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슥"유현진은 눈썹을 찌푸리면서 강산서의 손등을 내리쳤다."아파! 당신 상처를 누르면 안 아파?"유현진의 팔꿈치에 난 성처도 강한서의 머리에 난 상처와 같이 크루즈에 올랐던 당일 밤에 남은 것이다.팔꿈치 뿐만 아니라 유현진은 무릎에도 상처가 났다.강한서는 유현진을 흘끔 쳐다보더니 말했다."아무말 없길래 난 또 안 아픈 줄 알았지."그러면서 면봉으로 약을 묻혀서는 유현진의 팔꿈치에 부드럽게 발라주었다."이 약은 할머니가 의사선생님께 특별히 부탁해서 조제한 거라, 다친 데 엄청 효과가 좋아. 한 번 바르면 바로 좋아질 거야.""그렇게 좋아? 그럼 갈 때 가져가야겠다."촬영할 때 다치는 건 흔한 일이다. 멍 들면 외관에 영향 주는 건 차치하더라도 엄청 아프다. 이 약이 그렇게 효과가 좋은면 당연히 가져가서 사용해야지.그러자 강한서의 눈가가 부르르 떨렸다."할머니에게도 이 한 병밖에 없어. 그 의사선생님이 세계일주 여행을 떠나서 1년 안에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그래서 할머니가 이 약을 보배처럼 여기고 있어. 지난번에 민서가 말 타다가 떨어져 발목을 삐었는데도 할머니가 아까워서 안 내놓았는데, 지금 아예 가져가겠다고?"이 말은 꿈 깨라는 소리다!유현진이 입을 삐죽거리면서 속으로 할머니가 나한테 그렇게 큰 임무를 맡겼는데 약 한 병이 뭐라고?"여보! 우리 뭐 좀 의논하자!"이 말에 강한서는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다. 지난번에 유현진이 이런 말투로 시작해서 그에게 요구한 것은 신혼집을 가지겠다는 거였다.강한서는 입술을 깨물고 약을 다 바른 유현진의 다리를 훅 던지면서 냉담하게 한마디 했다. "의논할 거 없어!"유현진이 입술을 떨면서 말했다."내가 뭘 말할지 알고?"강한서가 유현진을 한번 훑어보더니 말했다."좋은 일이면 당신이 나랑 의논할 리 없잖아?"유현진이 켕기는지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그건 또 무슨 말이야? 좋은 일이니까 여보랑 의논하는 거지."강한서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면봉을 버리고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그러자
유현진이 홧김에 말했다."안되면 성우 씨나 강운 씨를 찾아가서 빌릴거야. 그 두 사람한테 이자를 20퍼센트를 주면 되지뭐. 적어도 당신같은 흡혈귀한테 빨리는 것보다는 나아."강한서가 멈칫하더니 실눈을 위협적으로 뜨면서 말했다."그러기만 해봐!""왜? 난 그럴 건데!"유현진은 말하면서 휴대폰을 들고 번호를 누르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강한서가 어두운 표정으로 휴대폰을 뺏기 시작했다.두 사람이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에서 유현진이 침대에 부딪혀 넘어지면서 무의식적으로 강한서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강한서도 균형을 잃으면서 두 사람은 함께 침대 위에 넘어졌다.이때 마침 신미정이 정인월을 부축하여 방으로 돌아와 얼굴을 붉히고 침대에 누워있는 유현진과, 눈을 붉히고 유현진의 몸 위에 엎드려 있는 강한서를 보았다.정인월이 입을 열기도 전에 신미정이 큰소리로 두 사람을 혼냈다."너희 두 사람 지금 뭐하는 거야?"이 소리에 깜짝 놀란 유현진은 바로 강한서를 밀치고 옷차림을 정리하면서 일어나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정인월을 불렀다."할머니."강한서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느릿느릿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넥타이를 바로잡고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팔순잔치를 준비하는 일이 물건너가고 나서 유현진에게 원한이 가득 맺힌 신미정은 눈앞의 장면이 눈꼴사나웠다."현진아, 시집 온 지 이젠 여러 해가 됐는데 여태 이리 철없으면 어떡하니. 이게 어디라고 함부로 이렇게 노닥거리는 거야? 남들 입방아에 오르면 어쩔려고? 너희 부모님께서 이렇게 가르쳤어?"안색이 어두워진 유현진은 입술을 깨물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강한서가 눈썹을 찌푸리면서 말했다."엄마가 남한테 말하지 않으면 남들이 어떻게 알아?"신미정은 안색이 어두워지더니 화난 어투로 말했다."한서야 그 말은 또 무슨 뜻이야? 내가 이젠 현진이한테 말도 못해?"강한서가 대꾸하기 전에 정인월이 입을 열었다."한서 말도 일리가 있다. 이 자리에 우리밖에 없는데 남들이 어떻게 알아?"그러고는 두 사람한
강민서는 깜짝 놀랐다.그는 신미정이 이렇게 화내는 걸 처음 봤다. 그래서 한참이나 아무말도 못하고 멍해있다가 더듬거렸다."난, 난 그저 둘째 삼촌이 우리한테 잘해준다고 생각해서."신미정은 그제야 자신이 지나치게 반응한 것을 깨닫고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고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했다."이 세상에 아무 이유 없이 너한테 잘해줄 사람은 없어. 머리를 좀 써."강민서는 여전히 둘째 삼촌이 자신한테서 잘해줘서 얻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는 늘 삼촌네 가정을 적수 대하듯 한다. 물론 이런 생각을 대놓고 표현할 수는 없었다. 둘째 삼촌 내외에 대한 신미정의 태도가 워낙 완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민서는 둘째 삼촌네 가정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둘째 삼촌은 출장 다녀올 때마다 그와 그의 오빠 강한서에게 강현우와 똑같은 선물을 해줬다.어려서 아빠를 여읜 강민서에게 있어서 강단해는 아빠 역할이었다. 그래서 그는 본능적으로 강단해와 사이가 가까웠다. 하지만 신미정은 이에 대해 큰 반감을 표했다.강민서는 감히 신미정에게 대꾸할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고분고분 응했다."알겠어요."차 안의 분위기가 조금 완화되자 신미정이 말했다."나중에 오빠한테 다녀와. 저 약들을 유현진한테 갖다줘."그러자 강민서가 눈썹을 찌푸리면서 거절했다."싫어요. 안 갈래요. 할머니가 지금도 유현진을 예뻐하는데 거기에 오빠 애까지 가지면 아주 난리가 날 텐데, 그 꼴을 내가 어떻게 봐요. 평생 임신하지 못했으면 좋겠어요. ""다녀오라고 하면 다녀와. 강운이와의 혼사를 할머니께 말씀드리게 하겠으면 말이야."그러자 강민서의 눈에서 빛이 반짝거렸다."할머니께 말씀드렸어요?""잠깐 말씀드렸는데, 주씨 가족이 원하면 할머니는 다른 의견이 없다고 하셨어.""강운 오빠 어머니는 절 좋아하실 게 분명해요. 어렸을 때부터 저를 엄청 예뻐하셨어요."이 부분에 대해서 그는 자신 있었다. 주강운을 좋아한 지 오래됐기에 주강운의 어머니에게 잘 보이기 위해 엄청 노력했다.
"형님이랑 친한 사이가 아니면 나 진 여사랑 약속도 잡지 않았어."송민희가 차에서 내리자 차 안은 많이 조용해졌다.강단해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엄숙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누구도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그렇게 한참 지나서야 강단해가 입을 열었다."너 유 부시장 따님과는 어떻게 됐어?"강단해의 목소리는 워낙에 톤이 높고 울림이 강해서 자연스레 위엄이 느껴지는 데다가 표정도 사뭇 엄숙했다.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하지만 강열한 눈빛에서 젊은 시절의 풍채를 느낄 수 있었다.그런 강단해 앞에서 강현우는 자연스레 허리를 펴고 자세를 바로잡았다."그런 여자는 도전할 멋도 없어요. 그저 몇 마디만 하면 바로 넘어와요. 그런데 더이상 만나지 않으려고요. 유 부시장이 옛 사건에 연류되어 올해 안으로 부시장 자리에서 물러난대요."더이상 진급할 가능성이 없다는 건 더이상의 가치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혼사는 당연히 없던 일로 하는 것이 맞다.강단해가 미간을 찌푸리면서 물었다."그 정보 믿을 만해?""유 부시장 딸이 말한 거예요. 틀림 없어요. 반년 동안 아까운 시간만 낭비했어요."강단해는 여전히 엄숙한 표정으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한성그룹에서 강한서의 입지는 만만치가 않았다. 강단해 스스로가 맞서기에는 역부족이라 그는 강현우의 혼사에 신경을 썼다.실력이 막강한 사돈이 있다면 그에게 엄청난 도움을 줄 수 있으니까.만약 유 부시장이 자리에서 물러난다면 그 혼사는 치를 필요가 없다.그런데 다시 사돈을 맺을 상대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주에 돈 많은 부자는 많지만, 자금력을 탄탄한 세가는 적다. "아빠, 송병천이 돌아왔다고 들었는데, 지난번 자선 이브닝 파티에서 그 집 작은 딸이 병이 발작하여 요즘 집에서 몸을 추스리고 있다고 해요. 엄마가 송병천과는 먼 친척 관계잖아요. 그럼 우리도 문병을 가야 되는 거 아니에요?"강단해가 눈을 치켜뜨면서 말했다."송가람은 송병천의 친딸이 아니야."그러자 강현우가 가볍게 웃
증조할아버지는 왠지 강민서가 낯익었다. 좀 생각해보자 며칠 전에 사진첩에서 본 기억이 떠올랐다."왠지 낯익다 했더니 아가씨 그 놈 여동생이지? 다 한식구네. 마침 잘왔어. 오늘 내가 야채를 많이 캤는데, 점심에 야채전을 만들어 줄게."증조할아버지는 워낙 시골 사람이라 소박하고 마음이 너그럽다. 구십이 다 되는 나이에 젊은이 따지고 싶지 않았고, 강한서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알자 상대방이 바로 친근하게 느껴졌다.강민서가 피식 웃더니 말했다."누가 당신이랑 한식구래? 유현진은 우리 집에서 자선사업이라도 하는 줄 아나? 평소에 쥐새끼 마냥 친정집에 돈을 보내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아예 사람을 집안에 들여? 당신들은 염치라는 게 없어?"이 말에 증조할아버지의 얼굴이 바로 굳었다. 그는 손에 쥐었던 호미를 버리고 강민서를 향해 손가락질하면서 말했다."젊은이가 무슨 말을 그렇게 고약하게 해.""유씨 집안에서 하는 건 괜찮고 말하는 건 안되나? 늙은이가 아직도 도둑놈 심보를 버리지 못하고 말이야. 이렇게 고급 저택에 살아보니까 시골 그 낡아빠진 집과는 비교할 수 없지? 버러지들 같으니라고."증조할아버지는 화가 치밀어서 손이 막 떨리고 목소리도 떨렸다."너 말을 똑바로 해. 시골 사람들이 어때서? 뭐 버러지? 우리의 노력으로 부지런히 경작을 해서 생계를 유지하는데 왜 버러지야. 그리고 너희들 먹는 거, 입는 거 어느 하나 농삿일을 거치지 않은 거 있어? 젊은 친구가 왜 이렇게 야박해!""내가 틀린 말 했어? 당신 스스로 봐봐. 유씨네 가족들 다 버러지만도 못한 인간들이야. 엄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약을 가져다 주라고 한 거야? 유현진이 임신하지 말아야지. 임신해서 뱃속의 아이가 당신들 같이 버러지 같으면 어떡할라고."강민서는 말하면서 박스를 들고 집 안으로 걸어갔다.증조할아버지가 화가 난 나머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강민서의 손목을 잡더니 소리쳤다."나가! 당장 나가! 그 물건 가지고 당장 여기서 나가!"증조할아버지가 힘써 강민서의 손목을 잡아당
강한서가 멍해지다가 눈길이 어두워지더니 한마디 했다."이 일은 내가 처리할게.""어떻게?"유현진은 사뭇 담담한 어투로 물었다."만약 증조할아버지가 수술실에서 무사히 나오지 못하면 당신 강민서를 감옥에 보낼 수 있어?"강한서는 눈썹을 찌프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유현진이 맥 빠진 표정으로 물었다."못하겠지! 그럼 당신은 뭘 어떻게 처리해서 누구한테 보여줄 건데?"강한서지 지금 막 입을 열려는데 수술실 등이 꺼졌다. 의사가 수술실에서 나오면서 말했다."환자는 이미 위험에서 벗어났어요. 환자가 뇌전증 병력이 있는 데다가 연세도 이렇게 많은데 옆에 사람이 없으면 어떡해요? 제때에 병원으로 이송해서 다행이지 아니면 엄청 위험했을 거예요."유현진은 비로소 한시름을 놓았다. 의사의 잔소리가 끝나자 유현진이 인사를 했다. "제가 너무 방심을 했어요. 감사합니다. 의사선생님!"의사는 손짓하면서 말했다."아니에요. 조금 있다가 일반 병실로 옮길 테니 그때 가보면 될 거예요." 의사가 떠나고 나서 유현지은 강한서와 더이상 말하지 않고 유상수에게 알리려고 전화를 했다. 유현진의 힘이 빠진 뒷모습을 보자 강한서는 마음이 아팠다. 그는 바로 휴대폰을 들고 강민서의 번호를 눌렀다.예상대로 강민서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그는 다시 집으로 전화했다. 이번에는 도우미 아줌마가 받았다."도련님, 사모님은 친구 만나러 나갔어요."강한서가 차갑게 한마디 했다."강민서를 바꿔요."강한서는 화가 엄청 났을 때에만 성을 붙여서 강민서를 불렀다.도우미 아줌마는 고개를 돌려 강민서를 쳐다봤다. 강민서는 애써 손짓했다."그, 아가씨는 지금 집에 없어요. 아침 일찍 친구랑 나갔어요."눈을 치켜뜨던 강한서는 다시 한번 말했다."전화 받으라고 하세요."도우미 아줌마가 답했다."아가씨는 지금 진짜 집에 없어요......"강한서가 굳은 표정으로 다시 한번 말했다."마직막으로 말할게요. 당장 전화 받으라고 하세요."상대방쪽에서 소음이 들리더니 전화가 끊겼다
점점 더 굳어지는 강한서의 얼굴에 신미정이 다급히 호통치며 말했다. "너 그 입 닥치지 못해!"그러고는 머리를 돌려 강한서에게 말했다. "한서야. 나도 얘기 들었어. 이번에 민서가 심했어. 아까 돌아오는 길에 사돈한테 연락했더니 병원에서 뇌전증이라고 연락이 왔었대. 이미 좋아졌고 이 일은 사고야. 민서도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민서도 많이 놀랐어."뇌전증이라는 말에 강민서는 또다시 큰소리로 떠들어대며 말했다.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나 별로 힘도 안 썼거든. 그리고 날 잡지 않았다면 내가 밀었겠어? 마침 뇌전증이 발작한 거 가지고, 재수 없게! 죽지 않았으니 말이지 죽기라도 해봐. 누가 내 말 믿어줬겠어!"강한서는 표정이 일그러졌다. "강민서, 너 혹시 목격자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강민서는 흠칫하면서도 계속 뻔뻔스럽게 말했다. "내가 뭐 어쨌는데. 난 그냥 약 가져다주려고 한 것뿐이야. 못 들어가게 하니까 내가 살짝 민 거 가지고."사고 당시 강한서와 유현진은 다 집에 없었고 도우미도 사고가 발생한 뒤에야 나왔으니 강민서는 끝까지 아니라고 잡아뗐다.강민서가 여전히 뻔뻔하게 굴자 강한서는 민경하에게 휴대폰으로 사건 당시 영상을 켜라고 했다. 민경하는 음량을 제일 높게 조절했다."한 집안사람이라… 그쪽 집안은 원래 이렇게 뻔뻔스러워요?""큰 집에서 지내는 게 시골의 개집 같은 곳보다는 편하죠?""다행히 임신 안 해서 그렇지. 만약 임신이라도 했어봐, 유씨 집안 사람들처럼 못나고 역겨울걸요."강민서의 한마디 한마디에 강한서는 표정이 점점 더 굳어졌다.강민서는 자기가 한 말이 전부 감시카메라에 그대로 찍혔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강한서는 쌀쌀한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선택해. 지금 당장 나와 함께 병원으로 가서 용서해 달라고 싹싹 빌던가, 아니면 영상 경찰에 넘겨서 고의 상해죄로 감방 가던가. 우리 집안에서 아무도 널 상관하지 못한다면 다른 곳에 넘기는 수밖에!"강민서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서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 "오
"이 연세에 이렇게 다치시면 얼마나 위험한데요.""그런데 강씨 가문 사람들은 하나도 안 보이네요. 그 집에서 사고가 났는데 왜 코빼기도 안 보인대요?"사람들은 너도나도 한마디 하며 유현진이 어르신을 잘 보살피지 못했다고 비난하고 있는 것 같았다.유현진은 머리를 푹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시끄러워 죽겠어!"어르신은 그들이 가증스러운 관심에 눈살을 찌푸리며 호통쳤다. "다들 썩 나가!"모두 순식간에 입을 꾹 다물었다.이내 하나둘 병실을 나가기 시작했다.유현진도 병실을 나가려는 순간, 어르신이 그녀를 불러세웠다. "현진아, 나 물 한 잔 다오."유현진은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친척들은 그 모습에 서로 눈길을 주고받더니 입술을 오므리며 병실 문을 닫았다.유현진은 물에 빨대를 꽂아 어르신의 입가에 가져갔다. 어르신은 힘겹게 물 두 모금을 마시고 침대에 도로 누웠다.그러고는 이불을 툭툭 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로 와서 앉아."유현진은 컵을 내려놓고 어르신 옆에 앉았다."강한서 이놈은?"어르신이 살며시 물었다.유현진은 머리를 푹 숙이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아까만 해도 있었는데 급한 일 있는지 자리 비웠어요."어르신은 입술을 오므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현진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해요."어르신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가 왜 미안해. 네 잘못도 아닌데."유현진은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집에 있었더라면 그런 일은 없었을 거예요.""아니야. 내가 욱해서 그래. 다 늙어서 어린애랑 싸워 보겠다고. 말하게 내버려 뒀으면 됐을걸."어르신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사실 사돈들과 한번 만났으면 싶었어.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하기도 해서 말이야.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만났네." 어르신은 유현진의 손등을 토닥이며 계속 말했다. "내가 미리 생각했어야 했는데."유현진은 의아했다. 이내 어르신은 자주 입는 옷 주머니에서 통장 하나를 꺼내 유현진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