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소.”가면을 쓴 사내의 손은 허공에 잠깐 멈춰 있었다. 그는 잠시 뒤에야 당황한 듯 손을 거두어들였다.소향이 다급히 다가가 낙청연을 방으로 데려갔다.낙청연은 고개를 돌려 사내를 보았다.사내는 손짓을 하면서 자신의 발아래 지면을 가리켰다. 내일 아침 이곳에서 기다리겠다는 뜻인 듯했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방 안으로 들어간 뒤 소향은 다급히 방문을 닫았다.자리에 앉자 소향은 긴장한 얼굴로 배를 어루만지며 고통스러워했다.낙청연은 다급히 그녀의 맥을 짚었다.“왜 그러시오?”소향은 손을 저었다.“별것 아니오. 너무 긴장해서 그렇소. 조금 아프긴 한데 괜찮소.”낙청연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그대는 임신한 몸이오. 산에 올라서는 안 됐소. 너무 위험하오.”소향은 웃었다.“그러면 낭자는? 낭자처럼 연약한 여인이 산에는 무슨 일로 왔소?”낙청연은 침묵했다.사실 그녀에게는 여덟 명의 동료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우리 모두 각자의 목적이 있소.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그렇소.”“누구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하지만 우리는 이곳에 갇혀 더 높이 올라갈 수 없소. 음식도 점점 줄어들고 있소.”낙청연은 그제야 깨달았다. 그들의 먹을거리는 나물 같은 걸 제외하면 주로 사냥을 통해 구하는 듯했다.하지만 산속에 오랫동안 갇혀 있었으니 이 주위에 있는 먹잇감은 전부 다 사냥했을 터였다.그래서 음식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하루 만에 사흘 치 식량을 구해야 한다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내가 미리 알려주지 않은 탓이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쓸모가 있소.”“도맹과 복맹은 사냥을 잘하고 제설미는 여기서 몸으로 음식을 얻고 있소.”“난 요리를 담당하고 있소.”낙청연은 그 말을 듣고 물었다.“그러면 음식에 약을 쓴 것이 당신이오?”소향은 살짝 놀라며 대답했다.“복맹이 낭자를 발견할까 봐 걱정돼서 약을 탔소. 낭자가 죽은 듯이 자야 밖에 나오지 않을 테니 말이오.”“복맹은 보
곧이어 제설미는 방에서 나갔다.낙청연은 침상에 앉아 옷깃을 헤치고 어깨의 상처를 드러낸 뒤 약초를 꺼내 그 위에 올려두어 지혈했다.다행히 상처는 깊지 않았다.바로 그때, 차가운 시선을 느낀 낙청연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어느샌가 창문에 틈 하나가 생겼고 그 사이로 눈동자 하나가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낙청연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곧바로 옷깃을 여미면서 경계하듯 창문을 바라봤다.그자는 다름 아닌 복맹이었다!들켰음에도 불구하고 복맹은 숨기는커녕 오히려 뻔뻔하게 창문을 열었다.그는 음흉하게 웃으며 엉큼한 눈빛으로 낙청연을 훑어보았다.낙청연은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았다.복맹은 한참 동안 낙청연을 그런 눈길로 쳐다봤다. 비록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그의 눈빛과 미소가 모든 걸 말해줬다.그는 낙청연을 반드시 손에 넣을 생각이었다.복맹이 떠난 뒤 낙청연은 곧바로 문을 단단히 걸어 잠갔다.침상 위에 누운 낙청연은 도저히 잠이 오지 않았고 이따금 문가와 창문을 바라봤다.몰래 숨어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던 복맹을 떠올리니 헛구역질이 났다.그래서 낙청연은 몸을 일으켜 자신이 채집한 약재를 정리했다. 그 벙어리도 복맹의 검에 다쳤는데 상처가 어떤지 알 수 없었다.낙청연은 가지고 있던 약초로 알약과 외상을 치료하는 데 쓰는 연고를 만들었다.그녀는 약을 챙겼다. 비록 많지는 않았지만 응급 상황에 목숨을 지킬 수는 있었다.다른 약은 구십칠 일행에게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지금 구십칠 일행이 어디에 있는지, 안전한지 안전하지 않은지도 알 수 없었다.내일 마을을 떠난다면 제대로 찾아볼 생각이었다.그렇게 낙청연은 날이 밝을 때까지 깨어있었다.아침이 되고 새벽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창문에 또 눈동자가 나타났다. 무척이나 섬뜩했다.낙청연은 그것을 보고 깜짝 놀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참지 못하고 주먹을 움켜쥐었다.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나서야 창문 밖에 있던 복맹이 떠났다.낙청연은 다가가 방문을 열었고 벙어리를 보았다.그녀의 시야
낙청연은 무척 곤혹스러웠다. 날이 저물길 기다린다면 돌아갈 시간이 있을까?벙어리가 어젯밤 그런 약속을 했다는 건 분명 믿는 구석이 있어서일 것이다.낙청연은 그에게 약을 건넸다.“필요할지는 모르겠지만 받으시오.”살짝 당황한 벙어리는 약병을 건네받은 뒤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감사를 표했다.낙청연은 궁금한 듯 물었다.“당신은 예전에 날 두 번이나 도와줬었지, 맞소?”“한 번은 모씨 가문에서, 한 번은 장군 저택에서.”“어젯밤 난 당신을 알아보았소.”부진환은 가면을 쓰고 있음에도 자신의 눈빛 변화를 통제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사실 마음은 이미 크게 술렁이고 있었다.낙청연이 그를 알아봤다.두 번 모두 그를 발견한 것이다.부진환은 평정심을 되찾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낙청연은 부진환이 솔직히 인정하자 들뜬 마음에 웃으며 물었다.“날 왜 도와준 것이오?”“당신은 누구지?”“우리가 아는 사이오?”낙청연은 가끔 그가 익숙하게 느껴졌지만 몸매가 아주 달랐다.하물며 부진환은 이미 죽었으니...그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낙청연은 가슴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했다.그녀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벙어리를 바라보았고 그녀의 예상대로 벙어리는 고개를 저었다.곧이어 그는 손가락으로 바닥에 글을 적었다.첫째.낙청연은 잠깐 고민하더니 놀란 듯 말했다.“첫째 황자?”“당신은 첫째 황자의 사람이오?”벙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낙청연은 의아하면서도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진익은 침서와 맞설 생각이었기에 당연히 그녀를 주시하고 있을 터였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 그녀를 지키는 것도 정상이었다.“그렇군.”“난 또...”낙청연은 거기까지 말하고 침묵했다.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난 사람을 찾으러 갈 것이오. 나와 함께 가겠소?”벙어리는 망설이지 않고 일어나 낙청연의 뒤를 따랐다.낙청연은 무작정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지나온 길의 나무에 표기를 해놨다.구십칠 일행이 본다면 찾아올 수 있게 말이다.두 사람은 산속에서 한참 동안 찾아봤으나 구십칠 일행의
복맹이었다!작은 키에 건장한 몸집의 사내가 어둠을 헤치고 다가오고 있었다.고개를 돌린 낙청연은 그를 보았다. 그의 번뜩이는 눈동자를 본 순간, 낙청연은 심장이 철렁했다.복맹은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낙청연을 바라보고 있었다.“날이 저물었다. 하루가 지났는데 역시나 너희는 빈손으로 돌아왔구나.”“이 미인은 이제 내 것이다.”복맹은 말하면서 낙청연에게 달려들었고 낙청연은 긴장한 표정으로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그러나 복맹은 가까이 다가오더니 불시에 방향을 바꾸어 옆에 있는 벙어리에게 덤볐다.주먹을 꽉 쥔 낙청연이 그 주먹을 휘두르기도 전에 복맹이 그녀의 앞에서 사라졌다.곧이어 낙청연은 복맹이 벙어리와 싸우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벙어리는 복맹의 상대가 되지 않았고 몇 번 공격을 주고받은 뒤 맞아서 멀리 날아갔다.이어진 광경에 낙청연은 경악했다.벙어리는 가슴께를 부여잡은 채로 바닥에서 일어나 도망쳤다.그는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황급히 도망친 것이다.복맹은 놀랍지 않은지 냉소를 흘리더니 고개를 돌려 낙청연을 바라봤다.“저놈을 꽤 믿은 모양이구나. 저놈은 처음부터 널 속였다.”“저놈은 그저 핑계를 찾아 마을에서 도망치고 싶었을 뿐이다. 네 사활 따위는 안중에도 없지.”말하면서 복맹은 차갑게 웃었다.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어둠 속을 바라봤다.“하지만 마을에서 나가도 결국은 죽음뿐이다.”낙청연은 깜짝 놀랐다. 어둠 속에서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도망쳤다고?산에서 하루 동안 시간을 지체했고 사냥감은 전혀 구하지 못했는데 이때 도망치다니?그 순간 낙청연은 심장이 목구멍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녀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복맹을 바라봤다.누구도 믿어서는 안 됐다!복맹이 덤벼들었고 낙청연은 바닥에 쓰러져 제압당했다.소매 안에서 비수를 꺼낸 낙청연은 복맹의 복부에 비수를 꽂으려 했다.복맹은 몸을 비켜 피하더니 다시금 허리춤에 있는 천참검을 꺼내 칼날을 핥았고, 그로 인해 피가 났다.“나랑 제대로 놀아볼 셈이
복맹은 차갑게 말하며 날카로운 검날을 잡고 돌려 쇠사슬을 끊으려 했다.천참검은 철을 쉽게 벨 정도로 날카롭지는 않았지만, 복맹의 힘이 워낙 억센지라 쇠사슬로도 그를 제압할 수 없었다.바로 그때, 낙청연이 기회를 틈타 나침반을 꺼냈고 피를 바쳐 영혼을 불러냈다. 산속에서 수많은 영혼이 득달같이 모여들었고 그 바람에 숲속에 광풍이 일었다.낙청연은 알고 있었다. 복맹이 천참검을 손에 넣는다면 그녀도, 벙어리도 오늘 필시 죽을 거란 걸 말이다.결정적인 순간이니 반드시 최선을 다해 막을 수밖에 없었다.귀도 산에 있는 영혼은 그 수가 어마어마했고 살기 또한 매우 강했다. 낙청연은 자신이 그들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었다.음산한 바람과 함께 살기가 한꺼번에 몰려왔다.복맹은 저도 모르게 팔을 들어서 막았다.곧이어 위험을 인식한 그는 손바닥의 상처를 신경 쓸 새도 없이 천참검을 무리하게 사용하려 했다.힘이 얼마나 강한지 나무 위에 서 있던 벙어리를 힘껏 끌어내릴 정도였다.바닥에 착지한 벙어리는 손으로 땅을 짚은 덕에 다치지 않았다.그는 이내 몸을 날려 복맹의 가슴을 걷어찼다.그런데도 복맹은 천참검을 놓지 않았다.낙청연은 소령진을 동원했고 곧이어 어둠의 기운이 세차게 솟구쳐 그녀를 단단히 에워쌌다.낙청연은 이를 악물고 억지로 버티며 검을 들고 달려들었다.그녀는 벙어리와 혐력하여 복맹이 천참검을 손에 넣는 걸 막았다.하늘은 어둠으로 뒤덮여 마치 암흑의 감옥처럼 그들을 가두었다.치열한 전투가 이어지면서 피가 흩뿌려졌다.낙청연은 상처투성이가 되어 온몸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고 얼굴에도 핏자국이 가득했다.그러나 그것도 천참검이 쇠사슬에 감겼을 때의 위력이었다.복맹이 천참검을 완전히 손에 넣는다면 그들은 필시 죽을 것이었다.벙어리도 상처투성이였다. 공기 중에 피비린내가 만연했다.허공에서 수많은 영혼이 복맹의 신체를 투과하며 그를 사정없이 찢었다. 해골처럼 해쓱한 복맹의 얼굴에 핏줄이 섰고 표정은 잔뜩 일그러져 무척 섬뜩했다.“아!”복맹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복맹이 재빨리 후퇴했고 쇠사슬 소리가 들렸다.그곳으로 달려간 낙청연은 복맹이 나무 기둥과 함께 쇠사슬에 묶여있는 걸 보았다.마른 몸의 벙어리는 천참검을 들어 복맹의 가슴을 찔렀다.그 깔끔한 동작에서 독기가 느껴졌다.복맹은 피를 토하며 무기력하게 눈을 감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자신이 이곳에서 죽는다는 게 믿기지 않는 듯했다.낙청연은 깜짝 놀랐다.바로 그때, 등 뒤에서 강력한 살기가 급습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어둠 속에서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낙청연은 곧바로 달려가 벙어리를 잡아당겼고 그 거대한 검은 그림자는 나무 기둥에 묶인 복맹을 향해 돌진해 매섭게 그의 몸을 꿰뚫고 지나갔다.바닥에 무릎을 꿇은 벙어리는 피를 토했다.낙청연은 초조한 마음에 손을 뻗어 그의 가면을 벗기려 했다.그러나 그의 가면을 만지는 순간 벙어리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피를 가득 묻힌 손이 낙청연의 창백한 손을 꽉 잡고 있었다.밤바람에 낙청연의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그녀의 창백한 안색과 얼굴에 묻은 피가 한데 어우러져 처연하게 아름다웠다.낙청연은 정신을 차린 뒤 곧바로 손을 뺐다.“난 상처를 확인해 보고 싶을 뿐이오.”벙어리는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낙청연은 약병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고개를 들어보니 검은 기운이 하늘을 가득 메웠고 수많은 영혼이 미친 듯이 발악하며 날뛰고 있었다.낙청연은 자신이 더는 통제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여긴 아주 위험하니 얼른 떠나는 게 좋겠소.”낙청연이 일어서자 벙어리는 고개를 저으며 나무 기둥에 묶인 복맹을 가리켰다.그는 곧 낙청연을 일으키고 다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나무 위로 올라갔다.벙어리는 여기서 잠깐 움직이지 말고 서 있으라고 그녀를 향해 손짓했고 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왠지 모르게 그녀는 눈앞의 낯선 이에게 아주 강한 믿음을 안고 있었다.벙어리는 활을 꺼내 쪼그리고 앉았다.낙청연도 긴장하며 숨을 죽인 채로 계속 기다렸다.자시
손 하나가 벙어리 어깨 위에 또 올려졌다.그 순간 벙어리는 몸이 살짝 굳었다. 고개를 든 그는 나무 위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낙청연과 눈이 마주쳤다.그 순간 벙어리는 완전히 얼어붙어 꼼짝하지 못했다.낙청연의 품에 있던 나침반이 격렬히 요동치기 시작했다. 강렬한 위험을 느낀 듯했다.낙청연은 조용히 하라는 듯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댔고 그에게 뒤돌아보지 말라고 눈치를 줬다.바로 그때, 창백한 얼굴 하나가 서서히 벙어리의 머리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회색빛의 눈동자가 낙청연을 직시하고 있었다!낙청연은 순간 숨 쉬는 법마저 잊고 그 여인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잠시 뒤 낙청연은 몰래 부적 하나를 꺼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철추야.”철추는 곧바로 그 여인의 등 뒤로 걸어가 힘껏 일격을 가했다.그 순간 여인은 동공이 확 커지면서 고양이 눈동자처럼 변했다.낙청연은 곧바로 나침반을 꺼내 나무에서 뛰어내리며 벙어리를 향해 외쳤다.“피하시오!”벙어리는 아주 협조적이었다. 그는 몸을 굴려 왼쪽으로 피했다.낙청연이 손에 들고 있던 나침반을 그쪽으로 비추자 금빛 한 줄기가 쏘아졌고 여인은 순식간에 사라졌다.철추 또한 넋이 나갔다.“어머니, 사라졌습니다.”낙청연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확실히 감쪽같이 사라진 듯했다.나침반도 평온해졌다.그러나 낙청연은 그것이 나타난 뒤 나침반이 반응했음을 떠올렸다.그것이 말도 안 되게 강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아마 기운을 숨길 수 있어 나침반마저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벙어리는 일어섰고 경계하듯 주위를 살폈다.숲에서는 더는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고 상공의 영혼들도 차차 흩어지기 시작하면서 달빛이 틈새를 뚫고 숲에 드리워졌다.광선도 조금 밝아졌다.벙어리는 가슴팍을 문지르면서 사슬을 풀었고 그것으로 호랑이의 사체를 묶었다.그는 이제 돌아갈 때가 됐다고 낙청연에게 눈빛을 보냈다.깊은 밤이라 날씨가 쌀쌀했다. 밤바람이 불자 낙청연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는 배도 고프고 또 힘들었다.그렇게
같은 시각, 마을 전체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어둠 속에서 그들은 제각기 무기를 들고 경계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다.무거운 물건이 질질 끌리는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자 다들 신경이 곤두섰다.낙청연과 벙어리가 호랑이를 끌고 마을에 들어섰고,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그들이야!”“저들이 살아 돌아오다니!”낙청연과 가면을 쓴 벙어리는 그렇게 마을로 돌아와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그리고 그의 뒤에 있는 거대한 물건이 천천히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왔다.그것은 호랑이였다.호랑이를 본 순간 다들 헛숨을 들이켰다.“흑호다!”도명은 경악했다.그들의 반응을 본 낙청연은 그들이 흑호의 존재를 알고 있었음을 눈치챘다.도명은 곧바로 다가가 흑호의 시체를 확인했다.“정말 죽었군!”고개를 들어 낙청연과 벙어리를 바라보는 도명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이걸 당신들이 사냥한 것이오?”낙청연은 피가 묻은 얼굴을 닦았다. 안색은 창백했지만 눈빛은 매우 매서웠다.“그렇지 않으면?”사람들은 전부 놀랐다.피투성이인 그들의 모습을 보니 악전고투를 치른 듯했다.“약속은 지켜야 하지 않겠소?”도명은 낙청연을 지긋이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소향에게 분부했다.“끌고 가서 먹을 걸 준비하거라.”“그리고 이 여인과 벙어리는 앞으로 마을에 남을 것이다. 앞으로 누구도 저 여인에게 손을 대서는 안 된다! 특히 복맹!”남은 이들은 서로를 바라봤다.“복맹이 보이지 않소!”“그러게 말이오. 날이 저문 뒤로는 복맹을 본 적이 없소.”바로 그때, 제설미의 시선이 낙청연의 손으로 옮겨졌다.그녀의 동공이 잘게 떨렸다.“천참검이 저 여인의 손에 있습니다!”그 말에 사람들은 일제히 낙청연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에 들린 천참검을 보자 다들 경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천참검이라니! 설마 복맹을 죽인 것이오?”도명은 놀란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믿기 어려웠다.낙청연이 말했다.“복맹은 이 흑호에게 공격당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