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진은 밖에서 한참 있고 난 뒤에야 들어갔다. 주강운이 어떻게 그 라운드를 넘어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강한서는 그녀가 자리를 비운 사이 또 게임에 진 것 같았다. 그의 얼굴이 유현진이 자리를 비우기 전보다 더 빨개져 있었다. 아마 또 술을 마신 것 같았다. 술을 거절할 줄 모르는 바보. 그는 자신의 주량을 전혀 모르는 듯했다. 유현진은 민경하에게 문자를 보내 강한서를 데리러 오라고 했다. 그녀는 강한서가 갑자기 취해서 헛소리를 지껄일까 두려웠다. “뽑아요.”주강운은 뽑기용 종이박스를 그녀 앞으로 건네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 라운드만 끝나면 집에 데려다줄게요.”유현진은 종이를 뽑으며 말했다. “강운 씨는 계속 놀아요. 전 아직 볼 일이 좀 있어서, 택시 타고 가면 돼요.”주강운이 웃었다. “만약 제가 현진 씨를 혼자 보내면, 오늘 밤 연기는 다 물거품이 돼요.”유현진은 그런 것까지 신경 쓰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누군가 새로운 라운드가 시작됨을 알렸다. 유현진은 어쩔 수 없이 이번 라운드가 끝나고 다시 얘기할 생각으로 말을 삼켰다. 새로운 마피아 게임의 규칙은 간단했다. 사람마다 종이를 한 장 뽑고, 각자 자신의 종이에 적힌 물건을 묘사하면 되었다. 그 중 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물건이 적혀 있고, 사람들은 각자의 묘사를 통해 누가 다른 사물인지 추측하고 그 사람을 잡아내면 마피아의 실패였다. 게임에서 진 사람은 신혼부부를 대신해 결혼식 비용을 제외한 기타 하객들이 호텔에서 소비한 모든 비용을 계산해야 했다. 7성급 호텔, 판이 꽤 커졌다. 게임 벌칙을 들은 차미주는 바로 게임에서 빠지고 싶었다. 한성우가 그녀를 잡으며 말했다. “무서워하긴. 지면 이 오빠가 다신 계산해 줄게.”차미주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정말 지면, 넌 바로 날 버리고 가버릴 거지?”한성우가 웃으며 주머니에서 스포츠카 차키를 건네주었다. “차를 너한테 맡기면 돼?”차미주는 얼른 차키를 가져왔
1라운드에서 알아낸 정보는 너무나도 적었고 사람들은 전부 기권을 선택했다. 그렇게 바로 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2라운드의 검증 기회는 고작 3번뿐이었기에 만약 검증 실패하게 되면 바로 팀에서 아웃시킬 수 있었다.그래서 확신이 서지 않는 상황에 검증할 때 신중하게 생각하고 검증해야 했다.2라운드.신진성이 입을 열었다.“포장된 물건은 조금 축축한 물건이죠.”신우가 말했다.“이걸 안 쓰면 더 편합니다.”강한서는 신우를 힐끔 쳐다보더니 묵묵히 속으로 인정했다.고여정이 말했다.“그래도 전 쓰는 걸 더 좋아해요.”이번엔 한성우 차례였다.“전 한 번도 쓴 적이 없습니다.”자신의 순서가 된 차미주가 말했다.“이것엔 여러 가지 색이 있죠. 그중에서 전 검은색 레이스가 찍힌 걸 더 좋아하고요.”강한서는 멈칫하더니 이내 놀란 표정을 지었다.조준이 입을 열었다.“이걸 사용하기 전에는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해요.”이어서 주강운이 설명했다.“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건 아닙니다.”유현진의 차례였다.“사용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아요.”드디어 강한서 차례였다.“도중에 새것으로 바꿀 수도 있죠.”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바꾼... 다고?'유현진은 침묵을 지켰다.그녀는 대충 강한서가 뽑은 종이에 뭐가 적혀 있는지 알 것 같았다.그녀가 고개를 들고 강한서에게 눈치를 주려 했다. 그러자 강한서는 턱을 세우며 자신만 믿으라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강한서가 엉뚱하게 느껴졌다.유현진은 사람들이 다른 곳에 신경 쓰고 있는 틈을 타 두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을 짚었다.강한서는 멈칫하더니 이내 알아차린 듯 엄지와 검지를 맞대 ‘OK’ 모양을 했다.유현진은 자신의 뜻을 알아챈 듯한 강한서의 모습에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다만 방금 두 사람의 행동은 아마도 사람들의 의심을 살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그러나 그들이 두 사람을 의심하기도 전에 신진성의 신부가 바로 사람들의 집중력을 흩트렸다.“전 하루에 세 번까지 바꿔본 적이 있어요.”그렇게
설명이 끝나고 누가 마피아인지 이미 명확하게 밝혀지게 되었다.게임 심판은 사람들에게 마피아를 가리키라고 했다.한성우는 차를 홀짝이며 마시면서 빙그레 웃었다.“이걸 굳이 짚어낼 필요 있어요? 오늘은 강 대표가 쏘는 거죠.”차미주가 아직 눈치를 채지 못한 듯 말했다.“뭐야 뭐야? 누가 마피아인데?”한성우가 턱으로 강한서를 짚었다.“한서잖아.”“뭐? 왜? 왜 강한서야?”“강한서는 근시잖아. 콘택트렌즈를 어떻게 살면서 딱 한 번밖에 못 써봤겠어?”차미주는 알 듯 말 듯 한 표정을 지었고 계속 물었다.“그럼 강한서가 뽑은 건 뭔데?”한성우가 웃으면서 말했다.“우리가 뽑은 건 일상에 필요한 물건이야. 그리고 강한서는, 강한서는 그런 물건이고.”“...”유현진은 그저 묵묵히 앉아 있었다.그녀와 같은 결혼 해본 사람은 ‘그런 물건'이 어떤 물건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순진했던 차미주는 아직도 알아듣지 못한 듯했다.“그런 물건이 대체 무슨 물건인데? 똑바로 좀 얘기해 봐.”한성우가 소리를 낮춰 얘기했다.“콘돔이잖아.”“콘...”차미주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이내 강한서가 말했던 한번 밖에 사용해 보지 않았다는 말을 머릿속에 떠올렸고 순간 눈이 점점 커지게 되었다.‘그러니까, 그럼 그동안 현진이랑 그냥 했다는 거야?'‘대박!'‘대박! 대박! 대박!'‘이런 거 이렇게 대놓고 말해도 되는 거야?'유현진은 힘이 들어간 얼굴로 강한서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다른 정체로 꾸며 이 자리에 온 것을 아주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렇지 않았으면 그와 함께 있는 이 순간이 무척 창피했을 테니까.강한서는 정말... 회사 업무 외에 다른 일에는 너무나도 눈치가 없고 멍청한 것 같았다.그녀가 분명 방금 눈치를 주었고 강한서도 알아들은 듯 자신 있게 제스쳐까지 보였었다. 그녀는 그런 강한서의 모습에 정말로 그가 이해하고 있는 듯했지만, 결국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이 뽑은 것이
유현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뭐야, 취해서 이성이 가출한 거야?'다른 사람이 입을 열기도 전에 등 뒤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뭘 그렇게 재밌게 놀고 있길래 강한서가 이 모양이 된 거야?”다소 익숙한 목소리에 유현진이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흰색 슈트를 입은 남자가 주아름과 팔짱을 낀 채 그들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그 남자는 유현진도 아는 남자였다. 이름은 성서원이었고 예전에 강한서의 친구이기도 했으며 그들의 결혼식에 참석한 적도 있었다. 다만 최근 2년 동안 강한서가 그와 만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지난번에 성서원과 마주치게 된 것도 신우와 고여정의 결혼식에서였다. 그는 술잔을 들고 그녀에게 치근덕거렸고 강한서는 대충 그를 상대하곤 바로 그녀를 끌고 다른 곳으로 가버렸었다.유현진은 성서원을 빤히 보고 있던 와중에 누군가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개를 돌려 확인하니 주아름이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입꼬리를 씨익 올리며 입을 열었다.“오빠, 여자친구 사귀었다면서? 그렇게 중요한 일을 왜 집에 알리지 않은 거야?”주강운이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야.”“그래도 집에 알려서 집안의 허락을 받는 게 낫지 않아? 안 그러면 결혼식 얘기가 나올 때 집으로 데려갔다가 외삼촌이랑 외숙모가 반대하시면 어떡해? 그러면 시간 낭비 아니야?”유현진은 눈썹 사이를 찌푸렸다.주아름이 필터 없이 말을 해댔기 때문이었다.주강운은 그녀의 사촌 오빠였다. 그러나 그녀의 어투는 흡사 주강운을 깔보는 듯한 태도였고 그녀가 한 말은 모든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었다.주강운이 그녀를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넌 네 일이나 잘하면 돼.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주아름은 주강운의 말을 무시해 버렸다. 그녀는 유현진을 계속 위아래로 훑으면서 말했다.“이름이 뭐죠? 뭐 하는 사람이죠?”“차현진이요. 음악 선생님이에요.”“푸흡-”차미주는 바로 입에 머금고 있던 티를 뿜어냈다.차현진...그것은
나중에 주시윤을 만나게 된 후 그는 모든 아이디를 삭제해 버렸고 주시윤은 막대한 돈을 들여 그의 이름으로 갤러리를 만들고 청년 화가인 것처럼 꾸몄다.백현석이 딥블루 클럽 직원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지만, 앞에서 대놓고 그 얘기를 꺼내는 사람이 없었다. 주씨 가문에게 밉보여서는 안 되었으니까.그러나 강한서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현재 주아름이 그의 아내를 깎아내리고 있었기에 그가 얌전히 참을 수 있겠는가?답은 절대 불가능이었다.그랬기에 강한서가 그 얘기를 대놓고 사람들 앞에서 꺼내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었다.그런 강한서의 말에 주아름은 하마터면 당황한 티를 감추지 못할 뻔했다.게다가 주강운 마저 그녀를 감싸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그녀는 이를 갈며 변명했다.“그거랑은 다르죠. 현석 아저씨는 한주대 미대를 나온 사람이에요. 미술계의 거장 급이라고요. 아저씨가 전에 딥블루에서 일한 것도 전부 학비를 벌기 위한 것이라고요.”강한서는 잔을 흔들며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딥블루에서 일하면 얼마나 주는지 알아? 거기 직원들이 어떤 마음으로 거기서 일하는지, 단골손님인 네가 더 잘 알 거잖아. 아니야? 학비를 벌기 위한 것이라고? 하도 여기저기 거짓말 떠들어대니까 이젠 그게 진짜인 것 같지?”사람들의 표정이 제각각이었다.강한서는 비록 팩트만 집어서 말하는 타입이었지만 이렇게까지 사람을 난처하게 하는 법은 없었다. 오늘은... 아마도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 건가?사람 중 한성우만이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인지 잘 알고 있었고 마른 웃음을 내뱉으며 분위기를 살리려 했다.“한서가 이미 많이 마셔서 지금 정상이 아니거든. 무시하고 얼른 자리 찾아 앉아.”주아름은 불쾌한 마음을 억누르며 잔뜩 굳어진 얼굴로 주강운의 옆자리에 앉았다.원래 그녀는 신진성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단톡방에 주강운이 여자친구를 데리고 신진성의 결혼식에 참석한 사진을 찍어 올렸고 마침 그걸 강민서가 봤던 것이었다.강민서는 사진을 보
이윽고 유현진은 미소를 짓더니 온화한 태도를 보였다.“이런 공연 기회는 어차피 앞으로도 아주 많거든요. 게다가 오늘 이곳의 주인공은 신진성 씨와 아내분이잖아요. 저는 손님이니 당연히 이 파티의 주인공이 되면 안 되죠. 하지만 주아름 씨가 얘기를 꺼냈으니 또 아름 씨 무색하게 할 수는 없죠. 그러니... 제가 마술을 보여주는 거로 대신할까요? 그냥 가볍게 즐기면 되잖아요. 뭐 이것으로 제가 신진성 씨와 아내분에게 결혼 축하 공연하는 것으로 하죠.”한성우가 흥미진진한 얼굴로 물었다.“마술로 미인을 보여주시면 안 돼요?”유현진이 눈썹을 꿈틀거렸다.“살아 숨 쉬는 것으로 만들어 줄 순 있죠.”사람들은 순간 기대감이 가득 찬 얼굴로 보고 있었고 유독 강한서만이 “살아 숨 쉬는 것”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미간을 찌푸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이 몇 개의 말랑말랑한 공과 두 개의 그릇을 가져다주었다.그녀는 먼저 그들에게 간단한 ‘공간이동' 마술을 보여주었다.이 마술은 아주 간단했고 유현진이 고등학생 때 학교 장기 자랑 대회에서 으쓱거리며 보여준 마술이기도 했다.공을 몇 개 그릇에 넣어 이리저리 흔들면서 요란한 동작을 보였다.주아름이 피식 웃었다.“이게 마술이라고요? 어린이만 속일 수 있을 정도네요.”차미주가 혀를 차면서 빈정대며 말했다.“쯧, 그럼 주아름 씨가 보여주면 되겠네요. 도대체 어떤 마술이 진정한 마술인지 우리한테 보여주셔야죠.”주아름이 표정을 확 구기며 그녀를 노려보았다.그러나 신진성의 신부는 오히려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또 어떤 걸 할 줄 아시나요?”유현진이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손 좀 내밀어 보시겠어요?”신부는 바로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유현진은 두 개의 말랑말랑한 공을 그녀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고 주먹을 꽉 쥐라고 했다. 그리고 이내 손수건으로 그녀의 손을 덮어버리고 중얼중얼하더니 손수건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그녀가 손수건을 치우자 신부의 손바닥 위엔 아주 아름다운 사랑앵무 한 마리가
그러나 유현진은 화를 내지 않고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제 부모님께선... 동물 중성화 수술하시는 분들이세요. 주아름 씨도 필요하시면 저한테 연락하시면 돼요. 제가 할인해 드릴게요. 마취약도 필요 없이 3분이면 바로 중성화가 가능하거든요. 비록 중성화하기 전의 동물들은 미친 듯이 날뛰지만 중성화 수술만 마치면 바로 얌전해지거든요. 절대 사람에게 달려드는 법이 없지요.”“...”사람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유현진의 말은 그야말로 주아름을 돌려 까는 것이었기 때문이다.주아름도 눈치를 챘다. 그랬기에 그녀의 안색이 확 어두워졌고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유현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아, 됐네요.”말을 마친 유현진은 손수건을 치웠고 주아름의 손바닥 위엔 복실복실한 자그마한 생명체가 땅콩을 들고 오물오물 먹고 있었다.그 작고 복실복실한 녀석은 바로 생쥐였다.주아름과 생쥐는 순간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그러자 주아름은 비명을 지르며 손바닥에 있던 생쥐를 내동댕이쳤다.마침 생쥐는 문다은에게 떨어졌고 깜짝 놀란 문다은은 뒷걸음질을 치다 그만 의자에 걸려 넘어지게 되자 신진성이 급히 그녀를 잡았다. 결국 두 사람은 함께 바닥에 넘어지게 되었다.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했다.그들은 얼른 두 사람에게 다가가 상태를 확인했다.다행히 행동이 빨랐던 신진성은 자신의 몸으로 문다은을 지켜주어 바닥에 부딪치게 되지 않았지만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부축할 때도 문다은의 안색은 창백했고 게다가 배가 살짝살짝 아파져 오는 것 같았다.놀란 신진성은 얼른 그녀를 안고 병원으로 향하려 했다.신우가 얼른 신진성을 말렸다.“일단 조준 씨가 먼저 확인하게 해줘. 조준 씨가 의사야.”조준이 바로 문다은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주아름도 뜻밖의 상황에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신이 든 주아름이 유현진을 가리키며 말했다.“다 저 여자 때문이에요. 저 여자가 쥐새끼를 놓지만 않았다면 제가 이런 행동을 했겠어요?”유현진은 그녀를 무시했고 미간을 구긴
파티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파티장을 떠나갔다. 유현진이 강한서의 곁을 스쳐 지나가며 낮게 말했다.“화장실에 먼저 가 있을 테니까, 나 기다려.”강한서는 손등으로 살짝 그녀의 손등을 툭 치면서 사인을 보냈다.강한서는 사실 술을 많이 마신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술 또한 도수가 낮았기에 사실은 취하지 않았다고 볼 수가 있었다. 그래도 속이 불편한 건 사실이었다.그는 유현진의 말을 기억하면서 바로 복도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룸에서 나온 성서원이 복도에서 바람을 쐬고 있는 강한서를 발견하곤 성큼성큼 걸어가 말을 걸었다.“한서야, 오랜만이다.”강한서는 멈칫하더니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성서원도 딱히 신경 쓰지 않았고 이어서 말했다.“전엔 좀 많이 바빠서 할머니 생신 연회에 참석하지 못했네. 할머니께선 무탈하시지?”마침 화장실에서 나온 유현진이 성서원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생신 연회가 지난 지 언젠데 인제야 이런 인사를 하는 거지?'그녀는 두 사람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기로 했고 이내 두 사람의 시야가 닿지 않는 곳으로 숨어 조용히 대화를 엿듣기로 했다.강한서는 대충 무심하게 대답했다.“어, 무탈하셔.”성서원이 입을 열었다.“며칠 전에 아주머니께서 우리 어머니랑 차를 한잔 마셨었거든. 아주머니께서 그러시는데 이틀 전에 병원에 가셨다가 낭종이 발견되셨대. 그래서인지 살도 많이 빠져 보이기도 했고, 계속 네가 혼자 살까 봐 걱정이라고 하시더라고.”신미정의 얘기에 유현진의 표정이 미묘해졌다.확실히 최근 바빴던 터라 신미정의 소식을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건 사실이었다.신미정이 강씨 가문에서 쫓겨났다는 사실을 유현진은 알고 있었지만, 줄곧 강한서에게 묻지 않았다.게다가 전 여사에게 신미정이 전 여사 집 근처에 작은 아파트를 구했다는 사실 또한 전해 들은 적이 있었고 아마도 신씨 가문에서도 쫓겨난 듯했다.그녀는 바빴던 터라 전 여사에게 자세한 상황을 묻지 않았었다.지금 다시 보니, 신미정은 아마도 불쌍한 척 동정심을 유발해 강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