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후부 노부인이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혜태비가 노부인을 만나겠다며 다급한 발걸음으로 화청에 왔다.하지만 그곳에는 차를 마시며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송석석의 모습만 보였다. "평양후노부인이 왔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녀와 담소를 나누려고 급히 달려왔는데 한발 늦은 모양이구나."자리에서 일어선 송석석이 예의를 갖추며 인사했다. "예, 방금 막 떠나셨습니다.""그래?" "나와 이야기하러 온 것이 아니란 말이냐?"혜태비는 가쁜 숨을 헐떡이며 자리에 앉았는데, 다소 실망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평양후노부인이 그녀를 만나러 온 줄 오해했다. 그녀는 평양후 노부인이 항상 부러웠다. 그녀와 달리 항상 많은 관료 부인들이 그녀의 안부를 묻기 때문이다."어머님을 뵈러 온 것은 맞습니다. 다만 어머님께서 숙취로 깨어나지 않으셨다고 들어, 방해하지 않으려고 먼저 떠난 것이옵니다." 송석석은 곁눈질만으로도 혜태비의 생각을 다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너무나도 투명한 사람이었다."술에 취해 일을 다 그르쳤구나." 순간 어젯밤 버럭버럭 화를 내던 아들의 모습이 번뜩 떠오른 혜태비가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묵이가 너를 어떻게 하지는 않았느냐?"송석석은 당황한듯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별일 없었습니다. 돌아가서 몇 마디 꾸중만 들었을 뿐입니다.""몇 마디만?" 혜태비는 송석석의 표정이 다소 어색해지는 것을 보고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자신의 아들이 어떤 사람인지는 그녀가 더 잘 알고 있었다. 평소에는 뭐든지 좋다고 하지만 사여묵의 한계를 건드려 버리기라도 한다면 몇 마디로 끝나지 않았다. 사여묵의 분노를 감내하느라 힘들었을텐데 그러면서도 남편이라 감싸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웠다."네가 내정을 책임지고 있고 첩을 들이는 일도 네가 주관해야 할 일이지만, 그가 싫어하니 너도 이제 더는 꺼내지 말거라. 나중에 그로 인해 꾸지람만 들을 것이다. 이놈은 한번 고삐가 풀리면 친어머니도 알아보지 못할 때가 있느니라."송석석은 문
며칠이 지나고, 하조 후 황제가 사여묵을 따로 불렀다. 그는 가득 쌓인 상소문은 보지도 않고 사여묵과 너무 오랫동안 바둑을 두지 못했다며 오대반에게 바둑판이나 깔라고 했다. 사여묵은 관복의 하단을 들어 허리띠에 끼워 넣고 자리에 앉았다. "매일같이 안종만 들여다보느라 머리가 어지러웠는데 폐하를 핑계로 게으름을 피울 수 있게 되어 감사드릴 따름입니다."그의 행동을 지켜보던 황제는 오히려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직도 군 시절의 습관을 못 버렸구나. 너무 투박하다. 지금 너는 대리사의 경이자 조정의 이품 대관인데 이미지를 신경 써야 하지 않겠느냐.""형님 앞인데 굳이 이미지를 신경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사여묵은 호쾌하게 웃으며 하얀 이를 드러냈다."너는 왕비 앞에서도 이리 방자하느냐?" 황제는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백자를 집어 천천히 내려놓았다.사여묵은 흑자를 잡았는데 그의 눈동자도 흑자처럼 매우 깊어 아무것도 보아낼 수 없었다. "내 사람 앞에서는 더 방자해지지요."그러자 황제는 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으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모 생일잔치에서 누군가가 네 품을 노렸다고 하더구나.”"그런 소식이 형님께까지 전해졌습니까? 괜히 형의 심기를 더럽혔군요." 사여묵은 흑자를 내려놓았다."흠, 원래 소문은 듣지 않았지만 네가 내 동생인 이상, 어머니께서도 걱정하시니 묻는 것이다. 너는 측실을 들일 생각이 있느냐?""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고개를 든 사여묵이 다시 하얀 이를 드러내며 호쾌하게 대답했다."형, 저는 그동안 전쟁을 많이 치러 몸이 허약해져 현재 단신의를 졸라 몸을 돌보고 있는 중이옵니다. 정실부인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측실이 더해진다면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그러자 황제가 그를 아니꼽게 흘겨 보았다."허튼소리 말거라. 너는 무예를 연마한 자인데 어찌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네가 나를 조롱하는구나. 후궁이 많아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는 것 아니냐?""제가 어찌 감히 그럴 수 있겠습니까? 형은 자
"아이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대체 어디 있겠느냐? 나는 후궁에서 자손을 늘리기를 바라고 있거늘, 나와 몇 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 사여묵은 벌써 아버지가 되었어야 하느니라."그러자 오대반은 조용히 말했다. "아마도 장군께서도 폐하께서 염려하시는 바를 알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형제 간의 사이에 틈이 생기길 원치 않으시는 것이지요. 폐하께서는 기억하시는지요? 어릴 적부터 장군께서는 매사에 폐하를 본보기로 항상 자랑스럽게 여겼사옵니다. 밖에서 형에 대해 말씀하실 때마다, 그의 얼굴에는 항상 자부심이 묻어있었지요."오대반의 말에 과거의 추억을 떠올린 황제는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다.그렇게 한참이 지나고나서야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어쩌면 내가 너무 많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구나!"오대반은 묵묵히 그의 찻잔을 채워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곁을 지켜온 그는 황제의 갑작스러운 한숨이 단지 과거 형제애를 회상하는 순간일 뿐이지 그것이 경계심을 줄이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사여묵이 아이를 원하지 않는 것은 현명한 결정이었다.자식이 없는 상태라면 황제가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이제 막 남쪽 변방을 되찾은 직후였기에 조정의 문무백관들은 사여묵을 가장 존경했고 백성들 사이에서도 그의 명망이 가장 높을 때이기에 공을 세워 위세가 단단해진 친왕을 경계하지 않는 황제는 없을 것이다.남쪽 변방을 되찾은 후 병권을 반납한 데 이어, 결혼으로 인한 마음의 짐이 생겼다는 것은 황제를 향한 충성심이었고 그가 주는 안정감이었다.사여묵이 대리사로 돌아왔을 때, 형부에서의 사건에 대해 물었는데, 사여묵은 사건 기록을 다 읽지 못했다는 이유로 일단 그들을 돌려보냈다.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그는 송석석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바로 그때 형부상서 이택이 찾아왔다.두 사람은 서재에서 반 시간 동안 그 사건을 두고 언쟁을 벌였고, 결국 불쾌하게 헤어졌다.매화원으로 돌아온 사여묵은 문에 들어서기 전까지 어두웠던 표정은 금세 사라지고 다시금
사여묵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송석석을 바라보았다."맞소. 그녀를 포함한 한 집안의 열세 명 중 열두 명이나 죽였소. 시아버지, 남편, 세 아들, 이 다섯 사람은 모두 건강한 상태였소. 그리고 시어머니와 시집가지 않은 두 딸과 나머지는 하인과 시녀였소. 이 사건은 깊은 밤이 아닌 황혼에 발생했고 모두가 깨어 있는 상태에서 벌어졌소. 그녀는 갑자기 주방에서 칼을 들고나와 모두를 죽였는데, 무술을 익힌 적 없고 오랜 병으로 약을 복용하던 몸이었소.""오랜 병을 앓던 그녀가 아무리 독하다고 해도 한 사람을 죽이고 나면 바로 제지되었을 터인데.. 혹시 독약으로 모두를 기절시키기라도 한 것은 아닐지요?""아니오. 모두 말짱한 상태였고 이웃이 직접 목격하길 그 여인은 광인처럼 괴력을 발휘해 보이는 족족 죽였다고 했소. 만약 그 이웃들이 재빨리 도망쳐 집 문을 잠그지 않았다면, 그들 역시 살해당했을 것이라고 했소. 현지 관청에서도 상처와 흉기가 일치하다고 했소."송석석은 사여묵이 왜 복심을 내리지 않고 망설였는지 이해했다.이 사건에는 의심스러운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지만 이렇게 큰 소동이 일어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이웃이 목격했고, 그녀 자신도 자백했으며, 흉기와 상처가 일치했으니 기본적으로 확정된 상황이다."맞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사건이 발생했으니, 음식들은 조사해 보았습니까?""아직 조사하지 못했소. 시신에서 독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오.”사여묵이 다시 말을 이었다."나는 그 여인이 어떠한 독에 광기를 일으켜 엄청난 힘을 얻은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소. 그래서 태의들에게 자문을 구했지만 모두 그런 독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하더군."눈빛을 교환하던 두 사람이 아이디어가 번뜩 떠오른듯 동시에 외쳤다. "단신의!"답을 찾은 사여묵은 즉시 옷을 갈아입고 약당으로 향했다. 그는 조금도 지체할 수 없었다.이 사건으로 백성들은 분노하며 즉시 사형을 내려야 한다고 떠들고 있었고 형부에서도 계속해서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연왕은 차분한 눈빛으로 엄지에 낀 옥반지를 돌리며 말했다. "아직 부족하다. 계속 퍼뜨리거라. 북명왕 사여묵이 죄를 지은 여인을 변호하려 하고 그 목적은 자신이 대리사 경 자리에 오를 자격이 충분하다고 증명하려는 것이고 세상을 거느리려 들며 공을 탐하는 것이라 전해라. 또한 그가 단지 무장일 뿐, 공문과 법률에 대해선 무지하다는 점을 강조하도록 해라."잠시 아무 말 없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또한 황제도 그에게 속아 넘어갔고 그의 공로가 너무 커 황제께서도 그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소문도 퍼뜨리거라."그 부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여묵이 사건을 재심할 것이라 확신하십니까?"연왕은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의심스러운 점이 있다면, 당연히 바로 재심할 것이다." 그의 눈빛은 이내 피비린내 나는 차가움으로 변해버렸다."나는 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 생명에 대해 매우 집착하는 자라, 생명과 관련된 일에는 언제나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대할 것이다. 이토록 커다란 의문점이 있는데도 재심을 하지 않는다면, 양심의 가책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다.""소인이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겠사옵니다." 고개를 숙여 인사한 부하는 문을 나서자 망토를 휘감고 빠르게 사라졌다.연왕은 흥미롭다는 듯이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사여묵, 내가 민심을 완전히 잃게 만들어 줄게. 다시는 병권을 잡지 못하게 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네 공이 너무 커 황제도 경계하고 있다고, 게다가 황제마저도 어리석은 자라고 할 것이다”"무상!" 그가 크게 외치자, 자수로 장식된 산수화 뒤에서 회색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걸어 나와 머리를 숙였다. "대장님!"연왕은 물었다. "그 살인을 저지른 자의 몸 속 묘독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겠지?"무상은 낮고 목소리로 대답했다. "절대 알아낼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녀의 뇌 속에 숨어 있는 작은 선충일 뿐이어서, 설령 그녀의 머리를 베어낸다 해도 알아낼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선충은 오직 저의 명령만 따를 뿐이고 지금 그자는
대리사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상주는 이미 초조의 극을 달리고 있었다."대체 단신의는 왜 부르신 겁니까? 단신의는 사자도 경험하지 못했는데, 아무리 뛰어난 의술을 가졌다 해도 결국에는 오작이 아닙니다."조급한 이상주와는 달리 사여묵은 전혀 서두르지 않았다."조금 더 기다리거라. 큰 사건이고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만큼, 혹시라도 부주의하여 무고한 자를 억울하게 한다면, 그때는 천하가 우리를 성토하게 될 것이다."오랫동안 사건을 처리해 왔던 이상주이기에 약간의 의문점이 있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피의자가 이미 자백했고, 증인이 있고 증거가 있는 상황인데 대체 무엇을 더 조사할 필요가 있겠는가?"이건 단지 시간을 낭비할 뿐입니다. 살인자를 하루라도 더 살게 한다는 것은 죽임을 당한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 아닙니다.""비주지부의 기록도 가을에 참수형을 내린 것이고, 지금은 아직 사월이니, 문서 왕래와 역마를 최대한 빨리 움직여도 왕복 한 달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헌데 무엇이 그리 급해서 이러는 것이냐?""단신의는 도대체 언제 오십니까? 이미 오래 기다렸사옵니다." 잔뜩 화가 난 이상주는 한쪽에 자리 잡고 앉았다. 북명왕과 너무 격렬하게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얼굴은 이미 매우 불쾌해 보였다.겁에 질린 두 시랑은 몸을 떨고 있었다. 반면 이상주는 북명왕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의 딸, 수민은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그들에게는 애첩이 될 딸이 없으므로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이상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대리사 소경 진이가 단신의를 직접 모셔 왔다.단신의는 키가 크지 않았지만, 기품이 넘쳤다. 문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이상주를 바라보았다.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선 이상주는 방금 전의 잔뜩 화가 난 눈썹과 초조한 눈동자는 완전히 사라지고 순식간에 겸손하고 온화한 태도로 바뀌었다."귀한 발걸음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 폐를 끼쳐 매우 송구스럽사옵니다.""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단신의는 담
단신의는 종이를 한 장 꺼냈는데, 거기에는 약의 이름과 그 약들의 효능 및 부작용이 적혀있었다.단신의는 그것을 가리키며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첫 번째는 '지옥의 불', 이는 사람으로 하여금 환각을 일으키게 하고, 마음속의 집념이 무한히 커져 거대한 힘을 얻게 하지만, 환각 후엔 반드시 해독제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 여인은 비록 가족을 몰살한 후 이웃마저 죽이려 했지만, 관청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진정된 상태였으니, 이는 '지옥의 불'일 수 없다.두 번째는 '광두산', 이는 버섯 종류로 사람을 환각과 광기로 몰아가 스스로를 해치거나 타인을 살해할 수 있게 하지만, 전에 반드시 울거나 웃거나 하고, 또는 몸이 현란하게 움직인다. 그러나 '광두산'은 큰 힘을 발휘할 수 없어 열두 명을 죽일 수는 없다.세 번째는 '구혼선충', 이는 묘충의 일종이고 일명 '고충'이라 불렸다. '구혼선충'은 사람의 두뇌에 침입하면 타인이 조종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는 기억을 남기게 된다.“가장 중요한 것은 이 '구혼선충'이 환각을 일으켜 강력하면서도 미친 듯한 힘을 발휘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조종당하는 동안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 몸과 사지를 타인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게 되지요. 만약 그 조종자가 무공을 가진 자라면, 그 또한 무공을 가진 자처럼 힘이 커지게 됩니다.”단신의의 말에 이상주와 두 시랑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천천히 얼굴을 찡그렸다."그 '구혼선충'이 그녀의 머릿속에 대체 어떻게 들어갔다는 말입니까?""음식을 통해, 아니, 혹은 약을 통해서일 가능성이 제일 큽니다. 아마 그 여인의 머릿속에 '구혼선충'이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자리 잡고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구혼선충'은 성장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보통 반년이나 일 년은 걸려야 완전히 성숙됩니다."이상주도 의문을 던졌다. "단지 '구혼선충'이 있다는 것일 뿐, 그녀도 이 벌레에 당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저는 단지 의문 답을 하기 위해 왔을 뿐입니다. 이
사건이 상주 된 후, 황제는 이상주를 어사로 임명하고 그의 일행들을 비주로 보내어 사건을 조사하도록 명하였다. 청작 역시 그 일행에 동행했다.재심에 더하여 황제께서 흠차를 보냈고, 게다가 형부의 상서가 직접 나서는 것이어서 분노한 백성들을 조금이나마 잠재울 수는 있었다.심청화 역시 이번 사건에 대한 글을 올려 사건의 의문점을 제기하였다. 학자들이 전에 올렸던 글들은 모두 백성들의 분노 때문이었다. 죽은 자를 위해 정의를 외치며 부권이 도전받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심청화가 나서서 의문점을 제기하고 나니 그들도 하나둘씩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다만, 확신에 찬 말투는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흠차가 조사를 마친 후에는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며 고인에게 명복을 전할 뿐이었다.이것은 연왕부는 꿈에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재검토가 통과되거나 재심으로 넘겨져도 사여묵은 결국 명성을 잃고 대리사 경 자리조차 위태로워질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들은 바로 흠차를 파견하여 조사를 진행했다."내가 사여묵을 과소평가했구나." 연왕의 목소리는 듣기 몹시 섬뜩했다."대장님, 염려 마십시오. 누가 가더라도 선충에 중독되었다는 사실은 밝혀낼 수 없을 것입니다...""그러면 사여묵과는 무관해질 것이다. 그 여인이 참형에 처해지든 아니든, 모두 흠차가 정한 죄목이 된다. 이번 흠차는 형부의 이상주라 그가 일단 죄를 확정 지으면 대리사에 보고할 필요도 없이 즉시 처형될 것이다. 나중에 중독되었음이 밝혀지더라도 사여묵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그는 이 사건으로 이씨 가문과 맞서고 싶지는 않았다. 이씨 가문 수민이 궁에 있었고 대부분 가족이 관직에 올라 있어 사건을 깊이 파헤치기라도 한다면 그가 수면위로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다.무슨 일이든 한 단계 한 단계 차근차근 진행해야 한다. 그는 이미 몇 년이나 기다렸으니 이 시점에서 실수가 있으면 절대로 안 된다."선충만 밝혀지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비주지부는 연루되지
복소의의 태는 안정적이었기에, 태의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겨울이 지나면서 태가 점점 불안정해져, 두 번의 출혈을 경험했다. 금태의는 그녀의 태를 지키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 덕분에 그녀는 겨우 안정을 찾을 수 있었지만 계속해서 침상에 누워 있어야 했기에 바닥에 내려갈 수가 없었다.갑자기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태의는 신중히 식단과 궁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들을 점검했다. 하지만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아마 황제가 장기간 약을 복용한 탓에 태아가 불안정해진 것일 가능성이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의 태에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가 침상에서 요양을 시작한 후 거의 이틀에 한 번씩 그녀를 보러 갔으며, 가끔은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는 수빈의 궁에 자주 가지 않았고, 삼황자를 어서방에 불러 들이지도 않았다.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이황자와 함께 복소의를 보러 갔고, 이로 인해 황제와 함께 몇 번의 식사를 함께했다.복소의는 첩여 시절 후궁에서 자신이 의지할 사람을 찾으려 했고, 비밀리에 수빈과 덕비에게 아첨하며 양쪽을 오갔다. 하지만 수빈은 늘 거만하게 행동했으며, 그녀가 한때 황제의 총애를 얻었기도 했기에, 복소의는 수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반면 덕비는 후궁에서 유명한 온화하고 자애로운 인물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며 위치가 낮은 여인들까지 보살펴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복소의는 점차 덕비에게 더 접근했지만 지금은 조금 고심했다. 황제가 그녀에게 올 때, 덕비가 여러 번 이황자를 데리고 왔고, 그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수빈의 성격에 이런 일을 할 리가 없었기에, 그녀는 오히려 수빈의 도도함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결국 불만을 마음속으로에만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권한이 있기에 그녀를 적대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날들이 지속되자, 그녀는 덕비가 오지 않
후궁에서는 황제의 병에 대해 추측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지금 복소의가 임신을 했다고는 하지만,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은 황제의 몸이 단순히 요양을 하면 괜찮아질 상태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황제의 편애가 계속될수록 몇몇 사람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특히 황후는 더욱 불안해했다. 그녀는 황제의 병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지금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지만 치료의 효과는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녀는 황제가 심각한 상태라고 여겼다. 황후는 복소의의 임신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의 성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을 뿐더러, 설령 황자가 태어난다고 해도 그에게 까지 순서가 올 리 없었다. 그러나 삼황자에게 집중된 황제의 편애는 그녀에게 위기의식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황제는 그녀에게 선택권을 주었을 때 그녀는 황후 자리를 선택하며 생명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며칠의 시간을 보내자, 황후는 황제가 대황자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요즘 대황자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태부와 황숙도 그를 칭찬하고 있었다. 황제도 대황자의 그러한 모습에 매우 만족해 한다고 전해 들었다.이황자와 삼황자는 그녀에게 모두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황후는 황제가 이황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여겼다.최근 몇 달 동안 그녀는 거의 이황자를 본 적이 없었고, 또한 이황자가 이제는 예전처럼 열정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후는 강력한 뒷배경이 없는 덕비가 여전히 유력하지 않다고 여겼지만 수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수빈의 아버지는 형부상서이며, 사여묵과 같은 공문이었다. 공무의 일이든 사적인 일이든 접촉이 분명 많았을 것이고, 수빈의 어머니인 이씨 부인은 송석석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공방에 많은 돈을 기부했다. 어쩌면 이미 그녀를 손에 넣었을지도 모른다.“마마, 오늘 대황자께서 또 왕야의 칭찬을 받으셨습니다.”란주 상궁이 들어오며 웃으며 말했다.황후는 별다른 감정을 보이
숙청제는 신하들을 어서방에 불러들였고, 그들은 밤늦게까지 논의했다. 논의는 결국 단신의가 들어가서 시간이 많이 늦었음을 알리며 중단을 요청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숙청제는 팔을 뻗고 웃으면서 말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다니. 그럼 궁문도 이제 잠가야겠으니 다들 돌아가시게.”그는 여전히 기운이 넘쳤고, 특히 지금은 얼굴에 혈색이 돌아 병든 사람 같지 않아 보였다.송석석은 논의 중이던 사여묵을 기다렸다. 그들은 함께 궁을 떠나 황실로 돌아갔다. 매우 피곤했던 그녀는 사여묵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마차가 황실 문 앞에 도착하자 사여묵은 그녀를 안아 들었다. 송석석은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내려오기 귀찮았기에 그대로 안겨 있었다. 그의 넓고 따뜻한 품은 정말 편안했다.그와 떨어져 있던 세 달 동안 그녀는 성릉관에서만 편히 잠을 청할 수 있었으며, 그 외의 곳에서는 늘 경계하며 지냈다. 이제 집에 돌아오니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렸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불안함을 느꼈다. 무언가 뜨겁고 큰 손이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단 백부 말씀을 잊으셨나요?”귓가에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 백부가 이제 괜찮다고 말씀하셨소.”송석석은 감고있던 눈을 떠, 뜨겁고 열정적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정말인가요?”“틀림 없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술이 덮였다.불꽃이 강렬하게 타올왔다. 침실의 온도마저 높아진 듯 했다.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기에 마치 새롭게 결혼한 듯한 기분이었다!한 달 후, 상국은 시박사를 설립할 예정이었다. 이는 상국과 해외 북당과의 화물 교류를 담당할 기관이었다.원래의 시역업도 시박사의 운영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며, 상국에서 다른 국가에 판매할 수 있는 화물 목록을 정리하여 서경으로 사신을 파견해 화물 교환 협정을 체결할 것이다.이 한 달 동안 단신의는 약을
10월 15일, 사절단은 드디어 진성에 도착했다.현갑군은 그 자리에서 먼저 해산했고, 이덕회와 홍려사경은 궁에 들어가 황제를 뵈러 갔다. 그동안 몸이 약해져 혼자서는 거동할 수 없었던 진왕은 이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도 궁에 가겠다고 말했다.송석석은 이미 성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여묵에게 인도되어 황실로 돌아갔다.그동안 사여묵은 매일같이 성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고, 때로는 낮잠시간에 직접 가서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이 되어서야, 드디어 기다리던 그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이덕회와 그들이 궁에서 황제에게 보고할 때, 송석석은 이미 태비께 인사를 드린 후였다.혜 태비는 송석석이 피곤해 보이자,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으라고 말했다.송석석은 사여묵과 함께 나와서 매화원으로 돌아갔다.목욕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송석석의 입술이 어쩐지 조금 부풀어 있었다. 서주는 깜짝 놀라 왕야를 바라보았다. 왕비가 목욕하는데 왕야께서 꼭 직접 모셔야 한다며 들어가더니, 보아하니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것이 틀림없었다.서방에서는 염선생과 심청화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송석석은 그들에게 서경에서의 일들을 말해주었다. 협상 결과는 그들이 이미 알고 있었기에, 송석석은 길에서 일어난 암살 시도, 원신제의 곤경, 그리고 북당의 안풍친왕이 말한 3년과 5년의 기한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사여묵은 두려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었는데, 서경이 그렇게 혼란스러웠음에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에 안도하며 다행이라 여겼다.안풍친왕이 성릉관을 자유롭게 오고 간 것과 그가 말한 3년, 5년 기한에 대해서, 심청화는 사부에게 편지를 보내면 알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사부는 그들을 잘 알기 때문에 그 말의 숨은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었다.이야기를 마친 후, 사여묵은 송석석이 휴식을 취하게 하기 위해, 송석석에게 더 이상 질문하지 못하게 그들을 막았다. 그는 오후에 휴가를 내어 일을 쉬려고 했지만, 황제가 사람을 보내 궁에 오라고 일렀다.송석석
성릉관에서 다섯 날을 지낸 진왕은 어느 정도 몸이 회복이 되었다.그가 회복되었다는 것은 이제 다시 진성으로 향해야 함을 의미했다.이별은 너무나 아쉬웠지만, 송석석은 눈물을 삼키며 그저 작별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소 대장군 앞에서 여러 번 절을 했는데, 그로 인해 소 대장군도 눈물이 거의 터져 나올 뻔했다.이덕회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바로 소 대장군이었다. 소 대장군은 상국을 위해 수십 년 동안 성릉관을 지킨 노장이었기 때문이다.송석석은 눈물을 삼켰지만, 그는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 평생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노령에 접어든 듯, 이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노쇠해 보였다. 설령 황제가 그를 진성으로 돌아가게 허락한다 할지라도, 긴 여정과 고된 일정을 고려했을 때 소씨 가문 사람들이 그를 돌아가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다.소 대장군은 이덕회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그러자 이덕회는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외숙모 남씨는 회 왕비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았었다가 이별을 앞두고서야 송석석을 옆으로 데려와 그녀의 상황을 물었다.송석석은 회 왕비가 지금 감옥에 있다는 사실과 란이가 그녀를 위해 손을 써주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힘든 상황은 아닐 거라며, 혹시 태자가 세워지면 대사면이 내려져 그녀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남씨는 살짝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외조부께서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지만, 엄청 신경 쓰고 계실 거다. 세상에 정말로 모진 부모는 드무니까. 네 외조부는 모진 분이 아니시다. 그때 그녀가 란이에게 그렇게 까지 모질게 대했던 게 안타깝다. 란이가 여전히 그녀를 돌보아야 하다니."송석석이 말했다. "걱정 마세요. 란이는 지금 편안하고 자유롭게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더 잘 지낼 거예요.""그렇지. 분명히 잘 지낼 거야." 남씨는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송석석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귀환길에 오를 무렵, 이미 9월 초가 되어, 날씨는 더 이상 뜨겁지 않았으며, 오히려 약간 선선했다.수란키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와 그들을 녹분성까지 배웅했다.이번 귀향길에서는 암살 시도가 없었기에 매우 순조로웠다.이들은 끝없이 이어지는 산을 넘어가 상국의 경계에 들어섰다.소 대장군에게 사전에 도착 예정일을 알리지 않았기에 아무도 마중을 나오지 않을 줄 알았지만, 상국의 경계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전북망이 이끄는 소씨 가문 군대와 마주했다.무사히 돌아온 그들을 보자, 전북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없이 말을 몰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말에서 내려 진왕과 이덕회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왕야와 이상서, 그리고 여러 대감님들, 소 대장군께서 저를 시켜 이곳에서 여러분을 맞이하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성릉관까지 호위하겠습니다."그러자 이덕회가 호기심에 차서 물었다. "대장군께서는 우리가 오늘 돌아올 것을 어떻게 아신 것입니까?"전북망이 대답했다. "대장군께서는 모르셨습니다. 매일 여기서 기다리라고 명하셔서 계속 기다린 것입니다.""그렇군요." 이덕회는 소 대장군의 매우 신중함에 감탄했다. 진왕은 오는 동안 몸이 좋지 않았다. 그는 마차의 발을 올리고 한 번 쓱 둘러보았다. 자신이 상국에 돌아온 것을 확인하자, 그는 그제서야 기운을 조금 차리며 말했다. "빨리 출발하게.""예!" 전북망은 재빨리 대답하고 말에 올라 선두를 이끌었다.시만자는 그가 한 손으로 능숙하게 말을 다루는 모습을 보며, 그가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말의 고삐를 잡고 송석석에게 말했다. "이 사람 나쁘지 않네. 어머니께서 그 당시 사람을 잘못 본 것이 아니었나봐. 마음을 예측하기 어렵긴 하지만..."송석석은 시만자가 전북망을 칭찬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사실 시만자는 여전히 전북망에 대한 모친의 기대를 저버린 것을 항상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이 말을 함으로써 모두 안심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송석석은 아무 말도 하
안풍친왕이 말했다."이번 여정은 서경과 상국을 위한 것이지만, 북당을 위한 것이기도 하니 감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국가 간의 교류는 언제나 이익을 우선으로 하니까요. 개인적인 인연이 있을 때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죠."송석석은 깨달음을 얻은 동시에 궁금한 점이 있어 물었다."혹시 제 사부 임양운을 아십니까?"안풍친왕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알지요. 그는 북당에 와서 제 채성루에서 잠시 머문 적이 있습니다. 제 호위 지휘사인 흑영위가 당신의 사부와 매우 친한 사이입니다. 그들은 자주 함께 술을 마셨죠.""그렇군요." 송석석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 중 어떤 사람이 흑영위 선배인지는 모르겠지만, 만날 수 없다면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안풍친왕은 이내 그녀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웃으며 말했다.“우리 북당은 3년 혹은 5년 후에 상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그때 흑영위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송석석이 막 감사의 말을 하려는데, 시만자가 말했다."왜 3년 혹은 5년 후인가요? 좀 더 일찍 갈 수 없나요? 왕야와 왕비께서 가시는 걸 기대하고 있습니다."안풍친왕은 미소를 지으며 깊은 뜻이 담긴 말을 했다."지금은 아직 그때가 아닙니다."그들이 말하지 않으니 더 이상 물어보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안풍왕비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으며, 그저 눈앞의 간식들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아무것도 특별할 것 없는 설탕절임과 육포였지만, 그녀는 그것을 매우 맛있게 먹었다.송석석은 탁자 아래에서 그들이 손을 서로 맞잡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의 사랑이 누구보다 깊다는 것을 느꼈다.두 나라 간의 교류에 대해 더 얘기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들은 잠시 가볍게 잡담만 나눈 뒤 그들을 보내주었다. 떠나기 전에 안풍친왕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송대감, 시 소저, 4년 후에 상국에서 뵙겠습니다."송석석은 급히 손을 모으며 말했다."네. 왕야와 왕비께서는 반드시 오셔야 합니다."그들이 떠난 후, 별관 문이 닫혔다.송석석과 시만자
이틀 동안 돌아본 후, 수란키가 송석석에게 말했다. "귀국에 단신의라는 신의가 계십니다. 그분이 만든 단설환의 한 가지 재료인 설연화가 귀국에서 생산량이 매우 적다고 알고있습니다. 남강에 있기는 하지만, 설산 정상에 자생하고 있어 채집하기 매우 어려우며, 또한 드뭅니다. 하지만 저희 쪽에서는 설연화가 그리 희귀한 것이 아닙니다. 고산지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요. 그가 사용하는 설연화는 모두 서경 약장수에게 몰래 사서 쓰는 것으로, 가격이 매우 비쌉니다. 그 가격으로 단설환을 팔면, 한 알을 팔아서 한 알을 잃는 셈입니다."송석석은 단설환이 부족한 이유가 일부 약재를 구할 수 없기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단 백부는 구체적으로 어떤 약재가 부족하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서경과 상국은 그동안 무역을 하지 않았고, 특히 약재는 더 조심스럽게 다뤄졌기 때문에 그가 서경 사람에게 약재를 산 것을 비밀로 한 이유가 이해가 됐다.수란키와 원신제는 한 마음으로 이렇게 세세하게 조사를 진행했으며, 두 나라 간에 상호 교역을 이루려는 계획이 이미 있었을 것이다. 안풍친왕을 불러들인 것도 이 일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단설환은 생명 구제용 약이라, 만약 약재만 부족하지 않다면 평민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어 실로 민생에 큰 이익이 된다. 송석석은 그들이 지나쳤던 약재 시장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럼 왜 약재 시장에서는 설연화를 본 적이 없죠?" 수란키가 웃으며 답했다. "그건 당연합니다. 우리 서경에서 설연화가 많이 자생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희귀한 재료입니다.고산지대를 올라가야만 채집할 수 있기에 위험하기도 하지요. 게다가 약효가 뛰어나지 않습니까. 심장을 강하게 하고 통증을 멈추는 효과가 있어, 시장에서 거래되는 법이 없습니다. 송대감께서 믿지 못하신다면, 제가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서 설연화 한 바구니를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것을 상국으로 가져가서 단신의께 검증받으시면 됩니다."그는 말을 마친 후 시 사람을 시켜 설연화 한 바구니를 가
그가 앉은 자리는 북당이 이번 협상에서 취한 입장을 대표했다.그는 중립의 위치에 있었다. 송석석은 다시 한 번 국가가 강성한 것이 정말 좋다며 감탄했다. 협상의 처음 부분은 조금 지루했다. 양쪽 모두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강조하였고, 양쪽의 역관들이 그것을 전달하며, 모두 역사적 문제를 강조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양보를 한다면 계속해서 양보하게 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따라서 첫 번째 협상에서는 아무런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서로의 한계를 시험하는 데 그쳤다. 다음 날, 바로 두 번째 협상이 시작되었다. 역시 초반에는 전날처럼 양쪽에서 강조하는 말들이 오갔다.그러다가 잠시 후, 안풍친왕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렇게 계속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두 나라의 국경 문제는 이미 수십 년간 지속되어 왔고, 이것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우선 국경 문제는 잠시 제쳐두고, 본왕은 두 나라가 서로 친선을 맺고, 서로 침범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의 말에, 모두 두 나라가 더 이상 분쟁을 일으키지 않기를 바란다며 긍정적인 의사를 내비쳤다. 안풍친왕은 한 장의 목록을 꺼냈다. 그 목록에는 양국의 상품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그 중에는 곡물, 가축, 비단, 직물, 수공예품, 찻잎, 모피, 도자기, 종이, 벼루, 각자의 나라에서만 자생하는 약초, 향료, 청염, 철광, 옥석 광물 등이 있었다. 양쪽은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처음의 긴장감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막대한 이익 앞에서, 어떤 일들은 협상이 가능했다. 협상이 되지 않으면 잠시 미룰 수도 있었다. 수년간의 전쟁은 두 국가의 국고를 이미 소진시켰기에 양쪽 모두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북당의 발전 경험에 따르면, 농업을 중시하고 상업을 억제하는 것은 뒤처진 생각이며, 농업과 상업을 동시에 중시하는 것이 살길이었다. 상업세 또한 매우 높았다. 안풍친왕의 이 목록 덕분에 두 나라는 국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