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계집애를 생각하니 왕청여는 또 다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시어머니의 친척 조카로, 남편의 첩이 된 후 돼지마냥 아들과 딸을 쑥쑥 낳았고, 심지어 지금도 임신 중이었다. 곧 출산 예정이라 지금 돌아가면 고통만 더할 게 분명했지만 어머니께서 명령을 내리셨으니 어쩔 수 없이 돌아가야 했다. 친정으로 가겠다고 위풍당당하게 나왔지만 그 누구도 그녀를 데리러 오지 않았다. 결국 이렇게 혼자 돌아가야 하는 것이 너무나 수치스럽게 느껴졌다. 전소환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아들과 딸을 낳고도 또다시 출산을 앞두고 있는 그 계집을 조금은 어리석어 보이지만, 젊고 아름다운 전소환이 상대하게 한다면 자신은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전소환이 미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고얀 것! 모두가 교얀 것들이다!’가의군주는 결국 그렇게 돌을 들어 자신의 발을 찍은 격이 되었다.반면, 눈을 감고 있는 장공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연왕이 시씨 가문의 여인을 후처로 맞이하려는 것이다. 그것도 연왕비가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정해진 혼사였다. 시씨 가문은 권력과 병무와 무기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맞이하려는 시씨 가문의 그 여인이 가문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마침, 평서백 왕표의 딸도 이제 혼인을 할 나이가 되었으니 만약 연왕의 장남인 사여령이 그녀를 아내로 맞이한다면, 왕가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왕표는 현재 북명군과 송가군을 지휘하고 있으니 말이다.또한 옥영과 옥경 두 현주의 혼사도 진성의 공신 가문과 연결시키면 된다. 그러면 혼인을 통해서라도 중요한 인물들을 충분히 끌어들일 수 있다. 이제는 그들이 돌아올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녀는 가의 군주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시간을 들여 계획을 세워야 했다.손님들이 떠나면서 떠들썩하던 북명왕부는 다시 고요해졌다.하인들은 뒷정리했고, 송석석은 혜태비를 방으로 모셨다. 오늘 너무
고집을 부리던 사여묵은 어머니를 가볍게 밀어내고 한 손으로 송석석의 손을 낚아챘다.“방금 당신이 내게 측실을 들이겠다는 말을 들었소. 이리 오시오. 아주 단단히 혼쭐을 내줄테니!” 말을 마친 그는 송석석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그 모습을 본 혜태비는 화들짝 놀랐다.그저 한 번 언급한 것 뿐인데 저렇게 날뛰니 단단히 미쳐버린 것 같았다.“유모, 어서 따라가 보거라!” 혜태비는 마음이 급했다. “정말로 때리기라도 한다면 난 언니에게 뭐라고 하냔 말이다. 석석이를 가장 아낄텐데…” 그러자 고 씨 유모가 한숨을 쉬었다.“제가 어떻게 감히 따라가겠습니까? 태비께서도 장공주와 덕귀 태비의 말을 들으시고 장군께 측실을 맞이하게 하려 하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노비인 제가 따라가기라도 한다면 장군을 더욱 화나게 할 것입니다. 보아하니 왕비께서 맷집이 좋은 것 같사오니 부디 염려하지…” “어리석다! 아내는 때리려고 맞이하는 거라고 누가 그러더냐? 네가 가지 않으면, 내가 가겠다.” 그러자 고 씨 유모가 급히 그녀를 막아섰다.“알겠사옵니다. 장군께서는 염 선생의 말을 잘 들으시니 노비가 염 선생을 모셔 오겠습니다.” “어서 서두르거라!” 마음이 급했던 혜태비는 책상까지 두드리며 재촉했다. 아름다운 송석석의 얼굴에 상처가 하나라도 난다면... 혜태비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아팠다.송석석을 끌고 태비의 앞마당을 벗어난 사여묵은 바로 그녀를 들쳐멨다.순간, 송석석은 비명을 질렀고, 그 소리를 들은 혜태비는 하늘과 땅이 맞붙는 듯한 압박감이 몰려왔다. 맙소사, 정말로 때리는 것인가? 두려운 마음에 계속속 고 씨 유모를 밀며 재촉했다. “아직도 가지 않고 뭐 하느냐? 당장 움직여라!” 고 씨 유모가 서둘러 밖으로 나갔으나, 그들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아 뜰 안을 한 바퀴나 돌았다. 비록 태비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장군은 일부러 그렇게 화를 낸 것이었다. 이는 태비에게 측실 이야기를 집안에서 꺼내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왕비가
오늘 하루 너무 바쁘게 움직였고 날씨도 더웠기에 샤워를 꼭 해야했다.사여묵은 송석석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그녀의 귀가에 속삭였다.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너무나 유혹적이었다. “딱 좋군, 함께 씻으면 되겠소.” 송석석은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약간 의아해했다. “매일 밤 사랑을 나누는데 왜 아이가 생기지 않는 걸까요?” “빨리 아이를 갖고 싶단 뜻이오?” 그녀를 안은 사여묵은 욕실로 성큼성큼 들어가 갑자기 그녀의 겉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런 건 아니고, 그저 궁금할 뿐입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두 분이 혼인하시고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임신하셨다고 하셨거든요.” “나는 굳이 아이를 빨리 가질 필요는 없다고 보오.” 사여묵은 드디어 그녀의 매혹적인 어깨선을 볼 수 있었다. “얼마 전에 단신의에게 약을 부탁했소. 당신도 전장에서 부상을 입었으니 충분히 회복된 후에 다시 얘기하기오.” 송석석은 눈이 휘둥그레졌다.“피임약을 먹고 있단 말입니까? 그 약은 몸에 해롭다고 들었습니다만.” “여자도 먹을 수 있는 걸 남자가 못 먹는단 법은 없소.” 사여묵은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당신은 몸도 안 좋은데 임신하지 못하게 하려고 피임약을 먹일 수는 없소. 단신의께서도 여자는 기와 혈을 기르는 것이 쉽지 않다 하셨소. 만약 당신에게만 피임하도록 한다면 그동안 기른 것들이 모두 허사가 될뿐만 아니라 몸에도 해가 될 것이오.” 송석석은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여묵의 태도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녀는 피임약을 자처하는 남자를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정실부인이 피임약을 먹는다는 것이 알려지면 현면하지 못하다고 손가락질받고 남편에게도 미움을 받을 것이다. 정실부인이 아이를 가지면 낳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일곱 남매를 낳았기에 어머니가 복 받은 사람이며 다들 부러워했다. 여섯, 일곱이나 자식을 낳는 여인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모두가 무사히 자란 것은 하늘의 축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축복은…
잔뜩 풀이 죽은 왕청여와 전소환은 장군부로 향했다.문에 들어서자마자, 왕청여가 그동안 참아온 화를 푸는 듯 온 힘을 다해 전소환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너무나도 거친 행동이라 피할 겨를이 없었다. 그녀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장군부에 어찌 너같은 천한 년이 있을 수 있단 말이냐? 오늘 밤, 너는 장군부의 가풍을 완전히 망쳐버렸다. 당장 어머니께 가서 벌을 받거라.”전소환은 소망하던 꿈을 이루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평양후에게 순결마저 빼앗겼다. 이제는 사람의 탈을 쓴 자이면 모두 그녀를 괴롭히려 드는 것 같았다.그렇게 모두의 조롱거리가 되어 너무 혼란스러웠는데 그것도 모자라 막 집에 들어서자마자 왕청여에게 뺨까지 맞았으니 고삐가 완전히 풀려버린 것이다. 전소환도 왕청여의 뺨을 날려버렸다. 그러고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감히 누구를 천하다고 말하는 거야? 너는 고상한 줄 알아? 너무 천박해서 내 오라버니와 결혼한 거 아니야! 고상한 네가 오늘 밤 생일 연회에는 왜 갔지? 남을 비웃으려다 도리어 된통 당했으니 꼴 좋네.”왕청여는 그녀가 큰 일을 저질렀으니 자신에게 손을 대리라고는 전혀 생각치도 못했다. 화가 치밀어 오른 왕청여는 뺨에서 전해지는 고통도 신경 쓸 겨를이 없이 전소환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가자, 어머니께 이 일을 고해야 한다.”전소환은 힘껏 그녀를 밀쳐버리고는 차갑게 말했다. “오늘 밤 일을 내가 감히 어머니 허락 없이 움직였을까?”바닥에 주저앉은 왕청여의 얼굴에 충격이 가득했다. “뭐라고? 어머니가 아신다고? 네가 북명왕을 넘보려 했다는 것을 어머니께서 아신단 말이야?”전소환은 되려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왕청여를 바라보았다.“곁에 있었으면서 어떻게 조금도 도와주지 않았던 거야? 내가 이렇게 하는 이유가 뭔데! 모두 너희 부부를 위해서잖아! 오라버니가 너 때문에 한 사람의 손발을 부러뜨려 지위가 강등되어서 앞날을 걱정하시던 어머니가 결국 허락하셨던 거야.”그녀는 점점 더 서럽게 울부짖었다. 그 모습은
그러자 전소환은 억울한 듯 전북망을 향해 소리쳤다. "오라버니, 이건 너무 가혹합니다. 오라버니께서 강등되지 않으셨다면, 제가 어찌 이런 일을 하였겠습니까?"하지만 전북망은 엄하게 몰아붙였다."내 앞날을 왜 감히 네가 계획하느냐? 나는 스스로 노력하여 나아갈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너 자신을 위함이고 사여묵을 마음에 둔 거겠지. 그자가 어디가 그렇게 좋은 것이기게에 다들 앞다투어 달려드는 것이냐!"의로운척하려던 전소환은 전북망에게 속내를 들켜버리고 말았다.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하던 전소환은 전북망이 자신이 사모하는 이를 비난하려 하자 즉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당연히 오라버니보다 훨씬 낫지요! 송석석조차 오라버니와 이혼하고 바로 북명왕에게 시집간 것만 봐도 오라버니보다 훨씬 나음을 알 수 있지요. 게다가 이 진성의 귀한 집 여식들 중 어느 누가 북명왕비가 되기를 바라지 않겠습니까?"그러자 전북망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북명왕비가 되고자 하나, 북명왕에게는 이미 정실부인이 있느니라. 네 꿈은 처음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다."전소환이 울먹이며 외쳤다. "제가 어찌 그걸 모르겠습니까? 처음에는 첩이 되더라도 왕의 총애만 받으면 언젠가는 송석석을 대신하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다들 송석석이 밉지 않았습니까? 그녀는 기어코 이혼을 청하였고 그로 인해 장군부의 체면을 여지없이 떨어뜨렸지요. 저도 사심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장군부를 위해 한을 풀고 싶었습니다.""그만!" 남매의 다툼 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린 노부인이 외쳤다. "모두 입 닥치거라!"노부인은 깊이 숨을 들이마신 후 전소환을 바라보았다. "네가 말해보거라. 평양후가 네 몸에 손을 댔다고 하였느냐?"전소환은 여전히 울먹거렸다. "저의 허리도 감싸안았습니다. 다행히도 이내 풀었지만, 이미 모든 사람들이 본 상태였습니다.”노부인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모든 이가 지켜보았단 말이지? 평양후부 또한 백 년을 이어온 명문가로서 진성에서 다섯 손가락
전소환은 얼굴을 감싼 채 노부인의 품에 파고들어 울먹거렸다. "어머니, 오라버니가 저를 때렸습니다."그러자 노부인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면서 잔뜩 실망한 눈빛으로 전북망을 바라보았다."소환이를 위해 그저 몇 마디 했을 뿐인데 너는 대뜸 손찌검을 하는구나. 이러면 소환이 마음이 다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그런 일을 벌인 시작이 너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하여도, 결국 너도 이득을 보았을 것이다."전북망은 화가 났다."제가 그녀를 때린 것은 형수를 무시했기 때문입니다."그의 말에 왕청여는 오히려 깊이 감동 받았다. 고생스러웠던 모든 것이 가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청여를 한 번 째려보던 노부인이 다시 말했다. "됐다. 너희들은 모두 물러가거라. 나는 청여와 조용히 이야기해야겠다."전북망은 이 상황이 너무 혼란스럽기만 했다. 마음이 여전히 너무 답답했지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화가 가시지 않은 그의 모습에 왕청여는 곧바로 따라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오늘 밤 저를 지켜주셨으니, 저도 장군을 꼭 지켜드리겠습니다."순간 전북망의 몸이 굳어졌다. 그는 어딘가 모르게 울적해졌다. 사실, 그가 전소환을 때린 것은 왕청여를 위해서가 아닌, 전소환이 송석석을 '몸쓸 년'이라고 했기에 그 말에 순간적으로 분노가 치밀어 그만 이성을 잃고 전소환의 뺨을 때렸던 것이다. 그가 말했던 "그녀에게 어찌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속 그녀는 바로 송석석이었다.사람은 뭔가를 잃고 나서야 비로소 소중함을 깨닫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그는 이러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자신도 송석석에 대한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아마 죄책감일 수도 혹은 미련일 수도 있었다.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송석석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느꼈다. 그러지 않고서야 곧바로 궁에 들어가 이혼을 요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내 앞날엔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다. 나는 스스로 개척해나갈 것이다." 그는 왕청여의 손을 뿌리
평양후 노부인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본 송석석은 바로 하인을 불러 기혈을 보충하는 약선 요리를 올리기로 했다. 그 약선 요리는 그녀 자신을 위해 준비한 것이었고 그녀가 전장에서 얻은 부상 때문에 병근이 남을까 두려웠던 사여묵이 지속적으로 몸을 조리하도록 권유한 것이었다.노부인의 숨결이 평소보다 급한 것으로 보아 분노를 삼키고 있는 것 같았다. "몸이 이리도 불편하시니 굳이 힘들게 이리 오실 필요 없으십니다. 어젯밤의 일은 노부인과는 아무런 관련 없습니다."약선을 들이킨 평양후부 노부인은 한동안 가슴을 움켜쥐더니 천천히 진정이 되었는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건 저 역시 바라는 바입니다. 허나 가의 군주는 결국 평양후부 사람이고 어젯밤의 모든 일들은 똑똑히 지켜보았지요. 그 여인은 북명왕의 명성을 망치려고 한 것이 틀림없었지요. 하지만 남편이 그 모든 것을 뒤집어쓰게 될 줄은 몰랐으니, 돌을 들어 발등을 찧은 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해 저희 평양후부도 전소환을 첩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모두 송석석이 이미 예상한 결과였다.평양후부는 명성을 매우 중시하는 가문이었다. 비록 몇 년간 가의 군주에 의해 많이 손상되었지만, 평양후노부인은 항상 그녀의 잘못을 수습해 왔고 가문의 자제들에게도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하여 누구에게도 빌미를 잡히지 않도록 주의시켰다. 백년세가는 결코 명예를 더럽힐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을 감수해서라도 명성을 지켜야만 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은 며느리인 가의 군주가 혼자 꾸민 일이었으니 더욱더 회피할 수 밖에 없었다."오늘 아침에 전씨 가문의 노부인께서 찾아오셨더군요." 평양후 노부인은 평소 가문의 부끄러운 일을 입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일이 왕부에서 일어났고 더군다나 혜태비의 생신 잔치에서 벌어진 일이었기에 오늘만큼은 그런 그녀여도 참을 수 없었다. "그들은 제 아들이 그녀의 딸의 순결을 해쳤다고 단정 짓더군요.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봐 딸의 혼사가 막혀버렸다면서, 저
평양후부 노부인이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혜태비가 노부인을 만나겠다며 다급한 발걸음으로 화청에 왔다.하지만 그곳에는 차를 마시며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송석석의 모습만 보였다. "평양후노부인이 왔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녀와 담소를 나누려고 급히 달려왔는데 한발 늦은 모양이구나."자리에서 일어선 송석석이 예의를 갖추며 인사했다. "예, 방금 막 떠나셨습니다.""그래?" "나와 이야기하러 온 것이 아니란 말이냐?"혜태비는 가쁜 숨을 헐떡이며 자리에 앉았는데, 다소 실망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평양후노부인이 그녀를 만나러 온 줄 오해했다. 그녀는 평양후 노부인이 항상 부러웠다. 그녀와 달리 항상 많은 관료 부인들이 그녀의 안부를 묻기 때문이다."어머님을 뵈러 온 것은 맞습니다. 다만 어머님께서 숙취로 깨어나지 않으셨다고 들어, 방해하지 않으려고 먼저 떠난 것이옵니다." 송석석은 곁눈질만으로도 혜태비의 생각을 다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너무나도 투명한 사람이었다."술에 취해 일을 다 그르쳤구나." 순간 어젯밤 버럭버럭 화를 내던 아들의 모습이 번뜩 떠오른 혜태비가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묵이가 너를 어떻게 하지는 않았느냐?"송석석은 당황한듯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별일 없었습니다. 돌아가서 몇 마디 꾸중만 들었을 뿐입니다.""몇 마디만?" 혜태비는 송석석의 표정이 다소 어색해지는 것을 보고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자신의 아들이 어떤 사람인지는 그녀가 더 잘 알고 있었다. 평소에는 뭐든지 좋다고 하지만 사여묵의 한계를 건드려 버리기라도 한다면 몇 마디로 끝나지 않았다. 사여묵의 분노를 감내하느라 힘들었을텐데 그러면서도 남편이라 감싸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웠다."네가 내정을 책임지고 있고 첩을 들이는 일도 네가 주관해야 할 일이지만, 그가 싫어하니 너도 이제 더는 꺼내지 말거라. 나중에 그로 인해 꾸지람만 들을 것이다. 이놈은 한번 고삐가 풀리면 친어머니도 알아보지 못할 때가 있느니라."송석석은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