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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4화

Author: 유애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09-16 20:00:00
평양후 노부인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본 송석석은 바로 하인을 불러 기혈을 보충하는 약선 요리를 올리기로 했다.

그 약선 요리는 그녀 자신을 위해 준비한 것이었고 그녀가 전장에서 얻은 부상 때문에 병근이 남을까 두려웠던 사여묵이 지속적으로 몸을 조리하도록 권유한 것이었다.

노부인의 숨결이 평소보다 급한 것으로 보아 분노를 삼키고 있는 것 같았다.

"몸이 이리도 불편하시니 굳이 힘들게 이리 오실 필요 없으십니다. 어젯밤의 일은 노부인과는 아무런 관련 없습니다."

약선을 들이킨 평양후부 노부인은 한동안 가슴을 움켜쥐더니 천천히 진정이 되었는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건 저 역시 바라는 바입니다. 허나 가의 군주는 결국 평양후부 사람이고 어젯밤의 모든 일들은 똑똑히 지켜보았지요. 그 여인은 북명왕의 명성을 망치려고 한 것이 틀림없었지요. 하지만 남편이 그 모든 것을 뒤집어쓰게 될 줄은 몰랐으니, 돌을 들어 발등을 찧은 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해 저희 평양후부도 전소환을 첩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모두 송석석이 이미 예상한 결과였다.

평양후부는 명성을 매우 중시하는 가문이었다. 비록 몇 년간 가의 군주에 의해 많이 손상되었지만, 평양후노부인은 항상 그녀의 잘못을 수습해 왔고 가문의 자제들에게도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하여 누구에게도 빌미를 잡히지 않도록 주의시켰다.

백년세가는 결코 명예를 더럽힐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을 감수해서라도 명성을 지켜야만 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은 며느리인 가의 군주가 혼자 꾸민 일이었으니 더욱더 회피할 수 밖에 없었다.

"오늘 아침에 전씨 가문의 노부인께서 찾아오셨더군요."

평양후 노부인은 평소 가문의 부끄러운 일을 입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일이 왕부에서 일어났고 더군다나 혜태비의 생신 잔치에서 벌어진 일이었기에 오늘만큼은 그런 그녀여도 참을 수 없었다.

"그들은 제 아들이 그녀의 딸의 순결을 해쳤다고 단정 짓더군요.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봐 딸의 혼사가 막혀버렸다면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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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왕은 차분한 눈빛으로 엄지에 낀 옥반지를 돌리며 말했다. "아직 부족하다. 계속 퍼뜨리거라. 북명왕 사여묵이 죄를 지은 여인을 변호하려 하고 그 목적은 자신이 대리사 경 자리에 오를 자격이 충분하다고 증명하려는 것이고 세상을 거느리려 들며 공을 탐하는 것이라 전해라. 또한 그가 단지 무장일 뿐, 공문과 법률에 대해선 무지하다는 점을 강조하도록 해라."잠시 아무 말 없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또한 황제도 그에게 속아 넘어갔고 그의 공로가 너무 커 황제께서도 그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소문도 퍼뜨리거라."그 부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여묵이 사건을 재심할 것이라 확신하십니까?"연왕은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의심스러운 점이 있다면, 당연히 바로 재심할 것이다." 그의 눈빛은 이내 피비린내 나는 차가움으로 변해버렸다."나는 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 생명에 대해 매우 집착하는 자라, 생명과 관련된 일에는 언제나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대할 것이다. 이토록 커다란 의문점이 있는데도 재심을 하지 않는다면, 양심의 가책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다.""소인이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겠사옵니다." 고개를 숙여 인사한 부하는 문을 나서자 망토를 휘감고 빠르게 사라졌다.연왕은 흥미롭다는 듯이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사여묵, 내가 민심을 완전히 잃게 만들어 줄게. 다시는 병권을 잡지 못하게 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네 공이 너무 커 황제도 경계하고 있다고, 게다가 황제마저도 어리석은 자라고 할 것이다”"무상!" 그가 크게 외치자, 자수로 장식된 산수화 뒤에서 회색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걸어 나와 머리를 숙였다. "대장님!"연왕은 물었다. "그 살인을 저지른 자의 몸 속 묘독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겠지?"무상은 낮고 목소리로 대답했다. "절대 알아낼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녀의 뇌 속에 숨어 있는 작은 선충일 뿐이어서, 설령 그녀의 머리를 베어낸다 해도 알아낼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선충은 오직 저의 명령만 따를 뿐이고 지금 그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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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상서는 방문객을 모두 사양했지만, 직접 대부인과 함께 송석석을 방문했다.송석석은 평소처럼 그들을 맞이했다. 제상서와는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대신 염선생이 그와 대화를 나눈 후, 대부인을 곁채로 안내하여 차를 대접했다.대부인은 지난 일년여 동안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아 많이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마음은 평온해 보였다. 그녀는 더 이상 이전처럼 고집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는 자신이 상서부의 살림을 책임지는 종부로서 품격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늘 자신을 억누르며 스스로를 괴롭혔던 그녀가 지금은 많이 내려놓은 듯했다. 지나치게 완벽을 추구하지 않고 적당히 넘기는 법을 배운 것이다.대부인은 딸을 잘 교육하지 못한 것에 대해 송석석에게 사과하며 말했다."저는 한평생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제대로 해낸 일이 거의 없더군요.”"하지만 이제는 상관없습니다. 평생 단 한 가지라도 잘해내서 스스로 만족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습니까?"송석석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에게나 인생의 결핍은 있기 마련이지요. 앞으로는 자신을 더 잘 돌보면 될 일입니다."제대부인은 깊이 있고 차분한 눈빛으로 답했다."그렇습니다, 스스로를 더 잘 돌보는 것이 곧 삶을 마음 가는 대로 살아가는 방법이니까요."송석석은 과거의 자신을 완전히 부수고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금 느꼈다. 그리고 제대부인이 이를 해냈다는 사실이 정말로 대단하게 여겨졌다."참, 제제사께서 찾으라고 하신 분은 제가 이미 수소문 중입니다. 소식이 생기면 바로 알려드리겠다고 전해주세요."제대부인은 그녀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과감함과 약속을 지키는 굳건함에 깊은 감탄을 표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낮추어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왕비님."사실 제제사가 찾고자 한 사람을 송석석이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미 홍현과 그들을 시켜 그 사람의 이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52화

    회왕이 귀중품을 챙겨 진성을 떠났는데, 그 물건들이 이미 도중에 바꿔치기된 상태였다. 나중에서야 길에서 이를 알아차린 그는 분노하여 미칠 지경이었으나 지금 화를 내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판단을 내렸다. 다시 진성으로 돌아가는 것은 감히 엄두조차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는 아무런 연줄도, 자원도 없이 이곳에 도착했으며, 친왕이라는 신분만 있을 뿐 많은 이들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그의 처지는 그야말로 곤경에 처해 있었다.하지만 다행히도 그는 곧 좋은 돌파구를 찾아냈다. 이 돌파구가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긴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위해 살아가지 않는가. 그 인물이 은거하며 잠복한 이유는 단순히 훗날 좋은 지역에 봉토를 얻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그는 아주 깊은 곳에 숨어 지내며 수년간 아무 의심도 받지 않았고, 다른 사람의 기반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며 조금씩 침투했다. 이 인물 이야말로 진정한 책략가였다.또한, 이 인물은 삼형보다 상대하기 훨씬 더 어려운 사람이기에, 훗날 일이 성사되더라도, 그가 이 인물의 성과를 빼앗으려 한다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다만, 삼형과 그 인물을 비교해 보면 그 인물이 훨씬 더 승산이 있으니, 그는 당연히 더 승산이 있는 사람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게다가 삼형 쪽에서는 내세울 만한 패가 전혀 없었다. 금은보화는 물론이고, 연줄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그러나 그 인물에게는 삼형이 바로 그의 패였다. 그 인물이 삼형의 모든 것을 삼키려면 그를 의지해야 했기 때문이다.연왕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한바탕 슬퍼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은 컸지만, 그를 더욱 분노하게 만든 것은 어머니의 죽음이 아무런 가치도 없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태후에게 덕망을 더해주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이었다.태후의 덕망이 널리 알려지면서 숙청제까지 그 명성을 함께 누리게 되었다. 그들은 어머니의 죽음을 이용한 것이다. 정말로 비열했다.진성에서는 제제사와 남풍관과 관련된 추문이 모두 잠잠해졌고, 사람들은 이제 태후의 덕망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51화

    송석석이 떠난 이후에도 제 황후는 여전히 분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녀는 한쪽에 앉아 어두운 얼굴로 조부가 약과 인삼탕을 마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심지어 어의들에게 침을 놓아 막힌 혈자리를 뚫게 시키기도 했다. 조부는 단신의가 남긴 약까지 전부 복용했다.한 시진이 채 지나지 않아, 그의 안색이 점점 호전되는 모습을 보였다. 어의들은 그의 마음에 다시금 투지가 생겨, 희망이 보인다는 진단을 내렸다. 제씨 가문 중 누구랄 것 없이 모두가 기뻐했지만, 제 황후만큼은 실망하여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 모습은 제제사가 남풍관에 갔을 때의 얼굴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그녀는 이것이 최후의 수단임을 알았다. 이로 인해 친정의 미움을 사고, 황제의 노여움까지 살 것이라는 사실까지도 이미 알고 있었다.그러나 송석석은 그녀에게 이보다 더 큰 위협이었다. 송석석의 명성이 추락하고 바닥까지 떨어져야만 자신의 황후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드러낼 수 있었다. 그래야 그녀 역시 송석석이 했던 것처럼 여학을 새로 열고, 조정의 관원들과 귀족 딸들을 끌어들여 입학시킴으로써 세가 관원의 힘을 결집하고 대황자의 세력을 강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그녀는 이전에 자신이 하찮게 여겼던 일도 이제는 다 할 생각이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주저하는 태도를 분명히 알아챘다. 오로지 제씨 가문에 모든 희망을 걸었다가는 문제가 생길 경우 철저히 실패하여 돌이킬 수 없게 될 것이었다.목 승상이 들어와 제제사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오랜 벗이여, 잘 회복하시길 바라네. 이 젊은 것들이 어떻게 소란을 피우는지 지켜보자고. 누군가 소란을 피워야 세상이 흥미진진하지 않겠소."제제사는 약간 감동한 기색을 보였다. 그는 목 승상이 자신을 경멸하고 멸시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다. 그의 태도는 여전히 평소와 같았다.결국 제제사는 버텨냈지만, 영태비는 버티지 못하고 이월 초에 외부에 상소를 발표하며 세상을 떠났다 숙청제는 연왕에게 사람을 보내 그가 돌아와 상을 치를 수 있도록 전갈을 보냈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50화

    제 제사는 한참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고 있어 금방이라도 버럭 화를 낼 것만 같았다.한편, 밖에서 듣고 있던 제 황후는 화제가 이상한 곳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서 침실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다가 조부의 거친 숨소리가 걸음을 멈추었다.송석석의 말에 충격을 받은 조부는 더할 나위 없는 수치심을 느꼈을 것이고 반드시 송석석에게 확실하게 복수하려고 할 것이다.이미 삶의 의지를 잃은 제 황후는 그저 조부가 화끈한 죽음으로 송석석에게 복수하길 바랄 뿐이었다.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조부는 화를 내지 않았고 되레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하고 있었다.“어쩌면 송 대감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경위부에서 저에게 했던 말은 틀렸습니다. 쟁취한다고 해서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송 대감이 지금 하고 있는 노력도 전부 무용지물이라는 뜻이지요.”제 제사의 말에 송석석이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어르신, 그럼 저와 내기를 하시겠습니까?”“내기요?”흠칫하던 제 제사는 이내 씁쓸하게 웃으면서 물었다.“송 대감이 자신이 이길 거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저와 어떤 내기를 하고 싶으신 겁니까?”“몇 년이 지나면 어르신은 이 나라 곳곳에서 공방과 여학을 보시게 될 겁니다. 제가 말한 것처럼 세상이 변한다면 제가 이긴 걸로 해주십시오.”“말도 안 되는 소리. 진성에 현재 여학이 있는 건 전부 태후 덕분입니다. 하지만 진성이 아닌 다른 지역에 여학과 공방이 생긴다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지요.”제 제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하자 송석석은 조금 가까이 다가가 확신에 찬 표정으로 대꾸했다.“그러니까 어르신, 저와 내기를 합시다. 내기는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저에게 딱 2년만 주십시오.”제 제사는 마음이 조금 흔들렸지만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반문했다. “하지만 우린 상황이 다릅니다. 제가 이루고자 하는 건 훨씬 충격적인 일이지요. 사람들은 영원히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고 이 세상의 인정도 받을 수 없습니다.”“하지만 어르신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49화

    송석석은 문을 열고 침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내부를 쓱 훑어보곤 낮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말했다.“어르신!”지금 생각해보면 솔직히 제 제사와 송석석 사이에는 개인적인 원한이 전혀 없었으며 그저 우연히 상황이 겹쳤을 뿐이다.서서히 눈을 뜬 제 제사는 잠시 주변을 살피다가 송석석 혼자만 들어온 걸 확인하고 나서야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몸이 허약한 제 제사는 숨소리마저 미약했고 언제 사망해도 이상하지 않은 모습이었다.상 위에는 약 한 그릇과 죽 한 그릇이 놓여 있었고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걸로 봐서는 누군가가 제 제사에게 먹이려 했지만 제 제사가 거절한 듯했다.“죽을 좀 주시오.”제 제사가 손을 뻗자 송석석은 이내 고개를 돌렸다.“죽을 드시고 싶으신 겁니까? 그럼 제가 얼른 하인을 불러오겠습니다.”이내 침실에 들어온 양기웅은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송석석을 쳐다보았다. 며칠동안 음식을 전혀 입에 대지 않은 제 제사가 이렇게 죽을 찾는 것만으로도 양기웅은 송석석이 너무 고마웠다.한편, 밖에서 듣고 있던 제 황후는 상황이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자 미간을 확 찌푸렸다.‘조부가 왜 갑자기 죽을 찾는 거지?’제 황후는 일단 지켜 보기로 했고 침실 안에 있던 제 제사는 죽을 절반 정도 먹은 뒤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양기웅에게 이만 나가보라고 했다.양기웅은 절반이나 사라진 죽 그릇을 보며 너무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날 정도였다. 그는 제 제사가 이대로 죽으면 자신도 따라 죽을 것이라고 다짐했었다.인삼죽을 마신 제 제사는 조금 전보다 얼굴이 편해 보였지만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송석석은 경위부 때처럼 의자를 챙겨와 제 제사 침대 곁에 조용하게 앉아있었다.조금 뒤, 힘겹게 눈을 깜빡이던 제 제사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그날 송 대감은 저한테 신념을 견고하게 지키지 못하고 원하는 삶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고 하셨죠. 제가 오늘 송 대감을 저택으로 부른 건…”말을 하던 제 제사는 힘겨운 듯 잠시 숨을 고르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송 대감에게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48화

    목 승상이 고개를 숙이며 공손하게 대답했다.“황후 마마의 명을 제가 어찌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그치만 오늘 왕비님께서는 제 제사의 문안을 오신 겁니다. 두 분은 평소에 원한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닌데 충돌이 생길 이유가 전혀 없을 것 같습니다.”산전 수전을 다 겪은 목 승상 앞에서 제 황후의 잔머리는 그저 얕은 수에 불과했다. 황후의 신분을 이용하여 대놓고 송석석을 함정에 빠트리려고 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조부가 이로 인해 사망할 수도 있다는 점을 뻔히 알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목 승상은 냉랭한 눈빛으로 제씨 가문 사람들을 쓱 훑어보았다.“제 제사께서는 참 훌륭한 자제분들을 두셨네요. 여한이 없으시겠습니다.”목 승상의 뜻을 눈치챈 제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푹 숙인 채 감히 목 승상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이때, 곁에서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제 대부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송석석에게 말을 걸었다.“송 대감님, 단 신의를 불러 저희 어르신의 병을 치료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그녀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할 줄 몰랐던 제 황후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져 버렸다.“어머니, 어의가 조부의 곁을 지키고 있는데 뭐가 걱정이십니까? 아무 의원이나 제 조부의 병을 고칠 자격이 있는 건 아닙니다.”제 황후는 평소에 오만한 자태를 뽐내는 단 신의가 이런 모욕적인 말을 들으면 화가 나서 떠날 줄 알았으며 이번 기회에 송석석만 제대로 짓밟을 수 있다면 단 신의의 심기를 건드리게 된다고 해도 전혀 상관이 없었다.한편, 제 황후의 말에 제씨 가문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제 제사가 평소에 복용하는 약은 대부분 약왕당에서 구매했을 뿐만 아니라 다들 매년 한 번 정도는 단 신의에게서 병을 보곤 했다.단 신의의 의술은 손꼽힐 정도로 뛰어난데 단 신의의 심기를 함부로 건드렸다가 앞으로 약왕당에 발도 들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버럭 화를 낼 줄 알았던 단 신의는 되레 환하게 웃으며 대꾸했다.“황후 마마께 의원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47화

    한편, 제 황후의 부름에 송석석은 어안이 벙벙했다.‘왜 갑자기 제 제사를 만나러 오라고 부르는 것이지? 죄를 묻고 싶다면 궁으로 부르면 될 텐데 말이야.’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제 제사를 상대로 송석석은 욕을 먹어도 감히 한 마디도 반박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러다가 제 제사가 눈앞에서 사망하기라도 하면 송석석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진다. 시만자는 송석석에 제 제사가 며칠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있기에 작은 자극에도 사망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그의 현재 상황을 얘기해주었다. “제 제사께서 설마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봐 달라고 부르는 건 아니겠지? 늙은이가 아주 못됐네!”자초지종을 들은 모신신은 씩씩거리며 독설을 날렸고, 만두는 옆에서 송석석을 말렸다.“가지 않는 게 좋겠어. 황제 폐하의 명도 아니고 황후의 명을 어긴다고 해서 큰일이 날 것 같진 않은데?”하지만 시만자의 의견은 달랐다.“황후의 명을 어기면 황제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보여도 속으로 체면이 깎였다고 생각할 거야. 가야 돼. 제 제사가 정말 네 앞에서 죽는다고 해도 그건 하늘의 뜻이니 어쩔 수가 없어. 이건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시만자는 숙청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황제 부부의 심기를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석석아, 내가 너랑 같이 가줄게.”시만자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송석석이 말했다.“네까지 같이 안 가도 돼. 단 신의를 불러서 함께 갈 생각이야. 그리고 제 제사를 만날 때 제 대부인께 같이 있어달라고 부탁할 거야.”제씨 가문이 막무가내인 집안은 아니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당당하게 맞서서 증인을 데리고 가는 게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그래, 그럼 내가 단 신의께 찾아가서 같이 가줄 수 있는지 여쭤보고 올게.”모신신의 말에 시만자가 대꾸했다.“여쭤볼 필요도 없어. 단 신의께서 석석에 관한 일이라면 당연히 나서실 거야.”“다행이네!”모신신과 만두는 그리 걱정되지 않았다. 문제가 생긴다면 해결하면 그만이고 정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46화

    제 상서는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말했다.“아버지, 폐하께서는 이제 더 이상 우리 제씨 가문을 중히 여기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제가 어찌 북명왕 가문의 심기까지 건드리겠습니까?”“그럼 그냥 죽게 내버려둬. 내가 죽어야 너희들이 살 수 있어.”말을 하던 제 제사는 다시 눈을 지그시 감았고 이렇게 몇 마디 한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었다.한편, 제 황후는 오래 전부터 송석석이 마음에 들지 않았었는데, 송석석이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탓에 제씨 가문은 명성이 무너졌을 뿐만 아니라 황후인 그녀까지도 피해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제 황후는 밖으로 나가자마자 제 상서를 불러 조용하게 얘기했다.“조부께서 요구하신 대로 송 대감을 불러오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목 승상도 함께 불러오세요. 그래야 송 대감이 조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사실을 증언해줄 사람이 생길 것 아닙니까?”제 상서가 고개를 번쩍 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제 황후를 쳐다보았다.“안 된다. 지금 그게 무슨 말이냐! 그러다가 네 조부께서 정말 사망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는 것이냐!”“아버지, 조부께서 맞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조부가 돌아가셔야 저희 제씨 가문이 살 수 있습니다. 조부께서 살아 계신 한, 저희 제씨 가문은 계속 손가락질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부께서 사망하시면 조부의 공적을 찬송하는 사람이 생길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다들 남풍관에 관한 일은 잊을 것입니다.”“너 제정신인 것이냐? 그건 그저 네 조부께서 홧김에 한 말일 뿐이다!”그러자 제 황후가 눈물을 닦으며 그를 진정시켰다.“아버지, 일단 제 말을 들어보시지요. 조부께서 이렇게 되신 게 송석석 그 여자 탓이 아닙니까? 조부께서는 그 여자를 원망하고 계신 겁니다. 그래서 만나고 싶다고 얘기하신 것이죠. 송석석 앞에서 생을 마감하시는 게 조부의 복수 수단이고 저희 제씨 가문이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조부께서 이런 결정을 하신 것도 다 생각이 있으신 게 아니겠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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