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윤이 덤덤하게 웃고는 여유롭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여자의 뒤로 다가가며 농담조로 말했다.“아니면 내가 여전히 당신 마음속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거 아니야?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 설사 작은 택배를 열어보더라도 내 기분을 생각하는 거 맞지? 내가 화낼까 봐 두려워하는 거 아니야?”“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어. 내가 왜 당신을 아직도 신경 쓰고 있어야 하는데?”“그럼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거야? 내 앞에서 택배를 열어봐. 안에 금지 물품이 들어있는 것도 아니고.”성도윤이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정말 금지 물품이 들어있다면 내가 동거인으로서 연루되면 어떻게 해? 당신 때문에 감옥에 들어가는 거 아니야?”“됐어, 보여줄게.”차설아는 귀찮게 구는 성도윤이 짜증 나 어쩔 수 없이 타협했다.“정말 안에 든 게 무엇인지 궁금하면 나도 굳이 숨기지 않겠어. 다만 택배를 확인한 후 당신이야말로 흥분하지 말아.”자신을 향한 성도윤의 마음이 어떤지 차설아는 몰랐지만 그가 재혼을 원한다는 사실만큼은 확실할 수 있었다.성도윤은 분명 그녀가 자신과 재혼할 거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남자와 혼인신고를 한 걸 알게 되면, 그것도 그와 원수 사이인 남자와 혼인신고를 한 걸 알게 되면 그는 분명 화가 나서 펄쩍 뛸 것이다.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차설아는 미리 조심하는 것이 좋았다.“걱정하지 마. 내가 안 겪어본 일이 없어. 강심장이라고. 그나저나 당신이야말로 감정 기복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그러니까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부족한 거지.”성도윤이 느긋하게 말했다.“아니거든!”차설아는 자신이 성도윤보다 훨씬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이 녀석 무슨 자신감으로 내 앞에서 이렇게 건방을 떠는 거야? 됐어, 중요하지 않아. 지금 빨리 택배를 열어봐야지.’그녀는 식탁 위에서 과도를 챙기고는 박스를 열었다. 가슴도 벌렁벌렁 뛰기 시작했다.익숙한 서류가 보였다. 바로 그녀와 미스터 Q의 혼인신고서였다!“이게
혼인신고서에 붙여진 사진 속의 남자는 미스터 Q가 아니라 성도윤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름도 성도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왜? 재혼했으니까 기뻐야 하는 거 아니야? 왜 얼굴이 하얗게 질렸어?”성도윤이 팔짱을 끼고는 웃는 듯 마는 듯 물었다. 마치 차설아의 순진무구함을 비웃듯이 말이다.“당신... 당신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차설아는 갑자기 그 혼인신고서가 역겹게 느껴져 곧바로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성도윤은 느긋하게 허리를 굽혀 혼인신고서를 주워 들고는 긴 손가락으로 위에 묻은 먼지를 털어냈다. 그리고 깊은 눈망울로 두 사람의 사진을 바라보더니 부드럽고도 깊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이 사진을 좀 봐봐, 선남선녀가 따로 없어. 천생연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이게 바로 진정한 사랑이지.”“닥쳐!”차설아가 귀를 막고는 분노한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이런 장난이 재밌어? 이런 가짜 서류를 백 개, 천 개 만들어도 소용없어. 거짓은 영원히 거짓이고 진실이 될 수 없지.”차설아는 성도윤이 그녀와 미스터 Q가 미리 혼인신고를 했다는 걸 알고 일부러 사람 찾아 거짓 서류를 작성했다고 생각했다.“가짜 서류?”성도윤은 차설아의 말을 듣고 코웃음을 쳤다.“그럼 공식 홈페이지에 가서 체크해 봐. 등록된 당신 법적 배우자가 누군지 확인해 보라고.”“허튼수작 부리지 마!”“내가 허튼수작 부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한번 확인해 보라니까. 내가 사람 찾아 거짓 서류를 만들 수는 있다고 해도 구청 시스템에 간섭할 만한 권리가 있는 건 아니야.”성도윤의 말은 차설아가 가지고 있었던 일말의 희망을 무너뜨렸다.그녀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휴대폰을 꺼내 시스템에 접속하고는 그녀의 법적 배우자를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성도윤이었다. 그리고 이 업데이트가 기록된 시간은 바로 그녀와 미스터 Q가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를 하려 했던 그 시간이었다.“확인했어? 내가 헛소리한 거 아니지?”성도윤은 깊은 눈망울로 계속 차설아를 주시하면
웃음을 머금고 있던 성도윤의 눈꼬리는 점점 차갑게 굳어지더니 그는 점점 위압적인 분위기를 뿜었다.“이 와중에 그 남자가 걱정돼? 그 사람에 대한 당신의 감정을 너무 얕잡아봤네.”“당신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 당신은 아무 감정도 없는 냉혈한이니까. 당신 같은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겠어?”차설아는 겨우 분노를 억눌렀다.그녀는 당장이라도 성도윤에게 달려 미친개처럼 그를 물어뜯고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지만 감정을 통제 못할수록 성도윤이 더 쾌감을 느낄 거라는 걸 차설아도 잘 알고 있었다.그를 무너뜨릴 수 있는 건 그녀와 미스터 Q 사이의 깊은 감정뿐이었다. 아무 감정도 없는 사람에게 그런 타격이야말로 결정적이었으니까.“비열한 수단을 통해 비열한 목적을 달성했다고 해도 내 마음은 그 사람을 향하고 있어. 우리 두 사람의 마음이 함께하는 한 혼인신고는 중요하지 않다고. 당신이 승리를 거뒀다고 생각하겠지만 이건 당신 스스로만 취해 있는 정신승리야.”차설아가 말하고는 거침없이 성도윤에게 귀싸대기를 날렸다.“그래, 나 스스로만 취해 있는 정신승리지...”성도윤이 차갑게 웃고는 큰 손으로 차설아의 손목을 꽉 쥐고는 말했다.“정신승리면 어때? 적어도 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어. 당신 같은 겁쟁이가 아니라고. 당신은 분명 원하는 게 있으면서도 비겁함 때문에 차라리 놓치는 걸 선택하겠지.”“내가 뭐가 비겁하다는 거야? 당신을 선택하지 않은 게 비겁한 거야? 정말 사람이 너무 오만하다.”차설아는 남자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남자는 오히려 힘을 더 주며 그녀가 그를 똑바로 바라보게 했다.“그럼 나 똑바로 보면서 얘기해. 그 사람을 사랑해서 결혼하는 거라고.”“진짜 웃기는 사람이야. 내가 왜 당신 말을 들어야 해? 내가 누구를 사랑하든 안 사랑하든 당신에게 알릴 의무가 없잖아.”차설아는 불편한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패배한 병사들처럼 남자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 채 뒷걸음질을 쳤다.“두 사람 서로 사
“말 그대로야.”성도윤은 사탄처럼 사악한 미소를 짓더니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그러니까, 내가 그 자식을 망쳤다는 거야. 이제는 남자라고 할 수도 없어. 그러니 당신도 환상 따위는 버리고 그 자식을 잊고 내 옆에 있으면 돼.”“망쳤다고?”차설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믿고 싶지 않았다.“말도 안 돼. 미스터 Q는 절대 그렇게 쉽게 무너질 사람이 아니야. 당신에게 그 사람을 망쳐 놓을 능력이 있다고?”성도윤은 하찮은 듯 코웃음 쳤다.“4년 전에 내가 그 자식을 벌레처럼 짓밟아서 지하 도랑에 숨어 살게 했으니, 지금도 당연히 폐인으로 만들 수 있지.”“아니면 당신이 그 자식에게 준 주민등록증이 왜 내 손에 있겠어? 분명 그 자식과 혼인 신고했는데, 왜 나랑 등록되어 있을까?”남자는 말을 마치고 천천히 소포를 열었다.안에는 차설아가 미스터 Q에게 주었던 주민등록증과 또 하나의 혼인신고서가 담겨있었다.“아마...”차설아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서류들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고 머릿속으로 무수한 가능성을 예상했다.“당신이 비열한 수단을 써서 훔쳤거나 아니면... 구청 직원을 매수한 거 아니야?”어쨌든 차설아는 미스터 Q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성도윤에게 그럴 능력이 있다는 건 더더욱 믿지 않았다. 소리소문없이 자정 살인마로 불리는 인간을 제거했다니!“그렇게 생각해야 당신 마음이 편하다면 좋을 대로.”성도윤은 차설아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었다. 그의 목적은 이미 달성했고 이 여자가 자신을 미워하든 사랑하든, 이미 엄연한 법적 아내였다.“여보, 오늘 우리 정식으로 재혼한 날인데 나가서 외식이라도 할까?”성도윤은 차설아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자연스럽게 물었다.‘크! 합법적인 부부는 역시 다르다니까! 성취감이 장난 아니네!’“만지지 마!”차설아는 고슴도치처럼 움츠리고는 그의 팔을 떼어냈다.그녀는 지금 머리가 매우 복잡했다. 반드시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야 했다. 성도윤은 당연히 그녀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을
차설아는 그렇게 자신을 진심으로 대해주던 남자가 이렇게 매정하게 행동할 리 없다고 굳게 믿었다. 유일한 가능성은 성도윤 그 망나니가 비열한 짓을 해서 미스터 Q를 곤경에 빠뜨렸을 것이다.그녀는 반드시 미스터 Q를 만나야 했다.“사장님을 만나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하니 비켜주세요. 괜한 사람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요.”차설아의 눈빛은 차갑게 변했고 주먹을 불끈 쥐고는 공격 태세에 돌입했다.엄격한 훈련을 받은 경비는 무기를 들고 말했다.“죄송하지만 저는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기어코 들어가셔야겠다면 피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그래요? 그럼 저도 사양하지 않을게요.”차설아는 늘씬한 왼쪽 다리를 힘차게 뻗고 오른손을 번쩍 들더니 경비를 향해 훅을 날렸다.경비는 황급히 몸을 피했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그녀에게 맞아 땅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곧이어... 더 많은 경비원이 달려와 차설아를 에워쌌다.“보아하니 다들 죽는 게 두렵지 않나 보죠. 그럼 절 탓하지 마세요.”차설아는 말을 마치고 다리를 들어 하나씩 차서 멀리 날려버렸다.그녀는 평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를 따라 격투기를 배웠으니 보통의 실력이 아니었다.평소 손을 안 대는 편이지만, 한번 손을 대면 능력이 한계에 달해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었다.“사장한테 전하세요. 계속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난 오늘 절대 안 멈춘다고!”차설아는 독설을 퍼부으며 난동을 부리는 격이었다.경비들은 하나같이 맞아서 코와 얼굴이 퉁퉁 부었지만 여전히 입구를 막아서며 차설아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았다.“멈추시죠!”마침내, 차갑고 꼿꼿한 그림자가 대문 안에서 걸어 나오더니 싸늘하게 말했다. 차설아는 공격을 멈추고 남자를 바라보며 말했다.“장재혁 씨?”남자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답했다.“설아 씨, 오랜만이네요.”차설아는 마치 구원병을 본 듯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재혁 씨, 마침 잘 오셨어요. 사장님 뵈러 왔는데 이
차설아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끈질긴 사람이었다.“좋아요! 저는 꼭 들어가서 찾아봐야겠어요. 땅을 발칵 뒤집어서라도 사람을 찾아내 직접 설명을 들어야겠어요!”그녀는 얼음장 같은 얼굴로 장재혁을 밀어내고 곧장 전당포 안으로 쳐들어갔다.쓰러진 몇 명의 경비원들이 힘겹게 일어나 그녀를 막으려 하자 장재혁이 손을 흔들었다.“책임자님, 사장님은 설아 씨의 출입을 금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들여보내시면...”“괜찮아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절대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장재혁은 나약하지만 고집이 센 차설아의 뒷모습을 보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사람은 때로는 어리석어도 돼요. 특히 여자가 좀 어리석으면 쉽게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법이죠. 저는 설아 씨가 평생 어리석었으면 해요.”차설아는 성심 전당포에 처음 온 것이 아니었다. 내부 구조와 진열된 물건까지 손바닥 보듯 알 수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익숙한 곳이었다.그녀는 가장 빠른 시간 내로 전당포를 한 바퀴 뒤졌고, 금지 구역까지 뒤졌지만 미스터 Q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하얀 달빛이 땅바닥에 떨어지니, 그녀의 모습은 더욱 쓸쓸하고 외로워 보였다.“미스터 Q, 대체 어디 있는 거예요. 귀찮게 하지 않을 테니 빨리 나타나요. 저는 그저 답을 원하는 것뿐이에요.”차설아는 미치광이처럼 아득하고 어두컴컴한 마당에서 걷잡을 수 없이 외쳤고, 그 소리에 놀란 덩굴의 까마귀들은 사척으로 날아갔다.“제발 좀 나와요. 한 마디라도 좋으니까, 제발...”그녀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손으로 아름답지만 슬픈 얼굴을 감쌌다. 작고 가냘픈 어깨가 가늘게 떨리는 모습이 너무 연약하고 무력해 보였다.“울지 마세요...”부드러운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오더니 누군가 차설아의 등을 토닥였다.차설아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순식간에 방어 태세를 취하더니 냉랭한 눈빛으로 말했다.“당신?”“저를 기억해주신다니 영광이네요.”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달빛 아래에서 더욱 부드럽고 온화했다.
연지는 고개를 들어 맑은 달빛을 바라보며 고마움과 존경의 마음을 담아 말했다.“미스터 Q는 아주 좋은 분이세요. 제가 전당포의 보물을 훔친 걸 알고서도 저를 살려줬을 뿐만 아니라 약도 끊게 도와주셨어요. 그리고 저를 그분의 비서로 삼아 두둑한 월급을 주셔서 빚을 다 갚을 수 있었어요. 아이도 다시 유치원에 다니게 되었고, 그분은 우리 모자에게 이 달처럼 밝은 미래를 선사해주신 거예요.”“연지 씨 지금 미스터 Q의 비서예요?”차설아는 눈이 번쩍이더니 지푸라기라도 잡은 듯 연지의 손을 덥석 잡고는 물었다.“그럼 지금 미스터 Q 어디 있는지 알아요? 제가 꼭 물어볼 게 있어서 그러니 좀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미스터 Q의 행적은 늘 보안 사항이었어요. 비록 제가 비서이긴 하지만, 그분이 어디로 가는지까지 알 권리는 없어요. 하지만...”연지가 막 무언가를 말하려고 할 때, 장재혁이 와서 차갑게 그녀의 말을 끊었다.“넌 이번 주부터 더 이상 비서가 아니라고 사장님이 분명 말했잖아? 이미 성심 전당포에서 해고당했는데 왜 아직도 여기 있어?”“죄송합니다, 책임자님.”연지는 눈시울이 금세 붉어지더니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다름이 아니라 사장님과 작별인사를 하려고 왔어요. 저는...”“그럴 필요 없어!”장재혁은 귀찮은 듯 말했다.“우리 전당포가 자선단체도 아니고, 다들 감사하러 왔든 작별인사를 하러 왔든 전부 사장님께 폐만 끼칠 뿐이라고. 그냥 방해하지 않는 게 사장님을 도와주는 길이야.”차설아는 예리하게 장재혁을 보며 물었다.“그러니까, 재혁 씨는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는 거네요? 심지어... 지금 어디선가 실시간으로 우리를 보면서 자기 뜻을 전해달라고 하나요?”“재혁 씨, 미스터 Q가 어디 있는지 제발 알려주세요. 무슨 말 못 할 사정이 있어서 작별인사도 없이 떠난 거예요? 제가 평생 마음속에 응어리가 맺혀 고통받으며 살 거라는 생각은 안 해봤대요?”장재혁은 시종일관 냉랭한 표정을 짓더니 평온한 말투로 말했다.“차설아 씨,
“좋아요! 한잔하죠. 저도 오랜만에 실컷 마셔보죠!”차설아는 자신과 연지가 꽤 인연이 있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단숨에 약속을 잡아 부둣가의 술집 거리로 나왔고, 아무 술집에나 들어가 카스 두 병을 시켜 마시기 시작했다.술집의 조명은 따뜻하고 아름다웠다. 무대 위, 긴 머리의 남자가 기타를 연주하며 민간가요를 불렀다. 영흥 부둣가의 살벌한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게 전체적으로 맑은 분위기였다.“연지 씨, 미스터 Q와 안 지 얼마나 됐어요? 보니까 완전히 푹 빠졌던데요?”차설아는 카스 반병을 들이켰다. 찌릿찌릿한 느낌에 정신이 맑아지는 것 같았고, 심지어 약간 흥분하여 수다 근성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어떤 여자가 미스터 Q 같은 분에게 안 빠질 수 있겠어요? 다만 저는 제 주제를 잘 알아서, 그분의 비서가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저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봐요!”연지도 마찬가지로 반병을 들이켜더니, 미스터 Q에 대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연지 씨 아주 쿨하네요! 난 이렇게 내숭 없는 사람이 좋더라! 오늘부터 우리는 친구예요!”차설아는 연지 술병을 부딪치며 그녀에 대한 호감을 감추지 못했다.사실 배경윤을 제외하고, 차설아는 속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별로 없었다.연지도 그녀처럼 싱글맘이라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서로 비슷한 면이 너무 많았다. 혼자 아이들을 키우면서 겪은 고생과 무력감에 대해 매우 공감했다.“그러니까, 미스터 Q를 선택하고, 결혼해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려 했는데 결국... 설아 씨와 혼인신고를 한 사람이 그 상처만 줬다는 쓰레기 전남편이라는 거예요?”희미한 불빛 아래, 두 사람은 여러 번 서로 병을 부딪쳤고, 연지는 차설아와 성도윤의 이러저러한 일들을 듣게 되었다.그녀도 차설아와 마찬가지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미스터 Q는 절대 약속을 어기는 사람이 아니고, 비겁한 사람은 더더욱 아니에요. 내 생각에는... 설아 씨 전남편이 비열한 수단을 써서 미스터 Q가 어쩔 수 없이 포기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