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서의 시선에 주강운은 피하지 않고 강한서와 시선을 마주쳤다.두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서로를 바라보았지만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오갔다.강한서는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찻잔을 테이블에 놓으며 말했다."무슨 걱정이 그렇게 많아. 집에 차도 많은데 뭐가 걱정이야."주강운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내가 보기에 현진 씨가 불편해할 거 같은데? 현진 씨는 다른 사람에게 신세 지기 싫어하잖아."강한서는 주강운이 말하는 '다른 사람'이 누구를 뜻하는지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알면 됐어. 밥도 먹었고 얘기도 나눴으니 차만 마시고 집에 가서 쉬어."…...주강운이 답하기도 전에 강한서가 계속 말했다."아, 맞다. 어머니가 예전에 너 차 마시면 잠 못 잔다고 했는데."강한서는 주강운이 들고 있는 찻잔을 빼앗더니 한 모금 마셨다."차는 됐고, 돌아가."…...'강한서 이 자식, 점점 얄미워지네.'마침 유현진이 과일을 들고나왔다."주 변호사님, 과일 드세요."주강운은 미소 지으며 고맙다고 했다.강한서도 손을 뻗어 과일을 먹으려고 했지만 과일 접시에는 망고밖에 없었다.강한서는 그녀를 향해 말했다."딸기는?"그녀는 강한서를 힐끔 보았다."주 변호사님 딸기 싫어해."강한서의 눈가가 씰룩였다.'주강운과 언제부터 친했다고 뭘 싫어하는지도 알고 있지?'물론 유현진은 허튼소리를 한 것뿐이다. 그녀는 주강운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그저 강한서가 먹는 것이 꼴 보기 싫어서 일부러 망고를 썰었다. 강한서는 망고 알레르기가 있다.딸기는 강한서가 좋아하는 과일이라 일부러 내오지 않았다.주강운은 기분 좋은 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녀와 명예권 사건 후속 처리에 관해 얘기했다.유현진은 진지하게 들으며 때때로 한 두 마디 대답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강한서는 이가 갈릴 지경이였다."준이랑 좀 뛰어야겠어."강한서가 담담하게 입을 열며 주강운을 힐끔 보았다."한 시간 정도 뛰어야 하니까 넌 가서 일 봐."유현진은 시간을 확인했다. 준이
유현진은 영문도 모른채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번씩 훑어봤다, 시선이 준이의 발에 미치자 그녀는 놀란듯한 어조로 물었다."신발 새로 바꿨네?"준이는 으쓱한듯이 그녀의 눈앞에서 달리기 시작했다.새 말발굽을 바꿔 낀 준이는 걸을때마다 쩅그랑하는 금속소리가 났다. 그리고 마치 새 신을 사서 들뜬 아이마냥 자랑하듯 일부러 강하게 밟으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다.유현진은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있었다.그녀는 할머니께서 애당초 준이를 살때 사람처럼 행동하는것에 흥미를 느낀게 아닐까 싶었다.주강운은 웃으며 말했다."이리저리 돌아다녔던게 자랑하려고 그런거였군요."유현진은 미소를 지으며 준이의 갈기를 만졌다."전에 머리핀 사줬을때도 앞에서 자랑하던걸요. 말 하지 못하는걸 빼면 그냥 어린애랑 다를게 없어요.""얘가 그렇게 영리해요?"주강운은 유현진을 따라서 준이의 갈기를 손을 뻗어 만지려고 했으나 준이는 이에 고개를 돌리며 피했다.고삐를 쥐고 있던 강한서는 이 광경을 보고는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누구나 만질수 있는 그런 쉬운 말이 아니야."강한서가 한 말은 사실이였다, 준이는 자신의 주인을 알아보는 똑똑한 말이였다. 조련사 빼고 할머니, 유현진, 강한서 말고는 만질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강민서가 이전에 준이 위에 올라타 친구들 앞에서 자랑하려고 했으나 자비없이 타고있던 강민서를 땅바닥에 떨어뜨린 후로부턴 강민서는 감히 건드리지도 못했다.하지만 강한서의 이 한 마디는 너무 듣기가 거북했다.유현진은 주강운이 무안할까봐 자세히 설명했다."준이는 낯을 가려서 친해지면 괜찮을거예요."주강운은 이에 미소로 답했다."좋은 말은 다 주인을 알아보죠. 예상했던 바예요."준이는 제자리를 분주히 맴돌고 있었다, 마장에서 달리고 싶어서 한 시도 가만있지 못했다.강한서는 유현진한테 말을 걸었다."보호구 착용하고 먼저 좀 위밍업 시키고 있어."유현진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의 승마술은 평범했지만 승마자체는 엄청 좋아했고 준이같은 사나운 말을 정복하는 성취감도 있었기
유현진은 감사를 표한후 물병을 건네받았다, 이어서 뚜껑을 따고 물을 마셨다."말 타는 기술이 아주 수준급이던데요?"주강운은 칭찬을 하기 시작했다."그냥 평범해요."유현진은 아주 겸손했다. 그녀의 기술은 다른 사람이 볼땐 봐줄만 했지만 업계내의 사람들의 보기엔 전혀 성에 차지 않는 수준이였다.강한서는 그녀를 한 번 힐끔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강운이는 전문적으로 승마에 대해 배운적이 있어, 방금 말한건 아마도 진짜일거야."유현진은 조금 놀란듯한 표정을 보였다.저번에 송민준과 강한서가 서로 경마를 했을때 주강운은 이 대결에 끼지 않았었기에 그녀는 주강운이 승마에 대해 모르는줄만 알고 있었다."전문적으로 배우신줄은 몰랐네요."주강운은 웃으며 대답했다."한서랑 같이 배웠었어요. 그냥 조금 알아요."주강운은 겸손이 몸에 배여있었기에 그의 조금은 절대로 조금정도가 아니였을것이다.그전에 변호사사이트에서 봤던 주강운의 이력서에 의하면 진짜 못하는게 없는 만능인이였다.강한서는 유현진의 눈빛이 경악에서 놀람으로 놀람에서 선망으로 바뀌는걸 두 눈 뜨고 볼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마음속에 이루 형언할수 없는 질투가 생겼다.그는 갑자기 주강운한테 말을 걸었다."나랑 한 번 같이 경주해볼래?"주강운은 웃으며"아니야, 오랫동안 탄 적도 없고 해서 제대로 못 할것 같아."이에 강한서의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이렇게 답했다."그러면 내가 너가 세미사이클 돌때까지 출발 안하는걸로."주강운은 하던 행동을 멈추었다. 세미사이클을 양보해준단 말을 대놓고 도발을 한거랑 다름이 없었다.유현진도 당연하게 말중의 의미를 눈치채고 눈썹을 찌푸리더니 입을 열었다."주 변호사님이 싫으시대잖아, 저 사람 그냥 무시하세요."강한서는 유현진을 바라보더니 착잡한 표정을 드러냈다.하지만 주강운은 갑자기 미소를 짓더니"괜찮아요."라고 유현진한테 말을 건네고는 강한서를 바라보며"그래, 한 번 해보지뭐. 근데 굳이 양보해줄 필욘 없어. 이기나 지나 결과에 승복할게."라고 말
말 두 마리의 속도는 막상막하였다.강한서는 자세를 숙이고 진지하게 전방을 주시했다. 적당한 타이밍에 채찍을 휘둘러 방향을 조정했다. 세세한 행동들이 코너링을 할때 준이로 하여금 상대방을 추월하는 결과를 자아냈다.이 추월은 주강운의 기세를 꺽이게 하기엔 충분했다.비록 둘 다 속도가 엄청 빨랐지만 그 둘 사이의 2 - 3 m의 간격은 무슨 짓을 해도 좁힐수가 없었다.강한서는 뒤를 돌아 주강운한테 웃음을 한 번 지은후 다시 고개를 돌려 더욱더 박차를 가했다.주강운은 고개를 숙이더니 손에 쥐고 있던 채찍을 힘껏 내리쳤다. 말은 비명을 지르더니 더욱더 속도가 빨라졌다. 하지만 마지막 코너에서 뭐에 놀랐는지 비명과 함께 갑자기 등에 타고 있던 주강운을 털어버렸다.유현진은 가슴이 철렁해서 큰 소리로"주 변호사님!"이라고 소리쳤다.주강운의 몸 전체가 안장의 한쪽에 쏠려있었고 한쪽 발은 공중에 떠있는 상태였다. 다행히도 다른 한 쪽의 발은 발 받침대에 고정되여있었고 두 손은 고삐를 단단히 잡고 있었다. 굳은 얼굴엔 힘을 너무 쓴 탓이지는 몰라도 핏줄이 잔뜩 솟아있었다.주강운이 타고 있던 말은 통제를 벗어난것 같았다.주강운을 태우고 죽음을 향해 날뛰고 있었다.유현진은 등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큰 소리로 강한서를 부르기 시작했다.강한서도 주강운이 타고 있던 말이 제어를 벗어나서 날뛰는것을 목격하고는 준이와 함께 곧바로 달려갔다.갈색 말은 이미 경주로를 벗어나 잔디위에서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유현진은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유현진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는 장애물이 있는 곳으로 도망쳤다.하지만 사람과 말의 달리기 속도가 어찌 같으랴?강한서는 갈색 말과 유현진 사이의 거리가 점점 더 가까워 져가는것을 발견하고는 준이의 등에 일어서서 타이밍을 맞춰 갈색 말한테로 뛰었다. 그가 고삐를 잡아당겨 억지로 방향을 바꾸었다.갈색 말은 통증때문인지 더욱더 거세게 날뛰기 시작했다.강한서는 한쪽에 걸려있는 주강운을 쳐다봤다.그의 손은
유현진은 그 광경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듯했다.강한서는 재빠르게 고삐가 끊어진 순간 손을 바로 놨다. 몇 미터 정도 끌려가긴 했지만 최종적으로 잔디위에서 뒹굴었다.유현진은 강한서가 무사히 일어나는걸 보기전까지 숨을 쉴수가 없었다. 그가 일어나는걸 확인한 후에야 꼭 잡은 두손을 내리웠다.주강운도 심각한 표정으로 방금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한서 어디 크게 안 다쳤겠죠?""저렇게 툭툭 털고 일어나는걸 보면 별 것 아닐거예요."주강운은 멈칫 하더니 그녀의 표정을 확인한후 더 이상 얘기를 꺼내진 않았다.강한서는 말에서 추락한뒤로 갈색 말의 속도는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조련사는 준이를 타고 재빠르게 달려고 상황을 통제했다.강한서는 팔꿈치 심각한 통증을 느꼈다, 그는 일어서서 유현진이 무사한걸 확인하자 마음속으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곤 그들한테로 뚜벅뚜벅 걸어갔다.서로 가까워지자 강한서는 주강운의 상태를 살폈다."괜찮아?"이에 주강운은 까진 손바닥을 보여주었다. 어떤곳은 긁혀서 피가 나오고 있었다.그는 웃으며 답했다."이정도야 뭐. 너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죽었을지도 몰라. 고마워."유현진은 이에"감사하다 해서 뭐해요? 애당초 변호사님을 꼬드기지만 않았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일인데."이어서 강한서를 보며 말을 계속했다."당신, 주 변호사님이 거절안할줄 알고 일부러 도발한거지? 만일에 진짜로 머리라도 다쳤으면 책임 질수 있겠어?"강한서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주강운을 감싸는 모습을 바라보고있자니 마음 한켠이 시렸다. 그는 화가 났지만 억지로 삭히며 이를 악물었다."이게 왜 내 탓이야? 내가 칼을 목에 들이밀고 같이 타자고 했어?""칼을 목에 들이미는게 더 나았을수도 있었어. 만약에 다치기라도 했으면 내가 당신을 고의상해죄로 고소했을거야!"유현진은 그한테 눈길을 준뒤 고개를 돌려 주강운에게 말을 걸었다."주 변호사님, 제가 진료실까지 바래다드릴게요. 상처를 소독해야할것 같아요."주강운은
그는 고삐를 풀어서 한쪽에 놓은뒤 갈색 말 몸에 있는 먼지를 털어주었다. 목 주위로 손을 가져다대자 갈색 말은 갑자기 흥분한듯 날뛰기 시작했다. 코로 거친 숨을 몰아쉬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아마도 뭔가가 엄청 불안한것 같았다.조련사는 이상함을 감지하고 자세히 목부분을 들여다보니 목부분에 새로운 상처가 있었고 그 상처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목 부분 털 색갈이 비교적 진한데다가 마침 상처가 고삐를 묶는 위치에 있었기에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조련사는 눈썹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자세히 상처를 들여다보았다.상처는 뭔가에 베인것 같으면서도 아닌것 같았다. 상처옆의 살들은 고삐가 자꾸 왔다갔다 긁힌 덕분에 본래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어쩐지 강한서가 세게 잡을수록 더욱더 난리를 치던게 이해가 갔다.세게 잡을수록 말이 느끼는 고통이 더욱더 심해져 더 심하게 날뛴게 분명했다.이 상처의 형태만 놓고 보면 어디에서 다친건지는 알턱이 없었다. 어쩔수 없이 진씨 한테 보고를 올려서 수의를 불러 응급처치를 하게 했다. 이 말도 할머니께서 엄청 좋아하시는 말이였기 때문이였다.유현진은 주강운을 잡고 마장밖으로 뛰어나간후 정원을 벗어났다.그녀는 긴장한 얼굴을 한채 주강운을 잡고 놔주지 않았다. 주강운도 그녀한테 몸을 맡긴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정원을 벗어난후 두 사람은 차에 올라탔다. 주강운은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할머니한테 작별인사라도 해야 하지 않겠어요?"유현진은 차에 시동을 걸면서 답했다."강한서가 알아서 말해줄거예요."주강운은 시간이 조금 지난뒤 낮은 목소리로"혹시 한서가 걱정돼서 그런거예요?""천만에요."유현진은 태연하게 대답했다."이혼도 했고 지금은 아무 관계도 아니예요. 저는 그냥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한 경솔한 행동에 화가 난것일뿐이예요. 오늘 심하게 다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예요."주강운은 긴장을 풀고 온화한 목소리로 답했다."작은 상처만 났을 뿐인데요 뭐, 전 괜찮아요. 다 제가 잘못한거예요, 제가 경주에 응한게 잘못이
상대방은 시간장소를 알려주고는 전화를 끊기전에 한가지를 더 물었다."혹시 고여정씨하고는 아는 사이세요?"이에 유현진은"저랑 고여정씨 남편의 동생이랑 아는사이였어요."K는 더이상 묻지 않고 그냥 한마디만 남겼다."그럼 이따가 뵙죠."탐정 K는 한주시에서 유명한 사립탐정이였다.탐정 사무소도 없고 행적도 찾기 어려웠고 공개된건 오피셜 메일밖에 없었다.그한테 도움을 청하려면 일단 메일을 보낸후에 K가 마음에 들면 답장을 보내오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만약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일주일이 넘어도 답장을 하지 않는다.유현진은 금고에서 그 물건들을 발견하고나서부터 하현주가 7년전 유상수와 이혼얘기를 꺼냈었던 사실이 기억났고 그때 당시 발생했던 차 사고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하현주의 장례식을 치르고나서 그녀는 고여정한테 연락을 걸었었다. 7년전 사고에 대한 자료에 대해서.고여정은 형사과에서 근무하고 있었지만 교통사고처리반에 아는 사람이 있었기에 손쉽게 연락이 닿았다.그때 당시 고여정은 담당자한테 7년전 사고에 대한 자료를 부탁했다. 결론은 당시 하현주가 사고를 당하고 이 사건을 담당했었던 관계자가 하현주의 혈액을 채취하지도 않은채 사건을 종결했다는걸 알수가 있었다. 그래도 혈액검사결과는 있을리가 만무했고 당연하게도 당시 하현주가 항우울제를 복용했는지 그 여부를 알수가 없었다.그말은 즉슨, 유상수가 말한 우울증 발병기간이였다는건 당시 현장에 있던 경찰들의 추측일뿐 그걸 뒷바침하는 증거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고여정은 당시 현장에 씨씨티비도 구비되여있고 사건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뚜렷하게 촬영되여있었으며 당시 사고가 났던 피해자의 가족이 수사를 빨리 끝내달라던 요청이 있었기에 평범한 교통사고로 처리되었고 벌금이나 배상같은건 서로 합의하에 끝냈다.고여정은 말을 덧붙였다."당시에 이 안건을 맡은 사람이 제 사수의 동료였어요. 그 사람의 말로는 사고가 난뒤에 쌍방 모두 사건이 빨리 종결되기를 원했고 모두들 이 보기엔 평범한 사건을 오래도록 쥐고
그녀는 K가 보내온 주소를 따라 한주시에서 오래된 골목길을 따라 이리저리 맴돌다가 국수집으로 들어갔다.문을 열고 들어가자 십몇평 되는 음식점 안은 국수를 먹으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손님들중에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다 있었으며 누구를 보나 모두 탐정같아 보이진 않았다.그녀가 머뭇머뭇거리고 있을때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다."현진씨?"유현진은 뒤를 돌았다. 눈앞엔 가만 후드티와 청바지를 입은 젊은 남성이 서있었다.상대방은 키가 컸고 날씬한 체형에 하얗고 깨끗한 피부 두터운 눈썹을 가지고 있었으며 대학생느낌이 물씬 났다."...... 혹시 K이세요?"유현진은 의문을 품고 질문을 했다.상대방은 웃더니"뭔가 상상속의 사람과 다르나요?"유현진은 전에 본적이 없었고 당연하게도 다르라는 말은 실례가 될수 있어서 그냥"아주 젊으시네요."라고 답했다.K는 국수 한그릇을 주문한뒤 빈자리에 앉았다."얼굴이 좀 작아서 그래요, 올해 37입니다."강한서보다 나이가 많을줄은 생각도 못한듯 했다. 만약 강한서가 앞머리를 올린다면 삼촌이라고 불러도 전혀 이상할게 없었다.유현진도 의자를 빼내고 반대편에 앉았다. 유현진은 상대방에게 사건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음식이 나오고 K는 국수를 먹으면서 유현진의 얘기를 들었다.그는 아주 허겁지겁 국수를 먹었다, 마치 몇일동안 굶은 사람을 연상케했다.유현진은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아니면 다 드시고 나면 제가 얘기드릴게요."K는 고개도 들지 않고 짬을 내서 한마디 대답했다."아닙니다, 계속 얘기해주세요, 듣고 있습니다."유현진은 할수없이 대화를 계속해나갔다.그녀의 설명이 끝나고 K도 식사를 거의 다 마친듯 했다, 휴지로 입을 닦은후 고개를 들고 물었다."지금 바람 난 아버지혹인 그 사람의 애인이 꾸민 사고라고 의심하는거죠?"유현진은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그냥 이 모든게 너무 잘 맞아떨어져서요."이혼을 하려고 했으나 사고가 났고 하현주가 사고가 남으로 그중에서 제일 큰 이득을 취한게 유상
한현진이 입꼬리를 씩 올리며 송가람에게로 걸어가 그녀의 귓가에 다가갔다. “제 사무실에 있던 금전수 기억해요?”움찔하는 송가람의 동공이 순간 흔들렸다. 한현진이 눈을 가늘게 뜬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언니가 하는 건 저도 할 수 있어요. 스스로 승인하실래요, 아니면 다들 들을 수 있게 제가 가서 가져올까요?”송가람의 얼굴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한현진이 그 도청 장치를 발견했을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한현진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송가람의 사무실에도 도청 장치를 달았다. 송가람과 주현은 사무실에서는 거리낌 없이 모든 얘기를 했었다. 게다가 한현진이 대체 어디서 어떤 얘기를 들은 것인지도 알 길이 없었다. 그런 생각에 송가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꼭 움켜쥔 주먹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송가람의 경계심이 완전히 무너질 때쯤 멀리서 서해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아, 가람아. 무슨 얘길 하고 있는 거니?”하마터면 자신이 한 일을 승인할 뻔한 송가람은 서해금의 목소리가 들리자 입가까지 흘러나왔던 말을 다시 삼켜버렸다. 그녀는 구세주를 만나기라도 한 듯 서해금을 불렀다. “엄마!”한현진이 쯧 혀를 찼다. ‘타이밍 한번 좋게 찾아왔네.’한현진은 몸을 돌려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서해금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주머니, 안녕하세요.”한현진 앞으로 다가온 서해금이 몸을 곧게 세우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미소 지으며 물었다. “밥도 안 먹고 두 사람 여기서 무슨 얘길 하고 있었던 거야?”한현진이 말했다. “별거 아니에요. 다만 가람 언니가 별다른 이유 없이 직원의 보너스를 삭감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고 있었어요.”한현진의 말에 반박하려던 송가람은 휴대폰을 꺼내려는 한현진의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만약 송가람이 자신의 구역에서 한현진에게 약점을 잡힌 것을 서해금이 알게 된다면 또 그녀를 한바탕 꾸짖을지도 몰랐다. “그래?”서해금이 송가람을 힐끔 쳐다보았다. “현진이 말이 사실이야?”송
누군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곧 비웃음 소리가 하나둘 터져 나왔다. 안규리의 얼굴이 부끄러움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송가람이 미간을 찌푸렸다. “현진—”한현진이 송가람의 말을 잘랐다. “송 팀장님, 여긴 회사예요. 호칭 주의하시죠.”말문이 막힌 송가람은 이를 악물고 화를 꾹 참으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 대표님, 다들 그저 장난 좀 한 건데 말씀이 좀 지나치신 것 같네요.”“제 말이 좀 지나쳤나요?”한현진이 차가운 눈으로 송가람을 쳐다보았다. “규리 씨가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을 놀릴 때는 왜 규리 씨 말이 심하다고 하지 않은 거죠? 이해 능력이 형편없어서 규리 씨 말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하는 거예요?”송가람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서하 씨 형편이 어려우면 회사에 복지 신청해도 된다고 제가 얘기했잖아요.”한현진이 흥 코웃음을 쳤다. “보아하니 송 팀장님은 이해력이 안 좋을 뿐만 아니라 기억력도 안 좋으신 것 같네요. 서하 씨가 2개월간 감봉 당한 건 송 팀장님 작품 아니었나요? 이제 와서 좋은 사람인 척하겠다는 건가요?”표정이 굳어진 송가람이 이를 악물었다. “서하 씨 보너스가 삭감된 건 인사팀에서 결정한 일이에요. 그게 저와 무슨 상관이죠? 헛소리하지 말아요.”한현진이 차가운 말투로 대답했다. “전 서하 씨가 보너스를 삭감당했다고 얘기한 적 없는데요. 조향팀의 일개 팀장에 불과한 송 팀장님이 어떻게 재무팀 직원의 월급 삭감 정황까지 빠삭하게 알고 있는 거예요? 인사팀 부장이 꿈에서 알려주기라도 했어요?”송가람은 그제야 자신이 한현진에게 말꼬투리를 잡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순간 화가 치민 송가람이 말했다. “대충 제 추측으로 얘기한 것 뿐이에요. 감봉은 보너스를 삭감하는 것이 일반적이니까요.”“하지만 보너스를 전부 삭감당했다는 건 저도 들은 적 없는 얘기예요.”한현진이 태연하게 말했다. “회사에도 징계에 관한 규정이 명확하게 있어요. 설사 서하 씨가 진행한 업무가 전부 규정을 위반했다고 하더라도
은서하는 송가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한현진과 가깝게 지내다 또다시 송가람에게 당할까 두렵지는 않은 걸까?한현진은 도무지 이 어린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시연은 그런 은서하의 모습에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은서하와 인사를 나누었다. “서하 씨, 외할머니도 아직 퇴원하지 않으셨을 텐데 오늘은 어떻게 회사에서 점심을 먹는 거예요?”은서하가 대답하기도 전에 이미 누군가 비꼬며 말했다. “진작 회사에서 먹어야 했어요. 도시락도 매일 구정물 같은 것만 싸 오던데 식욕이 있겠어요? 서하 씨. 구내식당은 직원 할인도 있잖아요. 매달 6만 원만 내면 돼요. 그 정도 돈도 없는 건 아니겠죠. 그 도시락, 서하 씨는 괜찮을지 몰라도 전 이제 못 봐주겠어요.”그 말에 은서하의 얼굴이 순간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젓가락을 꽉 움켜쥐고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다. 이시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안규리 씨,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구내식당을 이용하든 도시락을 싸든 그건 다른 사람 마음이에요. 6만 원으로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게 뭐 그리 고상한 일 같아요?”안규리라고 불린 사람은 송가람 옆에 앉아 있었다. 한현진도 전에 본 적 있는 재무팀 직원이었다. 안규리가 눈썹을 씰룩였다.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게 고상하다는 얘기는 전 한 적 없어요. 하지만 매일 죽 같은 도시락을 싸 와 식당에서 데워 먹는 모습은 사실 저희 식욕을 떨어뜨리거든요. 다들 안 그래도 일하느라 힘든데 밥 먹을 때도 이렇게 입맛이 떨어져서야 저희더러 어떻게 살라는 거죠?”주현도 안규리의 말을 거들었다. “서하 씨도 돈이 없어 보이지는 않던데요. 전에 한 대표님이 옷 선물을 하셨을 때도 제일 비싼 옷을 가져갔잖아요. 딱 봐도 그런 걸 처음 본 사람은 아니잖아요. 보자마자 제일 좋은 거로 가져갔는데.”“200만 원이 넘는 옷을 입는 사람이 식비 6만 원을 아낀다고요?”“그게 어떻게 같아요? 몇백만 원짜리 옷은 볼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잖아요
한현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집을 나선 한현진은 강한서에게 황씨 아주머니의 월급 인상에 관해 상의했다. 강한서와 강민서가 집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주혁이 한현진을 데리러 도착했다. 별장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현진은 순간 길가에서 누군가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어쩐지 눈에 익은 인영이었다. 한현진이 탄 차가 그 사람과 가까워져서야 한현진은 그 사람이 은서하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한현진은 다급히 주혁에게 차를 세우라고 말하고는 차창을 내려 은서하를 불렀다. “서하 씨!”고개를 돌린 은서하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대표님이 여긴 어떻게...?”“저 이 근처에 살아요.”한현진이 물었다. “그러는 서하 씨는 여긴 어쩐 일이에요?”이 근처엔 별장을 제외하면 길가에 오가는 차가 전부였다. 사람의 그림자조차 흔하지 않은 길이었다. 은서하가 말했다. “집이 이 근처라서요.”한현진이 놀라며 말했다. “이 근처에 사신다고요?”은서하가 꿋꿋이 거짓말을 이어갔다. “네. 오늘 늦잠을 잤더니 택시가 안 잡혀서요.”한현진은 아무 말 없이 은서하를 살펴보더니 몇 초 후에야 입을 열었다. “일단 타요. 타서 얘기해요.”은서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는 종종 달려와 한현진 반대편의 문을 열고 차에 탔다. 은서하는 그제야 차에는 한현진과 운전기사뿐만 아니라 평범한 외모의 젊은 청년도 함께인 것을 발견했다. 한현진이 소개하며 말했다. “여긴 원율 씨. 제 개인 비서예요.”은서하가 원율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안전벨트를 했다. 그녀는 자신의 가방을 꼭 끌어안고 공손한 자세로 한현진 옆에 앉아 있었다. 차가 출발하자 한현진이 질문을 이어갔다. “여긴 회사와 거리도 있는데 평소 출퇴근 시간이 꽤 걸리지 않아요?”은서하가 어색하게 대답했다. “외할머니 치료 때문에 집을 팔았어요. 하지만 회사 근처엔 월세가 높아서 어쩔 수 없이 먼 곳으로 옮겼어요. 평소엔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어젯밤엔... 일이 조
한현진이 거울을 보며 옷을 정리했다. “이름이 뭐야?”“문채영.”“꽃부리 영?”강한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영리할 영.”“특이한 이름이네.”한현진이 멈칫했다. “너 전에 오빠가 맞선을 싫어한다고 하더니 그 여자를 못 잊어서 그런 거였어?”강한서가 말했다. “그런 것 같아.”“그럼 두 사람은 왜 안 만났던 건데?”강한서가 말했다. “자세한 건 네 오빠만 알 거야. 내가 알고 있는 건 고등학교 시절 누나 이모가 누나 아버지를 횡령, 뇌물수수 그리고 사생활이 문란한 문제를 신고했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연루되어 누나 아버지는 형량을 꽤 많이 받았어. 누나 어머니도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시고 실성하신 분처럼 구셨어. 그렇게 문씨 가문은 나락으로 떨어진 거야. 그때 누나는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못했었어.”“우리 수능이 끝나자 누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해외로 갔어. 그리고 2년이 지난 후 결혼했지. 남편은 부자인 교포였어. 귀국해서 결혼식을 올린 거라 민준이도 일부러 M국에서 돌아왔어. 결혼식이 끝나고 누나는 남편과 함께 해외로 갔어. 그 후로 우리는 연락이 뜸해졌고. 그리고 2년 전, 누나가 이혼하고 나서야 다시 연락하기 시작한 거야.”한현진이 물었다. “넌 그 여자와 오빠를 이어주고 싶은 거야?”강한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나는 민준이를 만나고 싶어 해. 난 그저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주는 것뿐이야. 두 사람이 어떤 사이로 발전할지는 두 사람 일이지.”강한서가 멈칫하더니 말을 이었다. “어렸을 때 그 감정이 지금은 얼마나 남아있을지 모르지. 누나가 이혼 후 2년이 흘렀어. 만약 나라면 그리고 아직도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바로 전남편에게 꽃이라도 사 들고 찾아가 이혼을 축하해줄 거야. 그리고 바로 누나를 찾아갔겠지. 하지만 네 오빠는 그저 가만히 있었어. 이혼한 걸 몰랐을 리가 없어.”한현진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만약 너였다면 넌 출국하기도 전에 잡혔을 거야. 그리고 오빠는 너처럼 멍청하지 않아. 그렇게 창피한 일은
문자를 확인한 강한서는 몸을 일으키며 답장을 했다.[고마워요, 누나도 잘 지내죠?][응, 잘 지내지. 나 내일 귀국하는데 시간 되면 밥이나 먹자.][그래요.][네 와이프 송씨 집안에서 잃어버린 딸이라던데, 너랑 민준이는 형님 동생 하면서 지내는 거야? 어떻게 지낼만해?]송민준의 상황을 묻기 위해 연락했다는 걸 알아챈 강한서가 바로 답장을 보내주었다.[괜찮긴 한데 너무 동생 바보라서 나 별로 안 좋아해요. 누나도 송민준 못 본 지 오래됐죠? 내일 같이 나갈게요.][그래, 안 바쁘면 민준이 여자친구도 같이 불러.]강한서는 문채영이 떠보기 위해 하는 말인 걸 알았지만 모른 척 대꾸했다.[송민준 여자친구 없어요, 솔로에요.]그 말에 적잖이 놀란 건지 글자뿐인 문자에서도 문채영의 놀라움이 전해져왔다.[진짜?][누나도 송민준 성격 알잖아요. 얼마나 사람 짜증 나게 하는데, 그렇게 쓸데없는 말 많이 하는 사람이 여자친구를 사귈 리가 없잖아요.]그 말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입은 웃고 있는 이모티콘을 보내온 문채영은 곧바로 한마디 더 보탰다.[너도 와이프 데려와, 선물 준비했으니까.][네.]이튿날 아침, 강한서는 머리를 말리고 있는 한현진 곁으로 다가가 어젯밤 문채영과 했던 말을 전했다.“내가 아는 사람이야?”그 말에 강한서가 고개를 젓자 한현진은 또 물었다.“남자야 여자야?”“여자.”그 말에 한현진이 잠시 멈칫하자 강한서가 한마디 더 보탰다.“네 새언니가 될뻔한 여자야.”“우리 오빠 첫사랑?”깜짝 놀라며 묻는 한현진에 강한서는 웃으며 대답했다.“그렇다고 할 수도 있는데 실제로 만난 건 아니고 그냥 송민준이 혼자 좋아했어. 그때 같이 다니던 애들은 다 알고 있었지. 그런데...”갑자기 말을 멈추는 강한서에 한현진은 다급히 그를 재촉했다.“왜 갑자기 여기서 말을 끊어, 그런데 뭐?”강한서는 그런 한현진의 볼을 귀엽다는 듯 쓰다듬으며 입꼬리를 올렸다.“나처럼 원하는 여자를 쟁취하진 못한 거지. 그런 쪽으론 영 능력이 없어.”“우
신미정은 결혼을 재촉했지만 할머니는 결혼은 평생을 같이할 사람을 찾는 거라고 마음에 들고 잘 맞는 사람과 해야 한다면서 그렇게 서두르지 않고 있었다.그래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결혼 상대를 물색하던 중 한현진의 강한서의 눈에 들게 된 것이다.교통사고까지 다 해서 고작 네 번 본 사이었고 말 한번 섞어본 적도 없어 그다지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보면 볼수록 한현진이 마음에 들었다.강한서도 마침 모르는 사람과 결혼해서 서로를 알아가는 게 시간 낭비 같았는데 한현진도 저런 늙은이한테 시집가는 건 원하지 않을 것 같았다.그리고 그날 교통사고도 실수이기는 하지만 한현진의 엄마가 간민혜를 차로 쳐서 죽인 건 맞기에 주강운이 갑자기 한현진한테 무슨 짓을 하기라도 할까 봐 신경 쓰이는 것도 있었다.어쨌든 주강운한테 고모가 간민혜를 만나려고 해서 그녀를 데리고 가다가 사고가 났다고 해명한 건 자신이었기에 강한서는 이 일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한현진을 데리고 있고 싶었다.그렇게 자신을 설득한 강한서는 이틀 뒤 바로 한현진에 연락해 그녀와 맞선자리를 가졌다.맞선자리에서 한현진은 강한서를 알아본 듯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기에 강한서도 굳이 그 일을 꺼내진 않았다.한현진은 이 맞선자리가 유상수가 꾸며낸 자리인 줄로만 알고 혹시라도 실수할까 싶어 말을 최대한 아끼고 있었지만 사실 유상수는 꿈만 꿀 뿐이지 그럴 능력이 못 되는 사람이었다.선 자리를 끝내고 본가로 돌아간 강한서는 바로 한현진의 자료를 건네주며 결혼 의사를 밝혔지만 유씨 집안을 조사해본 할머니는 바로 반대부터 했다.유씨 집안의 지위보다 아내가 아픈데도 들여다보지 않고 비서랑만 붙어있는 유상수의 사람 됨됨이가 별로라서 그의 딸도 비슷할 거라 생각해 거절한 걸 알아챈 강한서는 평소에는 그렇게 말을 아꼈으면서 이번에는 웬일로 한현진을 감싸기 시작했다.그녀가 친구를 도와 나서던 일과 그녀의 지금 상황까지 다 말한 강한서는 한현진이 아니면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단호히 말한 뒤 집을 나섰다.그 말에 답답해
침대에서는 늘 신사다웠던 강한서였기에 한현진은 하면서도 아픈 적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였다.그래서 당연히 실망은 하지 않았지만 그저 간간이 색다른 그의 모습을 바랐던 적은 있었다.사실 별로 감출 것도 없는 일이지만 갑자기 물어오는 강한서에 부끄러워진 한현진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며 말했다.“잠이나 자!”그에 웃음을 흘리던 강한서는 한현진을 이불과 함께 끌어와 제 품에 안더니 낮은 목소리로 놀리기 시작했다.“얘기마저 하고 자. 앞으로 어떻게 널 만족시켜야 하는지는 알려줘야지.”“현진아, 현진아. 좀 더 자세하게 얘기해보라니까?”진짜 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어떻게 하면 만족할지를 자세하게 말하라니, 한현진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었다.강한서는 그렇게 한현진을 한참 놀리다가 자리에 제대로 누우며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나 오늘 내가 부계정으로 올렸던 피드들 다시 봤는데 진짜 너무 유치하더라, 전에는 내가 그 정도인 줄은 몰랐는데.”“너 원래 유치하잖아, 닉네임만 봐도 알리지 않아?”코웃음을 치며 말하는 한현진에 강한서가 웃어 보였다.“그 이름 내가 지은 거 아니야.”사실 그 계정은 일상을 공유하기 위해 만든 게 아니라 사업에 필요해서 만든 거였다.그때 한성 그룹에서 개발 중인 신제품에 대해 말이 좀 많았었는데 영향력이 좀 있는 사람들까지 그간의 데이터들을 언급하며 한성에는 그 정도 기술이 없다고, 전부 허위 홍보일 뿐이라는 소문을 퍼뜨리고 있어서 그걸 반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계정이었다.그 신제품이 진짠지 가짠지 누구보다 잘 아는 강한서는 화가 나서 자신의 본 계정으로 반박문을 내려고 했지만 본 계정으로 낸 입장문이라면 큰 효과가 없을 거라던 한성우의 말에 설득당해 ‘다이아몬드 수저의 일상’이라는 계정이 생기게 된 것이었다.한성우의 말대로 부계정을 사용해 자신의 생각을 밝히니 사람들이 좀 더 쉽게 받아들였고 덕분에 팔로워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다.자신의 화려한 배경이 사라지니 허구한 날 걸고넘어지던 사람들도
한현진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딱딱하게 물었다.“말해 빨리, 나 잘 거니까.”“네가 싫다고 해도 내가 강제로 몰아붙이는 거 좋아한다고 했잖아. 그런데 하다가 네가 진짜로 하기 싫어질 수도 있는 건데 그걸 내가 구별할 수 있을까? 네가 진짜 싫은 건지 아니면 그냥 하는 말인지 잘 몰라서 실수하면 어떡해?”“잘 나가다가 내가 갑자기 왜 화를 내겠어?”“지금도 갑자기 화내잖아, 아까는 막 나 유혹하더니. 아무 예고도 없이 화내는 게 한두 번이야?”그 말을 들은 한현진은 돌아누워 강한서와 눈을 맞추며 따지기 시작했다.“그러니까 네 말은 내가 이유도 없이 자꾸 화만 낸다 그거야?”“아니, 그런 게 아니라 네가 진짜 하기 싫은 건데 내가 그걸 못 알아보고 계속하다가 너 다치게 할까 봐 그러지.”“진짜 싫으면 내가 너 물 거니까 그딴 걱정 할 필요 없어.”그 말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강한서는 언제 풀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미 자유로워진 손으로 한현진의 손목을 잡으며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한현진이 그걸 왜 혼자 풀어냈냐고 따지기도 전에 혀를 입속으로 밀어 넣으며 치열을 고르게 훑고 지나가는 강한서에 한현진의 몸은 빠르게 나른해졌다.강한서가 입을 뗐을 때 한현진의 얼굴과 입술은 이미 빨개져 있었고 그녀는 가만히 누운 채 숨만 내뱉으며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한현진 위에 올라타 있었던 강한서는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띤 채 그녀를 바라보더니 득의양양하게 말했다.“안 깨물었네.”한현진이 그 말의 뜻의 완전히 깨닫기도 전에 강한서는 또다시 입을 맞춰왔다.시간을 얼추 계산해보니 3달은 넘은 것 같아 사실상 관계를 한다고 해도 문제 될 건 없었기에 한현진은 쥐고 있던 강한서의 머리채를 놓아주고 몸에 힘을 뺐다.그렇게 키스를 이어나가던 강한서는 한참 만에 한현진을 놓아주더니 그대로 이불을 덮어주고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자자 이제.”그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천장만 바라보던 한현진은 문득 인터넷에서 봤던 피드가 하나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