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월은 말을 하면서 답례로 진 씨에게 선물을 나눠 주라고 했다.유현진은 감사 인사와 함께 선물을 받았다.그러나 송가람은 거절을 하면서 말했다.“제 실력은 현진 언니보다 못하니 할머니의 선물을 받을 자격이 없네요.”유현진은 순간 동작을 멈추더니 이내 웃으면서 말했다.“가람 씨, 이건 어차피 정식 대결도 아니잖아요. 그저 좋은 글을 써서 할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는 것뿐인데 왜 실력이 못하다고 말하는 거죠?”진 씨도 그녀에게 말했다.“송가람 씨, 그냥 받으세요. 이건 사모님의 작은 성의입니다.”송가람은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이내 선물을 받아들었다.“제가 마음이 협소했네요.”유현진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송가람이 그녀와 함께 글을 쓰겠다고 했을 때부터 그녀는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송가람이 자신을 추켜세우려고 한 것이라면 기회는 아주 많았을 것인데 왜 굳이 자신을 끌어들였는지, 아무리 봐도 그녀를 발판으로 삼아 자신을 추켜세우려는 것 같아 보였다.아니면 그저 너무 단순하게 제일 큰 악의로 상대를 깎아내리려고 했을지도 모른다.유현진은 자신의 생각이 쓸데없는 생각이길 바라고 있었다.송씨 가문의 아가씨가 굳이 그녀를 발판으로 삼아 밟으면서까지 자신을 추켜세울 리가 없었다. 긴 테이블을 치우자 주강운이 강한서와 한성우 곁으로 다가갔다.한성우가 그에게 인사를 하면서 말했다.“강운아, 왜 이제야 왔어? 난 네가 오늘 안 오는 줄 알았어.”주강운이 답했다.“요 며칠 사건이 좀 많아서 사무실도 많이 바빴거든. 그래서 좀 늦게 왔어.”그는 말을 하면서 이미 시선을 유현진에게로 돌렸다.“제가 마침 타이밍 기가 막히게 온 것 같더군요. 조금만 더 늦었으면 이렇게나 흥미로운 작품들을 못 볼 뻔했어요.”유현진이 웃으면서 말했다.“강운 씨만 아니면 누구도 몰랐을 거예요. 심지어 제가 직접 작품을 뒤집으면 서프라이즈가 개그로 되어버리잖아요.”주강운이 작품을 뒤집어 본 것은 그녀가 스스로 가서 작품을 뒤집어 보는 것보다 훨씬 더 통쾌한 일이었다.
유현진은 정인월이 준 선물을 슬쩍 꺼내보더니 이내 선물에 담긴 봉투의 두께를 확인하였다.그녀는 고개를 들고 한성우를 보면서 말했다.“아마 대충 봐도 40억은 될 것 같아요.”한성우도 봉투를 만져보면서 말했다.“40억보다 더 많을 것 같은데요? 이거 만약 새로 찍은 지폐이면 대충 60억 정도 같네요.”“아무리 새로 찍은 지폐라도 60억이라는 돈이 이렇게나 얇은 순 없어요.”“아니요. 분명 60억은 될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봉투가 이렇게 클 리가 없잖아요.”강한서는 할 말을 잃었다.그는 순간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두 사람이 창피하게 느껴졌다.한성우의 재촉에 유현진은 슬며시 봉투를 열어보았다.잔뜩 기대하는 마음과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열어보았지만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봉투 안에는 또 다른 봉투 하나가 있었다.유현진은 순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성우는 턱을 만지면서 말했다.“제 생각엔 어쩌면 형수님의 말대로 40억일 수도 있겠네요.”유현진은 봉투를 꺼내 다시 열어보자 또 다른 봉투가 또 나왔다.두 사람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한성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설마 20억일까요?”“20억도 돈이에요.”유현진은 바로 세 번째 봉투를 열어보았다.손을 넣으니 안에는 작은 카드 한 장이 들어있었다.유현진은 순간 멈칫하였다.옆에 있던 한성우는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얼마예요?”유현진이 답했다.“카드가 들어있는 것 같은데요.”한성우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역시 할머니께서 통이 크시네요. 얼른 카드 안에 얼마 들어 있나 확인해 봐요.”유현진은 손을 넣어 그 카드를 꺼냈다.그리고 그 카드를 본 세 사람은 말문이 막혔다.그건 은행 카드가 아닌 강한서의 증명사진이었다.사진 속의 강한서는 대학 다닐 때의 모습이었고 배경을 보니 대충 태주대 운동장 같아 보였다. 태주대의 실험실은 바지 모양의 특이한 건축물이었다.사진 속의 강한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파릇파릇해 보였다. 그는 운동복을 입고 잔디에 앉아 땀에 젖은 머리칼을 뒤로
유현진이 음식 가지러 가자 한성우가 배시시 웃으며 강한서를 쳐다보았다.“사진은 효과가 없어. 다음번엔 너를 포장해서 직접 선물해 봐. 그러면 형수님도 받아주실 거야.”강한서가 그를 흘겨보면서 말했다.“드라마 좀 그만 봐.”봉투의 존재에 대해 몰랐던 강한서는 유현진이 봉투에서 그의 사진을 꺼냈을 때 깜짝 놀랐다.하지만 정인월이 선물한 것이라고 하니 그는 정인월이 충분히 그럴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한성우가 계속 입을 열었다.“형수님께서는 여전히 너의 얼굴을 제일 좋아하시네. 형수님이 너의 사진을 봤을 때 그 표정 봤냐? 아주 눈에서 빛이 반짝반짝 나오더라.”강한서가 멈칫하면서 말했다.“정말이야?”“만약 형수님이 널 싫어하셨다면 너의 사진을 보자마자 아마 질색하셨겠지. 근데 아까 형수님은 사진을 계속 뚫어져라 쳐다보시더라! 유현진 씨가 얼굴 빠순이셨다니. 형수님의 SNS 계정 팔로우만 봐도 모두 잘생기고 몸 좋은 사람들만 팔로우하셨잖아. 그리고 너 정도의 얼굴이면 대부분 셀럽보다 훨씬 낫지!”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지금 나랑 셀럽들을 비교해 보는 거냐?”한성우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지금 그게 문제냐? 제일 중요한 건 유현진 씨가 너의 얼굴을 좋아한다니까! 그게 너의 가장 큰 우세란 말이야!”강한서가 그를 흘겨보면서 말했다.“그걸 말이라고 하냐?”유현진이 그의 얼굴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그도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예전에 유현진이 교통사고를 당하고 수술실에 들어가게 된 적이 있었다. 그가 그녀를 보러 갔을 땐 그녀는 아직 마취가 풀리지 않아 몽롱한 상태로 누워있었다.의사는 유현진의 의식이 돌아왔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에게 시켜 말을 걸어 보라고 했었다.하지만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유현진은 눈을 떴고 게슴츠레 뜬 눈으로 그를 불렀었다.“오빠.”그 후 그녀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칭찬의 말을 잔뜩 했었고 심지어 그에게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난리까지 쳤었다.한성우 또한 매번 그의 얼굴을 보면서 부러워했다. 한성우
유현진은 약간 의아하게 생각했다.‘대표님은 자신의 여동생에게 약한 거 아니었어? 오늘따라 왜 이렇게 내 편을 들어주는 것 같지?’유현진은 곰곰이 생각을 하더니 이내 송민준이 원래 그런 다정한 사람일 것이라고 판단을 내렸다.어차피 그의 말은 무모한 행동을 한 송가람 대신 사과한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었다.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유현진이 입을 열었다.“뭐 어차피 진짜로 열심히 배웠다고 해도 아마 가람 씨한테는 상대도 안 될 거예요. 가람 씨의 실력은 정말 아주 좋더라고요.”송민준은 한껏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유현진은 가정 교육을 잘 받았을 뿐만 아니라 사람도 아주 착했다.“전 여사님이 현진 씨가 피아노도 칠 줄 안다고 그러시던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제게 한번 들려주세요.”놓친 지난 20여 년을 위해 그는 그녀에 대해 잘 알아가고 싶었다.마침 망고 파이를 한입 문 그녀는 다시 뱉을 수도 없고 삼킬 수도 없었다.그가 꺼낸 의미심장한 말에 그녀는 송민준이 그녀에게 가스라이팅을 시도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송민준도 자신의 말이 다소 오해를 불러일을킬 수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헛기침을 하면서 말했다.“전 그저 우리 회사 소속 연예인들의 재능을 알아보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래야 맞춤형 방송을 찾아줄 수가 있거든요.”유현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망고 파이를 마저 삼키더니 이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사실 저 피아노 잘 못 쳐요.”송민준은 깜짝 놀랐다. 그는 이미 다른 사람한테서 그녀가 유람선에서 피아노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바가 있었다.“제가 칠 줄 아는 곡은 딱 하나뿐이거든요.”자신에 대한 높은 기대를 느낀 유현진은 사실대로 자신의 피아노 실력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사람들 앞에서 잘 칠 수 있는 곡은 하나뿐이라서 다음번에도 그 곡을 치면 사람들이 의심을 할 거예요. 그러니까 대표님, 다음에 저한테 방송 배정해 줄 때 절대 사람들 앞에서 피아노 쳐야 하
얼마 지나지 않아 하현주는 그녀가 아이들과 몰래 놀았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녀를 엄하게 꾸짖었다.하현주는 그녀를 아주 아꼈기에 도저히 손댈 수가 없었고 그저 손바닥에 힘만 살짝 실어 엉덩이를 때렸었다.“나중에 저희 엄마가 드디어 제가 피아노를 배울 재목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셨고 거기다 많이 바쁘셨으니 더 이상 저를 피아노 연습하라고 강박하지는 않았거든요.”더 나중에 그녀의 집은 더욱 잘살게 되어 큰 집으로 이사를 갔지만 그녀는 더 이상 어릴 때처럼 즐겁지 않았다.송민준은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면서 말했다.“그렇게 피아노가 싫었으면 왜 피아노를 망가뜨릴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피아노를 망가뜨리면 더 이상 연습 안 해도 되고 어머님께 꾸중 들을 일도 없게 되잖아요.”유현진은 웃으면서 말했다.“전 그럴 용기가 없었거든요. 민준 씨가 이해 못 할 수도 있는데 그때 저희 집은 그리 잘사는 건 아니었거든요. 그리고 그 피아노는 2000만 원 정도 했거든요. 그때 당시 2000만 원은 엄청 큰돈이었죠. 저희 엄마는 분명 그 돈으로 차를 뽑을 수 있었음에도 저에게 피아노를 사주셨거든요. 게다가 저에게 피아노를 사주겠다고 아빠랑 싸우기까지 했었어요. 그래서 그때의 전 엄마한테 매를 맞더라도 피아노를 망가뜨릴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그 피아노는 저희 엄마가 피땀을 흘려 번 돈으로 사준 거니까요.”그랬기에 그녀가 예체능으로 전환한다고 했을 때 하현주 심하게 반대를 했었다. 하현주는 자신의 딸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녀가 한순간의 열정으로 예술을 시작했다가 나중에 가서 흥미를 잃고 제대로 공부하지 않을까 봐 하현주는 반대를 했었다.그녀의 일반 과목 성적이 높을 수 있었던 것 또한 하현주가 매번 그녀에게 그녀가 아무리 예체능 과목에서 1등을 한다 해도 일반 과목 성적이 전 학년 20등 안에 들지 못한다면 그녀를 예술 학교로 보내지 않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성적이 아주 잘 나왔을 땐 그녀는 성적표를 들고 하현주에게 달려가 한껏 자랑
주아름은 싸늘한 얼굴로 그녀에게 사과한 후 시선을 다시 송민준에게 돌리더니 이내 한껏 누그러진 어투로 말했다.“민준 오빠, 배고파요? 앞에 스테이크도 있던데 제가 위치를 알려드릴게요.”송민준은 바로 표정을 가다듬고 담담하게 말했다.“사실 난 저 초밥이 너무 먹고 싶었는데. 아쉽게 너 때문에 땅에 떨어져 버렸네.”주아름의 표정은 순간 굳어져 버렸고 이내 다시 웃으면서 말했다.“그럼 제가 셰프님께 다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 볼게요.”송민준이 답했다.“난 아까 땅에 떨어진 그 초밥만 먹고 싶거든.”그 말을 들은 주아름은 더 이상 웃음을 유지할 수 없었다. 송민준이 그녀를 원망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그들 사이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던 유현진은 접시를 들고 일어나더니 송민준에게 말했다.“민준 오빠, 전 이만 저쪽으로 가볼게요.”그녀는 이내 접시를 들고 얼른 자리를 떴다.유현진은 순간 송민준보다 강한서가 더욱 만만하게 느껴졌다.만약 강한서가 땅에 떨어진 초밥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면 그녀는 무조건 다시 주워서 그의 입에 넣어줬을 것이었다. 어차피 강한서는 기껏해야 그녀에게 몇 마디 할 뿐이었다.하지만 그녀는 괜히 송민준에게 그런 행동을 시도했다간 송민준에게 죽임을 당할 것 같아 감히 그러지 못했다.비록 송민준은 아주 상냥해 보였지만 말이다.유현진은 송민준의 곁에서 벗어나자마자 강한서에 의해 팔을 붙잡힌 채 한쪽 구석으로 끌려오게 되었다.음식을 담은 접시가 바닥에 떨어질까 봐 유현진은 작게 발버둥 치는 수밖에 없었다.“이거 놔!”강한서는 그녀의 손목을 놓아주더니 이내 화난 얼굴로 말했다.“너 송민준이랑 도대체 무슨 얘기를 그렇게 오랫동안 한 거냐?”유현진이 그를 흘겨보면서 말했다.“아, 민준 오빠를 말하는 거야?”순간 강한서의 눈썹이 꿈틀하였다.‘민준 오빠라고?’‘나한테도 그렇게 다정하게 불러준 적 없었으면서!’‘마취했을 때만 나한테 다정하게 불러주고!’유현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별 얘기 안 했어. 그냥 서로
“민준 오빠는 당신처럼 유치한 사람이 아니거든? 그리고 어차피 당신은 나랑 이혼했는데 당신이 형이라고 부르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인데?”허점이 가득한 핑곗거리에 강한서는 정색하면서 말했다.“어쨌든 안 돼! 부르지 마!”유현진은 어이가 없었다.‘하! 무조건 부를 건데!’두 사람이 말하고 있는 와중에 여러 명이 엄청 큰 8단 케이크를 밀고 들어왔다.할머니의 말씀은 정확했다. 그 8단 케이크는 전부 과일로 장식을 하였고 그중 한 단은 전부 망고로 도배되어 있었다.유현진은 8단 케이크를 빤히 바라보면서 나중에 케이크라면 환장하는 차미주에게 한 조각 가져다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문득 차미주가 떠올랐던 유현진은 미간을 찌푸렸다.‘왜 아직도 안 온 거지? 설마 무슨 사고라도 생긴 건 아니겠지?’유현진은 휴대폰을 꺼내 차미주에게 카톡을 보냈다.“어디까지 온 거야?”한참을 기다려도 차미주는 답장이 없었다. 이때 강한서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가자. 이따가 같이 사진 찍어야 하니까 앞으로 나가자.”유현진은 휴대폰을 가방에 넣고 강한서와 함께 앞으로 걸어갔다.앞자리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어 아주 시끄러웠고 유현진은 자신의 가방에 넣은 휴대폰이 울리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차미주는 용호 밖에 있었고 경비원들이 그녀에게 초청장이 없다는 이유로 들여보내 주지 않고 있었다.그러나 하필이면 이때 연락이 되지 않는 유현진에 차미주는 많이 조급해졌다.은영의 매니저가 짜증 난다는 듯이 말했다.“지금 이게 다 무슨 소란인 거죠? 초청장도 없으면서 들어가려고요?”차미주는 웃는 얼굴로 사과했다.“죄송해요. 현진이가 지금 바빠서 휴대폰을 확인해 보지 못했나 봐요. 선생님, 얼른 차에 가서 쉬고 계세요. 제가 현진이에게 다시 연락해 볼게요.”은영은 아주 비싼 옷과 진한 무대 메이크업을 하고 있었기에 그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아주 다정한 말투로 말했다.“괜찮아요, 얼른 다시 연락해 봐요.”유현진이 부탁한 중요한 일을 망치게 될까 봐 두려웠
이때 누군가가 물었다.“유현진 씨 오늘 뭘 선물했는지 아시는 사람 있나요?”“모르겠는데요. 유현진 씨가 저쪽에서 등기하는 모습도 본 적이 없으니 아마 대충 다른 사람에게 묻혀서 들어온 거 아닐까요?”“대박, 빈손으로 온 거예요? 정말 뻔뻔하네요. 심지어 선물까지 받아냈잖아요.”...주아름의 눈빛이 많이 어두워져 있었다.사람들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있었을 때 유현진은 휴대폰을 꺼내 몰래 확인하자 부재중 전화가 많이 와 있었다.그녀는 얼른 차미주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누군가와 통화 중이었던 차미주는 그녀의 연락을 받을 수 없었다.그녀는 차미주에게 카톡을 보냈다.“너 지금 어디야?”카톡을 보내자마자 현장은 갑자기 술렁이더니 이내 누군가가 소식을 전해왔다.선물을 보낸 사람을 적어두었던 회계장부에 실수로 술잔을 쏟았다는 것이었다.진 씨는 얼른 그 소식을 정인월에게 전했고 정인월은 미간을 찌푸렸다.선물을 보낸 사람들을 적은 회계장부는 아주 중요한 물건이었다. 누가 무엇을 선물했는지 자세하게 적고 나중에 그 회계장부대로 선물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현재 회계장부가 젖어버렸으니 글씨는 이미 알아볼 수가 없었고 페이지도 찢어져 무엇을 적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신미정과 송민희 더욱 조급해졌다. 그 두 사람은 이 팔순 잔치에 어마어마한 돈을 퍼부었고 그 두 사람은 각자 초대장을 보내 지인들을 초대했기에 선물들도 각자 알아서 나눠 가져야 했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회계장부가 손상되었으니 누가 뭘 선물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일을 도대체 어떻게 한 거죠? 사람이 이렇게나 많은데 술잔도 제대로 안 치우고 뭐 한 거죠?”신미정은 바로 불만을 드러냈다.송민희의 안색도 좋지 않았지만 회계장부를 적는 회계사는 정인월이 아끼는 이미 회사에서 퇴직한 집사였다. 그녀는 분노를 꾹꾹 참으면서 말했다.“어머님, 사람들이 아직 이곳에 있으니까 얼른 다시 적어달라고 부탁하는 건 어떨까요? 그래도 인원수와 맞지 않으면 제가 사람을 시켜 다시 알아보라고 할게요.”
역시나 성월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현장엔 수군거리는 소리로 가득했다. “한 대표님이 호언장담해서 데려온 사람이라니, 이게 무슨 말이야?”“소문이긴 한데. 나도 그냥 들은 거야. 주세은 씨 경력으론 우리 회사에 입사할 수 없대. 하지만 한 대표님이 세은 씨 아버지에게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취직을 시켜주려고 했지만 서 대표님이 반대하셔서 한 대표님이 만약 주세은 씨가 문제를 일으키면 한 대표님이 책임지고 물러나시기로 약속하셨다고 했어.”“세상에. 하지만 이번 일은 작은 일은 아니잖아.”“우리가 입사할 땐 면접만 4차까지 있었어. 면접도 없이 입사하기에 대단한 실력자인가보다 했는데, 이렇게 큰 사고를 치다니.”“입사한 지도 시간이 꽤 흘렀는데 아직 실력을 보지 못했어.”“넘버 S 오일은 이것 하나밖에 없잖아. 이렇게 큰 사고를 쳤는데 한 대표님이 어떻게 지켜주겠어.”“지키긴 뭘 지켜. 한 대표님 본인도 책임을 면치 못할 텐데. 자신이 꽂은 사람이 이렇게 큰 사고를 쳤는데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겠어?”...한현진을 힐끔 쳐다본 송가람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음모를 달성한 비열한 인간의 표정이었다. 한현진은 그런 송가람 따위는 신경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성월을 직시하며 말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제대로 가르치고 싶으셨다면 직접 데리고 다니며 하나하나 알려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왜 익숙하지도 않은 곳에서 물건을 가져오라고 세은 씨 혼자 보내신 거죠?”성월이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땐 다들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어요. 일손이 부족한 데다 저도 자리를 비울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세은 씨를 보낸 거예요. 저장실은 제가 세은 씨와 함께 간 적이 있었어요. 세은 씨도 저장실 구조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한현진이 물었다. “다들 식사 중이었다는 건 그리 급한 업무도 아니었단 얘기겠네요. 왜 하필 사람 없는 점심시간에 세은 씨를 불러서 오일을 가져오게 한 거예요?”한현진의 질문에 말문이 막힌 성월이 결국
구내식당이 워낙 조용했던 터라 가까이 있는 사람은 통화 내용을 전부 들을 수 있었다. 비록 한현진은 넘버 S 오일이 뭔지 몰랐지만 깔린느에서 오랫동안 일한 직원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넘버 S 오일은 혼합 오일이었다. [인 드림] 같은 고급 향수의 제조에 사용되는 주요 원료 중 하나였다. 넘버 S 오일의 재고는 100mL 밖에 없었다. 서해금이 우연히 제조해 낸 오일이라 각 오일의 성분과 비례가 기록되어 있지 않았고 그렇게 넘버 S 오일은 한정판이 되어버렸다. 이 오일은 줄곧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었고 특별한 신분의 사람이 고급 향수를 제작할 때만 사용되었다. 넘버 S 오일은 깔린느 전체에 단 한 병뿐이었다. 그것이 깨진다면 넘버 S 오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성월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숨을 들이켰다. 서해금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녀는 몸을 돌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따라가려는 한현진을 은서하가 불러 세웠다. “대표님, 제 일은 됐어요. 조금만 더 참으면 지날 수 있을 거예요. 대표님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한현진이 은서하를 쳐다보며 말했다. “지나가지 않을 거예요. 서하 씨가 참으면 참을수록 그 사람들은 점점 더 서하 씨를 만만하다고 여기고 더 심하게 굴 거예요. 서하 씨가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 사람들도 알아야 해요. 그래야 앞으로 서하 씨를 괴롭히려고 할 땐 한 번쯤은 고민해 볼 거예요.”은서하가 멍해졌다. 한현진은 은서하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자리를 벗어났다. 주세은은 덜렁대는 성격의 아이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렇게 귀중한 원료는 보통 일반 직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보관하지 않았다. 그러니 주세은이 그 오일을 깨뜨렸을 리가 없었다. 한현진이 다급하게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오일 보관실에 모여있었다. 주세은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녀를 에워싼 사람들은 하나 같이 범인을 심문하듯 주세은을 쳐다보고 있었다. 주세은은 하얗게 질린 얼굴
한현진이 입꼬리를 씩 올리며 송가람에게로 걸어가 그녀의 귓가에 다가갔다. “제 사무실에 있던 금전수 기억해요?”움찔하는 송가람의 동공이 순간 흔들렸다. 한현진이 눈을 가늘게 뜬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언니가 하는 건 저도 할 수 있어요. 스스로 승인하실래요, 아니면 다들 들을 수 있게 제가 가서 가져올까요?”송가람의 얼굴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한현진이 그 도청 장치를 발견했을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한현진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송가람의 사무실에도 도청 장치를 달았다. 송가람과 주현은 사무실에서는 거리낌 없이 모든 얘기를 했었다. 게다가 한현진이 대체 어디서 어떤 얘기를 들은 것인지도 알 길이 없었다. 그런 생각에 송가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꼭 움켜쥔 주먹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송가람의 경계심이 완전히 무너질 때쯤 멀리서 서해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아, 가람아. 무슨 얘길 하고 있는 거니?”하마터면 자신이 한 일을 승인할 뻔한 송가람은 서해금의 목소리가 들리자 입가까지 흘러나왔던 말을 다시 삼켜버렸다. 그녀는 구세주를 만나기라도 한 듯 서해금을 불렀다. “엄마!”한현진이 쯧 혀를 찼다. ‘타이밍 한번 좋게 찾아왔네.’한현진은 몸을 돌려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서해금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주머니, 안녕하세요.”한현진 앞으로 다가온 서해금이 몸을 곧게 세우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미소 지으며 물었다. “밥도 안 먹고 두 사람 여기서 무슨 얘길 하고 있었던 거야?”한현진이 말했다. “별거 아니에요. 다만 가람 언니가 별다른 이유 없이 직원의 보너스를 삭감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고 있었어요.”한현진의 말에 반박하려던 송가람은 휴대폰을 꺼내려는 한현진의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만약 송가람이 자신의 구역에서 한현진에게 약점을 잡힌 것을 서해금이 알게 된다면 또 그녀를 한바탕 꾸짖을지도 몰랐다. “그래?”서해금이 송가람을 힐끔 쳐다보았다. “현진이 말이 사실이야?”송
누군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곧 비웃음 소리가 하나둘 터져 나왔다. 안규리의 얼굴이 부끄러움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송가람이 미간을 찌푸렸다. “현진—”한현진이 송가람의 말을 잘랐다. “송 팀장님, 여긴 회사예요. 호칭 주의하시죠.”말문이 막힌 송가람은 이를 악물고 화를 꾹 참으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 대표님, 다들 그저 장난 좀 한 건데 말씀이 좀 지나치신 것 같네요.”“제 말이 좀 지나쳤나요?”한현진이 차가운 눈으로 송가람을 쳐다보았다. “규리 씨가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을 놀릴 때는 왜 규리 씨 말이 심하다고 하지 않은 거죠? 이해 능력이 형편없어서 규리 씨 말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하는 거예요?”송가람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서하 씨 형편이 어려우면 회사에 복지 신청해도 된다고 제가 얘기했잖아요.”한현진이 흥 코웃음을 쳤다. “보아하니 송 팀장님은 이해력이 안 좋을 뿐만 아니라 기억력도 안 좋으신 것 같네요. 서하 씨가 2개월간 감봉 당한 건 송 팀장님 작품 아니었나요? 이제 와서 좋은 사람인 척하겠다는 건가요?”표정이 굳어진 송가람이 이를 악물었다. “서하 씨 보너스가 삭감된 건 인사팀에서 결정한 일이에요. 그게 저와 무슨 상관이죠? 헛소리하지 말아요.”한현진이 차가운 말투로 대답했다. “전 서하 씨가 보너스를 삭감당했다고 얘기한 적 없는데요. 조향팀의 일개 팀장에 불과한 송 팀장님이 어떻게 재무팀 직원의 월급 삭감 정황까지 빠삭하게 알고 있는 거예요? 인사팀 부장이 꿈에서 알려주기라도 했어요?”송가람은 그제야 자신이 한현진에게 말꼬투리를 잡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순간 화가 치민 송가람이 말했다. “대충 제 추측으로 얘기한 것 뿐이에요. 감봉은 보너스를 삭감하는 것이 일반적이니까요.”“하지만 보너스를 전부 삭감당했다는 건 저도 들은 적 없는 얘기예요.”한현진이 태연하게 말했다. “회사에도 징계에 관한 규정이 명확하게 있어요. 설사 서하 씨가 진행한 업무가 전부 규정을 위반했다고 하더라도
은서하는 송가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한현진과 가깝게 지내다 또다시 송가람에게 당할까 두렵지는 않은 걸까?한현진은 도무지 이 어린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시연은 그런 은서하의 모습에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은서하와 인사를 나누었다. “서하 씨, 외할머니도 아직 퇴원하지 않으셨을 텐데 오늘은 어떻게 회사에서 점심을 먹는 거예요?”은서하가 대답하기도 전에 이미 누군가 비꼬며 말했다. “진작 회사에서 먹어야 했어요. 도시락도 매일 구정물 같은 것만 싸 오던데 식욕이 있겠어요? 서하 씨. 구내식당은 직원 할인도 있잖아요. 매달 6만 원만 내면 돼요. 그 정도 돈도 없는 건 아니겠죠. 그 도시락, 서하 씨는 괜찮을지 몰라도 전 이제 못 봐주겠어요.”그 말에 은서하의 얼굴이 순간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젓가락을 꽉 움켜쥐고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다. 이시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안규리 씨,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구내식당을 이용하든 도시락을 싸든 그건 다른 사람 마음이에요. 6만 원으로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게 뭐 그리 고상한 일 같아요?”안규리라고 불린 사람은 송가람 옆에 앉아 있었다. 한현진도 전에 본 적 있는 재무팀 직원이었다. 안규리가 눈썹을 씰룩였다.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게 고상하다는 얘기는 전 한 적 없어요. 하지만 매일 죽 같은 도시락을 싸 와 식당에서 데워 먹는 모습은 사실 저희 식욕을 떨어뜨리거든요. 다들 안 그래도 일하느라 힘든데 밥 먹을 때도 이렇게 입맛이 떨어져서야 저희더러 어떻게 살라는 거죠?”주현도 안규리의 말을 거들었다. “서하 씨도 돈이 없어 보이지는 않던데요. 전에 한 대표님이 옷 선물을 하셨을 때도 제일 비싼 옷을 가져갔잖아요. 딱 봐도 그런 걸 처음 본 사람은 아니잖아요. 보자마자 제일 좋은 거로 가져갔는데.”“200만 원이 넘는 옷을 입는 사람이 식비 6만 원을 아낀다고요?”“그게 어떻게 같아요? 몇백만 원짜리 옷은 볼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잖아요
한현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집을 나선 한현진은 강한서에게 황씨 아주머니의 월급 인상에 관해 상의했다. 강한서와 강민서가 집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주혁이 한현진을 데리러 도착했다. 별장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현진은 순간 길가에서 누군가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어쩐지 눈에 익은 인영이었다. 한현진이 탄 차가 그 사람과 가까워져서야 한현진은 그 사람이 은서하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한현진은 다급히 주혁에게 차를 세우라고 말하고는 차창을 내려 은서하를 불렀다. “서하 씨!”고개를 돌린 은서하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대표님이 여긴 어떻게...?”“저 이 근처에 살아요.”한현진이 물었다. “그러는 서하 씨는 여긴 어쩐 일이에요?”이 근처엔 별장을 제외하면 길가에 오가는 차가 전부였다. 사람의 그림자조차 흔하지 않은 길이었다. 은서하가 말했다. “집이 이 근처라서요.”한현진이 놀라며 말했다. “이 근처에 사신다고요?”은서하가 꿋꿋이 거짓말을 이어갔다. “네. 오늘 늦잠을 잤더니 택시가 안 잡혀서요.”한현진은 아무 말 없이 은서하를 살펴보더니 몇 초 후에야 입을 열었다. “일단 타요. 타서 얘기해요.”은서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는 종종 달려와 한현진 반대편의 문을 열고 차에 탔다. 은서하는 그제야 차에는 한현진과 운전기사뿐만 아니라 평범한 외모의 젊은 청년도 함께인 것을 발견했다. 한현진이 소개하며 말했다. “여긴 원율 씨. 제 개인 비서예요.”은서하가 원율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안전벨트를 했다. 그녀는 자신의 가방을 꼭 끌어안고 공손한 자세로 한현진 옆에 앉아 있었다. 차가 출발하자 한현진이 질문을 이어갔다. “여긴 회사와 거리도 있는데 평소 출퇴근 시간이 꽤 걸리지 않아요?”은서하가 어색하게 대답했다. “외할머니 치료 때문에 집을 팔았어요. 하지만 회사 근처엔 월세가 높아서 어쩔 수 없이 먼 곳으로 옮겼어요. 평소엔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어젯밤엔... 일이 조
한현진이 거울을 보며 옷을 정리했다. “이름이 뭐야?”“문채영.”“꽃부리 영?”강한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영리할 영.”“특이한 이름이네.”한현진이 멈칫했다. “너 전에 오빠가 맞선을 싫어한다고 하더니 그 여자를 못 잊어서 그런 거였어?”강한서가 말했다. “그런 것 같아.”“그럼 두 사람은 왜 안 만났던 건데?”강한서가 말했다. “자세한 건 네 오빠만 알 거야. 내가 알고 있는 건 고등학교 시절 누나 이모가 누나 아버지를 횡령, 뇌물수수 그리고 사생활이 문란한 문제를 신고했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연루되어 누나 아버지는 형량을 꽤 많이 받았어. 누나 어머니도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시고 실성하신 분처럼 구셨어. 그렇게 문씨 가문은 나락으로 떨어진 거야. 그때 누나는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못했었어.”“우리 수능이 끝나자 누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해외로 갔어. 그리고 2년이 지난 후 결혼했지. 남편은 부자인 교포였어. 귀국해서 결혼식을 올린 거라 민준이도 일부러 M국에서 돌아왔어. 결혼식이 끝나고 누나는 남편과 함께 해외로 갔어. 그 후로 우리는 연락이 뜸해졌고. 그리고 2년 전, 누나가 이혼하고 나서야 다시 연락하기 시작한 거야.”한현진이 물었다. “넌 그 여자와 오빠를 이어주고 싶은 거야?”강한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나는 민준이를 만나고 싶어 해. 난 그저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주는 것뿐이야. 두 사람이 어떤 사이로 발전할지는 두 사람 일이지.”강한서가 멈칫하더니 말을 이었다. “어렸을 때 그 감정이 지금은 얼마나 남아있을지 모르지. 누나가 이혼 후 2년이 흘렀어. 만약 나라면 그리고 아직도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바로 전남편에게 꽃이라도 사 들고 찾아가 이혼을 축하해줄 거야. 그리고 바로 누나를 찾아갔겠지. 하지만 네 오빠는 그저 가만히 있었어. 이혼한 걸 몰랐을 리가 없어.”한현진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만약 너였다면 넌 출국하기도 전에 잡혔을 거야. 그리고 오빠는 너처럼 멍청하지 않아. 그렇게 창피한 일은
문자를 확인한 강한서는 몸을 일으키며 답장을 했다.[고마워요, 누나도 잘 지내죠?][응, 잘 지내지. 나 내일 귀국하는데 시간 되면 밥이나 먹자.][그래요.][네 와이프 송씨 집안에서 잃어버린 딸이라던데, 너랑 민준이는 형님 동생 하면서 지내는 거야? 어떻게 지낼만해?]송민준의 상황을 묻기 위해 연락했다는 걸 알아챈 강한서가 바로 답장을 보내주었다.[괜찮긴 한데 너무 동생 바보라서 나 별로 안 좋아해요. 누나도 송민준 못 본 지 오래됐죠? 내일 같이 나갈게요.][그래, 안 바쁘면 민준이 여자친구도 같이 불러.]강한서는 문채영이 떠보기 위해 하는 말인 걸 알았지만 모른 척 대꾸했다.[송민준 여자친구 없어요, 솔로에요.]그 말에 적잖이 놀란 건지 글자뿐인 문자에서도 문채영의 놀라움이 전해져왔다.[진짜?][누나도 송민준 성격 알잖아요. 얼마나 사람 짜증 나게 하는데, 그렇게 쓸데없는 말 많이 하는 사람이 여자친구를 사귈 리가 없잖아요.]그 말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입은 웃고 있는 이모티콘을 보내온 문채영은 곧바로 한마디 더 보탰다.[너도 와이프 데려와, 선물 준비했으니까.][네.]이튿날 아침, 강한서는 머리를 말리고 있는 한현진 곁으로 다가가 어젯밤 문채영과 했던 말을 전했다.“내가 아는 사람이야?”그 말에 강한서가 고개를 젓자 한현진은 또 물었다.“남자야 여자야?”“여자.”그 말에 한현진이 잠시 멈칫하자 강한서가 한마디 더 보탰다.“네 새언니가 될뻔한 여자야.”“우리 오빠 첫사랑?”깜짝 놀라며 묻는 한현진에 강한서는 웃으며 대답했다.“그렇다고 할 수도 있는데 실제로 만난 건 아니고 그냥 송민준이 혼자 좋아했어. 그때 같이 다니던 애들은 다 알고 있었지. 그런데...”갑자기 말을 멈추는 강한서에 한현진은 다급히 그를 재촉했다.“왜 갑자기 여기서 말을 끊어, 그런데 뭐?”강한서는 그런 한현진의 볼을 귀엽다는 듯 쓰다듬으며 입꼬리를 올렸다.“나처럼 원하는 여자를 쟁취하진 못한 거지. 그런 쪽으론 영 능력이 없어.”“우
신미정은 결혼을 재촉했지만 할머니는 결혼은 평생을 같이할 사람을 찾는 거라고 마음에 들고 잘 맞는 사람과 해야 한다면서 그렇게 서두르지 않고 있었다.그래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결혼 상대를 물색하던 중 한현진의 강한서의 눈에 들게 된 것이다.교통사고까지 다 해서 고작 네 번 본 사이었고 말 한번 섞어본 적도 없어 그다지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보면 볼수록 한현진이 마음에 들었다.강한서도 마침 모르는 사람과 결혼해서 서로를 알아가는 게 시간 낭비 같았는데 한현진도 저런 늙은이한테 시집가는 건 원하지 않을 것 같았다.그리고 그날 교통사고도 실수이기는 하지만 한현진의 엄마가 간민혜를 차로 쳐서 죽인 건 맞기에 주강운이 갑자기 한현진한테 무슨 짓을 하기라도 할까 봐 신경 쓰이는 것도 있었다.어쨌든 주강운한테 고모가 간민혜를 만나려고 해서 그녀를 데리고 가다가 사고가 났다고 해명한 건 자신이었기에 강한서는 이 일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한현진을 데리고 있고 싶었다.그렇게 자신을 설득한 강한서는 이틀 뒤 바로 한현진에 연락해 그녀와 맞선자리를 가졌다.맞선자리에서 한현진은 강한서를 알아본 듯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기에 강한서도 굳이 그 일을 꺼내진 않았다.한현진은 이 맞선자리가 유상수가 꾸며낸 자리인 줄로만 알고 혹시라도 실수할까 싶어 말을 최대한 아끼고 있었지만 사실 유상수는 꿈만 꿀 뿐이지 그럴 능력이 못 되는 사람이었다.선 자리를 끝내고 본가로 돌아간 강한서는 바로 한현진의 자료를 건네주며 결혼 의사를 밝혔지만 유씨 집안을 조사해본 할머니는 바로 반대부터 했다.유씨 집안의 지위보다 아내가 아픈데도 들여다보지 않고 비서랑만 붙어있는 유상수의 사람 됨됨이가 별로라서 그의 딸도 비슷할 거라 생각해 거절한 걸 알아챈 강한서는 평소에는 그렇게 말을 아꼈으면서 이번에는 웬일로 한현진을 감싸기 시작했다.그녀가 친구를 도와 나서던 일과 그녀의 지금 상황까지 다 말한 강한서는 한현진이 아니면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단호히 말한 뒤 집을 나섰다.그 말에 답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