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사여묵이 란이의 안부를 물었다."그녀는 요즘 어떠하오? 기분은 괜찮소? 양소가 파면된 후에는 자중하고 있다고 하오?"그러자 송석석이 고개를 저었다."참사랑이라고 하는데 자제가 되겠습니까? 자중은커녕, 이제는 란이 방에도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참사랑?" 사여묵이 눈살을 찌푸렸다. "제멋대로 붙이는군! 또 다른 첩이 있지 않소? 청관의 몸값을 지불했던 그 상인의 여식 말이오.""아, 문 씨가 시집온 후로 그의 얼굴은 몇 번 보지도 못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송석석은 갑자기 화가 치밀어올라 자수 하는 것을 멈췄다. "문 씨는 올해 겨우 열일곱입니다. 그녀의 집안과 승은백부의 격차로 보아 그곳을 벗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녀 또한 아버지와 오라버니의 희생양이 아니겠습니까? 그녀도 양소의 측실은 되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그때 량 마마가 직접 상을 들고 들어오며 말했다."밖에서는 모두 그녀가 스스로 그렇게 했다고들 말했습니다.""문 씨가 신분을 높이려고 스스로 승은백부에 첩으로 들어갔다고 하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그것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누가 한 여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하겠느냐? 어쩌면 평범한 가정을 이루어 검소하게 살고 싶었을지도 모를 텐데, 그 또한 누가 신경이나 쓰겠느냐?"그녀의 말에 사여묵은 가슴이 뭉클해졌다."두 사람이 거의 만난 적도 없었을 텐데 대신 말까지 해주다니… 진정으로 그 여인을 공감해 주는 모습이 보기가 좋군요. 겉으로는 정의로운 척하지만, 사실 여인을 가장 천하게 여기는 자들이 있소."순간 멈칫하던 송석석은 문득 이방을 떠올렸다.이방은 송석석앞에서 자신이 여인들의 모범상이라 칭하며 여인들을 위해 소리를 높여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마음속 깊이 여인을 경멸하고 있었다.그때 보주가 다가와 보고했다."석소 사매가 오셨습니다.""어서, 화청으로 모셔라." 송석석은 심각한 표정으로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니겠지?’석
보주가 급히 달려가 차를 들고 와 석소 사저에게 천천히 차를 따랐다. 그녀는 한 잔을 비우고 나서야 말을 이었다.“란이는 그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어 우리는 그를 막지 않았다. 젊은 부부라면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고 말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지. 아이가 무사히 태어날 때까지는 란이가 좋은 기분으로 지내기를 바랐다. 적어도 밤마다 혼자 눈물을 흘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 아니냐.”송석석은 손에 땀을 쥐었다.“그가 란이를 나무랐습니까?”“나무라기만 했다면 내가 그를 때리진 않았을 것이다. 그가 란이를 밀어버렸고 그 충격에 란이의 배가 그만 탁자 모서리에 부딪히고 말았다. 란이는 고통을 삼키며 식은땀만 흘렸단다. 그래서 내가 그를 패버린 것이다.”“란이를 밀었단 말입니까? 지금 란이는 괜찮습니까?” 송석석이 다급히 물었다.“부의가 살펴보더니 태기가 다쳐서 한 달 동안은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한다고 하더라.” 석소 사저는 다시 차를 들이키고 말했다.“란이가 계속 어머니를 찾아서 나는 그들을 모셔 오려고 회왕부에 갔었다.”말을 하다 멈춘 석소 사저 때문에 모두 초조해졌다. 마음이 급해진 송석석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란이 보러 왔습니까?”“오지 않았다!” 석소 사저는 다시 한 잔 비웠다.“오늘 하루동안 너무 갈증이 났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회왕비는 오고 싶어 했지만, 회왕은 거기에 가게 된다면 량소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했고, 만약 책임을 묻는 날에 승은백부는 어떤 태도로 나올지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상의만 하다 어차피 의사도 안정을 취하면 괜찮다고 하였으니 며칠 후에 방문하겠다고 하셨다. 적어도 오늘의 소란을 피하고 며칠 뒤에 찾아가면 오늘 일과는 무관하게 될 테니까.”“이게 무슨 개소리냐!” 문밖에서 갑자기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혜태비와 고 씨 유모가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섰는데, 혜태비의 얼굴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자기 딸이 괴롭힘을 당했는데, 부모가 되
그러자 늘 태비 곁을 지켰던 정심도 동행하려 했다. 하지만 송석석이 그녀를 불러 세우며 말했다. “내 방에 사람이 부족하니, 너는 가지말고 내 시중을 들 거라.”발걸음을 멈춘 정심의 눈동자에 잠깐 당혹스러운 기색이 스쳤다.‘왕비께서 무언가 알아챈 것일까?’하지만 이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예!”정심의 생각과 달리 송석석의 얼굴은 환한 미소로 가득차 있었다.“어머님께서 네 머리 빗는 솜씨가 뛰어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더구나. 이제부터 내 머리를 너에게 맡기겠다.”미소를 머금은 송석석의 얼굴을 마주한 정심이 놀라 물었다.“보주가 항상 왕비님의 머리를 빗겨드리는 것을 보았는데 제가 혹 보주의 일을 낚아챈 기분이라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보주에게는 다른 일을 맡길 것이다. 그러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정심은 그제서야 안심하며 제안을 승낙했다.“알겠습니다. 태비께서 허락하신다면, 저는 매화원에서 왕비님을 모시겠습니다.”그녀는 살짝 북명왕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는 별다른 반응 없이 담담한 표정이었다.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한편,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승은백부는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혜태비가 오자 승은백 부부와 다른 방의 노부인들이 모두 나와 혜태비를 맞이했다.혜태비는 온화한 말투였다.“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나는 그저 조카인 영안 군주를 보러 온 것이다.”그녀의 등장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일그러져 있었다. 그들은 사실 오늘 회왕 부부가 문책이라도 하러 올까 두려워 하루 종일 걱정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나 밤이 되어서도 회왕부에서는 아무도 오지 않았기에 그제야 안심을 하고 있었는데 막 잠자리에 들려는 순간에 혜태비가 찾아온 것이다. 이루 말로 표현을 할 수 없는 당혹감이었다.혜태비는 잘 구슬리면 금방 넘어오지만, 그렇다고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상황에 따라 잘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승은백 부인은 잘 알고 있었다.자리에 앉은 혜태비가 잠시 후 입을 열었다.“돌아가지
란이는 혜태비의 따뜻한 목소리에 눈물이 계속 흘러 내렸다. 잠시 후 석소 사저가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였지만, 란이의 곁에 있던 시녀도 함께 울음을 터뜨려 결국 다시 한번 설명하게 되었다.“세자께서 파면된 이후, 연유도 감금되었지만, 우리 군주께서는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습니다. 세자는 모든 잘못을 다 군주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노태부인께 문안을 드리러 갔을 때 두 번이나 군주를 향해 손가락질까지 하시며 헛소문을 퍼뜨려 그가 어사에게 참소되게 만들었다고 비난하셨습니다. 비록 부인께서 군주를 보호하셨지만, 노태부인은 세자님을 옹호하며 아가씨가 비록 군주라 하더라도 이미 승은백부에 시집왔으니 남편을 하늘로 여겨야 하며, 외부에는 남편에 대한 불평을 한마디도 해서는 안 된다고 일침만 가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실부인의 본분을 잊게 된다고 말입니다. 오늘 일도 분명히 연유가 먼저 도발하였고 군주께서는 시선 한 번만 주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녀가 스스로 계단에서 넘어졌는데도 세자는 군주를 책망했고 결국엔 밀치기까지 했습니다.”그녀는 눈물을 닦으며 탁자의 모서리를 가리켰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부딪혔습니다.”혜태비와 시만자는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화리목으로 만든 탁자의 모서리는 둥글게 깎여 있긴 했지만 복부에 부딪혔으니 찢어지게 아팠을 것이다. 태기만 다쳤을 뿐 유산으로 이어지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다.태어날 아기의 운이 보통이 아닌 것 같다.“만자!” 가만히 듣고 있던 혜태비는 화가 잔뜩 나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당장 연유를 화청으로 끌고 오거라. 승은백부의 사람들에게 이 천한 것이 과연 이 집에 남아 있을 가치가 있는지 내가 제대로 물어봐야겠다.”석소 사저와 아라 사저는 승은백부에 남아 있어야 했기 때문에, 사람을 데려오는 일은 시만자가 맡는 것이 적합했다.“그럼, 량소는요?” 시만자가 묻자, 혜태비가 살짝 흘겼다.“연유가 내 손에 붙잡혀 있는데, 오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것이다.”고개를 끄덕이
마차 안에서 시만자는 송석석의 말을 전했다. 승은백부에 도착한 후, 먼저 예를 갖추고 그다음 강경하게 나가라고 했다. 란이의 상황부터 살펴본 후에 가장 강한 위엄을 드러내어 승은백부의 모든 사람, 그 노부인을 제압하라는 것이었다..시만자는 계획대로 연유를 끌고 바닥에 쓰러뜨리며 말했다.“하찮은 존재가 감히 군주 앞에서 술수를 부리다니! 아무도 군주를 위해 나서지 않고, 모두 이 천한 계집만 두둔했습니다. 태비님, 청컨대 결정을 내려주십시오!”승은백부인도 평소에 연유가 탐탁지 않았는데 그녀가 아들의 마음을 이미 사로잡았고, 그 아들은 노태부인의 마음을 사로잡았기에 허락한 것이었다.시만자에게 발로 차이고 바닥에 버려진 그녀의 모습을 보니 속이 시원했다.혜태비는 고개도 들지 않고 담담하게 물었다.“승은백부의 규율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궁에서는 만약 빈이 황후를 모욕하거나 누명을 씌우면, 즉시 처단하거나 독주를 내린다. 승은백부는 그렇지 않으냐? 판자정도는 있겠지?.”승은백은 혜태비가 오늘 군주를 위해 나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혜태비는 항상 타인의 집안일에는 관여하지 않으니 이는 북명왕비, 송석석의 뜻일 것이 분명했다. 송석석이 직접 나서지 않은 것은 승은백부의 내정을 간섭한다는 오명을 피하기 위해서겠지만, 혜태비는 달랐다. 그녀는 태비이고, 선제와 회왕이 형제였기에 군주의 친정을 대표할 수 있었다. 완벽하게 적합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연유를 경멸하게 된 승은백은 혜태비의 말을 듣자마자 즉시 명령했다, “여봐라, 이 천한 계집을 당장 끌어내거라!”오만방자하던 연유는 바닥을 뒹굴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는데, 몸을 떨면서도 체면을 유지하려 애썼다. 하지만 시만자의 거침없는 발길질에 결국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들었지? 너는 개처럼 끌려 나갈 것이다.”시만자의 무서움에도 연유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 완강하게 외쳤다.“너희 권문세가들은 사람 목숨을 우습게 아는구나. 나를 죽인다 해도 절대 뜻을 이루
표정이 급변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승은백이 급히 만류했다.“어머니, 천천히 말씀하시지…”“입 다물어라, 이 무능한 자식, 이제 집에까지 찾아와 행패를 부리고 있는데 넌 왜 약한 척만 하고 있느냐?” 노태부인, 조월순은 분노에 차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저리 비켜라!”그녀는 걸어가서 자리에 앉으며 숨을 고르고, 혜태비의 눈을 마주하며 말했소, “상하구분말입니까? 군주라 할지라도 이미 우리 승은백부에 시집왔으니, 우리 집의 며느리지요. 여인은 집에서 부친을 따르고, 출가하면 남편을 따르는 법입니다. 사소한 문제로 북명왕비를 부추겨 자기 남편을 참소하게 만들었지요. 첩을 두지 않는 가문은 없습니다. 좋은 건 배우지 않고, 못된 것만 심통히도 하고 있네요.”혜태비의 둥근 눈이 번뜩였다. ‘뭐? 감히 송석석을 들먹여? 지금 내 며느리를 말하는 거야? 정말 시집오기 전부터 그녀 편을 들어주던 그 며느리를 말하는 거지? “쨍그랑!” 혜태비의 찻잔이 바닥에 던져버렸다. 흰색 도자기 잔이 산산조각 나고 분노에 찬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네 뺨을 때리게 만들지 말거라!”갑작스러운 광경에 모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조월순조차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혜태비가 이토록 자기 형상을 신경 쓰지 않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자리에서 일어선 혜태비는 조월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치켜 올리며 입을 열었다.“손자를 형펀없게 키워놓고도 감히 함부로 떠들어? 란이가 내 며느리를 부추겨 이 못된 놈을 참소했다고? 네 두 눈으로 봤느냐? 두 귀로 들었느냐? 오늘 그 증거를 내놓지 않으면, 내가 이 승은백부를 부숴버릴 것이다.”“너… 너…” 화가 난 조월순은 입술마저 떨리기 시작했다.“여기는 승은백부입니다. 어찌 감히 이런 망언을 하십니까?”혜태비는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망언이면 뭐? 너 같은 삼품 숙인이 무슨 배짱으로 내 앞에서 이리 뻔뻔할 수 있느냐? 존비를 따지자면, 정1품 군주 앞에서도 절해야 하거늘, 하물며 내 며느리는 정
조월순은 눈앞이 캄캄졌다. 너무나 약이 올라 금방이라도 돌아갈 것 같았다.휘청거리다가 겨우 제정신을 차린 그녀는 혜태비를 향해 손가락질 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바… 반.. 반드시 궁에 들어가 태비님의 지나친 행동에 대해 아뢸 겁니다!”“알려라, 악녀야!” 혜태비는 고개를 높게 쳐들었다.“태후는 내 언니다. 하지만 이치를 따지는 사람이지. 네가 란이를 괴롭혔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작위조차 박탈해 버릴지도 모르니, 그때는 고명 숙인이 아니라 평민이 될 터니 단단히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작위를 박탈한다고?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그리 말하는 것입니까?”완전히 격분한 조월순은 지팡이를 던져버리며 혜태비를 밀쳤다. 혜태비는 그 힘으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네가 감히 내게 손을 대? 승은백부이 감히 위아래도 없이 나를 능멸하는 게냐?”순간 승은백부의 모든 사람들이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방금 전까지 사람을 호되게 꾸짖던 혜태비가 억울함을 당한 며느리처럼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사실, 이미 반 시간 전에 송석석과 사여묵은 마차에 올라 승은백부로 향하고 있었다. 송석석이 직접 나서서 개입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긴 했지만 자신의 어머님이 괴롭힘을 당했다면 말은 달라진다. 바로 이 점은 그녀가 시만자에게 당부한 것이었다. 먼저 호되게 꾸짖거나 때려도 된다며 그들을 화나게 한 다음, 기회를 틈타 쓰러지면 그들이 직접 나설 수 있는 명분을 갖게 된다는 것이었다.아라 사저도 혜태비가 시만자더러 연유를 잡아 오라고 명했을 때 이미 회왕부로 가서 혜태비가 승은백부에서 소란는 소식을 알렸다.그 말에 회왕부부는 크게 놀랐다. 혜태비의 성격상, 소란을 피우게 된다면 두 집안이 원수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회왕비는 전부터 딸을 보고 싶어 했었지만 회왕이 계속해서 이를 막았던 것이다. 두 집안이 원수가 될까 두려웠던 회왕은 급히 마차를 준비하여 승은백부로 향했다.그렇게 두 대의 마차는 거의 동시에 승은백부 문 앞에 도착했다.마차에서 내
사여묵이 자리에 앉자마자 던진 첫 질문에 방 안의 모든 사람들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었다.승은백은 급히 대답했다. “부디 노여움을 푸시옵소서. 그 누구도 태비를 괴롭히지 않았사옵니다…”그러나 사여묵은 여전히 차가운 태도였다.“그 말은 내 어머니가 거짓으로 너희를 모함했다는 것이냐?”“그.. 그런 뜻이 아니옵니다.” 승은백은 비록 조정에서 관직을 맡고 있었지만, 북명왕처럼 냉혹한 전장 장군 앞에서는 기세가 꺾였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두피가 얼어붙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오해입니다, 모두 오해이옵니다.”“북명왕께서는 권세만 믿고 사람을 억누시키려는 것입니까?” 정신을 차린 조월순이 물었다.그러자 량소도 문인으로서의 기개를 떠올렸다. 권력에 아첨하는 친왕을 가장 경멸했던 그가 차갑게 말했다.“태비께서는 권세를 믿고 우리 가문의 내정을 간섭하셨지요. 이제는 왕까지 합세하여 우리 작은 백부를 억누르려 하십니까?”사여묵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싸늘하게 말했다. “말이 많구나. 장대성, 저 입을 닥치게 하여라!”장대성도 바깥문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왕의 명령이 내려지자 큰 걸음으로 들어선 그는 지체없이 량소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고는 팔을 들어 올려 그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량소는 그만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량소는 큰 충격을 받아 얼굴 반쪽은 이미 마비가 된듯했다. 귀에서는 윙윙 소리가 났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겨우 손을 짚고 일어나려 했지만, 또 한 번의 손이 날아왔다. 그는 다시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소야!” 조월순과 승은백부인이 동시에 외쳤다. 하지만 승은백부인은 다가가서 그를 부축할 용기가 없었다.오직 조월순만이 격노할 뿐이었다.“뭣들 하는 것이냐! 얼른 세자를 부축해라!”집안의 하인들이 량소를 부축했지만, 그는 머리가 어저러워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는 여전히 비틀거렸고 후들거리는 다리는 좀처럼 주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여전히 나약한 외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