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가람은 얼굴이 빨개져서 고개를 떨어뜨리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민서야, 그만해."여자의 쑥스러움이 언행 간에 묻어났다.생각이 아예 없다면 거절하면 될 텐데,송가람은 쑥스러움이 섞인 어투로 "그만해."라고 했다. 이건 강한서라는 남편감에 대해 전혀 반감이 없다는 뜻이었다.이에 유현진은 마음이 불편했다.그는 갑자기 며칠 전에 한성우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사진이 떠올랐다. 강한서 이 자식 술김에 송가람한테 뭐라 헛소리해서 상대방이 오해하게 만든 거 아냐?아니면 예쁜 아가씨가 이혼한 아저씨를 좋아할 리 없잖아.유현진은 테이블 위에 놓은 수박을 쥐더니 크게 한입 베어물었다.신미정은 송가람의 반응을 보더니 뭔가 희망이 보였다.진 여사가 옆에서 거들었다. "민서 말이 맞아. 남녀 모두 싱글인데 접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진 여사 그건 아니지. 둘 다 싱글이라 하지만 남자는 돌아온 싱글인데, 가람 씨에게 소개하는 건 너무 하지."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휘감은 송민희가 가볍게 웃으면서 다가왔다. 그 옆에는 강현우가 있었다.이를 보자 신미정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진 여사는 교제에 엄청 능숙한 사람이었다. 그는 바로 웃으면서 말했다. "민희 언니, 지금 우리 때와 달라요. 애만 없으면 초혼이나 재혼이나 별로 차이 없어요. 재혼이면 경험이 있어서 아내를 더 잘해준다잖아요."그러자 송민희가 웃었다. "진 여사의 생각이 그렇다면 당시 우리 조카랑 혼담을 제안했을 때 왜 아무런 반응이 없었을까?"진 여사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신미정이 최근 들어 일을 처리하는 효율이 낮아, 진 여사는 송민희와 가깝게 지내려고 했었다.그런데 송민희도 바보가 아닌 이상 진 여사의 속셈을 모를 리가 없었다. 진 여사가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작은 선물에 감동을 먹을 사람이 아니었다.진 여사는 남편을 도와 프로젝트를 끌어들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송민희에게서 교훈을 톡톡히 받았다.송민희는 이혼을 세 번이나 한 조카를 진 여사의 딸에게 소개하면서 혼사만 성사된
유현진은 딸기를 먹으면서 흥미진진하게 눈앞의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이때 등뒤가 갑자기 따뜻해지더니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누가 당신더러 외투를 벗으라고 했어?"유현진은 손에 쥔 딸기를 한입 베어물고 말했다. "오늘 한주시의 훌륭한 젊은이들이 많이 모였다잖아."강한서는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없다.유현진은 나머지 딸기를 입에 넣고 천천히 씹은 다음 넘기고는 말했다. "이혼한 신분으로 좀 더 노출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부잣집 딸들과 경쟁해서 젊은 남성들의 주목을 받아?"강한서는 얼굴이 시커매졌다. "이혼한 지 얼마나 됐다고 재혼할 상대를 찾아?"유현진은 강한서를 흘겨보면서 말했다. "당신 어머님이 당신을 위해서 이미 새 사람을 물색해놨는데, 나도 빨리 움직여야지. 재혼이 당신보다 늦을 수는 없잖아."강한가 지금 막 따지려고 할 때, 신미정이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마침 잘 왔어. 가람이 데리고 주위 한바퀴 돌고 오렴. 친구들에게 소개도 시켜주고."강한서는 고개를 들더니 말했다. "저 여기 잘 몰라요. 현우더러 함께 돌아보라고 해요."신미정은 눈가가 바르르 떨렸다.용호에서 행사만 해도 여러 차례 치뤘는데, 잘 모른다는 게 말이나 돼?강현우는 기꺼이 대신하려고 적극 나섰다. "가람 씨 여기요."송가람은 고개를 떨어뜨리면서 말했다. "현우 오빠, 다음에요. 곧 생신 잔치도 시작할 텐데 우선 할머니께 생신 축하 드리는 것이 먼저일 것 같아요."강현우도 아무렇지 않은 듯 가볍게 웃었다. "네, 나중에 얼마든지 기회가 있을 테니까요."유현진은 볼 것을 다 봤으니 이제는 가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갑자기 강한서가 그의 팔을 잡았다. "당신한테 보여줄 게 있어.""싫어."유현진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거절했다.강한서도 말이 필요없이 아예 유현진을 끌고 갔다.유현진이 지금 막 벗어나려고 하는데, 갑자기 신미정의 날카로운 눈빛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러자 그는 얼른 강한서의 팔짱을 끼고 신미정을 향해 도발하듯
그는 강아지가 이렇게나 잘 컸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토실토실한 엉덩이로 바닥에 털썩 엎드리는 모습을 보니 평소에도 맛있는 것을 많이 먹은 듯하였다.강아지는 사람들에 의해 잘 키워진 듯하였다.유현진은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관리인들이 아주 잘 키워주고 있었나 봐. 용호에서 항상 행사를 여니 아마 밥도 잘 주나 보네. 나도 볼래.”강한서는 살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너무 많이 먹어서 곧 정수기 생수통 될 것 같아.”유현진은 그를 노려보면서 말했다.“정수기 생수통이 이렇게 귀여운 거 봤어?”강한서는 살짝 웃더니 이내 고개를 들고 말했다.“뻥 아니야.”유현진은 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그녀는 그제야 강한서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챘다.강아지를 잃어버리게 되었을 때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녀는 강한서와 대판 싸웠었다. 물론 그녀가 일방적으로 강한서를 피도 눈물도 없는 사기꾼이라고 욕한 것이었지만 강한서는 그저 다른 사람에게 입양을 보냈다면서 믿든 말든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했었다.유현진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며 말했다.“그때 당시에 왜 나한테 안 보여줬어?”“당시에.”강한서는 머뭇거리면서 말했다.“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 확신이 안 갔어.”아직 젖을 떼지 않은 강아지는 키우기 쉽지 않았고 게다가 발견 당시에 강아지는 이미 이런저런 세균에 감염되어 있던 상태였다. 아무리 봐도 살아날 수 없을 것 같았다.그렇기에 강한서는 큰 기대 없이 돈을 지불하고 일단 이곳에 남겨 치료하면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었다.하지만 강아지의 생명이 이렇게나 완강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치료를 시작한 지 몇 달 만에 강아지는 기적같이 완치되었다.강한서가 다시 강아지를 보러 왔을 때 이곳의 사람들은 강아지를 다시 데려가려는 줄 알고 살짝 섭섭함을 느끼고 있었다.강한서도 물론 집으로 데려가고 싶었지만 그는 동물 털 알레르기력가 있었다. 알레르기만 아니었다면 복슬복슬한 것을 좋아하는 유현진이 이미 집에 강아지랑 고양이를 데려와 키웠을 것이다
강한서는 한숨을 내쉬었다.“20억도 없으니 그러면 그냥 그대로 살아. 언제 당신한테 20억이 생기면 그때 가서 다시 명의 양도해도 되니까.”유현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지금 이거 막무가내 아닌가?’강한서는 유현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채고 있었다. 아무리 그녀에게 그만한 돈이 있다고 해도 그녀는 절대 이런 돈 낭비가 될 게 뻔한 일에 돈을 쓸 사람이 아니었다.유현진은 살림살이를 아주 잘하는 편이었고 집에 있는 옷들도 전부 할인 행사할 때 한꺼번에 사둔 것이었으며 심지어 옷마다 디자인도 다 달랐다.유현진은 이를 갈며 말했다.“강한서, 내 손에 당신의 400억이 있다는 거 잊지 마. 내 성질 건들면 그 돈 전부 기부해 버릴 거야!”강한서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어 보였다.“당신이 즐거우면 됐어. 어차피 400억은 며칠이면 다시 벌어올 수 있거든.”유현진은 어이가 없었다.‘이게 지금 사람이 할 소리야?’한창 둘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한성우가 곧 잔치가 시작하니 얼른 오라고 연락해 왔다.정인월의 팔순 잔치는 아주 상당히 성대하였다.신미정과 송민희의 표정은 각기 달랐고 10년 전의 칠순 잔치보다 더욱 성대하게 열렸다.한주시의 유명 인사 절반이 이미 잔치 현장에 도착하여 인사를 드리고 있었다.그림을 선물해 주는 사람도 있었고 골동품, 그리고 보석을 선물해 주는 사람도 있었다. 잔치 현장의 한편엔 이미 선물로 산더미를 이루고 있었고 몇십 명의 직원들이 정리를 해주고 있었다.유현진은 강한서와 결혼한 지 3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이런 큰 잔치 행사는 처음 보았다.강씨 가문은 사회적 지위뿐만 아니라 정인월의 인맥도 한몫한 것 같았다.강씨 가문의 모처럼 잔치 행사에 정인월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있었고 아주 즐거워 보이는 듯했다.강현우는 모든 사람들이 정인월에게 선물과 인사를 다 나눈 것 같아 보이자 얼른 앞으로 다가갔다.“할머니, 생신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할머니께서 더 오래오래 건강하게 복 받으시면서 장수하길 바랍니다!”정인
한주시에서 드론 개발하는 것은 강한서의 단순한 개인 흥취였다.그는 기계와 비행 물체 같은 것들에 대해 관심이 아주 많았지만 한주시에서는 이런 것들에 대해 중시하지 않았다. 강한서가 이런 것들을 만드는 것도 사실은 시중에 나와 있는 드론이 그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자신만의 팀을 만들어 연구하기 시작했다.결국은 아무리 열심히 연구를 해보아도 진척이 없었다.드론의 기술은 그가 연구하고 있던 칩보다 훨씬 빠른 혁신이었다.한주시에서 론칭한 아이븐 시리즈 드론은 시중에 나오자마자 반응이 아주 좋았다.그들이 만든 최신형 스텔스 드론 기술은 심지어 윗사람들의 인정까지 받아 드론 전투기 연구 개발 계약서에 사인까지 하게 되었다.자신이 고생해서 연구한 드론을 다른 사람이 가로채 축하 공연으로 사용했으니 정말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강한서는 덤덤하게 평가하고 있었다.“아주 잘 날고 있네.”한성우는 그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한성우는 그런 강한서를 정신을 차리게 해주길 바라며 고개를 돌려 유현진을 바라보았지만 유현진은 태연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순간 한성우의 눈가가 떨려왔다.‘혹시 지금 나만 걱정하고 있었던 거야?’멀지 않은 곳에서 송민준이 신미정과 마주 서 있는 유현진을 보고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옆에 있던 서해금이 연신 감탄하면서 말했다.“이 드론 쇼 정말 아주 창의적이네요. 현우가 아주 잘 만들었네요. 사모님께서는 정말 좋으시겠네요.”정인월이 활짝 웃으면서 답했다.“현우 녀석은 어릴 때부터 아주 똑똑한 아이었네.”송민희가 웃으면서 맞장구쳤다.“현우는 잔머리만 아주 좋거든요. 사람들을 기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니까요. 그래도 재주 하면 역시 가람이죠. 가림이가 예전에 비엔나에서 열린 피아노 콩쿠르에서 아주 좋은 성적을 따냈다면서요.”옆에서 듣고 있던 송가람이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상을 받지 못해서 부끄럽네요.”송민희가 칭찬을 하면서 말했다.“그래도 얘, 콩쿠르까지 나갔다는 건 실력이 아주 대단하다는 거야
현장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갈 때쯤 전 여사가 갑자기 끼어들면서 말했다.“제 기억에 유현진 씨도 피아노 잘 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오늘 한 곡 연주해 보실래요?”음식을 먹고 있던 유현진은 순간 동작을 멈추었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그녀는 지난 생에 무조건 전 여사에게 원한을 샀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전 여사가 왜 번마다 그를 건드리겠는가.정인월은 깜짝 놀랐다.“현진이도 피아노를 칠 줄 안다고?”유현진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전 여사가 말을 가로챘다.“그렇다니까요. 현진 씨 피아노 엄청 잘 쳐요. 지난번 유람선에서 아주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니까요.”유현진은 전 여사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그녀는 손에 든 음식을 꽉 쥐면서 낮게 말했다.“어머 전 여사님, 너무 과찬이세요. 전 피아노 제대로 칠 줄 몰라요. 지난번에는 그저 흥미로 쳐봤을 뿐 이런 자리에서 칠 정도는 아니랍니다.”“여기서도 흥미로 쳐 보면 되잖아요. 어차피 즐거우면 되니까 가람 씨랑 같이 이중주 해보세요.”유현진은 정말로 그 자리에서 전 여사의 입을 꿔매 버리고 싶었다.그녀의 미미한 피아노 실력으로 송민영을 이기는 것은 가능했지만 송가람을 이기기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송가람은 이중주에 흥미를 보이는 듯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현진 언니만 괜찮으시면 저도 같이 쳐 드릴 수 있어요.”유현진의 난처한 모습을 보아낸 송민준이 입을 열려던 찰나에 강한서가 말했다.“손가락 다쳐서 피아노 칠 수 없습니다.”유현진과 송민준은 그대로 할 말을 잃었다.‘아니 말을 지어낼 거면 성의 있게 지어 내든가!’‘손가락에 붕대 감은 흔적도 없는데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사람들은 일제히 유현진의 손가락에 시선을 돌렸다.유현진은 왼손에 힘을 주며 웃으면서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손가락 건초염이에요.”전 여사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유현진 씨 손가락 건초염은 하필이면 이럴 때 걸리셨네요.”알만한 사람이면 다 아는 말이었다.실력이 부족하니 망신당하기 싫어서 그저
현장엔 긴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었고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사람들 무리에서 누군가가 말했다.“전 예전에 송가람 씨의 서예 실력을 본 것 같아요.”“어디서 보셨어요? 어떠셨어요?”“어느 서예 전시회에서 본 것 같네요. 그 전시회는 마지철 선생님의 전시회였는데 마지철 선생님의 작품들 속에 송가람 씨 작품도 전시되어 있었더라고요.”이때 다른 사람도 입을 열었다.“송가람 씨는 마지철 선생님이 직접 가르친 제자잖아요. 제가 마지철 선생님의 자택에서 송가람 씨와 선생님의 사진도 봤거든요.”“대박, 직접 가르쳤다고요? 그럼 엄청나게 잘 쓰시겠네요. 그럼 유현진 씨가 망신당하는 거 아니에요?”“유현진 씨가 스스로 글을 쓰겠다고 한 거잖아요. 망신을 당해도 스스로 자처한 것이니 어쩔 수 없죠.”“전 심지어 유현진 씨가 붓도 사용할 줄 모른다고 봐요. 유현진 씨는 피아노든 서예든 뭐든 못하게 생겼거든요. 차라리 무대에 올라가서 춤이나 추는 게 서예보다 낫지 않을까요? 전 굳이 실력도 안 되면서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봐요.”“그래도 강씨 가문의 전 손주며느리인데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는 건 좀 그렇지 않을까요? 그래도 체면은 지켜야죠.”“어차피 유현진 씨는 사생아인데 무슨 체면이 필요하겠어요? 전 유현진 씨가 뻔뻔하게 여기 팔순 잔치에 참가할 줄도 몰랐다고요. 이런 곳도 뻔뻔하게 와서 참가했는데 무대에서 춤추는 건 아무것도 아닐걸요?”“유현진 씨는 배우라고 하지 않았어요? 제가 듣기론 이미 촬영 시작했다고 했던 것 같은데요.”누군가가 맞장구를 치면서 말했다.“맞아요. 유현진 씨에겐 그게 더 잘 어울려요. 웃는 얼굴로 돈 버는 직업이요.”긴 테이블에 준비물들을 세팅하고 있던 강한서는 내내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그는 유현진의 서예 실력을 본 적이 있었고 딱히 나쁘진 않았지만 너무 좋은 것도 아니었다.만약 그녀가 혼자 글을 써서 정인월에게 선물했다면 정인월은 분명 나쁘지 않다고 말해줬을 것이었다.하지만 송가람도 같이 쓰겠다고 하니 사람들은 당연히
한성우는 두 사람이 글을 쓰고 있는 모습에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던 강한서에게 말했다.“형수님 정말 손가락 건초염 아니야? 손을 아주 심하게 떠는 것 같은데 글이나 제대로 쓸 수 있으려나?”강한서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그 입 좀 닥쳐.”한성우는 그대로 입을 꾹 다물었다.송가람은 한눈에 봐도 서예를 배운 사람이라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다. 글을 쓰는 것에 막힘이 없었고 짧은 시간 내에 벌써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냈다.한성우는 목을 쭉 빼 들며 힐끔 쳐다봤다.송가람이 쓴 글씨체는 약간 흘려 쓴 한자의 서체 행서체였다. 그녀의 작품은 대담함과 적당한 기복이 느껴졌고 예술성이 아주 뛰어났다.비록 한성우는 서예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송가람의 작품이 예술성이 아주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한성우는 다시 고개를 돌려 유현진 쪽을 쳐다봤다.그녀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망했네.’‘망했네, 망했어.’유현진의 패배가 분명하게 느껴졌다.한성우는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아니면 이렇게 해. 네가 일단 쓰러진 척하면서 이 술잔을 형수님의 작품에 쏟아버려. 이러면 망신당하는 것보다는 나을 거야.”강한서는 입술을 깨물더니 옆에 있던 술잔을 한성우에게 건넸다.“네가 해.”한성우는 강한서 손에 든 술잔과 유현진을 번갈아 보더니 다시 술잔을 내려놓았다.“난 맷집이 약해서 맞으면 아파.”강한서는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쫄보.”한성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신미정은 유현진의 글을 힐끔 보더니 다시 고개를 들어 전 여사를 흘겨봤다.전 여사가 일부러 비아냥거리면서 말했다.“유현진 씨, 고작 몇 글자라고 이렇게 오래 쓰세요? 송가람 씨는 이미 다 쓰고 유현진 씨를 기다리고 있는데.”유현진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녀는 붓을 멈추지 않고 계속 담담한 표정으로 글을 써 내려가면서 말했다.“제한 시간 있는 건 아니잖아요.”전 여사는 웃으면서 말했다.“당연히 제한 시간은 없죠. 하지만 늦게 쓴다고 해서 글씨가 어떻게 더 아
은서하는 빠르게 시선을 거두고 건강검진표를 꽉 쥔 채 한현진의 뒤로 갔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자연스레 한현진의 배로 향했다. 한현진은 회사에 와서부터 항상 허리 라인이 보이지 않는 넉넉한 옷만 입었다. 뒷모습으로 보면 여전히 날씬해 보였고 이상한 점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한현진이 특정 동작을 할 때 배가 살짝 불룩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전에 한현진의 차에 탔을 때 그 모습을 잠깐 본 적이 있었다. 처음엔 그저 살이 찐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임신한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은서하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왜 한현진은 회사에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았을까?’ ‘혹시 서해금 때문일까?’은서하는 복잡한 마음을 안고 있었지만 한현진은 마치 그녀의 발견에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잠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전화를 받고 몇 마디를 나누고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줄을 빠져나갔다.은서하는 잠시 멈칫하며 물었다. “한 대표님, 검사 안 하세요?”한현진은 천천히 돌아보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괜찮아요. 일이 생겨서 나중에 다시 올려구요.” 그리고는 아무런 표정 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한현진이 떠난 뒤 이시연이 나타났다. “한 대표님 어디 가셨어요?” 이시연은 주위를 살펴보며 물었다.은서하가 대답했다. “전화를 받으시더니 일이 생겼다며 먼저 가셨어요. 나중에 다시 오신다고 했어요.”“그렇군요.” 이시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한 대표님과 얘기 해봤어요? 예전에 그 분의 옷을 받고 따돌림 당하고 급여도 깎였다고 했을 때 한 대표님이 굉장히 마음 아파했어요.” “그때 한 대표님이 먼저 도와주겠다고 했었죠. 후에 그렇게 된 건 어쩔 수 없지만 한 대표님은 정말 착한 분이세요. 잘 사과하면 한 대표님이 이해해줄 거예요.”은서하는 고개를 숙인 채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 대표님이 신경 쓰지 않으셔도 저는 그런 얘길 꺼낼 입장이 아니에요. 그리고 저는 그냥 작은 직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멀지 않은 곳에서 이시연과 은서하가 진단서를 들고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이시연이 은서하의 손을 이끌고 다가오며 말했다. “한 대표님, 여기서 뵙네요. 건강검진 받으러 오신 거예요?” 한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가 은서하를 가볍게 훑어본 뒤 다시 이사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두 분도 오늘입니까?” 이시연이 웃으며 말했다. “원래는 어제가 제 날짜였는데 어제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다른 분이랑 바꿨어요. 서하 씨랑 같이 오려고요.” “가족은 안 데리고 왔어요?” 이시연이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부모님은 직장에서 추가 의료보험을 들어두셔서 제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서하 씨 외할머니의 병은 보험으로는 혜택을 받을 수가 없어서요.”은서하는 내내 말이 없었다. 이시연이 얘기하는 동안 그녀의 시선은 자꾸만 주혁에게로 흘러갔다. 주혁은 예민하게 그 시선을 포착했다. 둘의 눈이 맞닿자 은서하는 움켜쥔 손에 힘을 주며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혁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답하고는 별다른 말 없이 시선을 돌렸다. 마침 건강검진 순서가 불리기 시작했다. 주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한 대표님, 얘기 나누세요. 전 애들 데리고 먼저 검진 받으러 가겠습니다.” 그가 주상욱와 함께 자리를 떠나자 이시연이 한현진에게 조용히 제안했다. “한 대표님, 같이 가실래요? 먼저 채혈하고 나서 초음파 검사하면 순서가 빨라요. 그러면 금방 검사 끝내고 식사하실 수 있을 거예요.” 한현진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채혈은 이미 했어요. 먼저 가요. 난 초음파실 앞에서 번호표 뽑아둘게요.” 한현진은 애초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온 게 아니었다. 주혁이 진짜 주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고 난 뒤부터 직접 그를 만나보고 싶었다. 방금까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녀는 내내 무심한 척 주혁을 은근히 살폈다. 주혁의 외모는 평범했다. 사람들 사이에 섞이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흐릿한 얼굴이었다.
주혁이 설명했다. “상욱이가 자신이 보낸 그림 잘 받았는지 물어봐요. 마음에 드는지 궁금해해요.”한현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목소리로 주혁에게 물었다. “마음에 든다는 걸 수화로 어떻게 하면 돼요?”주혁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냥 말하면 돼요. 상욱이는 들을 수는 있지만 말하는 게 서툴러요.”사실 주상욱은 말을 못 하는 건 아니었다. 그는 납치 사건에서 구출된 후 청력을 잃었다. 오랫동안 그는 청각장애인처럼 생활했으며 오랜 시간동안 소리를 못 들은 것도 있지만 또한 납치 당시 겪은 충격 때문에 사람과 접촉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언어 능력도 점차 떨어졌고 말을 꺼내는 것조차 원하지 않았다. 이후 보청기를 장착한 뒤 청력은 조금씩 회복되었지만 언어 능력은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과 소통할 때 수화를 사용하는 것을 더 편하게 느꼈다.한현진은 주상욱에게 미소 지으며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정말 마음에 들어.”주상욱은 눈이 반짝이며 수화를 하려다가 잠시 멈췄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꺼내 글을 한 문장 써서 한현진에게 건넸다.“나 보라고?” 한현진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주상욱은 고개를 끄덕였다.한현진은 고개를 숙여서 화면을 읽었다. [누나, 아빠에게 휴가를 주셔서 고마워요. 덕분에 아빠와 함께 생일을 보낼 수 있었어요. 아빠가 잘못한 일이 있어서 이제 누나 옆에서 일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아빠를 미워하지 말아 주세요. 아빠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저와 엄마를 위해 많은 고생을 했어요. 우리가 아빠를 힘들게 한 거예요. 아빠 대신 사과하고 싶어요. 아빠를 용서해 주실 수 있나요?]한현진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아이의 말은 서툴고 순수했지만 그 마음은 진심에서 우러나왔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그가 입에 담은 ‘아빠’가 진짜 아빠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한현진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핸드폰에 글 한 줄을 적었다. [다 지나간 일이야. 이제 네 아빠를 탓하지 않아.]주혁은 이제 그녀 곁에서
대장은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건 물론이죠. 이미 먼저 주혁 씨에게 연락했어요. 집에서 가족들과 상의한 후 곧바로 답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의 집안 사정으로 회사가 이렇게 좋은 혜택을 주는데 그가 신청하지 않겠어요? 절대 그럴 리 없죠.”원율은 잠시 담배를 피운 뒤 담배 끝을 비벼 끄며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부서에도 더 전해야 하니까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대장님, 일 보세요.”원율을 보내고 나서 대장은 다시 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혁 씨, 가족이 두 명이니까 연간 십만 원도 안 되게 더 내면 돼. 한 달에 만 원도 안 되고 가족이 병원 갈 때 드는 비용은 전부 보장돼. 이 작은 돈 아끼려고 하지 말고 큰 기회를 놓치지 마.”주혁은 돈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가장 싫어한 건 그 돈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족을 위한 보험에 가입하면 이번 주 금요일에 반드시 그들과 함께 건강검진을 받아야 했다. 설령 병원이 서대금이 손수 준비한 곳이라 해도 그에게는 그 사실이 부담스럽고 꺼려지는 일이었다.대장은 계속해서 재촉하며 보험 가입 후의 이점을 설명했다. 결국 주혁은 마지못해 동의했다. “그럼 내 아내와 아들도 함께 가입시켜줘. 나중에 주민등록증 사진 보내줄게.”“알겠어. 잘 쉬고 빨리 회복해. 듣자 하니 곧 송가람 씨 밑에서 일하게 된다면서? 잘 됐어. 정해지면 꼭 한턱 쏴.”주혁은 송가람 밑에서 일하게 될 생각에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빛에 부드러운 감정이 스며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확정되면 한 번 쏠게.”최종적으로 제출된 명단에 주혁의 가족이 포함된 것을 확인한 한현진은 비로소 안심했다. 체크업은 금요일과 토요일로 이틀에 걸쳐 나뉘어 진행되었고 한현진은 주혁이 토요일에 가는 것을 일부러 확인한 후 같은 날에 병원을 가기로 했다.주혁은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왔다. 그의 아내는 평범한 주부였고 깔끔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한현진이 그녀를 보았을 때 그녀는 주혁
회의실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떠나자 한현진은 물건을 정리한 뒤 아직 자리에 앉아 있는 서해금을 향해 파일을 들고 다가갔다. “아주머니, 방금 지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해금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네가 직원들을 생각해서 한 거니까 당연히 지지해야지. 우리 모두 같은 회사에 있는 한 하나의 팀이니까.” 한현진도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주머니가 제가 먼저 조사를 했다고 문제 삼지 않으셔서 다행이에요. 그리고 집에 보내주신 곤약도 가람 씨 통해 잘 받았어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서해금은 여유 있게 말했다. “가족끼리 서로 아끼는 거지. 너무 예의 차리지 마.”한현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머니, 제가 회사에 온 이래로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쓰게 해드렸어요. 제가 성격이 직설적이고 고집도 세서 가끔 말이 거칠어질 때도 있어요. 그런데도 아주머니께서 항상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셔서 감사해요.” “아빠한테 들었어요. 아주머니가 아빠한테 저를 칭찬해 주셨다고요. 그 말을 들으니 저도 마음이 무겁고 어쩌면 제가 너무 어리석게 행동했나 싶어요.”“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서해금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얘가 무슨 말이야. 어른이 아이와 다툴 일이 뭐가 있겠어? 현진아, 아주머니는 네 친엄마는 아니지만 너희 어머니와는 정말 소중한 친구였어. 네가 송씨 가문에 돌아올 수 있게 되어 아주머니는 그 누구보다 기뻐.” “지금 네가 집안에서 가람이랑 함께 지내는 걸 보니 젊은 시절 너희 어머니와 함께 보낸 시간들이 가끔 떠올라. 우리가 반평생을 함께 지냈고 너희는 진짜 자매가 된 거지. 이것도 하나의 인연이란 거야.”한현진은 속으로 토할 뻔했다. ‘정말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고?’만약 당시 아이를 바꾼 일과 그녀 어머니의 죽음이 모두 바로 눈앞에 있는 이 온화하고 친절한 여자과 관련이 있었다는 여러 가지 증거들이 없다면 이렇게 진심 어린 말투를 들었을 때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
하지만 이 제안이 실행되면 소문이 돌아 사람들이 그것을 한현진 덕분이라고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서해금은 아마도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서해금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안은 나쁘지 않지만 실비보험은 본래 회사가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기본적인 보장이기에 만약 직원들에게 요금을 부과하게 되면 일부 사람들은 이를 회사가 급여를 삭감하려는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직원들의 가족은 병원을 거의 가지 않아 이 비용이 꼭 필요한 지출은 아닐 수 있어요. 그런데 전액을 회사가 부담하게 된다면 일부 직원들이 가족을 허위로 신고해 다른 사람의 보험을 대신 받으려 할 가능성도 생길 수 있을 겁니다.”한현진은 그녀가 이렇게 말할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말하는 방식에 약간의 여유를 두었다. 서해금이 자신의 의문을 제기하자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직원들이 가족을 위한 보험을 구매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자발적입니다. 회사는 강제로 요구하지 않아요. 다만 구매의 문턱을 낮춰놓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죠. 원하는 사람은 구입하고 원하지 않는 사람은 추가 비용을 부담하지 않도록 말이에요.” “서 대표님 생각은 어떠신가요?”서해금은 입술을 꽉 다물고 잠시 침묵한 후 말문을 열었다. “현진 씨, 구입을 개방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쪽은 괜찮지만 보험사와의 협상이 필요해요. 어떤 보험사도 손해 보려고 하진 않잖아요.” 한현진이 살짝 웃으며 답했다. “보험사와의 협상은 제가 맡을게요. 지금 여쭤보는 건 서 대표님 개인의 의견이에요. 동의하시는지요?” 서해금은 당연히 반대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회의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반대한다고 말하면 그 소문이 바로 회사 전체에 퍼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녀가 그동안 쌓아온 직원들을 위하는 좋은 상사의 이미지가 무너질 게 뻔했다. 서해금은 절대 자기를 망칠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서해금은 잠시 침묵한 뒤
이틀 후 깔린느 정기 회의에서 서해금은 직원들의 건강검진을 언급하며 각 부서가 직원들의 시간을 조율하고 차례로 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말했다. 말을 마친 후 시간을 확인하며 말을 이었다.“그럼 특별한 사항 없으면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잠깐만요.” 한현진이 서해금의 말을 가로막았다. 모두가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서해금도 눈을 들어 한현진을 응시하며 여유 있게 말했다. “현진 씨, 더 지시할 거라도 있어요?” 한현진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지시라뇨. 이 자리에 계신 분들 모두 제 선배님들이세요. 업무적인 부분은 앞으로도 많이 배우고 의지해야 할 분들입니다. 다만 서 대표님께서 직원 건강검진에 대해 언급하신 걸 듣고 마침 오늘 회사 고위층 분들도 다 계셔서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어서요.” “서 대표님, 괜찮으실까요?”모두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한현진이 아마도 회사 관리와 관련된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회사에 온 지 몇 달이 되었고 비록 진씨 가문 사모님 홍혜림을 중심으로 몇몇 고객을 끌어들였지만 서해금의 기반은 그렇게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두 사람의 실력 차이가 매우 컸고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 큰 진전이 없었으니 한현진은 분명히 조급할 것이다.서해금은 두 손을 가볍게 포개어 테이블에 놓고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정기 회의는 원래 경영진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어떤 의견이라도 편하게 말씀하세요. 좋은 제안이라면 우리는 반드시 적극적으로 채택할 겁니다.” 그녀는 매우 너그러운 태도로 민주적인 자세를 보여주었고 이것이 바로 서해금이 이렇게 확고한 위치를 유지하는 이유였다. 회의에서 나온 의견과 제안은 결코 당면에서 거절하지 않으며 오히려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뒤에서는 다른 수단을 써서 상대를 밀어내는 법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다루는 데 그녀는 능숙했다.한현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서 대표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직설적을 말
송가람은 급히 말을 이었다. [지금 저도 정확히 알 수가 없어요.] 그녀는 강한서보다 더 초조해했다. 황 닥터는 금지된 물품을 소지하고 있던 이유로 출국 금지 명령을 받았고 당분간 국내로 돌아오지 못한다고 했다. 그가 오지 않으면 강한서를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그는 분명히 모든 것을 기억해 낼 것이다. 송가람은 점점 더 초조해졌다.[한서 오빠, 저랑 같이 외국에 가서 교수님한테 진료받으러 갈래요? 그쪽에서 꼭 잘 봐주실 거예요.] 송가람은 더 이상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강한서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가람아, 평소 같았으면 바로 갔겠지만 지금은 안 될 것 같아. 너도 알잖아. 요즘 한주시 상황이 얼마나 복잡한지. 난 지금 이곳을 떠날 수 없어. 정말 어쩔 수 없으면 여기서 다른 의사를 찾아서 진료를 받는 방법을 찾아볼게.][그럴 수는 없어요!] 송가람이 목소리를 높였다. 강한서는 잠시 멈칫했다. [왜 안 되지?] 송가람은 자신이 너무 지나치게 행동했다는 걸 깨닫고 잠시 말을 더듬으며 겨우 입을 열었다. [교수님은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뇌과학 전문가 중 한 분이세요. 국내 의사들하고는 비교도 안 되죠.]의사를 바꾸면 강한서가 예전에 사용한 약에 대해 물어볼 것이었고 그렇다면 그녀는 그것을 말해야 하므로 폭로될 위험이 있었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었다. 강한서는 난처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네.] 그는 잠시 침묵을 지킨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그 약은 효과가 좋았어. 매번 먹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고 잡생각들이 사라졌거든.] [그런데 지금은 그 약이 다 떨어져서 최근에 다시 두통이 찾아왔어. 그 약만 있으면 황 닥터가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 텐데.]송가람의 눈이 번쩍였다. ‘맞다. 그 약이 있었지.’ 그녀는 속으로 들뜬 마음을 억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서 오빠,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하지만 이 보험은 직원 개인에게만 해당되며 가족은 이 보험을 가입할 수 없다. 지금 강한서의 의도는 이 혜택을 직원의 가족에게까지 확장하려는 것이다. 주혁은 집에 두 명의 환자가 있고 약을 자주 복용해야 한다. 만약 그가 회사의 이 선의를 거절한다면 그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 예전에 아들을 위해 인공 와우 이식 수술을 받을 돈을 마련하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직장을 잃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절대로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강한서의 개인적인 의도도 있었다. 이런 세심한 직원에 대한 배려는 점차 아래 직원들이 한현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위층은 작은 이익에 별로 신경 쓰지 않지만 일반 직원들에게는 다르다. 대부분 사람들이 열심히 돈을 버는 이유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다. 그들 대부분은 삼십대에서 마흔다섯 사이로 이 나이대의 사람들은 부모님을 부양하고 자식들을 키워야 한다. 회사가 약속한 성과급 같은 허황한 말보다는 이런 쉽게 보상받을 수 있는 실비보험이 직원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기 때문에 더욱 마음을 얻을 수 있다. 한현진은 마치 뭔가 깨달은 듯 강한서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이렇게 사람 마음을 얻는 거구나.” 강한서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사실 처음엔 이런 생각까지는 못 했어. 할머니가 병원에 갈 때는 항상 진씨 아저씨랑 같이 가서 내가 직접 겪을 일이 거의 없었거든. 이런 일도 거의 없었고.” “그런데 한 번은 민 실장이랑 같이 출장 가는 길이였어. 그때 민 실장 어머니께서 비를 맞으면서 우리를 마중 나왔는데 길이 미끄러워서 자전거를 타다 넘어지셨어. 가벼운 사고가 나이었고 수술이 필요한 정도로 심했었지.”“그때 민 실장한테 병원에 남아서 어머니를 돌보라고 하고 혼자 고객을 만나러 갔어. 며칠 만에 일을 마치고 병원에 들렀더니 수술은 다행히 성공적이었어.” “그런데 입원부터 치료까지 전부 합쳐서 거의 천만 원 가까이 들었더라. 민 실장은 보험 청구를 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