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요?”한현진은 멈칫하고 말았다.이때 송민준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2주나 지났는데 이제 와서 수습해? 물에 빠졌다가 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 아님 머리에 든 것이 없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거잖아. 머리가 정상이면 이런 짓을 했겠어?”한현진과 강한서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비록 욕이 담기지는 않았지만 그야말로 듣기 거북했다.한현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오빠. 어떻게 강한서가 가져간 걸 알게 된 거에요?”송민준이 콧방귀를 뀌었다.“내가 뒷수습해 줬는데 모를 리가. 내가 먼저 사진첩을 봤기 다행이지 아버지가 먼저 보셨으면 바로 경찰에 신고했을 거야.”송민준의 말을 들어보면 그날 집을 떠나자마자 사진이 한 장 모자라다는 걸 발견하고 몇 장 더 뽑아서 도우미 아줌마한테 회사에 두겠다고 송병천한테 전해달라고 했다.보물처럼 여기던 사진이 없어졌는데도 묻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한현진이 강한서에게 술을 먹여 속마음을 떠보고 있을 때, 송민준은 이미 사진 한 장으로 강한서가 기억 상실한 척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뒷수습까지 해준 것이다.똑같은 배에서 나왔는데 유전자가 이렇게 우월할 수가 없었다.한현진은 송민준이 강한서한테 뭐라 하는 것이 듣기 싫었는지 편을 들어주기 시작했다.“그날은 취해서 머리가 늦게 돌아가서 그런 걸 거예요. 오빠도 참. 진작에 발견했으면서 왜 말하지 않았어요?”“그래?”송민준이 서서히 말했다.“난 너희 둘만의 흥취인 줄 알았지. 머리에 물이 들어가서 기억이 상실된 전남편과 그런 남편을 버리지 않는 임산부와의 이야기랄까... 한서 씨가 도망가면 네가 쫓으러 다니고. 그야말로 천생연분 아니냐고.”송민준의 비아냥거림의 상대가 되고 만 한현진은 할 말을 잃었다.“오빠. 좋은 소식 하나 알려드릴게요.”송민준이 진지하게 말했다.“아이가 너의 성을 따르기로 했어? 이것 빼곤 좋은 소식이 없을 것 같은데.”송민준은 옆에 강한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이러는 것 같았다.하지만 곧 아이 아빠가 될 강한서
한현진이 목을 축이더니 말했다.“오빠. 내년 설에 돈 봉투를 두 개나 준비해야겠어요.”아무런 반응 없던 송민준은 한참 후 이를 꽉 깨물면서 말했다.“이런 젠장! 글쎄 왜 마음이 넓어졌다 했어! 우리 동생을 고생시키니까 좋아? 정말 대단하네.”강한서가 진지하게 말했다.“저는 차라리 고생하는 사람이 저였으면 좋겠어요.”“입만 번지르르해서. 능력 있으면 자기도 임신해 보든가!”할 말을 잃은 강한서는 계속 대화를 이어가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한현진이 배를 끌어안고 웃으면서 말했다.“아직 젊을 때 과학기술이 좋아지면 셋째는 여보가 낳아.”강한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강한서에게 이런 장난을 쳐도 한 소리를 듣지 않는 사람은 한현진뿐이었다.“쌍둥이라...”혼자서 중얼거리던 송민준은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내가 아버지한테 말할까 아니면 너희가 직접 말할래?”“나중에요... 한서가 기억 상실된 것부터 해결하고요. 오래 걸리진 않을거예요.”“내가 뭐 도와줄 거 있어?”“아직요. 아, 맞다. 오빠. 저번에 조사해달라고 했던 도일준이라는 사람, 신상 파악되셨어요?”강한서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에 귀를 쫑긋 세웠다.송민준이 말했다.“응. 확인해 봤는데 아줌마랑 아무런 연관 없는 것 같더라고.”한현진이 급히 물었다.“어떤 걸 확인했는데요?”“도일준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 M 국 사람이더라고. 할아버지 때 M 국에 이민을가셨고 본명은 이헌이었어. 부모님이 전부 다 의사 선생님이셨고 본인도 의학전공이더라고. 30년 전쯤인가 아버지가 한주시에 3년 반 동안 학술교류를 오면서 이름을 도일준이라고 개명한 거야. 국내에 있었던 그 3년 반을 조사해 보려고 했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 증거가 없더라고. 그때 자주 사용했던 주소는 아줌마랑 같은 동네가 아니라 아무런 접점도 없었어. 이 도일준이라는 사람도 많이 불행했더라고. 20년 전 집에 가스가 폭발해 와이프는 임신한 채로 사망했고 그 사람도 그때 이후로 사고 후유증으로 수술칼을
송민준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아줌마랑 아는 사이고. 지금까지 계속 연락을 해왔던 가능성은 없을까?”한현진이 고개를 흔들었다.“엄마가 사고 난 뒤로 핸드폰은 계속 제가 가지고 있었는데 만약 평소에 연락을 주고받았던 사이였다면 제가 모를 리가 없죠.”한현진은 어딘가 불안한지 머리를 잡아 뜯었다.“그때 아이를 바꿔치기한 사실을 아는 사람이 아닐까 의심되었는데 제가 생각했던 거랑 전혀 다르잖아요. 그때 그 일이 발생했을 때 국내에 있지도 않았는데 이 사실에 대해 알고 있을 리도 없고...”송민준은 두 집안의 아이가 바꿔치기 당한 사건을 계속 조사하고 있었다. 전에는 M 국으로 가면서 사고를 당할뻔하기도 했다. 한현진이 너무 급하게 이 사건을 밝혀내려다 보니 너무 예민하지 않았나 싶다.송민준은 한현진이 이 방면으로 생각하고 있을 줄 몰랐다. 그때 이 사실을 알고있는 사람 중에 죽거나 실종된 사람이 많았다. M 국에 갔을 때 간호사가 언급했던 남자 빼고는 수술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정보는 전부 다 가지고 있었다.‘설마 이 사람이 바로 은혜 씨가 언급했던 사람인가? 그런데 시간이 안 맞잖아. 가정형편도 좋고 이들과 아무런 연관 없는 외국인이 이런 일을 할 이유도 없잖아.’한현진과 송민준은 아무 말 없이 심각한 표정으로 있었다.이때 옆에서 듣고 있던 강한서가 입을 열었다.“일단 급히 결론부터 내리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어차피 한주시에 있는데 사람을 붙이면 되죠. 만약 정말 그 사건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우리보다도 더 조급할 거예요.”강한서의 말에 한현진과 송민준은 깨닫는 것이 많았다. 도일준이 한주시에 온 것도 이미 30년 전의 일이었다. 한주시에 온 시간과 한주시를 떠난 시간이 정확한 것 빼곤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 사건과 연관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진범의 움직임을 보면 되었다.송민준이 말했다.“사람을 붙여 감시하도록 할게. 무슨 소식 있으면 바로 알려줄게.”이 화제가 끝나고, 송민준이 갑자기 물었다.“혼인 신고
“아직 혼인 신고도 안 했는데 생각 좀 하고 말하지?”강한서는 차마 대꾸하지도 못했다.강한서의 입을 가로막은 송민준은 기분이 상쾌해지는 느낌이었다.“현진아. 여자는 임신했을 때 상대방이 믿음직한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거야. 임신했다고 잡혀 살지 말고. 예물 받을 거 다 받아야 해. 한서 씨가 너를 섭섭하게 하는 일이 있으면 까짓거 혼인 신고 안 하면 돼. 조카들은 내가 키워줄게.”한현진은 송민준이 일부러 강한서에게 면박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강한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유씨 가문에 있을 때 아무리 가정형편이 천차만별이라고 해도 강씨 가문에서는 섭섭하게 대해준 적이 없었다. 지금은 더욱 그럴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번 결혼은 느낌이 달랐다. 처가 집에서 기를 살려주고 있기 때문이다.강한서는 아무리 불쾌해도 대꾸할 수가 없었다. 한현진은 그의 억울한 모습이 짠했는지 웃으면서 말했다.“오빠. 자기 자식은 자기가 알아서 키워야죠. 만약 조카들을 너무 예뻐해서 나중에 새언니가 질투하면 어떡해요?”“쯧. 난 한서 씨랑 달라서 와이프를 무서워하지 않아.”강한서가 콧방귀를 뀌었다.“너무 자신만만해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예요. 송씨 가문에서 와이프를 무서워하는 것이 유전이잖아요.”송민준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한참동안 웃고 있던 한현진이 갑자기 말했다.“오빠. 이상형이 어떻게 되세요? 회사에 괜찮은 여자분들이 많아요. 학력도 괜찮고 이쁘기도 하고 능력까지 있는데 아직 싱글인 사람이 서너 명이나 되는데. 나중에 한서한테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해서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는지...”말도 아직 안 끝났는데 송민준은 아예 전화를 끊어버렸다.한현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지금 오빠가 내 전화를 끊었어?”강한서는 전혀 놀랍지 않았다.“지금 소개팅에 예민하신가 봐.”“뭐? 소개팅에 예민한 사람도 있어?”강한서는 우물쭈물 예전에 한현진과 송민준이 남매사이인 것을 몰랐을 때 송민준이 한현진을 좋아하는 줄 알고 일부터
한현진은 움찔하고 말았다.“설마 임산부를 어떻게 해보려고?”이때 강한서가 혼인신고서를 흔들거리면서 피식 웃었다.“난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야.”한현진이 잠깐 침묵을 지키더니 고개를 들면서 말했다.“그럼 속전속결로 해.”그러면서 강한서를 침대에 눕히고 그 위에 올라타고는 그의 잠옷을 풀어 헤치기 시작했다.임신한 몸이라 큰 반응은 하지 못하고 그녀의 허리를 잡고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물었다.“뭐 하는 거야?”한현진이 터프하게 내려다보면서 말했다.“가만히 있어.”할 말을 잃은 강한서는 그녀의 엉덩이를 툭툭 치면서 말했다.“그만하고 내려와.”“강한서. 어릴 적에 ‘대한 천자’라는 드라마를 본 적 있어?”‘응? 지금 이 자세로 드라마 이야기를 한다고?’별로 드라마를 보지 않는 강한서였지만 워낙 유명한 드라마라 알고있는 듯했다.“들어봤어. 왜?”한현진이 말했다.“유철이 수옥에 갇혔을 때 드라마 속 다른 인물한테 성욕을 해결해달라고 했거든.”강한서는 여전히 어리둥절했다.“등급제가 심했던 옛날에 임금이 충분히 시킬 수 있는 일이었지. 그런데 그 사람은 워낙 물속에 오래 있어서 해결해 줄 수가 없었어.”강한서가 멈칫하고 말았다.“죽은 거야?”“죽은 게 아니라 도와줄 수가 없었어. 물속에 너무 오래 있어서 자기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거지.”그러면서 걱정스럽게 물었다.“여보도 물에 꽤 오래 잠겨있었는데 그 기능이 괜찮은지 확인해 봤어?”강한서는 할 말을 잃었다.‘열심히 들었더니 지금 나의 성 기능을 의심하는 건가?’강한서는 어처구니가 없어 피식 웃고 말았다. 하지만 얼굴은 유난히 평온했다.“아직 확인해 본 적 없는 것 같은데? 건강을 회복하고 나서 그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지.”한현진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그래서 그동안 옆에 누워있어도 꿈쩍하지 않았구나.’강한서는 한현진의 눈빛이 의심에서 동정, 그리고 안타까움에서 확신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았다.“별다른 생각하지 말고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보자고. 아마도 약을
“누가 좋아한다고 그래! 여보가 먼저 첫날밤이라면서 날 놀려줬잖아!”“놀려준 적 없는데?”강한서가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첫날밤 그냥 지나가서 내내 아쉬웠단 말이야.”“나도 아쉽긴 했어.”한현진이 말했다.“내 친구가 결혼했는데 첫날밤 내내 축의금을 세어봤다잖아. 그러면 얼마인 거야? 우리가 결혼했을 때는 내가 도련님이랑 싸우고 화도 삭일 겸 축의금을 세어보면서 기분 좀 풀어보려고 했는데 어머님이 전부 다 가져가서 세어보지도 못했잖아.”강한서는 할 말이 없었다.“그러면 민 실장님한테 현금 한 박스를 가져오라고 해서 세어볼래?”‘돈을 세어 보고 싶은 건가?’“내가 돈을 세어 보고 싶은 거로 보여?”한현진이 째려보면서 말했다.“난 신혼 첫날밤 남편이 없어서 심심했단 말이야.”“내 잘못이야.”“알면 됐어.”한현진이 화제를 돌리면서 물었다.“그래서 은서는 누구 아인데?”갑작스러운 화제전환에 강한서는 할 말을 잃었다.그는 시간을 확인해 보더니 말했다.“시간도 늦었는데 얼른 씻고 자. 의사 선생님께서도 임산부는 날새면 안 된다고 했잖아. 무조건 잘 자야 해.”한현진이 그를 발로 차면서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여보 딸도 아닌데 왜 말 못 해?”강한서는 머리가 지끈거렸다.“내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 하면 안 될까? 은서는... 아직 사건이 종결된 것도 아니라서 말 못 해.”‘사건?’더 질문하려고 했을 때,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대표님, 사모님 우유 덥혀왔어요.”강한서는 한현진더러 조용히 하라고는 잠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가 우유를 받아왔다.한현진이 자리를 내어주면서 말했다.“올라와서 계속해.”“뭘?”강한서가 우유를 건네주었다.“난 머리가 아파서. 우유 다 마시고 씻어. 난 먼저 잘게.”그러더니 정말 이불 덮고 잘 준비를 하는 것이다.화가 치밀어오른 한현진은 우유를 협탁에 올려놓고는 강한서를 발로 걷어찼다.“이럴 거야? 내일 당장 이혼하고 싶어?”강한서는 바로 뒤돌아 누워 한현진을 품에 안았다.“현진아. 사
안부 한마디에 송가람은 마음이 뒤숭숭해지기 시작했다.그녀는 얼굴이 발그레해진 채 답장을 보냈다.[오빠, 난 괜찮아. 어제는 오빠가 날 집까지 데려다준 거야?]강한서는 지금 씻고 있었고 한현진은 그의 정장을 다려주고 있었다.마치 처음 결혼식을 올리는 것처럼 설레기만 했다. 옷장에서 와인색 정장을 꺼내 굳이 이 정장을 입겠다는 것이다.분명 자기 입으로 나중에 혼인 신고를 마쳤다는 사실을 공개하겠다고 하더니 다른 사람이 오해하든 말든 눈에 띄려고 환장한 모양이다.두 번째로 다림질할 때, 강한서의 핸드폰이 울리길래 다리미를 내려놓고 침대에 앉아 답장을 보내기 시작했다.얼마 후 송가람은 바로 답장받게 되었다.[아니. 아줌마가 널 데리러 왔어. 어젯밤은 미안했어. 아줌마 말이 맞아. 내가 널 말렸어야 했어. 여자를 혼자 밖에서 술을 마시게 해서는 안 되었어.]송가람은 멈칫하더니 미간을 찌푸린 채 답장을 보냈다.[한서 오빠, 엄마가 뭐라고 한 거야?][별거 아니야. 나도 이제는 다 회복했는데 최대한 너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다급해진 송가람은 무조건 서해금이 강한서한테 무슨 말을 했다고 생각했다.바로 강한서에게 전화했지만 받는 사람이 없었다.한현진은 무조건 받지 않을 사람이었고, 강한서가 받게 내버려 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저 송가람이 애가 타게 놔두고 싶었다.송가람은 강한서의 일이라면 앞뒤를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서해금은 아니었다.서해금은 워낙 냉정해서 자식에 대한 사랑이 애틋하다는 이유로 그러는 꼴을 지켜볼 사람이 아니었다. 서해금과 백혜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백혜주는 모든 일을 남자한테 의지하는 사람이라 관계가 끝나면 남는 것이 없었다.하지만 서해금은 사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어 나중에 송병천과 이혼한다고 해도 여전히 자식들이 상류사회에서 생활하게 할 수 있었다.강씨 가문이 괜찮은 선택이긴 해도 강한서는 송가람에게 잡혀 살 남자가 아니었다. 서해금은 강한서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나서 사위 후보 중에서 영구 제명시켰다.전에 송
카톡을 한번 훑어보던 강한서는 한현진을 째려보며 말했다.“난 누구한테 이렇게 길게 문자를 보냈던 적이 없어. 들통날까 봐 두렵지도 않나 봐.”한현진은 뾰로통한 표정으로 말했다.“만약 한성우라면 의심하겠지만 송가람은 절대 그럴 리가 없어, 네가 지금 시 한 편을 써서 보낸다 해도 자기 노력이 빛을 본 거라고 생각할 뿐이야.”강한서는 못 믿겠다는 얼굴로 한현진을 쳐다봤다.한현진은 말을 이어 나갔다.“강한서, 너한테 물어볼게. 내가 만약 영화제에 참석해서 너한테 데려다 달라고 한다면 그건 왜일까?”강한서는 눈을 흘겨 뜨며 느릿느릿 대답했다.“나한테 너의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아니면 희열의 순간을 공유하고 싶어서, 아니면 나를 좋아하기 때문에.”“땡! 틀렸어. 왜냐하면, 네 차는 공짜니까.”강한서는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한현진은 결론을 내리듯이 말했다.“연애에 빠진 사람은 이성을 잃기 마련이지. 너 자신을 봐봐.”강한서...강한서는 인정하기 싫었지만, 한현진의 말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 연결이 안 되던 송가람이 카톡을 보내왔다.[오빠, 우리 엄마가 원래 이것저것 참견하기 좋아하셔. 그러니까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마. 나도 이젠 어른이야, 술을 마시고 취하던, 몇 시에 집에 들어가던, 그건 전부 내 자유야. 오빠 때문이 아니야.]강한서는 침묵을 지키며 서 있었다.턱을 괴고 있던 한현진은 송가람의 말투를 따라 하며 말했다.“오빠아 말 좀 해봐아”강한서는 휴대폰을 침대에 던지고 허리를 숙여 그녀를 가로 안아 올렸다.한현진은 목을 껴안으며 말했다 “오빠아 왜 거칠게 굴엉”강한서는 한현진을 째려보며 말했다.“말 똑바로 안 해?!”한현진은 그의 귀에 살며시 숨을 불어 넣으며 말했다.“그럼 어떤 목소리를 듣고 싶은데? 나 기술이 꽤 괜찮은데. 누구의 목소리도 다 모방할 수 있거든. 자극적인 목소리를 원해 아니면 소녀 같은 목소리를 원해? 아니면 당신 마음속의 누군가?”강한서는 품 안에 안겨 있는 매혹적이며
한현진은 반나절이 걸려서야 일의 자초지종을 파악할 수 있었다. ‘어쩐지 지난번 홍혜림 씨 사건이 있었을 때 왜 진윤 씨가 갑자기 나타나 상황을 반전시키나 했더니,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는 거잖아.’순간 한현진은 뻘쭘함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방금 전화를 받고 모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입도 벙긋하지 말았어야 했다. 진윤의 말처럼 이건 정말 비열한 짓이었다. 유치한 강한서가 벌일 만한 일이 맞긴 한 것 같았다. 강한서 본인 역시 이번 일은 너무 얍삽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어쩌다 아이를 달래주었다. “내가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탓이라고 해. [정상에서]에서 지금 자체 테스트 중인 스킨 한 세트 줄게. 어때?”진윤이 작게 울먹이며 말했다. “스킨 세 세트?“강한서는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와중에 딜을 하는 걸 보니 그리 큰 상처를 받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세 세트 전부 줄게.”진윤이 곧바로 울음을 멈췄다. 절판되어 더는 살 수 없는 게임 스킨과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한 여신 중 아무리 바보라도 그와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래요. 제가 오해한 거라고 하죠.”말하며 한현진을 쳐다보던 진윤은 여전히 아쉬워하며 말했다. “현진 누나, 왜 이렇게 빨리 결혼하셨어요. 남자 때문에 손에 넣었던 트로피도 놓칠 수가 있어요.”강한서의 눈가가 파르르 뛰었다. “결혼이 커리어 영향주지 않아. 이간질 하려고 하지 마.”“형님은 남자니까 당연히 영향을 안 받으시겠죠.”강한서에게 농락을 당한데다 하루아침에 구닥다리에게 여신을 뺐긴 진윤은 누구보다 빨리 흑화 했다. “결혼하면 아이도 낳아야 하잖아요. 어떤 유명한 감독이 임산부를 캐스팅하려고 하겠어요. 제일 예쁠 나이를 남편과 아이에게 바치면 나중에 아이가 클 때쯤엔 본인의 레전드 시절은 이미 지났다고요. 제가 다 아쉬워서 그래요. 너무 불공평해요.”비록 진윤은 그저 이간질을 하기 위해 꺼낸 말이었지만 그 말은 현실이기도 했다. 임신과 출산은 여자의 커리어엔 고난과 역경이
한현진: ?강한서가 들고 있던 휴대폰 너머로 들려온 것은 차미주의 목소리였다. “현진아! 너 내연녀가 되어버렸어. 게다가 그 상대가 네 사촌 동생이래.”강한서: ?강한서는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그보다 더 혼란스러웠다. ‘전여친, 현여친이 뭐야?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게다가 이 목소리, 왜 이렇게 귀에 익은 거지?’“저... 저기 혹시 전화 잘못 하신 거 아녜요?”한현진이 나지막이 물었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리고 곳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 현진 누나?”한현진이 멍해졌다. ‘날 알아?’“네. 제가 한현진이예요. 누구세요?”상대방은 말이 없었다. 그에게서는 그저 조금 흥분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강한서가 한현진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무슨 일이야?”진윤이 이를 악물었다. “방금 전화 받은 사람 누구예요!”강한서가 말했다. “내 와이프.”“그럴 리가 없어!”진윤이 바득 이를 갈았다. “이 사생팬 같은 아저씨가! 혹시 일부러 날 속이려고 옆에 성대모사하는 분이라고 모셔놓은 거 아녜요?”강한서가 태연하게 말했다. “내가 너처럼 유치한 인간인 줄 알아? 그리고 현진이는 아무도 대체할 수 없어.”진윤은 강한서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거짓말 좀 그만 해요. 현진 누나는 지금 그 티베탄 마스티프와 데이트하는 중이라고요. 만약 누나가 정말 형님 와이프라면 형님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누나가 딴 남자와 데이트하는 걸 지켜볼 수 있어요?”더 이상 진윤을 대꾸하기 귀찮았던 강한서가 그에게 영상통화를 보냈다. 몇뿐 후, 휴대폰 화면으로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여신과 딱 붙어 앉아있는 전남편 형님을 확인한 진윤은 순간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한현진은 휴대폰에 비춰진 진윤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진윤 씨가 강한서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인 거야?’진윤은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울어댔다. “거짓말쟁이! 뻔뻔한 인간! 전
유난히 예쁘게 잘 나온 사진을 보며 한 현지는 신난 얼굴로 고개를 돌려 강한서에게 보여 주었다. 하지만 멍청하게 나온 것 같다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강한서는 굳이 자신이 찍겠다면 휴대폰을 달라고 했다.한현진이 눈을 실룩거렸다. “네가 사진을 찍겠다고? 168cm인 나를 138cm로 만들어 버리는 네가? 강 대표님 본인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강한서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내 실력이 그렇게 별로야?”한현진이 말했다. “쌀을 뿌린 휴대폰을 닭이 부리로 쪼아도 내가 찍은 것 보단 낫다고 할 수 있어.”왠지 수치를 당한 것 같은 기분에 강한서가 이를 악 물면 말했다. “그럼 난 왜 우리가 데이트했을 때 내가 찍어준 사진을 밤새도록 보고 있었던 거야?”강한서가 괜히 그 얘기를 꺼낸 탓에 잊혀 가던 한현진의 기억이 문득 돌아왔다.“사진을 보면서 넌 그저 사진을 찍을 줄 모르는 것뿐이라고 날 설득 하지 않는다면 호텔 앞에서 바로 너와 싸우 버릴 것 같았거든. 내 외모에, 감독님께서도 나에게 각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씀 하셨는데 넌 대체 어떻게 날 사실 눈으로 찍을 수 있었던 거야?”강한서: ...“사시눈... 처럼 나왔어?”한현진이 일을 악물었다. “내가 뛰어다니는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하니까 유체 이탈한 것처럼 찍어줬잖아! 내가 피드를 업로드할 때 실수로 그 사진까지 넣었더니 애들이 나한테 대체 어디서 이런 심령사진을 찍었냐고 물었었어.”“...”활활 타오르던 강한서의 분노가 순식간에 사그라졌다. “어쩌다 가끔... 몇 십 장뿐이었잖아.”한현진이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터뜨렸다. “하.”뭔가를 말하려던 강한서가 고개를 숙이자 무릎 정도까지 오는 어린 아이가 옆에 쭈그려 앉아 불쌍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보였다. “아저씨, 아직 더 놀 거예요? 저희 잠깐 놀게 해주시면 안 돼요?”강한서가 고개를 돌리자 뒤에는 어린 라이 대여섯 명이 줄을 서 있었다. 한현진: ...창피함에 고개
“하하하.”한현진이 마른 웃음을 지었다.“오빠. 제가 티슈 없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강한서가 눈을 씰룩였다. 그야말로 완벽한 핑계였다. 그는 입술을 달싹여 아내를 따라 염치 없이 말했다. “형님, 저도 없어요.”송민준이 가방과 티슈를 두 사람에게 던지며 강한서를 노려보았다. 탁, 소리와 함께 문이 닫겼다. 한현진: ...“오빠가 나한테 화 난 건 아니겠지?”강한서가 우울하게 말했다. “너보단 날 먼저 걱정해야 할 것 같아. 네 오빠가 아무리 너에게 화가 나도 결국은 나에게 그 화살이 돌아올 거야.”한현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마음이 좀 놓이네.”강한서: ?한현진이 그의 손을 잡으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어차피 오빠가 널 탐탁지 않아 한게 하루 이틀도 아니잖아. 오늘 이 일로 크게 달라지진않을 거야.”“...”‘행복은 본인이 누리고 잘못은 내가 뒤집어쓰고. 정말 좋은 아내네.’강한서는 한현진을 데리고 호텔 라운지로 향했다. 입덧이 끝난 이후로 한현진의 식욕은 줄곧 안정적이었다. 매 끼니마다 많이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지만 배고픔도 빨리 찾아왔기에 하루에 몇 끼씩 먹어야 했다. 그 덕에 지금의 한현진은 송아지처럼 튼튼하기만 했다. 강한서는 임신한 한현진을 위해 오랫동안 공부했지만 한현진에게는 하나도 쓸모가 없었다. 그의 주변엔 임산부가 많이 없었지만 많은 아내들이 임신 후 남편을 괴롭힌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한현진에겐 모든 임신의 호르몬 변화가 거짓말처럼 전혀 작용하지 않았다. 의사는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큰 반응 없이 잘 먹고 잘 지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의사는 강한서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시간이 날 때마다 산책을 자주 다니며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면서 주기적으로 검사를 받으면 된다고 했다. 한현진은 정서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심지어 조금 유치해지기도 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한현진은 강한서의 팔을 끌며 굳이 아이들의 흔들 목마에게 타게 해달라며 떼를 썼다.
한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녕하세요, 채영 언니.”문채영이 가방에서 포장한 선물 박스를 건넸다. “첫 만남이라 어떤 선물을 준비하면 좋을지 몰라 제가 직접 향낭을 만들었어요. 향 맡아봐요.”한현진이 조금 의외라는 듯 말했다. “언니도 조향하세요?”문채영이 미소 지었다. “제가 조향에 입문하게 된 것도 민준이 덕분이었어요. 전엔 이런 거 만드는 거 좋아했었거든요.”한현진은 다시 한 번 충격에 휩싸였다. 그녀는 조향하는 송민준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줄곧 송민준은 그쪽으론 취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송민준은 그 얘기를 꺼내는 것이 불쾌한 듯 담담하게 말했다. “주문부터 해. 배고파.”멈칫하던 문채영이 시선을 내려 눈에 맴도는 서운함을 숨겼다. 한현진이 얼른 화제를 돌렸다. “언니, 오랜만에 오셨을 텐데 오늘은 한주 음식으로 드시는 게 어때요?”문채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요. 현진 씨가 먹고 싶은 거로 주문해요.”주문한 음식 서빙을 마치고 룸을 나서려는 종업원에게 송민준이 갑자기 말했다. “장어 국수도 주문할게요.”문채영이 힐끗 송민준을 쳐다보자 시선을 올린 그가 마치 변명이라도 하듯 말했다. “환영회에 국수가 빠질 수 없지.”‘그래, 환영회에 국수가 빠질 수 없다고 하는 건 그렇다고 쳐. 하지만 하고 많은 국수 중에 왜 하필 장어 국수야?’‘오빠가 장어 국수라고 말할 때 언니 표정을 보면 설마 두 사람 사이에 장어 국수와 관련된 스토리가 있었던 건가?’호기심이 활활 불타오른 한현진이 몰래 테이블 아래로 강한서의 손을 꼬집었다. 그러자 강한서는 그녀에게 새우를 발라 주었다. 한현진: ...강한서과 문채영은 너무 친한 사이였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한현진은 문채영의 외할머니와 강한서의 할머니가 먼 친척 사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워낙 촌수가 먼 사이라 피가 거의 섞이지 않은 가족이라고 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알고 지낸지 한참 후에야 두 가문이 몇 세대 전에는 친척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현진이 고개를 들자 옆에 서 있는 벤틀리가 보였다. 송민준이 운전석에 앉아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차창은 닫혀 있었으니 송민준은 당연히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강한서의 차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차를 세운지 한참이 지나도 두 사람이 모습을 보이지 않자 송민준은 강한서가 또 이상한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송민준의 목소리를 들은 강한서가 한현진의 손을 놓고 그녀의 옷을 정리하며 단정하게 자리에 앉았다. 민경하는 은연 중에 자신의 미래를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차에서 내린 송민준은 카키색의 캐주얼한 외투에 검정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머리는 평소 한열이 자주하던 헤어스타일과 비슷했고 선글라스를 콧등에 걸친 채 입술을 앙다물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넓은 어깨에 긴 다리의 그가 우뚝 서 있으니 카리스마와 매력이 흘러넘쳤다. 전엔 그가 한열과 닮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었는데 이런 차림에 선글라스까지 쓴 모습을 보니 만약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아마 그를 한열로 착각할 것도 같았다. 닮아도 너무 닮았다. 차에서 내린 한현진이 가방을 메고 송민준을 향해 걸어갔다. “오빠, 오늘 왜 이렇게 멋져요?”송민준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내가 언제 안 멋진 적이 있었어?”한현진이 눈웃음 지으며 말했다. “어떤 날이든 멋지긴 하죠. 그래서 언제 데뷔할 생각이요?”송민준이 한현진의 가방을 건네받으며 장난스레 말했다. “난 열이와 캐릭터가 너무 비슷해. 내가 데뷔하면 연예계에 걔 자리가 있긴 할 것 같아?”한현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송민준은 손을 들어 검지로 콧등에 걸린 선글라스를 아래로 내렸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 강한서가 있는 쪽을 바라봤다. “쟨 차에서 뭐하는 거야?”“업무 통화 중이예요.”송민준이 한현진의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한현진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가자. 우린 먼저 올라가는 게 좋겠어. 혼자 미적거리라고 해.”룸에 도착하자 송민준은 그제야 물었다. “너희 두 사람, 대체 무슨 중요한 얘기를 하려고 이렇
한현진이 장난기 가득한 말투로 말했다. 강한서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마음 약해질 줄 알았는데,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 봐.”한현진이 말했다. “처음엔 마음이 약해졌는데 조금 전 불쾌한 일이 있었거든.”한현진은 간단하게 주혁이 무릎 꿇은 일을 서술했다. “난 사실 그렇게까지 화가 난 건 아니었어. 하지만 꿇어앉아 있는 기사님 모습을 본 순간 화가 치밀더라고. 그렇게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러니까 날 강박하는 것 같았거든. 그래서 그 기회를 빌려 바로 전근시켰어.”한현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오는 길에 계속 마음이 불편했어. 내가 너무 극단적으로 처리한 건 아닌가 싶었거든. 기사님은 지금 아들에게 인공 달팽이관을 해줄 돈이 부족한 상황이거든. 전근하면 월급은 당연히 전보다 줄어들 텐데.”강한서가 한현진의 손등을 토닥였다.“인공 달팽이관은 보청기와 비슷한 거야. 생명과 직결된 문제도 아니니 돈이 부족하다고 해도 당장 급할 건 없어. 하지만 굳이 너를 속여 가며 부업을 하려고 했어. 난 그 부분이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아.”멈칫한 한현진이 나지막이 물었다. “기사님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야?”강한서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건 모르지.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무릎을 꿇고 자존심 따위는 쉽게 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원하는 건 자신의 존엄보다 훨씬 더 소중한 걸 거야. 전근이 제일 좋은 선택이었어. 네가 그 사람을 곁에 두는 건 내가 불안해.”강한서는 한현진의 손을 잡으며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 약해지지 마. 네가 마음 약해질 때마다 난 심장이 떨려.”“휴. 신세를 지기도 했고 기사님 집에는 장애인이 두 명이나 있잖아. 안타까워서 그러지. 내가 언제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약해지는거 봤어? 난 아주 독한 사람이라고.”강한서는 곧바로 태클을 걸었다. “강운이에겐 마음 약하게 굴었잖아.”지나간 이야기를 꺼내려는 강한서의 태도에 한현진이 얼른 입을 열었다. “그건 내가 불쌍해 보이는 주 변호사님 외모
한현진이 민경하를 살펴보았다. “그래 보이지는 않는데. 얼마 전 야근 때문에 피곤해서 그런 거 아냐? 신제품 발표회도 마무리 됐으니 이젠 좀 쉬게 해줘야지. 민 실장님이 쓰러지면 나중에 너만 고생할 거야.”강한서가 한현진에게 텀블러를 건넸다. “내가 부하 직원 생사도 나 몰라라 하는 그런 대표 같아? 민 실장이 쉬고 싶다고 하면 언제든지 휴가 줄 거야.”그 말에 민경하가 재빨리 대답했다. “괜찮아요, 사모님. 저 건강해요. 휴가 필요 없어요.”만약 평소였다면 휴가를 주겠다는 강한서의 말에 당연히 쉬겠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 전 그 상황을 겪고 나니 지금의 민경하는 감히 그럴 수가 없었다. 오늘 민경하가 강민서와 밤낚시를 약속했다는 것을 알게 된 강한서는 한현진과 통화할 때까지만 해도 그리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얼마나 갔을까, 강한서가 입을 열었다. “밤낚시... 몇 명이 가는 거예요?”민경하가 말했다. “밤낚시 모임이 있어요. 아마 20명 정도 있을 거예요. 다들 스케줄에 따라 다르겠지만 많을 땐 8명에서 10명 정도 모여요. 적을 땐 4, 5명이 만날 때도 있고요.”“그래요.”단답으로 대답한 강한서는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민경하에게 물었다. “밤새 낚시하면 피고하지 않아요?”민경하가 말했다. “텐트가 있어서 피곤하면 들어가서 쉬면 돼요.”강한서가 또 다시 “그래요”라며 단답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그가 또 물었다. “두 사람... 같은 텐트에서 자요?”“...”그 질문에 민경하는 바짝 긴장했다. 어쩐지 그 어떤 대답도 목숨을 걸기에 충분한 것 같았다. “4, 5명이면 텐트 2개를 사용해요. 피곤한 사람끼리 돌아가면서 쉬고요.”강한서는 더는 말이 없었다. 5분 후. “두 사람 같이 쉰 적 있어요?”“...”‘같이 잤냐고 묻는 일만 남았네.’민경하가 식은땀을 삐질 흘렸다. “누워서 얘기만 좀 나눴어요.”“그래요.”10분 후. “얘기만 조금 나눈게 전부예요?”민
남자는 들고 있던 담배를 다 태울 때까지 아무 말이 없었다. 서해금이 또 말을 이었다. “당신이 뿌리를 제대로 뽑지 못해 이렇게 큰 후환을 남기지만 않았다면 우리 가람이 처지도 지금처럼 어렵진 않았을 거야.”서해금이 말한 후환은 당연히 한현진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한현진 말이 나오자 남자의 얼굴이 저도 모르게 어두워졌다.그 여자 아이가 죽지 않았다는 일은 그 역시도 송씨 가문에서 한현진을 데려오기 얼마 전에야 알게 되었다.당시 그 여자가 품에 안아 보여주던 여자 아이는 애초부터 송씨 가문의 딸이 아니었다. 그 여자는 다른 곳에서 죽은 아이를 안아와 한아람의 딸이라고 그를 속였던 것이다.친딸이 태어나는 모습도 두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한 그는 곧 자신의 친딸에게 인생을 빼앗길 아이를 마주했다. 그 이루 말할 수 없는 죄책감에 그는 심지어 아이를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었다. 그는 그저 아이의 죽음을 확인하기만 하면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했다. 포섭당한 사람 중 누군가가 마음이 약해졌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말이다. 한현진이 죽지 않았으니 송씨 가문이나 한씨 가문에서는 기필코 당시 분만실에서 있었던 일을 밝히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 다행히 서해금은 일처리를 함에 있어서 화근을 남기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당시 그 일에 연루되어 있는 사람들은 이미 전부 죽거나 도망간 상태였기에 아무리 쥐 잡듯이 뒤져도 그 해의 진실은 알아내 수 없을 것이었다. “내가 뭐 도와줄까?”남자가 나지막이 물었다. “아니.”서해금이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한현진은 그렇게 멍청하지 않아. 쓸데없는 짓해서 괜한 의심 사지 마. 걔는 걔 엄마랑 똑같아. 의리가 치명적인 약점이거든. 잠깐만 조용히 지내.”잠시 멈칫하던 서해금이 말을 이었다. “앞으로 내 지시 없이 함부로 회사에 나타나지 마. 회사는 여기저기 보는 눈이 많아. 조그만 실수라도 있었다간 우리 가족 전부 끝장이라고.”우리 가족이라는 두 단어에 남자는 그만 멍해졌다. 그의 눈빛이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반짝였다. 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