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윤은 소영금을 이해할 수 없었다.“방금은 연기하셨다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유일한 아들을 정말 성씨 가문에서 내보낼 생각을 하셨다니, 정말 놀랍네요. 만약 할아버지랑 아버지가 아신다면 저를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소영금은 성도윤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아들. 네 할아버지랑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안 하실 거야. 이 방법을 생각해 낸 게 네 할아버지랑 아버지거든. 그때 내가 잘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네 할아버지랑 아버지가 계속 나를 설득했어. 너랑 설아가 재혼하고 행복하게 살 수만 있다면 다른 건 중요하지 않다고 말이야.”“...”성도윤은 어이가 없었다.“아들, 엄마 말 들어. 너무 부담 갖지 말고 마음 놓고 차씨 가문에 들어가. 그러면 설아가 널 끝까지 책임질 거야, 앞으로 널 버리지도 않을 거고. 네가 꿈에서라도 바라던 상황 아니야?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려놓는다면 네 꿈은 바로 이뤄질 수 있어!”“...”성도윤은 말문이 막혔다.“더 시간을 끌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지금 당장 내려가서 설아에게 차씨 가문에 들어가겠다고 말해. 그리고 너를 꼭 끝까지 책임져달라고 해. 두 사람 오랫동안 헤맸으니 이제 행복하게 살게 될 때도 되었잖아.”성도윤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미쳤어요, 다들 미쳤어요!”“아들, 시대가 달라졌잖아. 그만 망설여. 좋은 사람을 만났으면 최선을 다해 쟁취해야지. 넌 이미 설아를 4년이나 놓쳤어. 그 4년 동안, 네가 얼마나 고통스럽게 살아왔는지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설마... 너 그 고통스러운 삶을 계속할 생각인 거야?”소영금이 한숨을 푹 쉬고는 안쓰러운 눈빛으로 성도윤을 바라봤다.소영금은 얼마나 도도한 사람인가! 성씨 가문은 얼마나 존귀한 가문인가! 그녀도 당연히 유일한 귀한 아들이 다른 가문에 들어가는 걸 원치 않았고, 손주와 손녀가 다른 사람의 성을 따르는 걸 원치 않았다.하지만 그녀는 아들이 4년 동안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왔는지 잘 알았기에 아들이 더는 그런 고난을 겪지 않길
“그래, 뭐라도 말해봐. 우리 차씨 가문이 망했다고 하지만 도윤 씨 한 사람 정도는 들일 수 있거든. 도윤 씨만 괜찮다면 내가 성대하게 맞이해 줄게.”차설아는 겨우 웃음을 참으며 일부러 성도윤을 조롱했다.성도윤처럼 체면을 차리는 사람은 당연히 동의할 리가 없었다. 어쩌면 잔뜩 화가 나서 차설아에게 폭언을 날릴지도 모르니 그때면 차설아는 자연스럽게 억울한 척 연기를 하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성씨 가문 사람들도 그녀가 기회를 안 줬다며 무정하다고 나무랄 수 없을 것이다.“정말 나 받아들일 마음이 있어?”성도윤은 고개를 들더니 깊은 눈망울로 차설아를 바라보고는 덤덤하게 물었다.“어... 그, 그래!”차설아는 남자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어 그저 덤덤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럼 그렇게 할게.”성도윤은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말했다.“콜록콜록!”차설아와 소영금은 그의 말을 듣더니 모두 깜짝 놀라 사레들릴 뻔했다.“뭐... 뭐라고?”차설아는 너무나도 놀라운 소식에 조심스럽게 성도윤에게 다시 한번 확인했다.‘아니야! 이게 진짜일 리가 없어! 성도윤이 왜 동의했지? 귀가 문제 있어서 잘못 들은 거 아니야?’“차씨 가문에 들어가겠다고. 언제 나한테 프러포즈할래? 우리 언제 가서 혼인신고 해? 결혼식은 언제 올리고?”성도윤은 차설아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며 질문 폭탄을 날렸다.“그, 그게...”차설아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뒷걸음질을 쳤는데 성도윤의 질문에 결코 대답할 수 없었다.소영금은 바보 같은 아들이 드디어 자존심을 내려놓았다는 사실이 그저 뿌듯하기만 했다. 사랑하는 여자를 쟁취하기 위해 자세를 낮추고 모든 걸 양보하다니, 역시 그녀 소영금의 아들이었다!“아들, 사랑을 위해 설아의 데릴남편이 될 각오까지 하고. 잘 생각했어. 엄마가 널 응원해, 화이팅! 하루빨리 설아랑 혼인신고 해!”소영금은 성도윤에게 엄지를 내밀며 칭찬을 퍼붓고는 두 사람이 따로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해 눈치껏 자리를 떴다.차설아
더 벗어나지 않으면 차설아는 정말 마음이 움직일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특히 성도윤의 마지막 말은 그 어떤 여자라도 쉽게 넘어갈 것이다.하루 종일 피곤하게 일하고 돌아왔는데 집에 이렇게 잘생긴 남자가 기다리고 있다면 얼마나 뿌듯하겠는가? 게다가 그 남자가 음식을 준비할 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까지 달래준다면 피로가 싹 가실 것이다.“도윤 씨, 솔직하게 말해. 당신 목적이 뭐야? 만약 아이들을 뺏어가는 거라면 헛수고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차라리 법정에서 판사가 결정하게 하자고.”차설아는 겨우 이성의 끈을 놓지 않으며 남자를 확 밀어내고는 차갑게 물었다.“아니, 내 목적은 한 번도 아이들이었던 적이 없어.”성도윤은 차설아의 눈을 그윽하게 바라보더니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그럼 당신 목적이 뭔데? 날 괴롭히고 복수하고 궁지에 몰아넣는 거야?”“당신 눈에는 내가 그렇게 악랄한 사람처럼 보여?”“그럼? 이것 외에는 무슨 목적으로 당신이 이렇게까지 자세를 낮추는지 모르겠어.”차설아는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눈앞의 남자가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는데 도대체 그의 진실한 생각이 무엇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엄마가 말했잖아...”성도윤이 또박또박 말했다.“난 당신이랑 재혼하고 싶어.”차설아는 잠깐 멈칫하더니 역한 감정이 올라와 남자를 째려보고는 말했다.“그런 헛된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세계 종말이 오지 않는 한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야.”“왜?”“이유는 없어. 굳이 이유를 알아야 미친 짓을 멈춘다면 그래, 알려주지...”차설아가 흠칫하고는 솔직하게 말했다.“나는 다른 남자와 혼인 신고를 할 거야. 그 사람이 당신보다 백 배는 나아.”“그래?”성도윤의 얼굴색이 조금 어두워졌다.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그는 애써 진정을 되찾고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그럼 두고 보지.”그 뒤로 두 사람은 별다른 얘기를 더 나누지 않았다.그들은 같은 집에 사는 낯선 사람처럼 마주 봐도 서로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좋아요, 그 말을 들으니까 마음이 놓이네요.”미스터 Q는 가면을 사이 두고 복잡한 눈빛으로 차설아를 바라보고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기억해요, 이건 설아 씨 본인이 한 선택이에요. 무슨 일이 일어나든 후회하지 말아요, 알겠죠?”“네, 후회하지 않을게요.”차설아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며 단호하게 말했다.그녀는 자신의 모든 뒷길을 막아버린 셈이었고,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 모든 걸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결말이 행복하든 괴롭든 그녀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내 사정은 설아 씨도 잘 알잖아요. 이번 생에 절대 가면을 벗지 않을 것을 맹세했기 때문에 우리가 혼인 신고를 하는 방법은 좀 특별할 거예요.”“특별하다니요?”“설아 씨 서류를 나에게 줘요. 내가 알아서 혼인 신고를 할게요.”“그게...”차설아는 난감했다.“그럼 그 가면을 평생 쓸 생각인가요? 우리가 결혼해도, 심지어... 심지어 동침한다고 해도 가면을 안 벗을 거예요?”“얼굴이 망가진 건 나에게 있어서 수치예요. 이 수치를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거예요. 만약 설아 씨가 받아들일 수 없다면 지금 여기서 끝내도 돼요.”미스터 Q가 단호하게 말했는데 전혀 상의할 여지가 없어 보였다.차설아는 ‘가면’이 남자에게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가면은 그의 자존심과도 같았기에 차설아는 더 고집을 부리지 않고 쿨하게 결정했다.“네, 벗기 싫으면 안 벗어도 돼요. 어차피 당신의 얼굴 때문에 결혼한 것도 아니고요.”만약 차설아가 얼굴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성도윤을 차씨 가문에 들이면 그만이었다. 전체 해안에서도 성도윤보다 잘생긴 남자는 없었으니 말이다.“의외네요, 남자를 보는 조건이 이렇게 너그러워졌어요?”미스터 Q는 이상한 말투로 차설아의 말에 대답했다.두 사람은 작지도 크지도 않은 차 안에 앉아있었는데 분위기가 순식간에 이상해졌다.남자는 여자에게 다가가더니 입꼬리를 씩 끌어올리고는 말했다.“정말 잘 생각했어요? 얼굴이 망가진 나와 동침을 할 수
“구청을 직접 가지 않아도 된다고요?”“네, 우리 두 사람의 사진을 합성한 후 설아 씨에게 우편으로 혼인신고서를 보낼 거예요. 그러면 얼굴이 망가지기 전의 제 얼굴을 볼 수 있을 거예요.”“그... 그래요?”차설아는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기대되는 마음에 망설임 없이 서류를 모두 미스터 Q에게 넘겼다. 마치 자신의 불안정한 삶을 남자의 손에 넘겨주듯이 말이다.앞으로 미스터 Q, 그리고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 날들만 남았다.구청 앞에서 미스터 Q와 헤어진 후 차설아는 성씨 저택에 돌아갔다.그녀는 인생이 새로운 챕터로 접어든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그녀의 두 번째 결혼생활이 시작되었다는 걸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지만, 꽃도 축복도 받지 못했지만, 심지어 성대한 결혼식도 없었지만 차설아는 마음이 든든했다. 적어도 첫 번째 결혼생활보다는 마음의 안정감을 느꼈다.그녀는 미스터 Q라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그와 아이들과 함께했던 평범하지만 행복한 시간을 무척 그리워했다. 서로 의지할 수 있다는 믿음은 성도윤에게서 영원히 얻을 수 없을 것이다.“기분이 좋나 봐?”성도윤은 천천히 2층에서 내려왔는데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꽃을 정리하는 차설아를 보고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거짓말할 것 없지. 맞아, 나 기분이 좋아.”차설아는 고개를 들어 남자를 보더니 장미 한 송이를 코 앞으로 가져와 냄새를 맡은 뒤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녀는 사실 장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장미의 아름다움은 저속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기분이 좋은지 장미까지 예뻐 보였다.“무슨 좋은 일이 있어?”성도윤은 무심하게 차설아 앞에 앉고는 늘씬한 다리를 포갠 뒤 우아하고 고귀한 자태를 뽐냈다.“미안, 당신과 말하고 싶지 않아. 당신처럼 공감 능력이 떨어진 사람들은 말해도 내 행복을 모를 거라고.”차설아는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거침없이 말을 내뱉었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이 일에 있어서 그녀는 적어도 성도윤을 이겼다고 생각했다.눈앞의 남자는 아무리 훌
“택배요?”차설아는 미스터 Q와의 혼인신고서가 벌써 도착했나 싶었다.‘이상하다, 난 분명히 아파트 주소를 적었는데 왜 성씨 저택에 도착했지?’그녀는 소파에 앉은 성도윤을 힐끔 쳐다보고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다시 멈췄다.‘이따가 혼인신고서를 발견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네... 화를 낼까? 아니면 무슨 표정일까? 문득 반응이 궁금해지네.’“왜 나 몰래 쳐다봐? 알려지면 안 될 물건이 도착했나 봐?”성도윤이 웃는 듯 마는 듯 차설아를 떠보며 물었다.“모함하지 마. 나 차설아는 떳떳한 사람이야. 알려지면 안 될 게 뭐가 있겠어.”“그럼 말해봐, 도대체 뭐가 도착했길래 이렇게 눈치를 보는지.”“그건 개인 프라이버시거든, 당신과는 상관없다고. 당신에게 말해줄 의무도 없어.”“나랑 상관없는 거 확실해?”“그럼!”“그때 가서 다시 나 찾아오지나 마.”잘생긴 남자의 표정은 복잡했고 말투는 의미심장했다.차설아는 그런 성도윤이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그녀는 지금 미스터 Q가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무척 궁금했기에 성도윤을 상대하기도 귀찮았다.택배기사는 문밖에서 기다리다가 멀리서 여자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택배 박스를 차설아에게 넘기며 말했다.“안녕하세요, 택배입니다. 이곳에 사인해 주세요.”“네, 감사합니다.”차설아가 박스를 건네받은 뒤 위에 적힌 우편물 주소를 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구청에서 보내진 것이었다.그녀가 떠나려고 할 때, 택배기사가 급히 그녀를 불렀다.“잠시만요, 택배가 하나 더 있는데 성도윤 님에게 전해주시겠어요?”택배기사가 말하고는 다른 박스를 차설아에게 건넸다.“성도윤의 택배요?”차설아가 미심쩍은 얼굴로 박스를 받았다.두 박스 크기는 비슷했다. 다만 성도윤의 택배에는 우편 주소가 적혀있지 않았기에 누가 보냈는지를 추측할 수 없었다.“됐어, 나랑 무슨 상관이야.”차설아는 애써 호기심을 억누르며 성도윤의 택배에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했다.그녀는 두 택배 박스를 챙기고 별장으로 돌아갔다
성도윤이 덤덤하게 웃고는 여유롭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여자의 뒤로 다가가며 농담조로 말했다.“아니면 내가 여전히 당신 마음속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거 아니야?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 설사 작은 택배를 열어보더라도 내 기분을 생각하는 거 맞지? 내가 화낼까 봐 두려워하는 거 아니야?”“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어. 내가 왜 당신을 아직도 신경 쓰고 있어야 하는데?”“그럼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거야? 내 앞에서 택배를 열어봐. 안에 금지 물품이 들어있는 것도 아니고.”성도윤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정말 금지 물품이 들어있다면 내가 동거인으로서 연루되면 어떻게 해? 당신 때문에 감옥에 들어가는 거 아니야?”“됐어, 보여줄게.”차설아는 귀찮게 구는 성도윤이 짜증 나 어쩔 수 없이 타협했다.“정말 안에 든 게 무엇인지 궁금하면 나도 굳이 숨기지 않겠어. 다만 택배를 확인한 후 당신이야말로 흥분하지 말아.”자신을 향한 성도윤의 마음이 어떤지 차설아는 몰랐지만 그가 재혼을 원한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할 수 있었다.성도윤은 분명 그녀가 자신과 재혼할 거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남자와 혼인신고를 한 걸 알게 되면, 그것도 그와 원수 사이인 남자와 혼인신고를 한 걸 알게 되면 그는 분명 화가 나서 펄쩍 뛸 것이다.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차설아는 미리 조심하는 것이 좋았다.“걱정하지 마. 내가 안 겪어본 일이 없어. 강심장이라고. 그나저나 당신이야말로 감정 기복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그러니까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한 거지.”성도윤이 느긋하게 말했다.“아니거든!”차설아는 자신이 성도윤보다 훨씬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이 녀석 무슨 자신감으로 내 앞에서 이렇게 건방을 떠는 거야? 됐어, 중요하지 않아. 지금 빨리 택배를 열어봐야지.’그녀는 식탁 위에서 과도를 챙기고는 박스를 열었다. 가슴도 벌렁벌렁 뛰기 시작했다.익숙한 서류가 보였다. 바로 그녀와 미스터 Q의 혼인신고서였다!“이게
혼인신고서에 붙여진 사진 속의 남자는 미스터 Q가 아니라 성도윤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름도 성도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왜? 재혼했으니까 기뻐야 하는 거 아니야? 왜 얼굴이 하얗게 질렸어?”성도윤이 팔짱을 끼고는 웃는 듯 마는 듯 물었다. 마치 차설아의 순진무구함을 비웃듯이 말이다.“당신... 당신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차설아는 갑자기 그 혼인신고서가 역겹게 느껴져 곧바로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성도윤은 느긋하게 허리를 굽혀 혼인신고서를 주워 들고는 긴 손가락으로 위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그리고 깊은 눈망울로 두 사람의 사진을 바라보더니 부드럽고도 깊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이 사진을 좀 봐봐, 선남선녀가 따로 없어. 천생연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이게 바로 진정한 사랑이지.”“닥쳐!”차설아가 귀를 막고는 분노한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이런 장난이 재밌어? 이런 가짜 서류를 백 개, 천 개 만들어도 소용없어. 거짓은 영원히 거짓이고 진실이 될 수 없지.”차설아는 성도윤이 그녀와 미스터 Q가 미리 혼인신고를 했다는 걸 알고 일부러 사람 찾아 거짓 서류를 작성했다고 생각했다.“가짜 서류?”성도윤은 차설아의 말을 듣고 코웃음을 쳤다.“그럼 공식 홈페이지에 가서 체크해 봐. 등록된 당신 법적 배우자가 누군지 확인해 보라고.”“허튼수작 부리지 마!”“내가 허튼수작 부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한번 확인해 보라니까. 내가 사람 찾아 거짓 서류를 만들 수는 있다고 해도 구청 시스템에 간섭할 만한 권리가 있는 건 아니야.”성도윤의 말은 차설아가 가지고 있었던 일말의 희망을 무너뜨렸다.그녀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휴대폰을 꺼내 시스템에 접속하고는 그녀의 법적 배우자를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성도윤이었다. 그리고 이 업데이트가 기록된 시간은 바로 그녀와 미스터 Q가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를 하려 했던 그 시간이었다.“확인했어? 내가 헛소리한 거 아니지?”성도윤은 깊은 눈망울로 계속 차설아를 주시하면
성진은 격양된 목소리로 다그쳤다.분명 이 싸움에서 이긴 건 그였지만 이상하게도 철저하게 패배한 기분이었다.성도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책상을 정리하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차설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는 순간, 그의 표정이 한층 부드러워졌다.“설아야, 오늘 어땠어? 먹고 싶은 거라도 있어? 퇴근하고 가서 만들어 줄게.”전화 너머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성도윤은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전화를 끊을 때까지도 달달한 그 분위기는 옆에서 듣는 사람한테까지 느껴질 정도였다.성진은 아무 말 없이 그의 곁에 서서 두 사람이 통화하는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이 너무 우스워 보였다.성도윤이 사무실을 떠나려 하자 성진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형, 설아랑 다시 잘 지낸다며? 다 잊어버린 거 아니었어? 근데 이렇게 빨리 화해했다고? 설마 또 한 번 상처 주려고 그러는 거야?”성진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최악으로 끝난 사이인 줄 알았으니 말이다. 완전히 남남이 되어 다시는 엮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겨우 한두 달 만에 원래 사이로 돌아간 데다가 오히려 예전보다 더 서로를 소중하게 여겼다.눈동자까지 희생해 가면서 이루고 싶었던 삶이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는 사실에 성진은 절망스러웠다. 성도윤은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쉽게 그 모든 걸 손에 넣었다는 생각에 그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인정할 수 없었고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 이상 성도윤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할 수 없었다.“내가 설아랑 어떻게 지내는지 너한테 보고해야 돼?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성도윤은 담담하게 말했다.“부러우면 너도 마음에 드는 여자 찾아서 결혼하면 되잖아. 따뜻한 가정을 꾸려서 행복을 누리면 되잖아. 다만...”그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회의실을 둘러보며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지금 너한테는 더 중요한 일이 있잖아. 이런 사소한 일에 마음을 빼앗길 여유가 있을까?”성도윤의 말투는 누가
성진의 말에 성도윤은 할 말을 잃었다.그는 나중에야 자신이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성진 덕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었다. 그에게 놓고 말하면 성진이 생명의 은인인 것이나 다름없었다.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말싸움을 하는 건 아무 의미도 없었다.“그렇다면 일단 부대표님 뜻대로 진행하죠. 일단 한 분기를 기준으로 삼아서 시도해 보세요. 지켜보겠습니다.”성도윤의 냉정한 목소리에는 위엄이 있었고 이는 곧 성대 그룹의 미래를 결정짓는 말이었다. 회의에 참석한 모든 주주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뿐, 아무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역시 형은 마음이 넓은 사람이야. 회사를 위해서 헌신할 줄 아는...”성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내 방식대로 진행해 보고 나서 성대 그룹의 이익이 빠른 속도로 상승하면 어떡할 건데?”“넌 내가 어떤 결정을 했으면 좋겠어?”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불꽃이 튀는 듯했다. 성도윤을 지지하는 세력과 성진을 지지하는 세력 사이에서도 말이다.그때, 오준현이 입을 열었다.“성 대표님은 항상 회사를 위해서 생각해 주시는 분입니다. 만약 부대표님께서 정말 그룹에 좋은 방향으로 이끈다면 성 대표님도 기꺼이 자리를 양보하시겠죠, 그렇지 않습니까?”그러자 박지훈이 책상을 쾅 하고 내리치며 오준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오준현 씨, 회사의 대표 자리는 인간성과 능력을 겸비한 사람만이 앉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회사에 수천 명의 직원이 있어도 성 대표님 외에는 아무도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습니다.”“인간성이요? 그게 수익 앞에서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주주인 저희의 관심사는 오직 이익뿐이라고요. 누가 우리에게 더 많은 돈을 벌어다 줄 수 있느냐, 그게 바로 우리가 대표를 선택하는 기준입니다.”두 파벌은 서로 다른 의견을 두고 대립해서 싸우기 시작했다.보다 못한 성도윤이 손을 들어 올리며 차가운 목소
“제 비서 뜻이 곧 제 뜻입니다. 지금은 성대 그룹을 안정시키는 게 최우선이에요. 확장은 신중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성도윤은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성 대표님, 언제 이렇게 변하셨습니까? 너무 보수적인 거 아닙니까? 이 작은 규모만 지키려다가 무너지고 싶으세요?”장기준이 가감 없이 성도윤에게 의문을 제기했다.“다들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 저는 형이 왜 이렇게 보수적으로 변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성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희 형은 지난 반년 동안 큰 충격을 겪었어요. 건강도 많이 나빠졌죠. 그로 인해서 성격까지 바뀐 겁니다. 좀 더 신중해진 거죠.”“그리고 여러분이 모르는 사실이 하나 더 있어요. 형은 뇌 수술을 두 차례나 받았거든요. 그 충격이 얼마나 클지 짐작 가세요? 석현아, 주주님들께 보여 드려.”“네, 부대표님.”석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리 준비해 둔 성도윤의 건강 검진 보고서를 주주들에게 하나씩 전달했다. 그러자 진무열이 분노하며 성진에게 소리쳤다.“도대체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성 대표님의 건강 검진 결과는 개인 정보예요! 함부로 유포해도 된다고 생각해요?”“진 비서님, 진정하세요. 형을 생각해서라면 건강 검진 결과는 당연히 비밀로 할 수도 있죠. 하지만 지금 형은 성대 그룹의 대표님이잖아요. 이 회사를 이끄는 사람이에요. 형의 건강 상태도 곧 성대 그룹의 미래와 이어진다는 겁니다. 다들 성대 그룹의 수익이 감소한 원인을 찾고 있지 않나요? 전 이 검진 결과가 그 원인을 충분히 설명해 줄 거라 생각해요.”성진은 미소를 지으며 느긋한 태도로 말했다. 오늘을 위해 철저히 준비해 온 듯했다.주주들은 검진 결과를 확인한 후, 믿기 어렵다는 듯 표정을 굳혔다.“이럴 수가! 성 대표님의 건강이 이렇게 악화되었을 줄은...”“뇌를 다친 데다가 기억 상실증까지?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경영 방식이 전과 너무 다르더라니... 그 원인이 여기 있었군요.”“성대 그룹이 갑자기 변한 건 대표님
모든 주주들이 일제히 성진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충격이 서려 있었다.“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부대표님께서 실명했다고 하지 않았어?”“전에는 몸 상태도 많이 약해서 부대표님 자리까지 내려놓았는데 지금 보니 아주 생기가 넘치잖아?”“돌아왔다니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이제 성대 그룹도 다시 살아날 수 있겠어!”주주들은 성진의 복귀를 환영해 주었다. 그들은 성진이 성도윤을 대신해 성대 그룹을 위기에서 구해주기를 기대하며 중얼거렸다.성진은 미소를 머금은 채 곧장 성도윤의 곁으로 다가갔다.“형, 미안해. 그동안 형 혼자 성대 그룹을 관리하느라 정말 힘들었을 텐데... 이젠 나도 회복했으니 형을 도울 수 있을 것 같아.”성도윤은 싸늘한 눈빛으로 성진을 응시했다.그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성도윤은 심장이 순간적으로 옥죄어 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성도윤은 그 생각을 깊이 파고들고 싶지는 않았다.“회복했다니 다행이네. 앞으로 잘해보자. 우린 같은 배를 탄 사람이니까. 정말로 성대 그룹을 위기에서 구해낼 수만 있다면 나도 네가 돌아온 걸 환영하지 않을 이유는 없지.”성도윤은 마음속의 불안을 접어두고 형식적인 말로 대응했다.“역시 형은 큰 그림을 보는 사람이야. 걱정 마, 실망하게 하지 않을게. 내가 형의 자리를 대신해 성대 그룹을 구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성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속에는 권력을 향한 욕망이 가감 없이 드러나 있었다.순간, 주주들 사이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누구도 그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하지는 못했다.“좋아, 그럴 실력이 있다면 말이지.”성도윤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성진은 의자를 당겨서 자리에 앉았고 그의 비서인 석현이 나서서 주주들에게 새로운 전략과 방안을 설명했다.주주들은 숨죽이며 그의 말을 들었고 그들의 표정은 점점 열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해외 지사를 맡아왔던 만큼 확실히 사고방식이 개방적이네. 만약 이 계
“성 대표님, 지금 하셔야 할 말은 따로 있는 것 같은데요? 저희는 지금 주주총회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모인 겁니다. 저희에게는 지금 수많은 경쟁자가 있을 뿐만 아니라 회사 내부에서도 심각한 분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게다가 능력 있는 인재들조차 불안함을 느껴 대거 이탈하는 상황이죠. 이대로 가다간 회사가 무너지는 것도 시간문제입니다.”장기준이 말했다. 직접적으로 성도윤에게 대표직에서 물러나라는 말은 하지 못했지만 그의 의도는 뻔히 보였다.성도윤은 미소를 지으며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럼 어떤 해결책이 가장 좋다고 보십니까?”“그건 저도 모르죠. 제가 뭘 알겠습니까...”성도윤과 눈이 마주친 순간, 장기준은 순간적으로 주춤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때 오준현이 나섰다.“간단합니다. 건강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거죠. 그리고 성대 그룹의 대표 자리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도록 해요.”이 말이 떨어지자 회의실에 있던 수십 명의 주주들은 순간 숨을 죽였다.각자의 속셈을 감추듯 아무도 함부로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런데도 성도윤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장기준 씨,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아뇨, 저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성대 그룹을 위해서, 또 성 대표님의 건강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말씀드린 것뿐입니다.”장기준은 손을 내저으며 황급히 해명했다.“그럼 그 깊은 배려에 감사드려야겠군요.”성도윤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그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섬뜩할 정도로 서늘했다.그때, 한 주주가 용기를 내어 말했다.“장기준 씨의 의견도 일리가 없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성 대표님을 대신할 만한 사람이 있느냐는 것이죠. 괜히 대표 자리를 바꿨다가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건 아닐까요?”그러자 오준현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그건 여러분이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
한편, 성대 그룹에서.성도윤의 지각은 이미 그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주요 주주들의 감정을 더욱 악화시켰다.비서가 연간 그룹의 매출과 주요 프로젝트 성과를 보고했지만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회의실은 무거운 분위기에 휩싸였다.“성 대표님, 보시다시피 올해 성대 그룹의 전체 이익이 계속 하락하고 있습니다. 관련 주가 역시 계속해서 하락세를 보고 있어요. 지금의 성대 그룹은 생존이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습니다. 회사를 이끄는 책임자로서 이 상황을 타개할 만한 실질적인 해결책이 있습니까?”7대 주주 중 한 명인 오준현이 말했다.그는 평소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매년 주주총회에서만 나타났다. 그리고 나타날 때마다 날카롭게 비판을 던졌는데 항상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성도윤을 깎아내렸다.하지만 그럴 만도 했다. 성씨 가문 사람들을 제외하고 가장 많은 주식을 보유한 사람이었으니 말이다.그러자 그와 반대편에 서 있는 박지훈이 나섰다.“기업을 운영하다 보면 이익을 볼 때도 있고 손해를 볼 때도 있는 법입니다. 성 대표님께서 성대 그룹을 맡은 후로 회사는 점점 성장해 왔습니다. 주가가 조금 하락했다고 이러시는 건가요?”“다들 아시다시피, 최근 몇 년간 특수 상황 때문에 대다수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 성대 그룹은 그나마 하락폭이 적은 편이에요. 솔직히 말해서 성 대표님이 아니었다면 저희는 이미 파산했을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 아닌가요?”박지훈은 성도윤을 강하게 지지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가진 지분은 많지 않았지만 성도윤과의 친분 덕분에 회사 안에서 상당한 영향력이 있었다.그러나 오준현은 코웃음을 쳤다.“그럼 성대 그룹이 몇 달째 내리막길을 걷는 것도 성 대표님 덕분이란 말이잖아요? 그렇다면 우리가 성 대표님께 상을 하나 드려야겠네요?”그의 냉소적인 말투가 회의실을 가득 채웠다. 오준현만큼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일수록 능력 있는 사람을 따르기 마련이었다. 그는 단순히 배경 때문이 아니라 자신에게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을
“네가 감히 나를 때려? 두고 봐! 우리 아빠한테 이를 거야. 우리 아빠가 널 완전히 부숴버릴 거라고!”서은아는 분을 못 이겨 울먹이더니 퉁퉁 부어오른 뺨을 감싸 쥐고 황급히 도망쳤다.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차설아가 이미 시력을 잃었다는 사실을 말이다.“엄마, 엄청 멋졌어요! 나쁜 사람을 한 방에 쫓아내다니... 완전 슈퍼우먼이었어요!”달이는 차설아를 꼭 껴안고 반짝이는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달이도 커서 엄마처럼 슈퍼우먼으로 될 거예요!”차설아는 달이의 복슬복슬한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웃었다.“슈퍼 우먼은 무슨... 우리 달이는 그냥 예쁜 공주님이면 돼. 괜히 다른 사람에게 시비 걸진 말되 누군가를 두려워하진 마.”원이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엄마, 저 아줌마 정말 나쁜 사람이에요. 일부러 찾아와서 우리를 괴롭히려 한 거라고요! 뺨 몇 대만 맞고 도망가게 내버려두다니... 너무 쉽게 놔준 거 아니에요?”“원이야, 오늘 충분히 화풀이했잖아. 적당한 선에서 그만둬야 해.”차설아는 조용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저 아줌마 아무리 꿍꿍이를 가지고 왔다 해도 완전히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야. 단지 좀 삐뚤어진 것뿐이지.”“사실 저 아줌마도 피해자이긴 해. 불쌍한 사람이거든. 오늘 받은 교훈이면 충분할 거야.”차설아는 원이를 다독였다.솔직히 말해서 서은아에 대한 그녀의 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수단이 좀 극단적일 뿐이지 말이다.그녀는 지나치게 직설적이고 솔직했지만 그래도 무엇보다 진심으로 성도윤을 사랑하고 있었다. 만약 그들이 같은 남자를 사랑하지만 않았더라면 어쩌면 친구가 될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차설아가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건 서은아같이 대놓고 싸움을 거는 유형이 아니었다. 진짜 무서운 건 뒤에서 몰래 함정을 파고 그녀를 절벽 아래로 밀어버리는 그런 사람들이었다.과거의 기억이 스멀스멀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에 그녀는 몸을 살짝 떨었다.임
겨우 눈을 뜬 서은아는 원이가 했다는 것을 확인하더니 지난 일까지 떠올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이 망할 꼬맹이가... 또 너야? 지난번엔 날 강에 빠뜨릴 뻔하더니 이번엔 물총까지 쏘면서 날 도발한다고? 죽고 싶어?”서은아는 이를 악물고 원이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가까이 가기도 전에 그녀는 물을 또 한 번 맞았다.원이는 허리에 손을 얹고 마치 자기가 어른인 것처럼 경고했다.“아줌마는 우리 집 손님이 아니에요. 여긴 아줌마를 환영하지 않아요. 지금 당장 나가세요!”“어린놈이 감히!”서은아는 자기가 어린아이에게 당할 리 없다고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어떻게든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결심했지만 원이의 민첩함을 과소평가한 것이 실수였다.아무리 쫓아다녀도 그녀는 원이의 옷깃 하나 스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균형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지며 풀밭에 얼굴을 처박았다. 흙이 입안 가득 들어가고 온몸이 엉망이 되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차설아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태연하게 말했다.“원아, 너무 심하게 하진 마. 그래도 여자잖아.”“엄마, 전 아무것도 안 했어요. 이 아줌마가 먼저 덤벼든 거라니까요? 그리고 이 아줌마는 여자가 아니에요. 그냥 나쁜 놈이죠! 완전 악당이에요! 지난번에 저를 호수에 빠뜨리려고 했어요! 나쁜 사람도 봐줘야 하나요?”원이의 입이 뿌루퉁해졌다.차설아만 옆에 없었더라면 원이는 벌써 ‘필살기’까지 써버렸을 것이다.“뭐라고? 널 호수에 빠뜨렸다고?”차설아는 커피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서은아를 향해 차가운 눈빛을 보냈다.“원이가 하는 말이 사실인가요? 정말 어린 애한테까지 손을 댔다고요?”서은아가 어릴 때부터 삐뚤어졌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설마 아이에게까지 손을 댈 정도로 몰상식한 사람일 줄은 몰랐다.어른들끼리의 다툼에 아이를 끌어들이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서은아는 가까스로 일어났지만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었고 머리는 산발이었으며 입 안은 흙과 풀로 가득 차 있었다.그녀는 눈물을 글썽하
“내가 말했었잖아! 도윤이만 가질 수만 있다면 망가뜨려도 상관없다고. 모든 걸 잃고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을 때야 내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깨달을 거야. 그러면 내 곁으로 돌아오는 것도 시간문제지.”서은아는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하, 웃기지도 않네!”차설아는 비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중얼거렸다.“도윤 씨는 사람이에요, 물건이 아니라. 그쪽이 부순다고 해서 부서질 존재가 아니라고요.”“그리고 도윤 씨가 사람들에게 버림받는 날은 오지 않을 거예요. 도윤 씨가 대기업 대표님이든, 그저 평범한 사람이든 나랑 아이들은 절대 그 곁을 떠나지 않을 거니까요.”“차설아, 네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아직 그런 상황이 오지 않아서야. 만약 도윤이가 모든 사람에게 손가락질받는 존재로 된다면? 도윤이와 엮이면 너까지 불행해지는 상황이라면? 그때도 떠나지 않을 자신 있어?”“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네까짓 게 어떻게 장담해? 사람이 발밑으로 내쳐지는 건 한순간이라고. 그러면 도윤이도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울 거야. 결국 모든 사람이 도윤이를 외면할 거고 도윤이는 가진 것 하나 없이 무너질 수도 있어. 그렇게 된다고 해도 떠나지 않을 거라고?”“첫째, 그럴 리 없어요. 둘째, 그렇게 될 때까지 제가 가만히 있을 것 같나요? 무너지면 제가 다시 일어서면 돼요. 비록 엄청난 부자는 아니지만 저한테도 나름대로 운영하는 작은 회사는 있거든요. 그 정도면 우리 가족이 먹고사는 데 부족할 게 없을걸요?”차설아가 말하는 ‘작은 회사’는 신흥 IT 강자인 천신 그룹과 거대한 자본을 가진 KCL 그룹이었다.하지만 두 그룹 모두 차설아의 소유라는 것이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았기에 서은아도 그녀 앞에서 저렇게 우쭐거릴 수 있었다. 만약 서은아가 알게 된다면 얼굴도 들지 못하고 도망쳤을 것이었다.“네가 네 입으로 말했잖아. 겨우 작은 회사라고 말이야. 그걸로 성대 그룹 같은 대기업을 살리겠다고? 꿈도 크네. 만약 진짜 도윤이를 위한다면 헤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