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마친 침서는 즉시 약병을 꺼내 환약을 손바닥에 넣어 낙청연에게 먹였다.이러면 낙청연의 심맥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흔들리는 마차는 재빨리 침서의 관저에 도착했다.소리를 들은 난희는 정원으로 와 장군께서 왜 이리 급히 떠나셨는지 물으려 했다.그러자 침서가 다친 낙청연을 품에 안고 마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장군님… 이 여인은…” 난희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그러나 침서는 사정없이 난희를 밀치며 말했다.“막지 말거라!”난희는 휘청거리며 뒤로 몇 발짝 물러서고 넘어지지 않으려 애썼다.정신을 차려보니, 침서는 이미 그 여인을 안고 멀리 가버렸다.난희는 깜짝 놀랐다.장군은 왜 이렇게 긴장해 하는 것일까?그 여인은 대체 누구일까?난희는 바짝 긴장하며 내키지 않아 침서를 따라갔다.침서는 낙청연을 안고 자신의 방으로 데려와 침상에 눕힌 후 계집종을 불러 옷을 갈아입혔다.정원의 계집종들은 바삐 움직였다.낙청연은 이미 쓰러져 있었다.침서는 방에서 나가 어딘가로 향했다.계집종들도 낙청연의 옷을 갈아입히고는 물러섰다.난희는 구석에 서 있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불안하고 궁금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난희는 낯선 방을 구경하기 시작했다.왜냐하면 이 방은 처음이기 때문이다.이곳은 부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기에, 침서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들어올 수 없었다.심지어 난희도, 여기에 와본 적이 없었다.난희는 침대에 누운 여인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확실히 선녀처럼 아름다웠다.하지만 침서가 여인을 이곳으로 데려온 건 처음이었다.이 여인은, 대체 누구일까?난희가 침대에 누운 여인을 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순간, 뒤에서 매서운 그림자가 다가왔다.침서는 난희의 어깨를 꽉 잡고 팔을 휘두르며 밀쳐버렸다.난희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문에 부딪혀 계단에서 정원까지 굴러떨어졌다.난희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일으켜 세우고 방문 앞으로 다가오는 그림자를 보며 입가의 피를 닦았다.그러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침서를 바라보았다
낙청연은 침서를 보며 말했다.“이 약은 성질이 더운 약이라 지금의 저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침서가 말했다.“지금 네 몸으로는 극약을 쓸 수 없다. 이 처방은 네 외상을 치료할 수 있다.”낙청연은 미간을 잔뜩 구긴 채로 그를 보았다.“하지만 지금 제게 필요한 건 내상을 치료하는 약입니다.”“이 약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그러나 침서는 고집을 부렸다.“걱정하지 말거라. 내가 너에게 먹이는 약은 너에게 가장 적합한 약이다.”“넌 푹 쉬거라. 난 또 입궁해야 한다.”“고묘묘 일을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넌 안심하고 여기에 있거라. 아무도 널 다치게 하지 못할 거다.”말을 마친 뒤 침서는 떠났고 사람을 시켜 낙청연에게 약을 보냈다.낙청연은 침서의 거처에서 이틀 동안 누워있었고 매일 계집종이 제때 그녀의 약을 갈아주고 옷을 갈아입혀 주었다.그들이 가져온 약은 침서의 처방에 따라 만든 약이었다.낙청연은 자신에게 어떤 약이 필요한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침서의 처방은 성질이 더운 약이라 몸에 양분을 공급할 수는 있어도 그녀의 몸을 치료할 수는 없었다.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야 차차 나아질 수 있었고 낙청연은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낙청연이 몸을 일으켜 침상에서 내려오려고 하던 날, 그녀는 문밖에 누군가 서 있는 걸 보았다.무희 차림의 여인이었는데 예전 그녀의 모습과 조금 닮아있었다.아마 침서 곁의 사람인 듯했다.그 여인은 경계하듯, 또 질투하듯 낙청연을 바라보고 있었다.“왜 들어오지 않는 것이지?”난희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이 방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당신은 누굽니까?”“난 낙청연이라고 한다.”그 말에 난희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최근 도성 내에서 낙청연이 10대 악인을 굴복시켰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그런데 바로 그녀가 낙청연이라니?난희의 눈동자에 적의가 더 강해졌다.낙청연은 질투 어린 눈빛이 너무 익숙했다.그녀는 싱긋 웃으며
낙청연이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우유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저번에 나한테 이게 있냐고 물었었지. 이건 내게 남은 마지막 불전연이다.”“저번에 황후 때문에 네가 크게 다쳤었지. 너에게 이게 무척 필요할 것 같아 가져왔다.”낙청연은 그 말을 듣고 내심 놀랐다. 그녀는 우유가 이것을 자신에게 내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도성 전체를 뒤져도 찾을 수 없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고맙다.”낙청연은 감격했다. 그녀는 지금 이것이 무척이나 필요했다.“고마워할 필요 없다.”우유는 미소 지어 보였다.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입궁했고 제사 일족의 거처로 돌아갔다.불전연은 다른 약재와 함께 사용해야 했고 우유는 특별히 약방에 가서 많은 약재를 가져왔다.낙청연은 마당에서 불을 피우고 약을 달이기 시작했다.약을 마신 뒤 낙청연은 체내에 뜨거운 기운이 퍼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그것은 주로 내상을 치료하고 원기를 회복할 수 있었는데 내상이 나으면 외상도 자연스레 효과를 보게 된다.우유는 약을 마신 낙청연의 안색이 한결 편해진 걸 발견했다.“이 약이 효과가 있는 모양이구나.”“일단 푹 쉬어서 몸조리하거라. 난 먼저 돌아가겠다.”고개를 끄덕인 낙청연은 그녀를 배웅하지 않았다. 낙청연은 침대 옆 연탑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더니 천명 나침반을 꺼냈다.이번 수련을 통해 불전연의 약효가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게다가 그전에 구전속명단과 우유가 보내온 약을 먹었다.그러니 약의 효과를 극치로 끌어올리면 분명 몸이 나아질 것이다!-침서는 아직도 황후와 조건을 논하고 있었다.그러나 황후의 조건은 하나뿐이었다.“가서 묘묘를 보거라.”“침서, 묘묘가 널 좋아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널 봐주지 않았을 것이다.”“묘묘가 널 용서한다고 말한다면 더는 낙청연에게 손을 쓰지 않겠다.”황후의 말투에는 위협이 가득했다.침서는 느긋한 태도로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결국 동의했다.“알겠습니다. 약조하셨습니다.”“제가 공주를 설득하겠습니다.”말을 마
고묘묘는 불만스레 말했다.그녀는 공주였고 공주의 사랑은 존귀한 것이었다. 침서는 무릎을 꿇고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어야 하는데 거절하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그녀를 모욕했다.고묘묘는 분통이 터졌고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녀는 침서가 그럴수록 더더욱 침서를 가지고 싶었다.침서는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보다가 이내 눈동자에 혐오가 스쳐 지나갔다.결국 그는 고묘묘의 손에서 검을 빼앗더니 고묘묘의 머리를 잡아당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고묘묘는 순간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심장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침서의 입맞춤은 공격적이었고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기세가 사나웠다.고묘묘는 그의 입맞춤에 온몸에 힘이 빠져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다음 단계가 이어질 거라는 고묘묘의 예상과 달리 침서는 가차 없이 그녀를 확 밀치고는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떠났다.고묘묘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침서의 뒷모습을 넋 놓고 바라봤다.침서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하라는 건 다 했으니 이 일은 이제 끝이다.”“또 이것으로 날 위협한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침서는 방을 나선 뒤 역겨운 듯 입술을 닦았다. 속이 메슥거렸다.바닥에 주저앉은 고묘묘는 무릎을 끌어안더니 조금 전 그 감촉을 되돌이키며 뺨을 붉혔다.고묘묘는 무릎 위에 턱을 올려놓고 조금 전 기억을 떠올렸다. 입꼬리가 자꾸만 위로 올라갔다.조금 전 침서도 입맞춤에 푹 빠져 있었으니 그녀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그냥 아닌 척하는 것뿐일 것이다!고묘묘는 득의양양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침서, 당신은 평생 내 것이어야 해!”그곳을 떠난 침서는 곧바로 장군 저택으로 향한 뒤 부랴부랴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옆에서 시중을 들던 난희는 몇 번이나 그에게 낙청연이 저택에 없다는 사실을 말하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장군님... 사실...”난희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침서가 갑자기 그녀의 머리를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난희는 목욕통 안으로
사내들이 앞으로 나서서 우유를 제압했다.탁장동은 상자 하나를 열었고 그 안에서 검은 연기가 빠져나왔다.탁장동은 차갑게 말했다.“감히 낙청연의 일에 간섭하다니, 힘이 남아도는 모양이구나. 내가 널 덜 괴롭혔나 보네.”“오늘 이 취분산 악귀에게 실컷 시달려보거라.”부적 하나를 꺼낸 탁장동은 검은 연기를 조종해 그것이 허공에서 모양을 갖추게 한 뒤 우유를 공격하게 했다.사내들의 공격을 막고 있던 우유는 검은 연기에게 복부를 맞아 멀리 날아갔다.마치 그녀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 같은 심한 통증이 급습했다.검은 연기는 그녀의 몸을 뚫고 지나갔고 우유는 앓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세게 부딪혔다. 너무 아파서 온몸에 경련이 일었고 일어날 수도 없었다. 사내들은 우유의 팔을 잡고 강제로 그녀를 일으켰다.곧이어 검은 연기가 다시 한번 그녀의 복부를 향해 날아들었고 그녀의 몸을 꿰뚫고 지나갔다.오장육부의 가벼운 떨림과 극심한 통증에 우유는 온몸이 떨렸다. 입술도 파르르 떨리고 얼굴도 창백했다.우유는 반격할 능력이 전혀 없었다.그렇게 몇 번이나 반복하니 우유는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다.사내들이 놓아주자 우유는 곤죽이 되어 바닥에 쓰러졌다.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 얼굴에 달라붙었고 극심한 통증 때문에 온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예전이었다면 일어나서 약을 달일 수 있었겠지만 이번만큼은 일어날 힘조차 없었다.게다가 이젠 불전연도 없었다.마지막 남은 불전연을 낙청연에게 주었으니 말이다.-낙청연은 밤새 가부좌를 틀고 앉아 운기조식했다. 눈을 떴을 때 온몸에서 힘이 솟구치는 게 느껴졌다.비록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강한 무기력함이 들지는 않았다.그러나 안타깝게도 불전연은 하나뿐이라 6할 정도 회복할 수 있었다. 불전연이 더 있었다면 아마 7, 8할 정도 회복했을 텐데 말이다.하지만 낙청연에게 있어 이것도 어려운 일이었다.낙청연은 일어나 기지캐를 켠 뒤 밖에 나갈 볼 셈이었다.이번에는 우유 덕이 컸기에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전할 생
“그러니까...”“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대제사장이 탁장동을 중요시하니 나도 그냥 참을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조금 반항한 적도 있지만 시간이 길어지니 괜히 힘을 빼고 싶지 않았다.”우유는 평온하게 말했지만 낙청연은 마음이 무거웠다.“아주 오래전부터 이랬다는 것이냐? 몇 년이나 됐느냐?”설마 낙청연이 있을 때도 우유가 이런 짓을 당한 걸까?우유는 고개를 저었다.“몇 년 됐는지 기억나지 않는다.”“사부님이 계시지 않으니 내 편을 들어줄 사람도 없지.”“그래서 난 자주 불전연으로 상처를 치료했다. 하지만 요즘엔 불전연을 구하기가 어려워 내게 마지막 하나만 남아있었다.”그 말에 낙청연은 마음이 시큰했다.낙청연은 우유가 오랫동안 괴롭힘당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우유는 그 누구에게도 이러한 사실을 알린 적이 없었다. 약육강식인 이곳에서 누구에게 얘기하든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지금까지 어떻게 버틴 건지 알 수 없었다.“탁장동은 상처를 입었으면서 널 괴롭히려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냐? 이젠 살기 싫은가 보구나.”낙청연의 눈빛이 차가워졌다.그녀는 우유의 손을 잡고 말했다.“앞으로 내가 너의 편이 돼주마!”“기다리고 있거라!”말을 마친 뒤 낙청연은 몸을 일으켰고 우유는 당황했다. 낙청연의 말에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낙청연이 그녀의 편이 돼준다고?낙청연은 뭘 하려는 것일까?방을 나서자 낙청연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그녀는 우유가 마지막 불전연을 자신에게 건넨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우유는 낙청연이 그녀를 이 불구덩이에서 구할 수 있을지 도박을 한 것이다.그렇다면 우유에게 그녀의 선택이 맞다는 걸 증명해야 했다.불전연을 그냥 낭비하지 않았다는 걸 말이다.곧이어 낙청연은 탁장동의 거처로 향했다.탁장동은 심하게 다친 바람에 침상에 누워 몸조리하고 있었고 마당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녀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그들 모두 탁장동의 추종자들이었다.탁장동은 대제사장 곁의 사람이다 보니 대제
곧이어 탁장동이 방안에서 나왔다.낙청연의 눈동자에 살기가 스쳐 지나갔다.“겁쟁이는 아닌 모양이구나.”탁장동은 매서운 눈빛으로 낙청연을 쏘아보며 천천히 다가갔다.“낙청연, 적당히 하는 게 좋을 것이다!”탁장동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을 쭉 둘러본 뒤 호통을 쳤다.“다 놓아주거라!”낙청연이 그녀의 정원에서 싸움을 벌였다는 건 그녀의 체면이 깎이는 일이었다.비록 취성대에서 낙청연에게 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낙청연을 두려워하는 건 아니었다.낙청연은 사람들을 발로 걷어차면서 그들을 놓아줬고 사람들은 연이어 바닥에 쓰러졌다.그들은 황급히 바닥에서 일어나 재빨리 탁장동의 뒤로 숨었다.바로 그때, 낙청연은 음산하게 웃으며 탁장동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멱살을 잡았다.탁장동은 본능적으로 반항하려 했지만 상처를 입은 그녀는 낙청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탁장동은 곧바로 낙청연에게 당해 바닥에 쓰러졌다. 뺨을 세게 맞은 탁장동은 머리카락이 헝클어졌고 반격할 겨를도 없었다.뺨을 맞는 소리가 정원 전체를 울렸다.사내들은 깜짝 놀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탁장동은 버럭 화를 내며 일어났다.“감히 날 때린 것이냐?”낙청연은 탁장동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면서 그녀의 뺨을 두 번 때렸다.“난 고묘묘도 때린다. 그런데 너 따위를 무서워할 것 같으냐?”“때리면 뭐, 그렇게 잘났으면 너도 어디 한 번 날 때려보거라!”탁장동은 너무 화가 나서 두 눈이 벌게졌고 두 뺨은 따귀를 맞아 빨갛게 부어올랐다. 그녀는 낙청연을 쏘아보면서 반항하려 했지만 낙청연에게 머리카락을 잡힌 탓에 전혀 반격할 수 없었다.탁장동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낙청연! 내 손아귀에 들어오면 널 갈기갈기 찢어 죽일 것이다!”낙청연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너한테 그럴 능력이 있을지 모르겠구나!”낙청연은 탁장동의 머리를 바닥에 꾹 누르더니 발로 탁장동의 목을 밟았다.매섭고 흉약한 눈빛이 서 있는 사내들에게로 향했다.그들은 완전히 얼이
낙청연은 탁장동을 잡아서 끌어올렸다.“무릎 꿇고 사과하거라! 앞으로 다시는 괴롭히지 않을 거라고 맹세하거라!”사납게 내뱉은 말에 사람들은 전부 깜짝 놀랐다.탁장동이 그것을 내켜 할 리가 없었다. 그녀는 두 눈이 벌게진 채로 낙청연을 노려보았다.“천한 것!”짝-낙청연은 가차 없이 따귀를 때렸다.“난 네가 사과할 때까지 때릴 수 있다.”“지금은 따귀라서 버틸 만하겠지만 잠시 뒤에 내가 다른 방법을 쓴다면 네 무공이 전부 사라져 쓸모없는 인간이 될 수도 있다!”낙청연이 차가운 목소리로 위협했다.탁장동은 화가 나고 억울해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예쁘장하게 생긴 이목구비는 낙청연에게 맞아 거의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볼품없는 꼴이 됐다.“난 인내심이 없다. 얼른 사과하거라!”바로 그때, 많은 사람들이 소리를 듣고 정원 문밖에 몰려들어 수군댔다.“낙청연이라는 자는 참 간도 크지.”“탁장동이 또 낙청연을 건드린 건가?”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탁장동은 당장이라도 눈물을 떨굴 것 같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우유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해야 한다니!짜증이 난 낙청연이 손을 쓰려고 하는데 탁장동이 억지로 눈물을 참으며 우유를 향해 털썩 무릎을 꿇었다.우유는 의아했고 주위에서 놀란 소리가 들렸다.낙청연이 재촉했다.“얼른 사과하거라!”탁장동은 이를 악물었다.“미안하다!”“앞으로 다시는 널 괴롭히지 않겠다!”우유는 살짝 당황하며 저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녀는 탁장동이 자신을 향해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진심이 아니더라도 이런 광경을 본 것만으로도 화풀이하기엔 충분했다.탁장동처럼 자존심이 강한 사람에게 있어 이것은 가장 큰 치욕이었다.탁장동이 사과하자 낙청연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었다.그런데 갑자기 무언가 떠올라 곧바로 말을 이어갔다.“그리고 다시는 이곳에 발을 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하거라! 이곳에 다시 발을 들이면 개, 돼지만도 못하다고 맹세하거라!”말을 마친 뒤 낙청연은 서
묵계는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뱀독이 확산하여 썩어가는 송천초의 피부를 보니, 그녀는 못내 싫어졌다.시간이 흐르면 뱀독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 그러다 오장육부를 다치면 이 몸은 더 이상 소용이 없다.묵계는 갑자기 방법이 떠올랐다.“좋다. 진법을 거두거라. 나오겠다.”묵계도 조금 조급해졌다.“약속하거라. 너에게 다른 몸을 찾아줄 테니 절대 다른 짓 하지 말거라.”낙요가 말했다.“그래. 어서!”두 사람은 드디어 의견이 맞았다.낙요가 진법을 없애자, 묵계도 순순히 송천초의 몸에서 나왔다.낙요는 특별히 두 가닥의 혼이 모두 나왔는지 확인했다.낙요는 얼른 부적을 송천초의 몸에 붙였고 묵계는 다시 송천초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하지만 묵계는 낙요를 빤히 보고 있었다. 그녀는 낙요가 가까이 오자 바로 낙요의 미간을 파고들었다.그녀는 순식간에 낙요의 몸속으로 들어갔다.낙요는 심한 충격을 입은 듯 휘청이며 뒤로 물러서서 의자를 붙잡고 그제야 안정을 찾았다.그녀의 귓가에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하하하. 다른 몸을 찾을 필요 없다. 네 몸이 아주 마음에 드는구나.”“혼을 빼앗는 것에 난 도가 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너를 대신하여 여국의 여제가 될 것이다.”낙요는 안정을 찾고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지었다.“동하국에 너무 오래 있어, 바깥세상을 본 적 없는 모양이구나.”“아무나 너에게 혼과 몸을 빼앗기는 것은 아니다.”“제사장족의 대제사장들을 들어본 적 있느냐?”묵계는 낙요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제사장족? 동하국 사람한테서 들은 적 있다. 그때 나를 공격한 젊은이들도 제사장족 사람들이었다.”“그들이 쓰는 진법은 네 진법과 다를 것이 없다. 보아하니 너도 제사장족이구나.”“잘됐구나. 네가 강할수록 너의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이다.”묵계는 아직도 기뻐하고 있었다.낙요가 난감한 듯 웃었다.“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구나.”“너처럼 순진한 요괴는 처음 보
백서는 바로 방에서 물러나 방문을 닫았다.조영궁 밖이 조용해지자, 병풍 뒤에서 그림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초경이었다.그는 쓰러져 있는 송천초를 품에 안고 있었다.낙요는 안색을 굳히고 다급히 앞으로 걸어갔다.“어찌 된 일입니까?”초경은 송천초를 연탑에 눕히고 설명했다.“동하국에서 괴물을 만났습니다...”초경은 사건의 경과를 간단히 설명했고 묵계의 신분도 알려주었다.그의 말을 듣고 낙요의 표정이 굳어졌다.“그렇습니까?”“방법이 있습니까? 그 괴물은 천초의 몸을 차지하려는 것입니다. 독을 없애서 깨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천초가 위험할 것입니다!”초경은 몹시 조급했다.낙요가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급해하지 마십시오. 방법이 있습니다.”“천초 몸 안에 있는 묵계의 혼을 뽑는 것은 자신 있습니다.”“밖을 지키고 있으세요.”초경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놓였다.낙요는 여국에서 제일 강한 대제사장이었으니, 분명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천초는 괜찮을 것이다!“예. 밖에 있겠습니다.”초경은 바로 방에서 나가 정원을 지키고 있었다.낙요는 피로 진을 그려 송천초의 몸을 뒤덮었다.그리고 송천초 몸 안의 혼을 빼내기 시작했다.물론 묵계가 그녀의 몸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아, 과정이 쉽지 않았다.손을 세게 쓰면 송천초를 다치게 할 수도 있고 약하게 하면 묵계를 꺼낼 수 없었다.“넌 누구냐? 감히 나를 상대하려는 것이냐?”묵계의 낮고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여국과 오랫동안 싸웠는데, 여국의 여제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냐?”낙요는 가소롭다는 듯 답했다.그 말을 듣고 묵계는 깜짝 놀랐다.“여국 여제? 평범한 사람을 위해 이 진까지 쓰는 것이냐?”“이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난 너에게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 나와 손을 잡지 않겠느냐?”낙요가 가볍게 웃었다.“보아하니 넌 사람의 감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사랑도 모르고 우정도 모른다.”“네가 몸을 원한다면 더 좋은 몸을 찾아주겠다. 얌전히 송천
“대체 뭘 하려는 거냐!”초경이 매섭게 물었다.“나는 살고 싶다. 나를 풀어주면 안전한 곳에 가서 이 여자를 풀어주마.”그 말을 듣고 초경이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너를 풀어주면 천초를 놓아줄 것이라 믿지 않는다.”묵계가 담담하게 웃었다.“비록 웅황주가 나를 몰아냈지만, 이미 이 여인의 몸에 혼을 한 가닥 남겼다. 지금 두 가닥의 혼이 몸에 들어있으니, 7일 후 혼을 잃고 나의 몸이 될 것이다.”“이 몸은 이제 내 것이다.”“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얘기할 자격도 없다. 내 말대로 해야 이 여자는 살 기회가 있다!”“나를 놓아주거라!”묵계의 위협에 초경은 주먹을 꽉 쥐고 분노를 억눌렀다.“가거라.”“3일 후, 반드시 천초를 만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널 찾아 죽일 것이다.”묵계가 입꼬리를 올렸다.“좋다!”말을 마치고 묵계는 약사의 몸을 끌고 빠르게 그곳을 떠났다.낙현책이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걸어갔다.“정말 이렇게 풀어주는 것입니까? 천초 고모를 놓아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초경은 묵계가 떠난 방향을 빤히 보며 말했다.“괜찮다. 멀리 가지 못할 것이다.”낙현책은 살짝 놀랐다.이내 다들 그녀를 따라갔다.그들은 바닷가 암초에서 묵계를 따라잡았고 그녀는 이미 쓰러져 있었다.유생은 그녀가 중독된 것을 알아차렸다. 발목을 보니, 어느새 뱀에게 물려 있었다.유생이 고개를 돌려 초경을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초경이 한 일인 것 같았다.초경은 놀라지 않고 마음 아픈 표정으로 송천초를 안았다.“천초를 데리고 먼저 돌아갈 테니 너희들은 부 태사를 돕거라.”“예!”이내 초경은 시선 속에서 사라졌다.다들 부 태사를 도우러 갔다.부진환은 병사를 이끌고 동하국을 공격했다. 비록 동하국 사람은 적지 않았지만, 방어에 강한 성벽과 무기가 없었고 선박뿐이었다.여국 병사들이 끊임없이 섬에 오르고 있으니, 동하국이 멸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다.초경은 송천초를 안고 청주로 돌아와 묵계의 혼을 어떻게든 몰아내려고 했지만, 줄곧 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금색 진법이 나타나 묵계를 진법 안으로 가두었다. 귀를 뚫을 듯한 그 노랫소리는 진법 속에 가로막혔다.흰옷을 입은 제사장족 제자 수십 명이 하늘에서 나타났다.그들은 복숭아나무 위에 가볍게 서서 열 손가락으로 진법을 그렸고 손끝에는 금빛 부문이 흐르고 있었다.묵계는 깜짝 놀란 후 그제야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깜짝 놀라 송천초를 바라보았다.“너구나!”송천초가 차갑게 웃었다.“설마 내가 혼자 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묵계는 굳은 표정으로 분노에 찬 듯 말했다.“괘씸하구나! 너에게 속다니!”그때, 밖에서도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송천초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부 태사가 사람을 데리고 동하국을 공격했으니, 당신은 도망가지 못할 것입니다.”“차라리 순순히 잡히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그녀는 어젯밤 묵계를 만난 후 막사로 돌아가 바로 이 일을 부진환에게 알리고 대책을 논의했다.부진환은 그 여자가 동하국 약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초경도 분명 그 여자의 손에 있을 테니 그에 따른 계획을 세웠다.그녀가 혼자 묵계를 만나러 간 것도 다른 사람에게 길을 안내하기 위해서였다. 다들 기관선을 이용해 그녀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묵계가 뱀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송천초는 웅황을 가득 챙겨 몸을 지키려 했다.묵계는 진법 속에서 절망하여 초경을 바라보며 말했다.“너와 나도 동족이라 할 수 있다. 나한테 한 짓을 다시 너한테도 할 것이다! 사람은 절대 믿어선 안 된다!”“정말 저 사람들을 도우려는 것이냐?”“초경. 난 너를 죽이려 한 적 없다!”초경은 한숨을 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너의 처지가 안쓰럽지만, 우린 동족이 아니다.”“우린 다르니, 같다고 하지 말거라.”“너의 딱한 처지를 보아, 솔직히 말하마. 동하국은 곧 멸망할 것이니, 너도 원수를 갚은 셈이다. 마음 놓고 떠나거라.”그 말을 듣고 묵계는 넋을 잃고 그들을 싸늘하게 훑어보았다.“죽으려면 함께 죽겠다!”묵계는 하늘을 향해 소
“그는 감금되었다. 우리는 그를 구할 수 없다. 그를 구할 유일한 방법은 바로 너의 몸과 나의 힘을 합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기회가 있다.”그 말을 듣고 송천초는 눈살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뜻입니까?”묵계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나와 하나가 될 수 있느냐? 그를 구할 수도 있고 그와 같은 수명을 가질 수도 있다.”“두 사람은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다.”“하지만 대가로 아픔을 겪을 수도 있다.”“할 수 있느냐?”송천초는 미간을 찌푸리고 사색에 잠겨 대답하지 않았다.묵계가 말을 이었다.“이곳은 동하국이다. 그들이 설치한 함정에 나는 들어갈 수 없고 평범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네가 들어가도 그를 구할 수 있겠느냐?”“우리가 힘을 합치면 할 수 있다! 잠시 힘을 합쳐 그를 구하고 다시 방법을 생각해 떨어지는 것이 어떠냐?”묵계가 한참 말을 한 뒤에야 송천초는 그녀의 말을 허락했다.“좋습니다. 허락하겠습니다.”그 말을 듣고 묵계는 기쁠 따름이었다. 송천초가 이렇게 쉽게 넘어올 줄은 몰랐다.만약 이 몸을 빼앗는다면 초경에게 청신요를 쓰지 않아도 된다.“좋다. 바로 자리를 옮겨서 시작하자.”송천초는 고개를 끄덕이고 묵계를 따라 복숭아나무가 무성한 곳으로 갔다.사방을 둘러보니 온통 복숭아나무였고 다른 것은 없었다.송천초는 묵계의 말에 따라 다리를 꼬고 앉았다.묵계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그녀와 손바닥을 마주하고 있었다.“시작할 것이다. 조금 불편할 테니 참거라.”묵계는 말을 마치자마자 시작했다.송천초는 괴로워하며 눈살을 찌푸렸고 온몸의 기운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옆에 있던 복숭아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밀실에서 독을 없애려 애쓰고 있던 초경은 순간 송천초의 존재를 느꼈다.그는 번뜩 눈을 뜨고 송천초가 주위에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게다가 그녀는 지금 위험하다!초경은 마음이 초조했다. 그는 송천초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독을 없애기도 전에 다급히 밀실 문을 부수고 뛰쳐나갔다.묵계의 혼이
송천초는 깜짝 놀랐다.그 여자는 분명 온몸이 흠뻑 젖었지만, 송천초를 향해 걸어오는 도중 옷과 머리카락이 말랐다.송천초는 위험을 감지하고 바로 사람을 부르려 했다.그녀가 있던 곳에 마침 암초가 있어 그 여자의 모습을 막았다. 옆에 바로 청주군의 막사가 있었는데 이렇게 대담하게 이곳으로 오다니!송천초가 사람을 부르려는 그때, 여자가 입을 열고 그녀를 저지했다.“나는 적의가 없다. 그저 너를 찾으러 왔다.”“저요?”송천초는 의아한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송천초라 하느냐?”묵계는 그녀를 살펴보았다. 그녀가 본 기억 속의 그 여자와 똑같이 생겼다.“어떻게 아는 것입니까?”묵계가 웃으며 말했다.“나는 묵계라고 한다. 초경이 위험에 처해 있어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송천초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을 졸이며 저도 몰래 앞으로 한 걸음 걸어갔다.“무슨 일입니까?”“당신은 대체 무슨 사람입니까? 어찌 당신을 믿을 수 있습니까?”묵계 뒤에서 뱀 꼬리가 나타났다. 송천초는 깜짝 놀랐다.“나는 그와 동족이다. 그가 너를 찾아오라 한 것이다.”“만약 그를 구하고 싶다면 오늘 밤 홀로 이곳에 오거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너를 데리고 그를 만나러 가겠다.”그 말을 듣고 송천초가 물었다.“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동하국입니까?”“그곳 말고 더 있느냐?”“오직 너만이 그를 구할 수 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거라. 초경의 목숨을 구하고 싶다면 내가 시킨 대로 하거라.”말을 마치고 묵계는 경계하며 막사를 힐긋 보고 몸을 돌려 바다로 사라졌다.송천초가 추궁하기도 전에 묵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그녀가 무슨 사람인지 말한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알 수 없었다.하지만 종일 불안했던 것을 생각하면, 초경에게 정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갑자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병사가 상황을 보러 왔다.“방금 이쪽에서 인기척이 있길래 보러 왔습니다. 무슨 일 없는 것입니까?”송천초는 망설이다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게 들리는 그 노랫소리는 그의 의식을 흐릿하게 했다. 그는 애써 소리를 막으려고 했지만, 자꾸 귀를 파고들었다.초경은 한참 몸부림치다가 결국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와 머리를 움켜쥐고 고통스럽게 바닥에 쓰러졌다.묵계는 그 모습을 보고, 그제야 그에게 다가갔다.“너를 상대하기가 참 어렵구나. 하지만 나를 너무 얕본 것 같구나. 인어족의 청신요는 죽어가던 사람도 깨울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을 현혹해 행동을 조종할 수도 있다. 쉬이 사용하지 않던 방법인데 이렇게 너에게 쓰게 됐구나.”묵계는 가볍게 웃으며 천천히 웅크리고 앉아 손을 뻗어 초경의 얼굴을 스쳤다.“청신요로 너의 기억을 바꾸면 오늘부터 나의 명을 따르며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거부하지 말거라. 자칫 잘못하면 정신을 잃을 수도 있다.”묵계는 웃으며 말을 마치고 손을 초경의 머리 위에 얹은 후 청신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맑은 소리가 주문처럼 초경의 귓가에 맴돌면서 바늘처럼 그의 머리를 파고들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묵계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애먹였다.그녀는 의지력이 이렇게 강한 사람을 본 적 없었다.묵계는 싸늘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버티고 있는지 봐야겠구나!”그녀의 손끝이 초경의 미간에 가볍게 닿자, 그녀는 실패의 원인을 찾았다.그의 기억 속에는 온통 다른 여자뿐이다.그것도 평범한 여자였다.청신요의 통제를 받지 않고 기억을 지우지도 못할 정도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니.묵계는 내키지 않았다. 그 여자가 자신과 함께 있고 싶지 않은 원인이었다. 평범한 사람은 고작 수십 년의 수명만 갖고 있어 결국 늙어 죽기에 그들과는 다르다.감정이라는 것을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의 육체가 다치지 않았다면 청신요를 쓰는 것도 애먹을 리 없었을 것이다.보아하니 이 방법으로는 그를 통제할 수 없을 것이다.그럼...묵계의 눈에 빛이 반짝였다.묵계는 초경을 업고 돌아가 밀실에 가두었다.묵계는 그녀가 자리를 비웠을
묵계는 이 남자를 죽이기 아까웠다. 그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기나긴 수명을 갖고 있어 함께 수련할 수 있었다.이런 사람을 또 찾기 어려울 것이다.초경은 그 말을 듣고 조금 의아했다.“그럼, 너는 진정한 약사가 아니냐?”묵계가 콧방귀를 뀌었다.“물론이다. 그 여자는 이미 죽었다. 나의 몸을 망가트렸으니, 그녀가 바다로 들어간 기회를 틈타 그녀를 죽이고 몸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 뱀의 기운은 무슨 수를 써도 사라지지 않았다.”“그동안 약사의 신분으로 동하국에서 지내며 바다에서 보물을 발견하여 일반인과 다른 힘을 얻었다고 그들을 속이고 바다에 들어가 보물을 찾게 했다.”“이로써 그들의 내전을 일으켜 영원히 평화로이 지내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나의 한을 풀었다!”초경은 그제야 이유를 깨달았다.“여국 바다에 있는 진도 네가 깬 것 같구나.”초경은 부진환에게서 여국과 동하국의 전쟁에 관해 많은 얘기를 전해 들었다.다들 대진이 깨지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동하국 사람은 여국 땅으로 침입할 수 없다.하지만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눈앞에 있는 이 괴물은 할 수 있었다.역시나 묵계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물론 나다.”“내가 아니었다면 동하국 사람은 평생 여국 땅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초경이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복수를 하고 싶지만, 동하국 사람을 모두 죽이지 않았다. 살생을 저질러 화를 입고 싶지 않은 것이구나.”“그래서 대진을 파괴하고, 동하국 내전을 일으키고 그들을 선동하여 여국을 공격한 것이냐? 그들이 전쟁으로 죽게 만들려는 것이냐?”“아주 완벽한 계획이구나. 하지만 전쟁을 일으켰으니, 결국 운명의 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묵계가 만족스럽게 웃기 시작했다.“나의 계획을 알아차리다니 정말 똑똑하구나.”“그들이 싸우려는 마음이 없었다면 대진이 사라졌다 해도 여국을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나와 상관없다.”“내가 화를 입는다 해도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말을 마치고
그는 이내 약사를 찾으러 갔다.그러나 도림을 벗어나기도 전에 초경은 앞에 길이 없는 것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자리에 멈춰 서서 사방을 관찰하다 이곳이 미로라는 깨달았다. 그는 손바닥을 들었지만,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자세히 맡아보니, 바람 속에 복숭아 꽃향기와 옅은 약재의 향기가 섞여 있었다.독이 있다!뒤에서 여유로운 발소리와 묵계의 웃음 섞인 소리가 들려왔다.“왜 앞으로 가지 않습니까?”초경은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렸다. 지금의 묵계는 무서운 표정이 조금도 없었고 오히려 득의양양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초경은 가슴이 떨려왔고 미간을 세게 찌푸렸다.“네가 바로 약사냐?”묵계가 입꼬리를 올리며 가볍게 웃었다.“먼 곳에서 나를 찾아왔는데, 약사라는 이름만 알고 계십니까? 제 이름도 모르는 것입니까?”“다들 저를 자릉약사라 부릅니다.”“이곳에 온 순간부터 알아차렸습니다. 비록 신분을 모르지만, 홀로 이곳에 온다는 건 분명 만만치 않은 상대겠지요. 그래서 도림에 손을 조금 썼습니다.”“도림에 들어선 후부터 이미 중독되었습니다. 이곳에 오래 있을수록 독은 더욱 세질 것입니다.”“그리고 이 독은 사족을 겨냥한 독입니다.”묵계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초경을 바라보았다.초경은 슬쩍 내공을 써봤지만, 사지가 무기력했다. 무언가가 갑자기 그의 경맥을 막은 것처럼 내공이 안정을 잃고 통제하기 어려웠다.그는 손을 움켜쥐고 불편함을 참으며 내색하지 않았다.“사족? 나를 무서워하지 않은 것이냐? 넌 대체 누구냐?”초경은 의아했다. 분명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는 이상할 것 없이 평범한 사람 같았다.묵계가 가볍게 웃자, 뒤에 환영이 나타났고 그녀의 꼬리가 보였다.하지만 재빨리 사라져 버려서 초경은 뱀 꼬리인지 아닌지를 똑똑히 보지 못했다.“공자, 우린 같습니다. 저를 죽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주 사이좋게 지낼 수도 있습니다.”묵계는 흥미진진하게 초경을 훑어보았고 눈빛에는 탐욕의 빛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초경의 강한 수위를 탐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