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설아는 곱게 갈린 커피 가루를 보면서 만족하다가 손목에서 전해지는 고통에 눈살을 찌푸렸다.이때, 그녀의 뒤에서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남아름이 차설아의 손목 상처를 한 눈에 알아보고 걱정되는 목소리로 말했다.“설아야, 뭐 해? 손목의 상처를 좀 봐, 그냥 직원들한테 시키면 되지.”그녀는 남아름한테 환한 웃음을 짓고는 다시 커피를 내렸다.“괜찮아요. 아줌마. 저 생각보다 나약하지 않아요!”“피가 거즈를 빨갛게 물들였는데 뭐가 괜찮아, 오염이라도 되면 어쩌려고 그래!”언제나 봄바람처럼 온화하고 부드러웠던 남아름은 자기를 막 대하는 차설아를 보면서 화가 났고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커피 머신을 낚아채고는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설아야, 어떻게 소중한 너의 피로 성도윤의 약인을 만들어 줄 바보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어. 네 엄마가 네가 남자 때문에 이렇게 다쳤다는 걸 아신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어!”차설아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되물었다.“저는 아빠를 살리기 위해 엄마의 피가 필요하다고 하면, 엄마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어줄 거라고 믿어요! 마찬가지로 아저씨를 살리는 데 아줌마의 피가 필요하다면, 아줌마도 주저 없이 주겠죠?”“너...”남아름은 순간 말문이 막혀 반박할 수 없었고 눈살을 찌푸리면서 다시 말했다.“약인을 만드는 데 사람의 피가 필요하면 나한테 미리 말해줬으면 됐잖아. 요양원에 있는 혈액 창고의 피로도 충분한데 왜 네 소중한 피를 사용해서 몸을 망가뜨려. 아저씨랑 내가 너의 부모님께 뭐라고 설명해야 하니?”“아줌마가 절 걱정하는 건 이해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피로 약인을 만들어야만 효과가 있다고 해서 방법이 없었어요. 그리고 보다시피 그 약인이 정말 효과가 있다는 게 증명됐잖아요. 제가 한 결정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요.”남아름은 그녀의 말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하고 코웃음을 쳤다.“설아야, 아줌마를 속이려고 하지 마! 세계 최고의 의대를 졸업한 나도 들어본 적 없는 이상한 치료법이라니 이건 말도 안
“그때...”남아름은 더 이상 그 일을 회상하기 싫은 듯 얼굴을 찡그렸다.“시간이 많이 흘렀어. 예전의 일을 들추는 것보다 지금을 잘 살아가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아니요!”차설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을 움켜쥐고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차씨 가문은 8대 명문가 중 우두머리에서 전멸될 정도로 수많은 참혹한 일을 당했어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거듭 예정의 일을 들추지 말라고 당부하셔서 끓어오르는 복수심을 억누르고 잠잠하게 있었을 뿐이에요.”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다가 말을 이어 나갔다.“하지만 예전의 일을 들추지 않는다고 해서 없었던 일로 변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 후 몇 년 동안 부모님을 비참하게 죽인 범인이 아직 살아있다고 생각하면 화가 나서 마음 편히 잠에 들지 못했고 잠이 든다고 해도 부모님이 아래로 떨어져 피투성이가 되는 꿈에 시달려야 했어요. 전 오빠를 납치한 사람과 부모님을 살해한 사람이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고 반드시 진실을 파헤쳐서 복수를 할 거예요.”겉으로는 과거의 고통에서 헤어나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차설아는 마치 거대한 산이 그녀를 억누르고 있는 것 같았고 고통에서 하루도 벗어나지 못했다.게다가 쌍둥이 오빠인 차성철의 존재와 그의 쓰라린 과거를 알게 된 후부터 그녀의 복수심은 불길처럼 활활 타올랐다.“부모님께서 그곳에서 편히 쉬도록 오빠와 함께 범인을 찾아 복수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성도윤이 갑자기 사고를 당해 계획이 늦어질 줄 누가 알았겠어요. 지금 그의 상태가 점차 호전되고 있으니, 저도 이제 못했던 복수를 시작해야죠.”차설아는 원두를 가는 남아름의 손을 꼭 잡으며 정중하게 부탁했다.“저도 제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지 아니까 더 이상 말릴 생각하지 마세요. 그리고 복수하려는 마음은 절대 꺾이지 않을 거니까 이모가 아는 모든 사실을 저한테 숨김없이 말해 줬으면 좋겠어요. 그게 저의 부모님을 위한 일이기도 해요.”“아이고, 이 녀석아! 어쩜 이렇게 네 엄마를 쏙 빼닮았
남아름은 종잡을 수 없이 변한 차설아의 표정을 보면서 자기의 생각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그렇다고 해서 성씨 가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어. 두 가문은 줄곧 해안에서 서로 도우면서 발전했고 그동안 큰 이익 충돌도 없었어. 그냥 네 오빠의 일로 왕래가 줄어들면서 관계가 소원해졌을 뿐이야. 그리고 난 성씨 가문의 궐기가 자체의 노력 때문이라고 생각해.”그 덕에 차설아의 복잡했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고 점차 이성을 되찾았다.“맞는 말인 것 같아요. 저희 가문이 파산했을 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준 건 성씨가문밖에 없었어요. 게다가 만약 그들이 부모님을 죽인 범인이라면, 할아버지께서 진정으로 나를 보호해 줄 수 있는 건 성씨 가문이라면서 성도윤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하지 않으셨겠죠.”차설아가 성씨 가문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할아버지의 무조건적인 신뢰로 인해 마음이 바뀌었다.남아름은 때로는 진실을 모르는 게 더 나을 때도 있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차설아를 말리고 싶었다.“설아야, 지나간 일을 다시 들춘다고 해서 바뀌는 건 없어. 그러니까 이쯤에서 옛날 일은 다 잊고 충실하게 살아가자...”그러나 차설아의 고집은 쉽게 꺾이지 않았고 그저 남아름을 향해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저도 제 분수를 알아요.”원두가 다 갈리자, 차설아는 성도윤의 요구에 따라 정성스럽게 커피를 내렸다.정자에 앉아 차설아가 오기만을 기다리던 성도윤은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이어 약간의 불만이 섞인 말투로 물었다.“커피 한 잔을 타는 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려요?”어느새 차설아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그는 커피를 기다리는 것보다 그녀를 기다리는 마음이 더 컸다.“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기다림이 필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똑같이 맛있는 커피를 마시려면 그만한 기다림이 필요한 법이에요.”차설아는 손수 내린 커피를 성도윤의 손에 쥐어주며 말을 이어 나갔다.“이 커피를 마시면 단언컨대 사랑에 빠질
차설아는 기대에 부푼 초롱초롱한 눈으로 성도윤을 바라보면서 물었다.“어때요?”성도윤을 입을 오므리며 부드러운 커피가 혀를 통해 목구멍으로 흘러 들어가는 느낌을 만끽했다.“내가 마셔본 커피 중에서 제일 맛있어요! 뭔가 오래된 친구를 만난 느낌이랄까.”비록 성도윤은 까다롭기 짝이 없는 데다가 트집 잡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만, 차설아가 내려준 커피는 단번에 그를 중독시킬 만큼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다.차설아는 성취감에 교만한 표정을 지었고 턱까지 치켜들면서 답했다.“당연하죠! 누가 만든 커피인데요!”차설아는 성도윤의 취향에 맞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 전문적으로 배웠었고, 그의 아낌없는 찬사는 그녀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으며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다.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시자, 복잡했던 기적의 퍼즐이 조금씩 맞춰지면서 차설아와 관련된 일부 장면이 그의 머릿속에서 번쩍였다. 안개에 감춰진 흐릿한 장면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려고 노력하는 그를 더 고통스럽게 했다.성도윤은 얼굴을 찌푸렸고 손바닥을 이마에 대면서 약간 일그러진 표정을 지었다.“빌어먹을!”차설아는 즉시 이상함을 감지하고 그에게로 다가가 어깨를 부축하며 걱정되는 목소리로 물었다.“왜 그래요?”그는 갑자기 현기증이 났고 속까지 울렁거려 가쁜 숨을 내쉬면서 말했다.“내가 예전에 이 커피를 마셔본 것 같아요. 하지만 기억을 떠올리려고 할수록 점점 더 흐릿해져서 너무 괴로워요...”차설아는 문득 의사의 당부가 떠올라 성도윤의 등을 몇 번 쓰다듬으며 긴장을 풀어주려 했다.“도윤 씨, 그만 생각하고 얼른 심호흡해요.”복잡한 뇌 수술을 받은 성도윤은 적절한 휴식이 필요했고 억지로 기억을 떠올리려고 할수록 대뇌에 무리가 가서 심할 경우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었다.그래서 차설아는 그가 헛된 생각을 하지 않도록 깊은 대화를 나누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커피 한 잔이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칠지 상상도 못 했다.“대체 어디서 이 커피를 마셔 봤을까요?”성도윤은 여전히 한숨을 내쉬며
그녀는 이를 악물고 정신을 다잡으려고 노력했다.“그뿐만이 아녜요!”성도윤은 손가락의 힘이 세지고 말투가 더욱 거칠어졌다.“나는 내가 회복되는 날을 기다릴 수 없을 것 같아요. 말해 봐요, 당신과 나 사이에 도대체 무슨 과거가 있었던 거죠?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분명 은아인데 왜 당신은 매번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거예요?”그가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단지 자신이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기억을 더듬을 때마다 그는 칼로 끊임없이 자신의 뇌를 자르는듯한 고통을 느꼈고 현기증이 났다.“난... 윽!”차설아는 결국 참지 못하고 아픔에 소리를 질렀다.“왜 그래요?”성도윤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즉시 손을 놓았다.“아무것도 아니에요, 당신 손에 힘이 너무 세서 아파서 그래요.”차설아는 숨을 죽이고 손목의 거즈를 조심스레 정리했는데 피가 배어 나왔다.마음속으로 그녀는 지금의 자신을 원망했는데 피가 조금 났다고 이렇게나 허약하니 만약 이럴 때 적과 마주친다면 분명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쓰러질 것이다.차설아가 정신을 다시 다잡기도 전에 민이 이모의 긴장된 목소리가 들렸다.“아가씨, 큰일 났어요!”민이 이모는 황급히 뒤뜰에 와서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성도윤이 아직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는 말을 멈추었다.“괜찮아요, 무슨 일 있으면 그냥 말씀하세요.”차설아는 성도윤을 힐끗 쳐다보고는 담담하게 민이 이모에게 말했다.“누가 찾아왔는데 오 원장님께서 조금은 감당하기 버거워하시는 것 같아요. 두 분 좀 피해계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민이 이모는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찾아온 사람이 정말 상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러나 차설아는 천성적으로 나약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녀의 사전에 후퇴란 없었다.“찾아왔으니 쉽게 물러서지 않을 거예요. 얼마나 상대하기 어려운 지 한 번 봐야겠네요.”차설아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그 사람을 만날 준비를 했다.그러나 민이 이모는 그녀의 손목에서 새어 나온 핏자국을 한눈에
두 사람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을 때 민이 이모의 입에서 나온 '문제'는 이미 코앞까지 닥쳐왔다.이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줄곧 차설아 곁을 맴돌고 있는 성진이었다.“도윤아, 정말 말도 안 돼...”성진은 평소 산만한 차림에서 벗어나 올백 머리를 하고 양복을 단정히 차려입고 있었는데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갔다.“해안 전체에 네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성가와 서가는 모든 힘을 동원하여 널 찾아 나섰어. 이곳에 갇혀 있었다니... 네가 즐길 줄 아네.”“성진, 여긴 웬일이야?”차설아는 무슨 짐승을 보듯 두 팔을 벌려 성도윤의 앞을 가로막고 성진을 노려보았다.“지금 뭐에요? 도윤이를 지키려고?”성진의 교활한 눈매는 마치 천년 산 여우처럼 차설아와 성도윤을 쓸어보며 의미심장한 냉소를 지었다.“당신이 얼마나 큰 소란을 피웠는지 아는 거예요?”차설아는 성진을 상대하지 않았고 고개를 돌려 민이 이모에게 말했다.“민이 이모, 먼저 이 사람을 여기서 데리고 나가세요, 이 녀석은 저에게 맡겨주시면 돼요.”민이 이모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성도윤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도련님, 저를 따라오세요.”“만지지 말아요!”성도윤은 눈살을 찌푸리고 민이 이모의 손을 차갑게 뿌리치며 말했다.“당신들 눈에는 내가 뭐로 보여요? 내가 여자 뒤에만 숨어야 하는 겁쟁이예요? 난 내가 아직 이 정도로 무능하지는 않다고 생각하는데!”“그게...”민이 이모는 어색하게 자리에 굳어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차설아는 고개를 돌리고 성도윤을 향해 말했다.“아무도 당신을 겁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만 이 사람이 좋은 목적으로 찾아온 건 아니고 당신은 지금 열세에 처해있으니 지금 이렇게 자존심을 세우는 건 저 사람한테 유리한 거잖아요?”‘그게 뭐 어때서요, 이건 우리 성가의 원한이에요. 외부 사람이 끼어드는 건 아니지 않나요?”성도윤은 오만했는데 남자들의 대결에서 지고 싶지 않았다.한 여자의 뒤에 숨어서 잠시의 안녕을 고하는 것보다 그는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성진은 손을 펴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 않으면 너도 알겠지만 성대 그룹의 규정에 따를 수밖에...”차설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빠르게 되물었다.“성대 그룹 무슨 규정?”“성대 그룹에서 인수인은 반드시 건강하고 민사행위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명문화되어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법정 상속인 중에서 새로운 인수자를 선발할 의무가 있다...?”“그래서 네가 이렇게 많은 일을 하는 이유는 그가 민사행위 능력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구나. 그리고 네가 다시 성대 그룹의 법정 상속인으로 순리대로 이 사람을 대체하는 거?”“이런 음모는 하지 말아요. 난 단지 도윤이의 건강 상태를 걱정하고 있을 뿐이에요. 도윤이를 대신하여 성대 그룹 대표를 맡을지 말지는 이사회의 결정이니 존중할 수밖에 없죠.”“쯧쯧, 고상한 척은!”성진의 이 말은 차설아의 화를 돋웠다.반면 성도윤은 담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이는 확실히 성대 그룹의 명문 규정이니 난 현임 대표로서 당연히 규정을 지킬 거야. 이사회에서 이미 결정이 난 일이라면 난 더는 할 말이 없어.”“역시 우리 도윤이.”성진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웃음을 지었다.이때 성대 그룹 임원진 8명과 의료평가팀이 도착했다.이 8명의 이사회 구성원들은 성도윤의 심복들, 중립자들이 있었다. 지금 그들의 목적은 오직 하나, 그건 바로 성도윤이 소문대로 실명하고 뇌에 손상을 입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만약 성도윤이 실명하고 뇌에 손상을 입은 것이 확인되면 성대 그룹의 미래를 위해 이들은 성도윤의 심복이든 아니든 만장일치로 성도윤을 퇴진시킬 예정이다.성진의 이 수법은 정말 확실하고 잔인했는데 성도윤의 약점을 정확히 명중했다.“대표님, 드디어 대표님을 찾게 되어 다행입니다.”이사회 구성원 중 한 명인 소인성은 항상 성도윤에게 충성하던 인물이다.그는 한눈에 멀쩡하고 생기발랄한 성도윤을 보고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며 나머지 이사회 성원들을 향해 말했다.“이것 보세요, 내가 외부의 그 소문들이 모두 헛소리라고
차설아의 포스가 너무 강한 나머지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멍해져서 감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그게...”의료평가팀 사람들은 난색을 보이며 이사회 사람들과 성도윤을 번갈아 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쯧쯧, 가여운 여자.”성진은 성도윤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차설아를 냉랭하게 바라보았다, 그의 웃음 속에는 음산한 기운이 풍겼는데 그는 가슴이 답답하여 미칠 것 같았다, “내 남자라... 도윤이도 아는 사실이야?”남자는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서 몸을 숙여 그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당신이 이토록 사랑하는 남자는 당신이 누구인지도 기억을 못 하는데... 이 정도면 도윤이 마음속에서 당신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는 너무나 잘 알리는 거 아닌가? 그런 당신이 불쌍하지도 않아요?”“......”차설아는 양미간을 찌푸렸는데 그의 말에 심장이 멎는 듯싶었다.성진 이 녀석, 말이 정말 독하네, 그녀의 가장 아픈 곳을 이렇게나 콕콕 찌르다니.그러게 말이야, 성도윤 이 나쁜 놈 정말 너무하네. 어떻게 모든 사람을 기억하면서 하필이면 나를 잊을 수가 있지?성진은 차설아 눈빛의 상처를 보고 만족스럽게 몸을 바로 세우고 정색을 하며 말했다.“어쨌든 이것은 성가와 성대 그룹 내부의 일입니다. 나는 당신이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지 말라고 충고하는 것뿐입니다. 성대 그룹은 지금 아주 혼란한 상태에요. 우리 이사회는 많은 주주에게 설명을 해야 합니다. 따라서 당신이 협조할 수 있기를 바래요. 얼굴을 붉히는 건 좀 그렇잖아요.”“나는 당신들이 누구에게 설명하든 말든 상관 안 해. 내가 있는 한 당신들 누구도 그를 건드릴 생각을 하지 마, 믿지 못하겠으면 어디 한 번 해보든가!”차설아는 주먹을 불끈 쥔 채 서늘한 표정으로 이들을 바라보며 공격 자세를 취했다.성대 그룹은 성도윤이 수년간 심혈을 기울여 온 사업으로 그가 모든 열정을 쏟아붓고 있는데 인제 와서 다른 사람한테 내주는 것은 생각만 해도 잔인한 일이 아닌가? 그래서... 그녀는 결코 성진이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