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쓰러진 송가람을 한쪽으로 제쳐두고 침실로 갔다. 그리고 또 다른 낯선 남자가 이미 정신을 잃은 유현진을 안고 방으로 들어왔다.두 사람은 유현진을 강한서의 곁에 눕혔다. 현장을 깨끗하게 수습한 뒤 그들은 옷을 송가람의 머리 위로 덮어씌웠다. 그들은 그렇게 송가람을 둘러업고 방에서 나가면서 문을 꼭 잠갔다.그들은 CCTV를 피해 비상계단을 이용하여 주차장까지 내려갔다.차 안에서는 전 여사가 이미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송가람을 태우자마자 그녀가 물었다.“강한서는 어떻게 되었죠?”남자가 답했다.“아직 약효가 남아 있었지만, 곧 깨어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옆에 눕힌 여자는 약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더군요. 숨소리가 살짝 불규칙적으로 거칠었습니다.”전 여사가 멈칫거리더니 이내 웃으면서 말했다.“그럼 유현진이 저한테 고마워해야겠군요.”전 여사의 “호의”는 당연히 대가 없는 호의가 아니었다.정인월의 생신 연회에 다녀온 후, 그녀는 바로 사람을 시켜 남편의 내연녀에 대해 조사를 했었다.진상은 유현진이 그녀에게 말해준 것보다 더욱 잔혹했다.신미정은 그녀의 남편이 바람피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남편과 내연녀를 이어준 장본인이기도 했다.그녀만 이 모든 사실을 바보처럼 모르고 있었고 심지어 신미정에게 잘 보이려 노력하며 어떻게든 남편의 사업에 도움이 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모든 사실을 알게 된 전 여사는 완전히 달라졌다.그녀의 머릿속엔 이미 온통 쓰레기 같은 남편의 몰락과 남편에게서 재산을 다시 빼앗아오는 것이었고 신미정에게 복수할 생각으로 가득 들어차 있었다.전 여사는 아주 현명한 사람이었다. 남편은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었기에 그녀가 남편의 사생활을 폭로한다 해도 그녀의 남편은 크게 데미지를 입지 않을 것이었다.기껏해야 그저 행실이 바르지 못하다는 얘기만 들을 뿐 2년 정도가 지나면 여론은 잠잠해져 다시 활개를 치고 다닐 것이 분명했다.게다가 신미정에게 복수를 해야 했기에 그녀는 더욱이 이런 방식을 쓸 수
그녀는 서해금과 사이가 아주 좋다고 말한 적이 있었고 송가람을 자신의 며느리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서해금과 사돈이 될 테니, 송가람도 절대 그녀를 이렇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전 여사는 신미정의 말에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아들마저 기대를 저버렸는데, 다른 사람에게 기대한다고?'‘신미정은 자신이 유현진은 불임으로 만들어버린 일을 알게 된 강한서에게 그렇게 쫓겨나고도 정신을 못 차린 건가?'‘강한서는 처음부터 유현진을 포기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송가람이랑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 거지?'그녀는 신미정이 정말로 자기 아들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다.그녀는 대단한 인물이었던 강단한이 어떻게 이런 머리가 꽃밭인 신미정에게 반해 결혼을 하게 된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그러나 그녀는 신미정의 멍청함을 너무나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신미정은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상대가 아무리 자신의 아들이라 해도 전혀 개의치 않고 손을 댔다.그녀는 가장 먼저 전 여사를 찾아와 강한서에게 약을 탈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송가람을 강한서가 있는 방으로 불러 둘이 함께 잠자리를 가지길 원했다.이런 추악한 일에 그녀는 직접 움직이려 하지 않았기에 당연히 전 여사를 찾아와 그녀 대신해 주길 바랐다.여하간에 전 여사의 인맥은 아주 넓었고 여러 가지 부류의 사람들과 친하게 지냈다.그러나 신미정은 자신에게 충성하던 전 여사가 이미 배신하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전 여사는 절대 그녀의 뜻대로 계획이 흘러가게 놔두지 않을 생각이었다.그녀는 신미정이 다시 강씨 가문으로 돌아가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신미정이 원하는 것들을 모두 얻을 수 없게 만들 생각이었고 이것이야말로 아주 완벽한 복수였다.전 여사는 신미정이 말한 대로 강한서에게 약을 먹이고 송가람과 한 방에 가둬두지 않았다.그녀가 사람에게 시켜 강한서에게 먹이라고 한 것은 마취제였고 기껏해야 2시간 동안 자두면 깨어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그녀는 유현진
상대의 손은 점점 그녀의 옷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고 그녀의 부드러운 피부를 천천히 쓸어내렸다.유현진은 깜짝 놀라 등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그녀는 잔뜩 잠긴 목소리로 덜덜 떨며 말했다.“제발 살려주세요. 절 그냥 보내주신다면 돈을 원하시는 만큼 드릴게요, 네?”강한서는 시선을 떨구고 눈앞에 있는 섹시하기 그지없는 여자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는 그녀를 보며 침만 꼴깍 삼킬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의 눈앞엔 자신이 제일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붉게 물든 섹시한 몸으로 곁에 누워있는데 어떻게 참을 수가 있겠는가?강한서가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바로 꿈이었다.그러나 손바닥이 그녀의 뜨거운 피부와 맞닿았을 때 그는 그제야 꿈이 아닌 현실임을 자각했다.그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되지 않았지만, 유현진을 놀리기엔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그는 아무런 말도 없이 계속 유현진의 허리를 쓰다듬었다.그녀의 피부로 소름이 오소소 돋아올랐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그는 아주 귀여워 보였고 그만 참지 못하고 그녀의 배에 뽀뽀를 했다.유현진은 깜짝 놀라 육두문자를 외쳤다.그녀는 두려운 마음을 꾹꾹 누르며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젠장, 저기요. 저 결혼도 했었어요. 제 전 남편은 제가 성적 매력이 없다는 이유로 저랑 이혼했거든요. 비록 제가 얼굴은 예쁘게 생겼어도 목석처럼 아주 딱딱한 사람이에요. 그런 쪽으로 반응이 없다고요. 제 몸을 탐낼 바엔 차라리 제 돈을 탐내는 게 더 이득일 거예요.”강한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목석같이 딱딱한 사람이 일주일에 두세 번 야한 잠옷을 입고 나를 유혹해?'그는 살짝 호기심이 생겨났다. 이런 상황에 그녀가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이윽고 그는 자체 음성 변조를 하고 입을 열었다.“얼마나 줄 건데?”자체 음성 변조한 강한서의 목소리를 한때 더빙의 신이었던 유현진은 눈치채지 못했다. 만약 평소의 상황이라면 유현진은 바로 그의 목소리를 알아챘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고
유현진은 그가 도대체 왜 자신에게 흥미를 느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녀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저기요, 제가 그렇게 마음에 드신다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에요.”강한서가 순간 동작을 멈추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말도 없이 그녀를 보았다.“정말이야?”유현진이 답했다.“저기요, 저희 여자들은 말이죠. 보통은 의지가 되는 남자를 찾으려고 해요. 그렇게 편안하고 안정된 사람을 살아가려는 거죠. 의지가 되는 남자가 어떤 남자인지 아세요? 돈을 와이프에게 맡기는 남자를 보통 의지가 되는 남자라고 해요. 제 전 남편은 아주 쪼잔한 사람이었죠. 결혼 생활 몇 년이나 했는데 저에게 돈을 관리하는 중요한 집안 대권을 맡기지 않았거든요. 그것만 맡겼다면 전 이혼까지 안 했을 거예요.”강한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방금 이혼한 이유가 너무 네가 너무 딱딱해서 그렇다고 하지 않았나?”“네?”유현진은 순간 당황한 목소리로 급히 머리를 굴렸다.“네, 맞아요. 전 남편이 저에게 돈을 맡기지 않으니 제가 점점 욕구가 사라지고 딱딱해진 거죠. 만약 당신이 모든 돈을 저에게 맡겨 관리한다면 전 분명 아주 열정적인 욕구를 보였을 거예요.”그녀는 그와 대화하는 순간에 오른쪽 엄지로 두 손을 묶은 밧줄을 살살 풀어냈다. 이윽고 그녀는 계속 몰래 밧줄을 풀어냈다.“그래?”강한서는 이를 갈았다.“그럼 당장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줘.”유현진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흡사 부끄러워하는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했다.“저기, 그럼 일단 이 안대부터 벗겨줘요. 얼굴을 보면서 하면 더 달아오르거든요.”강한서의 안색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그는 그녀가 정말 굽힐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그는 손을 뻗어 검지로 그녀의 안대를 살짝 벗겨냈다. 유현진은 드디어 나쁜 놈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할 때 그는 다시 손으로 안대를 확 씌웠다. 그리고 이내 그녀의 셔츠를 풀어헤치고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난 그래도 네가 안대를 쓰고 있는 것이 좋아.”그는
유현진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려왔다. 그녀는 최음제의 효과로 환청 증상이 나타난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그녀의 귓가에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릴 리가 없었다.“현진아.”목소리가 점점 더 선명하게 들려왔다.“현진아, 눈을 떠봐. 나야. 다른 사람은 없어.”유현진은 천천히 눈을 떴다. 흐릿하던 눈앞이 점점 선명하게 보였다.정말로 강한서였다.순간 긴장감이 풀린 그녀는 “으앙” 소리를 내며 울기 시작했다.그녀는 강한서를 끌어안았다. 그러더니 그의 가슴을 퍽퍽 치면서 다리를 찼다. 그녀는 울면서 욕을 해댔다.“이 나쁜 놈, 개자식! 왜 사람을 놀라게 해!”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었던 강한서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는 발버둥을 치는 그녀를 꽉 끌어안고 낮은 목소리로 달랬다.“내가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그냥 장난 좀 친다는 게 너무 심하게 쳤어. 전부 다 가짜니까 울지 마, 응?”유현진은 정말로 무서웠었다. 납치되고 눈을 뜨니 누군가가 그녀에게 억지로 약을 먹였다. 낯선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공포에 그녀는 한시라도 긴장감을 늦출 수가 없었고, 심지어 그녀는 자신을 납치한 나쁜 놈과 함께 죽을 생각까지 했었다.유현진의 울음소리가 점점 사라지고 그저 살짝 히끅거리기만 했다. 강한서는 그제야 입을 열었다.“근데 네가 여기엔 왜 있어?”유현진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날 납치하고 데리고 온 데 네가 아니야?”강한서는 눈썹 사이를 구겼다.“내가 널 왜 납치를 해. 내가 그런 장난을 할 사람으로 보여?”유현진은 바로 날을 세우며 말했다.“네가 방금까지 날 놀리고 있었잖아.”“...”강한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나도 방금 막 정신을 차린 거야.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땐 옆에 묶인 채로 누워있는 너밖에 없었어.”유현진은 미심쩍은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방금 막 정신을 차렸다니?”그녀의 말에 강한서의 표정이 다소 어두워졌다.“누군가가 나에게 약을 먹였거든. 난 회의장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이미 정신을 잃게 되었었어.”
유현진은 무릎을 끌어안고 몸을 웅크렸다.“기껏해야 최음제잖아. 괜찮아. 내가 지금 욕실로 가서 찬물로 샤워하면 약효가 사라질 거야.”그녀의 고집은 꺾을 수가 없었다. 강한서는 하는 수없이 욕조에 물을 받았다.그는 침대에서 약효 때문에 낑낑거리는 유현진을 떠올리며 입술을 말아 물었다.물을 다 받고 난 뒤 강한서는 그녀를 불렀다.침대에 누워있던 유현진은 이미 약효에 정신이 흐릿해진 상태였다.그녀를 부르는 강한서의 목소리에 힘없이 겨우 일어나 앉았다.그녀를 지켜보고 있던 강한서는 바로 허리를 굽혀 그녀를 안아 올리고 욕실로 들어갔다.욕조에 몸이 담기자 유현진은 미간을 찌푸렸다.“왜 뜨거운 물이야?”강한서가 답했다.“찬물이 안 나오더라고. 그래서 뜨거운 물 밖에 받을 수가 없었어. 괜찮아. 조금만 참으면 금방 식을 거야.”유현진은 다시 괴로워졌다.“얼마나 더 있어야 물이 식는데?”강한서는 컵을 들고 욕조 끝에 앉았다.“내가 이렇게 컵으로 저어줄게. 그러면 더 빨리 식을 거야.”유현진의 감별력은 평소보다 더 느려졌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절대 강한서의 황당한 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이렇게 큰 욕조에 그렇게 작은 겁으로 얼마나 저어야 물이 차가워지겠는가?게다가 그녀는 현재 강한서의 말이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오히려 강한서가 예전보다 더 다정해졌다고 느꼈다.그녀는 옷을 입을 채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강한서는 욕조 끝에 앉아 컵으로 물을 계속 저었다.어느덧 욕실에 물기가 자욱했고 컵으로 계속 물을 젓고 있던 탓에 강한서의 옷은 이미 흠뻑 젖어있었다.옷이 그의 몸에 찰싹 들러붙었고 유현진은 순간 자신의 시력이 평소보다 더 좋아진 것 같았다. 그녀는 강한서가 옷을 입고 있음에도 그의 선이 분명한 근육을 보게 되었던 것이었다.예쁘고 아주 단단해 보였다.체내에 있던 뜨거운 열기가 사라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그녀는 시선을 피하면서 속으로 묵념했다.‘나는 보이지가 않는다. 나는 보이지가 않는다. 나는
그녀의 말에 강한서의 몸이 순간 경직되고 말았다.그는 이를 갈며 말했다.“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응.”유현진이 답했다.강한서는 화가 난 듯 그녀의 입술을 깨물었다.“‘응'이라고?!”느껴지는 고통에 유현진은 미간을 찌푸렸다.“남자들은 여자들을 책임지는 거 싫어하잖아, 아니야?”강한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누가 너한테 그런 말을 한 거야?”유현진은 더이상 자신을 제어할 수가 없었고 이내 손을 뻗어 그를 만지려고 했다. 그러나 강한서는 그의 손을 꽉 붙잡고 낮게 말했다.“말해주면 나 만지게 해줄게.”만지지 못하게 하는 강한서에 유현진은 바로 솔직하게 말했다.“인터넷에서. 네이버 지식인에서 봤어.”“뭐라고 쓰여 있었어?”강한서는 단추를 풀며 ‘미끼'를 던졌다.“똑바로 말해주면 바로 단추 풀어줄게.”유현진은 원래부터 의지력이 강한 사람이 아니었고 최음제의 약효에 고통스러워하던 찰나, 눈앞에 걸어 다니는 최음제 해독제인 강한서에 바로 이성을 놓아버렸다.그녀는 계속 그의 물음에 대답했다.그녀는 비록 말로는 아이를 안 가져도 된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특히 강한서가 그녀를 유혹할 때마다 그녀의 머릿속에 임신을 못 한다는 사실이 떠올랐고 계속 마음이 콕콕 쑤셨다.그녀는 치료가 안 될까 봐 두려웠고 아이가 필요 없다는 강한서의 말이 어느 정도가 진심인지 몰랐다.혼자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고 있을 때마다 그녀는 자신의 상황과 비슷한 글들을 검색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찾아보았다.그렇게 한참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하나의 게시글을 발견하게 되었다. 글을 올린 사람은 자신의 여자친구가 선천적인 이유로 임신을 할 수가 없다고 했다. 결혼하기 전에 그에게 임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밝혔고 그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했다. 글쓴이와 여자친구는 3년 동안 사귀었고 두 사람은 모든 방면에서 취향도 잘 맞는다고 했다. 심지어 그는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글쓴이의 집안에서 손자를 원하
강한서는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고 그녀가 퍼붓는 뽀뽀를 받아들이고 있었다.유현진이 손을 뻗어 그의 옷을 벗기려 하자 그제야 그는 손을 움직여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는 바로 그녀와 거리를 두었고 촉촉해진 그녀의 눈망울을 지그시 보면서 나직하게 말했다.“정말로 나랑 자고 싶어?”유현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내가 누구야?”유현진은 몽롱해진 정신으로 나직하게 말했다.“강한서.”말을 마친 그녀는 바로 강한서의 입술에 다시 키스를 하려 했다.강한서는 고개를 피하며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방금 그 말, 나 말고 다른 사람한테 절대 하지 마. 알았어?”유현진의 이성은 이미 가출한 상태였고 그녀는 강한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분별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강한서의 말에 대답하면 상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이윽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급하게 말했다.“알았어.”강한서는 바로 기뻐했다. 그는 그녀의 손을 확 끌어당겼다. 그는 시선을 내리깔고 그녀의 손끝에 입을 맞추었다.유현진의 손끝이 살짝 떨려왔다. 찌릿찌릿한 느낌이 그녀의 손끝에서부터 가슴으로 전해졌고 그녀의 가슴이 쿵쾅쿵쾅 요동쳤다.강한서는 천천히 그녀의 손끝부터 손목까지 입을 맞추었다. 그녀의 손이 갑자기 그의 가슴에 닿았다.이윽고 강한서가 입술을 달싹이며 유혹적인 말을 했다.“벗겨줘.”유현진은 고분고분 움직였다. 그녀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었고 시선을 떨구고 천천히 그의 셔츠 단추를 풀었다.긴장감 때문인지 아니면 최음제 때문인지 기껏해야 5개밖에 안 되는 단추를 한참이나 풀었다.“아주 잘했어.”강한서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칭찬했다.그저 단추만 풀었을 뿐인데 그의 칭찬을 받게 되자 그녀는 마치 엄청난 일을 한 것처럼 느껴져 얼굴이 더욱 붉어지고 말았다.강한서는 다시 고개를 들었고 그의 입술은 그녀의 눈썹, 콧등, 입술, 그리고 쇄골로 내려갔다...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상한 소리에 유현진은 입을 황급히 막았다.강한서는 그런 그
한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세요, 채영 언니.”문채영이 가방에서 포장한 선물 박스를 건넸다. “첫 만남이라 어떤 선물을 준비하면 좋을지 몰라 제가 직접 향낭을 만들었어요. 향 맡아봐요.”한현진이 조금 의외라는 듯 말했다. “언니도 조향하세요?”문채영이 미소 지었다. “제가 조향에 입문하게 된 것도 민준이 덕분이었어요. 전엔 이런 거 만드는 거 좋아했었거든요.”한현진은 다시 한 번 충격에 휩싸였다. 그녀는 조향하는 송민준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줄곧 송민준은 그쪽으론 취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송민준은 그 얘기를 꺼내는 것이 불쾌한 듯 담담하게 말했다. “주문부터 해. 배고파.”멈칫하던 문채영이 시선을 내려 눈에 맴도는 서운함을 숨겼다. 한현진이 얼른 화제를 돌렸다. “언니, 오랜만에 오셨을 텐데 오늘은 한주 음식으로 드시는 게 어때요?”문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요. 현진 씨가 먹고 싶은 거로 주문해요.”주문한 음식 서빙을 마치고 룸을 나서려는 종업원에게 송민준이 갑자기 말했다. “장어 국수도 주문할게요.”문채영이 힐끗 송민준을 쳐다보자 시선을 올린 그가 마치 변명이라도 하듯 말했다. “환영회에 국수가 빠질 수 없지.”‘그래, 환영회에 국수가 빠질 수 없다고 하는 건 그렇다고 쳐. 하지만 하고 많은 국수 중에 왜 하필 장어 국수야?’‘오빠가 장어 국수라고 말할 때 언니 표정을 보면 설마 두 사람 사이에 장어 국수와 관련된 스토리가 있었던 건가?’호기심이 활활 불타오른 한현진이 몰래 테이블 아래로 강한서의 손을 꼬집었다. 그러자 강한서는 그녀에게 새우를 발라 주었다. 한현진: ...강한서과 문채영은 너무 친한 사이였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한현진은 문채영의 외할머니와 강한서의 할머니가 먼 친척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워낙 촌수가 먼 사이라 피가 거의 섞이지 않은 가족이라고 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알고 지낸지 한참 후에야 두 가문이 몇 세대 전에는 친척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현진이 고개를 들자 옆에 서 있는 벤틀리가 보였다. 송민준이 운전석에 앉아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차창은 닫혀 있었으니 송민준은 당연히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강한서의 차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차를 세운지 한참이 지나도 두 사람이 모습을 보이지 않자 송민준은 강한서가 또 이상한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송민준의 목소리를 들은 강한서가 한현진의 손을 놓고 그녀의 옷을 정리하며 단정하게 자리에 앉았다. 민경하는 은연 중에 자신의 미래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차에서 내린 송민준은 카키색의 캐주얼한 외투에 검정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머리는 평소 한열이 자주하던 헤어스타일과 비슷했고 선글라스를 콧등에 걸친 채 입술을 앙다물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넓은 어깨에 긴 다리의 그가 우뚝 서 있으니 카리스마와 매력이 흘러넘쳤다. 전엔 그가 한열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데 이런 차림에 선글라스까지 쓴 모습을 보니 만약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아마 그를 한열로 착각할 것도 같았다. 닮아도 너무 닮았다. 차에서 내린 한현진이 가방을 메고 송민준을 향해 걸어갔다. “오빠, 오늘 왜 이렇게 멋져요?”송민준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내가 언제 안 멋진 적이 있었어?”한현진이 눈웃음 지으며 말했다. “어떤 날이든 멋지긴 하죠. 그래서 언제 데뷔할 생각이요?”송민준이 한현진의 가방을 건네받으며 장난스레 말했다. “난 열이와 캐릭터가 너무 비슷해. 내가 데뷔하면 연예계에 걔 자리가 있긴 할 것 같아?”한현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송민준은 손을 들어 검지로 콧등에 걸린 선글라스를 아래로 내렸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강한서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쟨 차에서 뭐하는 거야?”“업무 통화 중이예요.”송민준이 한현진의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한현진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가자. 우린 먼저 올라가는 게 좋겠어. 혼자 미적거리라고 해.”룸에 도착하자 송민준은 그제야 물었다. “너희 두 사람, 대체 무슨 중요한 얘기를 하려고 이렇
한현진이 장난기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강한서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마음 약해질 줄 알았는데,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 봐.”한현진이 말했다. “처음엔 마음이 약해졌는데 조금 전 불쾌한 일이 있었거든.”한현진은 간단하게 주혁이 무릎 꿇은 일을 서술했다. “난 사실 그렇게까지 화가 난 건 아니었어. 하지만 꿇어앉아 있는 기사님 모습을 본 순간 화가 치밀더라고. 그렇게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러니까 날 강박하는 것 같았거든. 그래서 그 기회를 빌려 바로 전근시켰어.”한현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오는 길에 계속 마음이 불편했어. 내가 너무 극단적으로 처리한 건 아닌가 싶었거든. 기사님은 지금 아들에게 인공 달팽이관을 해줄 돈이 부족한 상황이거든. 전근하면 월급은 당연히 전보다 줄어들 텐데.”강한서가 한현진의 손등을 토닥였다.“인공 달팽이관은 보청기와 비슷한 거야. 생명과 직결된 문제도 아니니 돈이 부족하다고 해도 당장 급할 건 없어. 하지만 굳이 너를 속여 가며 부업을 하려고 했어. 난 그 부분이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아.”멈칫한 한현진이 나지막이 물었다. “기사님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야?”강한서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건 모르지.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무릎을 꿇고 자존심 따위는 쉽게 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원하는 건 자신의 존엄보다 훨씬 더 소중한 걸 거야. 전근이 제일 좋은 선택이었어. 네가 그 사람을 곁에 두는 건 내가 불안해.”강한서는 한현진의 손을 잡으며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 약해지지 마. 네가 마음 약해질 때마다 난 심장이 떨려.”“휴. 신세를 지기도 했고 기사님 집에는 장애인이 두 명이나 있잖아. 안타까워서 그러지. 내가 언제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약해지는거 봤어? 난 아주 독한 사람이라고.”강한서는 곧바로 태클을 걸었다. “강운이에겐 마음 약하게 굴었잖아.”지나간 이야기를 꺼내려는 강한서의 태도에 한현진이 얼른 입을 열었다. “그건 내가 불쌍해 보이는 주 변호사님 외모
한현진이 민경하를 살펴보았다. “그래 보이지는 않는데. 얼마 전 야근 때문에 피곤해서 그런 거 아냐? 신제품 발표회도 마무리 됐으니 이젠 좀 쉬게 해줘야지. 민 실장님이 쓰러지면 나중에 너만 고생할 거야.”강한서가 한현진에게 텀블러를 건넸다. “내가 부하 직원 생사도 나 몰라라 하는 그런 대표 같아? 민 실장이 쉬고 싶다고 하면 언제든지 휴가 줄 거야.”그 말에 민경하가 재빨리 대답했다. “괜찮아요, 사모님. 저 건강해요. 휴가 필요 없어요.”만약 평소였다면 휴가를 주겠다는 강한서의 말에 당연히 쉬겠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전 그 상황을 겪고 나니 지금의 민경하는 감히 그럴 수가 없었다. 오늘 민경하가 강민서와 밤낚시를 약속했다는 것을 알게 된 강한서는 한현진과 통화할 때까지만 해도 그리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얼마나 갔을까, 강한서가 입을 열었다. “밤낚시... 몇 명이 가는 거예요?”민경하가 말했다. “밤낚시 모임이 있어요. 아마 20명 정도 있을 거예요. 다들 스케줄에 따라 다르겠지만 많을 땐 8명에서 10명 정도 모여요. 적을 땐 4, 5명이 만날 때도 있고요.”“그래요.”단답으로 대답한 강한서는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민경하에게 물었다. “밤새 낚시하면 피고하지 않아요?”민경하가 말했다. “텐트가 있어서 피곤하면 들어가서 쉬면 돼요.”강한서가 또 다시 “그래요”라며 단답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그가 또 물었다. “두 사람... 같은 텐트에서 자요?”“...”그 질문에 민경하는 바짝 긴장했다. 어쩐지 그 어떤 대답도 목숨을 걸기에 충분한 것 같았다. “4, 5명이면 텐트 2개를 사용해요. 피곤한 사람끼리 돌아가면서 쉬고요.”강한서는 더는 말이 없었다. 5분 후. “두 사람 같이 쉰 적 있어요?”“...”‘같이 잤냐고 묻는 일만 남았네.’민경하가 식은땀을 삐질 흘렸다. “누워서 얘기만 좀 나눴어요.”“그래요.”10분 후. “얘기만 조금 나눈게 전부예요?”민
남자는 들고 있던 담배를 다 태울 때까지 아무 말이 없었다. 서해금이 또 말을 이었다. “당신이 뿌리를 제대로 뽑지 못해 이렇게 큰 후환을 남기지만 않았다면 우리 가람이 처지도 지금처럼 어렵진 않았을 거야.”서해금이 말한 후환은 당연히 한현진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한현진 말이 나오자 남자의 얼굴이 저도 모르게 어두워졌다.그 여자 아이가 죽지 않았다는 일은 그 역시도 송씨 가문에서 한현진을 데려오기 얼마 전에야 알게 되었다.당시 그 여자가 품에 안아 보여주던 여자 아이는 애초부터 송씨 가문의 딸이 아니었다. 그 여자는 다른 곳에서 죽은 아이를 안아와 한아람의 딸이라고 그를 속였던 것이다.친딸이 태어나는 모습도 두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한 그는 곧 자신의 친딸에게 인생을 빼앗길 아이를 마주했다. 그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책감에 그는 심지어 아이를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었다. 그는 그저 아이의 죽음을 확인하기만 하면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했다. 포섭당한 사람 중 누군가가 마음이 약해졌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말이다. 한현진이 죽지 않았으니 송씨 가문이나 한씨 가문에서는 기필코 당시 분만실에서 있었던 일을 밝히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 다행히 서해금은 일처리를 함에 있어서 화근을 남기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당시 그 일에 연루되어 있는 사람들은 이미 전부 죽거나 도망간 상태였기에 아무리 쥐 잡듯이 뒤져도 그 해의 진실은 알아내 수 없을 것이었다. “내가 뭐 도와줄까?”남자가 나지막이 물었다. “아니.”서해금이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한현진은 그렇게 멍청하지 않아. 쓸데없는 짓해서 괜한 의심 사지 마. 걔는 걔 엄마랑 똑같아. 의리가 치명적인 약점이거든. 잠깐만 조용히 지내.”잠시 멈칫하던 서해금이 말을 이었다. “앞으로 내 지시 없이 함부로 회사에 나타나지 마. 회사는 여기저기 보는 눈이 많아. 조그만 실수라도 있었다간 우리 가족 전부 끝장이라고.”우리 가족이라는 두 단어에 남자는 그만 멍해졌다. 그의 눈빛이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반짝였다. 그가
시선을 거둔 서해금이 물었다. “아래층은 불 켜졌어요?”누군가 대답했다. “네. 우리 층만 정전인 것 같아요.”머리 위의 CCTV를 확인한 서해금이 태연하게 말했다. “사람 불러서 확인해 보라고 해요. 다른 분들은 모두 자리도 돌아가요.”말하며 서해금이 송가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도 돌아가. 내가 보내 준 자료는 꼭 봐. 검사할 거야.”송가람이 입술을 삐죽이며 작게 애교 부렸다. “알겠어, 엄마.”모든 사람이 자리로 돌아가자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서해금이 입을 꾹 다물고 비상계단으로 향했다. 비상계단엔 창문이 없었다. 복도에선 은은하게 담배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선세등이 켜지지 않아 유난히 어두웠다. 비상계단 복도로 들어선 서해금은 계단 위에 서서 벽에 기대어 담배를 쥐고 있는 남자를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손을 들어 비상계단의 문을 닫으며 목소리를 낮춘 채 호통 쳤다. “여긴 회사야. 여기서 이런 짓을 하다니, 미친 거야?”“내가 정전 안 시켜서 CCTV에 찍혔으면 네가 이 상황을 해명할 수는 있고?”낮고 허스키한 목소리의 상대방의 말투엔 비웃음이 가득했다. 서해금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당신이 당신 마음대로 여기 들어올 땐, 내 의견을 묻긴 했어?”남자가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난 그저 우리 딸이 보고 싶었을 뿐이야.”화가 치민 서해금은 목소리를 잔뜩 낮추었음에도 분노를 완전히 억제할 수는 없었다. “내가 동영상 보내줬잖아. 사진도 보내줬잖아. 지금 당신이 어떤 신분인지, 당신이 몰라서 이래?”“사진이나 동영상은 직접 내 눈으로 보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잖아. 목소리를 듣고 싶고, 얼굴 한 번 보고 싶다는 게 너무 한 거야?”“이게 너무한게 아니면 뭐야? 지금 당신이 어떤 모습인지, 어떤 신분인지 몰라?”스산하게 비추는 불빛에 남자의 표정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서해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가 움찔 떠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서해금. 네가 원하던 걸 전부 이루니까 이제 난 필요 없다 이거야?
송가람의 목소리가 비통함에 잠기기 시작했다. “엄마, 설마 아빠 아직도 나한테 화 난 거야?”송가람이 이윤하에게 맞아 입원했을 당시 송병천은 매일 같이 병원에 왔었다. 하지만 송가람을 마주한 송병천은 어린 시절 한없이 다정다감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어색함과 냉담함만이 더해졌다. 신미정에게 속은 건 결국 송가람이 아직도 강한서를 잊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송병천이 그런 송가람의 마음을 눈치 채고 이미 한 번의 주의를 주었음에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으니 송병천은 그녀에게 철저히 실망했을 것이다. 강한서를 좋아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송가람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그녀는 모든 잘못은 한현진이 저지른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이미 20여년이 지난 일인데, 왜 그대로 흘려버리지 않은 걸까? 왜 굳이 돌아와 그녀의 아빠와 오빠를 빼앗으려 하는 걸까?한현진이 없던 송가람의 네 식구는 행복하기 그지없는 가족이었다. 하지만 한현진이라는 존재가 나타남으로 인해 부모님은 전처럼 서로를 사랑하지 않았고 오빠의 마음은 완전히 친동생에게 기울었다. 아빠는 더 이상 전처럼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고 심지어 엄마는 그저 지분과 재산 생각으로 가득 차 전보다 더 계산적으로 굴었다. 그 혈연관계는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한현진이 등장한 후 그녀의 가족을 갈라놓았다. 송가람은 반항이라도 하듯 강한서를 좋아하면서도 송병천과 송민준이 전처럼 예뻐해 주길 발랐다. 서해금이 시선을 올려 송가람을 바라보았다. “네가 한현진에게서 강한서를 빼앗으려고 결정했을 때부터 그 정도 각오는 했어야지. 네 아빠가 마음을 대해 널 20여년 간 키워주고 진심으로 예뻐한 건 사실이지만 한현진은 친딸이야. 게다가 간절히 바랐었지만 결국 잃어버렸던 아이야. 그런 애가 유씨 가문에서 그런 치욕을 당하며 살아왔어. 네 아빠가 조금만 조사하면 한현진이 어떤 고생을 하며 살아왔는지 금방 알 수 있어. 그럼 네 아빠가 모든 걸 걸고 한현진에게 보상해주려고 하지 않겠어?”“피로연에서 그저 조금 떠봤을 뿐인데 네 아
서해금 사무실. “내가 널 어쩌면 좋겠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널 지켜보고 있는데 고작 은서하가 한현진 옷 선물을 받았다는 이유로 보너스를 삭감해?”밖에선 꾹 참고 있던 서해금은 사무실에 도착하자 더는 화를 감추지 못했다. 송가람은 개의치 않으며 말했다. “엄마. 은서하는 재무팀 직원이야. 감히 내 앞에서 한현진의 선물을 받았어. 그건 엄마에게 창피를 주는 것과 다를 거 없잖아. 만약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다른 직원들도 은서하와 똑같이 했을 거야. 난 그저 엄마 대신 주의를 준 것뿐이야.”“주의?”서해금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고작 옷 한 벌로 주의? 너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애야? 은서하가 한현진 옷 선물을 받았을 때, 왜 그 이유는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어? 은서하는 가족 병원비 때문에 충분히 힘들게 살고 있어. 만약 이런 타이밍에 네가 은서하를 도와줬다면 걔가 그 은혜를 평생 기억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직원들에게도 네가 얼마나 아량이 넓은 사람인지 알게 되었을 거야.”“하지만 네가 한 짓을 봐! 보너스를 삭감으로 은서하 상황만 더 안 좋게 했어.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도 네 곁에 있던 멍청이에게 비난을 받아야 했어. 그런 식으로 은서하를 조롱하면 네가 뭐라도 돼 보일 것 같아? 멍청한 것! 네가 그럴수록 사람들은 네가 속이 좁다고 생각할 뿐이야. 고작 그런 일로 복수나 하는 아량이라고는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겠지. 누가 그런 사람 밑에서 일하고 싶을 것 같아?”멍해졌던 송가람은 잠시 당황했지만 여전히 고집스레 말했다. “그땐... 그땐 그런 건 생각도 안 했어. 그렇게 멍청하게 한 번도 인사팀에 묻지 않을 줄은 몰랐지. 그리고 내가 걔 집안 사정을 어떻게 알아...”변명을 늘어놓던 송가람은 조금 전 한현진이 대신 나서줬음에도 끝내 한현진 편에 서지 않던 은서하를 떠올리고는 곧바로 자신 있게 말했다. “엄마, 조금 전 한현진이 도와주는데도 가만히 있는 거 봤잖아. 엄마는 어떻게 은서하가 배은망덕한 머리 검은 짐승이 아닐 거라 확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부업으로 회사 청소를 하시면서 실수가 있으셨고 그걸 바로 저에게 보고하기는커녕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덜미를 잡혔어요. 만약 오늘 세은이가 오일 제조에 실패했다면 기사님이 얼마나 큰 책임을 떠안아야 했는지 알고는 계세요?”“마지막 이유는, 제 사무실 앞에 꿇어앉아 용서를 구하지는 않았어야 하셨어요. 무릎을 꿇는 이유가 사과든 반성이든, 아니면 또 다른 목적이 있어서든 그건 제가 싫어하는 방식이거든요. 인간으로서의 존엄도, 자존심도 전부 내려놓는 행위이니까요. 부모님과 은인 앞이 아닌 이상, 함부로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희는 고용관계잖아요. 게다가 기사님은 저보다 한참 연장자이시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기사님이 무릎을 꿇고 사죄를 바라는 행동을 전 용서를 강요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요.”주혁은 차마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얼굴도 조금씩 하얗게 질려갔다. 한현진의 논리정연한 말에 주혁은 반박할 수조차 없었다. 그는 한참만에야 창백해진 얼굴로 겨우 죄송하다는 한 마디를 내뱉었다. 입술을 짓이기며 말이 없던 한현진은 잠시 후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선택해요. 월급은 제가 최대한 인사팀과 협의해 볼게요.”한참을 잠자코 있던 주혁이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제가 다시 대표님 운전기사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한현진은 이번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 말했다. “그건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한 번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현진은 진심으로 주혁의 처지를 안타까워했다. 물론 그가 부업을 하려는 이유도 충분히 이해했다. 하지만 그녀는 틈만 나면 사고를 치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다시 등에 칼을 꽂을지도 몰랐다. 한현진에게는 다른 사람을 동정할 여유가 없었다. 면접을 봤던 그날 주혁이 구해준 은혜는 다른 방식으로 보답할 생각이었다. 무릎을 꿇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한현진은 그런 이유로 더 참아줄 생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