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때?”운전기사가 물었다.뒷좌석에 앉은 남자는 유현진의 얼굴을 찰싹찰싹 때리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약발을 아주 잘 받네.”운전기사는 셔츠 단추를 느슨하게 풀었다.“젠장, 어찌나 경계하던지. 하마터면 못 잡아 올 뻔했잖아. 얼른 도 대표님께 연락해. 잡았다고.”그러나 두 사람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이 탄 랜드로버 뒤로 쉐보레 한 대가 딥 블루 클럽에서부터 줄곧 그들을 미행하고 있었다.랜드로버는 바로 어느 한 호텔로 멈춰 섰다. 두 사람은 함께 유현진을 들고 지하 주차장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방으로 올라갔다.프리미엄 방을 잡은 두 사람은 유현진을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욕망을 참지 못하고 유현진의 얼굴을 스윽 만졌다. 그러자 운전기사가 그의 손을 ‘탁' 쳐냈다.운전기사는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도 대표님께서 말씀하셨잖아. 손대지 말라고. 죽고 싶어?”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아쉬운 눈빛으로 말했다.“보기만 해도 안 돼? 이렇게 예쁜 여자는 품어본 적이 없단 말이야.”“도 대표님이 시킨 일만 제대로 완성하면 갖고 놀 여자가 없을까 걱정할 필요 있겠어?”말을 마친 그는 침대를 정리하고 얼른 검은 옷을 입은 남자를 내보냈다.쉐보레를 탄 사람은 두 사람이 떠나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누군가에게 연락을 넣었다.“사람은 이미 칠지로 루이브 호텔로 옮겨 놨으니까 문을 열어줄 사람을 보내세요.”주강운은 딥 블루 클럽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방금 막 샤워를 마치자 집안의 도우미 아주머니가 노크했다.“왜 그러세요?”“도련님, 방금 누가 이걸 꼭 전해달라고 하셔서요.”주강운은 시선을 떨군 채 확인했다. 그것은 루이브 호텔의 방 키였다.그는 미간을 구겼다. 쓰레기통에 호텔 키를 버린 그는 바로 몸을 틀어 방 안으로 들어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가 그에게 문자를 보내왔다.도석문이 보낸 것이었다.「저의 작은 성의예요. 분명 마음에 드실 겁니다.」주강운은 가볍게 피식 웃었다. 그러나 순간 그의 머
정신을 잃은 강한서는 이미 누군가에 의해 호텔 방 침대로 옮겨졌다.송가람은 인사불성이 된 강한서를 힐끔 쳐다보고는 이내 고개를 돌려 호텔 직원에게 말했다.“나가보세요.”두 사람은 간단히 대답한 후 방에서 나갔다.송가람은 침대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강한서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었고 호흡이 다소 거칠었으며 숨소리가 크게 들려왔다.점점 호흡이 가빠지자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옷을 느슨하게 풀어헤쳤다.송가람은 그런 그의 손을 잡았다.“오빠, 지금은 어때요?”강한서의 체온은 아주 높았다. 정상적인 체온인 송가람의 손마저 그는 다소 시원하게 느껴졌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그러나 느껴지는 낯선 촉감에 그는 다시 무의식적으로 손을 놓아버렸다.그가 손을 놓아버려도 송가람의 심장은 여전히 쿵쾅 소리를 내며 빠르게 뛰고 있었고 얼굴과 귀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그녀는 낮은 소리로 강한서의 이름을 불렀다. 반응 없는 그의 모습에 바로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들어갔다.이윽고 화장실에서 수건을 가지고 나온 그녀는 강한서의 몸을 닦아주려 했다.그녀는 아주 천천히 부드럽게 수건으로 강한서의 얼굴을 닦아주었고 수건은 어느덧 서서히 강한서의 목까지 내려왔다.강한서는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의 날카로운 턱선과 완벽한 호선을 자랑하는 목젖을 보니 섹시하게 느껴졌다.수건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빨개진 얼굴로 강한서의 셔츠 단추를 풀어버리려 했다.그러나 그녀가 풀기도 전에 강한서의 손이 그녀의 손을 막았다.송가람은 깜짝 놀랐다. 여전히 몽롱한 그의 두 눈을 확인한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의 이름을 불러 확인했다.“한서 오빠.”강한서의 모든 감각은 이미 약에 지배를 당한 상태였고 아무것도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누군가의 형체가 눈앞에 흐릿하게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풍겨오는 낯선 향기에 그는 바로 거부감을 느꼈다.그는 상대가 자신에게 손을 대지 못하도록 그녀를 밀어내려고 했다.그러나 이미 약효가 돌고 있었기에 그는 힘을
그는 쓰러진 송가람을 한쪽으로 제쳐두고 침실로 갔다. 그리고 또 다른 낯선 남자가 이미 정신을 잃은 유현진을 안고 방으로 들어왔다.두 사람은 유현진을 강한서의 곁에 눕혔다. 현장을 깨끗하게 수습한 뒤 그들은 옷을 송가람의 머리 위로 덮어씌웠다. 그들은 그렇게 송가람을 둘러업고 방에서 나가면서 문을 꼭 잠갔다.그들은 CCTV를 피해 비상계단을 이용하여 주차장까지 내려갔다.차 안에서는 전 여사가 이미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송가람을 태우자마자 그녀가 물었다.“강한서는 어떻게 되었죠?”남자가 답했다.“아직 약효가 남아 있었지만, 곧 깨어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옆에 눕힌 여자는 약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더군요. 숨소리가 살짝 불규칙적으로 거칠었습니다.”전 여사가 멈칫거리더니 이내 웃으면서 말했다.“그럼 유현진이 저한테 고마워해야겠군요.”전 여사의 “호의”는 당연히 대가 없는 호의가 아니었다.정인월의 생신 연회에 다녀온 후, 그녀는 바로 사람을 시켜 남편의 내연녀에 대해 조사를 했었다.진상은 유현진이 그녀에게 말해준 것보다 더욱 잔혹했다.신미정은 그녀의 남편이 바람피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남편과 내연녀를 이어준 장본인이기도 했다.그녀만 이 모든 사실을 바보처럼 모르고 있었고 심지어 신미정에게 잘 보이려 노력하며 어떻게든 남편의 사업에 도움이 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모든 사실을 알게 된 전 여사는 완전히 달라졌다.그녀의 머릿속엔 이미 온통 쓰레기 같은 남편의 몰락과 남편에게서 재산을 다시 빼앗아오는 것이었고 신미정에게 복수할 생각으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전 여사는 아주 현명한 사람이었다. 남편은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었기에 그녀가 남편의 사생활을 폭로한다 해도 그녀의 남편은 크게 데미지를 입지 않을 것이었다.기껏해야 그저 행실이 바르지 못하다는 얘기만 들을 뿐 2년 정도가 지나면 여론은 잠잠해져 다시 활개를 치고 다닐 것이 분명했다.게다가 신미정에게 복수를 해야 했기에 그녀는 더욱이 이런 방식을 쓸 수
그녀는 서해금과 사이가 아주 좋다고 말한 적이 있었고 송가람을 자신의 며느리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서해금과 사돈이 될 테니, 송가람도 절대 그녀를 이렇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전 여사는 신미정의 말에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아들마저 기대를 저버렸는데, 다른 사람에게 기대한다고?'‘신미정은 자신이 유현진은 불임으로 만들어버린 일을 알게 된 강한서에게 그렇게 쫓겨나고도 정신을 못 차린 건가?'‘강한서는 처음부터 유현진을 포기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송가람이랑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 거지?'그녀는 신미정이 정말로 자기 아들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다.그녀는 대단한 인물이었던 강단한이 어떻게 이런 머리가 꽃밭인 신미정에게 반해 결혼을 하게 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러나 그녀는 신미정의 멍청함을 너무나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신미정은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상대가 아무리 자신의 아들이라 해도 전혀 개의치 않고 손을 댔다.그녀는 가장 먼저 전 여사를 찾아와 강한서에게 약을 탈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송가람을 강한서가 있는 방으로 불러 둘이 함께 잠자리를 가지길 원했다.이런 추악한 일에 그녀는 직접 움직이려 하지 않았기에 당연히 전 여사를 찾아와 그녀 대신해 주길 바랐다.여하간에 전 여사의 인맥은 아주 넓었고 여러 가지 부류의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다.그러나 신미정은 자신에게 충성하던 전 여사가 이미 배신하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전 여사는 절대 그녀의 뜻대로 계획이 흘러가게 놔두지 않을 생각이었다.그녀는 신미정이 다시 강씨 가문으로 돌아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신미정이 원하는 것들을 모두 얻을 수 없게 만들 생각이었고 이것이야말로 아주 완벽한 복수였다.전 여사는 신미정이 말한 대로 강한서에게 약을 먹이고 송가람과 한 방에 가둬두지 않았다.그녀가 사람에게 시켜 강한서에게 먹이라고 한 것은 마취제였고 기껏해야 2시간 동안 자두면 깨어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그녀는 유현진
상대의 손은 점점 그녀의 옷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고 그녀의 부드러운 피부를 천천히 쓸어내렸다.유현진은 깜짝 놀라 등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그녀는 잔뜩 잠긴 목소리로 덜덜 떨며 말했다.“제발 살려주세요. 절 그냥 보내주신다면 돈을 원하시는 만큼 드릴게요, 네?”강한서는 시선을 떨구고 눈앞에 있는 섹시하기 그지없는 여자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는 그녀를 보며 침만 꼴깍 삼킬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의 눈앞엔 자신이 제일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붉게 물든 섹시한 몸으로 곁에 누워있는데 어떻게 참을 수가 있겠는가?강한서가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바로 꿈이었다.그러나 손바닥이 그녀의 뜨거운 피부와 맞닿았을 때 그는 그제야 꿈이 아닌 현실임을 자각했다.그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되지 않았지만, 유현진을 놀리기엔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계속 유현진의 허리를 쓰다듬었다.그녀의 피부로 소름이 오소소 돋아올랐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그는 아주 귀여워 보였고 그만 참지 못하고 그녀의 배에 뽀뽀를 했다.유현진은 깜짝 놀라 육두문자를 외쳤다.그녀는 두려운 마음을 꾹꾹 누르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젠장, 저기요. 저 결혼도 했었어요. 제 전 남편은 제가 성적 매력이 없다는 이유로 저랑 이혼했거든요. 비록 제가 얼굴은 예쁘게 생겼어도 목석처럼 아주 딱딱한 사람이에요. 그런 쪽으로 반응이 없다고요. 제 몸을 탐낼 바엔 차라리 제 돈을 탐내는 게 더 이득일 거예요.”강한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목석같이 딱딱한 사람이 일주일에 두세 번 야한 잠옷을 입고 나를 유혹해?'그는 살짝 호기심이 생겨났다. 이런 상황에 그녀가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이윽고 그는 자체 음성 변조를 하고 입을 열었다.“얼마나 줄 건데?”자체 음성 변조한 강한서의 목소리를 한때 더빙의 신이었던 유현진은 눈치채지 못했다. 만약 평소의 상황이라면 유현진은 바로 그의 목소리를 알아챘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고
유현진은 그가 도대체 왜 자신에게 흥미를 느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녀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저기요, 제가 그렇게 마음에 드신다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에요.”강한서가 순간 동작을 멈추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말도 없이 그녀를 보았다.“정말이야?”유현진이 답했다.“저기요, 저희 여자들은 말이죠. 보통은 의지가 되는 남자를 찾으려고 해요. 그렇게 편안하고 안정된 사람을 살아가려는 거죠. 의지가 되는 남자가 어떤 남자인지 아세요? 돈을 와이프에게 맡기는 남자를 보통 의지가 되는 남자라고 해요. 제 전 남편은 아주 쪼잔한 사람이었죠. 결혼 생활 몇 년이나 했는데 저에게 돈을 관리하는 중요한 집안 대권을 맡기지 않았거든요. 그것만 맡겼다면 전 이혼까지 안 했을 거예요.”강한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방금 이혼한 이유가 너무 네가 너무 딱딱해서 그렇다고 하지 않았나?”“네?”유현진은 순간 당황한 목소리로 급히 머리를 굴렸다.“네, 맞아요. 전 남편이 저에게 돈을 맡기지 않으니 제가 점점 욕구가 사라지고 딱딱해진 거죠. 만약 당신이 모든 돈을 저에게 맡겨 관리한다면 전 분명 아주 열정적인 욕구를 보였을 거예요.”그녀는 그와 대화하는 순간에 오른쪽 엄지로 두 손을 묶은 밧줄을 살살 풀어냈다. 이윽고 그녀는 계속 몰래 밧줄을 풀어냈다.“그래?”강한서는 이를 갈았다.“그럼 당장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줘.”유현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흡사 부끄러워하는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했다.“저기, 그럼 일단 이 안대부터 벗겨줘요. 얼굴을 보면서 하면 더 달아오르거든요.”강한서의 안색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그는 그녀가 정말 굽힐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그는 손을 뻗어 검지로 그녀의 안대를 살짝 벗겨냈다. 유현진은 드디어 나쁜 놈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할 때 그는 다시 손으로 안대를 확 씌웠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셔츠를 풀어헤치고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난 그래도 네가 안대를 쓰고 있는 것이 좋아.”그는
유현진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려왔다. 그녀는 최음제의 효과로 환청 증상이 나타난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그녀의 귓가에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릴 리가 없었다.“현진아.”목소리가 점점 더 선명하게 들려왔다.“현진아, 눈을 떠봐. 나야. 다른 사람은 없어.”유현진은 천천히 눈을 떴다. 흐릿하던 눈앞이 점점 선명하게 보였다.정말로 강한서였다.순간 긴장감이 풀린 그녀는 “으앙”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그녀는 강한서를 끌어안았다. 그러더니 그의 가슴을 퍽퍽 치면서 다리를 찼다. 그녀는 울면서 욕을 해댔다.“이 나쁜 놈, 개자식! 왜 사람을 놀라게 해!”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었던 강한서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는 발버둥을 치는 그녀를 꽉 끌어안고 낮은 목소리로 달랬다.“내가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그냥 장난 좀 친다는 게 너무 심하게 쳤어. 전부 다 가짜니까 울지 마, 응?”유현진은 정말로 무서웠었다. 납치되고 눈을 뜨니 누군가가 그녀에게 억지로 약을 먹였다. 낯선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공포에 그녀는 한시라도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고, 심지어 그녀는 자신을 납치한 나쁜 놈과 함께 죽을 생각까지 했었다.유현진의 울음소리가 점점 사라지고 그저 살짝 히끅거리기만 했다. 강한서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근데 네가 여기엔 왜 있어?”유현진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날 납치하고 데리고 온 데 네가 아니야?”강한서는 눈썹 사이를 구겼다.“내가 널 왜 납치를 해. 내가 그런 장난을 할 사람으로 보여?”유현진은 바로 날을 세우며 말했다.“네가 방금까지 날 놀리고 있었잖아.”“...”강한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나도 방금 막 정신을 차린 거야.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땐 옆에 묶인 채로 누워있는 너밖에 없었어.”유현진은 미심쩍은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방금 막 정신을 차렸다니?”그녀의 말에 강한서의 표정이 다소 어두워졌다.“누군가가 나에게 약을 먹였거든. 난 회의장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이미 정신을 잃게 되었었어.”
유현진은 무릎을 끌어안고 몸을 웅크렸다.“기껏해야 최음제잖아. 괜찮아. 내가 지금 욕실로 가서 찬물로 샤워하면 약효가 사라질 거야.”그녀의 고집은 꺾을 수가 없었다. 강한서는 하는 수없이 욕조에 물을 받았다.그는 침대에서 약효 때문에 낑낑거리는 유현진을 떠올리며 입술을 말아 물었다.물을 다 받고 난 뒤 강한서는 그녀를 불렀다.침대에 누워있던 유현진은 이미 약효에 정신이 흐릿해진 상태였다.그녀를 부르는 강한서의 목소리에 힘없이 겨우 일어나 앉았다.그녀를 지켜보고 있던 강한서는 바로 허리를 굽혀 그녀를 안아 올리고 욕실로 들어갔다.욕조에 몸이 담기자 유현진은 미간을 찌푸렸다.“왜 뜨거운 물이야?”강한서가 답했다.“찬물이 안 나오더라고. 그래서 뜨거운 물 밖에 받을 수가 없었어. 괜찮아. 조금만 참으면 금방 식을 거야.”유현진은 다시 괴로워졌다.“얼마나 더 있어야 물이 식는데?”강한서는 컵을 들고 욕조 끝에 앉았다.“내가 이렇게 컵으로 저어줄게. 그러면 더 빨리 식을 거야.”유현진의 감별력은 평소보다 더 느려졌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절대 강한서의 황당한 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이렇게 큰 욕조에 그렇게 작은 겁으로 얼마나 저어야 물이 차가워지겠는가?게다가 그녀는 현재 강한서의 말이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오히려 강한서가 예전보다 더 다정해졌다고 느꼈다.그녀는 옷을 입을 채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강한서는 욕조 끝에 앉아 컵으로 물을 계속 저었다.어느덧 욕실에 물기가 자욱했고 컵으로 계속 물을 젓고 있던 탓에 강한서의 옷은 이미 흠뻑 젖어있었다.옷이 그의 몸에 찰싹 들러붙었고 유현진은 순간 자신의 시력이 평소보다 더 좋아진 것 같았다. 그녀는 강한서가 옷을 입고 있음에도 그의 선이 분명한 근육을 보게 되었던 것이었다.예쁘고 아주 단단해 보였다.체내에 있던 뜨거운 열기가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그녀는 시선을 피하면서 속으로 묵념했다.‘나는 보이지가 않는다. 나는 보이지가 않는다. 나는
한열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신하리는 자신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그의 말에 속상해 눈물을 흘리는 것이 분명했다. 좋아하지 않는다면 그를 위해 돌을 막아줬을 리가 없었다. 그런 마음에 아니라면, 그에게 장난을 치며 관심을 끌었을 리가 없었다. ‘조금 전 내가 너무 상처 되는 말을 하긴 했어.’여전히 고민하는 한열의 귓가로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곧 박장대소하기 시작했다. 한열이 멍한 표정으로 옆을 바라보았다. 신하리가 배를 끌어안은 채 폭소하고 있었다. 눈물까지 찔끔 흘린 그녀는 웃느라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똥강아지, 너 솔직하게 얘기해. 태어나서 한 번도 연애해 본 적 없지?”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잇는 신하리의 얼굴엔 슬픔이라곤 전혀 없이 온통 장난기뿐이었다. 그제야 또라이 같은 여자에게 농락당했다는 것을 알아차린 한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윤명훈도 운전석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티베탄 마스티프는 사촌 누나 앞에서만 순한 양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식으로 한열을 길들이는 사람이 있다니. 역시 뛰는 놈 위에는 나는 놈이 있는 법이었다. 수치와 분노를 동시에 느낌 한열이 바득 이를 갈았다. 그는 당장이라도 신하리를 물어버릴 것처럼 말했다. “제가 사귀었던 사람은 신하리 씨가 손가락 다 사용해도 부족할 거예요!”“소꿉놀이 같은 연애 말하는 거야?”신하리가 야유 섞인 말투로 한열을 놀렸다. “설마 첫 키스 상대가 나였던 거 아냐?”순간 뜨끔한 한열의 몸이 어색하게 힘이 들어갔다. 그저 한열을 놀리려던 신하리는 그의 반응에 당황하며 눈을 커다랗게 떴다. “정말 나야?!”한열이 창피함을 못 이겨 버럭 화를 냈다. “아니거든요!”하지만 한열은 거짓말엔 너무 소질이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신하리에게 이렇게 빨리 모태 솔로라는 사실을 들켰을 리도 없었을 것이다. 거짓말이 소용없다는 것을 인식한 한열이 자포자기하며 말했다. “제가 신하리 씨와 전에 했던 건 첫키스 아녜요. 제가 일부러 신하리 씨 기분 더럽게 하려고 한
한열이 입술을 짓이겼다. “제가 신하리 씨와 공개 연애를 선택한 건 신하리 씨가 저에게 감독님을 소개해주길 바랐기 때문이었어요. 우린 서로가 원하는 걸 해주기로 계약했잖아요. 그러니까 그건 제가 신하리 씨를 도와준 거라고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신하리 씨는 이번에 저 때문에 진짜로 다쳤어요. 이건 제가 신하리 씨에게 빚 진 거예요.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뭐든지 얘기해요.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도울 테니까.”멈칫한 신하리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눈앞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탑 아이돌을 쳐다보았다. ‘이 바닥에 아직도 이렇게 단순한 자식이 있었어?’아무리 신하리가 한열에게 유리한 계약 조건을 달았다고 하더라도 계약 연애는 한열에겐 이득보단 손해가 더 많았다. 게다가 유명한 감독과 작품을 하고 싶다면 사촌 형인 송민준에게 부탁해도 충분했다. 굳이 신하리와 엮일 필요가 없었다.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한 후, 한열의 SNS 댓글은 눈에 띌 정도로 악플이 늘었다. 여자친구인 신하리도 공개 연애 후 수많은 악플을 받고 있었다. 심지어 극단적인 성향을 지닌 팬들은 그녀의 영정사진을 만들어 죽은 쥐과 칼날과 함께 넣어 택배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니 한열 쪽 상황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조금 전 신하리가 한열 대신 돌을 맞은 건 그가 얼굴을 다쳐 연예계 생활에 영향을 끼칠까 봐 걱정된 것도 있었지만 사실은 죄책감 때문에 한열에게 이렇게라도 빚을 갚아야겠다는 마음이 더 컸다. ‘하지만 이 자식, 정말 멍천한 거였잖아? 이렇게까지 정중하게 신세를 졌다며 은혜를 갚겠다고 하다니. 이런 멍청해서야 대체 어떻게 인지도를 올릴 수 있었던 거야?’‘고담시 한씨 가문은 모두가 알아주는 명문가잖아. 그런 집안에서 대체 어떻게 이렇게 멍청한 아들이 나올 수 있는 거지? 눈치 빠르고 꿍꿍이가 많은 사촌 누나와 형에, 심지어 12살짜리 막내 동생도 쟤보다는 똑똑하겠어.’잡혀가서도 인질범 편을 들어줄 것 같은 한열의 모습에 신하리는 이상하게 마음이 약해졌다. 한
윤명훈은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인터넷에 떠도는 스캔들을 처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동안, 이 미친 인간들은 경찰서 앞에서 소란을 피웠다. 한열의 반항적인 성격을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윤명훈은 충분히 버거웠다. ‘하지만 이젠 한 명이 더 늘었잖아. 젠장. 그 놈의 돈 벌기가 점점 더 힘드네!’비록 화가 치밀긴 했지만 의식을 잃은 신하리와 한열 몸에 묻은 피를 보자 윤명훈도 걱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신하리 씨는 어때?”“안 죽어요.”한열이 신하리가 꼬집던 허리를 어루만지며 쓰러진 척 연기하는 여자를 노려보았다. “언제까지 연기할래요?”그제야 천천히 눈을 뜬 신하리는 한열의 눈빛과 반말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어때, 누나 연기가 좀 실감났어?”흥, 콧방귀를 뀐 한열이 시선이 저도 모르게 신하리의 뒤통수를 힐끗 쳐다보았다. 머리숱이 많아 얼마나 많이 다친 건지 잘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 날아온 돌멩이는 힘이 꽤 실려있었다. 옆에 있던 한열의 귀에도 돌멩이가 무겁게 머리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신하리는 얼굴이 창백해진 것을 제외하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처럼 굴었다. 그녀는 심지어 티슈를 뽑아 뒤통수의 피를 닦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열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티슈로 상처 닦으면 안 돼요. 더럽잖아요.”“더러우면 걸레라고 하겠지, 왜 티슈라고 부르겠어?”신하리가 억지스러운 논리를 늘어놓았다. “티슈로 엉덩이를 닦을 땐 왜 더럽다고 하지 않는 거야?”한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제가 티슈로 엉덩이를 닦지, 치질을 닦는 건 아니잖아요.”멈칫하던 신하리가 순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녀는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장난스레 말했다. “너 아이돌 이미지는 버린 거야? 아이돌 입에서 어떻게 엉덩이니, 치질이니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어?”한열이 불퉁한 말투로 대답했다. “머리 상처에 출혈이 꽤 있었어요. 티슈로 닦으면 상처에 먼지가 붙어서 염증이 날 거예요. 나중에 흉터
한열의 마음에 남아있던 감동이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두 사람이 신고를 마치고 나오자 경찰서 밖은 이미 수많은 기자와 팬들로 둘러싸였다. 경찰서 앞이었던 만큼 경찰들이 질서를 유지하고 있어 현장은 그나마 평화로웠다. 한열이 신하리를 감싸며 차에 오르던 그때,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한열!”한열이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계란 크기의 돌멩이가 한열을 향해 날아왔다. 한열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앞으로 누군가 나타나 온 몸으로 돌멩이를 막았다. 신하리였다. 그 돌은 신하리의 뒤통수에 부딪혔다. 극심한 통증에 신하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몸이 앞으로 휘청였다. 한열이 무의식적으로 신하리를 부축했다. 미간을 찌푸린 신하리가 손을 뻗어 돌멩이에 맞은 곳을 만졌다. 뜨뜻하고 축축한 촉감이 느껴졌다. 손바닥을 펼치자 빨간색의 피로 흥건했다. 신하리의 부축하고 있던 한열의 손이 움찔 떨렸다. 그의 얼굴은 섬뜩할 정도로 창백했다. 돌을 던진 사람이 큰소리로 질타했다. “개 같은 자식!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투표해서 널 데뷔시켰는데. 연애도 부족해서 이젠 뭐, 성추행? 팬들한테 미안하지도 않아?”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심지어 옆에서 질서를 유지하던 결찰들도 미처 반응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돌을 던진 그 사람이 달려들려고 하자 경찰이 얼른 앞으로 나서 제압했다. 그 사람은 심지어 바닥에 제압당한 채 여전히 욕설을 내뱉으며 난동을 부렸다. “네가 이런 인간이란 걸 진작 알았다면 차라리 지나가는 강아지에게 투표를 했을 거야! 넌 정말 네가 연기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정말 팬들이 네 재능에 반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네 그 반반한 얼굴 아니었으면 너에게 투표한 사람이 있긴 했을 것 같아? 팬들 덕에 넌 아이돌이 될 수 있었던 거야. 팬들이 아니면 넌 아무 것도 아니라고!”구경 중이던 사람들과 기자들이 미친 듯이 사진과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한열은 신하리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그녀의
신하리는 말하며 예쁜 눈웃음을 지었다. “저 정신병 있는 거 다들 아시죠?”그 말에 사람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얼마 전, 신하리가 한 드라마 촬영 중 현장에서 갑자기 귀신에 쓰인 사람처럼 아무런 안정장비도 하지 않은 채 6미터가 넘는 곳에서 뛰어내려 뼈가 부러진 사건이 있었다. 다들 신하리에게 왜 뛰어내렸냐고 묻자 그녀는 아래에서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그러나 당시 상황을 증명해 줄 동영상은 없었고 그 사건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처럼 듣고 지나보냈었지만 지금 신하리의 입으로 직접 그녀에게 정신병이 있다고 말하니 그때의 사건을 떠올린 사람들은 순산 오싹함을 느껴야 했다. 이건 분명한 경고였다. 마치 난 심신이 미약한 사람이라 너에게 정말 염산을 뿌려도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으니 내 말을 장난으로 가볍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신하리의 등장으로 [아기 고양이]의 라이브 방송의 인기는 더 뜨거워졌다. 댓글에도 다양한 의견이 더 많아졌다. [사랑에 눈이 먼 연예인 1위! 보상은 산에서 산나물 캐기 18년!][신하리 미친 거 아녜요? 이렇게 대놓고 협박이라니.][면전에 협박하는데 아직도 신고하지 않는다고? 증거가 없는 거야, 아님 애초부터 한열을 모함하고 있었던 거야?][성추행을 한 사람도 경찰서에 신고했는데 당한 사람은 대체 뭐가 무서워서 신고하지 않는 거야.][지난번에 스스로 신고한 인간은 아직도 감옥에서 사회봉사 중이예요.][만약 지금 당장 신고한다면 전 아기 고구마 말을 믿을 거예요. 계속 이런 식으로 수작을 부리는 건 오히려 한열을 이용해 돈을 벌겠다는 작당 모의에 더 가까워 보여요.][지금 루머를 퍼뜨리는 건 너무 쉬운 일이 됐어요. 스크린샷 몇 장이면 바로 스토리를 짤 수 있으니까요.]여론이 점차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멀어지자 [아기 고구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주먹을 꽉 움켜쥐고 이를 악물었다. “지금 저 협박하시는 거예요? 아
신하리의 라이브 방송 연결 요청에 [아기 고구마]가 잠시 멍해졌다. 무의식적으로 옆을 바라보던 그녀가 곧 시선을 돌렸다. 많은 사람들은 그 미세한 행동을 포착하지 못했지만 한현진에겐 들키고 말았다. [아기 고구마]는 혼자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 듯 했다. 그녀의 옆에는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던, 궁금증 해소를 위해 모인 사람들과 진실 규명을 바라는 팬들이 미친 듯이 댓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겁쟁이! 네가 그러고도 무슨 남자야! 사건이 터지면 뒤로 물러나 여자친구가 나서서 모든 걸 감당하게 하다니. 네 팬이었다는 게 너무 후회돼!][끼리끼리는 과학이라잖아요. 한열이 이런 쓰레기라면 신하리도 그리 좋은 인간은 아니지 않겠어요? 연결해요.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죠.][언니! 얼른 입도 벙긋 못하게 증거를 뿌려버려요. 저런 인간은 아이돌을 할 자격이 없어요.][경찰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난 영원히 한열을 믿을 거야!][덕질에 도덕 같은 건 중요하지도 않나보네.]...[아기 고구마]는 사람들의 부추김에 신하리와 라이브 방송을 연결했다.신하리의 모습이 라이브 방송 화면에 나타나자 카메라는 신하리의 얼굴을 향해 바짝 다가갔다. 후드 차림에 화장도 하지 않은 신하리가 카메라를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그쪽 대신 경찰에 신고했어요. 얼른 오세요.”카메라가 홱 회전하며 한주 용하구의 경찰서 대문을 비췄다. 그에 라이브 방송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순간 멍해졌다. ‘신하리, 미친 거야? 어제 저녁에도 한열 대신 해명해주더니.’[아기 고구마]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전, 전 신고한다고 안 했어요.”신하리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한열이 그쪽을 성추행했다면서 신고를 안 해요? 성모 마리아세요? 방송으로 울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보다 신고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어요? 경찰은 그쪽을 도와줄 수 있는데도 싫다고요?”네티즌들도 신하리의 말을 따라 댓글을 남겼다. [맞아요
알겠다고 대답한 한현진이 전화를 끊기 전 호기심을 못 이겨 물었다. “오빠, 문채영 씨와는 어떻게 됐어요?”멈칫한 송민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 “강한서 그 자식 혹시 네 옆에 있어?”한현진이 움찔하며 옆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가로젓는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가볍게 목을 가다듬은 한현진이 대답했다. “아뇨. 샤워 중이예요.”송민준이 한현진의 말을 믿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가 개의치 않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걔한테 내 말 똑바로 전해. 다음에 또 이렇게 입을 가볍게 놀렸다간 내가 그 입을 꿰매 버릴 거라고.”강한서: ...그 말에 한현진이 어색하게 하하, 웃어버렸다. “사실 강한서는 별말 안 했어요...”송민준은 더는 아무 말 없이 일찍 쉬라는 인사와 함께 전화를 끊었다. 송민준의 얼굴이 공개된 후, 한열의 바람 스캔들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사람들도 점차 한현진이 한열의 사촌누나라는 사실을 믿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열의 성추문은 여전히 일파만파 퍼져나갔다.한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여성의 페이스북 계정은 [아기 고구마]였다. 이 계정은 피드를 올릴 때마다 다음 업로드 시간을 예고하며 다음엔 마치 증거를 공개할 것처럼 사람들을 암시하기도 했다. 그에 [아기 고구마] 계정의 팔로워는 점차 늘어갔다. 하지만 예고와는 달리 매번 터무니없는 사실들만 업로드 했고 그 피드의 내용으로는 한열이 여자 연예인을 성추행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계정의 인기는 줄어들지 않았다.하룻밤 사이, 한열의 팔로우는 십만 명 이상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한열의 회사 측에서는 변호사가 작성한 소장을 공개하며 이미 경찰에 신고를 마쳤고 루머를 퍼뜨린 사람을 찾아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열의 회사에서 소장을 공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기 고구마]도 페이스북에 점심 열두시부터 라이브 방송으로 빼박 증거를 공개해 한열과 직접 맞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에 네티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말을 아끼던 윤명훈이 한참만에야 입을 열었다. “계약 해지 때문에 문제가 좀 있어서요. 회사에서는 쿨하게 한열을 보내줄 마음이 없거든요.”그가 한현진에게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현진도 알 수 있었다. 윤명훈은 똑똑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한열이 아직 취해 있는 지금 그에게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은 채 윤명훈은 한현진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 리가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제가 잠시 후 해명글을 올릴게요. 명훈 씨는 신하리 씨에게 인터넷에 떠도는 쓸데없는 기사들 처리해 달라고 연락하세요. 제가 변호사를 선임해 보내드릴게요. 최대한 빨리 해결해야 해요.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해명하기 어려워질 거예요.”한열의 바람 스캔들을 터트린 건 그저 페이크에 불과했다. 성추문으로 한열에게 흙탕물을 뒤집어씌우려는 것이 그들의 진짜 목적이었다.만약 한현진이 한열의 회사 대표였다면, 자신의 두 손으로 탑급의 자리까지 올린 아이를 이렇게 쉽게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계약을 해지 한다고 해도 한열의 빛을 어느 정도는 계속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한열은 신하리라는 충무로 연기파 배우의 인맥까지 갖고 있으니 앞으로 어느 정도로 발전할 수 있는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굳이 이렇게까지 끝장을 볼 이유는 없었다. 연예계에게는 영원한 이익만 있을 뿐, 영원한 적은 없는 법이었다.그러니 이번 일은 오히려 누군가 한열을 나락으로 보내기 위해 꾸미고 있는 일 같았다. 전화를 끊은 한현진은 세남매가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업로드 했다. 다만 송민준의 눈은 모자이크 처리했다.[저희 오빠와 사촌 동생이 그렇게까지 닮은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신하리]사진 속에서 한현진은 가운데 서 있었고 그녀의 왼쪽엔 송민준이, 그리고 오른쪽엔 한열이었다. 막내 동생인 한승은 아예 잘라버린 후 사진을 업로드 했다.비록 송민준의 눈을 모자이크 처리하긴 했지만 하관만 보아도 한열과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닮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
[두 여배우 모두 연기력이 그렇게 뛰어나면서, 대체 얼마나 보는 눈이 없어야 한열을 좋아할 수 있는 거지?][그건 좀 아니지 않나? 한열도 미남상이긴 하잖아. 이런 사람인 줄은 몰랐지만.][세 사람 같이 촬영했었잖아요. 한현진이 한열과 신하리가 사귀는 걸 몰랐을까요? 이건 뻔히 알면서도 만난 거잖아요.][살려줘! 나 한현진 정말 좋아한단 말이야. 전에 햇살 유치원 사건 때문에 엄청 호감이었는데. 봄의 연인의 중전마마 역도 완전 잘 소화했었다고. 대체 바람은 왜 핀 거야. 연예계에 사고 안 치는 연예인이 있긴 한 거야?] [두 여신을 동시에 만나다니. 한열, 능력도 좋아. 지까짓게 뭔데...] [한열은 신하리에게 빌붙으려는 목적이었던 거예요. 지금 소속사와 계약 해지를 준비 중이예요. 회사에서도 전혀 신경 안 쓰고 있고요. 신하리가 아니었으면 한열 주제에 어떻게 유명 감독에게 캐스팅 될 수 있었겠어요. 정말 어떻게든 여자 덕 좀 보겠다고 애쓰네.]아래의 댓글들은 더 이상 눈을 뜨고 볼 수도 없었다. 대부분은 그들을 욕하는 악플이었다. 한열과 신하리의 공개 연애에 대해 두 사람의 팬들은 자신의 배우가 아깝다며 강력한 불만을 토로했다.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한 후부터 양측의 팬들은 줄곧 다툼을 이어왔다. 두 사람의 커플 팬계정인 [이열치열]은 팬들의 감정 쓰레기통 같은 곳이 되어버려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한열은 열애 인정으로 회사와 갈등을 빚어 계약을 해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지금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한 채 나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회사 측은 말도 안 되는 루머를 퍼뜨렸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었던 터라 잠깐의 파장을 일으킨 후 곧 사그라들었다. 공개 연애 후 꽤 빠른 속도로 떨어지던 한열의 인기는 요즘 다시 천천히 오르고 있는 추세였다. 회사 측에서 밀어주던 신인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한열의 뒤를 이어받아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회사 측은 화가 치밀었다. 그러니 한열이 바람 폈다는 기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