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166화

작가: 은별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42:56
말을 마친 소현우의 주먹이 얼굴을 향해 내리쳤다. 임재욱은 굳이 피하지 않았다.

마음속으로 이번 주먹은 그가 마땅히 맞아야 하는 것이라 어렴풋이 생각했다.

한 대 맞는 게 뭐 어때서.

그는 두 번이나 유시아가 손목을 긋게 했는데.

꼴 좋다.

정말 통쾌하구나.

임재욱을 때린 후 소현우는 그를 제자리에 남긴 채 훌쩍 떠나버렸다.

“재욱 씨...”

정유라가 그에게 달려와 쪼그려 앉아 그를 부축했다.

“재욱 씨, 괜찮아요? 병원에 데려다 줄게요...”

이때 임재욱의 몸은 온통 흙투성이였고 발에 차인 곳은 여전히 얼얼하게 아팠다.

30여 년을 살면서 이렇게 낭패하긴 처음이다.

정유라가 그를 부축해 차에 올랐다. 그녀가 차를 몰고 병원에 가려고 하자 임재욱이 운전대를 잡으며 말했다.

“내려요. 병원 안 갈 거니까.”

의기소침한 듯했지만 눈빛은 차가웠다. 낯선 사람에게 절대 마음을 열지 않을 것 같은 모양새였다.

정유라가 무어라 말하고 싶은듯했지만 결국 조용히 차에서 내렸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임재욱이 그녀와의 약혼에 응했어도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은 아니라는걸. 그래서 그를 거역할 수도, 그에게 애교를 부릴 자격도 없다는걸.

그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를 귀찮게 하지 않아야만 그의 곁에 오래 있을 수 있다.

차 내부가 드디어 고요함을 찾았다.

임재욱은 연락처에서 유시아의 번호를 찾아 한참을 응시했다. 그러나 전화를 걸 용기는 없었다.

아마 3년 전 그가 유시아를 감옥에 보낸 순간부터 그는 이미 그녀에게 있어 떠올리기조차 어려운 존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매번 그녀에게 다가갈 때마다. 그 태도가 온화했든 포악했든. 그녀를 곁에 두고 괴롭히든, 혹은 아이 대하듯 그녀를 데리고 디즈니랜드로 놀러 가든. 그녀에게 있어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다. 그 때마다 마음속의 흉터를 피투성이가 되도록 다시 찢는 것과 같았으니.

그가 가까이 가지 않아야 그녀가 아프지 않을 것이다.

임재혁은 쓴웃음을 지으며 입가의 피를 문질러 지웠다. 그리고 그린레이크를 향해 차를 몰았다.

-

벌써 기말
잠긴 챕터
앱에서 이 책을 계속 읽으세요.

관련 챕터

  • 사랑이라는 죄로   제167화

    “시아야, 고맙다.”전화를 끊은 뒤 유시아는 얼른 소현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현우 씨, 어디 있어요? 어머님께서 오랫동안 연락이 안 되셔서 불안해하세요. 얼른 어머님께 연락해 줘요.」메시지가 전송되었다. 마치 돌이 바다에 가라앉은듯 아무런 대답이 없다.유시아는 잠시 고민하다 외투를 입고 지갑을 챙겨 외출했다.지금 그녀에게 학업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소현우였다.그녀가 그와 헤어지자고 한 것은 그가 더 좋은 연인을 찾기를 바라서였지. 그가 이렇게 자포자기하게 하려던 것이 아니었다.그리고 이채린은 결국 그의 어머니였고, 어머니로서 그녀는 아들을 가장 생각하는 사람이다.피는 물보다 진하다는데 이렇게 사이가 서먹하게 굴어서는 안 될 일이다.그녀는 택시를 타고 소현우의 아파트에 도착했다. 아파트의 경비원과 책임자가 모두 그녀를 알아보았고 게다가 소현우의 분부가 있었으므로 그들은 열정적으로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아가씨 오셨네요. 대표님 보러 오셨어요?”유시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현우 씨는 집에 있어요?”“대표님은 3일 전에 오셔서 한 번도 나가지 않으셨습니다.”책임자가 그녀를 직접 엘리베이터까지 바래다주었다.“올라가세요!”아파트의 엘리베이터는 집 내부와 이어진 구조였으므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그녀는 입구에 소현우의 구두가 놓여있는 것을 보였다. 그리고 옅은 핑크색 슬리퍼 한 켤레도.그녀가 지난번에 왔을 때 소현우가 직접 그녀를 위해 사 온 것이었다. 슬리퍼 위에는 귀여운 털 뭉치가 장식되어 있다.유시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슬리퍼로 갈아신고 안으로 들어섰다.거실에 들어서자 짙은 술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코가 시큰거렸고 동시에 사레가 들렸다. 그녀가 고개를 들었더니 과연 한 남자가 헐렁한 잠옷을 입고 소파에 비스듬히 기댄 채 티브이를 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온통 퇴폐적인 모습이었다.두 눈이 마주치자 소현우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잠시 후 그는 조금 부끄러운 듯 자기 옷을 정리하고서야 소파에서

  • 사랑이라는 죄로   제168화

    신데렐라는 유리구두를 신고 호박 마차를 탔다. 그리고 왕자님과 춤을 추고 결혼까지 하였다.이런 일은 어린아이들이 즐겨 보는 동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현실 세계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신데렐라는 유리구두를 신더라도, 그리고 왕자님 곁에 서더라도 자신의 비천함을 숨길 수 없는 것이다.게다가 동화 속의 신데렐라는 감옥살이한 적이 없다.소현우가 그녀의 창백하고 앙상한 얼굴을 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그녀를 품에 꼭 안았다.“바보 같이. 네가 지은 죄가 뭐가 있다고 이런 벌을 받으려고 해?”바보같이...순간 유시아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 네 글자가 그녀의 마음을 울렸다.그는 그녀의 무고함과 고통을, 열등감과 위축된 마음을 모두 이해해 준다.그는 자신이 그녀에게 유일한 삶의 지푸라기임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종래로 그녀를 포기하지 않았다.설사 그녀가 임재욱에게 끌려가더라도 그는 그녀가 더럽다 생각하지 않았고 오히려 사과했다. 자신이 무능해서 지켜주지 못했다고.그녀가 흐느껴 우니 소현우는 가슴이 아팠다. 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눈물에 키스했다.“시아야, 울지 마. 내가 항상 곁에 있을테니까...”“현우 씨, 왜 이렇게 멍청해요? 왜 저한테 이렇게 잘해주는 거예요.”그녀는 목이 멘 채로 그의 등을 마구 쳤다. 마치 정신을 차리라는 듯이.“전 그럴 가치가 없는 사람이에요...”소현우가 되려 웃었다.“시아야, 너도 알잖아.”“난 이렇게 사랑받을만한 사람 아닌데...”“너보다 더 사랑 받을만한 사람은 없어!”소현우가 그녀를 안고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시아야, 난 평생 너와 함께할 거야. 영원히 헤어지지 않고.”이 세상에서 유시아를 제외한다면 그가 사랑할 만한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아니까, 모든 것을 무릅쓰고 사랑할 용기가 있으니까.-이채련은 비록 유시아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지만 그녀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소현우가 그녀에 대한 감정은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

  • 사랑이라는 죄로   제169화

    일주일 후, 정운대학교 입구.유시아가 울상을 지으며 학교에서 뛰쳐나왔다.“현우 씨, 시험 망했어요. 예측 문제 다 안 나왔어요...”소현우가 그녀의 울상인 얼굴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는 손을 뻗어 갈수록 살이 붙어가는 그녀의 귀여운 볼을 어루만졌다.“바보야. 직감은 항상 반대인 거야. 망했다고 생각할수록 잘 한거고, 잘 했다고 생각할수록 낙제하는거야.”유시아가 뾰로통해서 말했다.“위로 하지 마요. 이제 졸업장도 받지 못하게 됐으니 현우 씨 체면도 이제 구겨진 거예요!”소현우가 웃으며 그녀의 뒤통수를 감싸안아 가볍게 두드렸다.“괜찮아. 그저 시험일 뿐인데. 최선을 다했으면 된 거지. 이제 차에 타! 같이 갈 곳이 있어!”“어딜 가려고 이렇게 의미심장한 거예요?”유시아가 고개를 숙이고 조수석에 올라탔다. 아직도 시험의 여파로 몸에 기운이 별로 없었다.“혹시 배불리 먹여서 시험이 망한 걸 위로하려는 건 아니겠죠?”유선우가 그녀에게 안전벨트를 매어주며 말했다.“그럴 리가. 시아는 분명 잘 쳤을 거야. 지금은 다른 일을 보러 가는 거야.”그는 곧 차를 몰고 정운대학교를 떠났다.시험이 끝나고 시험장을 나서면 홀가분할 줄 알았건만, 뜻밖에도 유시아는 지금이 시험 전보다 훨씬 긴장되었다.비록 소현우는 졸업장 따위 개의치 않았지만 정말 졸업장을 받지 못한다면 학교 측과 친구들의 추측을 증명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바로 그녀가 소현우의 입김으로 정운대학교의 명성을 가져가려 한다는 추측이었다.그녀는 이채련도 이것 때문에 자신을 업신여길까 봐 겁이 났다.이를 생각한 유시아는 더욱 초조해져서 의자를 뒤로 젖혔다.“전 좀 자고 있을 테니 도착하면 불러요!”최근 기말고사 때문에 밤을 새가며 공부했더니 확실히 몸이 매우 지친 상태였다.눈을 감자마자 그녀는 주위는 신경도 쓰지 못한 채 곤히 잠들어버렸다.소현우가 그녀를 깨울 때, 그녀는 심지어 잠투정까지 부렸다."부르지 마...”“시아야! 도착했어!”유시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일어났다. 그리

  • 사랑이라는 죄로   제170화

    “그럼 다른 곳으로 가요.”유시아가 항의하며 말했다.“전 이곳이 싫어요...”소현우는 그녀의 반응에 어찌할 바를 모르다 설득하기 시작했다.“아직 보지도 않았잖아. 여기 단지 내의 풍경도 아름다워. 돈은 절대 신경 쓰지 않아도 돼...”이때 벤틀리 차 한 대가 단지에서 나왔다.운전석에 앉아있는 남자의 얼굴을 보았을 때야 소현우는 비로소 깨달았다.유시아는 이 동네가 싫은 것이 아니라 이 동네에 살고 있는 누군가가 싫었던 것이다.얼마 전 임재욱의 부동산을 조사했었으나 이곳에도 그의 집이 있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그 며칠 동안 줄곧 임재욱에 의해 이곳에 갇혀있었으니, 이렇게 반항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차를 몰고 문어구에 도착했을 때 임재욱 역시 그들 둘을 보았다.조수석의 문이 열려 있었고 유시아는 옅은 남색의 긴 치마를 입고 머리카락은 약간 헝클어진 모습이었다. 소현우가 한켠에 서서 흐뭇하게 웃는 것을 보아 그녀를 차에서 내리도록 설득하는 것 같았다.할아버님께 듣기로 두 사람이 곧 결혼한다고 하던데.약혼도 아닌 결혼.그 옛날 하루 종일 그의 뒤를 쫓아다니는 지칠 줄 모르던 소녀 애가 드디어 지쳤다. 더 이상 달리지도 못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를 선택했고 곧 신부가 될 것이다.유시아가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은 매우 아름답다. 골격이 작은 데다 몸매가 좋아 어떤 종류의 드레스를 입든 모두 예뻤다.그들의 결혼식도 아마 유난히 아름다울 것이다.임재욱은 씁쓸히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잠시 혼이 나간듯하였는데 차가 하마터면 앞차와 추돌할 뻔했다.그는 깜짝 놀라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다.다행스럽게도 몇억이 되는 고급 차는 안정적으로 멈추어 주어 교통사고의 끔찍한 결과는 피했다.임재욱은 깊은 숨을 들이쉬고 나서, 마음을 다잡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그가 오늘 외출한 것은 정유라와 함께 반지를 고르고 약혼식에서 쓸 기타 액세서리들을 사기 위해서였다.정유라는 기쁜 모습으로 다정하게 그와 팔짱을 꼈다.“재욱 씨,

  • 사랑이라는 죄로   제171화 

    소현우의 행동은 매우 빨랐다.유시아가 그린레이크의 집을 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현우는 그녀를 재빨리 데리고 운전하여 다른 집을 보러 갔다. 결국, 거액의 돈을 들여 교외 근처에 있는 반월만에 3층짜리의 작은 별장 하나를 샀다.별장은 인테리어가 잘 되어 있었고 재미있는 아기자기한 소품도 증정되어있어 풀옵션으 입주할 수 있었다. 지리적 위치는 그린레이크만큼은 아니지만 유시아는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이곳은 이미 너무 호화로운 데다가 가격도 적당하네요.”그녀가 좋아한다면 되는 거였다. 어차피 집을 사는 목적은 그녀가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소현우는 즉시 전액을 지불했고 계약서에 두 사람의 이름을 사인했다.집을 마련하자마자 그는 유시아를 데리고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러 갔다.시간은 촉박하였고 그는 이미 기다릴 수가 없었다. 내일부터는 결혼식을 올리고 가능한 빨리 유시아를 집으로 들이고 싶었다.한 웨딩숍에 들어서자 방안에 꽉 찬 화려한 드레스는 유시아의 눈을 어지럽게 하였다.“너무 아름다워요. 어느 것을 입어야 할지 모르겠어요.”소현우는 유시아를 도와 드레스를 고르면서 말했다.“그럼 제일 예쁜 건 결혼식 때 입고 다른 건 우리가 웨딩촬영을 할 때 입으면 되겠네.”유시아의 작은 얼굴은 발그레해졌다.“그러면 너무 겉치레를 하는 거 아닌가요?”“결혼은 원래 겉치레를 하는 건데...”얘기하는 도중에 눈빛이 진열창에 있는 웨딩드레스로 향한 그는 유시아를 끌고 와서 물었다.“이건 어때? 너한테 잘 어울리고 예쁠 것 같은데...”그것은 확실히 너무 예쁜 탱크탑 드레스였고 가슴에는 정교한 자수가 새겨져 있었다. 드레스의 밑단은 여러 가지 색으로 레이어드 된 망사였고 그 위에는 펄과 큐빅이 포인트로 장식되어 있어 조금만 걸어도 빛이 났다.유시아가 제일 마음에 들어 한 것은 앞은 짧고 뒤는 긴 이 웨딩드레스의 밑단 디자인이었다.웨딩드레스의 뒷부분은 매우 길지만, 앞부분은 짧아서 걸을 때 드레스에 걸려 넘어질 리가 없었다

  • 사랑이라는 죄로   제172화

    두 사람이 한창 장난을 치고 있는데 소현우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유시아도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그녀의 시선이 소현우을 따라가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심하윤을 보았다.오랜만에 만난 심하윤은 작은 흰색 정장 차림에 하이힐을 신은 채 올림머리를 하고 목에는 점장 명함을 달고 있었다.유시아는 그녀가 이곳의 점장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그녀가 좋아하는 웨딩드레스가 심하윤이 만든 최신 디자인일 줄은 더더욱 몰랐다.심하윤의 남자친구를 빼앗은 데다가 웨딩드레스까지 강제로 사려 했던 유시아는 자신을 몹시 나쁘다고 느끼며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저…""왜? 너 뭐?"심하윤은 웃으며 다가와 그들과 인사하고 근처 소파에 앉았다. 그녀는 여전히 예쁜 미소를 띄고 있었다."너희 결혼하기로 한 거야? 진심으로 축하해. 우리 가게 웨딩드레스를 좋아하는구나, 입어보라고 가져왔는데…"그녀는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윤 언니…"유시아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저…정말 미안해요, 하윤 언니.…""결혼은 경사스러운 일인데,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마!"심하윤의 반응은 아주 시원했다. 그녀는 유시아의 작은 손을 잡으며 말했다."이리 와봐, 내가 입혀줄게. 소 신사님, 남성복 코너는 저쪽에 있으니 가서 골라보세요. 다 고르면 제가 할인해 드릴게요!"심하윤은 말하면서 한편으로는 유시아를 탈의실 안으로 끌어들여 주변의 커튼을 쳤다.심하윤은 웨딩드레스를 들고 말했다."너 눈썰미가 좋네. 나도 이 드레스가 너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았어. 네가 이것을 입으면, 아마 소현우가 너에게 엄청 반할 거야!"유시아는 더욱 무안해졌다."하윤 언니…정말 내 탓 안 해?”"하지. 왜 탓 안 해?"심하윤은 한편으로 웨딩드레스를 털며 말했다."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네 탓을 할 자격도 없는 것 같아. 처음에 소현우를 얻기 위해서, 나도 일찍이 너에게 고향을 떠나 홍콩으로 가라고 하지 않았어? 시아야, 나는 내가 결코 고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 그래서 나는 네가

  • 사랑이라는 죄로   제173화

    웨딩신발, 액세서리, 부케, 베일...심하윤은 마치 여동생을 시집보내는 언니처럼 액세서리든 뭐든 전부 유시아에게 하나씩 입혀주느라 바빴다.심지어 그녀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아르마니 립스틱을 꺼내 유시아의 입술에 새빨갛게 한 바퀴 발라주고는 머리를 돌려 소현우를 바라보았다.“저쪽에 가서 정장을 고르지 않을래?”그제야 정신을 차린 소현우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남성복 코너로 향했다.“아, 가려던 참이었어.”여자들은 화장할 때, 대부분 남들이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게다가 두 여자가 할 말이 있는데 남자가 거기에 있는 것은 너무 걸맞지 않았다.유시아는 워낙 수려한 외모로 입술이 빨갛고 치아가 하얗다. 입술 모양만 그려도 이목구비가 정교하고 뚜렷하다.심하윤은 다시 손을 뻗어 유시아의 허리를 재어 보고 만족했다.“허리도 맞네, 수선할 필요 없겠어. 너를 위해 맞춤 제작한 것 같아.”유시아는 그녀의 말에 얼굴을 붉혔다.“하윤 언니, 나...”심하윤의 남자친구도 뺏고 웨딩드레스까지 뺏어서인지 유시아는 결국 미안하게 생각했다.그녀가 여기에 나타난 것은 심하윤에게 있어 정말 잔인한 일이었다.심하윤은 유시아의 작은 얼굴을 만지면서 간절히 부탁했다. “ 앞으로도 꼭 행복해야 해. 바보야, 자꾸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말고 자신을 위해서도 생각해 봐. 현우도 사랑하고 너 자신도 잘 사랑해야 해, 알았어?”유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음속으로 훈훈함을 느꼈다.“하윤 언니, 고마워요.”심하윤은 두 팔을 뻗어 유시아를 안았다.“예쁜 동생아, 꼭 행복해야 해.”소현우는 남성복 코너에서 머물다 이내 자신에게 어울리는 흰색 정장을 골랐다.탈의실에서 걸어 나오는 소현우를 보고 심하윤은 그를 유시아와 함께 서게 하고는 휴대폰을 꺼내 사진 한 장을 찍어주며 감탄했다.“너무 예쁘다. 나중에 포스터를 만들어 웨딩숍 입구에 걸어놓으면 장사가 대박 나겠네. 그런데, 광고비는 없어!”소현우도 웃으면서 맞받아쳤다.“점점 여장부의 느낌이 나는구나!” 심하윤은 미소를

  • 사랑이라는 죄로   제174화

    유시아는 주방에서 물 한 잔을 따라 그에게 주고는 그의 곁에 앉았다."현우 씨, 결혼식 준비가 다 되었으니, 내일은 우리 아버지를 보러 가고 싶어요, 저랑 함께 가 줄 수 있어요?”그녀는 곧 결혼할 것이고 게다가 이렇게 좋은 남자와 결혼 한다. 그래서 그녀는 이 좋은 소식을 아빠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아버지가 계속 그녀를 보호하고, 심하윤도 보호하며 그녀에게 잘해주는 모든 사람을 보호하게 하기를 기도했다.그녀가 아버지를 언급하자, 소현우는 가슴이 두근거려 무의식적으로 벽에 걸려 있는 유병철의 영정사진을 바라보았다.그는 유시아의 작은 집안에서 자주 왔다 갔다 했지만, 그녀 아버지의 영정사을 볼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드물었다.사진 속 남자의 듬직하고 믿음직스러워 보이는 얼굴 속에는 솔직하기도 하고 정직한 표정이 보였다. 소현우는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그는 약간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알았어."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걱정했다.'그 일이 영원히 세상에 밝혀지진 않겠지? 응, 아닐 거야. 그분은 영원히 그 일을 폭로하지 않을 거야.'-소현우와 유시아의 결혼식은 음력 8월 8일로 정해졌다. 장소는 소현우 명의의 개인 식장이었다.이 결혼식 날짜와 장소는 이 여사가 그들을 도와 선택해준 것이었다. 결혼식도 일찍부터 알렸다. 다만, 초청할 하객은 많지 않았다.필경 이 여사의 마음속에 이 며느리는 결코 자신이 원하는 며느리가 아니었고, 아들과도 어울리지 않았다.청첩장을 받지 못한 임재욱은 우연히 소현우의 SNS 계정에서 그가 공개한 결혼 날짜와 장소, 그리고 한 장의 웨딩사진을 보게 되었다.유시아는 진홍색에 금색 무늬가 있는 수화복을 입고 머리를 묶은 채 예쁜 금비녀를 잔뜩 꽂은 모습은 마치 작은 새가 사람 품에 안긴 듯 두루마기 저고리를 입은 소현우의 품에 안겨있었다.화면을 두 번 눌러 사진을 확대해본 그는 유시아의 작은 얼굴에 띤 미소를 보고 유난히 달콤하다고 느꼈다.임재욱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아련한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자신한테

최신 챕터

  • 사랑이라는 죄로   제485화

    늦은 밤, 유시아의 카카오톡을 받았을 때 임재욱은 병원에 있었다.신시연은 도우미의 도움을 받으며 진료실에서 여러 검사를 받았고 그동안에 임재욱은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늦은 밤의 사립 병원이라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당직을 서는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외에 거의 사람이 없이 무척이나 쓸쓸해 보였다.임재욱은 복도를 한참이나 누비다가 의자에 걸터앉았다.유시아를 병원으로 바래다주고 돌아서는 길에 신시연의 전화를 받고서 오게 된 것이다.배가 아프다고. 당장이라도 죽을 듯이 아프다고.신시연은 며칠 전에 병원에서 여러 번 신체검사를 받았으나 해외에서 그러한 몹쓸 짓을 당하며 우울증과 부인병이 있는 외에 다른 수치들은 정상 범위 안에 있었다.그 말인즉슨,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재욱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신시연에게 남은 ‘가족’이라고는 임재욱 하나뿐이니 어찌 됐든 그녀를 잘 지켜야 하는 마음뿐이었다.그 누구에게도 다시는 상처를 받지 않게끔.바로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하여 임재욱은 그녀를 직접 병원까지 데리고 오고 의사 선생님 입에서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확답을 듣고 나야만 마음이 놓일 수 있다.애타게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핸드폰 알림 소리가 울렸다.유시아가 보낸 카카오톡인데,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보고 싶어요.]임재욱은 고개를 숙인 채 카톡 내용을 거듭 곱씹으며 유시아 사진으로 되어 있는 그녀의 프로필 사진을 바라보며 입꼬리가 주체하지 못하고 자꾸 올라갔다.‘내가 보고 싶어? 별거한 지 하루 만에 벌써 내가 보고 싶은 거야?’‘우리 시아 이제 제법 솔직하네.’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어떻게 답장할지 생각하고 있을 때 응급실 문이 열렸다.도우미 김향화가 얼굴에 핏기 하나 없는 신시연을 부축하고 걸어 나왔다.신시연은 디자인이 아주 심플한 데님 스커트를 입었고 윤기가 별로 없어 보이는 머리를 돌돌 말아 묶어 올렸다.무척이나 초췌해 보이는 것이 가여운 느낌도 물씬 풍기고 있어 기고만장했던 그

  • 사랑이라는 죄로   제484화

    유리 구두를 품속에 꼭 안고 있는 유시아를 보고서 임재욱은 순간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참으로 달래기 쉬운 여자라는 것을.특히 결혼하고 나서 아주 살짝만 잘해주어도 유시아는 아주 오랫동안 기뻐하는 것만 같았다.유시아는 늘 임재욱 앞에만 서면 스스로 자세를 낮추고 자기를 낮은 위치에 놓는 데 습관 되어 있다.임재욱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정수리에 뽀뽀했다.“앞으로 매년 생일마다 예쁜 유리 구두 선물해 줄게. 어때?”“좋아요.”유시아는 말하면서 아주 유치하게 그를 향해 손가락을 내밀었다.“손가락 걸고 약속해요. 절대 어기지 않겠다고.”백화점에서 나온 두 사람은 일단 화실로 향했다.새로 구매한 공예품을 적당한 자리에 올려놓고 유시아의 제안으로 이채련의 병원까지 바래다주었다.유시아는 자기가 뱉은 말은 어떻게든 지키는 타입이라 이채련과 이미 약속했으니 꼭 지켜야 했다.하물며 자식도 없는 이체련에게 마지막 이 시간들이 더더욱 외로울 것이다.외부인들이 보기에도 불쌍할 정도로 외롭다.임재욱이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었고 이채련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다고 하니 마음은 내키지 않았지만 보내주었다.차는 곧 사립 병원 앞에 멈춰 섰고 임재욱은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유시아는 차창에 대고 거듭 강조했다.“유리 구두랑 드레스들 옷방에 고이 모셔두도록 해요. 마구 놓지 말고요.”“알았어.”임재욱은 말하고서 손을 내밀어 그녀의 목을 확 잡고서 찐한 키스를 남기고 나서야 순순히 놓아 주었다.“얼른 가 봐.”“조심해서 가요.”임재욱은 조수석에 앉아 한결 가벼워진 그녀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보고서야 시선을 거두고 집으로 향하려고 했다.가는 길에 갑자기 신시연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오빠, 배가 너무 아파요.”...병실로 돌아와 보니 이채련은 아직 자고 있지 않았다.침대에 멍하니 누워 재미가 일도 없는 예능 프로를 보고 있었다.유시아가 문을 밀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이채련은 놀라고도 기뻤다.“시아야, 늦은 시간에 웬일이야?”유시아

  • 사랑이라는 죄로   제483화

    쇼핑은 늘 설레는 일이다.유시아는 자기 취향대로 화실 장식품으로 쓰일 공예품을 골랐다.이윽고 임재욱은 또 유시아를 데리고 근처에 있는 매점으로 향했다.지난번에 두 사람은 함께 쇼핑하면서 많은 옷을 샀었지만, 신서현 부모님께 갑작스러운 상황이 일어나면서 유시아는 그 모든 옷을 모조리 청소 아주머니에게 줘 버렸다.그때의 아쉬움을 채워주기 위해 임재욱은 또다시 쇼핑하려고 한 것이다.게다가 다음 주면 대우 그룹 상장 20주년이다.정식적인 석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 유시아를 자기 아내 신분으로 남에게 소개해 주고 싶어 이브닝 파티에 어울릴만한 드레스와 신발을 살 예정이다.드레스는 그럭저럭 큰마음이 가지 않았는데, 유시아는 그 신발이 마음에 들었다.은백색의 하이힐로 예쁜 보석들로 가득 박혀 있어 매점 불빛 아래서 유난히 반짝이는 것이 신데렐라 동화에 나올 법한 유리 구두 같았다.매점 직원은 유시아가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을 보고 바로 다가왔다.“손님 안목이 참 좋으시네요. 이 제품은 저희 디자이너 선생님의 최신 디자인으로 지금 딱 한 켤레만 있습니다. 만약 이 신발을 신고 나가신다면...”임재욱은 갑자기 직원의 말을 끊어버렸다.“이미 결혼했고요. 이 사람은 제 아내예요.”유시아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는데, 자기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그를 보고서 따라서 웃었다.“맞아요. 이 사람이 제 남편이에요.”매점 직원은 멍하니 있다가 바로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베스트 쇼핑 가이드다운 실력을 드러냈다.“어머, 어쩐지 너무 어울리신다 했어요...”직원의 칭찬에 두 사람은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이윽고 매점 직원은 분위기를 파악하며 유리 구두에 대해 더욱 디테일한 설명을 첨부하기 시작했다.“이 제품의 새끼 양가죽으로 만들어졌으므로 착용감이 엄청 좋으실 거예요. 하루 종일 신고 걸으셔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말이죠. 게다가 우리 디자이너 선생님이 즉흥으로 만들어내신 작품이라 절대 똑같은 제품을 시중에서 보실 수 없을 거예요.”한 켤레일 뿐만 아니라 사이

  • 사랑이라는 죄로   제482화

    한서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내가 뭐?”“한서준 씨는 당당해요?”유시아는 바로 질문을 질문으로 돌려주었다.“임씨 가문에 접근한 그 의도를 다른 사람들이 모를 것 같아요? 할아버지, 재욱 씨 그리고 나까지 똑똑히 알고 있어요. 청아 씨만이 한서준 씨를 사랑해서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거라고요. 그렇게 쭉 모르는 척을 하며 모든 걸 감당하고 있었던 거라고요. 한서준 씨 역시 청아 씨를 이용한 게 아닌가요?”마지막 한 마디에 한서준은 침묵하고 말았다.그렇다. 임청아에게 접근한 이유는 유시아가 ‘스파이’로 움직여 주지 않겠다고 거절했기에 어리석어 보이는 임씨 가문 천금을 노리게 된 것이다.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것은 결국 변하게 되어 있다.임청아 대한 마음은 모략에서 시작했으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마음이 점점 사랑으로 끝을 맺게 된 것이다.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띠고 다가왔던 임청아가 어두운 자신의 삶을 밝게 비춰주는 것만 같았다.따라서 한서준은 임청아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차츰 생기게 된 것이다.임태훈이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꼭 자기 곁으로 데리고 오고 싶었다.“청아 씨 지금 몸도 마음도 상처투성이에요.”“만약 청아 씨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면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하는 게 좋을 거예요.” 말을 마치고 유시아는 차 문을 밀고 차에서 내려 병원 밖으로 걸어갔다.택시에 오른 유시아는 긴 망설임 끝에 끝내는 더 스케치 화실 주소를 운전 기사에게 알렸다.차는 화실 맞은 편에 세워졌고 유시아는 화실 바로 맞은편에 있는 커피숍으로 들어가 창가 자리에 앉았다.화실 안의 상황을 바로 체크할 수 있고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최적의 위치라고 할 수 있다.한참 지나고 나서야 수많은 경호원들이 임태훈을 사이에 두고 화실에서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임태훈은 벤틀리에 올라 강한 기운을 남기고 자리를 떠나버렸다.유시아는 그제야 한시름을 놓고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고는 바로 화실로 향해 달려갔다.화실 안과 밖은 겉은

  • 사랑이라는 죄로   제481화

    전화를 마치고 유시아는 혼자 밖에 없는 휴게실을 보고서 깊은 번뇌에 잠겼다.남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임태훈처럼 막무가내로 어처구니가 없는 노인이 있다는 게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임태훈이 끔찍이 여기는 임청아를 유시아가 계단에서 밀어버린 것도 아닌데, 왜 애꿎은 자기 화실을 닫으려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집안 내부에 문제가 생기면 일단 스스로 반성하는 법부터 배워야 하는데, 그게 무엇이든 일단 남한테서 문제를 찾고 있으니, 권력을 믿고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이 분명했다.유시아는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복잡해졌고 불안함도 점점 커졌다.지금 운영하고 있는 더 스케치 화실도 용재휘가 먼저 시작한 것인데, 그와 더불어 학생들까지 모두 함께 넘겨주었는데, 만약 이대로 화실을 망쳐버린다면 용재휘에게 너무 미안할 것 같았다.임재욱과 임태훈이 어느 정도로 얘기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화실이 그들 싸움의 희생물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임재욱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묻고 싶었으나 감히 그럴 용기가 없어 일단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떨리는 심장을 부여잡은 채로.그렇게 한참이나 심장을 조이고 있었지만, 걸려 오는 전화는 없었다.유시아는 일이 어느 정도 망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학생 채팅방에 오늘 갑자기 일이 있다며 수업을 뒤로 미룬다고 알렸다.언제 다시 수업을 시작할지는 소식을 기다리라며 덧붙이기까지 했다.톡을 보내고서 유시아는 더 이상 핸드폰을 보지 않고 바로 병원 밖으로 나갔다.그러나 병원 대문을 나오자마자 한서준이 정면에서 오고 있었다.“유시아.”유시아는 고개를 들었고 그를 보게 되는 순간 정신이 아찔해 났다.직감이 알려주건대, 절대 좋은 일이 없다는 것이다.화실의 생존 여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의 심기까지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한서준은 쉽사리 유시아를 놓아 주지 않았고 손을 내밀어 유시아의 손목을 꼭 잡았다.“물어볼 일이 있어.”말하면서 근처에 있는 지프차를 가리켰다.“차에 타서 얘기 하자.”“그쪽이랑 할 말

  • 사랑이라는 죄로   제480화

    유시아는 그 말을 이어받지 않고 집사의 바람대로 타이르기 시작했다.“몸이 아직 많이 허약해요. 먹고 싶지 않아도 억지로라도 좀 먹어야 하거든요. 일이 어찌 됐든 일단 건강부터 챙겨야 해요.”임청아 그 말을 듣고서 쓴웃음을 지었다.“건강 회복되면 할아버지한테 잡혀가서 집에 감금되는 것밖에 더 있겠어요?”“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유시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덧붙였다.“어찌 됐든 할아버지 마음은 한결같을 거예요. 청아 씨를 아끼고 사랑하는 거요. 서로 대화가 필요한 거 같아요. 서로 터놓고 얘기하고 나면 오해가 풀리고 마음도 풀리면서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예요.”임청아의 입가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아이 낳고 나면 할아버지도 서준이도 원한을 내려놓고 행복만 할 수 있다고요.”“근데 이렇게 몸도 아끼지 않고 점점 더 막무가내로 나가면 두 사람 사이의 원한은 점점 더 짙어질 거예요.”유시아는 말하면서 도우미 손에서 보신탕을 가져와 천천히 불며 임청아의 입가로 가져갔다.임청아는 생각 밖으로 무척이나 순순하게 유시아의 말을 따랐고 그녀의 말에 이치가 있는 것 같아 조용히 보신탕을 받아 마셨다.도우미와 집사는 두 사람이 티키타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것을 보고 서서히 마음이 놓였다.임청아가 뭐라도 먹기 시작하여 자기도 모르게 한시름을 놓으며 자리까지 비켜주려고 했다.두 사람이 마음 편히 말할 수 없을까 봐 눈치껏 일어서려는 것이다.“작은 사모님, 아가씨와 천천히 얘기하고 계세요. 밖에 나가 있을 테니 필요한 거 있으시면 언제든지 부르시고요.”“네, 가보세요.”도우미 일행이 나오고 나서야 유시아는 본론으로 들어갔다.“한서준 씨는 알고 있어요?”임청아는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그런다고 숨겨질 일도 아니잖아요.”요즘 임태훈뿐만 아니라 한서준도 눈을 부라리고 임청아를 찾고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을 피하고자 아파트도 호텔도 들어갈 수 없었고 버려진 강아지처럼 유시아 화실에 몸을 숨기고 지낸 것

  • 사랑이라는 죄로   제479화

    임청아 이름 석 자가 임재욱의 입에서 나오자, 유시아는 순간 청천벽력을 맞는 것만 같았다.심지어 지금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한참 지나고 나서야 겨우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물었다.“청아 씨가 왜 병원에 있는 거죠?”임청아는 임신한 것을 알고 매사에 조심하며 걸음 하나도 천천히 옮겼었다.게다가 해외에 있는 친구와 연락하여 해외로 떠날 준비까지 마쳤다고 했었다.그런데 관건이 되는 순간에 계단에서 굴러떨어졌다고?“할아버지를 너무 쉽게 생각한 거 아니야?”임재욱은 말하면서 차갑게 웃었다.“네 화실에 청아 숨겨 놓았잖아. 할아버지께서 그걸 과연 모르고 있었을 것 같아? 오늘 화실로 청아 데리러 갔었는데, 가지 않겠다고 청아가 하도 우기는 바람에 억지로 묶어서라도 데리고 가겠다며 서로 실랑이를 벌이다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거야.”그렇다면 아이를 유산했을지도 모른다.임태훈의 습관에 따라 생각해 본다면 이 화살은 결국 유시아에게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임재욱이 그렇게 경고하였건만 유시아는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다.약해지는 마음에 언젠가는 구렁이에 빠지게 될 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날이 바로 오늘 일 줄은 몰랐다. 임재욱은 한숨을 내쉬며 꾸짖고 싶은 마음을 겨우 억눌렀다.“병원 주소 보내줄 테니 얼른 가 봐.”말을 마치고 임재욱은 전화를 끊어버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고 운전 기사에게 새로운 목적지를 알려주었다.같은 시각, 병원 안에서.임청아는 이미 수술을 마쳤고 일반 병실로 옮겨져 있었다.이미 가문의 집사와 간호인이 옆에 있었고 병실 문 앞에는 임태훈이 보낸 경호원도 있었다.다만 경호원이 경계해야 할 상대는 유시아가 아니라 한서준이다.따라서 유시아는 별다른 막힘없이 바로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병상에 누워 있는 임청아는 얼굴에 핏기 하나 없었고 초점을 잃은 두 눈으로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불과 하룻밤 사이에 모든 활력을 잃어버린 모습이었다.집사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아주 공손하게 유시아에

  • 사랑이라는 죄로   제478화

    조금 전까지 허겁지겁 밥을 먹고 있던 임재욱은 멈칫거리고 말았다.이윽고 고개를 천천히 들어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유시아를 바라보며 물었다.“별거하자는 뜻이야?”“그렇게 생각해도 좋아요.”유시아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머리가 아픈 듯 이리저리 만지작거렸다.“지금 이러한 상황에서 이러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나한테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그 시간으로 시연이한테 집중해도 되잖아요. 나도 마침 어머님 곁에 좀 있어드리고... 서로에게 지금 이게 최우선인 것 같아요.”임재욱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서 낙담한 모습으로 말했다.“그래. 네가 좋다고 하면 그게 좋은 거겠지. 그렇게 하자.”말을 마치고 그는 계속 밥을 먹었다.유시아는 그런 그를 바라보고서 아련하게 웃고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위층으로 올라갔다.이튿날 아침, 유시아는 임재욱이 출근하고 나서야 침대에서 일어났다.일상복 몇 벌과 일상용품을 챙겨 작은 트렁크 안에 놓고 바로 이채련한테 가려고 했다.허씨 아주머니는 트렁크를 들고 내려오는 유시아의 모습에 살짝 당황한 모습이었다.“사모님, 어디 가시는 거예요? 설마... 가출하려는 건 아니죠?”유시아는 허씨 아주머니를 향해 웃었다.“아니에요. 친척분이 좀 위독하신데 제가 옆에서 좀 챙겨드리고 싶어서 가는 거예요. 얼마 걸리지 않을 거고 곧 돌아올 수 있을 거예요.”말을 마치고 트렁크를 들고서 집을 나섰다.이채련이 지내고 있는 병실이 VIP 병실로 널찍한 객실까지 갖춰져 있다.유시아는 간호사에게 접이식 침대와 이불을 요구했고 간단히 정리하고 나니 잘 자리가 아늑하게 마련되었다.이채련은 더 이상 침대에서 내려올 수 없어 하루 24시간을 침대 위에서 보내고 있다.얼굴도 하도 여위어 본연의 모습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그전에도 유시아는 이채련에게 이곳에서 며칠 동안 함께 지내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있지만 이채련은 행여나 자기로 인해 두 사람 사이에 흠이 생기게 될까 봐 동의하지 않았었다.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만으로도 갖은 풍

  • 사랑이라는 죄로   제477화

    임재욱은 핸들을 꼭 움켜쥐고서 앞만 바라보았으나 두 눈에는 고통과 망연함이 가득했다.“시연이 해외에 있을 때, 몹쓸 짓을 당했어. 한번이 아니라 여러 번이나. 그래서 우울증에 걸리게 된 거야.”유시아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볼륨까지 높아졌다.“어머, 어떡해요!”평소에 신시연에 대해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 소식을 듣게 되는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기는 했다.여자에게 있어서 그런 몹쓸 짓을 당한다는 건 치명적인 타격과 치욕이 아닐 수가 없다.게다가 부모님의 일까지 더해지니 조금 전 식당에서 봤던 신시연의 모습이 이해되었다.임재욱은 말하면서 후회와 자책하는 빛을 드러냈다.“그렇게 가고 싶지 않다는 시연이를 내가 억지로 보낸 거야.”그때는 모든 걸 너무 쉽게 생각했었다.낯선 곳으로 가서 마음을 가다듬고 학업에만 집중하면 자연스레 모든 걸 잊고 새로운 삶을 그려나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하지만 임재욱이 잊고 있었던 부분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신시연이 이제 갓 20살을 넘은 꽃다운 여자아이라는 것이다.해외에는 불안정 요소도 많고 미처 생각지 못하는 위험도 많다.게다가 젊은 나이라 자칫 잘못하면 그릇된 길로 들어서기도 아주 위험하고 말이다.신시연 곁에 사람을 함께 보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여 24시간 동안 찰싹 달라붙어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유시아와 결혼하고 나서 신혼에 푹 빠져 있는 동안 신시연에게 더 많은 관심을 주지 않았기에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게 아닌지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지금 임재욱은 신서현에게 미안할 뿐이다. 하나뿐인 동생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으니.하지만 그가 말한 본의와 달리 듣고 있는 유시아는 또 다른 뜻으로 받아들이게 되어 있다.유시아의 기억으로는 신시연이 해외로 보내진 이유는 이러하다.그때 신시연은 정운시 대학교 교내 사이트에 유시아를 먹칠하는 게시글을 올리면서 유시아로 하여금 학업을 이어갈 수도 수업을 들을 수도 없게 악한 상황을 만들었었다.마침 그 일을 소현우가 알게 되면서 유시아에게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