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천의 안색이 파래졌다.“이제 고작 1분 30초가 지났다고? 난 5, 6분이나 지난 것 같은 느낌인데, 설마 날 속이고 있는 건 아니겠지?”강한서는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1분이 짧고 긴지는 아저씨께서 화장실 가기 전과 후에 따라 차이가 다르죠. 그래서 아저씨가 지금 1분이 길다고 느끼시는 겁니다.”송병천의 얼굴이 터질 듯 새빨개졌다.“안 한다. 못한다. 내려가야겠다.”강한서는 뒤로 한발 물러서며 말했다.“아직도 1분이나 남았습니다. 견지하면 곧 건강해 질 겁니다.”“...”송병천은 할 말을 잃었다.한편, 주방.차미주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그녀는 눈알이 곧 튀어나올 것처럼 눈을 뜬 채 옆에 있는 유현진을 보았다.유현진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왜 그래. 왜 그런 눈으로 날 봐?”차미주가 말했다.“강한서가 네 발등에 입을 맞췄잖아.”유현진이 정정하며 말했다.“... 아니야. 발목이야.”차미주는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강한서 설마 그런 페티쉬가 있는 거야?”유현진의 안색이 어두워졌다.“뭐라는 거야? 우린 영상을 찍고 있었다고!”“아무리 동영상을 찍어도 발에 뽀뽀를 하진 않지. 안 그래?”“발목이라고.”유현진은 굴하지 않고 발목이라며 말했다.차미주는 방금 그녀가 목격한 그 장면을 떠올리곤 얼굴을 붉혔다.“걔도 참 뽀뽀를 열심히 하더라.”“...”유현진은 할 말을 잃었다.솔직히 말해, 강한서가 그녀의 발에 뽀뽀를 할 때 그녀도 아주 놀랐었다.놀라움이 먼저 밀려오고 그다음으로 밀려온 감정은 바로 흥분과 민망함이었다.여하간에 발목에 키스를 하는 행위는 연인 사이에서 절대적인 복종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또한 그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주는 의미기도 했다.유현진은 자부심이 강한 강한서가 그런 모습으로 그녀에게 사랑을 보여줄 줄 전혀 몰랐다.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그녀의 귀가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그녀는 귀를 만지며 나직하게 말했다.“밖에 가서 절대 헛소리하지 마. 알았어?”
차미주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난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돈을 더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고 싶은 거라고. 알아?”한성우는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며 피식 웃어버렸다.“그럼 내가 사직서 내러 같이 가 줄까?”“장난치지 마.”차미주가 이어서 말했다.“난 회사를 그만두러 가는 거야. 놀러 가는 줄 알아? 너를 데리고 가게?”한성우는 소파에 몸을 기대 느릿하게 말했다.“바이브 엔터 대표님을 데리고 회사를 때려치우러 가는 거지.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네가 그 엿 같은 회사가 아닌 더 좋은 회사에 입사했다고 생각할 거 아니야. 그 회사에서 너를 엄청 신경 쓰고 있으니까 대표가 직접 나서서 널 정직시켰겠지. 나랑 함께 가면 전부터 널 계속 괴롭혀 왔다는 그 작가는 아마 안색이 파래지게 될걸? 그 모습을 구경하고 싶지 않아?”차미주는 순간 설득당해 버렸다.그녀가 쉽게 설득당한 이유도 사실은 그 작가 밑에서 고생을 많이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 작가는 항상 일은 제대로 하지 않고 다른 직원에게 일을 떠넘기면서 공로와 노력을 전부 빼앗아 갔다. 회사를 그만두면 더 이상 그 작가를 골려줄 기회가 없다는 걸 알게 된 차미주는 기분이 여간 좋지 않았었다.만약 한성우가 그녀와 함께 회사로 간다면... 그 작가의 표정도 아주 볼만 해질 것 같았다.다만 이미 한성우에게 많이 당해 똑똑해진 차미주는 이번에 잊지 않고 먼저 물었다.“갑자기 이렇게 나를 도와줄 리가 없는데? 말해봐. 뭘 원해?”한성우가 한숨을 내쉬었다.“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 나 상처받았어. 대체 날 뭐로 생각한 거야? 난 그냥 좋은 마음에 널 도와주려고 한 거라고.”차미주가 답했다.“허허, 넌 파리가 네 곁을 날아다녀도 잡아서 다리를 뽑아버릴 인간이잖아. 그런데 그런 네가 날 아무런 목적도 없이 돕는다고?”한성우는 어이가 없었다.“... 다른 표현도 많잖아. 왜 하필이면 더러운 파리로 예를 드는 거냐?”차미주가 기세등등하게 말했다.“우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지. 무릇 좋은 작품
차미주가 말했다.“아니, 오늘은 안 갈 거야. 너랑 계속 같이 배달 음식 시켜 먹으면서 게임만 했더니 몸무게가 4kg이나 쪘어. 나 다이어트 할 거야.”“넌 연예인도 아니고 얼굴로 돈을 버는 직업도 아니잖아. 다이어트를 왜 해? 현진 씨를 봐. 너무 말라서 개미 같잖아. 그런 모습이 정말 예뻐 보여?”차미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내가 그동안 당한 게 있지 않았다면 분명 또 네 터무니없는 말에 넘어갔을 거야!”유현진은 여자 연예인 중에서도 삐쩍 마른 편은 아니었다.유현진은 키가 168cm 정도였고 몸무게도 대략 50kg 정도였으며 키가 같은 다른 여자 연예인들보다 5kg이나 더 많았다.만약 다른 연예인이었다면 절대 50kg을 넘지 않으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현진은 달랐다. 그녀는 얼굴이 아주 작았고 팔다리도 아주 길쭉했으며 가슴과 엉덩이도 풍만했기에 다른 여자들이 봐도 질투할 만한 그런 완벽한 몸매였다.아무리 실물로 봐도 유현진은 개미라고 취급될 만한 깡깡 마른 몸매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한성우가 일부러 그렇게 말한 것이 분명했다.이 방법도 통하지 않자 한성우가 또 입을 열었다.“나 아까 새로 나온 한정판 스킨을 뽑았는데 캐릭터 숙련도가 부족하거든. 아무리 매칭해도 캐릭터 선택할 수 없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너랑 캐릭터 스킬 연습 좀 해보려고 했단 말이야.”“!!! 너 또 새로 스킨 뽑았어?”한성우가 말을 이었다.“나 강박증이 있잖아. 반드시 캐릭터 스킨 전부 모아야 직성이 풀리거든.”“...”차미주는 할 말을 잃었다.‘돈이 많다고 그저 막 퍼붓네. 돈 자랑도 이젠 강박증이라고 말하다니!'“그래서 올 거야?”한성우는 다시 한번 물었다.“나 너한테 그 커플 스킨 주려고 했는데. 그럼 같이 게임을 할 때마다 특수 효과가 나오게 되잖아. 나도 아직 그 스킨 특수 효과가 어떤 형태로 나오는지 모른단 말이야. 그래서 엄청 궁금하거든.”게임 스킨을 준다는 말에 차미주는 바로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그... 그럼 최대한 가도록
그녀는 강한서를 보면서 ‘내가 주방에 있을 때, 아저씨한테 무슨 헛소리를 한 거야? 내가 언제 반 시간이나 저걸 했어?'라는 눈빛을 보냈다.강한서는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현진이는 무용을 배웠었거든요. 그래서 아주 유연해요. 몇 시간 동안 서 있어도 끄떡없죠.”“...”유현진은 어이가 없었다.유현진이 무용을 배웠다는 말에 송병천은 시큰한 다리를 신경조차 쓰지 않고 바로 물었다.“무용을 배웠었어?”유현진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어릴 때 몇 년 배웠었어요. 하지만 아무리 배워도 실력이 늘지가 않아서 별로 잘 추지도 못해요.”송병천은 몰래 머릿속에 기억해 두었다.“전에 친구한테 들었는데, 네가 크루즈 파티에서 피아노도 쳤다면서? 실력도 아주 좋다고 하더라.”유현진은 바로 겸손한 태도로 말했다.“피아노도 사실은 잘 칠 줄 몰라요. 그냥 한두 개 곡만 완벽하게 칠 줄 아는 정도거든요. 송가람 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딸의 칭찬을 들은 부모는 분명 겸손하게 몇 마디 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송병천의 반응은 달랐다.“한두 개만 칠 줄 알아도 아주 대단한 거지.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니?”음... 확실히 그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현진아, 뭐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이 있나?”송병천이 물었다.유현진은 머뭇거렸다. 송병천은 그제야 자신이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질문을 했다는 것을 알아채고 급히 말을 보탰다.“민준이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가 네 팬이잖아. 최근에 널 아주 만나고 싶어 하고 있거든. 그래서 그때 가족끼리 모이게 되면 식사를 해야 할 텐데 네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몰라서 준비에 애를 먹고 있단다.”“???”강한서는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담시에만 있던 한씨 가문의 어르신 부부가 한주시로 현진이 만나러 온다고?'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만약 이 모든 게 송민준 여자친구를 만나러 온 것이라면... 어쩌면 말이 되는 것 같았다.‘지금 온 가족이 총동원하여 현진이를 며느리로 맞아들이려
송병천의 안색이 어두워졌다.“내가 언제 강요했다고 그러는 거지? 난 지금 현진이와 상의를 하고 있는 게 네 놈 눈에는 안 보이는 모양이지?”“아, 네.”강한서는 아주 성의 없게 대답하곤 유현진에게 물었다.“갈 거야?”유현진은 당연히 남의 가족 모임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아저씨, 가족 모임이라면 전 안 갈게요. 가족끼리 모이는 자리인데 생판 남인 제가 끼어들면 가족분들도 불편해하실 거예요. 어르신들이 저를 만나고 싶다고 하셨으니까 제가 시간을 내서 직접 뵈러 갈게요.”‘그럴 순 없어.'송병천이 말했다.“가족 모임도 아니다. 그냥 친구끼리 식사 한 끼 한다고 생각하면 돼. 대충 차려입고 오면 되는 자리란다.”유현진이 나직하게 말했다.“아까는 가족 모임이라고 강한서는 참석하지 말라고 하셨잖아요.”“...”송병천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난... 난 그냥 걔가 바빠 보여서 그런 것이란다.”강한서가 바로 입을 열었다.“최근엔 그리 바쁘지 않아요. 어르신들께서 한주시로 오시면 제가 시간을 내면 되죠.”송병천이 입술을 틀어 물었다. 그는 한참 후에야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그럼 한가하면 너도 오거라.”강한서가 바로 답했다.“감사합니다. 아저씨.”“...”송병천은 비록 강한서도 참석하겠다는 사실에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유현진을 어르신들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특히 송병천은 루나를 핑계로 계속 찾아왔었기에 송병천과 유현진은 어느 정도 친한 사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송병천은 유현진을 알아가는 데 아주 급급했다. 20여 년 동안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어느 학교에 다녔었는지, 어떤 고생을 했는지, 부모들이 잘해줬는지 등 아주 궁금했다...하지만 그가 물어보기도 전에 유현진의 찬란한 미소를 보면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은 것만 같았다.그녀가 건강하게 그의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송병천은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라고 생각했고 예전에 어떤 고생을 겪었는지는 차차
“전 세계에서 유일한 인공지능 로봇이에요. 강한서가 아직 대량 생산은 하지 않았죠. 마음에 드시면 얼른 주문하셔야 할 거예요. 가격도 한서랑 얘기하면 분명 싸게 해드릴 거예요.”그녀는 뜸을 들이며 눈치를 살폈다.“주문하실 거예요?”“...”송병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유현진이 그에게 많은 질문을 한 이유가 결국은 강한서의 로봇을 팔기 위한 것일 줄 상상조차 못 했다.송병천은 마음이 다소 아팠다. 그는 자신의 순진한 딸이 이렇게 쉽게 속아 넘어갈 줄은 몰랐다. ‘위자료 한 푼도 못 받고 쫓겨났음에도 아직도 강한서 그놈을 도와줄 생각만 해?'송병천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자 유현진은 자신의 의도가 너무나도 선명하였다고 생각해 마른기침을 내뱉으며 말했다.“큼, 전 그냥 물어본 거예요.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돼요.”송병천은 보물 같은 딸을 전대 민망하게 만들 수 없었다. 그가 급히 입을 열었다.“아니다. 난 지금 몇 대를 주문할까 고민 중이었단다.”“!!! 다른 곳에도 쓰시려고요?”유현진이 말했다.송병천이 답했다.“집에 하나, 민준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집에도 하나, 그리고 회사에도 하나 필요할 것 같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적어도 세 대는 있어야 할 것 같구나.”유현진은 두 눈을 반짝였다.“정말로 세 대나 구매하시려고요?”기뻐하는 그녀의 모습에 송병천도 따라 기분이 좋아졌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일단 세 대만 주문하마.”유현진은 팔꿈치로 강한서를 찔렀다.“들었지? 얼른 준비해 드려.”강한서는 송병천을 힐끔 쳐다보곤 담담하게 말했다.“알겠습니다. 이따 제가 다시 사람을 보내 연락드릴 겁니다. 먼저 계약금의 일부를 선불로 내셔야 할 겁니다.”송병천이 멈칫하더니 강한서를 보면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계약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가 궁금한 건, 현진이가 네 로봇을 대신 팔아주었으니 어느 정도 보너스는 지급이 되겠지?”강한서가 멍한 표정을 짓더니 느릿하게 답했다.“현진이가 원하면 회사 대표도 현진이에게
차미주가 말했다.“그래도 확인은 해봐야 할 거 아니야. 만약 뭐라도 없어지면 내 탓을 하려고?”한성우가 낮게 웃어버렸다.“만약 집에서 물건이 없어지면 너를 팔아서라도 배상해 줘.”차미주는 퉁명스럽게 말했다.“그럼 네 집에 있는 물건을 다 훔쳐 가야겠네.”그녀는 이내 다시 재촉했다.“빨리 말해. 나 내일 아침 회사로 가야 한단 말이야. 이러면 얼마 못 놀아.”“알았어. 일단 들어와.”차미주는 전화를 끊었다. 비번을 누르고 바로 안으로 들어갔다.집안에서는 은은한 향기가 풍겨왔다. 현관엔 호접란 화분이 있었고 하얀 꽃에 푸른 잎, 보기만 해도 시원하고 아름다웠다.그녀가 슬리퍼로 갈아 신을 때 무의식적으로 신발장을 힐끔 쳐다보았다. 신발장엔 전부 남자 신발만 진열되어 있었고 그녀가 갈아신은 슬리퍼만 여성 신발이었다. 슬리퍼엔 핑크색 토끼 귀가 달려있었고, 복슬복슬한 털 슬리퍼였다.게다가 이 슬리퍼는 그녀가 처음 한성우 집으로 오게 된 후 그의 슬리퍼가 너무 크다며 투덜거린 탓에 한성우가 새로 사 온 것이었다.그녀는 그때도 한성우의 안목이 구리다며 투덜대긴 했지만, 이상하게 마음에 들었다.그녀는 현관은 지나쳐 머리만 빼꼼 내밀고 거실을 살폈다.집안은 아주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티테이블 위엔 향초가 몇 개 놓여 있었다. 게다가 식탁 위 꽃병엔 붉은 장미 하나와 흰 장미 하나가 꽂혀 있어 아주 심플해 보였다.한성우는 생활의 품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비록 혼자 살고 있었지만, 집안은 항상 먼지 하나 없이 깔끔했다.차미주는 한성우가 매일매일 도우미 아주머니를 불러 청소하는 줄 알고 있었다. 그와 친해진 뒤로 그녀는 도우미 아주머니가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만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성우가 매일매일 직접 청소했던 것이었다.그는 강박증이 있었다. 그래서 집안의 모든 물건을 각을 딱 잡고 정리해 두었다. 그녀가 그의 집으로 찾아와 이것저것 뒤지면 한성우는 항상 그녀의 뒤에서 물건을 정리하여 원래 자리에 원래 모습으로 정리해 놓았었다
그녀는 각종 과일과 야채, 그리고 간식과 인스턴트 식품들을 냉장고에 채워 넣고 있었다.한성우는 멍하니 서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차미주는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더니 이내 전부를 냉장고에 채워 넣었다.그는 비록 가족 중에서 막내였지만 관심을 받아본 적이 별로 없었다.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았기에 그의 형과 누나들은 그에게 관심이 별로 없었고 부모님은 그가 시골에서 ‘나쁜 버릇'만 길들였다며 계속 그를 질타해 왔었다.그래서 그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집에서 나와 따로 자취하게 되었고 오랫동안 혼자 살게 되었다. 물론 가끔 명절 때에는 본가로 내려가 이틀 동안 묵고 다시 돌아오긴 했었다.하지만 그 이틀이라는 시간도 그에겐 고통이었다.부모님은 잘나가게 된 그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친척들 앞에서 철이 들었다며 자랑하기 바빴다. 그저 그뿐이었다. 그들은 그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는지, 어떤 고생을 했는지 관심이 없었고 심지어 그가 바삐 살 땐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잠은 잘 다니는지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그들은 매번 그의 집으로 찾아올 때마다 그의 생활 습관에 대해 여기저기 지적하였고 얼른 여자를 만나 결혼이나 하라며 재촉하면서 어느 집안의 아가씨가 어떤지 말해주기도 했다. 그들은 냉장고에서 물건을 꺼낼 때도 술이 있는 걸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어쩌면 그들은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예전에 그가 만났던 전 여친들도 그랬다. 그저 입으로만 걱정된다며 말했고 실질적인 행동은 보여준 적이 없었다.그랬기에 차미주가 유일했다. 차미주는 매번 그의 집으로 올 때마다 냉장고를 가득 채워 넣었다.비록 그의 카드를 긁어 산 것이지만.마지막 물건까지 냉장고에 넣은 차미주는 허리에 두 손을 척 올리며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제야 냉장고처럼 보였던 것이었다.냉장고 문을 닫자마자 옆에 기대 서 있는 사람을 발견하곤 놀라 소리를 질렀다.“미쳤어? 왜 소리 없이 거기 서 있는 건데? 깜짝 놀랐잖아!”한성우는 놀라 눈을 크게 뜨고 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