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진이 요즘 촬영 중이라는 말에 정인월은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그럼 티브이에서 자주 볼 수 있겠네?"유현진은 겸손하게 답했다."중요한 배역이 아니라서요, 그래도 가끔은 볼 수 있을 거예요.""첫 시작이잖아. 앞으로 기회가 많을 거야. 나중에 연기대상도 받아야지."유현진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노력할게요."즐거운 대화가 오가는 중, 강한서의 휴대폰이 울렸다. 강한서는 전화 받으러 거실로 나갔다.이 기회를 틈타서 정인월이 말했다."현진아, 강씨 가문에서 많이 힘들었지? 두 사람 이혼 소식은 나도 나중에야 알았어. 내가 이 나이에 널 볼 면목이 없다."유현진은 표정을 가다듬고 말했다."할머니,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우리 이혼은 우리 두 사람 사이의 문제예요. 할머니와는 아무 상관도 없어요. 할머니는 저 예뻐해 주셨잖아요. 비록 우리는 이혼했지만 할머니에 대한 제 마음은 변함이 없어요."정인월은 입술을 오므렸다."솔직하게 말해줘. 한서가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은 일 때문에 이혼한 거야?"유현진은 움츠린 손가락에 힘을 꼭 주더니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할머니, 저 아이 못 가질 수도 있어요. 그래도 우리가 함께하길 바라세요?"정인월은 멈칫하더니 미간을 찌푸렸다."그것 때문에 너와 이혼한 거라면 너 저 자식 영원히 상대하지 마! 자식을 낳는 일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남자는 필요 없어!"정인월의 예상치 못한 말에 유현진은 어리둥절했다.통화 중이던 강한서는 정인월의 말을 듣고 안색이 굳어졌다.정인월은 두 사람을 화해시키려는 게 아니라 마치 헤어짐을 응원하는 것 같았다."그런데 한서 그런 놈은 아니야. 한서는 처음부터…...""퍽-"거실에서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인월은 멈칫하더니 헛기침하며 말했다."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네 생각이 뭐가 중요하다고? 두 사람이 서로 좋다면 그걸로 된 거야. 살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내가 그런 일로 반대해서 너희들 힘들게 할 게 뭐 있겠어? 근데 지금 의료 기술도 좋고
정인월은 빙그레 웃었다."현진아, 반지는 너한테 줬을 때 도로 받을 생각 없이 준 거야. 돈이 되는 물건도 아니니 가지고 있어. 그리고 이 돈은 두 사람 일이야. 한서 돈이니 한서 마음이야. 만약 받기 싫다면 직접 말해. 나한테는 권리 없어."유현진은 입을 오므렸다.강한서가 도로 받으려 했으면 그녀는 정인월에게 부탁하지 않았을 것이다.강한서가 기어코 받지 않으려고 하니 유현진은 돌려주려고 해도 방법이 없었다.'강한서 이 개자식은 왜 이혼하고도 이렇게 귀찮게 굴어!'강한서가 통화를 끝내고 다시 돌아왔을 때, 유현진은 강한서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식사 중에 갑자기 진씨가 들어와서 정인월에게 알렸다."큰 사모님. 주 변호사님이 큰 사모님 뵈러 오셨어요."강한서는 멈칫했다.유현진은 머리를 들어 밖을 보았다.주강운은 선물을 들고 신사답게 진씨 뒤에 서서 그녀를 향해 미소 지었다."할머니, 불쑥 찾아와서 놀라셨죠?"정인월은 활짝 웃으며 주강운을 반겼다."그게 무슨 말이야? 난 너희들이 어렸을 때처럼 여기에 자주 왔으면 좋겠어."정인월은 잠시 멈칫하다가 계속 말했다."밥은 먹었어? 안 먹었으면 어서 앉아."주강운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차 수리 맡기느라 아직 밥 못 먹었어요."강한서는 할 말을 잃었다.그는 갑자기 저번에 한세 한식당에 양주를 들고 찾아갔을 때 송민준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정인월은 다급히 말했다."빨리 수저 내와."진씨 아주머니는 주강운이 가져온 선물을 넘겨받아 놓고는 이내 수저를 가져왔다.주강운은 진씨에게 고맙다고 인사한 뒤 유현진과 강한서의 맞은편에 앉았다."강운아, 많이 먹어. 네 집이라고 생각하고 먹고 싶은 거 먹어."주강운은 환히 웃으며 말했다."그럼요. 저도 할머니 손자와 마찬가지잖아요."유현진은 갈비찜을 주강운 앞으로 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주 변호사님, 이거 드세요."전에 두 사람은 소송 건으로 대화를 나누던 중에 문뜩 주강운이 달짝지근한 갈비찜을 좋아한다는 얘기가 나눈 적이
하지만 바람은 바람일 뿐, 주강운은 전혀 강민서에게 관심이 없다. 게다가 강민서와 결혼하기에는 주강운이 너무 아깝다. 아무리 신미정이 정인월에게 보채도 정인월은 주강운에게 강민서와의 혼사로 말을 꺼낸 적 없었다.어렵사리 한 자리에서 식사하게 되니 정인월도 보통 어른들처럼 주강운에게 물었다."강운아. 귀국한 지도 꽤 됐는데, 집에서 맞선 주선해 주지 않았어?""맞선은 보라고 하시는데 제가 워낙 시간이 없어서요."주강운이 온화하게 답했다."사무소 일로 바빠요, 일부터 해야죠.""일도 일이지만 연애도 중요해. 네 엄마가 소개해 준 아가씨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 할미한테 얘기하렴. 내가 그래도 괜찮은 아가씨들 많이 알고 있어. 어디 요구라도 말해봐. 학력이나 외모나, 혹은 성격이나 직업이나 이런 것들 말이야. 그럼 내가 생각해 볼게."주강운은 당황스러웠다."뭐가 급하다고 그러세요.""급해, 어서 말해봐. 네가 원하는 사람과 맞선을 보아야만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유현진은 주강운의 멋쩍은 표정을 보고 웃음이 나왔다.'결혼 재촉 앞에서는 주 변호사님도 어쩔 수 없네."정인월이 계속 보채자 주강운도 어쩔 수 없이 몇 가지 점을 얘기했다."보기 편한 외모에 학력은 대졸이면 되고요. 다른 건 없어요.""보기 편한 외모를 가진 아가씨를 만나기가 얼마나 어려운데."정인월은 진지하게 말했다."우리 한서도 보기에 편한 외모면 된다고 했는데 결국 그 수백 명의 아가씨 중에서 현진이를 골랐잖아. 만약 현진이가 보기 편한 외모라면 강운이 너는 한주시에서 절대 여자친구 못 찾아.""풉- 콜록, 콜록-"유현진은 국을 마시다 사레가 들렸다.강한서는 그녀를 힐끔 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현진을 처음 보았을 때, 강한서는 그녀의 외모에 큰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결혼하고 나서 보면 볼수록 예뻤다.정인월의 말에 주강운은 환히 웃으며 말했다."현진 씨가 확실히 보기 편하죠."강한서는 멈칫하더니 안색이 어두워졌다.유현진도 주강운의 말에 이상함을 감지하
강한서의 시선에 주강운은 피하지 않고 강한서와 시선을 마주쳤다.두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서로를 바라보았지만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오갔다.강한서는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찻잔을 테이블에 놓으며 말했다."무슨 걱정이 그렇게 많아. 집에 차도 많은데 뭐가 걱정이야."주강운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내가 보기에 현진 씨가 불편해할 거 같은데? 현진 씨는 다른 사람에게 신세 지기 싫어하잖아."강한서는 주강운이 말하는 '다른 사람'이 누구를 뜻하는지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알면 됐어. 밥도 먹었고 얘기도 나눴으니 차만 마시고 집에 가서 쉬어."…...주강운이 답하기도 전에 강한서가 계속 말했다."아, 맞다. 어머니가 예전에 너 차 마시면 잠 못 잔다고 했는데."강한서는 주강운이 들고 있는 찻잔을 빼앗더니 한 모금 마셨다."차는 됐고, 돌아가."…...'강한서 이 자식, 점점 얄미워지네.'마침 유현진이 과일을 들고나왔다."주 변호사님, 과일 드세요."주강운은 미소 지으며 고맙다고 했다.강한서도 손을 뻗어 과일을 먹으려고 했지만 과일 접시에는 망고밖에 없었다.강한서는 그녀를 향해 말했다."딸기는?"그녀는 강한서를 힐끔 보았다."주 변호사님 딸기 싫어해."강한서의 눈가가 씰룩였다.'주강운과 언제부터 친했다고 뭘 싫어하는지도 알고 있지?'물론 유현진은 허튼소리를 한 것뿐이다. 그녀는 주강운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그저 강한서가 먹는 것이 꼴 보기 싫어서 일부러 망고를 썰었다. 강한서는 망고 알레르기가 있다.딸기는 강한서가 좋아하는 과일이라 일부러 내오지 않았다.주강운은 기분 좋은 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녀와 명예권 사건 후속 처리에 관해 얘기했다.유현진은 진지하게 들으며 때때로 한 두 마디 대답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강한서는 이가 갈릴 지경이였다."준이랑 좀 뛰어야겠어."강한서가 담담하게 입을 열며 주강운을 힐끔 보았다."한 시간 정도 뛰어야 하니까 넌 가서 일 봐."유현진은 시간을 확인했다. 준이
유현진은 영문도 모른채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번씩 훑어봤다, 시선이 준이의 발에 미치자 그녀는 놀란듯한 어조로 물었다."신발 새로 바꿨네?"준이는 으쓱한듯이 그녀의 눈앞에서 달리기 시작했다.새 말발굽을 바꿔 낀 준이는 걸을때마다 쩅그랑하는 금속소리가 났다. 그리고 마치 새 신을 사서 들뜬 아이마냥 자랑하듯 일부러 강하게 밟으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다.유현진은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있었다.그녀는 할머니께서 애당초 준이를 살때 사람처럼 행동하는것에 흥미를 느낀게 아닐까 싶었다.주강운은 웃으며 말했다."이리저리 돌아다녔던게 자랑하려고 그런거였군요."유현진은 미소를 지으며 준이의 갈기를 만졌다."전에 머리핀 사줬을때도 앞에서 자랑하던걸요. 말 하지 못하는걸 빼면 그냥 어린애랑 다를게 없어요.""얘가 그렇게 영리해요?"주강운은 유현진을 따라서 준이의 갈기를 손을 뻗어 만지려고 했으나 준이는 이에 고개를 돌리며 피했다.고삐를 쥐고 있던 강한서는 이 광경을 보고는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누구나 만질수 있는 그런 쉬운 말이 아니야."강한서가 한 말은 사실이였다, 준이는 자신의 주인을 알아보는 똑똑한 말이였다. 조련사 빼고 할머니, 유현진, 강한서 말고는 만질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강민서가 이전에 준이 위에 올라타 친구들 앞에서 자랑하려고 했으나 자비없이 타고있던 강민서를 땅바닥에 떨어뜨린 후로부턴 강민서는 감히 건드리지도 못했다.하지만 강한서의 이 한 마디는 너무 듣기가 거북했다.유현진은 주강운이 무안할까봐 자세히 설명했다."준이는 낯을 가려서 친해지면 괜찮을거예요."주강운은 이에 미소로 답했다."좋은 말은 다 주인을 알아보죠. 예상했던 바예요."준이는 제자리를 분주히 맴돌고 있었다, 마장에서 달리고 싶어서 한 시도 가만있지 못했다.강한서는 유현진한테 말을 걸었다."보호구 착용하고 먼저 좀 위밍업 시키고 있어."유현진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의 승마술은 평범했지만 승마자체는 엄청 좋아했고 준이같은 사나운 말을 정복하는 성취감도 있었기
유현진은 감사를 표한후 물병을 건네받았다, 이어서 뚜껑을 따고 물을 마셨다."말 타는 기술이 아주 수준급이던데요?"주강운은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그냥 평범해요."유현진은 아주 겸손했다. 그녀의 기술은 다른 사람이 볼땐 봐줄만 했지만 업계내의 사람들의 보기엔 전혀 성에 차지 않는 수준이였다.강한서는 그녀를 한 번 힐끔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강운이는 전문적으로 승마에 대해 배운적이 있어, 방금 말한건 아마도 진짜일거야."유현진은 조금 놀란듯한 표정을 보였다.저번에 송민준과 강한서가 서로 경마를 했을때 주강운은 이 대결에 끼지 않았었기에 그녀는 주강운이 승마에 대해 모르는줄만 알고 있었다."전문적으로 배우신줄은 몰랐네요."주강운은 웃으며 대답했다."한서랑 같이 배웠었어요. 그냥 조금 알아요."주강운은 겸손이 몸에 배여있었기에 그의 조금은 절대로 조금정도가 아니였을것이다.그전에 변호사사이트에서 봤던 주강운의 이력서에 의하면 진짜 못하는게 없는 만능인이였다.강한서는 유현진의 눈빛이 경악에서 놀람으로 놀람에서 선망으로 바뀌는걸 두 눈 뜨고 볼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마음속에 이루 형언할수 없는 질투가 생겼다.그는 갑자기 주강운한테 말을 걸었다."나랑 한 번 같이 경주해볼래?"주강운은 웃으며"아니야, 오랫동안 탄 적도 없고 해서 제대로 못 할것 같아."이에 강한서의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이렇게 답했다."그러면 내가 너가 세미사이클 돌때까지 출발 안하는걸로."주강운은 하던 행동을 멈추었다. 세미사이클을 양보해준단 말을 대놓고 도발을 한거랑 다름이 없었다.유현진도 당연하게 말중의 의미를 눈치채고 눈썹을 찌푸리더니 입을 열었다."주 변호사님이 싫으시대잖아, 저 사람 그냥 무시하세요."강한서는 유현진을 바라보더니 착잡한 표정을 드러냈다.하지만 주강운은 갑자기 미소를 짓더니"괜찮아요."라고 유현진한테 말을 건네고는 강한서를 바라보며"그래, 한 번 해보지뭐. 근데 굳이 양보해줄 필욘 없어. 이기나 지나 결과에 승복할게."라고 말
말 두 마리의 속도는 막상막하였다.강한서는 자세를 숙이고 진지하게 전방을 주시했다. 적당한 타이밍에 채찍을 휘둘러 방향을 조정했다. 세세한 행동들이 코너링을 할때 준이로 하여금 상대방을 추월하는 결과를 자아냈다.이 추월은 주강운의 기세를 꺽이게 하기엔 충분했다.비록 둘 다 속도가 엄청 빨랐지만 그 둘 사이의 2 - 3 m의 간격은 무슨 짓을 해도 좁힐수가 없었다.강한서는 뒤를 돌아 주강운한테 웃음을 한 번 지은후 다시 고개를 돌려 더욱더 박차를 가했다.주강운은 고개를 숙이더니 손에 쥐고 있던 채찍을 힘껏 내리쳤다. 말은 비명을 지르더니 더욱더 속도가 빨라졌다. 하지만 마지막 코너에서 뭐에 놀랐는지 비명과 함께 갑자기 등에 타고 있던 주강운을 털어버렸다.유현진은 가슴이 철렁해서 큰 소리로"주 변호사님!"이라고 소리쳤다.주강운의 몸 전체가 안장의 한쪽에 쏠려있었고 한쪽 발은 공중에 떠있는 상태였다. 다행히도 다른 한 쪽의 발은 발 받침대에 고정되여있었고 두 손은 고삐를 단단히 잡고 있었다. 굳은 얼굴엔 힘을 너무 쓴 탓이지는 몰라도 핏줄이 잔뜩 솟아있었다.주강운이 타고 있던 말은 통제를 벗어난것 같았다.주강운을 태우고 죽음을 향해 날뛰고 있었다.유현진은 등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큰 소리로 강한서를 부르기 시작했다.강한서도 주강운이 타고 있던 말이 제어를 벗어나서 날뛰는것을 목격하고는 준이와 함께 곧바로 달려갔다.갈색 말은 이미 경주로를 벗어나 잔디위에서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유현진은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유현진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는 장애물이 있는 곳으로 도망쳤다.하지만 사람과 말의 달리기 속도가 어찌 같으랴?강한서는 갈색 말과 유현진 사이의 거리가 점점 더 가까워 져가는것을 발견하고는 준이의 등에 일어서서 타이밍을 맞춰 갈색 말한테로 뛰었다. 그가 고삐를 잡아당겨 억지로 방향을 바꾸었다.갈색 말은 통증때문인지 더욱더 거세게 날뛰기 시작했다.강한서는 한쪽에 걸려있는 주강운을 쳐다봤다.그의 손은
유현진은 그 광경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듯했다.강한서는 재빠르게 고삐가 끊어진 순간 손을 바로 놨다. 몇 미터 정도 끌려가긴 했지만 최종적으로 잔디위에서 뒹굴었다.유현진은 강한서가 무사히 일어나는걸 보기전까지 숨을 쉴수가 없었다. 그가 일어나는걸 확인한 후에야 꼭 잡은 두손을 내리웠다.주강운도 심각한 표정으로 방금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한서 어디 크게 안 다쳤겠죠?""저렇게 툭툭 털고 일어나는걸 보면 별 것 아닐거예요."주강운은 멈칫 하더니 그녀의 표정을 확인한후 더 이상 얘기를 꺼내진 않았다.강한서는 말에서 추락한뒤로 갈색 말의 속도는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조련사는 준이를 타고 재빠르게 달려고 상황을 통제했다.강한서는 팔꿈치 심각한 통증을 느꼈다, 그는 일어서서 유현진이 무사한걸 확인하자 마음속으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곤 그들한테로 뚜벅뚜벅 걸어갔다.서로 가까워지자 강한서는 주강운의 상태를 살폈다."괜찮아?"이에 주강운은 까진 손바닥을 보여주었다. 어떤곳은 긁혀서 피가 나오고 있었다.그는 웃으며 답했다."이정도야 뭐. 너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죽었을지도 몰라. 고마워."유현진은 이에"감사하다 해서 뭐해요? 애당초 변호사님을 꼬드기지만 않았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일인데."이어서 강한서를 보며 말을 계속했다."당신, 주 변호사님이 거절안할줄 알고 일부러 도발한거지? 만일에 진짜로 머리라도 다쳤으면 책임 질수 있겠어?"강한서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주강운을 감싸는 모습을 바라보고있자니 마음 한켠이 시렸다. 그는 화가 났지만 억지로 삭히며 이를 악물었다."이게 왜 내 탓이야? 내가 칼을 목에 들이밀고 같이 타자고 했어?""칼을 목에 들이미는게 더 나았을수도 있었어. 만약에 다치기라도 했으면 내가 당신을 고의상해죄로 고소했을거야!"유현진은 그한테 눈길을 준뒤 고개를 돌려 주강운에게 말을 걸었다."주 변호사님, 제가 진료실까지 바래다드릴게요. 상처를 소독해야할것 같아요."주강운은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
법적 장모님이라는 여섯 글자에 멍한 표정을 짓던 강한서가 물었다. [서해금 대표 말하는 거야?][네. 그 분, 현진 누나 새엄마잖아요. 그럼 형님에겐 법적 장모님 아녜요?]강한서: ...‘맞긴 하네.’[난 오성빈 교수님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야.]멈칫하던 강한서가 물었다. [그건 왜 묻는데?]강한서의 말에 기분이 축 처진 진윤이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학교에서 제 재시험 성적을 취소하더니 재수강하래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학교에서는 네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거야?][명백하게 얘기한 건 아닌데 사실은 그런 셈이죠. 하지만 다른 처분은 없이 그냥 재수강만 하래요. 친한 친구에게 들은 건데 학교에 신고 전화가 빗발쳤었데요. 홈페이지에도 전부 부정행위 진상 규명을 바라는 댓글로 도배됐다고 하더라고요.][아마도 학교의 이미지 회복을 위한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적당한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고 대중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던 조치를 취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강한서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럼 교수님에게는 무슨 일로 연락을 하려는 거야?][조교님께서 이번 일은 오 교수님 담당이라고 하셔서요. 비록 재수강으로 결론이 났다고 하지만 아직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엄마는 오해를 풀기 위해 오 교수님을 한 번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세요.][아는 분께 부탁해 오 교수님과의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침 형님 법적 장모님께서 제 병문안을 오셨다가 그 얘기를 들으시더니 오 교수님과 아는 사이라고 하더라고요.][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아 엄마는 만약 가능하다면 그분께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세요.]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지적인 얼굴을 하고 계서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던데요. 딸인 현진 누나에게도 가식적으로 대하는 것 같던데 전 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저희를 도와줄 리가 없잖아요.][방금 형님과 얘기를 하면서 혹시 형님도
홍혜림이 서해금에게 얘기를 꺼내려던 그때, 진윤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잠깐 실례할게요.”홍혜림이 곧바로 하려던 말을 삼키고 몸을 일으켰다. “엄마가 부축해줄게.”“네.”진윤이 대답했다. 진윤을 부축하며 병실을 나서는 홍혜림을 쳐다보던 서해금이 고개를 돌려 성월에게 물었다. “아무 문제없이 잘 해결했죠?”성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했어요.”멈칫하던 성월이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정말 사모님께서 저희에게 부탁하러 오실까요?”서해금이 덤덤하게 말했다. “평소라면 부탁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면 분명 부탁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홍혜림은 지금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니 저를 통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아무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어요.”“조향 대회의 마지막 경기는 OM향 협회의 투표로 승패가 결정돼요. 홍혜림은 OM향 협회의 오래된 회원이에요. 게다가 이번 조향 대회 열 명의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고요.”“홍혜림은 누구보다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큰 도움을 준다면 어떻게든 그 빚을 갚으려고 할 거예요. 전 준비가 안 된 싸움은 시작하지 않아요.”피식 웃음을 흘린 서해금의 눈빛이 멸시로 가득했다. “전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요.”성월은 이토록 치밀한 서해금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성빈의 친척과 친분이 있다는 얘기를 꺼내는 서해금의 모습에 성월은 그녀가 단지 빼앗긴 고객을 다시 찾아가기 위해 던지는 미끼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해금이 바라는 것은 자신에게 마음에 빚을 진 홍혜림이 조향대회에서 관건적인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었다. 서해금이 이렇게까지 서포트 해주고 있으니 송가람은 조금만 노력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순간 뭔가를 떠올린 성월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물었다. “대표님, 인터넷에서 진윤 씨에 관한 여론이 들끓고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 가면 걔들은 거짓말을 들킨 네가 양심에 찔려서 해외로 도피하는 거라고 생각할 거야.”진윤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걔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출국하면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할 텐데.”“그럼 너 평생 해외에만 있을 거야? 안 돌아올래?”입술을 달싹인 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럴 수는 없었다. 부모님도, 집도, 가족도 전부 한주에 있으니 지금 당장 해외에 나간다고 해도 결국 돌아와야만 했다. 홍혜림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윤아, 사람의 명성이라는 게 한 번 나빠지면 다시 좋아진다는 건 어려운 일이야. 해외로 도망쳐 이번 일을 지나보낸다고 해도 졸업하면 결국 여기 동기들과 다시 마주해야 한 텐데, 걔들이 널 보고도 옛날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 같아?”“다들 널 안 좋게 보고 있는 지금, 네가 끝까지 네 결백을 증명해야 나중에 걔들이 다시 이 얘기를 꺼내도 억울하지는 않을 거야. 알겠어?”“결백을 뭐로 증명해요? CCTV도 없고 아무것도 없잖아요. 전 당당하다는 걸 아무도 증언해줄 사람이 없어요. 절 믿는 사람도 없다고요.”진윤이 잠김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저 어떡해요?”홍혜림은 미어지는 가슴을 붙잡고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 “아무도 널 안 믿어도 엄마는 널 믿어. 네 아빠, 형 그리고 네 형수님도 널 믿어. 그러니까 아들, 괜찮아. 엄마가 있는 한 아무도 우리 아들 못 건드려. 엄마가 꼭 네가 정정당당하게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게 할게.”홍혜림이 말에 진윤이 대답하려던 그때,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진윤이 고개를 돌려 얼굴을 닦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홍혜림 역시 심호흡을 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자 보이는 의외의 인물에 홍혜림의 눈이 동그래졌다. 서해금이었다.서해금은 성월과 함께 진윤의 병실로 찾아왔다. 두 사람은 손에 선물을 잔뜩 들고 서 있었다. 병실 문이 열리자 서해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