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아는 주방에서 물 한 잔을 따라 그에게 주고는 그의 곁에 앉았다."현우 씨, 결혼식 준비가 다 되었으니, 내일은 우리 아버지를 보러 가고 싶어요, 저랑 함께 가 줄 수 있어요?”그녀는 곧 결혼할 것이고 게다가 이렇게 좋은 남자와 결혼 한다. 그래서 그녀는 이 좋은 소식을 아빠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아버지가 계속 그녀를 보호하고, 심하윤도 보호하며 그녀에게 잘해주는 모든 사람을 보호하게 하기를 기도했다.그녀가 아버지를 언급하자, 소현우는 가슴이 두근거려 무의식적으로 벽에 걸려 있는 유병철의 영정사진을 바라보았다.그는 유시아의 작은 집안에서 자주 왔다 갔다 했지만, 그녀 아버지의 영정사을 볼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드물었다.사진 속 남자의 듬직하고 믿음직스러워 보이는 얼굴 속에는 솔직하기도 하고 정직한 표정이 보였다. 소현우는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그는 약간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알았어."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걱정했다.'그 일이 영원히 세상에 밝혀지진 않겠지? 응, 아닐 거야. 그분은 영원히 그 일을 폭로하지 않을 거야.'-소현우와 유시아의 결혼식은 음력 8월 8일로 정해졌다. 장소는 소현우 명의의 개인 식장이었다.이 결혼식 날짜와 장소는 이 여사가 그들을 도와 선택해준 것이었다. 결혼식도 일찍부터 알렸다. 다만, 초청할 하객은 많지 않았다.필경 이 여사의 마음속에 이 며느리는 결코 자신이 원하는 며느리가 아니었고, 아들과도 어울리지 않았다.청첩장을 받지 못한 임재욱은 우연히 소현우의 SNS 계정에서 그가 공개한 결혼 날짜와 장소, 그리고 한 장의 웨딩사진을 보게 되었다.유시아는 진홍색에 금색 무늬가 있는 수화복을 입고 머리를 묶은 채 예쁜 금비녀를 잔뜩 꽂은 모습은 마치 작은 새가 사람 품에 안긴 듯 두루마기 저고리를 입은 소현우의 품에 안겨있었다.화면을 두 번 눌러 사진을 확대해본 그는 유시아의 작은 얼굴에 띤 미소를 보고 유난히 달콤하다고 느꼈다.임재욱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아련한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에 자신한테
임재욱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말했다."그래요, 마음대로 하세요, 말씀하시는 대로 진행하죠!" 음력 8월 8일...이날은 확실히 나쁜 날은 아니다. 그리고 이날, 두 사람의 오랜 시간 동안의 애증에 대해 완전히 종지부를 찍었다. 그는 다른 여자에게로 장가가고, 그녀는 다른 남자에게로 시집간다. 나중에 먼지는 먼지로 돌아가고, 흙은 흙으로 돌아간다, 다들 각자 상관없는 일이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원망하는 것은 모두 과거이다. 임태훈은 임재욱이 승낙하는 것을 보고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이렇게 중요한 일이 성사된 후에야 비로소 사람들을 식당에 초대하여 식사하면서 신혼집, 그리고 앞으로 함께 생활하는 등 일련의 큰 문제들을 상의하고 있었다. 임재욱은 입맛이 없어서 몇 입 먹지도 못하자 젓가락을 내려놓고 휴지를 찢어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회사에 일이 좀 있어서 제가 돌아가서 좀 처리해야 될 것 같아요, 먼저 일어나겠습니다.천천히 드세요." 말을 마친 임재욱은 할아버지와 여동생, 약혼녀의 가족을 버리고 몸을 돌려 훌쩍 떠났다. 임재욱은 당연히 회사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차를 몰고 유령처럼 거리를 무작정 돌아다녔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졌을 때야 예운 별장으로 갔다. 별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안은 마치 귀신의 집처럼 으스스하고 컴컴해 보였다. 임재욱은 평소에 이곳에서 살지 않는다. 오직 관리회사 사람들만 와서 매주 청소하고 집 안의 꽃과 나무를 관리한다. 신서현의 사진들은 먼지 하나 없이 장롱 위에 놓여 있고, 벽에도 걸려 있다. 그리고 그녀가 좋아하는 프리지어 중 일부는 이미 흰색의 작은 꽃을 피워 생기 넘쳐 보였다. 임재욱은 벽면의 사진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서현아, 난 그녀도 놓아주고 나 자신도 놓았어. 그래도 나를 탓하지 않아?"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텅 빈 방에서 울리는 메아리만 들렸다. 사진에 찍힌 여자의 작은 얼굴에는 변함없는 미소를 머금은 모습이 담겨있었는데 다시는
그녀도 마침내 자신의 집을 갖게 되었다. 이날 밤 유시아는 새벽에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하고 후반에 겨우 두세 시간만 자다가 알람에 놀라 잠에서 깼다. 오늘은 그녀가 결혼하는 날이다. 신부는 늦잠을 잘 권리가 없다. 그녀를 편하게 챙길 수 있도록, 소현우는 특별히 소씨 가문의 도우미 아줌마를 파견했고, 또 그녀를 위해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스타일리스트를 구했다. 유시아는 이미 한 번 결혼한 사람으로서 경험이 있는 데다 손님도 많지 않아 초혼 때처럼 허둥지둥하지 않았고 오히려 신부 들러리단의 도움을 받아 웨딩드레스를 입고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스타일리스트에게 분장을 맡겼다. 한창 화장을 하고 있을 때 심송학이 비서와 함께 왔다. 그를 본 유시아는 놀라워했다."심 아저씨, 어떻게 오셨습니까?" "오늘은 너의 경사로운 날인데, 어떻게 내가 오지 않을 수 있니?" 심송학은 거울에 비친 어여쁜 얼굴과 정갈한 화장을 한 유시아를 보며 슬픈 생각에 잠겼다.'유병철이 살아있었다면 아마 엄청나게 기뻐했겠지?"그는 주머니에서 커다란 빨간색 자수가 있는 돈 봉투 두 개를 꺼내 유시아의 손에 건네주었다."이것은 하윤이가 너에게 주라고 나한테 부탁한 거야. 하윤이는 남자친구와 출국해서 미안하지만 너의 결혼식에 참석할 수 없어. 이것은 아저씨의 마음이니 네가 꼭 받아줬으면 좋겠어!" 결혼식 돈 봉투 등 모든 것이 축복이었다. 유시아는 거절하지 않고, 그에게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아저씨, 감사합니다!" 심송학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응, 얘야, 행복해야 해!" 화장을 마친 유시아가 침대에 앉자 신부 들러리단은 각종 게임을 위한 소품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유시아는 웨딩신발을 숨기고 있었다. 숨긴 후에 특별히 소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현우 씨, 몇 시에 도착할 거예요? 저 이미 웨딩신발을 다 숨겼어요. 때가 되면 빨리 찾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지압 판으로 벌칙을 받을 거예요!" 소현우는 귓가의 나긋나긋한 소리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빙그
신부 들러리단의 각종 게임 코너와 소품들이 다 준비되어 유시아의 방안에 깔끔하게 놓여 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유시아의 화장을 다시 한번 점검하였고 소씨 가문의 도우미 아줌마는 유시아에게 수시로 당부하였는데, 대부분 어른이 매우 중요시하는 각종 결혼식 금기사항이었다. 유시아는 비록 무신론자지만 매우 진지하게 듣고 하나하나 적었다. 결혼은 원래 하나의 뜻깊은 일이다. 결혼식에 관한 모든 것, 비록 약간의 불가사의한 이론이라도 모두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이다! 도우미 아줌마는 말을 끝내고 시간을 보았다."왜 아직도 오지 않으시죠? 사모님, 어서 전화해서 차가 막혔는지 물어보세요." 유시아는 주의를 받고 나서야 문득 생각이 나서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 소현우의 번호로 연결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더는 아무도 받지 않았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왜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지?" "운전하는 것 같아요. 받기가 불편한가 봐요!" 도우미 아줌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희 좀 더 기다려보죠!" 시간이 일분 일 초가 지나가자 유시아는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소현우는 이미 출발했다. 그리고 그는 차가 막힐까 봐 두려워서 자신의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호텔에 미리 묵었다. 만약 차가 막히지 않았다면, 그는 벌써 도착했을 것이다. 만약 차가 막힌다 해도 유시아의 전화를 받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녀는 생각하면 할수록 더 불안해져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현우에게 한 번 더 연락했다. 이번에도 여전히 아무도 받지 않았다. 이미 예정되어 있던 손님맞이 시간이 지난 데다가 소현우의 연락이 계속 두절 상태여서 신부 들러리단에서는 벌써 의견이 분분했다. 유시아의 작은 얼굴은 붉었다가 하얗게 질렸고 수면 부족 원인인지 귓가에도 계속 윙윙거렸다.'왜 아직 오지 않았을까? 설마 날 버린 건가? 현우 씨, 왜 아직도 안 와요? 왜 아직도 데리러 안 오세요? 약속했잖아요, 나한테 장가오겠다고, 가족이 되어주겠다고! 지금 나는 이미 웨딩
유시아는 넋을 잃고 앉아 있다가 휴대전화 벨 소리를 듣고서야 막연하게 고개를 들어 임재욱을 바라보았다. "재욱 씨, 왜 여기에 계세요?" "소현우 씨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던데, 그래서 내가 보러 왔어..." 임재욱은 얘기하면서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시아야, 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벌써 응급실 문이 열렸다. 청록색 응급복을 입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모두 나와 마스크를 벗고 천천히 일어서는 유시아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가서 얘기 나누세요!" 그 가벼운 한 마디는 마치 큰 바위가 내려치는 것 같았다. 유시아는 온몸이 깔린 듯 뼈가 부서지고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녀의 두 무릎은 이미 풀렸는데 임재욱이 손을 뻗어 부축해줘 쓰러지지 않았다. 몇 초 동안 멍해 있다가 그녀는 임재욱을 밀쳐내고 응급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는 피비린내가 진하게 났고, 기계 소리가 그녀의 약해진 신경을 자극했다. 응급 처치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은 하얀 시트를 덮고 눈을 살짝 감은 채 생명이 다한 모습이었다.다만 그는 자신의 신부를 보았을 때 눈에서는 다른 기색이 나타났다. "시아, 시아야..." 오늘은 그들의 결혼식이다. 그는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기로 약속했다. 지금쯤이면 그는 그녀의 규방에서 사방으로 그녀의 신발을 찾고, 그녀에게 반지를 끼워주며, 부케도 선물하고, 그녀를 안고 신부를 태우는 차에 올라타 정운시를 한 바퀴 둘러보고, 다시 결혼식장에 가서 하느님께 엄숙히 선서해야 한다. '소현우는 유시아를 한평생 사랑한다.! 가난하든 질병이 있든 평생 그녀를 떠나지 않겠다! 지금처럼 허약하고 무기력하게 누워서는 안 된다. 지금은 부질없이 눈을 크게 뜨고, 눈앞의 아름다운 여인을 탐욕스럽게 바라볼 뿐이다. "시아야, 너 왔어..." "현우 씨..." 그녀는 점점 체온을 잃어가는 그의 손을 잡고 두 무릎을 지탱할 수 없다는 듯이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마침 이 각도는 소현우가 그를 잘 볼 수 있게 하였다. "시아야, 정말
임재욱은 흰 천으로 몸을 감싼 소현우를 보며 깊게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그는 유시아의 유일한 희망이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죽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그가 죽으면 유시아가 혼자 구차하게 살 수 있겠는가?'"뭐 하러 들어오셨어요?" 유시아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고, 눈빛은 임재욱에게 1초도 머물지 않았다. 그는 건강하게 잘 살아있지만, 그녀의 소현우는 하루를 살아갈 수명도 없어 언제든 죽을 수 있다. "현우 씨, 나 좀 데려가 줄래?" 유시아는 차가워질 대로 차가워진 그의 손을 잡았다. "제발, 나를 두고 가지 마, 현우 씨..." 그녀는 아무것도 없고, 오직 소현우 밖에 없었기 때문에,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만약 그가 없다면, 그녀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녀는 또 외로움을 두려워한다.. "임 대표님..." 소현우는 여전히 탐욕스럽게 유시아의 얼굴에 고정되어 있었는데, 입에서 나오는 말은 오히려 임재욱에게 하는 말처럼 보였다."임 대표님, 나중에 저희 시아를 잘 돌봐주세요. 너무 좋은 사람이에요. 음, 저는 그녀와 어울리지 않아요, 그녀와 결혼할 자격이 없어요, 당신이 그녀를 더 사랑할 가치가 있어요…" 갑자기 심한 통증이 다가오더니 소현우는 눈앞이 캄캄해질 정도로 아팠다. 그의 말투는 이미 똑똑치 않아 두 사람 모두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희미해졌다. 그는 유시아를 보며 아련하게 웃더니 이내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렇게 하자.모든 것의 좋고 나쁨은 앞으로 그를 따라 땅에 묻어 편히 잠들수있게. 이 세상에 더이상 소현우라고 불리는 사람은 없다! 몇십 년이 지나면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시아야, 미안해, 내가 끝내 너를 속였어! 나 때문에 슬퍼하지 마, 나는 자격이 없어.'그가 눈을 감고 있는 것을 바라보던 유시아는 마치 정신을 잃은 듯 그의 어깨에 손을 내밀었다. "현우 씨, 얼른 일어나요, 자지 말아요. 오늘 우리 결혼하잖아요, 내가 웨딩드레스를 입었는데, 당신은 왜 늦잠을 자고 있어요? 자지 말
만약 그의 무거운 표정이 아니고 이 병원 환경이 아니었다면, 언뜻 보기에 오늘 결혼하려는 사람은 그녀와 소현우가 아니라 임재욱 같았다.간호사는 재빨리 유시아에게 수액을 걸어주었다. 링거를 맞은 왼손에는 다이아몬드 반지가 끼워져 있지 않았다. 그들의 결혼반지는 잠시 신부 들러리단에게 맡겨 보관하다가 결혼식 때 반지를 교환할 때 소현우가 직접 끼워줄 계획이었기 때문이었다.현재 유시아의 왼손 손목에는 흰색 꽃 팔찌만 있고 팔찌에는 예쁜 레이스 테두리가 달려 있었다. 전형적인 공주님 스타일이었다.간호사는 레이스가 거추장스러운 그녀의 팔찌를 잡아당겼다. 임재욱은 막으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팔찌를 자신의 손에 쥐는 수밖에 없었다. 비록 아무 소용이 없었지만, 그는 여전히 버리기 아까웠다. 마침내 주위가 조용해지자 임재욱은 의자에 기대어 손으로 쑤신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오늘에 있었던 사건은 정말 그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유시아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까?첫 번째 결혼식에서, 임재욱이 감옥에 보내진 후, 그녀의 마음은 완전히 싸늘해졌다. 소현우는 줄곧 그녀의 곁에 있어 줘 그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해줘서, 그녀는 비로소 그와 결혼할 것을 다짐했다.두 번째 결혼식에서, 소현우는 아예 그의 신부를 버리고 하늘나라로 가버렸다.이번에도 유시아가 과연 걸어 나올 수 있을까? 임재욱은 눈살을 찌푸리고 이 사건을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짜증 났다. 그는 손을 내밀어 주머니에서 담배를 만지작거리며 한 대 피우려고 하다가 혹시 유시아에게 담배 연기를 옮길까 봐 다시 답답하게 끼워 넣었다. -오늘 정운시에서는 원래 두 가지 큰 경사가 있었다. 하나는, 소 씨 그룹의 대표인 소현우가 결혼하는 것인데, 비록 아내와 소현우의 집안 형편이 비슷하진 않지만 소현우는 아무리 집안에서 반대해도 그녀를 진심으로 원했다.다른 하나는, 임씨 가문의 장손, 임재욱과 정씨 가문의 아가씨와 약혼하는 것이다. 신랑은 유능하고 신부는 아
강석호는 임재욱의 뒷모습을 보더니 머뭇거리다 덩달아 따라갔다."임 대표님..." 임재욱은 반쯤 가다가 뭔가 생각난 듯 다시 몸을 돌려 병실로 돌아와 손을 뻗어 유시아의 팔에 꽂힌 주삿바늘을 뽑고 그녀를 안고 밖으로 나갔다.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그는 그녀를 혼자 병원에 내팽개칠 수 없었다. 강석호는 묵묵히 그의 행동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대표님께서 지금 유 아가씨를 끌어들이면, 그녀를 해칠 수도 있어요." 알고 보니 임태훈은 임재욱이 유시아와 매우 친하게 지내는것 때문에 일찍이 불만을 품고 있었다. 게다가 임재욱이 오늘 공공연히 유시아를 위해 파혼을 했고, 임 씨와 정 씨 두 가문의 체면을 지켜주지 않았다. 이제 임태훈이 유시아를 죽일 마음까지 가질까 봐 걱정이다.만약 지금 임재욱이 다시 유시아와의 관계를 정리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임태훈을 더욱 격노하게 할 것이다.임재욱이 아직 대우 그룹과 임씨 가문의 실권을 장악하기도 전에 임태훈과의 사이가 틀어진다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을 것이다.임재욱은 유시아의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더니 비로소 말했다."내가 그녀를 끌어들이지 않는다고 해도 그녀는 마찬가지로 죽을 거야!" 그녀의 모든 사랑과 희망은 소현우에게 달려 있다. 지금 소현우는 죽었다. 게다가 그들의 결혼식에서 죽었다. 이것은 유시아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재난에 그치지 않았다.그녀는 원래 그다지 강한 사람이 아니었고, 자살할 생각을 하지 않은 것도 아니어서 임재욱이 그녀를 지켜보지 않으면 그녀가 정말 무슨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를까 걱정하는 것이었다.임재욱은 이미 그녀를 한 번 포기했으니, 두 번은 절대 없을 것이다.그는 임시아를 자신의 차에 태워 그린레이크로 데려가 그녀에게 약을 먹였다. 결국, 지금 그녀로서는 잠들어 있는 것이 깨어 있는 것보다 나았다. 적어도 고통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게다가 소현우는 임재욱과 전화통화를 할 때 교통사고가 났는데, 이는 늘 임재욱더러 소현우의 죽음과 유시아의 비극에 그
늦은 밤, 유시아의 카카오톡을 받았을 때 임재욱은 병원에 있었다.신시연은 도우미의 도움을 받으며 진료실에서 여러 검사를 받았고 그동안에 임재욱은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늦은 밤의 사립 병원이라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당직을 서는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외에 거의 사람이 없이 무척이나 쓸쓸해 보였다.임재욱은 복도를 한참이나 누비다가 의자에 걸터앉았다.유시아를 병원으로 바래다주고 돌아서는 길에 신시연의 전화를 받고서 오게 된 것이다.배가 아프다고. 당장이라도 죽을 듯이 아프다고.신시연은 며칠 전에 병원에서 여러 번 신체검사를 받았으나 해외에서 그러한 몹쓸 짓을 당하며 우울증과 부인병이 있는 외에 다른 수치들은 정상 범위 안에 있었다.그 말인즉슨,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재욱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신시연에게 남은 ‘가족’이라고는 임재욱 하나뿐이니 어찌 됐든 그녀를 잘 지켜야 하는 마음뿐이었다.그 누구에게도 다시는 상처를 받지 않게끔.바로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하여 임재욱은 그녀를 직접 병원까지 데리고 오고 의사 선생님 입에서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확답을 듣고 나야만 마음이 놓일 수 있다.애타게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핸드폰 알림 소리가 울렸다.유시아가 보낸 카카오톡인데,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보고 싶어요.]임재욱은 고개를 숙인 채 카톡 내용을 거듭 곱씹으며 유시아 사진으로 되어 있는 그녀의 프로필 사진을 바라보며 입꼬리가 주체하지 못하고 자꾸 올라갔다.‘내가 보고 싶어? 별거한 지 하루 만에 벌써 내가 보고 싶은 거야?’‘우리 시아 이제 제법 솔직하네.’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어떻게 답장할지 생각하고 있을 때 응급실 문이 열렸다.도우미 김향화가 얼굴에 핏기 하나 없는 신시연을 부축하고 걸어 나왔다.신시연은 디자인이 아주 심플한 데님 스커트를 입었고 윤기가 별로 없어 보이는 머리를 돌돌 말아 묶어 올렸다.무척이나 초췌해 보이는 것이 가여운 느낌도 물씬 풍기고 있어 기고만장했던 그
유리 구두를 품속에 꼭 안고 있는 유시아를 보고서 임재욱은 순간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참으로 달래기 쉬운 여자라는 것을.특히 결혼하고 나서 아주 살짝만 잘해주어도 유시아는 아주 오랫동안 기뻐하는 것만 같았다.유시아는 늘 임재욱 앞에만 서면 스스로 자세를 낮추고 자기를 낮은 위치에 놓는 데 습관 되어 있다.임재욱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정수리에 뽀뽀했다.“앞으로 매년 생일마다 예쁜 유리 구두 선물해 줄게. 어때?”“좋아요.”유시아는 말하면서 아주 유치하게 그를 향해 손가락을 내밀었다.“손가락 걸고 약속해요. 절대 어기지 않겠다고.”백화점에서 나온 두 사람은 일단 화실로 향했다.새로 구매한 공예품을 적당한 자리에 올려놓고 유시아의 제안으로 이채련의 병원까지 바래다주었다.유시아는 자기가 뱉은 말은 어떻게든 지키는 타입이라 이채련과 이미 약속했으니 꼭 지켜야 했다.하물며 자식도 없는 이체련에게 마지막 이 시간들이 더더욱 외로울 것이다.외부인들이 보기에도 불쌍할 정도로 외롭다.임재욱이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었고 이채련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다고 하니 마음은 내키지 않았지만 보내주었다.차는 곧 사립 병원 앞에 멈춰 섰고 임재욱은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유시아는 차창에 대고 거듭 강조했다.“유리 구두랑 드레스들 옷방에 고이 모셔두도록 해요. 마구 놓지 말고요.”“알았어.”임재욱은 말하고서 손을 내밀어 그녀의 목을 확 잡고서 찐한 키스를 남기고 나서야 순순히 놓아 주었다.“얼른 가 봐.”“조심해서 가요.”임재욱은 조수석에 앉아 한결 가벼워진 그녀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보고서야 시선을 거두고 집으로 향하려고 했다.가는 길에 갑자기 신시연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오빠, 배가 너무 아파요.”...병실로 돌아와 보니 이채련은 아직 자고 있지 않았다.침대에 멍하니 누워 재미가 일도 없는 예능 프로를 보고 있었다.유시아가 문을 밀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이채련은 놀라고도 기뻤다.“시아야, 늦은 시간에 웬일이야?”유시아
쇼핑은 늘 설레는 일이다.유시아는 자기 취향대로 화실 장식품으로 쓰일 공예품을 골랐다.이윽고 임재욱은 또 유시아를 데리고 근처에 있는 매점으로 향했다.지난번에 두 사람은 함께 쇼핑하면서 많은 옷을 샀었지만, 신서현 부모님께 갑작스러운 상황이 일어나면서 유시아는 그 모든 옷을 모조리 청소 아주머니에게 줘 버렸다.그때의 아쉬움을 채워주기 위해 임재욱은 또다시 쇼핑하려고 한 것이다.게다가 다음 주면 대우 그룹 상장 20주년이다.정식적인 석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 유시아를 자기 아내 신분으로 남에게 소개해 주고 싶어 이브닝 파티에 어울릴만한 드레스와 신발을 살 예정이다.드레스는 그럭저럭 큰마음이 가지 않았는데, 유시아는 그 신발이 마음에 들었다.은백색의 하이힐로 예쁜 보석들로 가득 박혀 있어 매점 불빛 아래서 유난히 반짝이는 것이 신데렐라 동화에 나올 법한 유리 구두 같았다.매점 직원은 유시아가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을 보고 바로 다가왔다.“손님 안목이 참 좋으시네요. 이 제품은 저희 디자이너 선생님의 최신 디자인으로 지금 딱 한 켤레만 있습니다. 만약 이 신발을 신고 나가신다면...”임재욱은 갑자기 직원의 말을 끊어버렸다.“이미 결혼했고요. 이 사람은 제 아내예요.”유시아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는데, 자기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그를 보고서 따라서 웃었다.“맞아요. 이 사람이 제 남편이에요.”매점 직원은 멍하니 있다가 바로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베스트 쇼핑 가이드다운 실력을 드러냈다.“어머, 어쩐지 너무 어울리신다 했어요...”직원의 칭찬에 두 사람은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이윽고 매점 직원은 분위기를 파악하며 유리 구두에 대해 더욱 디테일한 설명을 첨부하기 시작했다.“이 제품의 새끼 양가죽으로 만들어졌으므로 착용감이 엄청 좋으실 거예요. 하루 종일 신고 걸으셔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말이죠. 게다가 우리 디자이너 선생님이 즉흥으로 만들어내신 작품이라 절대 똑같은 제품을 시중에서 보실 수 없을 거예요.”한 켤레일 뿐만 아니라 사이
한서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내가 뭐?”“한서준 씨는 당당해요?”유시아는 바로 질문을 질문으로 돌려주었다.“임씨 가문에 접근한 그 의도를 다른 사람들이 모를 것 같아요? 할아버지, 재욱 씨 그리고 나까지 똑똑히 알고 있어요. 청아 씨만이 한서준 씨를 사랑해서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거라고요. 그렇게 쭉 모르는 척을 하며 모든 걸 감당하고 있었던 거라고요. 한서준 씨 역시 청아 씨를 이용한 게 아닌가요?”마지막 한 마디에 한서준은 침묵하고 말았다.그렇다. 임청아에게 접근한 이유는 유시아가 ‘스파이’로 움직여 주지 않겠다고 거절했기에 어리석어 보이는 임씨 가문 천금을 노리게 된 것이다.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것은 결국 변하게 되어 있다.임청아 대한 마음은 모략에서 시작했으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마음이 점점 사랑으로 끝을 맺게 된 것이다.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띠고 다가왔던 임청아가 어두운 자신의 삶을 밝게 비춰주는 것만 같았다.따라서 한서준은 임청아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차츰 생기게 된 것이다.임태훈이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꼭 자기 곁으로 데리고 오고 싶었다.“청아 씨 지금 몸도 마음도 상처투성이에요.”“만약 청아 씨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면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하는 게 좋을 거예요.” 말을 마치고 유시아는 차 문을 밀고 차에서 내려 병원 밖으로 걸어갔다.택시에 오른 유시아는 긴 망설임 끝에 끝내는 더 스케치 화실 주소를 운전 기사에게 알렸다.차는 화실 맞은 편에 세워졌고 유시아는 화실 바로 맞은편에 있는 커피숍으로 들어가 창가 자리에 앉았다.화실 안의 상황을 바로 체크할 수 있고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최적의 위치라고 할 수 있다.한참 지나고 나서야 수많은 경호원들이 임태훈을 사이에 두고 화실에서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임태훈은 벤틀리에 올라 강한 기운을 남기고 자리를 떠나버렸다.유시아는 그제야 한시름을 놓고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고는 바로 화실로 향해 달려갔다.화실 안과 밖은 겉은
전화를 마치고 유시아는 혼자 밖에 없는 휴게실을 보고서 깊은 번뇌에 잠겼다.남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임태훈처럼 막무가내로 어처구니가 없는 노인이 있다는 게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임태훈이 끔찍이 여기는 임청아를 유시아가 계단에서 밀어버린 것도 아닌데, 왜 애꿎은 자기 화실을 닫으려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집안 내부에 문제가 생기면 일단 스스로 반성하는 법부터 배워야 하는데, 그게 무엇이든 일단 남한테서 문제를 찾고 있으니, 권력을 믿고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이 분명했다.유시아는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복잡해졌고 불안함도 점점 커졌다.지금 운영하고 있는 더 스케치 화실도 용재휘가 먼저 시작한 것인데, 그와 더불어 학생들까지 모두 함께 넘겨주었는데, 만약 이대로 화실을 망쳐버린다면 용재휘에게 너무 미안할 것 같았다.임재욱과 임태훈이 어느 정도로 얘기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화실이 그들 싸움의 희생물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임재욱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묻고 싶었으나 감히 그럴 용기가 없어 일단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떨리는 심장을 부여잡은 채로.그렇게 한참이나 심장을 조이고 있었지만, 걸려 오는 전화는 없었다.유시아는 일이 어느 정도 망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학생 채팅방에 오늘 갑자기 일이 있다며 수업을 뒤로 미룬다고 알렸다.언제 다시 수업을 시작할지는 소식을 기다리라며 덧붙이기까지 했다.톡을 보내고서 유시아는 더 이상 핸드폰을 보지 않고 바로 병원 밖으로 나갔다.그러나 병원 대문을 나오자마자 한서준이 정면에서 오고 있었다.“유시아.”유시아는 고개를 들었고 그를 보게 되는 순간 정신이 아찔해 났다.직감이 알려주건대, 절대 좋은 일이 없다는 것이다.화실의 생존 여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의 심기까지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한서준은 쉽사리 유시아를 놓아 주지 않았고 손을 내밀어 유시아의 손목을 꼭 잡았다.“물어볼 일이 있어.”말하면서 근처에 있는 지프차를 가리켰다.“차에 타서 얘기 하자.”“그쪽이랑 할 말
유시아는 그 말을 이어받지 않고 집사의 바람대로 타이르기 시작했다.“몸이 아직 많이 허약해요. 먹고 싶지 않아도 억지로라도 좀 먹어야 하거든요. 일이 어찌 됐든 일단 건강부터 챙겨야 해요.”임청아 그 말을 듣고서 쓴웃음을 지었다.“건강 회복되면 할아버지한테 잡혀가서 집에 감금되는 것밖에 더 있겠어요?”“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유시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덧붙였다.“어찌 됐든 할아버지 마음은 한결같을 거예요. 청아 씨를 아끼고 사랑하는 거요. 서로 대화가 필요한 거 같아요. 서로 터놓고 얘기하고 나면 오해가 풀리고 마음도 풀리면서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예요.”임청아의 입가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아이 낳고 나면 할아버지도 서준이도 원한을 내려놓고 행복만 할 수 있다고요.”“근데 이렇게 몸도 아끼지 않고 점점 더 막무가내로 나가면 두 사람 사이의 원한은 점점 더 짙어질 거예요.”유시아는 말하면서 도우미 손에서 보신탕을 가져와 천천히 불며 임청아의 입가로 가져갔다.임청아는 생각 밖으로 무척이나 순순하게 유시아의 말을 따랐고 그녀의 말에 이치가 있는 것 같아 조용히 보신탕을 받아 마셨다.도우미와 집사는 두 사람이 티키타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것을 보고 서서히 마음이 놓였다.임청아가 뭐라도 먹기 시작하여 자기도 모르게 한시름을 놓으며 자리까지 비켜주려고 했다.두 사람이 마음 편히 말할 수 없을까 봐 눈치껏 일어서려는 것이다.“작은 사모님, 아가씨와 천천히 얘기하고 계세요. 밖에 나가 있을 테니 필요한 거 있으시면 언제든지 부르시고요.”“네, 가보세요.”도우미 일행이 나오고 나서야 유시아는 본론으로 들어갔다.“한서준 씨는 알고 있어요?”임청아는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그런다고 숨겨질 일도 아니잖아요.”요즘 임태훈뿐만 아니라 한서준도 눈을 부라리고 임청아를 찾고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을 피하고자 아파트도 호텔도 들어갈 수 없었고 버려진 강아지처럼 유시아 화실에 몸을 숨기고 지낸 것
임청아 이름 석 자가 임재욱의 입에서 나오자, 유시아는 순간 청천벽력을 맞는 것만 같았다.심지어 지금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한참 지나고 나서야 겨우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물었다.“청아 씨가 왜 병원에 있는 거죠?”임청아는 임신한 것을 알고 매사에 조심하며 걸음 하나도 천천히 옮겼었다.게다가 해외에 있는 친구와 연락하여 해외로 떠날 준비까지 마쳤다고 했었다.그런데 관건이 되는 순간에 계단에서 굴러떨어졌다고?“할아버지를 너무 쉽게 생각한 거 아니야?”임재욱은 말하면서 차갑게 웃었다.“네 화실에 청아 숨겨 놓았잖아. 할아버지께서 그걸 과연 모르고 있었을 것 같아? 오늘 화실로 청아 데리러 갔었는데, 가지 않겠다고 청아가 하도 우기는 바람에 억지로 묶어서라도 데리고 가겠다며 서로 실랑이를 벌이다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거야.”그렇다면 아이를 유산했을지도 모른다.임태훈의 습관에 따라 생각해 본다면 이 화살은 결국 유시아에게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임재욱이 그렇게 경고하였건만 유시아는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다.약해지는 마음에 언젠가는 구렁이에 빠지게 될 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날이 바로 오늘 일 줄은 몰랐다. 임재욱은 한숨을 내쉬며 꾸짖고 싶은 마음을 겨우 억눌렀다.“병원 주소 보내줄 테니 얼른 가 봐.”말을 마치고 임재욱은 전화를 끊어버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고 운전 기사에게 새로운 목적지를 알려주었다.같은 시각, 병원 안에서.임청아는 이미 수술을 마쳤고 일반 병실로 옮겨져 있었다.이미 가문의 집사와 간호인이 옆에 있었고 병실 문 앞에는 임태훈이 보낸 경호원도 있었다.다만 경호원이 경계해야 할 상대는 유시아가 아니라 한서준이다.따라서 유시아는 별다른 막힘없이 바로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병상에 누워 있는 임청아는 얼굴에 핏기 하나 없었고 초점을 잃은 두 눈으로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불과 하룻밤 사이에 모든 활력을 잃어버린 모습이었다.집사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아주 공손하게 유시아에
조금 전까지 허겁지겁 밥을 먹고 있던 임재욱은 멈칫거리고 말았다.이윽고 고개를 천천히 들어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유시아를 바라보며 물었다.“별거하자는 뜻이야?”“그렇게 생각해도 좋아요.”유시아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머리가 아픈 듯 이리저리 만지작거렸다.“지금 이러한 상황에서 이러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나한테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그 시간으로 시연이한테 집중해도 되잖아요. 나도 마침 어머님 곁에 좀 있어드리고... 서로에게 지금 이게 최우선인 것 같아요.”임재욱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서 낙담한 모습으로 말했다.“그래. 네가 좋다고 하면 그게 좋은 거겠지. 그렇게 하자.”말을 마치고 그는 계속 밥을 먹었다.유시아는 그런 그를 바라보고서 아련하게 웃고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위층으로 올라갔다.이튿날 아침, 유시아는 임재욱이 출근하고 나서야 침대에서 일어났다.일상복 몇 벌과 일상용품을 챙겨 작은 트렁크 안에 놓고 바로 이채련한테 가려고 했다.허씨 아주머니는 트렁크를 들고 내려오는 유시아의 모습에 살짝 당황한 모습이었다.“사모님, 어디 가시는 거예요? 설마... 가출하려는 건 아니죠?”유시아는 허씨 아주머니를 향해 웃었다.“아니에요. 친척분이 좀 위독하신데 제가 옆에서 좀 챙겨드리고 싶어서 가는 거예요. 얼마 걸리지 않을 거고 곧 돌아올 수 있을 거예요.”말을 마치고 트렁크를 들고서 집을 나섰다.이채련이 지내고 있는 병실이 VIP 병실로 널찍한 객실까지 갖춰져 있다.유시아는 간호사에게 접이식 침대와 이불을 요구했고 간단히 정리하고 나니 잘 자리가 아늑하게 마련되었다.이채련은 더 이상 침대에서 내려올 수 없어 하루 24시간을 침대 위에서 보내고 있다.얼굴도 하도 여위어 본연의 모습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그전에도 유시아는 이채련에게 이곳에서 며칠 동안 함께 지내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있지만 이채련은 행여나 자기로 인해 두 사람 사이에 흠이 생기게 될까 봐 동의하지 않았었다.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만으로도 갖은 풍
임재욱은 핸들을 꼭 움켜쥐고서 앞만 바라보았으나 두 눈에는 고통과 망연함이 가득했다.“시연이 해외에 있을 때, 몹쓸 짓을 당했어. 한번이 아니라 여러 번이나. 그래서 우울증에 걸리게 된 거야.”유시아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볼륨까지 높아졌다.“어머, 어떡해요!”평소에 신시연에 대해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 소식을 듣게 되는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기는 했다.여자에게 있어서 그런 몹쓸 짓을 당한다는 건 치명적인 타격과 치욕이 아닐 수가 없다.게다가 부모님의 일까지 더해지니 조금 전 식당에서 봤던 신시연의 모습이 이해되었다.임재욱은 말하면서 후회와 자책하는 빛을 드러냈다.“그렇게 가고 싶지 않다는 시연이를 내가 억지로 보낸 거야.”그때는 모든 걸 너무 쉽게 생각했었다.낯선 곳으로 가서 마음을 가다듬고 학업에만 집중하면 자연스레 모든 걸 잊고 새로운 삶을 그려나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하지만 임재욱이 잊고 있었던 부분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신시연이 이제 갓 20살을 넘은 꽃다운 여자아이라는 것이다.해외에는 불안정 요소도 많고 미처 생각지 못하는 위험도 많다.게다가 젊은 나이라 자칫 잘못하면 그릇된 길로 들어서기도 아주 위험하고 말이다.신시연 곁에 사람을 함께 보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여 24시간 동안 찰싹 달라붙어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유시아와 결혼하고 나서 신혼에 푹 빠져 있는 동안 신시연에게 더 많은 관심을 주지 않았기에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게 아닌지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지금 임재욱은 신서현에게 미안할 뿐이다. 하나뿐인 동생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으니.하지만 그가 말한 본의와 달리 듣고 있는 유시아는 또 다른 뜻으로 받아들이게 되어 있다.유시아의 기억으로는 신시연이 해외로 보내진 이유는 이러하다.그때 신시연은 정운시 대학교 교내 사이트에 유시아를 먹칠하는 게시글을 올리면서 유시아로 하여금 학업을 이어갈 수도 수업을 들을 수도 없게 악한 상황을 만들었었다.마침 그 일을 소현우가 알게 되면서 유시아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