이에 바뀌었을까 두려웠다.하지만 황제가 말했다.“아무런 변화도 없다.”그 말에 낙요는 감이 잡혔다.누군가 제멋대로 설치고 있었다.하지만 이 정도 배짱으로 도성에서 이런 짓을 벌이는 자라면 정말 멍청한 사람이거나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사람일 것이다.어쨌든 섣불리 움직여 일을 그르칠 수는 없었다.그래서 낙요는 다른 상황도 물은 뒤 황제에게 보고했다.“취혼산의 진법은 이미 수차례 파괴되어 더는 산속의 망령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그래서 제가 멋대로 진법
존엄마저 짓밟혔으니 노비만도 못했다.백서는 순간 몸이 경직됐다.부진환은 걸음을 옮겨 서서히 자리를 떴다.백서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한참 뒤에야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미간을 잔뜩 구겼고 머릿속에는 부진환이 했던 말이 끊임없이 맴돌았다.방 안에 있던 낙요는 창문 옆에 서 있다가 부진환의 말을 듣고 놀라움을 느꼈다.저 정도 각오라니, 꽤 좋았다.역시 천궐국의 섭정왕, 큰일을 이룬 사람다웠다. 때로는 굽힐 줄도 알고 상황 파악도 빨랐다.오후가 되자 부진환은 정말로 음식을 만들었다. 계진과 유단청뿐만 아니라 저택 사람들 모두 몫이 있었다.원 주방장도 그의 요리를 맛보고 연신 칭찬했다.“요리 실력이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소. 오늘 저녁 나와 요리 실력을 겨루는 건 어떻소?”부진환은 나직하게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할 줄 아는 건 얼마 없소.”낙청연이 좋아해서 일부러 배운 것이었으니 그가 할 줄 아는 건 전부 청연이 좋아하는 것이었다.원 주방장은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다.“그렇다면 정말 아쉽군.”다들 식사를 마무리할 때쯤, 유단청은 계진에게 남겨줄 거라면서 몰래 음식을 도시락 안에 넣었다.밤이 깊어지고 사람이 없을 때, 그는 도시락을 들고 낙요의 방 앞에 섰다.“대제사장님, 제가 먹을 걸 가져왔습니다.”낙요는 도시락을 열어 보더니 살짝 놀라며 덤덤히 말했다.“왜 내게 이걸 가져온 것이냐?”유단청은 웃으며 말했다.“대제사장님께서 좋아하시지 않습니까?”“누가 내가 좋아한다고 하였느냐?”낙요는 냉담한 어조로 말했다.유단청은 고개를 끄덕였다.“제가 주인님의 마음을 멋대로 추측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가져온 것을 다시 가져가는 건 좋지 않은 듯하니 부디 받아주시지요.”“밤이 깊었으니 푹 쉬십시오.”말을 마친 뒤 유단청은 돌아서서 떠났다.낙요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유단청은 참으로 총명했다.낙요는 다리를 꼬고 앉아 느긋하게 먹기 시작했다.잠시 뒤, 월규와 계진이 돌아왔다.낙요가 물었다.“왜 이렇게 늦게 돌아온 것이
잡힐 뻔한 순간, 위에서 작은 돌멩이가 날아와 응계천의 다리를 맞혔고 응계천은 풀썩 무릎을 꿇게 되었다.“누구냐?”“누가 날 음해하려 한 것이냐?”사람들은 경계하기 시작했다.고개를 드니 벽 위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앉아 있었다.“한 무리의 사내들이 대낮에 여인을 괴롭히다니, 법도라고는 없구나!”위협적인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응계천은 이를 악물며 버럭 화를 냈다.“누구냐? 네가 뭔데 간섭하는 것이냐?”월규는 그 기회를 틈타 도망치려 했지만 응계천의 사람에게 붙잡혀 돌아왔다.바로 그때 위에서 또 돌멩이 몇 개가 날아들어 남자를 바닥에 쓰러뜨렸다.남자는 얼굴을 부여잡고 앓는 소리를 냈다.그렇게 월규는 그 틈을 타서 잽싸게 도망쳤다.응계천은 월규를 뒤쫓고 싶었으나 벽에 앉아있는 사람이 두려워 화를 내며 욕지거리했다.“앞으로 내 눈에 띄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말을 마친 뒤 그는 사람들을 데리고 씩씩거리며 떠났다.계진은 그들이 떠난 걸 확인한 뒤에야 벽에서 뛰어내렸고, 월규가 붙잡히지 않은 걸 확인하기 위해 다른 방향으로 쫓아갔다.계진은 매일 저녁 돌아와서 낙요에게 상황을 보고했다.그렇게 응계천은 월규를 사흘 동안 지켜봤다.월규는 매일 외출하여 저택에 필요한 것들을 구매해야 했기에 이리저리 숨어봤지만 역시나 응계천에게 노려졌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최대한 사람들이 많은 곳을 골라 다녔고 골목길 어구에는 가까이 가지도 못했다그날 밤, 낙요가 분부를 내렸다.“내일 그들에게 적당히 손을 쓸 기회를 주거라.”“내가 함께하겠다.”월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제사장이 함께라면 마음이 훨씬 놓였다.다음 날은 날씨가 좋지 않았다. 오전부터 또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날이 우중충했다.거리를 오가는 사람도 훨씬 줄어들었다.부랴부랴 물건을 산 월규는 한 객잔 뒷문을 지나치게 되었는데 갑자기 안에서 사람 두 명이 불쑥 튀어나와 월규의 팔을 붙잡고 그녀의 입을 막은 채로 그녀를 객잔 안으로 끌고 갔다.그리고 뒷문이 닫혔다.응계천은 다급히
월규는 응계천을 탁자 위로 누른 뒤 그의 손 또한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월규가 비수로 그의 손가락 틈새를 찌르자 응계천은 겁을 먹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그는 시야가 흐릿했기 때문에 비수가 어디를 찔렀는지 보지 못했다.“이, 이, 이러지 말거라!”월규는 싸늘한 어조로 위협했다.“응계천, 이 손을 가지고 싶소?”“말하거라. 뭐가 필요하냐? 내가 돈을 줄까?”응계천은 애간장이 탔다.월규는 화를 내며 말했다.“난 단지 당신을 거절했을 뿐, 상처입힌 적은 없는데 당신은 날 노예영에 보내지. 당신이 한 일이 맞소?”응계천은 다급히 해명했다.“난 널 진짜 노예영에 보낼 생각이 없었다. 난 네가 두려워할 때 널 구해줄 생각이었다.”“그러면 네가 날 따를 거라고 생각했다.”“난 널 그곳에서 구하고 싶었다. 난 널 아꼈다. 그런데 넌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이냐?”월규가 들고 있는 비수의 칼날이 응계천의 손등에 닿았다. 월규는 서늘한 목소리로 위협했다.“헛소리하지 마시오!”“당신 때문에 내가 얼마나 비참해졌는데, 내가 당신에게 고마워할 줄 알았소?”“내가 살 기회를 한 번 주겠소. 당신의 죄를 적으시오! 난 당신의 죄상서(罪狀書)를 원하오!”응계천은 당황했다. 그는 약효가 사라질 때까지 시간을 끌 생각이었다.“월규야, 우리 앉아서 잘 얘기해 보자꾸나.”“칼을 쓸 이유가 없지 않으냐?”그가 시간을 끌자 월규의 눈빛이 무자비한 빛을 띠었다. 그녀는 비수를 들어 응계천의 새끼손가락을 잘랐다.“아!”처참한 비명이 터졌다.“쓰겠소, 말겠소? 안 쓰겠다면 손가락을 하나 더 잘라주겠소!”월규가 호된 목소리로 위협했다.응계천은 아파서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고 파란 핏줄이 섰으며 목소리마저 떨렸다.“쓰겠다! 쓰겠다!”곧이어 월규는 종이와 붓을 가져왔고 응계천이 적는 걸 지켜봤다.응계천은 고통 때문에 손이 떨려서 몇 번이나 잘못 적었다.월규는 다시 비수를 들고 위협했다.“오늘 다 쓰지 못하면 이 방에서 나가지 못할 줄 아시오!”“난 당
월규는 세 곳을 다니며 한바탕 울면서 고발했다.다음 날 낙요는 사람을 시켜 세 곳의 움직임을 살폈다.응씨 가문의 소식이 가장 빨랐다.응계천이 응씨 가문으로 돌아간 날 아침, 그의 아버지 응선해(應先海)는 응계천을 집안에서 내쫓았다.그는 화를 버럭 내면서 응계천과 부자 관계를 끊을 것이라고 했다.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탓에 그 거리 사람들은 전부 알게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응씨 저택을 둘러싸고 밖에서 구경했다.응선해는 앞으로 응계천이 죽든 살든 응씨 집안과 관계가 없다고 확실히 얘기했다.그 소식을 들은 월규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응계천의 아버지는 사리에 밝은 분인 것 같습니다.”낙요는 웃으며 말했다.“응씨 가문은 8대 가문 중에서 두 번째로 높은 위치에 있다. 다른 가문들이 그들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지.”“그의 아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응씨 가문의 자리는 위태로울 것이다.”“겉으로는 부자 관계를 끊을 것이라 했지만 그가 암암리에 뭘 할지 누가 알겠느냐?”“하지만 응선해는 적어도 태도를 보여줬지.”“우선 관청과 역소천 쪽에서 움직임이 있을지 지켜보자꾸나.”다음 날, 월규는 관청에 끌려갔다.관청에 도착한 그녀는 절뚝거리면서 나오는 응계천을 보았다.관복을 입은 서 대인(徐大人)이 걸어 나오며 말했다.“월규 낭자, 내가 이미 그에게 벌을 주었소. 무려 30대나 때렸소!”“그러니 이 일은 그만하는 게 어떻소?”그 말에 월규는 안색이 돌변했다.“그만하라고요? 겨우 30대로 끝이란 말입니까? 전 저자 때문에 노예영에 들어갔는데 고작 30대를 때렸습니까? 대인, 이건 너무 불공평한 것 아닙니까?”월규는 너무 화가 나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서 대인이 위로했다.“월규 낭자, 낭자가 준 증거로는 죄를 단정 짓긴 어렵소.”“응계천은 낭자가 비수를 들고 그를 협박해서 쓴 것이라고 했소.”“이 자백서는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없고 다른 증거도 없으니 쉽게 그의 죄를 물을 수는 없소.”“난 좋은 사람을 억울하게 만들 수 없소.
“가자, 가자. 어서 가자.”반쯤 닫혀 있던 뒷문 탓에 뒤뜰을 지나던 계집종은 문밖에서 누군가 마대자루를 들고 달리는 걸 보고 살짝 놀랐다.“누굽니까?”그녀가 쫓아갔을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계집종은 부랴부랴 돌아가 안주인께 보고를 올렸다.-응계천은 맞아서 정신을 잃은 월규를 데리고 폐월루로 향했다.그는 위층에 있는 전용 별실로 향했다.방문이 닫히자 응계천은 의자에 털썩 앉더니 술을 따르고 숨을 돌렸다. 그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곧이어 그가 허리를 숙이고 마대자루를 풀자 월규의 머리가 드러났다.그는 술을 한 잔 들어 그녀의 얼굴에 뿌려서 깨웠다.“생각지도 못했지? 또 내 손아귀에 들어왔구나.”월규는 화들짝 놀라더니 마대 안에서 저항하며 도망치려 했다.응계천은 여유롭게 가루약 한 봉지를 꺼내 주전자에 붓고 흔든 뒤 월규의 턱을 쥐고 술을 쏟아부었다.월규는 힘껏 저항했지만 벗어날 수 없었다.“감히 내게 약을 쓰고 날 협박해 자백서를 쓰게 해? 게다가 내 손가락까지 자르다니. 난 널 살짝만 혼내줄 생각이었는데 이젠 네가 운이 좋길 기도하거라.”“오늘 밤이 지나고 네가 멀쩡하게 이 방을 나갈 수 있을지 지켜보자꾸나!”응계천은 말하면서 월규의 옷깃을 잡고 힘껏 찢었다.월규는 기겁하며 눈동자에 두려움이 비쳤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피하려 했지만 온몸이 나른했다.바로 그때, 폐월루 밖에서 분노에 찬 소리가 들려왔다.“오늘 내가 한번 봐야겠다. 폐월루의 어느 여인이 우리 집 장군을 홀렸는지 말이다!”말하면서 사람을 데리고 기세등등하게 폐월루로 들이닥쳤다.폐월루에 있던 사람들은 그들을 막으려 했지만 상대방이 데려온 호위가 그들을 막아섰다.추 어멈(秋媽媽)은 그들이 온 걸 보고 안색이 흐려졌지만 이내 활짝 웃으며 그들을 맞이했다.“어머, 역 부인 아니십니까? 이게 무슨 일입니까?”서소난(徐少兰)은 그녀를 차갑게 노려보다가 싸늘하게 말했다.“하, 날 알고 있었던 것이오?”“어쩐지, 도성 청루에서 나 서소난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