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이 급변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승은백이 급히 만류했다.“어머니, 천천히 말씀하시지…”“입 다물어라, 이 무능한 자식, 이제 집에까지 찾아와 행패를 부리고 있는데 넌 왜 약한 척만 하고 있느냐?” 노태부인, 조월순은 분노에 차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저리 비켜라!”그녀는 걸어가서 자리에 앉으며 숨을 고르고, 혜태비의 눈을 마주하며 말했소, “상하구분말입니까? 군주라 할지라도 이미 우리 승은백부에 시집왔으니, 우리 집의 며느리지요. 여인은 집에서 부친을 따르고, 출가하면 남편을 따르는 법입니다. 사소한 문제로 북명왕비를 부추겨 자기 남편을 참소하게 만들었지요. 첩을 두지 않는 가문은 없습니다. 좋은 건 배우지 않고, 못된 것만 심통히도 하고 있네요.”혜태비의 둥근 눈이 번뜩였다. ‘뭐? 감히 송석석을 들먹여? 지금 내 며느리를 말하는 거야? 정말 시집오기 전부터 그녀 편을 들어주던 그 며느리를 말하는 거지? “쨍그랑!” 혜태비의 찻잔이 바닥에 던져버렸다. 흰색 도자기 잔이 산산조각 나고 분노에 찬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네 뺨을 때리게 만들지 말거라!”갑작스러운 광경에 모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조월순조차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혜태비가 이토록 자기 형상을 신경 쓰지 않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자리에서 일어선 혜태비는 조월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치켜 올리며 입을 열었다.“손자를 형펀없게 키워놓고도 감히 함부로 떠들어? 란이가 내 며느리를 부추겨 이 못된 놈을 참소했다고? 네 두 눈으로 봤느냐? 두 귀로 들었느냐? 오늘 그 증거를 내놓지 않으면, 내가 이 승은백부를 부숴버릴 것이다.”“너… 너…” 화가 난 조월순은 입술마저 떨리기 시작했다.“여기는 승은백부입니다. 어찌 감히 이런 망언을 하십니까?”혜태비는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망언이면 뭐? 너 같은 삼품 숙인이 무슨 배짱으로 내 앞에서 이리 뻔뻔할 수 있느냐? 존비를 따지자면, 정1품 군주 앞에서도 절해야 하거늘, 하물며 내 며느리는 정
조월순은 눈앞이 캄캄졌다. 너무나 약이 올라 금방이라도 돌아갈 것 같았다.휘청거리다가 겨우 제정신을 차린 그녀는 혜태비를 향해 손가락질 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바… 반.. 반드시 궁에 들어가 태비님의 지나친 행동에 대해 아뢸 겁니다!”“알려라, 악녀야!” 혜태비는 고개를 높게 쳐들었다.“태후는 내 언니다. 하지만 이치를 따지는 사람이지. 네가 란이를 괴롭혔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작위조차 박탈해 버릴지도 모르니, 그때는 고명 숙인이 아니라 평민이 될 터니 단단히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작위를 박탈한다고?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그리 말하는 것입니까?”완전히 격분한 조월순은 지팡이를 던져버리며 혜태비를 밀쳤다. 혜태비는 그 힘으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네가 감히 내게 손을 대? 승은백부이 감히 위아래도 없이 나를 능멸하는 게냐?”순간 승은백부의 모든 사람들이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방금 전까지 사람을 호되게 꾸짖던 혜태비가 억울함을 당한 며느리처럼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사실, 이미 반 시간 전에 송석석과 사여묵은 마차에 올라 승은백부로 향하고 있었다. 송석석이 직접 나서서 개입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긴 했지만 자신의 어머님이 괴롭힘을 당했다면 말은 달라진다. 바로 이 점은 그녀가 시만자에게 당부한 것이었다. 먼저 호되게 꾸짖거나 때려도 된다며 그들을 화나게 한 다음, 기회를 틈타 쓰러지면 그들이 직접 나설 수 있는 명분을 갖게 된다는 것이었다.아라 사저도 혜태비가 시만자더러 연유를 잡아 오라고 명했을 때 이미 회왕부로 가서 혜태비가 승은백부에서 소란는 소식을 알렸다.그 말에 회왕부부는 크게 놀랐다. 혜태비의 성격상, 소란을 피우게 된다면 두 집안이 원수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회왕비는 전부터 딸을 보고 싶어 했었지만 회왕이 계속해서 이를 막았던 것이다. 두 집안이 원수가 될까 두려웠던 회왕은 급히 마차를 준비하여 승은백부로 향했다.그렇게 두 대의 마차는 거의 동시에 승은백부 문 앞에 도착했다.마차에서 내
사여묵이 자리에 앉자마자 던진 첫 질문에 방 안의 모든 사람들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었다.승은백은 급히 대답했다. “부디 노여움을 푸시옵소서. 그 누구도 태비를 괴롭히지 않았사옵니다…”그러나 사여묵은 여전히 차가운 태도였다.“그 말은 내 어머니가 거짓으로 너희를 모함했다는 것이냐?”“그.. 그런 뜻이 아니옵니다.” 승은백은 비록 조정에서 관직을 맡고 있었지만, 북명왕처럼 냉혹한 전장 장군 앞에서는 기세가 꺾였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두피가 얼어붙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오해입니다, 모두 오해이옵니다.”“북명왕께서는 권세만 믿고 사람을 억누시키려는 것입니까?” 정신을 차린 조월순이 물었다.그러자 량소도 문인으로서의 기개를 떠올렸다. 권력에 아첨하는 친왕을 가장 경멸했던 그가 차갑게 말했다.“태비께서는 권세를 믿고 우리 가문의 내정을 간섭하셨지요. 이제는 왕까지 합세하여 우리 작은 백부를 억누르려 하십니까?”사여묵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싸늘하게 말했다. “말이 많구나. 장대성, 저 입을 닥치게 하여라!”장대성도 바깥문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왕의 명령이 내려지자 큰 걸음으로 들어선 그는 지체없이 량소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고는 팔을 들어 올려 그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량소는 그만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량소는 큰 충격을 받아 얼굴 반쪽은 이미 마비가 된듯했다. 귀에서는 윙윙 소리가 났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겨우 손을 짚고 일어나려 했지만, 또 한 번의 손이 날아왔다. 그는 다시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소야!” 조월순과 승은백부인이 동시에 외쳤다. 하지만 승은백부인은 다가가서 그를 부축할 용기가 없었다.오직 조월순만이 격노할 뿐이었다.“뭣들 하는 것이냐! 얼른 세자를 부축해라!”집안의 하인들이 량소를 부축했지만, 그는 머리가 어저러워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는 여전히 비틀거렸고 후들거리는 다리는 좀처럼 주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여전히 나약한 외침
방 안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녀의 행동이 느렸기에 자식들이 그녀를 붙잡을 시간은 충분했다. 그녀는 그저 사여묵을 겁주어 부대가 물건을 부수는 것을 멈추게 하려 했던 것이었는데, 사여묵은 여전히 차가운 얼굴로 무표정하게 서 있었고 부대원들 또한 전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보이는 족족 부수어 댔고 일부 겁에 질린 부인들은 비명을 지르며 후원으로 도망치기 바빴다.조월순은 너무나 화가 난 나머지 눈앞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사여묵이 이 정도로 무정한 인간인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게다가 그녀의 자살 협박에도 눈 깜빡하지 않을 줄은 몰랐다.부대는 내원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내원은 남자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고 몽동이는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전원과 화청만 있는 힘껏 망가뜨렸다.그 광경에 승은백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오늘 밤 사여묵이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이유를 짐작했다. 바로 란이가 오늘 량소에게 밀려 태기가 움직였기 때문일 것이다.량소를 처벌하지 않으려 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미 이빨이 부러지고, 피범벅 된 입을 본 노태부인이 너무나도 마음 아파했기 때문에 그를 더 이상 처벌하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회왕부에서도 아무런 대응이 없었기에, 그들은 잠시나마 방심하고 있었다.혜태비가 밤늦게 찾아온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그녀는 일부러 분쟁을 일으켜 사여묵과 왕비를 불러들인 것이다.잘못은 그들 쪽에 있었기 때문에 사여묵이 오늘 밤 무슨 일을 하든 승은백부는 그저 참아야 했다. 이 소문이 퍼지기라도 하면 승은백부의 사람이 혜태비를 때린 죄로 반역의 죄목이 쓸 것이다.더 나아가 파면된 이후에도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지 않는 량소가 정실을 박대하고 첩을 편애해 태기가 움직여 한 달 동안 누워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알려질 것이다.그 중의 어떤 것이든 지금의 승은백부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사여묵의 분노를 받아들이는 것이 더 나을 듯 하다. 그러면 황제에게까지는 일이 번지지 않을 것이다.량소는 오
승은백부의 사람들이 밖으로 뛰쳐나가 보았더니 홀의 모습과 다를 바 없이 온통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승은백은 창백한 얼굴로 앞으로 나가더니 사여묵에게 공손히 말했다.“이제 분이 좀 풀리셨는지요?”사여묵은 여전히 차가운 표정이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 대신 송석석이 입을 열었다.“그대는 어떻소?”승은백은 뒷니를 꽉 물고 대답했다.“어찌 감히 원한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감히?” 송석석의 얼굴에는 미소 한 점 보이지 않았다.“감히 그럴 마음조차 없기를 바라오. 그렇지 않으면 다음번엔 승은백부가 평지가 될 것이오.”승은백은 그녀가 출가할 때의 화려한 모습을 보았기에, 그녀 뒤에 북명왕부뿐만 아니라 수많은 무림의 인사들도 그녀의 지휘를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승은백부에도 그녀가 부릴 수 있는 사람이 둘이나 있었다.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승은백부를 부수는 것은 물론이고, 승은백부를 몰살하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하지만 오늘 밤 그는 조상들의 얼굴에 먹칠을 단단히 하고 말았다.이번 일이 소문이 나면 그는 더 이상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될 것이다.그는 송석석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그의 속도 모르고 량소가 난데없이 날뛰었다.“권세로 사람을 억누르는 자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를 것이다!”그를 바라보던 송석석은 입가에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내일 아침이면 경성의 학자들을 모아 북명왕부를 비난하는 글을 쓸 생각이시지요? 게다가 천자 제자의 명성을 이용해 오늘 밤의 일을 크게 벌리려 하실 테지요?”량소는 순간 멈칫했다. ‘그녀가 어찌 알았지?’그는 당당하게 턱을 들고, 입가의 피를 닦으며 말했다.“이제야 겁이 나오? 하지만 이미 늦었소. 내 두 손을 잘라내지 않는 한, 나는 반드시 당신들 비난하는 글을 쓸 것이오.”송석석은 차분했다.“그대 두 손을 자를 이유는 없지요. 그대처럼 글 쓰는 자는 글을 쓰지 않으면 그것이야말로 낭비지요. 기억하세요. 글은 잘 써야 합니다. 충효와 인의
전북망의 본가, 문희거(文熙居). 창호지 너머로 은은한 불빛이 아른거리며 그림자를 흔들어놓았다. 송석석(宋惜惜)은 수수한 옷차림으로 의자에 앉아 두 손을 포갠 채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그는 결혼 후 곧바로 전장으로 떠나 일 년이나 보지 못했던 남편이었다. 전북망(战北望)은 전장에서 돌아온 복장 그대로 당당히 그녀를 마주보고 있었다.“폐하의 교지(旨意)까지 내려진 이상, 되돌릴 수 없소. 이방(易昉)은 이 집에 들어오게 될 것이오."송석석은 손깍지를 끼면서 어두운 눈빛으로 전북망에게 물었다."태후(太后)마마께서도 능력을 인정한, 그 이방 장군님이 첩이 되길 받아들이셨단 말씀입니까?"그 말을 들은 전북망의 눈빛에 살짝 노기가 서렸다."아니, 이방은 첩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오. 평처(平妻: 본처와 같은 지위를 가진 여인)라, 그대와 다를 것이 없소."송석석은 자세를 바꾸지 않고 말을 이었다."장군님도 아시다시피 평처라는 명칭은 듣기 좋을 뿐, 실제로는 첩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전북망이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첩이라니, 이방과 나는 전장에서 마음을 나누면서 서로 사랑하게 되었소. 그리고 이건 나와 이방이 군공(军功: 군사적 공로)으로 받은 교지이니, 사실상 그대의 동의는 필요 없소."송석석은 억누를 수 없는 비웃음을 입가에 띄우며 말했다."서로를 사랑하게 되었다라, 그럼 출정 전에 저에게 했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일 년 전, 출정 명령이 떨어진 혼례 첫날밤에 전북망은 약속했었다. 평생 그 하나만을 바라보며 절대로 첩을 들이지 않겠다고. 송석석이 언급하자 그제야 약속을 떠올린 전북망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 약속은 잊어버리시오. 그때 나는 진정한 사랑을 알지 못했소. 그저 그대를 아내로서 적합하다고 판단했을 뿐. 하지만 이방을 만나고 마음이 달라졌소."이방을 떠올린 그의 표정이 서서히 부드러워졌다. 그가 숨길 수 없는 깊은 감정이 느껴지는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이방은 내가 만난 그 어떤 여인과도 비교할 수 없소.
전북망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왜 어려운 길을 자처하시오? 이 혼인은 폐하의 어명이오. 더군다나 이방이 들어온다고 한들, 서로 다른 별채에 머물 텐데, 뭐가 걱정이오? 이방은 안살림에 관심이 없소. 또한 그대의 권한을 빼앗는 일도 없을 것이오. 그대가 중요시 여기는 것들, 이방에겐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걸 모르겠소?”“권한이요? 제가 겨우 그런 것 때문에 이러시는 줄 아십니까?”송석석이 반문했다. 장군부(將軍府: 장군의 집) 살림이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노부인한테 들어가는 약값만 해도 매달 수십 냥(两: 화폐 단위)이었고, 그 외 사람들한테 들어가는 생활비도 만만치 않았다. 만약 그녀가 들고 온 지참금이 아니었다면, 이 집안은 진작에 파산했을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헌신한 대가가 겨우 이거라니, 정말 황당했다.반면, 전북망도 점점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었다.“됐소. 더 말하지 않겠소. 본래 통보만 하면 되는 일이었고, 그대가 허락하든 하지 않든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오.”그 말을 끝으로 전북망은 소매를 털며 자리를 떠났다. 송석석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아가씨.”보주(寶珠)가 옆에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장군님도 참 너무하세요.”“됐어, 이렇게 된 이상 움직이자.”송석석이 차갑게 눈빛을 굳히며 보주를 쳐다보았다.“첫날밤도 치르지 못했는데,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다고 볼 수도 없지. 일단 가서 내가 이 집안에 들어올 때 들고 온 지참금 목록을 가지고 와 봐.”“지참금 목록은 왜요?”보주가 물었다. 그러자 송석석이 그녀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툭 치며 답했다.“바보야. 계속 이 집에 머물 거야?”그러자 보주가 이마를 감싸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이 혼사는 부인께서 아가씨를 위해 직접 예비하신 거잖아요. 어르신도 살아계실 때, 얼마나 아가씨가 잘 살길 바라셨는데요.”부모님의 얘기가 나오자 송석석의 눈가가 촉촉해졌다.송석석의 부모님은 참 금슬이 좋았다. 그녀를 포함해 자식이 여섯이나 됐지
보주가 지참금 목록을 가져오며 말했다.“근 1년 동안, 아가씨께서 이 집안 살림에 보탠다고 사용한 화폐만 해도 6천 냥이 넘어요. 그래도 다행히 상점과 주택, 장원은 그대로예요. 또한 부인께서 남겨주신 예금 증서와 집문서, 땅문서도 그대로 상자에 담겨 있어요.”“알겠어.”송석석은 목록을 보며 전에 어머니가 준 지참금을 떠올렸다. 그녀의 어머니는 혹시라도 딸이 시집에서 고생할까 봐 참 많은 지참금을 챙겨줬었다. 정말 그리움이 사무쳤다. 옆에 있던 보주도 그녀의 기분에 공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이곳을 나간다면 저희는 어디로 갑니까? 진북후부, 아니면 매산입니까?”송석석은 아직도 그 처참했던 진북후부의 현장이 생생했다. 참을 수 없는 슬픔이 가슴속에서 밀려 나왔다.“어디로 가든 여기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아가씨, 이대로 떠나면 진짜 후회 안 하시겠어요?”송석석이 담담히 답했다.“후회할 게 뭐 있어. 내가 떠나지 않으면 평생 이들 사이에 괴롭게 살아야 할 텐데. 보주, 우리 집엔 이제 나밖에 없어. 내가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 우리 가족들도 저승에서 마음 편히 쉬지.”“아가씨!”보주가 기어이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녀는 송석석과 마찬가지로 진북후부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었다. 송석석의 가족들이 몰살당할 때, 보주의 가족들도 함께 희생되었다.장군부를 떠나게 되더라도, 진북후부로 돌아가는 건 편치 않았다. 그곳은 두 사람 모두에게 큰 아픔이었다.“아가씨, 정말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송석석이 한층 깊어진 눈동자로 답했다.“있기는 하지. 폐하께 아뢰어 그동안 아버지와 오라버니들이 이룬 공로를 명목으로 교지를 철회해 달라고 요청해 봐야지. 통하지 않는다면, 금란전(金鑾殿: 황제의 궁) 벽에 확 머리 박고 죽어버리겠다고 협박도 해보고.”보주가 놀라 송석석의 다리를 부여잡았다.“아가씨, 그건 절대로 아니될 말입니다!”송석석이 냉철히 눈을 빛내며 나지막이 웃었다.“농담이야. 설마 내가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할까? 교지를 철회해주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