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청연은 무척 곤혹스러웠다. 날이 저물길 기다린다면 돌아갈 시간이 있을까?벙어리가 어젯밤 그런 약속을 했다는 건 분명 믿는 구석이 있어서일 것이다.낙청연은 그에게 약을 건넸다.“필요할지는 모르겠지만 받으시오.”살짝 당황한 벙어리는 약병을 건네받은 뒤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감사를 표했다.낙청연은 궁금한 듯 물었다.“당신은 예전에 날 두 번이나 도와줬었지, 맞소?”“한 번은 모씨 가문에서, 한 번은 장군 저택에서.”“어젯밤 난 당신을 알아보았소.”부진환은 가면을 쓰고 있음에도 자신의 눈빛 변화를 통제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사실 마음은 이미 크게 술렁이고 있었다.낙청연이 그를 알아봤다.두 번 모두 그를 발견한 것이다.부진환은 평정심을 되찾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낙청연은 부진환이 솔직히 인정하자 들뜬 마음에 웃으며 물었다.“날 왜 도와준 것이오?”“당신은 누구지?”“우리가 아는 사이오?”낙청연은 가끔 그가 익숙하게 느껴졌지만 몸매가 아주 달랐다.하물며 부진환은 이미 죽었으니...그 사실을 떠올릴 때마다 낙청연은 가슴이 꽉 막힌 것처럼 답답했다.그녀는 기대에 찬 표정으로 벙어리를 바라보았고 그녀의 예상대로 벙어리는 고개를 저었다.곧이어 그는 손가락으로 바닥에 글을 적었다.첫째.낙청연은 잠깐 고민하더니 놀란 듯 말했다.“첫째 황자?”“당신은 첫째 황자의 사람이오?”벙어리는 고개를 끄덕였다.낙청연은 의아하면서도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진익은 침서와 맞설 생각이었기에 당연히 그녀를 주시하고 있을 터였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 그녀를 지키는 것도 정상이었다.“그렇군.”“난 또...”낙청연은 거기까지 말하고 침묵했다.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난 사람을 찾으러 갈 것이오. 나와 함께 가겠소?”벙어리는 망설이지 않고 일어나 낙청연의 뒤를 따랐다.낙청연은 무작정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지나온 길의 나무에 표기를 해놨다.구십칠 일행이 본다면 찾아올 수 있게 말이다.두 사람은 산속에서 한참 동안 찾아봤으나 구십칠 일행의
복맹이었다!작은 키에 건장한 몸집의 사내가 어둠을 헤치고 다가오고 있었다.고개를 돌린 낙청연은 그를 보았다. 그의 번뜩이는 눈동자를 본 순간, 낙청연은 심장이 철렁했다.복맹은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낙청연을 바라보고 있었다.“날이 저물었다. 하루가 지났는데 역시나 너희는 빈손으로 돌아왔구나.”“이 미인은 이제 내 것이다.”복맹은 말하면서 낙청연에게 달려들었고 낙청연은 긴장한 표정으로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그러나 복맹은 가까이 다가오더니 불시에 방향을 바꾸어 옆에 있는 벙어리에게 덤볐다.주먹을 꽉 쥔 낙청연이 그 주먹을 휘두르기도 전에 복맹이 그녀의 앞에서 사라졌다.곧이어 낙청연은 복맹이 벙어리와 싸우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벙어리는 복맹의 상대가 되지 않았고 몇 번 공격을 주고받은 뒤 맞아서 멀리 날아갔다.이어진 광경에 낙청연은 경악했다.벙어리는 가슴께를 부여잡은 채로 바닥에서 일어나 도망쳤다.그는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황급히 도망친 것이다.복맹은 놀랍지 않은지 냉소를 흘리더니 고개를 돌려 낙청연을 바라봤다.“저놈을 꽤 믿은 모양이구나. 저놈은 처음부터 널 속였다.”“저놈은 그저 핑계를 찾아 마을에서 도망치고 싶었을 뿐이다. 네 사활 따위는 안중에도 없지.”말하면서 복맹은 차갑게 웃었다. 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어둠 속을 바라봤다.“하지만 마을에서 나가도 결국은 죽음뿐이다.”낙청연은 깜짝 놀랐다. 어둠 속에서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도망쳤다고?산에서 하루 동안 시간을 지체했고 사냥감은 전혀 구하지 못했는데 이때 도망치다니?그 순간 낙청연은 심장이 목구멍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녀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복맹을 바라봤다.누구도 믿어서는 안 됐다!복맹이 덤벼들었고 낙청연은 바닥에 쓰러져 제압당했다.소매 안에서 비수를 꺼낸 낙청연은 복맹의 복부에 비수를 꽂으려 했다.복맹은 몸을 비켜 피하더니 다시금 허리춤에 있는 천참검을 꺼내 칼날을 핥았고, 그로 인해 피가 났다.“나랑 제대로 놀아볼 셈이
복맹은 차갑게 말하며 날카로운 검날을 잡고 돌려 쇠사슬을 끊으려 했다.천참검은 철을 쉽게 벨 정도로 날카롭지는 않았지만, 복맹의 힘이 워낙 억센지라 쇠사슬로도 그를 제압할 수 없었다.바로 그때, 낙청연이 기회를 틈타 나침반을 꺼냈고 피를 바쳐 영혼을 불러냈다. 산속에서 수많은 영혼이 득달같이 모여들었고 그 바람에 숲속에 광풍이 일었다.낙청연은 알고 있었다. 복맹이 천참검을 손에 넣는다면 그녀도, 벙어리도 오늘 필시 죽을 거란 걸 말이다.결정적인 순간이니 반드시 최선을 다해 막을 수밖에 없었다.귀도 산에 있는 영혼은 그 수가 어마어마했고 살기 또한 매우 강했다. 낙청연은 자신이 그들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었다.음산한 바람과 함께 살기가 한꺼번에 몰려왔다.복맹은 저도 모르게 팔을 들어서 막았다.곧이어 위험을 인식한 그는 손바닥의 상처를 신경 쓸 새도 없이 천참검을 무리하게 사용하려 했다.힘이 얼마나 강한지 나무 위에 서 있던 벙어리를 힘껏 끌어내릴 정도였다.바닥에 착지한 벙어리는 손으로 땅을 짚은 덕에 다치지 않았다.그는 이내 몸을 날려 복맹의 가슴을 걷어찼다.그런데도 복맹은 천참검을 놓지 않았다.낙청연은 소령진을 동원했고 곧이어 어둠의 기운이 세차게 솟구쳐 그녀를 단단히 에워쌌다.낙청연은 이를 악물고 억지로 버티며 검을 들고 달려들었다.그녀는 벙어리와 혐력하여 복맹이 천참검을 손에 넣는 걸 막았다.하늘은 어둠으로 뒤덮여 마치 암흑의 감옥처럼 그들을 가두었다.치열한 전투가 이어지면서 피가 흩뿌려졌다.낙청연은 상처투성이가 되어 온몸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고 얼굴에도 핏자국이 가득했다.그러나 그것도 천참검이 쇠사슬에 감겼을 때의 위력이었다.복맹이 천참검을 완전히 손에 넣는다면 그들은 필시 죽을 것이었다.벙어리도 상처투성이였다. 공기 중에 피비린내가 만연했다.허공에서 수많은 영혼이 복맹의 신체를 투과하며 그를 사정없이 찢었다. 해골처럼 해쓱한 복맹의 얼굴에 핏줄이 섰고 표정은 잔뜩 일그러져 무척 섬뜩했다.“아!”복맹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복맹이 재빨리 후퇴했고 쇠사슬 소리가 들렸다.그곳으로 달려간 낙청연은 복맹이 나무 기둥과 함께 쇠사슬에 묶여있는 걸 보았다.마른 몸의 벙어리는 천참검을 들어 복맹의 가슴을 찔렀다.그 깔끔한 동작에서 독기가 느껴졌다.복맹은 피를 토하며 무기력하게 눈을 감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자신이 이곳에서 죽는다는 게 믿기지 않는 듯했다.낙청연은 깜짝 놀랐다.바로 그때, 등 뒤에서 강력한 살기가 급습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어둠 속에서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었다.낙청연은 곧바로 달려가 벙어리를 잡아당겼고 그 거대한 검은 그림자는 나무 기둥에 묶인 복맹을 향해 돌진해 매섭게 그의 몸을 꿰뚫고 지나갔다.바닥에 무릎을 꿇은 벙어리는 피를 토했다.낙청연은 초조한 마음에 손을 뻗어 그의 가면을 벗기려 했다.그러나 그의 가면을 만지는 순간 벙어리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피를 가득 묻힌 손이 낙청연의 창백한 손을 꽉 잡고 있었다.밤바람에 낙청연의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그녀의 창백한 안색과 얼굴에 묻은 피가 한데 어우러져 처연하게 아름다웠다.낙청연은 정신을 차린 뒤 곧바로 손을 뺐다.“난 상처를 확인해 보고 싶을 뿐이오.”벙어리는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낙청연은 약병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고개를 들어보니 검은 기운이 하늘을 가득 메웠고 수많은 영혼이 미친 듯이 발악하며 날뛰고 있었다.낙청연은 자신이 더는 통제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여긴 아주 위험하니 얼른 떠나는 게 좋겠소.”낙청연이 일어서자 벙어리는 고개를 저으며 나무 기둥에 묶인 복맹을 가리켰다.그는 곧 낙청연을 일으키고 다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나무 위로 올라갔다.벙어리는 여기서 잠깐 움직이지 말고 서 있으라고 그녀를 향해 손짓했고 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왠지 모르게 그녀는 눈앞의 낯선 이에게 아주 강한 믿음을 안고 있었다.벙어리는 활을 꺼내 쪼그리고 앉았다.낙청연도 긴장하며 숨을 죽인 채로 계속 기다렸다.자시
손 하나가 벙어리 어깨 위에 또 올려졌다.그 순간 벙어리는 몸이 살짝 굳었다. 고개를 든 그는 나무 위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낙청연과 눈이 마주쳤다.그 순간 벙어리는 완전히 얼어붙어 꼼짝하지 못했다.낙청연의 품에 있던 나침반이 격렬히 요동치기 시작했다. 강렬한 위험을 느낀 듯했다.낙청연은 조용히 하라는 듯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댔고 그에게 뒤돌아보지 말라고 눈치를 줬다.바로 그때, 창백한 얼굴 하나가 서서히 벙어리의 머리 뒤에서 고개를 내밀었다.회색빛의 눈동자가 낙청연을 직시하고 있었다!낙청연은 순간 숨 쉬는 법마저 잊고 그 여인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잠시 뒤 낙청연은 몰래 부적 하나를 꺼내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철추야.”철추는 곧바로 그 여인의 등 뒤로 걸어가 힘껏 일격을 가했다.그 순간 여인은 동공이 확 커지면서 고양이 눈동자처럼 변했다.낙청연은 곧바로 나침반을 꺼내 나무에서 뛰어내리며 벙어리를 향해 외쳤다.“피하시오!”벙어리는 아주 협조적이었다. 그는 몸을 굴려 왼쪽으로 피했다.낙청연이 손에 들고 있던 나침반을 그쪽으로 비추자 금빛 한 줄기가 쏘아졌고 여인은 순식간에 사라졌다.철추 또한 넋이 나갔다.“어머니, 사라졌습니다.”낙청연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확실히 감쪽같이 사라진 듯했다.나침반도 평온해졌다.그러나 낙청연은 그것이 나타난 뒤 나침반이 반응했음을 떠올렸다.그것이 말도 안 되게 강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아마 기운을 숨길 수 있어 나침반마저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벙어리는 일어섰고 경계하듯 주위를 살폈다.숲에서는 더는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고 상공의 영혼들도 차차 흩어지기 시작하면서 달빛이 틈새를 뚫고 숲에 드리워졌다.광선도 조금 밝아졌다.벙어리는 가슴팍을 문지르면서 사슬을 풀었고 그것으로 호랑이의 사체를 묶었다.그는 이제 돌아갈 때가 됐다고 낙청연에게 눈빛을 보냈다.깊은 밤이라 날씨가 쌀쌀했다. 밤바람이 불자 낙청연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녀는 배도 고프고 또 힘들었다.그렇게
같은 시각, 마을 전체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어둠 속에서 그들은 제각기 무기를 들고 경계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었다.무거운 물건이 질질 끌리는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자 다들 신경이 곤두섰다.낙청연과 벙어리가 호랑이를 끌고 마을에 들어섰고,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그들이야!”“저들이 살아 돌아오다니!”낙청연과 가면을 쓴 벙어리는 그렇게 마을로 돌아와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그리고 그의 뒤에 있는 거대한 물건이 천천히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왔다.그것은 호랑이였다.호랑이를 본 순간 다들 헛숨을 들이켰다.“흑호다!”도명은 경악했다.그들의 반응을 본 낙청연은 그들이 흑호의 존재를 알고 있었음을 눈치챘다.도명은 곧바로 다가가 흑호의 시체를 확인했다.“정말 죽었군!”고개를 들어 낙청연과 벙어리를 바라보는 도명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이걸 당신들이 사냥한 것이오?”낙청연은 피가 묻은 얼굴을 닦았다. 안색은 창백했지만 눈빛은 매우 매서웠다.“그렇지 않으면?”사람들은 전부 놀랐다.피투성이인 그들의 모습을 보니 악전고투를 치른 듯했다.“약속은 지켜야 하지 않겠소?”도명은 낙청연을 지긋이 바라보다가 몸을 돌려 소향에게 분부했다.“끌고 가서 먹을 걸 준비하거라.”“그리고 이 여인과 벙어리는 앞으로 마을에 남을 것이다. 앞으로 누구도 저 여인에게 손을 대서는 안 된다! 특히 복맹!”남은 이들은 서로를 바라봤다.“복맹이 보이지 않소!”“그러게 말이오. 날이 저문 뒤로는 복맹을 본 적이 없소.”바로 그때, 제설미의 시선이 낙청연의 손으로 옮겨졌다.그녀의 동공이 잘게 떨렸다.“천참검이 저 여인의 손에 있습니다!”그 말에 사람들은 일제히 낙청연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에 들린 천참검을 보자 다들 경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천참검이라니! 설마 복맹을 죽인 것이오?”도명은 놀란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믿기 어려웠다.낙청연이 말했다.“복맹은 이 흑호에게 공격당해
그는 약병 안에서 용삼 알약을 꺼내 한 알 먹었다.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 귀도행이 끝날 때까지 버틸 수 있길 바랐다.그래야 낙청연이 안전히 하산할 수 있게 그녀를 지킬 수 있었다.문밖에서 낙청연은 무릎을 끌어안고 있다가 하마터면 잠이 들 뻔했다.가까워지는 발걸음 소리에 낙청연은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고개를 들어 보니 소향이었다.배가 크게 부른 소향이 걸어와 웃었다.“혹시나 무슨 일을 당하진 않을까 걱정했소.”“그런데 정말 뜻밖이오. 그 흑호를 사냥하다니.”소향은 조심스럽게 옆에 앉았고 낙청연은 도와주려고 그녀를 부축했다.자리에 앉은 소향이 말했다.“그 흑호는 밤에만 먹이를 찾으러 나왔소. 보통 자시가 되어야 나타났지.”“예전에 밤이 되면 이따금 흑호에게 공격받았소. 매일 밤 사람이 한 명씩 죽었지.”“그 뒤로 많은 곳을 찾아 다녔는데 이 뒤에 공동묘지가 있어서 그런지 흑호가 이곳에는 가까이 오지 못했소.”“그래서 이곳에 집을 짓고 여기서 잠시 머물렀소.”그 말에 낙청연은 살짝 의아했다.이곳에 공동묘지가 있다니?조금 전 소령진을 쳤을 때 음기와 살기가 강한 영혼들이 많이 나타난 이유가 있었다.“꽤 오랫동안 이곳에 있은 듯한데 산에 오를 방법은 아직 찾지 못한 것이오?”낙청연은 궁금한 듯 물었고 소향은 고개를 저었다.“아직 방법을 찾고 있소. 하지만 낭자가 오늘 흑호를 죽였으니 새로운 시작이 될지도 모르지.”“내일이면 움직일 것 같소.”낙청연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알려줘서 고맙소.”소향은 방 안을 바라보며 웃었다.“벙어리가 낭자를 잘 대해주는 것 같소. 이번에 둘이 함께 저승 문턱까지 갔겠지.”낙청연은 살짝 당황하더니 이내 웃었다.“말도 마시오.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신에게 기대야 하는 법이오.”“오늘은 운이 좋았을 뿐이오.”낙청연은 경계를 완전히 풀지는 않았기에 일부러 자신과 벙어리의 관계를 숨겼다.그녀는 이곳에 와서야 벙어리를 알게 된 척했다.소향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우리 여인들은
낙청연은 긴장해 하는 그의 표정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해서 말했다.“최소한 당신 주인보다 강한 것 같소.”벙어리는 대답하지 않았다.낙청연은 또 말했다. “소향이 말하길, 그 사람들이 아마 내일 움직일 거라고 했소. 나도 내일 나갔다가 오고 싶소.”“혹시 당신도 나와 함께 가지 않겠소?”벙어리가 글씨를 썼다 뭐 하러 가려는 것이오? 당신은 지금 휴식이 필요하오.낙청연은 근심스럽게 말했다. “사실 이번에 나와 함께 동행한 사람은 여덟 명이 더 있소.”“그러나 그 사람들은 모두 사라졌소.”“그들은 나를 버릴 사람들이 아니요.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하오. 그러니 나가서 찾아봐야겠소.”단지 그 사람들이 안전하길 바랄 뿐이다.벙어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뒤이어 어서 휴식하라는 글을 남기고 일어나 방에서 나갔다.그가 나간 후, 낙청연은 방문을 닫고 모든 창문을 잠근 후 옷을 벗고 상처를 처치했다.다행히 상처들은 그다지 깊지 않았고, 찰과상 정도였다.상처를 처치하고 나니, 이미 한밤중이 되었다. 낙청연은 서둘러 침상에 누워 휴식을 취하며 체력을 보충했다.--이 시각 마을은 어두컴컴했으며, 대부분 집은 이미 등불을 껐다.부진환의 방도 불을 켜지 않았다.부진환이 방문을 열자, 이상한 냄새가 풍겨왔다.뒤이어 가느다란 팔이 그의 목을 칭칭 감았다.부진환은 미간을 찡그리며 상대방의 더듬거리는 손을 덥석 잡았다.그러나 상대방은 애교 섞인 어투로 말했다. “오라버니, 아픕니다.”제설미의 목소리였다.부진환은 제설미의 손목을 잡고 그녀를 확 떨쳐냈다.부진환의 몸에 붙으려고 하던 제설미는 연신 뒷걸음 치더니 몇 걸음 물러나 겨우 몸을 가누었다.제설미는 약간 놀랐다.곧 살짝 웃으며 다시 앞으로 다가왔다. 제설미는 매우 요염한 붉은 치마를 입고 있었고, 어깨를 살짝 드러냈으며, 자태가 몹시 사랑스러웠다.평소의 그녀와는 완전히 다른 차림새였다.“벙어리 오라버니, 오늘 밤은 오라버니 차례입니다.” 제설미는 머리를 꼬면서 또다시 부진환의
묵계는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뱀독이 확산하여 썩어가는 송천초의 피부를 보니, 그녀는 못내 싫어졌다.시간이 흐르면 뱀독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 그러다 오장육부를 다치면 이 몸은 더 이상 소용이 없다.묵계는 갑자기 방법이 떠올랐다.“좋다. 진법을 거두거라. 나오겠다.”묵계도 조금 조급해졌다.“약속하거라. 너에게 다른 몸을 찾아줄 테니 절대 다른 짓 하지 말거라.”낙요가 말했다.“그래. 어서!”두 사람은 드디어 의견이 맞았다.낙요가 진법을 없애자, 묵계도 순순히 송천초의 몸에서 나왔다.낙요는 특별히 두 가닥의 혼이 모두 나왔는지 확인했다.낙요는 얼른 부적을 송천초의 몸에 붙였고 묵계는 다시 송천초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하지만 묵계는 낙요를 빤히 보고 있었다. 그녀는 낙요가 가까이 오자 바로 낙요의 미간을 파고들었다.그녀는 순식간에 낙요의 몸속으로 들어갔다.낙요는 심한 충격을 입은 듯 휘청이며 뒤로 물러서서 의자를 붙잡고 그제야 안정을 찾았다.그녀의 귓가에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하하하. 다른 몸을 찾을 필요 없다. 네 몸이 아주 마음에 드는구나.”“혼을 빼앗는 것에 난 도가 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너를 대신하여 여국의 여제가 될 것이다.”낙요는 안정을 찾고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지었다.“동하국에 너무 오래 있어, 바깥세상을 본 적 없는 모양이구나.”“아무나 너에게 혼과 몸을 빼앗기는 것은 아니다.”“제사장족의 대제사장들을 들어본 적 있느냐?”묵계는 낙요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제사장족? 동하국 사람한테서 들은 적 있다. 그때 나를 공격한 젊은이들도 제사장족 사람들이었다.”“그들이 쓰는 진법은 네 진법과 다를 것이 없다. 보아하니 너도 제사장족이구나.”“잘됐구나. 네가 강할수록 너의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이다.”묵계는 아직도 기뻐하고 있었다.낙요가 난감한 듯 웃었다.“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구나.”“너처럼 순진한 요괴는 처음 보
백서는 바로 방에서 물러나 방문을 닫았다.조영궁 밖이 조용해지자, 병풍 뒤에서 그림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초경이었다.그는 쓰러져 있는 송천초를 품에 안고 있었다.낙요는 안색을 굳히고 다급히 앞으로 걸어갔다.“어찌 된 일입니까?”초경은 송천초를 연탑에 눕히고 설명했다.“동하국에서 괴물을 만났습니다...”초경은 사건의 경과를 간단히 설명했고 묵계의 신분도 알려주었다.그의 말을 듣고 낙요의 표정이 굳어졌다.“그렇습니까?”“방법이 있습니까? 그 괴물은 천초의 몸을 차지하려는 것입니다. 독을 없애서 깨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천초가 위험할 것입니다!”초경은 몹시 조급했다.낙요가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급해하지 마십시오. 방법이 있습니다.”“천초 몸 안에 있는 묵계의 혼을 뽑는 것은 자신 있습니다.”“밖을 지키고 있으세요.”초경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놓였다.낙요는 여국에서 제일 강한 대제사장이었으니, 분명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천초는 괜찮을 것이다!“예. 밖에 있겠습니다.”초경은 바로 방에서 나가 정원을 지키고 있었다.낙요는 피로 진을 그려 송천초의 몸을 뒤덮었다.그리고 송천초 몸 안의 혼을 빼내기 시작했다.물론 묵계가 그녀의 몸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아, 과정이 쉽지 않았다.손을 세게 쓰면 송천초를 다치게 할 수도 있고 약하게 하면 묵계를 꺼낼 수 없었다.“넌 누구냐? 감히 나를 상대하려는 것이냐?”묵계의 낮고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여국과 오랫동안 싸웠는데, 여국의 여제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냐?”낙요는 가소롭다는 듯 답했다.그 말을 듣고 묵계는 깜짝 놀랐다.“여국 여제? 평범한 사람을 위해 이 진까지 쓰는 것이냐?”“이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난 너에게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 나와 손을 잡지 않겠느냐?”낙요가 가볍게 웃었다.“보아하니 넌 사람의 감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사랑도 모르고 우정도 모른다.”“네가 몸을 원한다면 더 좋은 몸을 찾아주겠다. 얌전히 송천
“대체 뭘 하려는 거냐!”초경이 매섭게 물었다.“나는 살고 싶다. 나를 풀어주면 안전한 곳에 가서 이 여자를 풀어주마.”그 말을 듣고 초경이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너를 풀어주면 천초를 놓아줄 것이라 믿지 않는다.”묵계가 담담하게 웃었다.“비록 웅황주가 나를 몰아냈지만, 이미 이 여인의 몸에 혼을 한 가닥 남겼다. 지금 두 가닥의 혼이 몸에 들어있으니, 7일 후 혼을 잃고 나의 몸이 될 것이다.”“이 몸은 이제 내 것이다.”“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얘기할 자격도 없다. 내 말대로 해야 이 여자는 살 기회가 있다!”“나를 놓아주거라!”묵계의 위협에 초경은 주먹을 꽉 쥐고 분노를 억눌렀다.“가거라.”“3일 후, 반드시 천초를 만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널 찾아 죽일 것이다.”묵계가 입꼬리를 올렸다.“좋다!”말을 마치고 묵계는 약사의 몸을 끌고 빠르게 그곳을 떠났다.낙현책이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걸어갔다.“정말 이렇게 풀어주는 것입니까? 천초 고모를 놓아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초경은 묵계가 떠난 방향을 빤히 보며 말했다.“괜찮다. 멀리 가지 못할 것이다.”낙현책은 살짝 놀랐다.이내 다들 그녀를 따라갔다.그들은 바닷가 암초에서 묵계를 따라잡았고 그녀는 이미 쓰러져 있었다.유생은 그녀가 중독된 것을 알아차렸다. 발목을 보니, 어느새 뱀에게 물려 있었다.유생이 고개를 돌려 초경을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초경이 한 일인 것 같았다.초경은 놀라지 않고 마음 아픈 표정으로 송천초를 안았다.“천초를 데리고 먼저 돌아갈 테니 너희들은 부 태사를 돕거라.”“예!”이내 초경은 시선 속에서 사라졌다.다들 부 태사를 도우러 갔다.부진환은 병사를 이끌고 동하국을 공격했다. 비록 동하국 사람은 적지 않았지만, 방어에 강한 성벽과 무기가 없었고 선박뿐이었다.여국 병사들이 끊임없이 섬에 오르고 있으니, 동하국이 멸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다.초경은 송천초를 안고 청주로 돌아와 묵계의 혼을 어떻게든 몰아내려고 했지만, 줄곧 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금색 진법이 나타나 묵계를 진법 안으로 가두었다. 귀를 뚫을 듯한 그 노랫소리는 진법 속에 가로막혔다.흰옷을 입은 제사장족 제자 수십 명이 하늘에서 나타났다.그들은 복숭아나무 위에 가볍게 서서 열 손가락으로 진법을 그렸고 손끝에는 금빛 부문이 흐르고 있었다.묵계는 깜짝 놀란 후 그제야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깜짝 놀라 송천초를 바라보았다.“너구나!”송천초가 차갑게 웃었다.“설마 내가 혼자 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묵계는 굳은 표정으로 분노에 찬 듯 말했다.“괘씸하구나! 너에게 속다니!”그때, 밖에서도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송천초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부 태사가 사람을 데리고 동하국을 공격했으니, 당신은 도망가지 못할 것입니다.”“차라리 순순히 잡히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그녀는 어젯밤 묵계를 만난 후 막사로 돌아가 바로 이 일을 부진환에게 알리고 대책을 논의했다.부진환은 그 여자가 동하국 약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초경도 분명 그 여자의 손에 있을 테니 그에 따른 계획을 세웠다.그녀가 혼자 묵계를 만나러 간 것도 다른 사람에게 길을 안내하기 위해서였다. 다들 기관선을 이용해 그녀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묵계가 뱀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송천초는 웅황을 가득 챙겨 몸을 지키려 했다.묵계는 진법 속에서 절망하여 초경을 바라보며 말했다.“너와 나도 동족이라 할 수 있다. 나한테 한 짓을 다시 너한테도 할 것이다! 사람은 절대 믿어선 안 된다!”“정말 저 사람들을 도우려는 것이냐?”“초경. 난 너를 죽이려 한 적 없다!”초경은 한숨을 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너의 처지가 안쓰럽지만, 우린 동족이 아니다.”“우린 다르니, 같다고 하지 말거라.”“너의 딱한 처지를 보아, 솔직히 말하마. 동하국은 곧 멸망할 것이니, 너도 원수를 갚은 셈이다. 마음 놓고 떠나거라.”그 말을 듣고 묵계는 넋을 잃고 그들을 싸늘하게 훑어보았다.“죽으려면 함께 죽겠다!”묵계는 하늘을 향해 소
“그는 감금되었다. 우리는 그를 구할 수 없다. 그를 구할 유일한 방법은 바로 너의 몸과 나의 힘을 합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기회가 있다.”그 말을 듣고 송천초는 눈살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뜻입니까?”묵계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나와 하나가 될 수 있느냐? 그를 구할 수도 있고 그와 같은 수명을 가질 수도 있다.”“두 사람은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다.”“하지만 대가로 아픔을 겪을 수도 있다.”“할 수 있느냐?”송천초는 미간을 찌푸리고 사색에 잠겨 대답하지 않았다.묵계가 말을 이었다.“이곳은 동하국이다. 그들이 설치한 함정에 나는 들어갈 수 없고 평범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네가 들어가도 그를 구할 수 있겠느냐?”“우리가 힘을 합치면 할 수 있다! 잠시 힘을 합쳐 그를 구하고 다시 방법을 생각해 떨어지는 것이 어떠냐?”묵계가 한참 말을 한 뒤에야 송천초는 그녀의 말을 허락했다.“좋습니다. 허락하겠습니다.”그 말을 듣고 묵계는 기쁠 따름이었다. 송천초가 이렇게 쉽게 넘어올 줄은 몰랐다.만약 이 몸을 빼앗는다면 초경에게 청신요를 쓰지 않아도 된다.“좋다. 바로 자리를 옮겨서 시작하자.”송천초는 고개를 끄덕이고 묵계를 따라 복숭아나무가 무성한 곳으로 갔다.사방을 둘러보니 온통 복숭아나무였고 다른 것은 없었다.송천초는 묵계의 말에 따라 다리를 꼬고 앉았다.묵계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그녀와 손바닥을 마주하고 있었다.“시작할 것이다. 조금 불편할 테니 참거라.”묵계는 말을 마치자마자 시작했다.송천초는 괴로워하며 눈살을 찌푸렸고 온몸의 기운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옆에 있던 복숭아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밀실에서 독을 없애려 애쓰고 있던 초경은 순간 송천초의 존재를 느꼈다.그는 번뜩 눈을 뜨고 송천초가 주위에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게다가 그녀는 지금 위험하다!초경은 마음이 초조했다. 그는 송천초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독을 없애기도 전에 다급히 밀실 문을 부수고 뛰쳐나갔다.묵계의 혼이
송천초는 깜짝 놀랐다.그 여자는 분명 온몸이 흠뻑 젖었지만, 송천초를 향해 걸어오는 도중 옷과 머리카락이 말랐다.송천초는 위험을 감지하고 바로 사람을 부르려 했다.그녀가 있던 곳에 마침 암초가 있어 그 여자의 모습을 막았다. 옆에 바로 청주군의 막사가 있었는데 이렇게 대담하게 이곳으로 오다니!송천초가 사람을 부르려는 그때, 여자가 입을 열고 그녀를 저지했다.“나는 적의가 없다. 그저 너를 찾으러 왔다.”“저요?”송천초는 의아한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송천초라 하느냐?”묵계는 그녀를 살펴보았다. 그녀가 본 기억 속의 그 여자와 똑같이 생겼다.“어떻게 아는 것입니까?”묵계가 웃으며 말했다.“나는 묵계라고 한다. 초경이 위험에 처해 있어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송천초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을 졸이며 저도 몰래 앞으로 한 걸음 걸어갔다.“무슨 일입니까?”“당신은 대체 무슨 사람입니까? 어찌 당신을 믿을 수 있습니까?”묵계 뒤에서 뱀 꼬리가 나타났다. 송천초는 깜짝 놀랐다.“나는 그와 동족이다. 그가 너를 찾아오라 한 것이다.”“만약 그를 구하고 싶다면 오늘 밤 홀로 이곳에 오거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너를 데리고 그를 만나러 가겠다.”그 말을 듣고 송천초가 물었다.“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동하국입니까?”“그곳 말고 더 있느냐?”“오직 너만이 그를 구할 수 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거라. 초경의 목숨을 구하고 싶다면 내가 시킨 대로 하거라.”말을 마치고 묵계는 경계하며 막사를 힐긋 보고 몸을 돌려 바다로 사라졌다.송천초가 추궁하기도 전에 묵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그녀가 무슨 사람인지 말한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알 수 없었다.하지만 종일 불안했던 것을 생각하면, 초경에게 정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갑자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병사가 상황을 보러 왔다.“방금 이쪽에서 인기척이 있길래 보러 왔습니다. 무슨 일 없는 것입니까?”송천초는 망설이다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게 들리는 그 노랫소리는 그의 의식을 흐릿하게 했다. 그는 애써 소리를 막으려고 했지만, 자꾸 귀를 파고들었다.초경은 한참 몸부림치다가 결국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와 머리를 움켜쥐고 고통스럽게 바닥에 쓰러졌다.묵계는 그 모습을 보고, 그제야 그에게 다가갔다.“너를 상대하기가 참 어렵구나. 하지만 나를 너무 얕본 것 같구나. 인어족의 청신요는 죽어가던 사람도 깨울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을 현혹해 행동을 조종할 수도 있다. 쉬이 사용하지 않던 방법인데 이렇게 너에게 쓰게 됐구나.”묵계는 가볍게 웃으며 천천히 웅크리고 앉아 손을 뻗어 초경의 얼굴을 스쳤다.“청신요로 너의 기억을 바꾸면 오늘부터 나의 명을 따르며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거부하지 말거라. 자칫 잘못하면 정신을 잃을 수도 있다.”묵계는 웃으며 말을 마치고 손을 초경의 머리 위에 얹은 후 청신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맑은 소리가 주문처럼 초경의 귓가에 맴돌면서 바늘처럼 그의 머리를 파고들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묵계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애먹였다.그녀는 의지력이 이렇게 강한 사람을 본 적 없었다.묵계는 싸늘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버티고 있는지 봐야겠구나!”그녀의 손끝이 초경의 미간에 가볍게 닿자, 그녀는 실패의 원인을 찾았다.그의 기억 속에는 온통 다른 여자뿐이다.그것도 평범한 여자였다.청신요의 통제를 받지 않고 기억을 지우지도 못할 정도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니.묵계는 내키지 않았다. 그 여자가 자신과 함께 있고 싶지 않은 원인이었다. 평범한 사람은 고작 수십 년의 수명만 갖고 있어 결국 늙어 죽기에 그들과는 다르다.감정이라는 것을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의 육체가 다치지 않았다면 청신요를 쓰는 것도 애먹을 리 없었을 것이다.보아하니 이 방법으로는 그를 통제할 수 없을 것이다.그럼...묵계의 눈에 빛이 반짝였다.묵계는 초경을 업고 돌아가 밀실에 가두었다.묵계는 그녀가 자리를 비웠을
묵계는 이 남자를 죽이기 아까웠다. 그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기나긴 수명을 갖고 있어 함께 수련할 수 있었다.이런 사람을 또 찾기 어려울 것이다.초경은 그 말을 듣고 조금 의아했다.“그럼, 너는 진정한 약사가 아니냐?”묵계가 콧방귀를 뀌었다.“물론이다. 그 여자는 이미 죽었다. 나의 몸을 망가트렸으니, 그녀가 바다로 들어간 기회를 틈타 그녀를 죽이고 몸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 뱀의 기운은 무슨 수를 써도 사라지지 않았다.”“그동안 약사의 신분으로 동하국에서 지내며 바다에서 보물을 발견하여 일반인과 다른 힘을 얻었다고 그들을 속이고 바다에 들어가 보물을 찾게 했다.”“이로써 그들의 내전을 일으켜 영원히 평화로이 지내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나의 한을 풀었다!”초경은 그제야 이유를 깨달았다.“여국 바다에 있는 진도 네가 깬 것 같구나.”초경은 부진환에게서 여국과 동하국의 전쟁에 관해 많은 얘기를 전해 들었다.다들 대진이 깨지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동하국 사람은 여국 땅으로 침입할 수 없다.하지만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눈앞에 있는 이 괴물은 할 수 있었다.역시나 묵계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물론 나다.”“내가 아니었다면 동하국 사람은 평생 여국 땅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초경이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복수를 하고 싶지만, 동하국 사람을 모두 죽이지 않았다. 살생을 저질러 화를 입고 싶지 않은 것이구나.”“그래서 대진을 파괴하고, 동하국 내전을 일으키고 그들을 선동하여 여국을 공격한 것이냐? 그들이 전쟁으로 죽게 만들려는 것이냐?”“아주 완벽한 계획이구나. 하지만 전쟁을 일으켰으니, 결국 운명의 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묵계가 만족스럽게 웃기 시작했다.“나의 계획을 알아차리다니 정말 똑똑하구나.”“그들이 싸우려는 마음이 없었다면 대진이 사라졌다 해도 여국을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나와 상관없다.”“내가 화를 입는다 해도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말을 마치고
그는 이내 약사를 찾으러 갔다.그러나 도림을 벗어나기도 전에 초경은 앞에 길이 없는 것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자리에 멈춰 서서 사방을 관찰하다 이곳이 미로라는 깨달았다. 그는 손바닥을 들었지만,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자세히 맡아보니, 바람 속에 복숭아 꽃향기와 옅은 약재의 향기가 섞여 있었다.독이 있다!뒤에서 여유로운 발소리와 묵계의 웃음 섞인 소리가 들려왔다.“왜 앞으로 가지 않습니까?”초경은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렸다. 지금의 묵계는 무서운 표정이 조금도 없었고 오히려 득의양양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초경은 가슴이 떨려왔고 미간을 세게 찌푸렸다.“네가 바로 약사냐?”묵계가 입꼬리를 올리며 가볍게 웃었다.“먼 곳에서 나를 찾아왔는데, 약사라는 이름만 알고 계십니까? 제 이름도 모르는 것입니까?”“다들 저를 자릉약사라 부릅니다.”“이곳에 온 순간부터 알아차렸습니다. 비록 신분을 모르지만, 홀로 이곳에 온다는 건 분명 만만치 않은 상대겠지요. 그래서 도림에 손을 조금 썼습니다.”“도림에 들어선 후부터 이미 중독되었습니다. 이곳에 오래 있을수록 독은 더욱 세질 것입니다.”“그리고 이 독은 사족을 겨냥한 독입니다.”묵계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초경을 바라보았다.초경은 슬쩍 내공을 써봤지만, 사지가 무기력했다. 무언가가 갑자기 그의 경맥을 막은 것처럼 내공이 안정을 잃고 통제하기 어려웠다.그는 손을 움켜쥐고 불편함을 참으며 내색하지 않았다.“사족? 나를 무서워하지 않은 것이냐? 넌 대체 누구냐?”초경은 의아했다. 분명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는 이상할 것 없이 평범한 사람 같았다.묵계가 가볍게 웃자, 뒤에 환영이 나타났고 그녀의 꼬리가 보였다.하지만 재빨리 사라져 버려서 초경은 뱀 꼬리인지 아닌지를 똑똑히 보지 못했다.“공자, 우린 같습니다. 저를 죽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주 사이좋게 지낼 수도 있습니다.”묵계는 흥미진진하게 초경을 훑어보았고 눈빛에는 탐욕의 빛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초경의 강한 수위를 탐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