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이어 탁장동이 방안에서 나왔다.낙청연의 눈동자에 살기가 스쳐 지나갔다.“겁쟁이는 아닌 모양이구나.”탁장동은 매서운 눈빛으로 낙청연을 쏘아보며 천천히 다가갔다.“낙청연, 적당히 하는 게 좋을 것이다!”탁장동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을 쭉 둘러본 뒤 호통을 쳤다.“다 놓아주거라!”낙청연이 그녀의 정원에서 싸움을 벌였다는 건 그녀의 체면이 깎이는 일이었다.비록 취성대에서 낙청연에게 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낙청연을 두려워하는 건 아니었다.낙청연은 사람들을 발로 걷어차면서 그들을 놓아줬고 사람들은 연이어 바닥에 쓰러졌다.그들은 황급히 바닥에서 일어나 재빨리 탁장동의 뒤로 숨었다.바로 그때, 낙청연은 음산하게 웃으며 탁장동에게 달려들어 그녀의 멱살을 잡았다.탁장동은 본능적으로 반항하려 했지만 상처를 입은 그녀는 낙청연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탁장동은 곧바로 낙청연에게 당해 바닥에 쓰러졌다. 뺨을 세게 맞은 탁장동은 머리카락이 헝클어졌고 반격할 겨를도 없었다.뺨을 맞는 소리가 정원 전체를 울렸다.사내들은 깜짝 놀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탁장동은 버럭 화를 내며 일어났다.“감히 날 때린 것이냐?”낙청연은 탁장동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면서 그녀의 뺨을 두 번 때렸다.“난 고묘묘도 때린다. 그런데 너 따위를 무서워할 것 같으냐?”“때리면 뭐, 그렇게 잘났으면 너도 어디 한 번 날 때려보거라!”탁장동은 너무 화가 나서 두 눈이 벌게졌고 두 뺨은 따귀를 맞아 빨갛게 부어올랐다. 그녀는 낙청연을 쏘아보면서 반항하려 했지만 낙청연에게 머리카락을 잡힌 탓에 전혀 반격할 수 없었다.탁장동은 너무 화가 난 나머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낙청연! 내 손아귀에 들어오면 널 갈기갈기 찢어 죽일 것이다!”낙청연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너한테 그럴 능력이 있을지 모르겠구나!”낙청연은 탁장동의 머리를 바닥에 꾹 누르더니 발로 탁장동의 목을 밟았다.매섭고 흉약한 눈빛이 서 있는 사내들에게로 향했다.그들은 완전히 얼이
낙청연은 탁장동을 잡아서 끌어올렸다.“무릎 꿇고 사과하거라! 앞으로 다시는 괴롭히지 않을 거라고 맹세하거라!”사납게 내뱉은 말에 사람들은 전부 깜짝 놀랐다.탁장동이 그것을 내켜 할 리가 없었다. 그녀는 두 눈이 벌게진 채로 낙청연을 노려보았다.“천한 것!”짝-낙청연은 가차 없이 따귀를 때렸다.“난 네가 사과할 때까지 때릴 수 있다.”“지금은 따귀라서 버틸 만하겠지만 잠시 뒤에 내가 다른 방법을 쓴다면 네 무공이 전부 사라져 쓸모없는 인간이 될 수도 있다!”낙청연이 차가운 목소리로 위협했다.탁장동은 화가 나고 억울해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예쁘장하게 생긴 이목구비는 낙청연에게 맞아 거의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볼품없는 꼴이 됐다.“난 인내심이 없다. 얼른 사과하거라!”바로 그때, 많은 사람들이 소리를 듣고 정원 문밖에 몰려들어 수군댔다.“낙청연이라는 자는 참 간도 크지.”“탁장동이 또 낙청연을 건드린 건가?”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탁장동은 당장이라도 눈물을 떨굴 것 같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우유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해야 한다니!짜증이 난 낙청연이 손을 쓰려고 하는데 탁장동이 억지로 눈물을 참으며 우유를 향해 털썩 무릎을 꿇었다.우유는 의아했고 주위에서 놀란 소리가 들렸다.낙청연이 재촉했다.“얼른 사과하거라!”탁장동은 이를 악물었다.“미안하다!”“앞으로 다시는 널 괴롭히지 않겠다!”우유는 살짝 당황하며 저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녀는 탁장동이 자신을 향해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진심이 아니더라도 이런 광경을 본 것만으로도 화풀이하기엔 충분했다.탁장동처럼 자존심이 강한 사람에게 있어 이것은 가장 큰 치욕이었다.탁장동이 사과하자 낙청연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었다.그런데 갑자기 무언가 떠올라 곧바로 말을 이어갔다.“그리고 다시는 이곳에 발을 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하거라! 이곳에 다시 발을 들이면 개, 돼지만도 못하다고 맹세하거라!”말을 마친 뒤 낙청연은 서
우유는 무척 의아했다. 그녀는 낙청연이 자신의 얕은 수작을 눈치챌 줄 몰랐다.심지어 낙청연은 그녀를 위해 탁장동에게 복수하러 갔고 탁장동을 한바탕 패줬다.이런 걸 보면 낙용의 예전 모습과 몹시 비슷해 무척 마음에 들었다.“약을 마시거라.”낙청연이 약을 건넸다. 약 냄새를 맡은 우유는 깜짝 놀랐다.“이 안에 불전연이 있는 것이냐?”“네가 마시는 것이 어떻겠느냐?”“네 상처에 도움이 될 것이다.”낙청연은 단호히 말했다.“너의 내상은 나와 비슷한 수준이니 얼른 마시거라.”우유는 어쩔 수 없이 약을 마셨다.낙청연은 옆에 앉아 차를 따르며 말했다.“앞으로 탁장동은 또 네게 시비를 걸 것이다. 앞으로 절대 자신을 숨기지 말거라.”“탁장동이 네 실력을 그렇게 질투하는데 봐줄 필요 없다!”“대제사장은 아부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력이 강한 사람을 중요시할 것이다.”낙청연이 아는 온심동은 그랬다.탁장동이 그녀의 심복이 되고 그녀의 곁에 있을 수 있는 건 탁장동이 제사 일족 중에서 실력이 비교적 강한 편이라 그런 것이지 절대 탁장동이 아부를 잘해서가 아닐 것이다.우유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사실 난... 우리 사부님은 승부욕이 강한 사람이 아니다.”“사부님은 사부님의 자유를 쫓아 떠났다.”“만약 내가 이곳을 떠날 수 있다면 아마 사부님이 갔던 길을 다시 갈 것이다.”“그래서 내게는 큰 야망이 없다. 그저 궁지로 몰려 어쩔 수 없이 대책을 생각해야 했을 뿐이다.”우유의 솔직한 대답에 낙청연은 살짝 놀랐다.우유가 여전히 사부님을 그리워하자 낙청연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네 사부라면 탁성이냐?”“난 그를 본 적이 있다.”그 말에 우유의 눈빛이 빛났다.“본 적이 있다고? 그게 정말이냐? 지금 어디에 계시느냐?”낙청연은 항상 품속에 지니고 있던 책자를 꺼내 우유에게 건넸다.“네 사부님은 자신만의 자유를 쫓지 못했다. 나쁜 일을 많이 해서 결국 옥에 갇혀 죽었다.”“이건 그가 남긴 마지막 물건이다. 속죄하고 싶으니 내게 이것을 죄연(罪淵)
우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황급히 눈물을 닦았다.“고맙다.”낙청연은 위로하듯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낙청연은 이 얘기가 나온 김에 우유에게 물었다.“사실 난 전대 대제사장이 궁금하다. 그자가 어떻게 죽은 건지 알고 있느냐?”우유는 살짝 놀랐다.그녀는 낙청연이 침서를 위해 그 일을 묻는 거로 생각했다.침서가 낙요에게도 그랬기 때문이다.우유가 설명했다.“아무도 그녀가 어쩌다 죽게 됐는지 알지 못한다.”“그날 그녀는 천기당(天棋堂)에서 수련하고 있었는데 이튿날 사람들에게 발견됐을 때는 바닥에 피뿐이었다.”“바닥에는 시체를 끌고 간듯한 흔적이 남아있었다.”“시체를 찾기 위해 많은 사람이 나섰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침서는 궁 전체를 뒤지려고 했었다. 미쳐버린 건지 하마터면 제사 일족을 전부 죽일 뻔했다.”“폐하가 금군을 데리고 친히 행차한 덕분에 겨우 침서를 막을 수 있었다.”“대제사장의 죽음에 대해 오랫동안 조사했지만 실마리는 전혀 없었다. 모든 실마리가 천기당에서 멈췄다.”“천기당 밖에는 그 어떤 흔적도 없었다.”“그렇게 그 일은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렸다.”우유의 목소리에 낙청연은 그날 밤을 떠올렸다.천기당은 대제사장이 매달 천명을 계산하는 곳이었다. 소모가 워낙 큰 일이었기에 천기당에서 밤새 수련해야 했다.그곳은 오직 대제사장만이 드나들 수 있었고 곳곳에 기관이 있는 데다가 아주 단단히 잠겨 있었다.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날 밤 낙청연은 정신이 혼미했고 누군가 들어오는 걸 보았다.그자는 밧줄로 낙청연의 목을 졸랐다.낙청연은 사력을 다했지만 결국 그자를 잡지 못했고 심지어 그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알지 못했다.그날 밤 기억은 너무 흐릿해졌고 낙청연은 그자의 모습을 더더욱 떠올릴 수 없었다.“그러면... 천기당은 아직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느냐?”우유는 고개를 저었다.“깨끗이 치운 지 오래다. 대제사장이 새로 생겨서인지 아무도 죽은 그녀를 신경 쓰지 않았다.”“천궐국의 역대 대제사장 중 좋
낙청연은 덤덤히 웃었다.“그 일이 그렇게 신경 쓰이십니까?”미간을 잔뜩 구긴 진익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당연하지! 대체 뭘 알고 있는 것이냐?”그날 옥에서 낙청연의 뒷말을 들을 뻔했는데 침서 때문에 듣지 못했다.진익은 돌아간 뒤에도 줄곧 그 일을 생각했다.예전 일은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었지만 이것은 그의 미래와 관련된 일이었기에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런데 낙청연이 웃었다.“그걸 믿은 것입니까?”“그날 전 그저 살아남기 위해 말을 지어냈습니다.”그 말에 진익은 몸을 움찔 떨었다.그는 놀라움과 분함이 느껴지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라고 했느냐?”낙청연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전 같은 말을 두 번 반복하고 싶지 않습니다.”진익은 너무 화가 나서 그녀를 때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는 낙청연을 이길 수가 없었다.결국 진익은 씩씩거리며 떠났다.진익이 떠나자 몰래 숨어서 엿듣던 사람도 부랴부랴 자리를 떴다.진익의 상태에 원인이 있긴 했지만 아직 이 일을 진익에게 알려줄 수는 없었다.아주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낙청연이 그 사실을 말한다면 지금보다 더 성가신 일이 생길 수 있었다.확실하지 않은 이상 절대 얘기할 수 없었다.옥에서 그 사실을 얘기한 건 상황이 워낙 급박했고 목숨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그래서 마지막 순간에 그 얘기를 꺼낸 것이었다.-화려한 침궁 안, 황후는 여유롭게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궁인이 헐레벌떡 달려와 낙청연이 당시 했던 말을 똑같이 반복했다.황후는 그 말을 듣고 살짝 의아해했다.“정말 그런 얘기를 했단 말이냐?”황후는 차갑게 웃었다.“난 정말 뭔가를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그러면 첫째 황자 쪽은 어떡합니까?”황후는 덤덤히 대꾸했다.“그냥 놔두거라.”“알겠습니다.”진익은 정신을 반쯤 놓고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다. 그는 낙청연의 말을 줄곧 마음에 두고 기대하고 있었다.이 모든 것이 외부 물질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늘 결과를 알게 되니
“가지. 내가 상황을 알려주겠소.”말을 마친 뒤 그는 부진환을 데리고 떠났다.그런데 가는 길에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고묘묘와 만났다.진익이 그녀에게 다가가 걱정스레 물었다.“묘묘야, 상처는 나았느냐?”고묘묘는 덤덤히 말했다.“이 정도 상처로는 죽지 않습니다. 게다가 부황과 모후께서 많은 약을 주셔서 상처가 더는 아프지 않습니다.”진익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상처가 그리 빨리 나을 수 있는 건 오랫동안 용삼탕을 복용한 덕분이다. 앞으로 꼭 제때 먹어야 한다. 그래야 몸이 더 강해진다!”“알겠습니다.”그 말에 부진환의 눈이 빛났다.용삼탕?목 태의가 그에게 준 용상탐과 같은 것일까?그것은 목 태의마저도 겨우 하나 있는 것이었다.그런데 여국 공주는 매일 마신다니?부진환은 그것이 같은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만약 같은 것이라면 그에게 몇 개월, 심지어 몇 년을 더 살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부진환의 마음속에 불길이 타올랐다.진익은 이미 떠났는데 부진환은 아직도 그것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진익은 고개를 돌린 뒤 살짝 놀라며 외쳤다.“뭘 넋 놓고 있는 것이냐?”부진환은 정신을 차리고 곧바로 그를 따라갔다.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그의 앞에 나타나 그의 앞길을 막았다.고묘묘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부진환을 훑어보더니 손을 들어 그의 가면을 벗기려 했다.“누구길래 감히 궁에서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지?”부진환은 본능적으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고묘묘의 손이 허공에 멈췄고 눈빛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그녀는 부진환을 훑어보며 냉소를 터뜨렸다.“감히 피해?”부진환은 고개를 숙인 채로 목소리를 낮추며 대답했다.“얼굴에 화상이 있어 혹시나 공주마마를 겁에 질리게 할까 걱정됩니다.”그 말에 고묘묘는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겁을 먹는다고? 내가 그런 것에 겁을 먹으면 고묘묘가 아니지!”“가면을 벗거라!”고묘묘가 강한 어조로 명령을 내렸다.부진환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꼼짝하지도 않았다.바로 그때, 진익이 다가왔
그 말에 부진환의 안색이 달라졌다.“저는 황자님 곁을 지키는 호위입니다. 송구하지만 명령에 따를 수 없습니다.”공주는 침서를 좋아했기에 그녀와 같이 다닌다면 침서와 마주칠 수도 있었다.게다가 고묘묘는 그를 도와 침서를 죽일 수가 없었다.다시 한번 거절당하자 고묘묘의 안색이 흐려졌다.어쩔 수 없이 진익이 나섰다.“묘묘야, 네 주변에는 널 지키는 사람이 충분히 많다.”“내 주위에는 이자 한 명뿐이니 내게서 빼앗지 말거라.”진익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고 어조 또한 가련하게 느껴졌다.고묘묘는 그의 모습에 더는 빼앗을 수 없어 불쾌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알겠습니다.”“갖고 싶지 않을 때 제게 주시지요.”“전 저자가 꽤 마음에 듭니다.”고묘묘는 미소 띤 얼굴로 부진환을 훑어보았다.보면 볼수록 침서와 닮은 듯했다.얼굴보다는 차갑고 오만한 분위기와 목소리 한 번 떨지 않고 그녀를 거절하는 담대함이 닮았다.당장은 침서를 굴복시킬 수 없으니 이 호위와 논다면 재밌을 것 같았다.“그래. 필요 없어지면 꼭 너한테 주마.”말을 마친 뒤 진익은 곧바로 부진환을 데리고 떠났다.혹시나 고묘묘가 말을 바꿀까 봐 고개 한 번 돌릴 수 없었다.고묘묘는 부진환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고묘묘는 정신을 차렸다.멀리 걸어가 사람이 없을 때야 부진환이 입을 열었다.“당신을 별로 존중하지 않는 것 같군. 친남매가 맞소?”진익은 안색이 살짝 달라졌지만 불만을 억누르며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소.”“어릴 때부터 성격이 저랬지.”그 말에 부진환은 다소 의아했다.“저자가 당신을 노비처럼 생각하는데 어떻게 참은 것이오?”진익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괜한 생각을 하는군. 묘묘는 그저 여동생으로서 오라버니와 장난을 친 것뿐이오. 부하 앞이라 거리낌 없이 말했을 뿐이지.”“게다가 묘묘는 내 유일한 여동생이라 걔의 말이라면 뭐든 다 들어줬소.”“하지만 걱정하지 마시오. 당신은 나랑 거래를 한 사이니 당신을 묘
뺨을 맞은 난희는 바닥에 쓰러지며 입가에 피를 흘렸다.“장군님!”난희는 경악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그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다.침서가 난폭하게 난희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그녀를 바닥에서 일으켜 세웠고 엄청난 힘을 주며 그녀의 뺨을 부여잡았다.그는 호된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냐?”“누가 너한테 낙청연에게 약을 주고 그녀를 놔주라고 한 것이냐?”난희는 어찌할 바 몰라 하며 억울하게 눈물을 흘렸다.“장군님, 전 장군님이 무슨 얘기를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전 일부러 그녀를 놔준 적이 없습니다. 그녀가 직접 나간 겁니다.”“전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침서는 여전히 화가 나 보였다.“내가 네 그 얕은 수작을 모를 줄 알았느냐?”“경고하는데 다시 한번 그딴 수작을 부린다면 쫓아낼 것이다!”말을 마친 뒤 침서는 그녀를 놓아줬다.목숨을 살려준 것이다.사실 그는 난희를 죽일 생각이었지만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모습에 낙요가 떠올라 결국 그녀를 용서했다.난희는 무기력하게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녀는 씩씩거리면서 떠나는 침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억울한 듯 흐느꼈다.그녀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알지 못했다.그리고 자신을 대하는 장군의 태도가 왜 이렇게 갑자기 바뀐 건지 알 수 없었다.분명 예전에는 그녀를 가장 아꼈고, 그녀를 위해 공주와 싸우면서 아무도 그녀를 괴롭히지 못하게 했는데 말이다.그러나 지금 장군은 그녀를 혐오하는 듯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침서는 노예영으로 향했다.곧이어 노예영 안에서 처절한 비명이 연이어 울려 퍼졌고 노예영의 수비군들은 겁을 먹어 감히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미친 염라대왕이 왔으니 오늘 노예영에 몸이 성하지 않은 시체들이 즐비해질 것이다.-해가 질 무렵,노을빛이 궁에 드리워지자 붉은 벽과 녹색 기와가 금빛으로 뒤덮여 더욱 으리으리해졌다.노을 아래 제사 일족의 마당과 방, 조각상, 지붕 위 두루미 석상까지 모두 옅은 광택이 돌았다.마치 선인이
묵계는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하지만 뱀독이 확산하여 썩어가는 송천초의 피부를 보니, 그녀는 못내 싫어졌다.시간이 흐르면 뱀독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 그러다 오장육부를 다치면 이 몸은 더 이상 소용이 없다.묵계는 갑자기 방법이 떠올랐다.“좋다. 진법을 거두거라. 나오겠다.”묵계도 조금 조급해졌다.“약속하거라. 너에게 다른 몸을 찾아줄 테니 절대 다른 짓 하지 말거라.”낙요가 말했다.“그래. 어서!”두 사람은 드디어 의견이 맞았다.낙요가 진법을 없애자, 묵계도 순순히 송천초의 몸에서 나왔다.낙요는 특별히 두 가닥의 혼이 모두 나왔는지 확인했다.낙요는 얼른 부적을 송천초의 몸에 붙였고 묵계는 다시 송천초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하지만 묵계는 낙요를 빤히 보고 있었다. 그녀는 낙요가 가까이 오자 바로 낙요의 미간을 파고들었다.그녀는 순식간에 낙요의 몸속으로 들어갔다.낙요는 심한 충격을 입은 듯 휘청이며 뒤로 물러서서 의자를 붙잡고 그제야 안정을 찾았다.그녀의 귓가에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하하하. 다른 몸을 찾을 필요 없다. 네 몸이 아주 마음에 드는구나.”“혼을 빼앗는 것에 난 도가 텄다. 얼마 지나지 않아 너를 대신하여 여국의 여제가 될 것이다.”낙요는 안정을 찾고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지었다.“동하국에 너무 오래 있어, 바깥세상을 본 적 없는 모양이구나.”“아무나 너에게 혼과 몸을 빼앗기는 것은 아니다.”“제사장족의 대제사장들을 들어본 적 있느냐?”묵계는 낙요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제사장족? 동하국 사람한테서 들은 적 있다. 그때 나를 공격한 젊은이들도 제사장족 사람들이었다.”“그들이 쓰는 진법은 네 진법과 다를 것이 없다. 보아하니 너도 제사장족이구나.”“잘됐구나. 네가 강할수록 너의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이다.”묵계는 아직도 기뻐하고 있었다.낙요가 난감한 듯 웃었다.“너무 많은 생각을 하는구나.”“너처럼 순진한 요괴는 처음 보
백서는 바로 방에서 물러나 방문을 닫았다.조영궁 밖이 조용해지자, 병풍 뒤에서 그림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초경이었다.그는 쓰러져 있는 송천초를 품에 안고 있었다.낙요는 안색을 굳히고 다급히 앞으로 걸어갔다.“어찌 된 일입니까?”초경은 송천초를 연탑에 눕히고 설명했다.“동하국에서 괴물을 만났습니다...”초경은 사건의 경과를 간단히 설명했고 묵계의 신분도 알려주었다.그의 말을 듣고 낙요의 표정이 굳어졌다.“그렇습니까?”“방법이 있습니까? 그 괴물은 천초의 몸을 차지하려는 것입니다. 독을 없애서 깨어나게 할 수 없습니다. 천초가 위험할 것입니다!”초경은 몹시 조급했다.낙요가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급해하지 마십시오. 방법이 있습니다.”“천초 몸 안에 있는 묵계의 혼을 뽑는 것은 자신 있습니다.”“밖을 지키고 있으세요.”초경은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놓였다.낙요는 여국에서 제일 강한 대제사장이었으니, 분명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천초는 괜찮을 것이다!“예. 밖에 있겠습니다.”초경은 바로 방에서 나가 정원을 지키고 있었다.낙요는 피로 진을 그려 송천초의 몸을 뒤덮었다.그리고 송천초 몸 안의 혼을 빼내기 시작했다.물론 묵계가 그녀의 몸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아, 과정이 쉽지 않았다.손을 세게 쓰면 송천초를 다치게 할 수도 있고 약하게 하면 묵계를 꺼낼 수 없었다.“넌 누구냐? 감히 나를 상대하려는 것이냐?”묵계의 낮고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여국과 오랫동안 싸웠는데, 여국의 여제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냐?”낙요는 가소롭다는 듯 답했다.그 말을 듣고 묵계는 깜짝 놀랐다.“여국 여제? 평범한 사람을 위해 이 진까지 쓰는 것이냐?”“이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 난 너에게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 나와 손을 잡지 않겠느냐?”낙요가 가볍게 웃었다.“보아하니 넌 사람의 감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사랑도 모르고 우정도 모른다.”“네가 몸을 원한다면 더 좋은 몸을 찾아주겠다. 얌전히 송천
“대체 뭘 하려는 거냐!”초경이 매섭게 물었다.“나는 살고 싶다. 나를 풀어주면 안전한 곳에 가서 이 여자를 풀어주마.”그 말을 듣고 초경이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너를 풀어주면 천초를 놓아줄 것이라 믿지 않는다.”묵계가 담담하게 웃었다.“비록 웅황주가 나를 몰아냈지만, 이미 이 여인의 몸에 혼을 한 가닥 남겼다. 지금 두 가닥의 혼이 몸에 들어있으니, 7일 후 혼을 잃고 나의 몸이 될 것이다.”“이 몸은 이제 내 것이다.”“더 이상 시간 낭비하지 말고 얘기할 자격도 없다. 내 말대로 해야 이 여자는 살 기회가 있다!”“나를 놓아주거라!”묵계의 위협에 초경은 주먹을 꽉 쥐고 분노를 억눌렀다.“가거라.”“3일 후, 반드시 천초를 만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널 찾아 죽일 것이다.”묵계가 입꼬리를 올렸다.“좋다!”말을 마치고 묵계는 약사의 몸을 끌고 빠르게 그곳을 떠났다.낙현책이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걸어갔다.“정말 이렇게 풀어주는 것입니까? 천초 고모를 놓아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초경은 묵계가 떠난 방향을 빤히 보며 말했다.“괜찮다. 멀리 가지 못할 것이다.”낙현책은 살짝 놀랐다.이내 다들 그녀를 따라갔다.그들은 바닷가 암초에서 묵계를 따라잡았고 그녀는 이미 쓰러져 있었다.유생은 그녀가 중독된 것을 알아차렸다. 발목을 보니, 어느새 뱀에게 물려 있었다.유생이 고개를 돌려 초경을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초경이 한 일인 것 같았다.초경은 놀라지 않고 마음 아픈 표정으로 송천초를 안았다.“천초를 데리고 먼저 돌아갈 테니 너희들은 부 태사를 돕거라.”“예!”이내 초경은 시선 속에서 사라졌다.다들 부 태사를 도우러 갔다.부진환은 병사를 이끌고 동하국을 공격했다. 비록 동하국 사람은 적지 않았지만, 방어에 강한 성벽과 무기가 없었고 선박뿐이었다.여국 병사들이 끊임없이 섬에 오르고 있으니, 동하국이 멸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다.초경은 송천초를 안고 청주로 돌아와 묵계의 혼을 어떻게든 몰아내려고 했지만, 줄곧 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금색 진법이 나타나 묵계를 진법 안으로 가두었다. 귀를 뚫을 듯한 그 노랫소리는 진법 속에 가로막혔다.흰옷을 입은 제사장족 제자 수십 명이 하늘에서 나타났다.그들은 복숭아나무 위에 가볍게 서서 열 손가락으로 진법을 그렸고 손끝에는 금빛 부문이 흐르고 있었다.묵계는 깜짝 놀란 후 그제야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깜짝 놀라 송천초를 바라보았다.“너구나!”송천초가 차갑게 웃었다.“설마 내가 혼자 왔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묵계는 굳은 표정으로 분노에 찬 듯 말했다.“괘씸하구나! 너에게 속다니!”그때, 밖에서도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송천초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부 태사가 사람을 데리고 동하국을 공격했으니, 당신은 도망가지 못할 것입니다.”“차라리 순순히 잡히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그녀는 어젯밤 묵계를 만난 후 막사로 돌아가 바로 이 일을 부진환에게 알리고 대책을 논의했다.부진환은 그 여자가 동하국 약사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초경도 분명 그 여자의 손에 있을 테니 그에 따른 계획을 세웠다.그녀가 혼자 묵계를 만나러 간 것도 다른 사람에게 길을 안내하기 위해서였다. 다들 기관선을 이용해 그녀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묵계가 뱀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송천초는 웅황을 가득 챙겨 몸을 지키려 했다.묵계는 진법 속에서 절망하여 초경을 바라보며 말했다.“너와 나도 동족이라 할 수 있다. 나한테 한 짓을 다시 너한테도 할 것이다! 사람은 절대 믿어선 안 된다!”“정말 저 사람들을 도우려는 것이냐?”“초경. 난 너를 죽이려 한 적 없다!”초경은 한숨을 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너의 처지가 안쓰럽지만, 우린 동족이 아니다.”“우린 다르니, 같다고 하지 말거라.”“너의 딱한 처지를 보아, 솔직히 말하마. 동하국은 곧 멸망할 것이니, 너도 원수를 갚은 셈이다. 마음 놓고 떠나거라.”그 말을 듣고 묵계는 넋을 잃고 그들을 싸늘하게 훑어보았다.“죽으려면 함께 죽겠다!”묵계는 하늘을 향해 소
“그는 감금되었다. 우리는 그를 구할 수 없다. 그를 구할 유일한 방법은 바로 너의 몸과 나의 힘을 합치는 것이다. 그래야 우리는 기회가 있다.”그 말을 듣고 송천초는 눈살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뜻입니까?”묵계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나와 하나가 될 수 있느냐? 그를 구할 수도 있고 그와 같은 수명을 가질 수도 있다.”“두 사람은 영원히 함께 있을 수 있다.”“하지만 대가로 아픔을 겪을 수도 있다.”“할 수 있느냐?”송천초는 미간을 찌푸리고 사색에 잠겨 대답하지 않았다.묵계가 말을 이었다.“이곳은 동하국이다. 그들이 설치한 함정에 나는 들어갈 수 없고 평범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네가 들어가도 그를 구할 수 있겠느냐?”“우리가 힘을 합치면 할 수 있다! 잠시 힘을 합쳐 그를 구하고 다시 방법을 생각해 떨어지는 것이 어떠냐?”묵계가 한참 말을 한 뒤에야 송천초는 그녀의 말을 허락했다.“좋습니다. 허락하겠습니다.”그 말을 듣고 묵계는 기쁠 따름이었다. 송천초가 이렇게 쉽게 넘어올 줄은 몰랐다.만약 이 몸을 빼앗는다면 초경에게 청신요를 쓰지 않아도 된다.“좋다. 바로 자리를 옮겨서 시작하자.”송천초는 고개를 끄덕이고 묵계를 따라 복숭아나무가 무성한 곳으로 갔다.사방을 둘러보니 온통 복숭아나무였고 다른 것은 없었다.송천초는 묵계의 말에 따라 다리를 꼬고 앉았다.묵계는 그녀의 맞은편에 앉아 그녀와 손바닥을 마주하고 있었다.“시작할 것이다. 조금 불편할 테니 참거라.”묵계는 말을 마치자마자 시작했다.송천초는 괴로워하며 눈살을 찌푸렸고 온몸의 기운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옆에 있던 복숭아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밀실에서 독을 없애려 애쓰고 있던 초경은 순간 송천초의 존재를 느꼈다.그는 번뜩 눈을 뜨고 송천초가 주위에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게다가 그녀는 지금 위험하다!초경은 마음이 초조했다. 그는 송천초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독을 없애기도 전에 다급히 밀실 문을 부수고 뛰쳐나갔다.묵계의 혼이
송천초는 깜짝 놀랐다.그 여자는 분명 온몸이 흠뻑 젖었지만, 송천초를 향해 걸어오는 도중 옷과 머리카락이 말랐다.송천초는 위험을 감지하고 바로 사람을 부르려 했다.그녀가 있던 곳에 마침 암초가 있어 그 여자의 모습을 막았다. 옆에 바로 청주군의 막사가 있었는데 이렇게 대담하게 이곳으로 오다니!송천초가 사람을 부르려는 그때, 여자가 입을 열고 그녀를 저지했다.“나는 적의가 없다. 그저 너를 찾으러 왔다.”“저요?”송천초는 의아한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송천초라 하느냐?”묵계는 그녀를 살펴보았다. 그녀가 본 기억 속의 그 여자와 똑같이 생겼다.“어떻게 아는 것입니까?”묵계가 웃으며 말했다.“나는 묵계라고 한다. 초경이 위험에 처해 있어 너의 도움이 필요하다.”송천초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을 졸이며 저도 몰래 앞으로 한 걸음 걸어갔다.“무슨 일입니까?”“당신은 대체 무슨 사람입니까? 어찌 당신을 믿을 수 있습니까?”묵계 뒤에서 뱀 꼬리가 나타났다. 송천초는 깜짝 놀랐다.“나는 그와 동족이다. 그가 너를 찾아오라 한 것이다.”“만약 그를 구하고 싶다면 오늘 밤 홀로 이곳에 오거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너를 데리고 그를 만나러 가겠다.”그 말을 듣고 송천초가 물었다.“어디로 가는 것입니까? 동하국입니까?”“그곳 말고 더 있느냐?”“오직 너만이 그를 구할 수 있다.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거라. 초경의 목숨을 구하고 싶다면 내가 시킨 대로 하거라.”말을 마치고 묵계는 경계하며 막사를 힐긋 보고 몸을 돌려 바다로 사라졌다.송천초가 추궁하기도 전에 묵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그녀가 무슨 사람인지 말한 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알 수 없었다.하지만 종일 불안했던 것을 생각하면, 초경에게 정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다.갑자기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병사가 상황을 보러 왔다.“방금 이쪽에서 인기척이 있길래 보러 왔습니다. 무슨 일 없는 것입니까?”송천초는 망설이다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게 들리는 그 노랫소리는 그의 의식을 흐릿하게 했다. 그는 애써 소리를 막으려고 했지만, 자꾸 귀를 파고들었다.초경은 한참 몸부림치다가 결국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와 머리를 움켜쥐고 고통스럽게 바닥에 쓰러졌다.묵계는 그 모습을 보고, 그제야 그에게 다가갔다.“너를 상대하기가 참 어렵구나. 하지만 나를 너무 얕본 것 같구나. 인어족의 청신요는 죽어가던 사람도 깨울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을 현혹해 행동을 조종할 수도 있다. 쉬이 사용하지 않던 방법인데 이렇게 너에게 쓰게 됐구나.”묵계는 가볍게 웃으며 천천히 웅크리고 앉아 손을 뻗어 초경의 얼굴을 스쳤다.“청신요로 너의 기억을 바꾸면 오늘부터 나의 명을 따르며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거부하지 말거라. 자칫 잘못하면 정신을 잃을 수도 있다.”묵계는 웃으며 말을 마치고 손을 초경의 머리 위에 얹은 후 청신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맑은 소리가 주문처럼 초경의 귓가에 맴돌면서 바늘처럼 그의 머리를 파고들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묵계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이마에 식은땀을 흘리며 애먹였다.그녀는 의지력이 이렇게 강한 사람을 본 적 없었다.묵계는 싸늘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버티고 있는지 봐야겠구나!”그녀의 손끝이 초경의 미간에 가볍게 닿자, 그녀는 실패의 원인을 찾았다.그의 기억 속에는 온통 다른 여자뿐이다.그것도 평범한 여자였다.청신요의 통제를 받지 않고 기억을 지우지도 못할 정도로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니.묵계는 내키지 않았다. 그 여자가 자신과 함께 있고 싶지 않은 원인이었다. 평범한 사람은 고작 수십 년의 수명만 갖고 있어 결국 늙어 죽기에 그들과는 다르다.감정이라는 것을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의 육체가 다치지 않았다면 청신요를 쓰는 것도 애먹을 리 없었을 것이다.보아하니 이 방법으로는 그를 통제할 수 없을 것이다.그럼...묵계의 눈에 빛이 반짝였다.묵계는 초경을 업고 돌아가 밀실에 가두었다.묵계는 그녀가 자리를 비웠을
묵계는 이 남자를 죽이기 아까웠다. 그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기나긴 수명을 갖고 있어 함께 수련할 수 있었다.이런 사람을 또 찾기 어려울 것이다.초경은 그 말을 듣고 조금 의아했다.“그럼, 너는 진정한 약사가 아니냐?”묵계가 콧방귀를 뀌었다.“물론이다. 그 여자는 이미 죽었다. 나의 몸을 망가트렸으니, 그녀가 바다로 들어간 기회를 틈타 그녀를 죽이고 몸을 차지했다. 하지만 이 뱀의 기운은 무슨 수를 써도 사라지지 않았다.”“그동안 약사의 신분으로 동하국에서 지내며 바다에서 보물을 발견하여 일반인과 다른 힘을 얻었다고 그들을 속이고 바다에 들어가 보물을 찾게 했다.”“이로써 그들의 내전을 일으켜 영원히 평화로이 지내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나의 한을 풀었다!”초경은 그제야 이유를 깨달았다.“여국 바다에 있는 진도 네가 깬 것 같구나.”초경은 부진환에게서 여국과 동하국의 전쟁에 관해 많은 얘기를 전해 들었다.다들 대진이 깨지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동하국 사람은 여국 땅으로 침입할 수 없다.하지만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눈앞에 있는 이 괴물은 할 수 있었다.역시나 묵계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물론 나다.”“내가 아니었다면 동하국 사람은 평생 여국 땅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초경이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복수를 하고 싶지만, 동하국 사람을 모두 죽이지 않았다. 살생을 저질러 화를 입고 싶지 않은 것이구나.”“그래서 대진을 파괴하고, 동하국 내전을 일으키고 그들을 선동하여 여국을 공격한 것이냐? 그들이 전쟁으로 죽게 만들려는 것이냐?”“아주 완벽한 계획이구나. 하지만 전쟁을 일으켰으니, 결국 운명의 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묵계가 만족스럽게 웃기 시작했다.“나의 계획을 알아차리다니 정말 똑똑하구나.”“그들이 싸우려는 마음이 없었다면 대진이 사라졌다 해도 여국을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니, 나와 상관없다.”“내가 화를 입는다 해도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말을 마치고
그는 이내 약사를 찾으러 갔다.그러나 도림을 벗어나기도 전에 초경은 앞에 길이 없는 것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었다.그는 자리에 멈춰 서서 사방을 관찰하다 이곳이 미로라는 깨달았다. 그는 손바닥을 들었지만,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자세히 맡아보니, 바람 속에 복숭아 꽃향기와 옅은 약재의 향기가 섞여 있었다.독이 있다!뒤에서 여유로운 발소리와 묵계의 웃음 섞인 소리가 들려왔다.“왜 앞으로 가지 않습니까?”초경은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렸다. 지금의 묵계는 무서운 표정이 조금도 없었고 오히려 득의양양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초경은 가슴이 떨려왔고 미간을 세게 찌푸렸다.“네가 바로 약사냐?”묵계가 입꼬리를 올리며 가볍게 웃었다.“먼 곳에서 나를 찾아왔는데, 약사라는 이름만 알고 계십니까? 제 이름도 모르는 것입니까?”“다들 저를 자릉약사라 부릅니다.”“이곳에 온 순간부터 알아차렸습니다. 비록 신분을 모르지만, 홀로 이곳에 온다는 건 분명 만만치 않은 상대겠지요. 그래서 도림에 손을 조금 썼습니다.”“도림에 들어선 후부터 이미 중독되었습니다. 이곳에 오래 있을수록 독은 더욱 세질 것입니다.”“그리고 이 독은 사족을 겨냥한 독입니다.”묵계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초경을 바라보았다.초경은 슬쩍 내공을 써봤지만, 사지가 무기력했다. 무언가가 갑자기 그의 경맥을 막은 것처럼 내공이 안정을 잃고 통제하기 어려웠다.그는 손을 움켜쥐고 불편함을 참으며 내색하지 않았다.“사족? 나를 무서워하지 않은 것이냐? 넌 대체 누구냐?”초경은 의아했다. 분명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는 이상할 것 없이 평범한 사람 같았다.묵계가 가볍게 웃자, 뒤에 환영이 나타났고 그녀의 꼬리가 보였다.하지만 재빨리 사라져 버려서 초경은 뱀 꼬리인지 아닌지를 똑똑히 보지 못했다.“공자, 우린 같습니다. 저를 죽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주 사이좋게 지낼 수도 있습니다.”묵계는 흥미진진하게 초경을 훑어보았고 눈빛에는 탐욕의 빛이 담겨 있었다. 그녀는 초경의 강한 수위를 탐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