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군가 펜과 종이를 건넸다. 고여정이 정답을 쓴 종이를 접어 테이블 위에 올리고 고개를 들더니 말했다. “말해.”신우가 말했다. “대학교 4학년 파티하던 날 밤, 너희 숙소 아래서.”고여정이 멈칫하더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섞여 있었다. 신진성이 테이블 위에 놓인 종이를 펼쳐보았다. 위에는 “극장”이라는 두 글자가 쓰여져 있었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정말 다르잖아. 너희 둘, 대체 누가 잘못 기억한 거야?”신우가 웃으며 부드러운 눈빛으로 고여정을 바라보았다. “네 생일날 극장을 말하는 거야?”고여정의 눈꺼풀이 떨려왔다. “알면서 잘못 말한 거야?”신우가 말했다. “내가 잘못 말한 게 아니야. 내가 처음으로 너한테 입 맞춘 건, 졸업식 파티가 끝난 뒤였어. 그날 네가 취해서 잊어버린 거야. 극장에서 그때는, 사실 두 번째였어. 하지만 너한텐 첫 번째지. 그러니까 우리 둘 대답이 다 맞아.”고여정이 입술을 앙다물고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의 생일날 극장에서는 두 사람은 사실 키스를 하지 않았다. 다만 신우가 그녀의 얼굴에 가볍게 입맞춤을 했을 뿐이었다. 진정한 첫 키스는 사귀기로 한 그 해 밸런타인데이 극장에서였다. 고여정은 눈을 감았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어렴풋이 파티장에서 자신을 안고 있던 사람이 떠올랐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도 디테일은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날 누군가 친구에게 부탁해 그녀에게 해장국을 보냈던 것은 기억했다. 그녀는 한참을 알아보고 나서야 그 사람이 신우였다는 것을 알아냈다. 하지만 그녀가 신우에게 물었을 때, 그는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고여정은 눈을 뜨고 옆에 있는 남편을 쳐다보았다. 처음 신우가 그녀를 따라다녔을 때, 로맨틱했고 또 열정적이었다. 하지만 사귀고 나서 그는 어쩐지 이 관계에 조금 무관심한 듯 보였다. 데이트를 할 때든, 일상에서든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했을 때만큼의 열정을 느낄
“왜 그래?”신우가 그녀에게 다가와 물었다. 번뜩 정신이 든 그녀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한 번도 나한테 졸업식 파티 저녁에 있었던 일을 말해 준 적이 없었어.”신우가 웃었다. “몰래 입맞춘걸, 내가 어떻게 감히 떠들겠어?”한성우가 손을 흔들었다. “그만해. 부부의 애정행각은 사절이야.”그는 아직 다른 사람의 사생활도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다음 라운드에서 바로 자신이 걸려버렸다. 한성우의 운은 강한서와 비겨도 도긴개긴이었다. 그가 질문지를 펼친 그 순간, 사람들은 폭소했다. 한성우의 질문은 “20 이상, 아니면 20 이하?”였다. 그 질문에 한성우의 얼굴은 바로 어두워졌다. “누가 쓴 질문이야, 일어나봐요! 왜 강한서는 18이고 나는 20인데?”강한서는 한성우의 모습을 보며 웃고 있었다. “20 이하만 아니면 비슷하잖아. 왜 그렇게 흥분해? 설마, 이하인 거야?”한성우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그는 강한서를 향해 중지를 치켜세우더니 남자로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단호하게 술을 마셨다. 그는 20 이상을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강한서와 한성우가 이상한 질문 대부분을 걸러냈다. 마지막 라운드에 주강운이 걸렸고 그는 벌칙을 선택했다. 그는 자리에서 유일하게 벌칙을 선택한 사람이었다. 그가 뽑은 미션은 왼쪽에 있는 사람에게 1분간 딥키스하는 것이었다. 그 미션을 본 사람들은 유현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유현진: …강한서의 얼굴이 순식간에 파랗게 질렸고 얼른 손을 들어 그 벌칙을 반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유현진이 웃으며 말했다. “전 의견이 없지만, 아이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으실 것 같은데요.”그녀가 말하며 공간을 확보하자, 사람들은 그제야 그녀와 주강운 사이에서 두리안 크러스트를 먹고 있는 네, 다섯살 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이는 고개를 쳐들고 요리조리 이상한 어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남자아이의 부드러운 머리칼을 쓸어내리며 천천히 말했다. “법으로도 허락하지
유현진은 밖에서 한참 있고 난 뒤에야 들어갔다. 주강운이 어떻게 그 라운드를 넘어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강한서는 그녀가 자리를 비운 사이 또 게임에 진 것 같았다. 그의 얼굴이 유현진이 자리를 비우기 전보다 더 빨개져 있었다. 아마 또 술을 마신 것 같았다. 술을 거절할 줄 모르는 바보. 그는 자신의 주량을 전혀 모르는 듯했다. 유현진은 민경하에게 문자를 보내 강한서를 데리러 오라고 했다. 그녀는 강한서가 갑자기 취해서 헛소리를 지껄일까 두려웠다. “뽑아요.”주강운은 뽑기용 종이박스를 그녀 앞으로 건네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 라운드만 끝나면 집에 데려다줄게요.”유현진은 종이를 뽑으며 말했다. “강운 씨는 계속 놀아요. 전 아직 볼 일이 좀 있어서, 택시 타고 가면 돼요.”주강운이 웃었다. “만약 제가 현진 씨를 혼자 보내면, 오늘 밤 연기는 다 물거품이 돼요.”유현진은 그런 것까지 신경 쓰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누군가 새로운 라운드가 시작됨을 알렸다. 유현진은 어쩔 수 없이 이번 라운드가 끝나고 다시 얘기할 생각으로 말을 삼켰다. 새로운 마피아 게임의 규칙은 간단했다. 사람마다 종이를 한 장 뽑고, 각자 자신의 종이에 적힌 물건을 묘사하면 되었다. 그 중 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물건이 적혀 있고, 사람들은 각자의 묘사를 통해 누가 다른 사물인지 추측하고 그 사람을 잡아내면 마피아의 실패였다. 게임에서 진 사람은 신혼부부를 대신해 결혼식 비용을 제외한 기타 하객들이 호텔에서 소비한 모든 비용을 계산해야 했다. 7성급 호텔, 판이 꽤 커졌다. 게임 벌칙을 들은 차미주는 바로 게임에서 빠지고 싶었다. 한성우가 그녀를 잡으며 말했다. “무서워하긴. 지면 이 오빠가 다신 계산해 줄게.”차미주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정말 지면, 넌 바로 날 버리고 가버릴 거지?”한성우가 웃으며 주머니에서 스포츠카 차키를 건네주었다. “차를 너한테 맡기면 돼?”차미주는 얼른 차키를 가져왔
1라운드에서 알아낸 정보는 너무나도 적었고 사람들은 전부 기권을 선택했다. 그렇게 바로 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2라운드의 검증 기회는 고작 3번뿐이었기에 만약 검증 실패하게 되면 바로 팀에서 아웃시킬 수 있었다.그래서 확신이 서지 않는 상황에 검증할 때 신중하게 생각하고 검증해야 했다.2라운드.신진성이 입을 열었다.“포장된 물건은 조금 축축한 물건이죠.”신우가 말했다.“이걸 안 쓰면 더 편합니다.”강한서는 신우를 힐끔 쳐다보더니 묵묵히 속으로 인정했다.고여정이 말했다.“그래도 전 쓰는 걸 더 좋아해요.”이번엔 한성우 차례였다.“전 한 번도 쓴 적이 없습니다.”자신의 순서가 된 차미주가 말했다.“이것엔 여러 가지 색이 있죠. 그중에서 전 검은색 레이스가 찍힌 걸 더 좋아하고요.”강한서는 멈칫하더니 이내 놀란 표정을 지었다.조준이 입을 열었다.“이걸 사용하기 전에는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해요.”이어서 주강운이 설명했다.“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건 아닙니다.”유현진의 차례였다.“사용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아요.”드디어 강한서 차례였다.“도중에 새것으로 바꿀 수도 있죠.”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바꾼... 다고?'유현진은 침묵을 지켰다.그녀는 대충 강한서가 뽑은 종이에 뭐가 적혀 있는지 알 것 같았다.그녀가 고개를 들고 강한서에게 눈치를 주려 했다. 그러자 강한서는 턱을 세우며 자신만 믿으라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강한서가 엉뚱하게 느껴졌다.유현진은 사람들이 다른 곳에 신경 쓰고 있는 틈을 타 두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을 짚었다.강한서는 멈칫하더니 이내 알아차린 듯 엄지와 검지를 맞대 ‘OK’ 모양을 했다.유현진은 자신의 뜻을 알아챈 듯한 강한서의 모습에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다만 방금 두 사람의 행동은 아마도 사람들의 의심을 살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그러나 그들이 두 사람을 의심하기도 전에 신진성의 신부가 바로 사람들의 집중력을 흩트렸다.“전 하루에 세 번까지 바꿔본 적이 있어요.”그렇게
설명이 끝나고 누가 마피아인지 이미 명확하게 밝혀지게 되었다.게임 심판은 사람들에게 마피아를 가리키라고 했다.한성우는 차를 홀짝이며 마시면서 빙그레 웃었다.“이걸 굳이 짚어낼 필요 있어요? 오늘은 강 대표가 쏘는 거죠.”차미주가 아직 눈치를 채지 못한 듯 말했다.“뭐야 뭐야? 누가 마피아인데?”한성우가 턱으로 강한서를 짚었다.“한서잖아.”“뭐? 왜? 왜 강한서야?”“강한서는 근시잖아. 콘택트렌즈를 어떻게 살면서 딱 한 번밖에 못 써봤겠어?”차미주는 알 듯 말 듯 한 표정을 지었고 계속 물었다.“그럼 강한서가 뽑은 건 뭔데?”한성우가 웃으면서 말했다.“우리가 뽑은 건 일상에 필요한 물건이야. 그리고 강한서는, 강한서는 그런 물건이고.”“...”유현진은 그저 묵묵히 앉아 있었다.그녀와 같은 결혼 해본 사람은 ‘그런 물건'이 어떤 물건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순진했던 차미주는 아직도 알아듣지 못한 듯했다.“그런 물건이 대체 무슨 물건인데? 똑바로 좀 얘기해 봐.”한성우가 소리를 낮춰 얘기했다.“콘돔이잖아.”“콘...”차미주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이내 강한서가 말했던 한번 밖에 사용해 보지 않았다는 말을 머릿속에 떠올렸고 순간 눈이 점점 커지게 되었다.‘그러니까, 그럼 그동안 현진이랑 그냥 했다는 거야?'‘대박!'‘대박! 대박! 대박!'‘이런 거 이렇게 대놓고 말해도 되는 거야?'유현진은 힘이 들어간 얼굴로 강한서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다른 정체로 꾸며 이 자리에 온 것을 아주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와 함께 있는 이 순간이 무척 창피했을 테니까.강한서는 정말... 회사 업무 외에 다른 일에는 너무나도 눈치가 없고 멍청한 것 같았다.그녀가 분명 방금 눈치를 주었고 강한서도 알아들은 듯 자신 있게 제스쳐까지 보였었다. 그녀는 그런 강한서의 모습에 정말로 그가 이해하고 있는 듯했지만, 결국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이 뽑은 것이
유현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뭐야, 취해서 이성이 가출한 거야?'다른 사람이 입을 열기도 전에 등 뒤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뭘 그렇게 재밌게 놀고 있길래 강한서가 이 모양이 된 거야?”다소 익숙한 목소리에 유현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흰색 슈트를 입은 남자가 주아름과 팔짱을 낀 채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그 남자는 유현진도 아는 남자였다. 이름은 성서원이었고 예전에 강한서의 친구이기도 했으며 그들의 결혼식에 참석한 적도 있었다. 다만 최근 2년 동안 강한서가 그와 만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지난번에 성서원과 마주치게 된 것도 신우와 고여정의 결혼식에서였다. 그는 술잔을 들고 그녀에게 치근덕거렸고 강한서는 대충 그를 상대하곤 바로 그녀를 끌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었다.유현진은 성서원을 빤히 보고 있던 와중에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주아름이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입을 열었다.“오빠, 여자친구 사귀었다면서? 그렇게 중요한 일을 왜 집에 알리지 않은 거야?”주강운이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야.”“그래도 집에 알려서 집안의 허락을 받는 게 낫지 않아? 안 그러면 결혼식 얘기가 나올 때 집으로 데려갔다가 외삼촌이랑 외숙모가 반대하시면 어떡해? 그러면 시간 낭비 아니야?”유현진은 눈썹 사이를 찌푸렸다.주아름이 필터 없이 말을 해댔기 때문이었다.주강운은 그녀의 사촌 오빠였다. 그러나 그녀의 어투는 흡사 주강운을 깔보는 듯한 태도였고 그녀가 한 말은 모든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었다.주강운이 그녀를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넌 네 일이나 잘하면 돼.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주아름은 주강운의 말을 무시해 버렸다. 그녀는 유현진을 계속 위아래로 훑으면서 말했다.“이름이 뭐죠? 뭐 하는 사람이죠?”“차현진이요. 음악 선생님이에요.”“푸흡-”차미주는 바로 입에 머금고 있던 티를 뿜어냈다.차현진...그것은
나중에 주시윤을 만나게 된 후 그는 모든 아이디를 삭제해 버렸고 주시윤은 막대한 돈을 들여 그의 이름으로 갤러리를 만들고 청년 화가인 것처럼 꾸몄다.백현석이 딥블루 클럽 직원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지만, 앞에서 대놓고 그 얘기를 꺼내는 사람이 없었다. 주씨 가문에게 밉보여서는 안 되었으니까.그러나 강한서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현재 주아름이 그의 아내를 깎아내리고 있었기에 그가 얌전히 참을 수 있겠는가?답은 절대 불가능이었다.그랬기에 강한서가 그 얘기를 대놓고 사람들 앞에서 꺼내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었다.그런 강한서의 말에 주아름은 하마터면 당황한 티를 감추지 못할 뻔했다.게다가 주강운 마저 그녀를 감싸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그녀는 이를 갈며 변명했다.“그거랑은 다르죠. 현석 아저씨는 한주대 미대를 나온 사람이에요. 미술계의 거장 급이라고요. 아저씨가 전에 딥블루에서 일한 것도 전부 학비를 벌기 위한 것이라고요.”강한서는 잔을 흔들며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딥블루에서 일하면 얼마나 주는지 알아? 거기 직원들이 어떤 마음으로 거기서 일하는지, 단골손님인 네가 더 잘 알 거잖아. 아니야? 학비를 벌기 위한 것이라고? 하도 여기저기 거짓말 떠들어대니까 이젠 그게 진짜인 것 같지?”사람들의 표정이 제각각이었다.강한서는 비록 팩트만 집어서 말하는 타입이었지만 이렇게까지 사람을 난처하게 하는 법은 없었다. 오늘은... 아마도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 건가?사람 중 한성우만이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잘 알고 있었고 마른 웃음을 내뱉으며 분위기를 살리려 했다.“한서가 이미 많이 마셔서 지금 정상이 아니거든. 무시하고 얼른 자리 찾아 앉아.”주아름은 불쾌한 마음을 억누르며 잔뜩 굳어진 얼굴로 주강운의 옆자리에 앉았다.원래 그녀는 신진성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단톡방에 주강운이 여자친구를 데리고 신진성의 결혼식에 참석한 사진을 찍어 올렸고 마침 그걸 강민서가 봤던 것이었다.강민서는 사진을 보
이윽고 유현진은 미소를 짓더니 온화한 태도를 보였다.“이런 공연 기회는 어차피 앞으로도 아주 많거든요. 게다가 오늘 이곳의 주인공은 신진성 씨와 아내분이잖아요. 저는 손님이니 당연히 이 파티의 주인공이 되면 안 되죠. 하지만 주아름 씨가 얘기를 꺼냈으니 또 아름 씨 무색하게 할 수는 없죠. 그러니... 제가 마술을 보여주는 거로 대신할까요? 그냥 가볍게 즐기면 되잖아요. 뭐 이것으로 제가 신진성 씨와 아내분에게 결혼 축하 공연하는 것으로 하죠.”한성우가 흥미진진한 얼굴로 물었다.“마술로 미인을 보여주시면 안 돼요?”유현진이 눈썹을 꿈틀거렸다.“살아 숨 쉬는 것으로 만들어 줄 순 있죠.”사람들은 순간 기대감이 가득 찬 얼굴로 보고 있었고 유독 강한서만이 “살아 숨 쉬는 것”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이 몇 개의 말랑말랑한 공과 두 개의 그릇을 가져다주었다.그녀는 먼저 그들에게 간단한 ‘공간이동' 마술을 보여주었다.이 마술은 아주 간단했고 유현진이 고등학생 때 학교 장기 자랑 대회에서 으쓱거리며 보여준 마술이기도 했다.공을 몇 개 그릇에 넣어 이리저리 흔들면서 요란한 동작을 보였다.주아름이 피식 웃었다.“이게 마술이라고요? 어린이만 속일 수 있을 정도네요.”차미주가 혀를 차면서 빈정대며 말했다.“쯧, 그럼 주아름 씨가 보여주면 되겠네요. 도대체 어떤 마술이 진정한 마술인지 우리한테 보여주셔야죠.”주아름이 표정을 확 구기며 그녀를 노려보았다.그러나 신진성의 신부는 오히려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또 어떤 걸 할 줄 아시나요?”유현진이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좀 내밀어 보시겠어요?”신부는 바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유현진은 두 개의 말랑말랑한 공을 그녀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고 주먹을 꽉 쥐라고 했다. 그리고 이내 손수건으로 그녀의 손을 덮어버리고 중얼중얼하더니 손수건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그녀가 손수건을 치우자 신부의 손바닥 위엔 아주 아름다운 사랑앵무 한 마리가
한열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하리는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그의 말에 속상해 눈물을 흘리는 것이 분명했다.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를 위해 돌을 막아줬을 리가 없었다. 그런 마음에 아니라면, 그에게 장난을 치며 관심을 끌었을 리가 없었다. ‘조금 전 내가 너무 상처 되는 말을 하긴 했어.’여전히 고민하는 한열의 귓가로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곧 박장대소하기 시작했다. 한열이 멍한 표정으로 옆을 바라보았다. 신하리가 배를 끌어안은 채 폭소하고 있었다. 눈물까지 찔끔 흘린 그녀는 웃느라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똥강아지, 너 솔직하게 얘기해. 태어나서 한 번도 연애해 본 적 없지?”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잇는 신하리의 얼굴엔 슬픔이라곤 전혀 없이 온통 장난기뿐이었다. 그제야 또라이 같은 여자에게 농락당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한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윤명훈도 운전석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티베탄 마스티프는 사촌 누나 앞에서만 순한 양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식으로 한열을 길들이는 사람이 있다니. 역시 뛰는 놈 위에는 나는 놈이 있는 법이었다. 수치와 분노를 동시에 느낌 한열이 바득 이를 갈았다. 그는 당장이라도 신하리를 물어버릴 것처럼 말했다. “제가 사귀었던 사람은 신하리 씨가 손가락 다 사용해도 부족할 거예요!”“소꿉놀이 같은 연애 말하는 거야?”신하리가 야유 섞인 말투로 한열을 놀렸다. “설마 첫 키스 상대가 나였던 거 아냐?”순간 뜨끔한 한열의 몸이 어색하게 힘이 들어갔다. 그저 한열을 놀리려던 신하리는 그의 반응에 당황하며 눈을 커다랗게 떴다. “정말 나야?!”한열이 창피함을 못 이겨 버럭 화를 냈다. “아니거든요!”하지만 한열은 거짓말엔 너무 소질이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신하리에게 이렇게 빨리 모태 솔로라는 사실을 들켰을 리도 없었을 것이다. 거짓말이 소용없다는 것을 인식한 한열이 자포자기하며 말했다. “제가 신하리 씨와 전에 했던 건 첫키스 아녜요. 제가 일부러 신하리 씨 기분 더럽게 하려고 한
한열이 입술을 짓이겼다. “제가 신하리 씨와 공개 연애를 선택한 건 신하리 씨가 저에게 감독님을 소개해주길 바랐기 때문이었어요. 우린 서로가 원하는 걸 해주기로 계약했잖아요. 그러니까 그건 제가 신하리 씨를 도와준 거라고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신하리 씨는 이번에 저 때문에 진짜로 다쳤어요. 이건 제가 신하리 씨에게 빚 진 거예요.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뭐든지 얘기해요.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도울 테니까.”멈칫한 신하리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눈앞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탑 아이돌을 쳐다보았다. ‘이 바닥에 아직도 이렇게 단순한 자식이 있었어?’아무리 신하리가 한열에게 유리한 계약 조건을 달았다고 하더라도 계약 연애는 한열에겐 이득보단 손해가 더 많았다. 게다가 유명한 감독과 작품을 하고 싶다면 사촌 형인 송민준에게 부탁해도 충분했다. 굳이 신하리와 엮일 필요가 없었다.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한 후, 한열의 SNS 댓글은 눈에 띌 정도로 악플이 늘었다. 여자친구인 신하리도 공개 연애 후 수많은 악플을 받고 있었다. 심지어 극단적인 성향을 지닌 팬들은 그녀의 영정사진을 만들어 죽은 쥐과 칼날과 함께 넣어 택배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니 한열 쪽 상황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조금 전 신하리가 한열 대신 돌을 맞은 건 그가 얼굴을 다쳐 연예계 생활에 영향을 끼칠까 봐 걱정된 것도 있었지만 사실은 죄책감 때문에 한열에게 이렇게라도 빚을 갚아야겠다는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이 자식, 정말 멍천한 거였잖아? 이렇게까지 정중하게 신세를 졌다며 은혜를 갚겠다고 하다니. 이런 멍청해서야 대체 어떻게 인지도를 올릴 수 있었던 거야?’‘고담시 한씨 가문은 모두가 알아주는 명문가잖아. 그런 집안에서 대체 어떻게 이렇게 멍청한 아들이 나올 수 있는 거지? 눈치 빠르고 꿍꿍이가 많은 사촌 누나와 형에, 심지어 12살짜리 막내 동생도 쟤보다는 똑똑하겠어.’잡혀가서도 인질범 편을 들어줄 것 같은 한열의 모습에 신하리는 이상하게 마음이 약해졌다. 한
윤명훈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인터넷에 떠도는 스캔들을 처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동안, 이 미친 인간들은 경찰서 앞에서 소란을 피웠다. 한열의 반항적인 성격을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윤명훈은 충분히 버거웠다. ‘하지만 이젠 한 명이 더 늘었잖아. 젠장. 그 놈의 돈 벌기가 점점 더 힘드네!’비록 화가 치밀긴 했지만 의식을 잃은 신하리와 한열 몸에 묻은 피를 보자 윤명훈도 걱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신하리 씨는 어때?”“안 죽어요.”한열이 신하리가 꼬집던 허리를 어루만지며 쓰러진 척 연기하는 여자를 노려보았다. “언제까지 연기할래요?”그제야 천천히 눈을 뜬 신하리는 한열의 눈빛과 반말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어때, 누나 연기가 좀 실감났어?”흥, 콧방귀를 뀐 한열이 시선이 저도 모르게 신하리의 뒤통수를 힐끗 쳐다보았다. 머리숱이 많아 얼마나 많이 다친 건지 잘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 날아온 돌멩이는 힘이 꽤 실려있었다. 옆에 있던 한열의 귀에도 돌멩이가 무겁게 머리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신하리는 얼굴이 창백해진 것을 제외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처럼 굴었다. 그녀는 심지어 티슈를 뽑아 뒤통수의 피를 닦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열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티슈로 상처 닦으면 안 돼요. 더럽잖아요.”“더러우면 걸레라고 하겠지, 왜 티슈라고 부르겠어?”신하리가 억지스러운 논리를 늘어놓았다. “티슈로 엉덩이를 닦을 땐 왜 더럽다고 하지 않는 거야?”한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제가 티슈로 엉덩이를 닦지, 치질을 닦는 건 아니잖아요.”멈칫하던 신하리가 순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녀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장난스레 말했다. “너 아이돌 이미지는 버린 거야? 아이돌 입에서 어떻게 엉덩이니, 치질이니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어?”한열이 불퉁한 말투로 대답했다. “머리 상처에 출혈이 꽤 있었어요. 티슈로 닦으면 상처에 먼지가 붙어서 염증이 날 거예요. 나중에 흉터
한열의 마음에 남아있던 감동이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두 사람이 신고를 마치고 나오자 경찰서 밖은 이미 수많은 기자와 팬들로 둘러싸였다. 경찰서 앞이었던 만큼 경찰들이 질서를 유지하고 있어 현장은 그나마 평화로웠다. 한열이 신하리를 감싸며 차에 오르던 그때,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한열!”한열이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계란 크기의 돌멩이가 한열을 향해 날아왔다. 한열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앞으로 누군가 나타나 온 몸으로 돌멩이를 막았다. 신하리였다. 그 돌은 신하리의 뒤통수에 부딪혔다. 극심한 통증에 신하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몸이 앞으로 휘청였다. 한열이 무의식적으로 신하리를 부축했다. 미간을 찌푸린 신하리가 손을 뻗어 돌멩이에 맞은 곳을 만졌다. 뜨뜻하고 축축한 촉감이 느껴졌다. 손바닥을 펼치자 빨간색의 피로 흥건했다. 신하리의 부축하고 있던 한열의 손이 움찔 떨렸다. 그의 얼굴은 섬뜩할 정도로 창백했다. 돌을 던진 사람이 큰소리로 질타했다. “개 같은 자식!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투표해서 널 데뷔시켰는데. 연애도 부족해서 이젠 뭐, 성추행? 팬들한테 미안하지도 않아?”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심지어 옆에서 질서를 유지하던 결찰들도 미처 반응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돌을 던진 그 사람이 달려들려고 하자 경찰이 얼른 앞으로 나서 제압했다. 그 사람은 심지어 바닥에 제압당한 채 여전히 욕설을 내뱉으며 난동을 부렸다. “네가 이런 인간이란 걸 진작 알았다면 차라리 지나가는 강아지에게 투표를 했을 거야! 넌 정말 네가 연기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정말 팬들이 네 재능에 반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네 그 반반한 얼굴 아니었으면 너에게 투표한 사람이 있긴 했을 것 같아? 팬들 덕에 넌 아이돌이 될 수 있었던 거야. 팬들이 아니면 넌 아무 것도 아니라고!”구경 중이던 사람들과 기자들이 미친 듯이 사진과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한열은 신하리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그녀의
신하리는 말하며 예쁜 눈웃음을 지었다. “저 정신병 있는 거 다들 아시죠?”그 말에 사람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얼마 전, 신하리가 한 드라마 촬영 중 현장에서 갑자기 귀신에 쓰인 사람처럼 아무런 안정장비도 하지 않은 채 6미터가 넘는 곳에서 뛰어내려 뼈가 부러진 사건이 있었다. 다들 신하리에게 왜 뛰어내렸냐고 묻자 그녀는 아래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그러나 당시 상황을 증명해 줄 동영상은 없었고 그 사건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처럼 듣고 지나보냈었지만 지금 신하리의 입으로 직접 그녀에게 정신병이 있다고 말하니 그때의 사건을 떠올린 사람들은 순산 오싹함을 느껴야 했다. 이건 분명한 경고였다. 마치 난 심신이 미약한 사람이라 너에게 정말 염산을 뿌려도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으니 내 말을 장난으로 가볍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신하리의 등장으로 [아기 고양이]의 라이브 방송의 인기는 더 뜨거워졌다. 댓글에도 다양한 의견이 더 많아졌다. [사랑에 눈이 먼 연예인 1위! 보상은 산에서 산나물 캐기 18년!][신하리 미친 거 아녜요? 이렇게 대놓고 협박이라니.][면전에 협박하는데 아직도 신고하지 않는다고? 증거가 없는 거야, 아님 애초부터 한열을 모함하고 있었던 거야?][성추행을 한 사람도 경찰서에 신고했는데 당한 사람은 대체 뭐가 무서워서 신고하지 않는 거야.][지난번에 스스로 신고한 인간은 아직도 감옥에서 사회봉사 중이예요.][만약 지금 당장 신고한다면 전 아기 고구마 말을 믿을 거예요. 계속 이런 식으로 수작을 부리는 건 오히려 한열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작당 모의에 더 가까워 보여요.][지금 루머를 퍼뜨리는 건 너무 쉬운 일이 됐어요. 스크린샷 몇 장이면 바로 스토리를 짤 수 있으니까요.]여론이 점차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멀어지자 [아기 고구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주먹을 꽉 움켜쥐고 이를 악물었다. “지금 저 협박하시는 거예요? 아
신하리의 라이브 방송 연결 요청에 [아기 고구마]가 잠시 멍해졌다. 무의식적으로 옆을 바라보던 그녀가 곧 시선을 돌렸다. 많은 사람들은 그 미세한 행동을 포착하지 못했지만 한현진에겐 들키고 말았다. [아기 고구마]는 혼자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 듯 했다. 그녀의 옆에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던, 궁금증 해소를 위해 모인 사람들과 진실 규명을 바라는 팬들이 미친 듯이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겁쟁이! 네가 그러고도 무슨 남자야! 사건이 터지면 뒤로 물러나 여자친구가 나서서 모든 걸 감당하게 하다니. 네 팬이었다는 게 너무 후회돼!][끼리끼리는 과학이라잖아요. 한열이 이런 쓰레기라면 신하리도 그리 좋은 인간은 아니지 않겠어요? 연결해요.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죠.][언니! 얼른 입도 벙긋 못하게 증거를 뿌려버려요. 저런 인간은 아이돌을 할 자격이 없어요.][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난 영원히 한열을 믿을 거야!][덕질에 도덕 같은 건 중요하지도 않나보네.]...[아기 고구마]는 사람들의 부추김에 신하리와 라이브 방송을 연결했다.신하리의 모습이 라이브 방송 화면에 나타나자 카메라는 신하리의 얼굴을 향해 바짝 다가갔다. 후드 차림에 화장도 하지 않은 신하리가 카메라를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그쪽 대신 경찰에 신고했어요. 얼른 오세요.”카메라가 홱 회전하며 한주 용하구의 경찰서 대문을 비췄다. 그에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순간 멍해졌다. ‘신하리, 미친 거야? 어제 저녁에도 한열 대신 해명해주더니.’[아기 고구마]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전, 전 신고한다고 안 했어요.”신하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한열이 그쪽을 성추행했다면서 신고를 안 해요? 성모 마리아세요? 방송으로 울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보다 신고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어요? 경찰은 그쪽을 도와줄 수 있는데도 싫다고요?”네티즌들도 신하리의 말을 따라 댓글을 남겼다. [맞아요
알겠다고 대답한 한현진이 전화를 끊기 전 호기심을 못 이겨 물었다. “오빠, 문채영 씨와는 어떻게 됐어요?”멈칫한 송민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강한서 그 자식 혹시 네 옆에 있어?”한현진이 움찔하며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가로젓는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가볍게 목을 가다듬은 한현진이 대답했다. “아뇨. 샤워 중이예요.”송민준이 한현진의 말을 믿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개의치 않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걔한테 내 말 똑바로 전해. 다음에 또 이렇게 입을 가볍게 놀렸다간 내가 그 입을 꿰매 버릴 거라고.”강한서: ...그 말에 한현진이 어색하게 하하, 웃어버렸다. “사실 강한서는 별말 안 했어요...”송민준은 더는 아무 말 없이 일찍 쉬라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송민준의 얼굴이 공개된 후, 한열의 바람 스캔들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사람들도 점차 한현진이 한열의 사촌누나라는 사실을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열의 성추문은 여전히 일파만파 퍼져나갔다.한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여성의 페이스북 계정은 [아기 고구마]였다. 이 계정은 피드를 올릴 때마다 다음 업로드 시간을 예고하며 다음엔 마치 증거를 공개할 것처럼 사람들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에 [아기 고구마] 계정의 팔로워는 점차 늘어갔다. 하지만 예고와는 달리 매번 터무니없는 사실들만 업로드 했고 그 피드의 내용으로는 한열이 여자 연예인을 성추행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계정의 인기는 줄어들지 않았다.하룻밤 사이, 한열의 팔로우는 십만 명 이상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한열의 회사 측에서는 변호사가 작성한 소장을 공개하며 이미 경찰에 신고를 마쳤고 루머를 퍼뜨린 사람을 찾아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열의 회사에서 소장을 공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 고구마]도 페이스북에 점심 열두시부터 라이브 방송으로 빼박 증거를 공개해 한열과 직접 맞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에 네티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말을 아끼던 윤명훈이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계약 해지 때문에 문제가 좀 있어서요. 회사에서는 쿨하게 한열을 보내줄 마음이 없거든요.”그가 한현진에게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현진도 알 수 있었다. 윤명훈은 똑똑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한열이 아직 취해 있는 지금 그에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은 채 윤명훈은 한현진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리가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제가 잠시 후 해명글을 올릴게요. 명훈 씨는 신하리 씨에게 인터넷에 떠도는 쓸데없는 기사들 처리해 달라고 연락하세요. 제가 변호사를 선임해 보내드릴게요.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해요.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해명하기 어려워질 거예요.”한열의 바람 스캔들을 터트린 건 그저 페이크에 불과했다. 성추문으로 한열에게 흙탕물을 뒤집어씌우려는 것이 그들의 진짜 목적이었다.만약 한현진이 한열의 회사 대표였다면, 자신의 두 손으로 탑급의 자리까지 올린 아이를 이렇게 쉽게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계약을 해지 한다고 해도 한열의 빛을 어느 정도는 계속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한열은 신하리라는 충무로 연기파 배우의 인맥까지 갖고 있으니 앞으로 어느 정도로 발전할 수 있는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굳이 이렇게까지 끝장을 볼 이유는 없었다. 연예계에게는 영원한 이익만 있을 뿐, 영원한 적은 없는 법이었다.그러니 이번 일은 오히려 누군가 한열을 나락으로 보내기 위해 꾸미고 있는 일 같았다. 전화를 끊은 한현진은 세남매가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업로드 했다. 다만 송민준의 눈은 모자이크 처리했다.[저희 오빠와 사촌 동생이 그렇게까지 닮은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신하리]사진 속에서 한현진은 가운데 서 있었고 그녀의 왼쪽엔 송민준이, 그리고 오른쪽엔 한열이었다. 막내 동생인 한승은 아예 잘라버린 후 사진을 업로드 했다.비록 송민준의 눈을 모자이크 처리하긴 했지만 하관만 보아도 한열과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닮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
[두 여배우 모두 연기력이 그렇게 뛰어나면서, 대체 얼마나 보는 눈이 없어야 한열을 좋아할 수 있는 거지?][그건 좀 아니지 않나? 한열도 미남상이긴 하잖아.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지만.][세 사람 같이 촬영했었잖아요. 한현진이 한열과 신하리가 사귀는 걸 몰랐을까요? 이건 뻔히 알면서도 만난 거잖아요.][살려줘! 나 한현진 정말 좋아한단 말이야. 전에 햇살 유치원 사건 때문에 엄청 호감이었는데. 봄의 연인의 중전마마 역도 완전 잘 소화했었다고. 대체 바람은 왜 핀 거야. 연예계에 사고 안 치는 연예인이 있긴 한 거야?] [두 여신을 동시에 만나다니. 한열, 능력도 좋아. 지까짓게 뭔데...] [한열은 신하리에게 빌붙으려는 목적이었던 거예요. 지금 소속사와 계약 해지를 준비 중이예요. 회사에서도 전혀 신경 안 쓰고 있고요. 신하리가 아니었으면 한열 주제에 어떻게 유명 감독에게 캐스팅 될 수 있었겠어요. 정말 어떻게든 여자 덕 좀 보겠다고 애쓰네.]아래의 댓글들은 더 이상 눈을 뜨고 볼 수도 없었다. 대부분은 그들을 욕하는 악플이었다. 한열과 신하리의 공개 연애에 대해 두 사람의 팬들은 자신의 배우가 아깝다며 강력한 불만을 토로했다.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한 후부터 양측의 팬들은 줄곧 다툼을 이어왔다. 두 사람의 커플 팬계정인 [이열치열]은 팬들의 감정 쓰레기통 같은 곳이 되어버려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열은 열애 인정으로 회사와 갈등을 빚어 계약을 해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회사 측은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뜨렸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던 터라 잠깐의 파장을 일으킨 후 곧 사그라들었다. 공개 연애 후 꽤 빠른 속도로 떨어지던 한열의 인기는 요즘 다시 천천히 오르고 있는 추세였다. 회사 측에서 밀어주던 신인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한열의 뒤를 이어받아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회사 측은 화가 치밀었다. 그러니 한열이 바람 폈다는 기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