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이는 혜태비의 따뜻한 목소리에 눈물이 계속 흘러 내렸다. 잠시 후 석소 사저가 사건의 경위를 설명하였지만, 란이의 곁에 있던 시녀도 함께 울음을 터뜨려 결국 다시 한번 설명하게 되었다.“세자께서 파면된 이후, 연유도 감금되었지만, 우리 군주께서는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습니다. 세자는 모든 잘못을 다 군주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노태부인께 문안을 드리러 갔을 때 두 번이나 군주를 향해 손가락질까지 하시며 헛소문을 퍼뜨려 그가 어사에게 참소되게 만들었다고 비난하셨습니다. 비록 부인께서 군주를 보호하셨지만, 노태부인은 세자님을 옹호하며 아가씨가 비록 군주라 하더라도 이미 승은백부에 시집왔으니 남편을 하늘로 여겨야 하며, 외부에는 남편에 대한 불평을 한마디도 해서는 안 된다고 일침만 가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실부인의 본분을 잊게 된다고 말입니다. 오늘 일도 분명히 연유가 먼저 도발하였고 군주께서는 시선 한 번만 주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녀가 스스로 계단에서 넘어졌는데도 세자는 군주를 책망했고 결국엔 밀치기까지 했습니다.”그녀는 눈물을 닦으며 탁자의 모서리를 가리켰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부딪혔습니다.”혜태비와 시만자는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화리목으로 만든 탁자의 모서리는 둥글게 깎여 있긴 했지만 복부에 부딪혔으니 찢어지게 아팠을 것이다. 태기만 다쳤을 뿐 유산으로 이어지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다.태어날 아기의 운이 보통이 아닌 것 같다.“만자!” 가만히 듣고 있던 혜태비는 화가 잔뜩 나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당장 연유를 화청으로 끌고 오거라. 승은백부의 사람들에게 이 천한 것이 과연 이 집에 남아 있을 가치가 있는지 내가 제대로 물어봐야겠다.”석소 사저와 아라 사저는 승은백부에 남아 있어야 했기 때문에, 사람을 데려오는 일은 시만자가 맡는 것이 적합했다.“그럼, 량소는요?” 시만자가 묻자, 혜태비가 살짝 흘겼다.“연유가 내 손에 붙잡혀 있는데, 오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것이다.”고개를 끄덕이
마차 안에서 시만자는 송석석의 말을 전했다. 승은백부에 도착한 후, 먼저 예를 갖추고 그다음 강경하게 나가라고 했다. 란이의 상황부터 살펴본 후에 가장 강한 위엄을 드러내어 승은백부의 모든 사람, 그 노부인을 제압하라는 것이었다..시만자는 계획대로 연유를 끌고 바닥에 쓰러뜨리며 말했다.“하찮은 존재가 감히 군주 앞에서 술수를 부리다니! 아무도 군주를 위해 나서지 않고, 모두 이 천한 계집만 두둔했습니다. 태비님, 청컨대 결정을 내려주십시오!”승은백부인도 평소에 연유가 탐탁지 않았는데 그녀가 아들의 마음을 이미 사로잡았고, 그 아들은 노태부인의 마음을 사로잡았기에 허락한 것이었다.시만자에게 발로 차이고 바닥에 버려진 그녀의 모습을 보니 속이 시원했다.혜태비는 고개도 들지 않고 담담하게 물었다.“승은백부의 규율이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궁에서는 만약 빈이 황후를 모욕하거나 누명을 씌우면, 즉시 처단하거나 독주를 내린다. 승은백부는 그렇지 않으냐? 판자정도는 있겠지?.”승은백은 혜태비가 오늘 군주를 위해 나선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혜태비는 항상 타인의 집안일에는 관여하지 않으니 이는 북명왕비, 송석석의 뜻일 것이 분명했다. 송석석이 직접 나서지 않은 것은 승은백부의 내정을 간섭한다는 오명을 피하기 위해서겠지만, 혜태비는 달랐다. 그녀는 태비이고, 선제와 회왕이 형제였기에 군주의 친정을 대표할 수 있었다. 완벽하게 적합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연유를 경멸하게 된 승은백은 혜태비의 말을 듣자마자 즉시 명령했다, “여봐라, 이 천한 계집을 당장 끌어내거라!”오만방자하던 연유는 바닥을 뒹굴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는데, 몸을 떨면서도 체면을 유지하려 애썼다. 하지만 시만자의 거침없는 발길질에 결국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들었지? 너는 개처럼 끌려 나갈 것이다.”시만자의 무서움에도 연유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 완강하게 외쳤다.“너희 권문세가들은 사람 목숨을 우습게 아는구나. 나를 죽인다 해도 절대 뜻을 이루
표정이 급변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승은백이 급히 만류했다.“어머니, 천천히 말씀하시지…”“입 다물어라, 이 무능한 자식, 이제 집에까지 찾아와 행패를 부리고 있는데 넌 왜 약한 척만 하고 있느냐?” 노태부인, 조월순은 분노에 차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저리 비켜라!”그녀는 걸어가서 자리에 앉으며 숨을 고르고, 혜태비의 눈을 마주하며 말했소, “상하구분말입니까? 군주라 할지라도 이미 우리 승은백부에 시집왔으니, 우리 집의 며느리지요. 여인은 집에서 부친을 따르고, 출가하면 남편을 따르는 법입니다. 사소한 문제로 북명왕비를 부추겨 자기 남편을 참소하게 만들었지요. 첩을 두지 않는 가문은 없습니다. 좋은 건 배우지 않고, 못된 것만 심통히도 하고 있네요.”혜태비의 둥근 눈이 번뜩였다. ‘뭐? 감히 송석석을 들먹여? 지금 내 며느리를 말하는 거야? 정말 시집오기 전부터 그녀 편을 들어주던 그 며느리를 말하는 거지? “쨍그랑!” 혜태비의 찻잔이 바닥에 던져버렸다. 흰색 도자기 잔이 산산조각 나고 분노에 찬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네 뺨을 때리게 만들지 말거라!”갑작스러운 광경에 모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조월순조차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혜태비가 이토록 자기 형상을 신경 쓰지 않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자리에서 일어선 혜태비는 조월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치켜 올리며 입을 열었다.“손자를 형펀없게 키워놓고도 감히 함부로 떠들어? 란이가 내 며느리를 부추겨 이 못된 놈을 참소했다고? 네 두 눈으로 봤느냐? 두 귀로 들었느냐? 오늘 그 증거를 내놓지 않으면, 내가 이 승은백부를 부숴버릴 것이다.”“너… 너…” 화가 난 조월순은 입술마저 떨리기 시작했다.“여기는 승은백부입니다. 어찌 감히 이런 망언을 하십니까?”혜태비는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망언이면 뭐? 너 같은 삼품 숙인이 무슨 배짱으로 내 앞에서 이리 뻔뻔할 수 있느냐? 존비를 따지자면, 정1품 군주 앞에서도 절해야 하거늘, 하물며 내 며느리는 정
조월순은 눈앞이 캄캄졌다. 너무나 약이 올라 금방이라도 돌아갈 것 같았다.휘청거리다가 겨우 제정신을 차린 그녀는 혜태비를 향해 손가락질 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바… 반.. 반드시 궁에 들어가 태비님의 지나친 행동에 대해 아뢸 겁니다!”“알려라, 악녀야!” 혜태비는 고개를 높게 쳐들었다.“태후는 내 언니다. 하지만 이치를 따지는 사람이지. 네가 란이를 괴롭혔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작위조차 박탈해 버릴지도 모르니, 그때는 고명 숙인이 아니라 평민이 될 터니 단단히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작위를 박탈한다고?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그리 말하는 것입니까?”완전히 격분한 조월순은 지팡이를 던져버리며 혜태비를 밀쳤다. 혜태비는 그 힘으로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네가 감히 내게 손을 대? 승은백부이 감히 위아래도 없이 나를 능멸하는 게냐?”순간 승은백부의 모든 사람들이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방금 전까지 사람을 호되게 꾸짖던 혜태비가 억울함을 당한 며느리처럼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사실, 이미 반 시간 전에 송석석과 사여묵은 마차에 올라 승은백부로 향하고 있었다. 송석석이 직접 나서서 개입하기 어려운 일들이 있긴 했지만 자신의 어머님이 괴롭힘을 당했다면 말은 달라진다. 바로 이 점은 그녀가 시만자에게 당부한 것이었다. 먼저 호되게 꾸짖거나 때려도 된다며 그들을 화나게 한 다음, 기회를 틈타 쓰러지면 그들이 직접 나설 수 있는 명분을 갖게 된다는 것이었다.아라 사저도 혜태비가 시만자더러 연유를 잡아 오라고 명했을 때 이미 회왕부로 가서 혜태비가 승은백부에서 소란는 소식을 알렸다.그 말에 회왕부부는 크게 놀랐다. 혜태비의 성격상, 소란을 피우게 된다면 두 집안이 원수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회왕비는 전부터 딸을 보고 싶어 했었지만 회왕이 계속해서 이를 막았던 것이다. 두 집안이 원수가 될까 두려웠던 회왕은 급히 마차를 준비하여 승은백부로 향했다.그렇게 두 대의 마차는 거의 동시에 승은백부 문 앞에 도착했다.마차에서 내
사여묵이 자리에 앉자마자 던진 첫 질문에 방 안의 모든 사람들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었다.승은백은 급히 대답했다. “부디 노여움을 푸시옵소서. 그 누구도 태비를 괴롭히지 않았사옵니다…”그러나 사여묵은 여전히 차가운 태도였다.“그 말은 내 어머니가 거짓으로 너희를 모함했다는 것이냐?”“그.. 그런 뜻이 아니옵니다.” 승은백은 비록 조정에서 관직을 맡고 있었지만, 북명왕처럼 냉혹한 전장 장군 앞에서는 기세가 꺾였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두피가 얼어붙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오해입니다, 모두 오해이옵니다.”“북명왕께서는 권세만 믿고 사람을 억누시키려는 것입니까?” 정신을 차린 조월순이 물었다.그러자 량소도 문인으로서의 기개를 떠올렸다. 권력에 아첨하는 친왕을 가장 경멸했던 그가 차갑게 말했다.“태비께서는 권세를 믿고 우리 가문의 내정을 간섭하셨지요. 이제는 왕까지 합세하여 우리 작은 백부를 억누르려 하십니까?”사여묵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싸늘하게 말했다. “말이 많구나. 장대성, 저 입을 닥치게 하여라!”장대성도 바깥문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왕의 명령이 내려지자 큰 걸음으로 들어선 그는 지체없이 량소의 멱살을 잡았다. 그러고는 팔을 들어 올려 그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량소는 그만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량소는 큰 충격을 받아 얼굴 반쪽은 이미 마비가 된듯했다. 귀에서는 윙윙 소리가 났고 눈앞이 깜깜해졌다. 겨우 손을 짚고 일어나려 했지만, 또 한 번의 손이 날아왔다. 그는 다시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소야!” 조월순과 승은백부인이 동시에 외쳤다. 하지만 승은백부인은 다가가서 그를 부축할 용기가 없었다.오직 조월순만이 격노할 뿐이었다.“뭣들 하는 것이냐! 얼른 세자를 부축해라!”집안의 하인들이 량소를 부축했지만, 그는 머리가 어저러워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는 여전히 비틀거렸고 후들거리는 다리는 좀처럼 주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여전히 나약한 외침
방 안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녀의 행동이 느렸기에 자식들이 그녀를 붙잡을 시간은 충분했다. 그녀는 그저 사여묵을 겁주어 부대가 물건을 부수는 것을 멈추게 하려 했던 것이었는데, 사여묵은 여전히 차가운 얼굴로 무표정하게 서 있었고 부대원들 또한 전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보이는 족족 부수어 댔고 일부 겁에 질린 부인들은 비명을 지르며 후원으로 도망치기 바빴다.조월순은 너무나 화가 난 나머지 눈앞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사여묵이 이 정도로 무정한 인간인지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게다가 그녀의 자살 협박에도 눈 깜빡하지 않을 줄은 몰랐다.부대는 내원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내원은 남자들이 들어가지 못하는 곳이고 몽동이는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전원과 화청만 있는 힘껏 망가뜨렸다.그 광경에 승은백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는 오늘 밤 사여묵이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이유를 짐작했다. 바로 란이가 오늘 량소에게 밀려 태기가 움직였기 때문일 것이다.량소를 처벌하지 않으려 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미 이빨이 부러지고, 피범벅 된 입을 본 노태부인이 너무나도 마음 아파했기 때문에 그를 더 이상 처벌하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회왕부에서도 아무런 대응이 없었기에, 그들은 잠시나마 방심하고 있었다.혜태비가 밤늦게 찾아온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그녀는 일부러 분쟁을 일으켜 사여묵과 왕비를 불러들인 것이다.잘못은 그들 쪽에 있었기 때문에 사여묵이 오늘 밤 무슨 일을 하든 승은백부는 그저 참아야 했다. 이 소문이 퍼지기라도 하면 승은백부의 사람이 혜태비를 때린 죄로 반역의 죄목이 쓸 것이다.더 나아가 파면된 이후에도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지 않는 량소가 정실을 박대하고 첩을 편애해 태기가 움직여 한 달 동안 누워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알려질 것이다.그 중의 어떤 것이든 지금의 승은백부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사여묵의 분노를 받아들이는 것이 더 나을 듯 하다. 그러면 황제에게까지는 일이 번지지 않을 것이다.량소는 오
승은백부의 사람들이 밖으로 뛰쳐나가 보았더니 홀의 모습과 다를 바 없이 온통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승은백은 창백한 얼굴로 앞으로 나가더니 사여묵에게 공손히 말했다.“이제 분이 좀 풀리셨는지요?”사여묵은 여전히 차가운 표정이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 대신 송석석이 입을 열었다.“그대는 어떻소?”승은백은 뒷니를 꽉 물고 대답했다.“어찌 감히 원한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감히?” 송석석의 얼굴에는 미소 한 점 보이지 않았다.“감히 그럴 마음조차 없기를 바라오. 그렇지 않으면 다음번엔 승은백부가 평지가 될 것이오.”승은백은 그녀가 출가할 때의 화려한 모습을 보았기에, 그녀 뒤에 북명왕부뿐만 아니라 수많은 무림의 인사들도 그녀의 지휘를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승은백부에도 그녀가 부릴 수 있는 사람이 둘이나 있었다.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승은백부를 부수는 것은 물론이고, 승은백부를 몰살하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하지만 오늘 밤 그는 조상들의 얼굴에 먹칠을 단단히 하고 말았다.이번 일이 소문이 나면 그는 더 이상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될 것이다.그는 송석석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그의 속도 모르고 량소가 난데없이 날뛰었다.“권세로 사람을 억누르는 자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를 것이다!”그를 바라보던 송석석은 입가에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내일 아침이면 경성의 학자들을 모아 북명왕부를 비난하는 글을 쓸 생각이시지요? 게다가 천자 제자의 명성을 이용해 오늘 밤의 일을 크게 벌리려 하실 테지요?”량소는 순간 멈칫했다. ‘그녀가 어찌 알았지?’그는 당당하게 턱을 들고, 입가의 피를 닦으며 말했다.“이제야 겁이 나오? 하지만 이미 늦었소. 내 두 손을 잘라내지 않는 한, 나는 반드시 당신들 비난하는 글을 쓸 것이오.”송석석은 차분했다.“그대 두 손을 자를 이유는 없지요. 그대처럼 글 쓰는 자는 글을 쓰지 않으면 그것이야말로 낭비지요. 기억하세요. 글은 잘 써야 합니다. 충효와 인의
전북망의 본가, 문희거(文熙居). 창호지 너머로 은은한 불빛이 아른거리며 그림자를 흔들어놓았다. 송석석(宋惜惜)은 수수한 옷차림으로 의자에 앉아 두 손을 포갠 채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그는 결혼 후 곧바로 전장으로 떠나 일 년이나 보지 못했던 남편이었다. 전북망(战北望)은 전장에서 돌아온 복장 그대로 당당히 그녀를 마주보고 있었다.“폐하의 교지(旨意)까지 내려진 이상, 되돌릴 수 없소. 이방(易昉)은 이 집에 들어오게 될 것이오."송석석은 손깍지를 끼면서 어두운 눈빛으로 전북망에게 물었다."태후(太后)마마께서도 능력을 인정한, 그 이방 장군님이 첩이 되길 받아들이셨단 말씀입니까?"그 말을 들은 전북망의 눈빛에 살짝 노기가 서렸다."아니, 이방은 첩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오. 평처(平妻: 본처와 같은 지위를 가진 여인)라, 그대와 다를 것이 없소."송석석은 자세를 바꾸지 않고 말을 이었다."장군님도 아시다시피 평처라는 명칭은 듣기 좋을 뿐, 실제로는 첩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전북망이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첩이라니, 이방과 나는 전장에서 마음을 나누면서 서로 사랑하게 되었소. 그리고 이건 나와 이방이 군공(军功: 군사적 공로)으로 받은 교지이니, 사실상 그대의 동의는 필요 없소."송석석은 억누를 수 없는 비웃음을 입가에 띄우며 말했다."서로를 사랑하게 되었다라, 그럼 출정 전에 저에게 했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일 년 전, 출정 명령이 떨어진 혼례 첫날밤에 전북망은 약속했었다. 평생 그 하나만을 바라보며 절대로 첩을 들이지 않겠다고. 송석석이 언급하자 그제야 약속을 떠올린 전북망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 약속은 잊어버리시오. 그때 나는 진정한 사랑을 알지 못했소. 그저 그대를 아내로서 적합하다고 판단했을 뿐. 하지만 이방을 만나고 마음이 달라졌소."이방을 떠올린 그의 표정이 서서히 부드러워졌다. 그가 숨길 수 없는 깊은 감정이 느껴지는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이방은 내가 만난 그 어떤 여인과도 비교할 수 없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