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오자, 서정원은 우뚝 멈춰서서 머리를 돌렸다. 침대 위에 누워있던 남자는 어느샌가 정신을 차리고 잔뜩 찌푸려진 미간과 깊은 두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꾹 닫은 얇은 입술은 감히 접근하지 못할 차가운 느낌을 더해 줬다.서정원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조금 전에 차 사고가 일어나서 제가 함께 병원으로 왔어요.”“그게 사실이에요?”남자의 의심하는 듯한 눈빛에 서정원은 머리를 끄덕였다.“네, 걱정하지 마세요. 병원에 오자마자 정밀검사를 했는데 큰 문제 없대요. 이제 가족한테 연락하세요
손윤서는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백유란과 함께 서정원의 앞으로 걸어갔다.“이 넥타이는 제가 찜했어요!”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와서 머리를 들자, 오만한 자태로 머리를 쳐들고 있는 손윤서와 백유란이 서정원의 시선에 들어왔다.직원은 약간 난감한 표정으로 손윤서를 향해 조심스럽게 말했다.“죄송하지만 이 넥타이는 먼저 오신 고객분께서 보고 계셨는데...”“두배의 가격을 줄게요!”손윤서가 서정원을 죽어라 노려보며 말했다. 그녀는 RD 명품샵에서 서정원이 드레스를 선수 친 일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는 대신 나서줄 사람
“당장 비켜요!”백유란이 계속 길을 비켜주지 않자, 서정원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녀를 곁으로 밀어내고는 문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오늘이 외출하면 안 되는 재수 없는 날이라도 되는지 하필이면 이 두 사람을 만나 기분이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진 참이었다.서정원이 몇 발짝 가지도 못했을 때, 손윤서와 백유란이 귀신처럼 쫓아가며 소리를 질렀다.“서정원 씨, 거기 서요!”“또 뭔데요?”서정원은 누가 들어도 짜증 가득 섞인 말투로 말하며 멈춰 섰다.‘사람을 귀찮게 하는 데는 아주 도가 텄네, 도가 텄어.’백유란은
임창원은 친구와 밥 약속이 있어서 상가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HN 명품샵 앞에 사람이 잔뜩 모여 있는 것을 보고서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머리를 돌렸다. 그리고 인파 속에 묻힌 채 표적이 된 듯한 여자가 서정원과 비슷하게 생겼다는 것을 발견했다.임창원은 우뚝 멈춰서서 명품샵을 향해 걸어갔다. 가까이에서 확인해 보니 그 여자는 틀림없이 서정원이었다. 아무래도 손윤서와 백유란이 생트집을 잡고 있는 듯했다.서정원이 백유란의 옷을 쥐어뜯을 위인이 아니라는 것쯤은 임창원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서정원을 곤경에서 꺼내주기 위해 안으
서정원은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머리를 돌렸다. 갑자기 끼어든 사람은 다름 아닌 오청연이었다.‘오청연? 오청연 씨가 뭘 증명한다는 거지?’서정원은 약간 의아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오청연이다! 피아니스트 오청연이다!”기자 한 명이 오청연을 알아보고는 흥분에 겨운 목소리로 말했다.“오청연 씨, 혹시 서정원 씨가 백유란 씨의 옷을 찢었다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뜻인가요?”자신을 향해 마이크를 들이미는 기자를 보고 오청연은 우아한 자태로 머리를 끄덕였다.“네.”“조금 전의 상황을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기자들은
최성운의 아우라는 아주 강했다. 백도겸도 두말없이 굽신거릴 정도로 말이다.“네, 대표님.”백도겸은 관제실로 돌아가 CCTV 영상을 완벽히 삭제했다는 것을 재차 확인하고 나서야 USB 메모리에 담아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몇 분 후 명품샵으로 돌아가 최성운에게 건네줬다.“대표님, 요구하신 CCTV 영상입니다.”얼음장같이 차가운 최성운의 얼굴에 백도겸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최성운을 상대하게 될 줄 알았더라면 백유란의 부탁을 들어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말았으면 좋겠는데...’최성운은 USB 메
“아, 아니에요!”백유란은 눈을 팽글팽글 돌리더니 또다시 잡아떼기 시작했다.“사실 저도 옷이 언제 찢어졌는지 몰라요. 저랑 말다툼한 적 있는 사람은 서정원 씨뿐이니까, 서정원 씨를 범인으로 여겨도 이상할 건 없잖아요. 저는 일부러 서정원 씨를 모함하려던 게 아니에요.”백유란은 절대로 질 수 없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서정원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는 건 더더욱 불가능했다.“그래요?”서정원은 작게 미소를 짓더니 몸을 일으켜 백유란의 앞으로 다가갔다.“제가 스스로 옷을 찢었다는 증거도 없잖아요!”백유란은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백유란 씨, 이제는 할 말 없죠?”서정원은 예리한 시선으로 백유란을 직시하며 또박또박 말했다.“무. 릎. 꿇. 고. 사. 과. 해. 요.”백유란은 이를 꼭 깨물었다. 새빨간 눈에 찡그러진 얼굴은 퍽이나 보기 좋았다.“어디서 감히 저한테 무릎 꿇으라 말라 하는 거예요! 꿈도 꾸지 마요!!”망신이라면 이미 충분히 많이 당했기 때문에 백유란은 절대 무릎을 꿇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더구나 서정원에게는 그럴 만한 자격이 없었다.“약속을 어기는 것은 좋은 습관이 아니에요.”서정원은 피식 웃으며 백유란을 향해 걸어갔다. 막강한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