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마친 강백만은 몸을 돌려 불편한 자세로 방으로 돌아갔고, 하영은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둔 뒤 백지영을 바라보았다.“고마워요.”그러자 백지영은 자신의 주먹을 휘둘러 보였다.“하영 씨, 겁낼 것 없어. 내일 출근하면 내가 저 인간들을 지켜볼게!”하영은 길게 말할 기분이 아니라 고개를 끄덕이고 세희에게 다가갔다. 딸아이가 울어서 눈이 퉁퉁 부은 것을 보자 가슴이 아파와 얼른 품에 껴안았다.그때 옆에 있던 구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별다른 문제는 없어요. 그저 세희의 머리카락이 조금 많이 뽑힌 것 같더군요.”하영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다.“아가, 엄마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세희는 작은 얼굴을 하영의 품에 묻으며 작은 손으로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엄마……. 다시는 저 나쁜 사람들을 보고 싶지 않아요. 얼른 우리 집에서 나갔으면 좋겠어요.”세희가 작은 몸으로 흐느끼며 말하자, 하영은 화를 꾹꾹 참으며 세희를 달래주기 시작했다.“그래, 엄마가 이틀안에 반드시 집에서 내보낼게, 알겠지?”세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세희는 만약 아빠가 나쁜 아빠가 아니라면, 자신을 위해 나쁜 인간들을 때려주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봤다.그런 생각이 들자 세희는 더욱 서러워지기 시작했다.세희도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고, 다른 친구들처럼 자신을 지켜주는 아빠를 원했다.강백만이 걷어차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식구들은 부리나케 뛰어와 강백만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강백만의 얼굴에 벌겋게 손바닥 자국이 나 있는 것을 본 강미정은 펄쩍 뛰기 시작했다.“강하영 그년이 한 짓이지? 정말 우리 집안이 만만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구나! 오늘 절대 가만 두지 않을 거야!”강미정은 두 소매를 걷어 올리고 방문을 나섰고, 강백만이 말리려 했지만 그녀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유국진도 얼른 강미정의 뒤를 따랐다.“여보! 절대 흥분하지 마!”강백만은 입을 벌린 채 미처 말리지 못했고, 3분도 채 지나지 않아 계단에
“그렇구나.”지영은 천천히 식칼을 꺼내 들더니 그들 앞으로 바짝 다가왔다.“다들 인정하지 않으니 다 죽여버릴 수밖에 없겠네.”강씨네 식구들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눈을 동그랗게 떴고, 이어 식구들의 비명소리가 온 별장에 쩌렁쩌렁 울리더니 강씨네 식구들은 앞다투어 강백만의 방에서 뛰쳐나왔다.저녁.캐리가 연신 하품하며 집으로 돌아와 거실이 텅 비어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G가 드디어 그 인간들을 쫓아냈나?’그러나 캐리는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강의영을 보고 금세 생각을 버렸다.캐리 앞을 지나가던 강의영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캐리를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정말 뻔뻔한 기생충이라니까.”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욕을 얻어먹자 어안이 벙벙해진 캐리는 앞으로 다가가 강의영을 붙잡았다.“방금 누구한테 한 얘기야?”“그쪽 말이야! 양코배기 주제에! 그쪽만 없었으면 그 방은 내 차지가 됐을 거야!”그 말에 캐리가 웃음을 터뜨렸다.“네 방이라 그거지? 좋아!”캐리는 몸을 일으켜 다용도실에 들어가더니 회초리를 가져 와 강의영의 엉덩이를 때렸다.깜짝 놀란 강의영은 서둘러 도망치며 몽둥이를 피했다.“감히 때리기만 해봐! 엄마한테 다 이를 거야!”“어디 한번 실컷 소리 질러 봐! 누가 도와주나 두고 볼게!”캐리는 강의영의 옷깃을 잡아 바닥에 누르고 회초리로 엉덩이를 때렸다.귀청이 찢어질 듯한 강의영의 비명에도 3층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설령 비명을 들었다고 해도 백지영이 밖에서 지키고 있기 때문에 감히 나오지 못했다.늦은 밤.강씨네 식구들은 모여들어 앞으로의 계획을 짜기 시작했고, 강미정이 강백만에게 물었다.“돈은 받아냈어?”강백만은 고개를 저으며 자기 얼굴을 만졌다.“뺨까지 맞았는데 언제 그럴 시간이 있었겠어?”“나한테 좋은 방법이 있어!”강미정의 말에 유국진이 물었다.“혹시 우리가 가져간 시계들 말이야?”그 말에 강백만은 의아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보며 물었다.“뭘 가져갔다고? 나는 왜 전혀 모르고
강백만은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다.“엄마, 이 서류는 나한테 맡겨! 내가 팔아넘길게!”“그래. 이 일은 너한테 맡기고, 보석이랑 장신구는 나랑 네 아버진한테 맡겨!”“괜히 시간 끌지 말고, 내려가 아침밥 먹고 바로 출발하자!”강백만의 말에 강씨네 식구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서재에서 나와 아침 식사 준비를 했다.시간이 촉박했기에 강씨네 식구들은 다들 주방에 모여 바삐 돌아쳤고, 그들을 지켜보던 지영이 어느새 주방에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유국진은 계란 후라이를 만들어 식탁에 올려놓으려고 몸을 돌리는 순간 누군가와 부딪치고 말았다.하마터면 접시를 손에서 놓칠 뻔한 그는 고개를 들어 뭐라 한마디 하려고 했는데, 지영을 발견하는 순간 깜짝 놀라 접시가 손에서 미끄러졌다.쨍그랑-접시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에 강백만과 강미정은 고개를 돌렸고, 강미정을 발견하는 순간 얼른 구석으로 숨었다.유국진은 뒤늦게 소리 지르며 주방을 뛰쳐나갔고, 강미정과 강백만도 겁에 질려 벌벌 떨며 뒤따라 뛰쳐나가며, 세 사람은 지영을 피해 거실로 피했다.“깜짝이야! 대체 언제 내려온 거야? 인기척을 전혀 못 느꼈는데!”강미정의 떨리는 목소리에 유국진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바, 방금 바로 내 앞에 서 있었는데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어. 혹시라도 또 식갈을 빼 들고 내 목이라도 칠까 봐 얼마나 무서웠는데!”그때 세 사람은 백지영이 또 거실로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엄마야!”강미정은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식구들을 데리고 빠른 속도로 소파 가장자리로 향했고, 지영은 그런 그들을 유유하게 바라보다가 강씨네 식구들 곁에 털썩 앉았다.그 모습에 강씨네 식구들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눈을 부릅뜨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 후 소파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더니 비틀거리며 계단을 올랐다.지영은 계단 위에서 감히 내려오지 못하는 강씨네 식구들을 힐끗 쳐다보고는 소파에 편안히 기대앉아 TV를 시청하기 시작했다.유국진의 놀란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끝, 끝이 없네…….”강미정은
그러자 하영이 피식 웃었다.“내가 당신들을 갖고 놀아요? 물건은 당신들이 내 동의도 거치지 않고 가져갔잖아요. 법적으로 그건 명백한 절도예요. 그리고 회사 기밀문서가 얼마나 중요한 건데, 그걸 몰래 팔아넘기려 했으니 상업 범죄에 속하죠.”강미정은 강백만을 밀치며 화가 잔뜩 치밀어 오른 얼굴로 하영의 앞으로 다가왔다.“우리가 훔치는 걸 네가 봤어?”“꼭 봐야 할 필요가 있겠어요? CCTV에 다 찍혔는데.”그 말에 강미정의 표정이 변했지만, 생각해 보니 하영의 서재엔 분명 CCTV가 없었고, 하영의 방에도 마찬가지로 CCTV는 존재하지 않았었다.‘어쩌면 일부러 우리를 떠보려는 것일 수도 있어!’“CCTV? 그럼 당장 확인해 보면 되겠네! 만약 증거도 없이 이러는 거면 오늘 그 입을 찢어버릴 줄 알아!”강미정의 당당한 말에 하영은 형사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형사님, 제가 보내드린 CCTV 영상 저 사람들에게 확인시켜 주세요.”형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노트북을 꺼내 증거 자료를 강씨네 식구들에게 내밀자, 강씨네 식구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하기 시작했다.“그럴 리가 없어! 방안엔 분명 CCTV가 없었단 말이야!”“엄마!”강미정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강백만이 갑자기 큰 소리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순간 말이 헛나왔다는 것을 깨달은 강미정은 뒤늦게야 아차 싶었다.그러자 형사가 엄숙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본인 입으로 인정한 것 같은데, 더 변명할 것이 있습니까?”강씨네 식구들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고, 형사가 그들 손에 수갑을 채워 경찰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던 하영은 그제야 홀가분하게 한숨을 돌렸다.다행히 하영은 경호원들을 시켜 미리 방안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서, 강씨네 식구들의 범죄 행각을 찍었다.하영이 그렇게 한 것은 탐욕에 눈이 먼 그들이 분명 값진 물건에 눈독들일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영은 청소부 아줌마를 불러 별장을 깨끗이 청소한 다음, 새로운
영업팀 부장이 기뻐서 날뛰며 입을 열었다.“대표님, 실검을 잘 확인해 보세요. 저희 공장의 직원들도 인터뷰했거든요!”“인터뷰?”하영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휴대폰을 확인하기 시작했다.두 번째 실검은 하영이 사무실로 들어오기 몇 분 전에 올라왔는데, 제목은 [충격! TYC 대표가 직원들에게 한 행동들!]이었다.하영이 영상을 클릭해서 자세히 보니, 부공장장과 모든 공장 직원이 보상계약서를 들고 카메라와 마주하고 있었다.그들이 입원과 실직 상황에 놓였을 때, 하영이 경제적 측면에서 얼마나 도움을 줬는지 언론에 자세하게 얘기해 줬다.영상 댓글에는 TYC 브랜드를 구매하라는 호평이 쏟아졌고, 덕분에 짧은 시간 안에 판매량이 예전의 3배나 증가했던 것이다.마침내 먹구름이 걷히고 본궤도에 올랐다는 생각에 하영의 코끝이 찡했다.기존의 공장도 시공에 들어갔고, 제품도 이전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양으로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국내 시장까지 완전히 점령하게 된 셈이다.하영은 기쁜 표정을 뒤로하고 영업팀 부장을 보며 입을 열었다.“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있죠. 그래도 고객들한테는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네, 알겠습니다!”부장이 사무실을 나가자 이번에는 캐리가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들어왔다.캐리는 한쪽 발에는 구두, 다른 한쪽엔 슬리퍼를 신고, 마구 헝클어진 머리를 한 채 흥분하기 시작했다.“G! 회사가 다시 일어났어!”하영은 캐리의 괴상한 차림을 보고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금방 일어난 거야?”“그래! 전화 받자마자 바로 달려왔지!”하영은 손을 들어 캐리의 신발을 가리켰다.“부사장님이란 사람이 그렇게 돌아다니면 이미지에 타격을 받지 않을까?”캐리는 하영의 손길을 따라 자기 발을 보더니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헐!”그리고 머리를 긁적이더니 그대로 소파에 앉았다.“상관없어, 너한테 할 얘기가 있었거든.”“얘기해.”“김제에서 내일 5년에 한 번 열리는 디자인 전시회가 있다고 하는데,
하영은 머리가 윙윙 울리는 것을 느끼며 씁쓸한 표정으로 물었다.“캐리가 데려온 팀이 회사에 악영향을 끼친 것도 아닌데,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어?”하영은 캐리가 회사를 위해 이토록 신경 써주는 것에 대해 어떤 말로 감사를 전해야 할지 몰랐다.키래가 비록 바람둥이 기질은 있지만, 여자와 만나 잠자리를 가지는 것에 엄격한 기준이 있었다.캐리가 찾은 여자들은 대부분 첫사랑과 비슷했고, 아무리 이쁜 여자라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리사는 첫사랑과 전혀 닮지도 않았고 심지어 나이도 훨씬 많았으니, 캐리가 김제를 떠나기 전에 아주 큰 결심을 하게 된 게 틀림없었다.‘어쩐지, 그래서 어머니가 결혼한다는 핑계로 나를 속인 거였어.’캐리는 콧방귀를 뀌며 입을 열었다.“내가 원해서 한 거야!”그러자 하영이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알았어. 이번에 나도 같이 갈게.”저녁.하영이 애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세희가 풀이죽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엄마, 저 집에 가기 싫어요.”세희의 불안한 표정에 하영은 가슴이 옥죄듯이 아파왔다.만약 진작에 강씨네 식구들을 쫓아냈으면 세희가 상처 입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세희의 얼굴을 어루만졌다.“세희야, 겁낼 것 없어. 이제 집에 돌아가면 알게 될 거야.”세희는 의아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엄마, 왜요?”세준도 세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입을 열었다.“엄마가 저렇게 말씀하실 땐, 우리한테 분명 즐거운 일이 있을 거라는 뜻이야.”세준은 이미 인터넷에서 실검을 확인했지만, 엄마가 말씀하지 않는 것을 보니 세희에게 서프라이즈를 주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니 세준도 세희에게 일단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세희는 아직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이다.‘혹시 엄마가 그 나쁜 사람들을 죽여버린 건가? 그럼 형사 아저씨들이 잡아가는 거 아냐?’세희는 궁금했지만 감히 묻지 못했고, 불안한 마음으로 아크로빌에 도착했고, 집안에 들어서는 순간 그제야 두 눈을 크게 떴다.거실에 있던 소파도 새것
정 노인은 피식 웃었다.“그저 반반한 얼굴로 남자나 홀리는 여우 같은 년이다!”“아버지!”주원이 한숨을 내쉬고 다시 말을 이었다.“아버지 말씀처럼 그런 여자는 아닌 것 같았어요. 두 번 정도 마주친 적이 있는데 온화하고 예쁜 여자였어요.”그 말에 정 노인은 미간을 찌푸렸다.“주원아, 설마 너도 그 여자가 마음에 든 거야?”“아버지, 제가 어떻게 유준의 여자를 빼앗겠어요?”유준이 담담한 표정으로 웃으며 대답했지만 얼굴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그 모습에 정 노인은 불쾌한 표정으로 컵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신분도 뭣도 아닌 여자니까 절대 우리 정씨 집안에 들일 생각 없다! 네 마음에 든다면 대충 갖고 놀다가 버려도 상관없지만, 결혼이라면 반대다!”“아버지, 그 여자 정유준이랑 무슨 관계입니까?”“아무 관계도 아니다! 그저 유준이 갖고 놀다 버린 정부일 뿐이야!”말을 마친 정 노인은 실눈을 뜨고 주원을 바라보았다.“주원아, 그런 여자한테는 딴맘 품지 말 거라!”“죄송합니다, 아버지. 아마 실망시켜 드릴 것 같네요.”주원의 낮은 대답에 깜짝 놀란 정 노인은 약간 화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세상에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하필이면 그 여우 같은 년이 마음에 든다는 거야?”“아버지, 저도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지 못했는데 제가 그 여자를 좋아하게 됐어요.”“그 여자는 아이도 있어!”“상관없어요.”정 노인은 크게 놀라고 말았다.‘강하영, 그 여자가 대체 얼마나 매력적이기에 두 아들 전부 한 여자를 좋아하게 된 거야?’큰아들의 집요함과 진지한 표정에 정 노인의 마음도 누그러지고 말았다.정주원한텐 마음의 빚도 있고, 정말 좋아한다면 한발 물러서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그래, 네 마음대로 하거라. 성격이 불같은 여자니까 노력해야 할 거다.”주원은 정 노인을 향해 살짝 허리를 굽혔다.“감사합니다, 아버지.”정 노인이 주원의 표정을 주의하지 않은 순간, 그의 눈가엔 싸늘한 웃음기가 스쳤다.다음날.하영이 애들을 데려다주는
인나의 말에 하영은 깜짝 놀랐다.‘내일? 내일이면 인나 생일인 것 같은데!’하영은 미안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미안, 네 생일을 깜빡 잊을 뻔했네. 이번엔 어떻게 보낼 거야?”“너 너무 바쁜 사람이잖아! 바빠서 나도 잊었지? 어떻게 보상해 줄 거야?”“별마당 캠핑장으로 가는 건 어때? 내가 이따가 그쪽에 연락해서 텐트랑 그릴 준비해 놓으라고 할게.”“좋아! 자세한 건 저녁에 다시 상의해 보자!”“그래.”전화를 끊자 두 녀석이 하영한테 바싹 붙더니, 세희가 헤헤 웃으며 물었다.“엄마, 저도 데려가면 안 돼요?”“물론이지! 엄마가 내일 선생님께 허가를 받을 테니까, 같이 가서 재밌게 놀다 오자.”그동안 너무 바쁜 탓에 애들이랑 자주 놀아 주지 못했으니, 모처럼 이번 기회에 애들을 데리고 놀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아싸!”세희는 격동된 표정으로 하영의 볼에 힘껏 뽀뽀해 줬다.“정말 놀기 좋아한다니까.”세준도 입은 웃고 있으면서 일부러 핀잔을 주자, 세희는 코웃음을 쳤다.“오빠는 조용히 있어!”애들을 유치원 입구에 데려다 줬을때 마침 차에서 내려오는 희민을 발견하고, 잠시 생각하다가 앞으로 다가갔다.“희민아.”희민은 자기를 부르는 목소리에 얼른 몸을 돌려 하영을 발견하고는 눈을 반짝였다.“엄마.”하영은 몸을 숙이고 희민이에게 물었다.“희민아, 내일 엄마랑 놀러 갈까?”그러자 희민은 입술을 꾹 깨물며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아빠가 동의하실지 모르겠어요…….”“그런 건 엄마한테 맡겨. 엄마랑 별마당 캠핑장에 가서 놀자.”희민의 검은 눈동자가 반짝이기 시작했다.“정말요?”“그럼! 이따 저녁에 문자 보낼게”“네.”애들이 유치원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차에 올라 탄 하영은 유준에게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한참 고민하던 하영은 일단 웃는 이모티콘을 보내 유준의 기분을 알아보려 했다.어쨌든 며칠 전에 듣기 싫은 말을 한 적이 있으니 말이다.같은 시각, MK.회사에 도착하자마자 하영의 문자를 받은 유준은 조금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