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기사?”유현진이 눈 주변을 정성껏 마사지하며 물었다. 대본을 종일 봤기에 눈이 아팠다.“배우 Z씨가 출연하고 있는 모든 작품에서 퇴출당했대.”“누구?”“원래 네 배역을 맡기로 한 배우분 말이야. 그래도 좀 이름 있는 여자 연예인인데, 상도 꽤 많이 받고.”유현진이 차이현과 계약한 후, 차미주는 스태프 단톡방에 겨우 들어가 많은 소식들을 알아냈다.이번 유현진이 연기하기로 한 배역은 원래 배우 Z씨로 캐스팅되어 있었다.“왜 퇴출당했대?”“학폭 때문인 것 같아. 전에도 피해자가 몇 번이나 글을 올렸었는데 증거가 없었거든. 그런데 누가 글쎄 배우 Z씨가 10년 전에 게시판에 남긴 글을 찾아냈나 봐. 학폭에 가담했다는 증거라며 난리가 났대. 차 감독님은 진작 알고 계셔서 자른 걸 수도 있고.”‘어쩐지... 이렇게 중요한 배역을 계속 캐스팅 안 했다는 건 말도 안 되잖아. 나 그럼 계 탄 건가?’“너 진짜 다행인 줄 알아, 이 배역 노리는 사람 얼마나 많은데. 배우 Z씨가 퇴출당했다는 소식이 나오자마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차 감독님께 배우를 추천했겠어. 하지만 이미 그 배역이 너로 결정되었는걸. 그러니까 이 드라마 끝날 때까지 절대 다른 사람 눈에 띄어서는 안 되고. 또 무슨 일이 생길지 어떻게 알아. 정말 조심해야 해.”차미주가 괜한 걱정을 하는 게 아니다. 이 바닥에서는 워낙 흔한 일이기 때문이니.차이현도 염려하는 부분이 있어 주역 배우 오디션은 워낙 비밀스럽게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후 역을 맡기로 한 배우 Z씨는 약점을 잡혀 작품에서 퇴출당했다.10년 전 게시판에 남긴 글을 지금 찾아내다니, 우연이라고 하기엔 타이밍이 너무 신박했다.차이현이 유현진을 캐스팅한 건 물론 그녀의 연기가 마음에 든 것도 있었지만 Z씨를 폭로한 배후에게 일부러 도발하려는 것도 있었다.‘아무리 다른 사람을 밀어내 봤자 너는 뽑지 않을 거다’라는 의미가 담겨있었다.유현진이 이 배역을 따내게 된 건 정말 행운이 따르기도 했다. 신인인 데다가 이 바
하지만 유현진은 유상수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었다. 게다가 유현진은 한성우를 60억 넘게 벌어주고, 또 굴 한 박스까지 선물했으니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유상수 씨가 또 부경동 프로젝트에 투자한다면서, 돈은 어디서 그렇게 많이 났대?”유씨 집안의 재력 정도는 그들이 잘 알고 있었다.유현진이 강한서와 결혼하기 전, 유씨 집안은 운주시에서 겨우 삼류 기업에 지나치지 않았다. 그것도 모두 아내의 전략 덕분이었다.하지만 아내가 사고를 당한 후 유상수는 회사를 다루기 위해 많은 핵심 멤버를 내쫓았었다. 아무리 야망이 커도 워낙 능력이 없었으니 2년도 되지 않아 회사는 부도 위기에 빠졌다.자금도 없고 주문받은 물건은 만들어내지 못하니 유상수는 희망을 곧 졸업한 딸에게 걸었다.유씨 집안은 명문 집안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비즈니스계에 발을 들였다고 할 수 있었다. 유상수처럼 명예와 이득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파렴치한 짓도 할 수 있는 사람은 상업 파티나 연회의 단골이었다.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는 유현진을 데리고 종종 파티에 참석했다.유상수와 아내는 모두 외모가 평범했으나 딸인 유현진의 얼굴은 워낙 예뻤다.연예인 중에서도 예쁘게 생긴 여자들은 많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무리 연예인을 좋아해도 그들과 결혼을 할 건 아니었다.특히 상류사회에서는 결혼할 남녀의 집안이 엇비슷해야 했다. 그래야 서로에게서 이득을 얻을 수 있었으니.그리고 무엇보다 여자의 사생활이 깨끗하면 깨끗할수록 좋았다.유현진은 완벽한 며느릿감이었다.예쁘고 깔끔하게 생겼지, 젊기까지 해. 또 유상수의 독녀라 그녀와의 혼인을 성사하기 위해 유씨 집안이 닥친 어려움을 해결해 주려는 사람들도 수두룩했다.유상수는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상대가 자신보다 나이가 많아도 그는 마다하지 않았다.강한서가 차 한 모금을 마시며 덤덤하게 말했다.“회사 주식을 좀 판 것 같아. 부경동 프로젝트가 성사되면 최소 200억은 벌 수 있거든.”부경동의 프로젝트는 잠재적 가치가 높았다.유상수에게는 돈이
그때부터 한성우는 유현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강씨 집안의 재력으로 20억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유현진이 말도 안 하고 그 돈을 친정에 보냈으니 한성우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강한서가 그의 입을 막은 바람에 이 일은 알려지지 않았지, 아니면 정인월도 그렇게 그녀를 예뻐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최근 한 달 사이, 한성우는 유현진에 대한 인상이 많이 바뀌었다. 설마 전에 자신이 너무 불편한 시선으로 유현진을 바라본 게 아니었나 싶었다.유현진이 만약 정말 유상수의 편이라면 팔찌 일을 그에게 속이지 않았을 것이다.또 유현진이 만약 허영심에 찌든 사람이었다면 강한서와 이혼을 하는 게 아니라 그를 꽉 잡고 있었을 것이다.게다가 유현진은 ‘선셋 스타’ 이다.한성우가 오랫동안 좋아했던 사람이 그가 실생활에서 제일 미워하는 사람이라니.그래도 팬심에 콩깍지가 씌었는지 유현진이 ‘선셋 스타’ 인 걸 알고는 그녀가 마냥 밉지는 않았다.한성우가 강한서를 힐끔 보며 물었다.“설마 유상수 씨를 투자하게 한 건 현진 씨를 도우려고 그러는 거야?”강한서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아니야. 투자를 많이 할수록 내가 다루기 쉽거든.”한성우는 한숨을 내쉬었다.‘유상수 씨도 참 단순하셔. 강한서 돈을 벌기 그렇게 쉬운 줄 아나? 한서가 작정하면 모든 돈을 다 날려버리게 할 수도 있는데 말이야.’“참, 모레 강운이 고모가 여는 주얼리 전시회에 갈 거야? 현진 씨가 주얼리 좋아하지 않았나? 너 시간이 없으면 내가 같이 가줄 수도 있는데.”강한서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너 요즘 현진이 많이 찾는다?”한성우가 눈을 깜빡였다.“그래?”강한서가 덤덤하게 대답했다.“나 예전에 현진이 데리고 파티 가는 것도 너 안 좋아했었잖아.”한성우가 유현진을 싫어하는 티를 내지 않아도 눈치가 빠른 강한서를 속일 수는 없었다.하지만 한성우는 강한서에게 유현진이 ‘선셋 스타’인 사실을 알릴 수 없었다. 진실을 알았을 때의 그의 표정이 너무나도 궁금했기 때문이다.“그건 내
유현진은 어이가 없었다.그들의 대화를 들은 한성우는 웃음을 참고 있었다.‘얘 왜 이렇게 독설이야.’다행히 유현진은 바로 기분이 풀렸다. 서재로 찾아온 다른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내가 철이 없었어. 네가 나 때문에 다쳤는데 내가 널 잘 챙겨야지. 요즘 유머 모음집 보고 있는데 엄청 재밌거든. 한 번 들어볼래?”강한서는 돌변한 그녀의 태도에 의아했다. 유현진은 독설을 듣고도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도대체 뭐 하려는 거지?’강한서가 한참 그녀를 지켜보고는 말했다.“얘기해 봐.”그러고는 우유를 한 모금 마셨다.유현진은 뜸을 들이다가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어느 날, 엄마 파리가 아기 파리를 데리고 똥에서 식사하고 있었어. 아기 파리가 엄마한테 물었어. ‘엄마, 우리는 왜 똥을 먹어요?’, 엄마 파리는 잔뜩 화가 났어. ‘밥 먹을 때 그렇게 징그러운 얘기를 하면 어떡해!’”강한서는 어이가 없었다. 그는 차마 우유를 목구멍으로 넘기지 못했다.다른 한편, 그 얘기를 들은 한성우는 끝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유현진은 그제야 한성우도 듣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얼굴을 붉혔다.강한서는 겨우 우유를 넘기고는 미간을 구겼다.“네 수준답다.”“엄청 웃겨요.”한성우는 눈물을 흘릴 지경이었다.“형수님, 개그우먼 해도 되겠어요.”한성우는 빈말이 아니었다. 유현진은 성우를 해서 그런지 캐릭터에 따라 다른 목소리로 얘기를 이어갔는데 꽤 몰입감 있게 들렸다.유현진은 한성우가 자기를 놀리는 줄 알고 어색한 미소를 짓고는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한성우랑 영상통화하는 걸 알고 있었더라면 나 안 했을 텐데.’유현진이 서재를 떠나려던 그때, 강한서가 그녀를 힐끔 보더니 물었다.“다른 거 없어?”‘수준 떨어진다더니.’유현진이 대답했다.“있어, 그럼 수준 높은 거로 얘기해 줄게. 옛날 옛적에 큰 물고기와 작은 물고기가 있었어. 어느 날, 작은 물고기가 큰 물고기에게 물었어. ‘큰~ 물고기야~, 넌~ 어떤~ 음식을~ 좋아해?’, 큰 물고
“저는... 안 갈래요. 남편이 팔을 다쳤는데 집에서 잘 챙겨줘야죠.”유현진이 주저하며 말했다. 역시나 마음이 흔들린 모양이다.한성우가 말했다.“한서가 뭐 어린애도 아니고. 형수님이 안고 재워야 해요? 한서는 집에 두고 저랑 같이 가죠.”강한서는 입술을 씰룩거렸다. 당장이라도 한성우의 입을 막아버리고 싶었다.“그... 그럼... 나, 갔다 올까?”유현진이 조심스럽게 강한서에게 물었다.강한서가 그녀를 힐끔 보더니 말했다.“가고 싶으면 가. 왜 내 눈치를 봐?”“그래.”유현진이 또 한성우에게 물었다.“모레 몇 시 시작이죠?”“저녁 7, 8시쯤일 거예요. 야광주니 저녁이 되어야 그 아름다움이 보이겠죠. 그럼 그때 형수님 데리러 갈게요.”두 사람이 약속을 잡은 후 한성우는 영상통화를 끊었고 서재는 삽시에 조용해졌다.유현진은 아직 물어보고 싶은 말을 못 물어봤기에 서재에 남아있었다.하지만 강한서는 그녀가 걸리적거렸다.그는 유현진을 힐끔 보더니 덤덤한 얼굴로 물었다.“무슨 일 있어?”“아니야, 너 일 봐. 나 여기에 있을 테니까 필요하면 불러.”강한서가 싸늘한 말투로 말했다.“너 여기 있으면 나 일하는 데에 방해돼.”유현진은 겨우 화를 참으며 활짝 미소를 보였다.“의사 선생님이 그러셨는데 너 너무 피곤하게 일하면 안 된대. 대표님, 서재에 이렇게나 오래 있으셨는데 제가 어깨를 마사지해 줄게요.”강한서는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보며 물었다.“너 뭐 잘못 먹은 거 아니야?”유현진은 벌컥 역정을 냈다.“강한서, 네가 다쳐서 미안한 마음에 좀 잘해주려고 하니까 왜 시비야? 싫으면 말아.”강한서가 그녀를 지켜보더니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그럼 어젯밤에도 미안한 마음에 나 보상해 주려고 그런 거야?”유현진은 얼굴이 빨개졌다. 부끄러운 마음에 서재를 나서려고 했는데 강한서가 그녀의 팔을 잡고는 진지하게 말했다.“나 어깨 마사지해 준다며?”‘마사지는 무슨! 우유를 확 엎어버리고 싶네. 말을 어쩜 저렇게 해?’하지만 유현진은
유현진은 계속 강한서의 반응을 살폈다.하지만 강한서는 아무 관심이 없는 듯 덤덤하게 물었다.“왜 퇴출당했대?”‘뭐야? 모르고 있었어?’유현진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예전에 게시판에 남긴 글들을 네티즌들이 찾아냈나 봐. 학폭이라며 작품에서도 퇴출당하고 그랬어.”강한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누군가에게 밉보인 게 틀림없어. 아니면 누가 10년 전 게시판 글을 찾아봐?”강한서가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잘못을 했으니까 그렇게 목덜미를 잡힌 거 아니야.”“요새 새 드라마 촬영한다던데 그 배역을 누가 탐내서 이런 일을 벌였대. 배역 하나로 사람 연예계 퇴출시킨 건 좀 너무하지 않았어?”“자본주의는 다 이래. 예전에 그런 글을 남기지 않았으면 연예계 퇴출당하지도 않았을 거잖아.”강한서가 왼쪽을 가리키며 말했다.“힘 좀 더 줘봐.”‘입이 무겁긴.’유현진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그럼 송민영 씨도 이런 방법 자주 쓰지 않을까? 워낙 뒤 봐주는 사람 많아서 말이야.”강한서가 흠칫하더니 미간을 구겼다.“그게 무슨 말인데?”“아니, 그냥 해본 말이지. 송민영 씨가 전에 ‘정상에서’라는 작품에서 다른 성우분 배역을 뺏어갔잖아. 한때 엄청 화제 됐었는데, 이 일이랑 비슷하지 않아?”“어디가 비슷해?”강한서는 기분이 언짢았다.“그 성우를 궁지에 몰아넣은 것도 아니잖아.”유현진은 바로 그가 했던 말로 반박했다.“그 성우분은 잘못한 일이 없어서 목덜미 안 잡혔겠지.”“돈 받고 본인이 작품 안 하겠다고 했는지 어떻게 알아?”“내가... 내가 그런 얘기는 못 들었는데?”유현진은 하마터면 말이 빗나갈 뻔했다.‘돈을 받기는 무슨! 계약한다고 해놓고 갑자기 사람이 바뀌었다 그러면 어떡해. 보상은커녕 차비도 내 돈으로 냈는데 말이야.’강한서가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그럼 그 일을 인터넷에서 떠벌리고 다니겠어?”유현진은 분노가 끓어올랐다.“정말 돈을 받았으면 왜 인터넷에 그런 글을 올렸겠어?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렇게 안 하지.”강한서가
소파에는 이미 수많은 옷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그녀가 한쪽에 버려둔 옷들은 이미 입어보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옷들이었다.유현진은 평소에 옷차림이 보수적이라 원피스를 입을 때에도 종래로 목 아래를 노출한 적이 없었다.하지만, 오늘의 의상들은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녀는 거울 앞에서 몸을 한두 바퀴 돌려보더니 결국 다시 벗어버렸다.그녀는 하얀 피부에 허리는 잘록하고 선이 예뻤다. 다리도 길고 쭉 뻗어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몸매였다.강한서는 위층 난간에 기대 커피를 홀짝이며 아래층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했다.중도에 유현진은 차미주의 전화를 받는 것 같았다."나 지금 피팅중이야. 저녁에 주얼리 전시회가 있어." 그녀는 옷을 뒤지며 고민했다. "근데 입을 옷이 없네."강한서...'그러면 드레스 룸에 옷들은 다 쓰레기야?'"응, 그래. 내일 봐. 알겠어."통화를 끝낸 뒤, 그녀의 눈에 흰색 원피스가 들어왔다.강한서도 눈에 익은 원피스였다. 하지만 그녀가 입고 나온 뒤, 강한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그 원피스는 지난번 주강운이 자선 이브닝 파티에서 그녀에게 선물했던 원피스였다.강한서는 애써 표정을 숨기며 커피잔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유현진은 이 원피스가 마음에 쏙 들었다. 디자인은 간단하지만 입었을 때 몸매를 강조할 수 있는 원피스였다.그녀는 한참 동안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그러고는 액세서리를 맞추어 보려고 몸을 돌리는 순간, 뒤에 있던 강한서와 부딪혔다. 이때 강한서의 손에 들려있던 커피잔이 떨어지면서 마침 그녀의 원피스를 덮쳤다.유현진은 깜짝 놀라 휴지를 집어서 닦아내려 했지만, 커피는 빠르게 원피스로 스며들어 가 커다란 얼룩을 만들어 더는 입을 수 없게 되었다."당신 왜 갑자기 여기 서 있어?"유현진은 커피 얼룩을 지우며 강한서를 원망했다. '이거 지워지려나? 한 번밖에 안 입었는데.'강한서는 전혀 미안하지 않았다. "당신이 갑자기 몸을 돌릴 걸 내가 알았겠어?"유현진은 강한서의 태도에 더 화가 났다. "나 옷 갈아입
강한서는 정인월이 놀랄까 봐 알리고 싶지 않았다."너 또 밥 제때 안 먹는 거지?" 정인월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얼굴 살 빠진 거 좀 봐, 그래 괜찮아졌어?""좋아졌어요, 곧 회사 다시 나갈 거예요.""급해하지 말고, 일단 몸이 우선이야." 정인월은 강한서 손에 들려있는 커피잔을 보고 또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위도 안 좋은 애가 커피를 마셔?"강한서는 바로 유현진에게 떠넘겼다. "이 사람 거야.""현진이도 안 돼. 오후에 커피 마시면 밤에 잠 못 자."유현진은 강한서를 속으로 수십 번도 욕하고 나서 말했다. "명심할게요, 할머니. 이젠 안 마셔요."정인월은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그러고는 소파 위에 쌓여있는 옷을 보며 물었다. "갈 데 있어?"유현진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고민되었다.정인월은 강한서가 아프다고 알고 있는데, 이 와중에 주얼리 전시회에 간다고 하면 아픈 보배 손주를 버리고 가는 것이 되기에 말은 안 해도 기분이 썩 좋지 않을 것이다.유현진이 핑곗거리를 생각하는 순간, 강한서가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이 잔소리가 너무 많아서요. 저녁에 마침 주얼리 전시회가 있어서 보내려고요. 나 좀 휴식하게요."정인월이 물었다. "시윤이가 하는 주얼리 전시회 말하는 거야?"주시윤은 이번 주얼리 전시회의 주최자이자 주강운의 고모이다.강한서는 머리를 끄덕였다.정인월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면 이따 가는 길에 현진이 내 차에 타면 되겠어."강한서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 "할머니도 가요?""시윤이가 좋은 옥석이 있다고 그래서. 삼청관의 현기도사가 개안한 거래. 마침 시간도 있으니 한 번 가보려고.정인월은 옥석을 좋아하며 미신을 믿었다. 또 마침 현기도사와 친분도 있었다. 삼청관이 재정비할 때도 한주 강씨 가문에서 자금을 내어주었었다.심지어 유현진과 강한서의 결혼 전에도 정인월은 두 사람의 사주팔자를 보러 간 적도 있었다. 그때 말하길, 두 사람은 하늘에서 맺어준 인연이라고 했다.유현진은 현기도사가 사기꾼처럼 느껴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