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왕은 차분한 눈빛으로 엄지에 낀 옥반지를 돌리며 말했다. "아직 부족하다. 계속 퍼뜨리거라. 북명왕 사여묵이 죄를 지은 여인을 변호하려 하고 그 목적은 자신이 대리사 경 자리에 오를 자격이 충분하다고 증명하려는 것이고 세상을 거느리려 들며 공을 탐하는 것이라 전해라. 또한 그가 단지 무장일 뿐, 공문과 법률에 대해선 무지하다는 점을 강조하도록 해라."잠시 아무 말 없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또한 황제도 그에게 속아 넘어갔고 그의 공로가 너무 커 황제께서도 그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는 소문도 퍼뜨리거라."그 부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여묵이 사건을 재심할 것이라 확신하십니까?"연왕은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의심스러운 점이 있다면, 당연히 바로 재심할 것이다." 그의 눈빛은 이내 피비린내 나는 차가움으로 변해버렸다."나는 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 생명에 대해 매우 집착하는 자라, 생명과 관련된 일에는 언제나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대할 것이다. 이토록 커다란 의문점이 있는데도 재심을 하지 않는다면, 양심의 가책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다.""소인이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겠사옵니다." 고개를 숙여 인사한 부하는 문을 나서자 망토를 휘감고 빠르게 사라졌다.연왕은 흥미롭다는 듯이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사여묵, 내가 민심을 완전히 잃게 만들어 줄게. 다시는 병권을 잡지 못하게 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네 공이 너무 커 황제도 경계하고 있다고, 게다가 황제마저도 어리석은 자라고 할 것이다”"무상!" 그가 크게 외치자, 자수로 장식된 산수화 뒤에서 회색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걸어 나와 머리를 숙였다. "대장님!"연왕은 물었다. "그 살인을 저지른 자의 몸 속 묘독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겠지?"무상은 낮고 목소리로 대답했다. "절대 알아낼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그녀의 뇌 속에 숨어 있는 작은 선충일 뿐이어서, 설령 그녀의 머리를 베어낸다 해도 알아낼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선충은 오직 저의 명령만 따를 뿐이고 지금 그자는
대리사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상주는 이미 초조의 극을 달리고 있었다."대체 단신의는 왜 부르신 겁니까? 단신의는 사자도 경험하지 못했는데, 아무리 뛰어난 의술을 가졌다 해도 결국에는 오작이 아닙니다."조급한 이상주와는 달리 사여묵은 전혀 서두르지 않았다."조금 더 기다리거라. 큰 사건이고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만큼, 혹시라도 부주의하여 무고한 자를 억울하게 한다면, 그때는 천하가 우리를 성토하게 될 것이다."오랫동안 사건을 처리해 왔던 이상주이기에 약간의 의문점이 있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피의자가 이미 자백했고, 증인이 있고 증거가 있는 상황인데 대체 무엇을 더 조사할 필요가 있겠는가?"이건 단지 시간을 낭비할 뿐입니다. 살인자를 하루라도 더 살게 한다는 것은 죽임을 당한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 아닙니다.""비주지부의 기록도 가을에 참수형을 내린 것이고, 지금은 아직 사월이니, 문서 왕래와 역마를 최대한 빨리 움직여도 왕복 한 달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헌데 무엇이 그리 급해서 이러는 것이냐?""단신의는 도대체 언제 오십니까? 이미 오래 기다렸사옵니다." 잔뜩 화가 난 이상주는 한쪽에 자리 잡고 앉았다. 북명왕과 너무 격렬하게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얼굴은 이미 매우 불쾌해 보였다.겁에 질린 두 시랑은 몸을 떨고 있었다. 반면 이상주는 북명왕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의 딸, 수민은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그들에게는 애첩이 될 딸이 없으므로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이상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대리사 소경 진이가 단신의를 직접 모셔 왔다.단신의는 키가 크지 않았지만, 기품이 넘쳤다. 문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이상주를 바라보았다.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선 이상주는 방금 전의 잔뜩 화가 난 눈썹과 초조한 눈동자는 완전히 사라지고 순식간에 겸손하고 온화한 태도로 바뀌었다."귀한 발걸음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 폐를 끼쳐 매우 송구스럽사옵니다.""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단신의는 담
단신의는 종이를 한 장 꺼냈는데, 거기에는 약의 이름과 그 약들의 효능 및 부작용이 적혀있었다.단신의는 그것을 가리키며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첫 번째는 '지옥의 불', 이는 사람으로 하여금 환각을 일으키게 하고, 마음속의 집념이 무한히 커져 거대한 힘을 얻게 하지만, 환각 후엔 반드시 해독제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 여인은 비록 가족을 몰살한 후 이웃마저 죽이려 했지만, 관청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진정된 상태였으니, 이는 '지옥의 불'일 수 없다.두 번째는 '광두산', 이는 버섯 종류로 사람을 환각과 광기로 몰아가 스스로를 해치거나 타인을 살해할 수 있게 하지만, 전에 반드시 울거나 웃거나 하고, 또는 몸이 현란하게 움직인다. 그러나 '광두산'은 큰 힘을 발휘할 수 없어 열두 명을 죽일 수는 없다.세 번째는 '구혼선충', 이는 묘충의 일종이고 일명 '고충'이라 불렸다. '구혼선충'은 사람의 두뇌에 침입하면 타인이 조종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는 기억을 남기게 된다.“가장 중요한 것은 이 '구혼선충'이 환각을 일으켜 강력하면서도 미친 듯한 힘을 발휘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조종당하는 동안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 몸과 사지를 타인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게 되지요. 만약 그 조종자가 무공을 가진 자라면, 그 또한 무공을 가진 자처럼 힘이 커지게 됩니다.”단신의의 말에 이상주와 두 시랑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천천히 얼굴을 찡그렸다."그 '구혼선충'이 그녀의 머릿속에 대체 어떻게 들어갔다는 말입니까?""음식을 통해, 아니, 혹은 약을 통해서일 가능성이 제일 큽니다. 아마 그 여인의 머릿속에 '구혼선충'이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자리 잡고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구혼선충'은 성장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보통 반년이나 일 년은 걸려야 완전히 성숙됩니다."이상주도 의문을 던졌다. "단지 '구혼선충'이 있다는 것일 뿐, 그녀도 이 벌레에 당했다고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저는 단지 의문 답을 하기 위해 왔을 뿐입니다. 이
사건이 상주 된 후, 황제는 이상주를 어사로 임명하고 그의 일행들을 비주로 보내어 사건을 조사하도록 명하였다. 청작 역시 그 일행에 동행했다.재심에 더하여 황제께서 흠차를 보냈고, 게다가 형부의 상서가 직접 나서는 것이어서 분노한 백성들을 조금이나마 잠재울 수는 있었다.심청화 역시 이번 사건에 대한 글을 올려 사건의 의문점을 제기하였다. 학자들이 전에 올렸던 글들은 모두 백성들의 분노 때문이었다. 죽은 자를 위해 정의를 외치며 부권이 도전받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심청화가 나서서 의문점을 제기하고 나니 그들도 하나둘씩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다만, 확신에 찬 말투는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흠차가 조사를 마친 후에는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며 고인에게 명복을 전할 뿐이었다.이것은 연왕부는 꿈에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재검토가 통과되거나 재심으로 넘겨져도 사여묵은 결국 명성을 잃고 대리사 경 자리조차 위태로워질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들은 바로 흠차를 파견하여 조사를 진행했다."내가 사여묵을 과소평가했구나." 연왕의 목소리는 듣기 몹시 섬뜩했다."대장님, 염려 마십시오. 누가 가더라도 선충에 중독되었다는 사실은 밝혀낼 수 없을 것입니다...""그러면 사여묵과는 무관해질 것이다. 그 여인이 참형에 처해지든 아니든, 모두 흠차가 정한 죄목이 된다. 이번 흠차는 형부의 이상주라 그가 일단 죄를 확정 지으면 대리사에 보고할 필요도 없이 즉시 처형될 것이다. 나중에 중독되었음이 밝혀지더라도 사여묵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그는 이 사건으로 이씨 가문과 맞서고 싶지는 않았다. 이씨 가문 수민이 궁에 있었고 대부분 가족이 관직에 올라 있어 사건을 깊이 파헤치기라도 한다면 그가 수면위로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다.무슨 일이든 한 단계 한 단계 차근차근 진행해야 한다. 그는 이미 몇 년이나 기다렸으니 이 시점에서 실수가 있으면 절대로 안 된다."선충만 밝혀지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비주지부는 연루되지
청작이 선충의 위력을 검증하고자 사람을 시켜 닭 한 마리를 가져오게 했다. 그 닭에게 선충을 먹인 후, 약을 태워 선충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닭은 미친 듯이 날뛰며 사람을 보기만 하면 쪼아대기 시작했다. 급기야 하늘을 날았는데 사납기 그지없었다.가장 유명한 싸움닭과 붙여도 눈 깜짝할 사이에 눈알을 다 쪼아버렸다.청작이 다시 약을 태우자 비로소 진정되었고 천천히 선충을 토해낼 수 있었다. “'구혼선충'이라 불리는 이 성충은 사람이 조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양 씨가 복용했을 때는 부화하지 않은 상태였고 고온에서는 죽지 않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성충은 혈관을 따라 곧바로 뇌로 향하는데, 보통 반년 정도 걸리지요. 이는 허 씨의 자백과 일치합니다. 그렇게 성숙해진 선충은 약내를 맡거나 조종을 당하면 발광하게 되지요.”청작의 말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는 그때, 이상주가 나섰다.“그러니 이 사건은 누군가 그들 일가를 해치려고 치밀하게 계획된 것입니다. 양 씨는 단지 그들의 무기였을 뿐 그녀 또한 피해자이지요.”그 말에 군중이 술렁였다.청작은 현장을 정리하던 중 여전히 공포에 질린 허 씨를 토닥였다.“천만다행입니다. 독을 넣은 자는 누군가가 선충을 빼낼 수 있을 것란 걸 몰랐을 겁니다. 하여 관련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 여겼기에 당신을 처리하지 않았을 겁니다. 양 씨의 오랜 주치의를 담당했던 당신이 해를 당하면 의심을 살 수 있으니깐요. 금괴 한 덩이, 결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허 씨는 그만 자리에 털썩 앉고 말았다.어느새 해가 저물고, 어둠이 깔렸다.청작이 보낸 비둘기도 북명왕부로 돌아왔는데, 그 곳에는 순조롭게 시작되었고, 차근차근 추적해 나가는 중이라는 짧은 몇마디만 적혀 있었다. 이는 이상주가 금방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임무를 받고 떠난 청작이기에 무의식중에라도 이상주에게 여론을 조작하고 있는 배후가 있다는 것을 흘렸을 게 분명했다. 워낙 뜨거운 열기
잠시 후 사여묵이 란이의 안부를 물었다."그녀는 요즘 어떠하오? 기분은 괜찮소? 양소가 파면된 후에는 자중하고 있다고 하오?"그러자 송석석이 고개를 저었다."참사랑이라고 하는데 자제가 되겠습니까? 자중은커녕, 이제는 란이 방에도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참사랑?" 사여묵이 눈살을 찌푸렸다. "제멋대로 붙이는군! 또 다른 첩이 있지 않소? 청관의 몸값을 지불했던 그 상인의 여식 말이오.""아, 문 씨가 시집온 후로 그의 얼굴은 몇 번 보지도 못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송석석은 갑자기 화가 치밀어올라 자수 하는 것을 멈췄다. "문 씨는 올해 겨우 열일곱입니다. 그녀의 집안과 승은백부의 격차로 보아 그곳을 벗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녀 또한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희생양이 아니겠습니까? 그녀도 양소의 측실은 되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그때 량 마마가 직접 상을 들고 들어오며 말했다."밖에서는 모두 그녀가 스스로 그렇게 했다고들 말했습니다.""문 씨가 신분을 높이려고 스스로 승은백부에 첩으로 들어갔다고 하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그것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누가 한 여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하겠느냐? 어쩌면 평범한 가정을 이루어 검소하게 살고 싶었을지도 모를 텐데, 그 또한 누가 신경이나 쓰겠느냐?"그녀의 말에 사여묵은 가슴이 뭉클해졌다."두 사람이 거의 만난 적도 없었을 텐데 대신 말까지 해주다니… 진정으로 그 여인을 공감해 주는 모습이 보기가 좋군요. 겉으로는 정의로운 척하지만, 사실 여인을 가장 천하게 여기는 자들이 있소."순간 멈칫하던 송석석은 문득 이방을 떠올렸다.이방은 송석석앞에서 자신이 여인들의 모범상이라 칭하며 여인들을 위해 소리를 높여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마음속 깊이 여인을 경멸하고 있었다.그때 보주가 다가와 보고했다."석소 사매가 오셨습니다.""어서, 화청으로 모셔라." 송석석은 심각한 표정으로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니겠지?’석
보주가 급히 달려가 차를 들고 와 석소 사저에게 천천히 차를 따랐다. 그녀는 한 잔을 비우고 나서야 말을 이었다.“란이는 그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어 우리는 그를 막지 않았다. 젊은 부부라면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고 말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지. 아이가 무사히 태어날 때까지는 란이가 좋은 기분으로 지내기를 바랐다. 적어도 밤마다 혼자 눈물을 흘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 아니냐.”송석석은 손에 땀을 쥐었다.“그가 란이를 나무랐습니까?”“나무라기만 했다면 내가 그를 때리진 않았을 것이다. 그가 란이를 밀어버렸고 그 충격에 란이의 배가 그만 탁자 모서리에 부딪히고 말았다. 란이는 고통을 삼키며 식은땀만 흘렸단다. 그래서 내가 그를 패버린 것이다.”“란이를 밀었단 말입니까? 지금 란이는 괜찮습니까?” 송석석이 다급히 물었다.“부의가 살펴보더니 태기가 다쳐서 한 달 동안은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 석소 사저는 다시 차를 들이키고 말했다.“란이가 계속 어머니를 찾아서 나는 그들을 모셔 오려고 회왕부에 갔었다.”말을 하다 멈춘 석소 사저 때문에 모두 초조해졌다. 마음이 급해진 송석석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란이 보러 왔습니까?”“오지 않았다!” 석소 사저는 다시 한 잔 비웠다.“오늘 하루동안 너무 갈증이 났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회왕비는 오고 싶어 했지만, 회왕은 거기에 가게 된다면 량소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했고, 만약 책임을 묻는 날에 승은백부는 어떤 태도로 나올지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상의만 하다 어차피 의사도 안정을 취하면 괜찮다고 하였으니 며칠 후에 방문하겠다고 하셨다. 적어도 오늘의 소란을 피하고 며칠 뒤에 찾아가면 오늘 일과는 무관하게 될 테니까.”“이게 무슨 개소리냐!” 문밖에서 갑자기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혜태비와 고 씨 유모가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섰는데, 혜태비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자기 딸이 괴롭힘을 당했는데, 부모가 되
그러자 늘 태비 곁을 지켰던 정심도 동행하려 했다. 하지만 송석석이 그녀를 불러 세우며 말했다. “내 방에 사람이 부족하니, 너는 가지말고 내 시중을 들 거라.”발걸음을 멈춘 정심의 눈동자에 잠깐 당혹스러운 기색이 스쳤다.‘왕비께서 무언가 알아챈 것일까?’하지만 이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예!”정심의 생각과 달리 송석석의 얼굴은 환한 미소로 가득차 있었다.“어머님께서 네 머리 빗는 솜씨가 뛰어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더구나. 이제부터 내 머리를 너에게 맡기겠다.”미소를 머금은 송석석의 얼굴을 마주한 정심이 놀라 물었다.“보주가 항상 왕비님의 머리를 빗겨드리는 것을 보았는데 제가 혹 보주의 일을 낚아챈 기분이라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보주에게는 다른 일을 맡길 것이다. 그러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정심은 그제서야 안심하며 제안을 승낙했다.“알겠습니다. 태비께서 허락하신다면, 저는 매화원에서 왕비님을 모시겠습니다.”그녀는 살짝 북명왕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는 별다른 반응 없이 담담한 표정이었다.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한편,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승은백부는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혜태비가 오자 승은백 부부와 다른 방의 노부인들이 모두 나와 혜태비를 맞이했다.혜태비는 온화한 말투였다.“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나는 그저 조카인 영안 군주를 보러 온 것이다.”그녀의 등장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일그러져 있었다. 그들은 사실 오늘 회왕 부부가 문책이라도 하러 올까 두려워 하루 종일 걱정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나 밤이 되어서도 회왕부에서는 아무도 오지 않았기에 그제야 안심을 하고 있었는데 막 잠자리에 들려는 순간에 혜태비가 찾아온 것이다. 이루 말로 표현을 할 수 없는 당혹감이었다.혜태비는 잘 구슬리면 금방 넘어오지만, 그렇다고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상황에 따라 잘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승은백 부인은 잘 알고 있었다.자리에 앉은 혜태비가 잠시 후 입을 열었다.“돌아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