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우는 두 사람이 글을 쓰고 있는 모습에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던 강한서에게 말했다.“형수님 정말 손가락 건초염 아니야? 손을 아주 심하게 떠는 것 같은데 글이나 제대로 쓸 수 있으려나?”강한서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그 입 좀 닥쳐.”한성우는 그대로 입을 꾹 다물었다.송가람은 한눈에 봐도 서예를 배운 사람이라는 것을 보아낼 수 있었다. 글을 쓰는 것에 막힘이 없었고 짧은 시간 내에 벌써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냈다.한성우는 목을 쭉 빼 들며 힐끔 쳐다봤다.송가람이 쓴 글씨체는 약간 흘려 쓴 한자의 서체 행서체였다. 그녀의 작품은 대담함과 적당한 기복이 느껴졌고 예술성이 아주 뛰어났다.비록 한성우는 서예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송가람의 작품이 예술성이 아주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한성우는 다시 고개를 돌려 유현진 쪽을 쳐다봤다.그녀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망했네.’‘망했네, 망했어.’유현진의 패배가 분명하게 느껴졌다.한성우는 불안한 눈빛으로 말했다.“아니면 이렇게 해. 네가 일단 쓰러진 척하면서 이 술잔을 형수님의 작품에 쏟아버려. 이러면 망신당하는 것보다는 나을 거야.”강한서는 입술을 깨물더니 옆에 있던 술잔을 한성우에게 건넸다.“네가 해.”한성우는 강한서 손에 든 술잔과 유현진을 번갈아 보더니 다시 술잔을 내려놓았다.“난 맷집이 약해서 맞으면 아파.”강한서는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쫄보.”한성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신미정은 유현진의 글을 힐끔 보더니 다시 고개를 들어 전 여사를 흘겨봤다.전 여사가 일부러 비아냥거리면서 말했다.“유현진 씨, 고작 몇 글자라고 이렇게 오래 쓰세요? 송가람 씨는 이미 다 쓰고 유현진 씨를 기다리고 있는데.”유현진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녀는 붓을 멈추지 않고 계속 담담한 표정으로 글을 써 내려가면서 말했다.“제한 시간 있는 건 아니잖아요.”전 여사는 웃으면서 말했다.“당연히 제한 시간은 없죠. 하지만 늦게 쓴다고 해서 글씨가 어떻게 더 아
그녀의 말에 사람들은 모두 웃기 시작했다.전 여사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에이 아니죠. 우리 집 아이는 소심해서 유현진 씨와 비교할 수는 없죠.”정인월이 미간을 찌푸렸고 정인월도 눈뜨고 헛소리를 할 순 없었다.정인월은 고개를 들고 강한서를 보더니 이내 자신의 손자에게 평가를 맡겼다.“한서야, 네가 평가해 보거라.”강한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옆에 있던 한성우는 눈썹을 치켜떴다.‘역시 할머니이시네. 누가 자신의 며느리를 건드는 꼴을 못 보시는 거겠지.’강한서는 진지한 얼굴로 두 사람의 작품을 보더니 고개를 들고 말했다.“송가람 씨의 글은 필적에 막힘이 없고 시원시원하게 느껴지네요. 반면 현진이의 글은... 독창적인 느낌이 있는 것 같네요. 각자만의 매력이 있으니 그냥 비긴 걸로 합시다.”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금 우리를 무시하는 건가?’‘이게 비긴 거라고?’유현진은 살짝 웃음이 터졌다.‘지금 내 작품을 칭찬해 주려고 머리를 짜낸 거야?’그녀가 입을 열려고 할 때 뒤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형태로 보기엔 송가람 씨의 형태가 더 좋은 것 같고 의미를 따지고 보기엔 현진 씨의 작품이 더 의미가 있어 보이네요.”사람들은 모두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주강운이 성큼성큼 웃으면서 정인월에게 다가갔다.“할머니, 생신 축하드려요. 제가 괜한 소리 한 거 아니겠죠?”강한서의 눈빛이 순간 어두워졌다.정인월은 웃으면서 말했다.“아니다. 네 말에도 일리가 있으니 난 당연히 네 탓을 하지 않을 거란다.”주강운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맞아요. 저도 제 관점에서 얘기한 거예요.” 그는 고개를 돌려 유현진의 작품을 든 직원에게 말했다.“작품을 뒤집어서 들어주세요.”직원은 멍하니 그를 쳐다보았다.“네? 뒤집으라고요?”“네, 뒤집으세요.”비록 직원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일단 시키는 대로 뒤집어 들었다.뒤집은 작품을 본 강한서는 순간 유현진의 자신감이 어디서 오는지 알아챘다.사람들은 모두 유현진의
정인월은 말을 하면서 답례로 진 씨에게 선물을 나눠 주라고 했다.유현진은 감사 인사와 함께 선물을 받았다.그러나 송가람은 거절을 하면서 말했다.“제 실력은 현진 언니보다 못하니 할머니의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네요.”유현진은 순간 동작을 멈추더니 이내 웃으면서 말했다.“가람 씨, 이건 어차피 정식 대결도 아니잖아요. 그저 좋은 글을 써서 할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는 것뿐인데 왜 실력이 못하다고 말하는 거죠?”진 씨도 그녀에게 말했다.“송가람 씨, 그냥 받으세요. 이건 사모님의 작은 성의입니다.”송가람은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이내 선물을 받아들었다.“제가 마음이 협소했네요.”유현진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송가람이 그녀와 함께 글을 쓰겠다고 했을 때부터 그녀는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송가람이 자신을 추켜세우려고 한 것이라면 기회는 아주 많았을 것인데 왜 굳이 자신을 끌어들였는지, 아무리 봐도 그녀를 발판으로 삼아 자신을 추켜세우려는 것 같아 보였다.아니면 그저 너무 단순하게 제일 큰 악의로 상대를 깎아내리려고 했을지도 모른다.유현진은 자신의 생각이 쓸데없는 생각이길 바라고 있었다.송씨 가문의 아가씨가 굳이 그녀를 발판으로 삼아 밟으면서까지 자신을 추켜세울 리가 없었다. 긴 테이블을 치우자 주강운이 강한서와 한성우 곁으로 다가갔다.한성우가 그에게 인사를 하면서 말했다.“강운아, 왜 이제야 왔어? 난 네가 오늘 안 오는 줄 알았어.”주강운이 답했다.“요 며칠 사건이 좀 많아서 사무실도 많이 바빴거든. 그래서 좀 늦게 왔어.”그는 말을 하면서 이미 시선을 유현진에게로 돌렸다.“제가 마침 타이밍 기가 막히게 온 것 같더군요. 조금만 더 늦었으면 이렇게나 흥미로운 작품들을 못 볼 뻔했어요.”유현진이 웃으면서 말했다.“강운 씨만 아니면 누구도 몰랐을 거예요. 심지어 제가 직접 작품을 뒤집으면 서프라이즈가 개그로 되어버리잖아요.”주강운이 작품을 뒤집어 본 것은 그녀가 스스로 가서 작품을 뒤집어 보는 것보다 훨씬 더 통쾌한 일이었다.
유현진은 정인월이 준 선물을 슬쩍 꺼내보더니 이내 선물에 담긴 봉투의 두께를 확인하였다.그녀는 고개를 들고 한성우를 보면서 말했다.“아마 대충 봐도 40억은 될 것 같아요.”한성우도 봉투를 만져보면서 말했다.“40억보다 더 많을 것 같은데요? 이거 만약 새로 찍은 지폐이면 대충 60억 정도 같네요.”“아무리 새로 찍은 지폐라도 60억이라는 돈이 이렇게나 얇은 순 없어요.”“아니요. 분명 60억은 될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봉투가 이렇게 클 리가 없잖아요.”강한서는 할 말을 잃었다.그는 순간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두 사람이 창피하게 느껴졌다.한성우의 재촉에 유현진은 슬며시 봉투를 열어보았다.잔뜩 기대하는 마음과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열어보았지만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봉투 안에는 또 다른 봉투 하나가 있었다.유현진은 순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성우는 턱을 만지면서 말했다.“제 생각엔 어쩌면 형수님의 말대로 40억일 수도 있겠네요.”유현진은 봉투를 꺼내 다시 열어보자 또 다른 봉투가 또 나왔다.두 사람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한성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설마 20억일까요?”“20억도 돈이에요.”유현진은 바로 세 번째 봉투를 열어보았다.손을 넣으니 안에는 작은 카드 한 장이 들어있었다.유현진은 순간 멈칫하였다.옆에 있던 한성우는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얼마예요?”유현진이 답했다.“카드가 들어있는 것 같은데요.”한성우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역시 할머니께서 통이 크시네요. 얼른 카드 안에 얼마 들어 있나 확인해 봐요.”유현진은 손을 넣어 그 카드를 꺼냈다.그리고 그 카드를 본 세 사람은 말문이 막혔다.그건 은행 카드가 아닌 강한서의 증명사진이었다.사진 속의 강한서는 대학 다닐 때의 모습이었고 배경을 보니 대충 태주대 운동장 같아 보였다. 태주대의 실험실은 바지 모양의 특이한 건축물이었다.사진 속의 강한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파릇파릇해 보였다. 그는 운동복을 입고 잔디에 앉아 땀에 젖은 머리칼을 뒤로
유현진이 음식 가지러 가자 한성우가 배시시 웃으며 강한서를 쳐다보았다.“사진은 효과가 없어. 다음번엔 너를 포장해서 직접 선물해 봐. 그러면 형수님도 받아주실 거야.”강한서가 그를 흘겨보면서 말했다.“드라마 좀 그만 봐.”봉투의 존재에 대해 몰랐던 강한서는 유현진이 봉투에서 그의 사진을 꺼냈을 때 깜짝 놀랐다.하지만 정인월이 선물한 것이라고 하니 그는 정인월이 충분히 그럴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한성우가 계속 입을 열었다.“형수님께서는 여전히 너의 얼굴을 제일 좋아하시네. 형수님이 너의 사진을 봤을 때 그 표정 봤냐? 아주 눈에서 빛이 반짝반짝 나오더라.”강한서가 멈칫하면서 말했다.“정말이야?”“만약 형수님이 널 싫어하셨다면 너의 사진을 보자마자 아마 질색하셨겠지. 근데 아까 형수님은 사진을 계속 뚫어져라 쳐다보시더라! 유현진 씨가 얼굴 빠순이셨다니. 형수님의 SNS 계정 팔로우만 봐도 모두 잘생기고 몸 좋은 사람들만 팔로우하셨잖아. 그리고 너 정도의 얼굴이면 대부분 셀럽보다 훨씬 낫지!”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지금 나랑 셀럽들을 비교해 보는 거냐?”한성우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지금 그게 문제냐? 제일 중요한 건 유현진 씨가 너의 얼굴을 좋아한다니까! 그게 너의 가장 큰 우세란 말이야!”강한서가 그를 흘겨보면서 말했다.“그걸 말이라고 하냐?”유현진이 그의 얼굴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그도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예전에 유현진이 교통사고를 당하고 수술실에 들어가게 된 적이 있었다. 그가 그녀를 보러 갔을 땐 그녀는 아직 마취가 풀리지 않아 몽롱한 상태로 누워있었다.의사는 유현진의 의식이 돌아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에게 시켜 말을 걸어 보라고 했었다.하지만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유현진은 눈을 떴고 게슴츠레 뜬 눈으로 그를 불렀었다.“오빠.”그 후 그녀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칭찬의 말을 잔뜩 했었고 심지어 그에게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난리까지 쳤었다.한성우 또한 매번 그의 얼굴을 보면서 부러워했다. 한성우
유현진은 약간 의아하게 생각했다.‘대표님은 자신의 여동생에게 약한 거 아니었어? 오늘따라 왜 이렇게 내 편을 들어주는 것 같지?’유현진은 곰곰이 생각을 하더니 이내 송민준이 원래 그런 다정한 사람일 것이라고 판단을 내렸다.어차피 그의 말은 무모한 행동을 한 송가람 대신 사과한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었다.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유현진이 입을 열었다.“뭐 어차피 진짜로 열심히 배웠다고 해도 아마 가람 씨한테는 상대도 안 될 거예요. 가람 씨의 실력은 정말 아주 좋더라고요.”송민준은 한껏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유현진은 가정 교육을 잘 받았을 뿐만 아니라 사람도 아주 착했다.“전 여사님이 현진 씨가 피아노도 칠 줄 안다고 그러시던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제게 한번 들려주세요.”놓친 지난 20여 년을 위해 그는 그녀에 대해 잘 알아가고 싶었다.마침 망고 파이를 한입 문 그녀는 다시 뱉을 수도 없고 삼킬 수도 없었다.그가 꺼낸 의미심장한 말에 그녀는 송민준이 그녀에게 가스라이팅을 시도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송민준도 자신의 말이 다소 오해를 불러일을킬 수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헛기침을 하면서 말했다.“전 그저 우리 회사 소속 연예인들의 재능을 알아보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래야 맞춤형 방송을 찾아줄 수가 있거든요.”유현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망고 파이를 마저 삼키더니 이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사실 저 피아노 잘 못 쳐요.”송민준은 깜짝 놀랐다. 그는 이미 다른 사람한테서 그녀가 유람선에서 피아노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바가 있었다.“제가 칠 줄 아는 곡은 딱 하나뿐이거든요.”자신에 대한 높은 기대를 느낀 유현진은 사실대로 자신의 피아노 실력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사람들 앞에서 잘 칠 수 있는 곡은 하나뿐이라서 다음번에도 그 곡을 치면 사람들이 의심을 할 거예요. 그러니까 대표님, 다음에 저한테 방송 배정해 줄 때 절대 사람들 앞에서 피아노 쳐야 하
얼마 지나지 않아 하현주는 그녀가 아이들과 몰래 놀았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녀를 엄하게 꾸짖었다.하현주는 그녀를 아주 아꼈기에 도저히 손댈 수가 없었고 그저 손바닥에 힘만 살짝 실어 엉덩이를 때렸었다.“나중에 저희 엄마가 드디어 제가 피아노를 배울 재목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셨고 거기다 많이 바쁘셨으니 더 이상 저를 피아노 연습하라고 강박하지는 않았거든요.”더 나중에 그녀의 집은 더욱 잘살게 되어 큰 집으로 이사를 갔지만 그녀는 더 이상 어릴 때처럼 즐겁지 않았다.송민준은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면서 말했다.“그렇게 피아노가 싫었으면 왜 피아노를 망가뜨릴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피아노를 망가뜨리면 더 이상 연습 안 해도 되고 어머님께 꾸중 들을 일도 없게 되잖아요.”유현진은 웃으면서 말했다.“전 그럴 용기가 없었거든요. 민준 씨가 이해 못 할 수도 있는데 그때 저희 집은 그리 잘사는 건 아니었거든요. 그리고 그 피아노는 2000만 원 정도 했거든요. 그때 당시 2000만 원은 엄청 큰돈이었죠. 저희 엄마는 분명 그 돈으로 차를 뽑을 수 있었음에도 저에게 피아노를 사주셨거든요. 게다가 저에게 피아노를 사주겠다고 아빠랑 싸우기까지 했었어요. 그래서 그때의 전 엄마한테 매를 맞더라도 피아노를 망가뜨릴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그 피아노는 저희 엄마가 피땀을 흘려 번 돈으로 사준 거니까요.”그랬기에 그녀가 예체능으로 전환한다고 했을 때 하현주 심하게 반대를 했었다. 하현주는 자신의 딸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녀가 한순간의 열정으로 예술을 시작했다가 나중에 가서 흥미를 잃고 제대로 공부하지 않을까 봐 하현주는 반대를 했었다.그녀의 일반 과목 성적이 높을 수 있었던 것 또한 하현주가 매번 그녀에게 그녀가 아무리 예체능 과목에서 1등을 한다 해도 일반 과목 성적이 전 학년 20등 안에 들지 못한다면 그녀를 예술 학교로 보내지 않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성적이 아주 잘 나왔을 땐 그녀는 성적표를 들고 하현주에게 달려가 한껏 자랑
주아름은 싸늘한 얼굴로 그녀에게 사과한 후 시선을 다시 송민준에게 돌리더니 이내 한껏 누그러진 어투로 말했다.“민준 오빠, 배고파요? 앞에 스테이크도 있던데 제가 위치를 알려드릴게요.”송민준은 바로 표정을 가다듬고 담담하게 말했다.“사실 난 저 초밥이 너무 먹고 싶었는데. 아쉽게 너 때문에 땅에 떨어져 버렸네.”주아름의 표정은 순간 굳어져 버렸고 이내 다시 웃으면서 말했다.“그럼 제가 셰프님께 다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 볼게요.”송민준이 답했다.“난 아까 땅에 떨어진 그 초밥만 먹고 싶거든.”그 말을 들은 주아름은 더 이상 웃음을 유지할 수 없었다. 송민준이 그녀를 원망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그들 사이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던 유현진은 접시를 들고 일어나더니 송민준에게 말했다.“민준 오빠, 전 이만 저쪽으로 가볼게요.”그녀는 이내 접시를 들고 얼른 자리를 떴다.유현진은 순간 송민준보다 강한서가 더욱 만만하게 느껴졌다.만약 강한서가 땅에 떨어진 초밥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면 그녀는 무조건 다시 주워서 그의 입에 넣어줬을 것이었다. 어차피 강한서는 기껏해야 그녀에게 몇 마디 할 뿐이었다.하지만 그녀는 괜히 송민준에게 그런 행동을 시도했다간 송민준에게 죽임을 당할 것 같아 감히 그러지 못했다.비록 송민준은 아주 상냥해 보였지만 말이다.유현진은 송민준의 곁에서 벗어나자마자 강한서에 의해 팔을 붙잡힌 채 한쪽 구석으로 끌려오게 되었다.음식을 담은 접시가 바닥에 떨어질까 봐 유현진은 작게 발버둥 치는 수밖에 없었다.“이거 놔!”강한서는 그녀의 손목을 놓아주더니 이내 화난 얼굴로 말했다.“너 송민준이랑 도대체 무슨 얘기를 그렇게 오랫동안 한 거냐?”유현진이 그를 흘겨보면서 말했다.“아, 민준 오빠를 말하는 거야?”순간 강한서의 눈썹이 꿈틀하였다.‘민준 오빠라고?’‘나한테도 그렇게 다정하게 불러준 적 없었으면서!’‘마취했을 때만 나한테 다정하게 불러주고!’유현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별 얘기 안 했어. 그냥 서로
은서하는 빠르게 시선을 거두고 건강검진표를 꽉 쥔 채 한현진의 뒤로 갔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자연스레 한현진의 배로 향했다. 한현진은 회사에 와서부터 항상 허리 라인이 보이지 않는 넉넉한 옷만 입었다. 뒷모습으로 보면 여전히 날씬해 보였고 이상한 점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한현진이 특정 동작을 할 때 배가 살짝 불룩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전에 한현진의 차에 탔을 때 그 모습을 잠깐 본 적이 있었다. 처음엔 그저 살이 찐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임신한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은서하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왜 한현진은 회사에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았을까?’ ‘혹시 서해금 때문일까?’은서하는 복잡한 마음을 안고 있었지만 한현진은 마치 그녀의 발견에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잠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전화를 받고 몇 마디를 나누고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줄을 빠져나갔다.은서하는 잠시 멈칫하며 물었다. “한 대표님, 검사 안 하세요?”한현진은 천천히 돌아보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괜찮아요. 일이 생겨서 나중에 다시 올려구요.” 그리고는 아무런 표정 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한현진이 떠난 뒤 이시연이 나타났다. “한 대표님 어디 가셨어요?” 이시연은 주위를 살펴보며 물었다.은서하가 대답했다. “전화를 받으시더니 일이 생겼다며 먼저 가셨어요. 나중에 다시 오신다고 했어요.”“그렇군요.” 이시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한 대표님과 얘기 해봤어요? 예전에 그 분의 옷을 받고 따돌림 당하고 급여도 깎였다고 했을 때 한 대표님이 굉장히 마음 아파했어요.” “그때 한 대표님이 먼저 도와주겠다고 했었죠. 후에 그렇게 된 건 어쩔 수 없지만 한 대표님은 정말 착한 분이세요. 잘 사과하면 한 대표님이 이해해줄 거예요.”은서하는 고개를 숙인 채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 대표님이 신경 쓰지 않으셔도 저는 그런 얘길 꺼낼 입장이 아니에요. 그리고 저는 그냥 작은 직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멀지 않은 곳에서 이시연과 은서하가 진단서를 들고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이시연이 은서하의 손을 이끌고 다가오며 말했다. “한 대표님, 여기서 뵙네요. 건강검진 받으러 오신 거예요?” 한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가 은서하를 가볍게 훑어본 뒤 다시 이사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두 분도 오늘입니까?” 이시연이 웃으며 말했다. “원래는 어제가 제 날짜였는데 어제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다른 분이랑 바꿨어요. 서하 씨랑 같이 오려고요.” “가족은 안 데리고 왔어요?” 이시연이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부모님은 직장에서 추가 의료보험을 들어두셔서 제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서하 씨 외할머니의 병은 보험으로는 혜택을 받을 수가 없어서요.”은서하는 내내 말이 없었다. 이시연이 얘기하는 동안 그녀의 시선은 자꾸만 주혁에게로 흘러갔다. 주혁은 예민하게 그 시선을 포착했다. 둘의 눈이 맞닿자 은서하는 움켜쥔 손에 힘을 주며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혁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답하고는 별다른 말 없이 시선을 돌렸다. 마침 건강검진 순서가 불리기 시작했다. 주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한 대표님, 얘기 나누세요. 전 애들 데리고 먼저 검진 받으러 가겠습니다.” 그가 주상욱와 함께 자리를 떠나자 이시연이 한현진에게 조용히 제안했다. “한 대표님, 같이 가실래요? 먼저 채혈하고 나서 초음파 검사하면 순서가 빨라요. 그러면 금방 검사 끝내고 식사하실 수 있을 거예요.” 한현진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채혈은 이미 했어요. 먼저 가요. 난 초음파실 앞에서 번호표 뽑아둘게요.” 한현진은 애초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온 게 아니었다. 주혁이 진짜 주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고 난 뒤부터 직접 그를 만나보고 싶었다. 방금까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녀는 내내 무심한 척 주혁을 은근히 살폈다. 주혁의 외모는 평범했다. 사람들 사이에 섞이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흐릿한 얼굴이었다.
주혁이 설명했다. “상욱이가 자신이 보낸 그림 잘 받았는지 물어봐요. 마음에 드는지 궁금해해요.”한현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목소리로 주혁에게 물었다. “마음에 든다는 걸 수화로 어떻게 하면 돼요?”주혁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냥 말하면 돼요. 상욱이는 들을 수는 있지만 말하는 게 서툴러요.”사실 주상욱은 말을 못 하는 건 아니었다. 그는 납치 사건에서 구출된 후 청력을 잃었다. 오랫동안 그는 청각장애인처럼 생활했으며 오랜 시간동안 소리를 못 들은 것도 있지만 또한 납치 당시 겪은 충격 때문에 사람과 접촉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언어 능력도 점차 떨어졌고 말을 꺼내는 것조차 원하지 않았다. 이후 보청기를 장착한 뒤 청력은 조금씩 회복되었지만 언어 능력은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과 소통할 때 수화를 사용하는 것을 더 편하게 느꼈다.한현진은 주상욱에게 미소 지으며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정말 마음에 들어.”주상욱은 눈이 반짝이며 수화를 하려다가 잠시 멈췄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꺼내 글을 한 문장 써서 한현진에게 건넸다.“나 보라고?” 한현진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주상욱은 고개를 끄덕였다.한현진은 고개를 숙여서 화면을 읽었다. [누나, 아빠에게 휴가를 주셔서 고마워요. 덕분에 아빠와 함께 생일을 보낼 수 있었어요. 아빠가 잘못한 일이 있어서 이제 누나 옆에서 일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아빠를 미워하지 말아 주세요. 아빠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저와 엄마를 위해 많은 고생을 했어요. 우리가 아빠를 힘들게 한 거예요. 아빠 대신 사과하고 싶어요. 아빠를 용서해 주실 수 있나요?]한현진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아이의 말은 서툴고 순수했지만 그 마음은 진심에서 우러나왔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그가 입에 담은 ‘아빠’가 진짜 아빠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한현진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핸드폰에 글 한 줄을 적었다. [다 지나간 일이야. 이제 네 아빠를 탓하지 않아.]주혁은 이제 그녀 곁에서
대장은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건 물론이죠. 이미 먼저 주혁 씨에게 연락했어요. 집에서 가족들과 상의한 후 곧바로 답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의 집안 사정으로 회사가 이렇게 좋은 혜택을 주는데 그가 신청하지 않겠어요? 절대 그럴 리 없죠.”원율은 잠시 담배를 피운 뒤 담배 끝을 비벼 끄며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부서에도 더 전해야 하니까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대장님, 일 보세요.”원율을 보내고 나서 대장은 다시 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혁 씨, 가족이 두 명이니까 연간 십만 원도 안 되게 더 내면 돼. 한 달에 만 원도 안 되고 가족이 병원 갈 때 드는 비용은 전부 보장돼. 이 작은 돈 아끼려고 하지 말고 큰 기회를 놓치지 마.”주혁은 돈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가장 싫어한 건 그 돈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족을 위한 보험에 가입하면 이번 주 금요일에 반드시 그들과 함께 건강검진을 받아야 했다. 설령 병원이 서대금이 손수 준비한 곳이라 해도 그에게는 그 사실이 부담스럽고 꺼려지는 일이었다.대장은 계속해서 재촉하며 보험 가입 후의 이점을 설명했다. 결국 주혁은 마지못해 동의했다. “그럼 내 아내와 아들도 함께 가입시켜줘. 나중에 주민등록증 사진 보내줄게.”“알겠어. 잘 쉬고 빨리 회복해. 듣자 하니 곧 송가람 씨 밑에서 일하게 된다면서? 잘 됐어. 정해지면 꼭 한턱 쏴.”주혁은 송가람 밑에서 일하게 될 생각에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빛에 부드러운 감정이 스며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확정되면 한 번 쏠게.”최종적으로 제출된 명단에 주혁의 가족이 포함된 것을 확인한 한현진은 비로소 안심했다. 체크업은 금요일과 토요일로 이틀에 걸쳐 나뉘어 진행되었고 한현진은 주혁이 토요일에 가는 것을 일부러 확인한 후 같은 날에 병원을 가기로 했다.주혁은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왔다. 그의 아내는 평범한 주부였고 깔끔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한현진이 그녀를 보았을 때 그녀는 주혁
회의실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떠나자 한현진은 물건을 정리한 뒤 아직 자리에 앉아 있는 서해금을 향해 파일을 들고 다가갔다. “아주머니, 방금 지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해금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네가 직원들을 생각해서 한 거니까 당연히 지지해야지. 우리 모두 같은 회사에 있는 한 하나의 팀이니까.” 한현진도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주머니가 제가 먼저 조사를 했다고 문제 삼지 않으셔서 다행이에요. 그리고 집에 보내주신 곤약도 가람 씨 통해 잘 받았어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서해금은 여유 있게 말했다. “가족끼리 서로 아끼는 거지. 너무 예의 차리지 마.”한현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머니, 제가 회사에 온 이래로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쓰게 해드렸어요. 제가 성격이 직설적이고 고집도 세서 가끔 말이 거칠어질 때도 있어요. 그런데도 아주머니께서 항상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셔서 감사해요.” “아빠한테 들었어요. 아주머니가 아빠한테 저를 칭찬해 주셨다고요. 그 말을 들으니 저도 마음이 무겁고 어쩌면 제가 너무 어리석게 행동했나 싶어요.”“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서해금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얘가 무슨 말이야. 어른이 아이와 다툴 일이 뭐가 있겠어? 현진아, 아주머니는 네 친엄마는 아니지만 너희 어머니와는 정말 소중한 친구였어. 네가 송씨 가문에 돌아올 수 있게 되어 아주머니는 그 누구보다 기뻐.” “지금 네가 집안에서 가람이랑 함께 지내는 걸 보니 젊은 시절 너희 어머니와 함께 보낸 시간들이 가끔 떠올라. 우리가 반평생을 함께 지냈고 너희는 진짜 자매가 된 거지. 이것도 하나의 인연이란 거야.”한현진은 속으로 토할 뻔했다. ‘정말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고?’만약 당시 아이를 바꾼 일과 그녀 어머니의 죽음이 모두 바로 눈앞에 있는 이 온화하고 친절한 여자과 관련이 있었다는 여러 가지 증거들이 없다면 이렇게 진심 어린 말투를 들었을 때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
하지만 이 제안이 실행되면 소문이 돌아 사람들이 그것을 한현진 덕분이라고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서해금은 아마도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서해금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안은 나쁘지 않지만 실비보험은 본래 회사가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기본적인 보장이기에 만약 직원들에게 요금을 부과하게 되면 일부 사람들은 이를 회사가 급여를 삭감하려는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직원들의 가족은 병원을 거의 가지 않아 이 비용이 꼭 필요한 지출은 아닐 수 있어요. 그런데 전액을 회사가 부담하게 된다면 일부 직원들이 가족을 허위로 신고해 다른 사람의 보험을 대신 받으려 할 가능성도 생길 수 있을 겁니다.”한현진은 그녀가 이렇게 말할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말하는 방식에 약간의 여유를 두었다. 서해금이 자신의 의문을 제기하자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직원들이 가족을 위한 보험을 구매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자발적입니다. 회사는 강제로 요구하지 않아요. 다만 구매의 문턱을 낮춰놓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죠. 원하는 사람은 구입하고 원하지 않는 사람은 추가 비용을 부담하지 않도록 말이에요.” “서 대표님 생각은 어떠신가요?”서해금은 입술을 꽉 다물고 잠시 침묵한 후 말문을 열었다. “현진 씨, 구입을 개방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쪽은 괜찮지만 보험사와의 협상이 필요해요. 어떤 보험사도 손해 보려고 하진 않잖아요.” 한현진이 살짝 웃으며 답했다. “보험사와의 협상은 제가 맡을게요. 지금 여쭤보는 건 서 대표님 개인의 의견이에요. 동의하시는지요?” 서해금은 당연히 반대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회의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반대한다고 말하면 그 소문이 바로 회사 전체에 퍼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녀가 그동안 쌓아온 직원들을 위하는 좋은 상사의 이미지가 무너질 게 뻔했다. 서해금은 절대 자기를 망칠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서해금은 잠시 침묵한 뒤
이틀 후 깔린느 정기 회의에서 서해금은 직원들의 건강검진을 언급하며 각 부서가 직원들의 시간을 조율하고 차례로 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말했다. 말을 마친 후 시간을 확인하며 말을 이었다.“그럼 특별한 사항 없으면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잠깐만요.” 한현진이 서해금의 말을 가로막았다. 모두가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서해금도 눈을 들어 한현진을 응시하며 여유 있게 말했다. “현진 씨, 더 지시할 거라도 있어요?” 한현진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지시라뇨. 이 자리에 계신 분들 모두 제 선배님들이세요. 업무적인 부분은 앞으로도 많이 배우고 의지해야 할 분들입니다. 다만 서 대표님께서 직원 건강검진에 대해 언급하신 걸 듣고 마침 오늘 회사 고위층 분들도 다 계셔서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어서요.” “서 대표님, 괜찮으실까요?”모두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한현진이 아마도 회사 관리와 관련된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회사에 온 지 몇 달이 되었고 비록 진씨 가문 사모님 홍혜림을 중심으로 몇몇 고객을 끌어들였지만 서해금의 기반은 그렇게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두 사람의 실력 차이가 매우 컸고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 큰 진전이 없었으니 한현진은 분명히 조급할 것이다.서해금은 두 손을 가볍게 포개어 테이블에 놓고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정기 회의는 원래 경영진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어떤 의견이라도 편하게 말씀하세요. 좋은 제안이라면 우리는 반드시 적극적으로 채택할 겁니다.” 그녀는 매우 너그러운 태도로 민주적인 자세를 보여주었고 이것이 바로 서해금이 이렇게 확고한 위치를 유지하는 이유였다. 회의에서 나온 의견과 제안은 결코 당면에서 거절하지 않으며 오히려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뒤에서는 다른 수단을 써서 상대를 밀어내는 법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다루는 데 그녀는 능숙했다.한현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서 대표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직설적을 말
송가람은 급히 말을 이었다. [지금 저도 정확히 알 수가 없어요.] 그녀는 강한서보다 더 초조해했다. 황 닥터는 금지된 물품을 소지하고 있던 이유로 출국 금지 명령을 받았고 당분간 국내로 돌아오지 못한다고 했다. 그가 오지 않으면 강한서를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그는 분명히 모든 것을 기억해 낼 것이다. 송가람은 점점 더 초조해졌다.[한서 오빠, 저랑 같이 외국에 가서 교수님한테 진료받으러 갈래요? 그쪽에서 꼭 잘 봐주실 거예요.] 송가람은 더 이상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강한서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가람아, 평소 같았으면 바로 갔겠지만 지금은 안 될 것 같아. 너도 알잖아. 요즘 한주시 상황이 얼마나 복잡한지. 난 지금 이곳을 떠날 수 없어. 정말 어쩔 수 없으면 여기서 다른 의사를 찾아서 진료를 받는 방법을 찾아볼게.][그럴 수는 없어요!] 송가람이 목소리를 높였다. 강한서는 잠시 멈칫했다. [왜 안 되지?] 송가람은 자신이 너무 지나치게 행동했다는 걸 깨닫고 잠시 말을 더듬으며 겨우 입을 열었다. [교수님은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뇌과학 전문가 중 한 분이세요. 국내 의사들하고는 비교도 안 되죠.]의사를 바꾸면 강한서가 예전에 사용한 약에 대해 물어볼 것이었고 그렇다면 그녀는 그것을 말해야 하므로 폭로될 위험이 있었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었다. 강한서는 난처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네.] 그는 잠시 침묵을 지킨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그 약은 효과가 좋았어. 매번 먹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고 잡생각들이 사라졌거든.] [그런데 지금은 그 약이 다 떨어져서 최근에 다시 두통이 찾아왔어. 그 약만 있으면 황 닥터가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 텐데.]송가람의 눈이 번쩍였다. ‘맞다. 그 약이 있었지.’ 그녀는 속으로 들뜬 마음을 억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서 오빠,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하지만 이 보험은 직원 개인에게만 해당되며 가족은 이 보험을 가입할 수 없다. 지금 강한서의 의도는 이 혜택을 직원의 가족에게까지 확장하려는 것이다. 주혁은 집에 두 명의 환자가 있고 약을 자주 복용해야 한다. 만약 그가 회사의 이 선의를 거절한다면 그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 예전에 아들을 위해 인공 와우 이식 수술을 받을 돈을 마련하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직장을 잃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절대로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강한서의 개인적인 의도도 있었다. 이런 세심한 직원에 대한 배려는 점차 아래 직원들이 한현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위층은 작은 이익에 별로 신경 쓰지 않지만 일반 직원들에게는 다르다. 대부분 사람들이 열심히 돈을 버는 이유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다. 그들 대부분은 삼십대에서 마흔다섯 사이로 이 나이대의 사람들은 부모님을 부양하고 자식들을 키워야 한다. 회사가 약속한 성과급 같은 허황한 말보다는 이런 쉽게 보상받을 수 있는 실비보험이 직원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기 때문에 더욱 마음을 얻을 수 있다. 한현진은 마치 뭔가 깨달은 듯 강한서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이렇게 사람 마음을 얻는 거구나.” 강한서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사실 처음엔 이런 생각까지는 못 했어. 할머니가 병원에 갈 때는 항상 진씨 아저씨랑 같이 가서 내가 직접 겪을 일이 거의 없었거든. 이런 일도 거의 없었고.” “그런데 한 번은 민 실장이랑 같이 출장 가는 길이였어. 그때 민 실장 어머니께서 비를 맞으면서 우리를 마중 나왔는데 길이 미끄러워서 자전거를 타다 넘어지셨어. 가벼운 사고가 나이었고 수술이 필요한 정도로 심했었지.”“그때 민 실장한테 병원에 남아서 어머니를 돌보라고 하고 혼자 고객을 만나러 갔어. 며칠 만에 일을 마치고 병원에 들렀더니 수술은 다행히 성공적이었어.” “그런데 입원부터 치료까지 전부 합쳐서 거의 천만 원 가까이 들었더라. 민 실장은 보험 청구를 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