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너무 바쁘게 움직였고 날씨도 더웠기에 샤워를 꼭 해야했다.사여묵은 송석석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그녀의 귀가에 속삭였다.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너무나 유혹적이었다. “딱 좋군, 함께 씻으면 되겠소.” 송석석은 그의 목을 끌어안으며 약간 의아해했다. “매일 밤 사랑을 나누는데 왜 아이가 생기지 않는 걸까요?” “빨리 아이를 갖고 싶단 뜻이오?” 그녀를 안은 사여묵은 욕실로 성큼성큼 들어가 갑자기 그녀의 겉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런 건 아니고, 그저 궁금할 뿐입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두 분이 혼인하시고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임신하셨다고 하셨거든요.” “나는 굳이 아이를 빨리 가질 필요는 없다고 보오.” 사여묵은 드디어 그녀의 매혹적인 어깨선을 볼 수 있었다. “얼마 전에 단신의에게 약을 부탁했소. 당신도 전장에서 부상을 입었으니 충분히 회복된 후에 다시 얘기하기오.” 송석석은 눈이 휘둥그레졌다.“피임약을 먹고 있단 말입니까? 그 약은 몸에 해롭다고 들었습니다만.” “여자도 먹을 수 있는 걸 남자가 못 먹는단 법은 없소.” 사여묵은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당신은 몸도 안 좋은데 임신하지 못하게 하려고 피임약을 먹일 수는 없소. 단신의께서도 여자는 기와 혈을 기르는 것이 쉽지 않다 하셨소. 만약 당신에게만 피임하도록 한다면 그동안 기른 것들이 모두 허사가 될뿐만 아니라 몸에도 해가 될 것이오.” 송석석은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여묵의 태도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녀는 피임약을 자처하는 남자를 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정실부인이 피임약을 먹는다는 것이 알려지면 현면하지 못하다고 손가락질받고 남편에게도 미움을 받을 것이다. 정실부인이 아이를 가지면 낳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일곱 남매를 낳았기에 어머니가 복 받은 사람이며 다들 부러워했다. 여섯, 일곱이나 자식을 낳는 여인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모두가 무사히 자란 것은 하늘의 축복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축복은…
잔뜩 풀이 죽은 왕청여와 전소환은 장군부로 향했다.문에 들어서자마자, 왕청여가 그동안 참아온 화를 푸는 듯 온 힘을 다해 전소환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너무나도 거친 행동이라 피할 겨를이 없었다. 그녀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장군부에 어찌 너같은 천한 년이 있을 수 있단 말이냐? 오늘 밤, 너는 장군부의 가풍을 완전히 망쳐버렸다. 당장 어머니께 가서 벌을 받거라.”전소환은 소망하던 꿈을 이루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평양후에게 순결마저 빼앗겼다. 이제는 사람의 탈을 쓴 자이면 모두 그녀를 괴롭히려 드는 것 같았다.그렇게 모두의 조롱거리가 되어 너무 혼란스러웠는데 그것도 모자라 막 집에 들어서자마자 왕청여에게 뺨까지 맞았으니 고삐가 완전히 풀려버린 것이다. 전소환도 왕청여의 뺨을 날려버렸다. 그러고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감히 누구를 천하다고 말하는 거야? 너는 고상한 줄 알아? 너무 천박해서 내 오라버니와 결혼한 거 아니야! 고상한 네가 오늘 밤 생일 연회에는 왜 갔지? 남을 비웃으려다 도리어 된통 당했으니 꼴 좋네.”왕청여는 그녀가 큰 일을 저질렀으니 자신에게 손을 대리라고는 전혀 생각치도 못했다. 화가 치밀어 오른 왕청여는 뺨에서 전해지는 고통도 신경 쓸 겨를이 없이 전소환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가자, 어머니께 이 일을 고해야 한다.”전소환은 힘껏 그녀를 밀쳐버리고는 차갑게 말했다. “오늘 밤 일을 내가 감히 어머니 허락 없이 움직였을까?”바닥에 주저앉은 왕청여의 얼굴에 충격이 가득했다. “뭐라고? 어머니가 아신다고? 네가 북명왕을 넘보려 했다는 것을 어머니께서 아신단 말이야?”전소환은 되려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왕청여를 바라보았다.“곁에 있었으면서 어떻게 조금도 도와주지 않았던 거야? 내가 이렇게 하는 이유가 뭔데! 모두 너희 부부를 위해서잖아! 오라버니가 너 때문에 한 사람의 손발을 부러뜨려 지위가 강등되어서 앞날을 걱정하시던 어머니가 결국 허락하셨던 거야.”그녀는 점점 더 서럽게 울부짖었다. 그 모습은
그러자 전소환은 억울한 듯 전북망을 향해 소리쳤다. "오라버니, 이건 너무 가혹합니다. 오라버니께서 강등되지 않으셨다면, 제가 어찌 이런 일을 하였겠습니까?"하지만 전북망은 엄하게 몰아붙였다."내 앞날을 왜 감히 네가 계획하느냐? 나는 스스로 노력하여 나아갈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너 자신을 위함이고 사여묵을 마음에 둔 거겠지. 그자가 어디가 그렇게 좋은 것이기게에 다들 앞다투어 달려드는 것이냐!"의로운척하려던 전소환은 전북망에게 속내를 들켜버리고 말았다.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지 못하던 전소환은 전북망이 자신이 사모하는 이를 비난하려 하자 즉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당연히 오라버니보다 훨씬 낫지요! 송석석조차 오라버니와 이혼하고 바로 북명왕에게 시집간 것만 봐도 오라버니보다 훨씬 나음을 알 수 있지요. 게다가 이 진성의 귀한 집 여식들 중 어느 누가 북명왕비가 되기를 바라지 않겠습니까?"그러자 전북망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북명왕비가 되고자 하나, 북명왕에게는 이미 정실부인이 있느니라. 네 꿈은 처음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다."전소환이 울먹이며 외쳤다. "제가 어찌 그걸 모르겠습니까? 처음에는 첩이 되더라도 왕의 총애만 받으면 언젠가는 송석석을 대신하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다들 송석석이 밉지 않았습니까? 그녀는 기어코 이혼을 청하였고 그로 인해 장군부의 체면을 여지없이 떨어뜨렸지요. 저도 사심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장군부를 위해 한을 풀고 싶었습니다.""그만!" 남매의 다툼 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린 노부인이 외쳤다. "모두 입 닥치거라!"노부인은 깊이 숨을 들이마신 후 전소환을 바라보았다. "네가 말해보거라. 평양후가 네 몸에 손을 댔다고 하였느냐?"전소환은 여전히 울먹거렸다. "저의 허리도 감싸안았습니다. 다행히도 이내 풀었지만, 이미 모든 사람들이 본 상태였습니다.”노부인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모든 이가 지켜보았단 말이지? 평양후부 또한 백 년을 이어온 명문가로서 진성에서 다섯 손가락
전소환은 얼굴을 감싼 채 노부인의 품에 파고들어 울먹거렸다. "어머니, 오라버니가 저를 때렸습니다."그러자 노부인은 그녀의 등을 토닥이면서 잔뜩 실망한 눈빛으로 전북망을 바라보았다."소환이를 위해 그저 몇 마디 했을 뿐인데 너는 대뜸 손찌검을 하는구나. 이러면 소환이 마음이 다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그런 일을 벌인 시작이 너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하여도, 결국 너도 이득을 보았을 것이다."전북망은 화가 났다."제가 그녀를 때린 것은 형수를 무시했기 때문입니다."그의 말에 왕청여는 오히려 깊이 감동 받았다. 고생스러웠던 모든 것이 가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청여를 한 번 째려보던 노부인이 다시 말했다. "됐다. 너희들은 모두 물러가거라. 나는 청여와 조용히 이야기해야겠다."전북망은 이 상황이 너무 혼란스럽기만 했다. 마음이 여전히 너무 답답했지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화가 가시지 않은 그의 모습에 왕청여는 곧바로 따라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오늘 밤 저를 지켜주셨으니, 저도 장군을 꼭 지켜드리겠습니다."순간 전북망의 몸이 굳어졌다. 그는 어딘가 모르게 울적해졌다. 사실, 그가 전소환을 때린 것은 왕청여를 위해서가 아닌, 전소환이 송석석을 '몸쓸 년'이라고 했기에 그 말에 순간적으로 분노가 치밀어 그만 이성을 잃고 전소환의 뺨을 때렸던 것이다. 그가 말했던 "그녀에게 어찌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속 그녀는 바로 송석석이었다.사람은 뭔가를 잃고 나서야 비로소 소중함을 깨닫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그는 이러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자신도 송석석에 대한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다. 아마 죄책감일 수도 혹은 미련일 수도 있었다.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송석석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느꼈다. 그러지 않고서야 곧바로 궁에 들어가 이혼을 요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내 앞날엔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다. 나는 스스로 개척해나갈 것이다." 그는 왕청여의 손을 뿌리
평양후 노부인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본 송석석은 바로 하인을 불러 기혈을 보충하는 약선 요리를 올리기로 했다. 그 약선 요리는 그녀 자신을 위해 준비한 것이었고 그녀가 전장에서 얻은 부상 때문에 병근이 남을까 두려웠던 사여묵이 지속적으로 몸을 조리하도록 권유한 것이었다.노부인의 숨결이 평소보다 급한 것으로 보아 분노를 삼키고 있는 것 같았다. "몸이 이리도 불편하시니 굳이 힘들게 이리 오실 필요 없으십니다. 어젯밤의 일은 노부인과는 아무런 관련 없습니다."약선을 들이킨 평양후부 노부인은 한동안 가슴을 움켜쥐더니 천천히 진정이 되었는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건 저 역시 바라는 바입니다. 허나 가의 군주는 결국 평양후부 사람이고 어젯밤의 모든 일들은 똑똑히 지켜보았지요. 그 여인은 북명왕의 명성을 망치려고 한 것이 틀림없었지요. 하지만 남편이 그 모든 것을 뒤집어쓰게 될 줄은 몰랐으니, 돌을 들어 발등을 찧은 격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로 인해 저희 평양후부도 전소환을 첩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모두 송석석이 이미 예상한 결과였다.평양후부는 명성을 매우 중시하는 가문이었다. 비록 몇 년간 가의 군주에 의해 많이 손상되었지만, 평양후노부인은 항상 그녀의 잘못을 수습해 왔고 가문의 자제들에게도 말과 행동을 조심하게 하여 누구에게도 빌미를 잡히지 않도록 주의시켰다. 백년세가는 결코 명예를 더럽힐 수 없었다. 이 모든 것을 감수해서라도 명성을 지켜야만 했다.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은 며느리인 가의 군주가 혼자 꾸민 일이었으니 더욱더 회피할 수 밖에 없었다."오늘 아침에 전씨 가문의 노부인께서 찾아오셨더군요." 평양후 노부인은 평소 가문의 부끄러운 일을 입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일이 왕부에서 일어났고 더군다나 혜태비의 생신 잔치에서 벌어진 일이었기에 오늘만큼은 그런 그녀여도 참을 수 없었다. "그들은 제 아들이 그녀의 딸의 순결을 해쳤다고 단정 짓더군요.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봐 딸의 혼사가 막혀버렸다면서, 저
평양후부 노부인이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혜태비가 노부인을 만나겠다며 다급한 발걸음으로 화청에 왔다.하지만 그곳에는 차를 마시며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송석석의 모습만 보였다. "평양후노부인이 왔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녀와 담소를 나누려고 급히 달려왔는데 한발 늦은 모양이구나."자리에서 일어선 송석석이 예의를 갖추며 인사했다. "예, 방금 막 떠나셨습니다.""그래?" "나와 이야기하러 온 것이 아니란 말이냐?"혜태비는 가쁜 숨을 헐떡이며 자리에 앉았는데, 다소 실망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평양후노부인이 그녀를 만나러 온 줄 오해했다. 그녀는 평양후 노부인이 항상 부러웠다. 그녀와 달리 항상 많은 관료 부인들이 그녀의 안부를 묻기 때문이다."어머님을 뵈러 온 것은 맞습니다. 다만 어머님께서 숙취로 깨어나지 않으셨다고 들어, 방해하지 않으려고 먼저 떠난 것이옵니다." 송석석은 곁눈질만으로도 혜태비의 생각을 다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너무나도 투명한 사람이었다."술에 취해 일을 다 그르쳤구나." 순간 어젯밤 버럭버럭 화를 내던 아들의 모습이 번뜩 떠오른 혜태비가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묵이가 너를 어떻게 하지는 않았느냐?"송석석은 당황한듯 헛기침을 하며 대답했다. "별일 없었습니다. 돌아가서 몇 마디 꾸중만 들었을 뿐입니다.""몇 마디만?" 혜태비는 송석석의 표정이 다소 어색해지는 것을 보고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자신의 아들이 어떤 사람인지는 그녀가 더 잘 알고 있었다. 평소에는 뭐든지 좋다고 하지만 사여묵의 한계를 건드려 버리기라도 한다면 몇 마디로 끝나지 않았다. 사여묵의 분노를 감내하느라 힘들었을텐데 그러면서도 남편이라 감싸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웠다."네가 내정을 책임지고 있고 첩을 들이는 일도 네가 주관해야 할 일이지만, 그가 싫어하니 너도 이제 더는 꺼내지 말거라. 나중에 그로 인해 꾸지람만 들을 것이다. 이놈은 한번 고삐가 풀리면 친어머니도 알아보지 못할 때가 있느니라."송석석은 문
며칠이 지나고, 하조 후 황제가 사여묵을 따로 불렀다. 그는 가득 쌓인 상소문은 보지도 않고 사여묵과 너무 오랫동안 바둑을 두지 못했다며 오대반에게 바둑판이나 깔라고 했다. 사여묵은 관복의 하단을 들어 허리띠에 끼워 넣고 자리에 앉았다. "매일같이 안종만 들여다보느라 머리가 어지러웠는데 폐하를 핑계로 게으름을 피울 수 있게 되어 감사드릴 따름입니다."그의 행동을 지켜보던 황제는 오히려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직도 군 시절의 습관을 못 버렸구나. 너무 투박하다. 지금 너는 대리사의 경이자 조정의 이품 대관인데 이미지를 신경 써야 하지 않겠느냐.""형님 앞인데 굳이 이미지를 신경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사여묵은 호쾌하게 웃으며 하얀 이를 드러냈다."너는 왕비 앞에서도 이리 방자하느냐?" 황제는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백자를 집어 천천히 내려놓았다.사여묵은 흑자를 잡았는데 그의 눈동자도 흑자처럼 매우 깊어 아무것도 보아낼 수 없었다. "내 사람 앞에서는 더 방자해지지요."그러자 황제는 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으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이모 생일잔치에서 누군가가 네 품을 노렸다고 하더구나.”"그런 소식이 형님께까지 전해졌습니까? 괜히 형의 심기를 더럽혔군요." 사여묵은 흑자를 내려놓았다."흠, 원래 소문은 듣지 않았지만 네가 내 동생인 이상, 어머니께서도 걱정하시니 묻는 것이다. 너는 측실을 들일 생각이 있느냐?""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고개를 든 사여묵이 다시 하얀 이를 드러내며 호쾌하게 대답했다."형, 저는 그동안 전쟁을 많이 치러 몸이 허약해져 현재 단신의를 졸라 몸을 돌보고 있는 중이옵니다. 정실부인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측실이 더해진다면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그러자 황제가 그를 아니꼽게 흘겨 보았다."허튼소리 말거라. 너는 무예를 연마한 자인데 어찌 감당하지 못하겠느냐? 네가 나를 조롱하는구나. 후궁이 많아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는 것 아니냐?""제가 어찌 감히 그럴 수 있겠습니까? 형은 자
"아이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대체 어디 있겠느냐? 나는 후궁에서 자손을 늘리기를 바라고 있거늘, 나와 몇 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 사여묵은 벌써 아버지가 되었어야 하느니라."그러자 오대반은 조용히 말했다. "아마도 장군께서도 폐하께서 염려하시는 바를 알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형제 간의 사이에 틈이 생기길 원치 않으시는 것이지요. 폐하께서는 기억하시는지요? 어릴 적부터 장군께서는 매사에 폐하를 본보기로 항상 자랑스럽게 여겼사옵니다. 밖에서 형에 대해 말씀하실 때마다, 그의 얼굴에는 항상 자부심이 묻어있었지요."오대반의 말에 과거의 추억을 떠올린 황제는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다.그렇게 한참이 지나고나서야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어쩌면 내가 너무 많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구나!"오대반은 묵묵히 그의 찻잔을 채워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곁을 지켜온 그는 황제의 갑작스러운 한숨이 단지 과거 형제애를 회상하는 순간일 뿐이지 그것이 경계심을 줄이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사여묵이 아이를 원하지 않는 것은 현명한 결정이었다.자식이 없는 상태라면 황제가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이제 막 남쪽 변방을 되찾은 직후였기에 조정의 문무백관들은 사여묵을 가장 존경했고 백성들 사이에서도 그의 명망이 가장 높을 때이기에 공을 세워 위세가 단단해진 친왕을 경계하지 않는 황제는 없을 것이다.남쪽 변방을 되찾은 후 병권을 반납한 데 이어, 결혼으로 인한 마음의 짐이 생겼다는 것은 황제를 향한 충성심이었고 그가 주는 안정감이었다.사여묵이 대리사로 돌아왔을 때, 형부에서의 사건에 대해 물었는데, 사여묵은 사건 기록을 다 읽지 못했다는 이유로 일단 그들을 돌려보냈다.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그는 송석석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바로 그때 형부상서 이택이 찾아왔다.두 사람은 서재에서 반 시간 동안 그 사건을 두고 언쟁을 벌였고, 결국 불쾌하게 헤어졌다.매화원으로 돌아온 사여묵은 문에 들어서기 전까지 어두웠던 표정은 금세 사라지고 다시금
그는 아마도 며칠 내로 사람들이 식량을 운반해 올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들은 두 명뿐이었기에, 밤이 되면 몰래 그들 틈에 섞여 나갈 수 있을 터였다. 사람 수가 많으면 오히려 더 번거로울 것이었다.그때 출구를 찾고 한두 명을 잡아 심문한다면 대개는 상황을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불지 않는다면 말을 할 때까지 고문을 해서라도 알아내면 됐다.“조금만 더 참자. 최대한 삼 일이면 끝날 테니.” 사여묵이 말했다.“찐빵이 너무 먹고 싶습니다.” 이미 배불리 먹은 장대성이 꺼억 트림을 하면서도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밀가루 음식을 못 먹으면 사람은 죽는다고 하던데, 매일 이렇게 고기만 구워 먹으니 기름져서 느끼합니다.""풀 하나 뜯어서 입에 넣고 씹으면서 입맛을 달래라." 사여묵이 손을 뻗어 풀 한 줌을 꺾어 주었다. 이 풀은 먹을 수 있는 것이었고, 이 시기가 가장 부드러울 때였다. “자, 빨리 먹게.”“써서 못 먹겠습니다.” 장대성은 고개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며 사여묵의 호의를 거절했다.그가 먹지 않자, 사여묵이 대신 먹었다. 이 풀은 뿌리도 먹을 수 있었다. 부드러운 잎에서는 약간 쓴맛이 났지만 입맛을 달래는 데는 꽤 좋았다. 심지어 맛있게 느껴지기도 했다.“심선생께서 왕비께 우리가 실종되었다고 편지를 보냈을까요?” 장대성이 물었다.“아마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곳곳에 표식을 남겼으니 대사형이라면 알아볼 수 있을 것이야.” 사여묵은 칼로 작은 구멍을 파고, 먹고 남은 뼈를 뱉어 땅에 묻었다.왕비를 언급하자마자, 사여묵에게 송석석을 향한 그리움이 다시 물밀듯 밀려왔다. “일이 끝나면 우리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진성으로 돌아간다." “당연합니다!” 장대성이 말했다.사여묵은 나무에 기대 생각에 잠겼다. ‘석석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그는 송석석이 노주에 있고 심지어 이 산에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산에서의 거리로 보면 그리 가까운 거리도 아니긴 했다.
시만자는 송석석이 이전보다 확실히 살이 많이 빠진 듯한 것 같다고 느꼈다.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자는 그녀가 안타까워, 꼭 안으며 그녀의 머리를 자신의 어깨에 대고 말했다. “내 어깨를 빌려줄게. 울면 조금은 나아질거야.”송석석은 갑자기 손을 뻗어 그녀를 밀쳐내더니 급히 일어나 작은 개울을 뛰어넘어 몇 걸음 더 달려가 나무 한 그루 앞에 멈췄다.나무 줄기에는 뚜렷하게 매화꽃이 새겨져 있었다.그녀는 그 완전한 매화꽃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완전한 꽃 형태라 하더라도, 나무 줄기와 매화 표식의 상태를 보아하니 이 표식은 확실히 대사형과 몽동이가 발견한 것보다 더 오래된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발견하긴 했지만, 발견하지 못한 것과 같았다.그녀는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만자, 너희는 먼저 산을 내려가. 나는 이 산을 조금 더 돌아볼게. 이렇게 흔적을 남겼으니 아마 더 있을 거야.”시만자가 놀라며 송석석의 머리를 한 대 탁 치며 말했다. “무슨 말이야? 우리는 함께 가고 함께 남는 거야. 가고 싶으면 같이 가고, 머물고 싶으면 같이 머물어."“그치만 식량이 부족하잖아.” 송석석이 말했다.“그럼 물고기를 잡고 열매를 따면 되지.” 그러자 시만자가 그녀의 걱정을 덜어내기 위해 말했다. “시경님과 장대성도 그렇게 살아남았을 거야.”송석석이 가장 걱정하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사여묵과 장대성이 이 산에 너무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가지고 올라온 식량이 다 떨어졌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산에는 열매도 별로 없어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토끼나 산닭을 잡는 수밖에 없었다.이 길에서 송석석은 그런 생물들을 꽤 많이 봤고, 서쪽 산 중턱에, 수염이 덥수룩한 두 명의 남자가 작은 동굴에 앉아 갓 구운 야생 토끼를 잡아먹고 있었다.이 두사람의 옷은 이미 더러워졌고, 온 몸엔 기름기가 가득했으며, 머리는 매우 헝클어져 있었다.다행히 얼굴은 마침 오늘 근처에서 발견한 작은 샘에서 씻을 수 있었기에 덜 지저분
송석석은 현재로서는 산에 들어가서 직접 찾는 것이 가장 낫다고 생각했다. 사숙이 하루 이틀 내로 도착할 것이지만, 그들이 오기 전에 할 수 있는 방법은 가장 멍청한 방법으로 찾는 것뿐이었다.2월 중순의 날씨는 여전히 매우 추웠다. 북쪽의 매섭게 부는 건조한 바람은 없었지만, 초봄의 습한 추위가 더 괴로웠다. 이 습한 추위야 말로 산 속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었다. 차가운 공기가 쉴 틈없이 그들을 에워쌌고, 송석석은 그로 인해 원래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더욱더 심해지는 것만 같았다.송석석은 밤새 뒤척이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머리속에서 끊임없이 걱정이 물밀 듯 밀려왔다. ‘대사형이 표식을 발견했지만 이미 며칠 전의 일이잖아. 이 며칠 동안 그들이 산 속에서 다른 위험을 만났으면? 대석촌 사람들에게 들켜서 위협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지만 그 깊은 산 속에서 아무리 살육이 일어난다 해도, 아무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비록 내일 산에 들어가면 체력이 많이 소모될 것임을 알기에 충분한 쉼을 취해야 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송석석은 아침 해가 다 밝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녀는 아침 일찍 가게들이 문을 열고 장사를 시작할 때, 미리 산에 들어갈 때 필요한 식량을 사러 갔다. 돌아갔을 때는 모두가 일어나 있었을 때였다. 그들은 세 무리로 나누어 산에 들어갔다.매산 소분대가 한 대열을 이루고, 필명이 이끄는 서른 명의 현갑군이 한 대열을 이루며, 대사형이 이끄는 스무 명의 현갑군이 또 다른 대열을 이루었다.매산 소분대는 사실 시만자, 신신, 만두, 몽동이, 홍현과 두 명의 사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그 중, 만두와 몽동이만 남자였고 나머지 모두 여성이었다.어젯밤, 만두와 몽동이는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만두는 몽동이가 많은 것을 짊어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더 이상 그를 향해 교란자라는 별명을 부르지 않기로 했다.몽동이 또한 만두가 많이 차분해졌으며 핼쑥해진 모습을 보고, 더 이상 뚱만두라고 부를 수 없다고
송석석 일행은 상인의 신분으로 여러 차례에 걸쳐 노주에 갔다. 송석석은 먼저 대석촌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 후, 대사형과 몽동이를 만날 생각이었다.그녀는 금관성 안의 눈에 띄는 곳에 매화꽃을 그려 표식을 남겼다. 그리고 그 표식을 통해 그들이 묵을 여관을 찾을 수 있었다.그날 밤, 대사형과 몽동이가 찾아왔다. 두 사람의 얼굴이 먼지투성이였고, 옷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 그들은 머리카락을 재빨리 정리하려 했지만, 신발엔 아직 털리지 않은 흙과 먼지가 가득했다. 그들이 산을 막 떠나 온 것이 분명했다.오는 내내 걱정이 많았던 송석석은 안부를 물어볼 새도 없이 대사형에게 급히 상황을 물었다.심청화가 먼저 그녀를 안심시키며 말했다."너희에게 편지를 보냈을 때, 그들과 정말 연락이 끊겼고 아무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대석촌 남쪽의 오래된 숲에서 사여묵이 남긴 표식을 발견했지. 그들이 그곳에 잠시 머물렀던 것은 확실하다. 게다가 아마 며칠 전 일이었을 게야."그는 송석석이 조금이라도 안심할 수 있도록 이 소식을 먼저 전한 후에 두 사람의 실종 이유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우리는 황제의 밀보를 받았다. 산에 들어가서 어디에 식량과 무기가 숨겨져 있는지 알아보라는 명을 받았지."그래서 그들이 편지를 받았을 때 사실은 황제의 명령을 받고 조사를 가기로 했던 것이다.사여묵은 원래 이런 방식으로 조사를 가는 것을 반대했다. 무작정 산으로 들어가 조사하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어 마치 바다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기 때문이었다. 그는 차라리 그들의 활동을 면밀히 지켜보며 누가 그들과 접촉하고 누가 식량을 가져다주는지, 얼마나 가져오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하면 위험도 더 적을 것이기 때문이다.또한 그는 식량이 산에 많이 숨겨져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겨우 겨울을 나기 위한 정도이고, 봄이 되면 다시 식량을 보내야 하니 말이다. 게다가 결국 몇 천 명이 먹을 식량이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양을 숨길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하지
송석석은 장장 반 시진 동안 그 두려움을 떨쳐내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그리고 진성을 떠날 이유가 필요했기에 말을 타고 궁으로 향했다. 숙청제는 사여묵이 보낸 두 통의 편지를 받았다. 첫 번째 편지에는 한 마을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으며, 그 마을의 주민들이 모두 사병일 가능성이 있다고 적혀 있었다. 이에 숙청제는 비밀 명령을 내려 사여묵에게 산으로 가서 조사하라고 지시했다.두 번째 편지에서는 그들이 산에 들어갔으나 방어가 철저하고, 사병임이 분명하지만 아직 무기와 군량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숙청제는 다시 명령을 내려 무기와 군량을 찾아 모조리 없앨 수 있도록 철저히 조사하라고 지시했는데, 그 후로 소식이 끊겨 버렸다.숙청제는 사실 조금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여러 산을 조사하고 있는데 사병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무림 고수들이 있는지 알 수 없었기에 충분히 위험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것이 아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만약 무기를 모두 찾아내 없앤다면, 그 즉시 도적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군을 근처에서 발병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큰 소동을 일으킬 필요도 없고, 피를 볼 일도 적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송석석으로부터 그들이 보름동안 소식이 없다는 말을 듣자, 그도 매우 불안하고 초조했다. 소식이 없다는 것은 상황을 알 수 없다는 뜻인데, 이렇게 아무것도 확인되지 않는 상황에 군대를 보낼 수는 없었다. 숙청제는 송석석에게 명령을 내려 사람들을 데리고 금관성에 가서 한 차례 공단 비단을 운반해 오라고 지시했다. 그 비단은 서경에 전달될 것이니 실수 없이 전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듯이, 금관성의 외곽에는 산적과 도적들이 많았다. 그 지역은 산이 많았기 때문에, 산적들이 산을 점령한 뒤 상인들의 행렬을 습격하는 일 또한 많았던 것이다.따라서 송석석이 현갑군을 이끌고 가는 것은 명분이 정당했다.그러나 실지적으로 공단을 호위하는 데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에
송석석은 명희의 손을 꼭 잡고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그녀의 가족에 대한 안 좋은 말은 언급하지 않았다.시만자와 신신은 밖에서 모든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의 대화가 끝난 후, 시만자는 보주에게 명희를 데리고 가서 편히 쉴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후 시만자가 물었다."왜 명희에게 가족을 보호하라고 했어? 차라리 명희에게 가족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알려주지. 그렇지 않으면 평생 그 굴레에 갇히게 될 거 아냐."송석석은 물을 한 모금을 마시며 말했다. 그녀의 차분한 눈빛 속에는 약간의 슬픔을 담겨있었다."이 일은 그저 명희만의 사례가 아니야. 많은 백성의 집안이 이렇지.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해결책이 딸이나 여동생을 팔아서 돈을 마련하는 거야. 그들에겐 그게 아주 잔인한 일로 느껴지지 않으니까. 그들은 딸을 어린 신부로 팔거나, 부잣집 자제에 시집을 보내는 것이 그저 한 가지 출구라고 여길 뿐이거든.그녀는 잠시 멈추고 다시 말을 이었다."그리고 사실 아들 결혼을 위해 딸을 팔아버리는 일도 흔해. 최소한 명희의 부모는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았지만 말이야. 그들은 은화를 벌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았어. 어머니는 장사를 하고, 아버지는 농가에서 노동을 했지. 심지어 위험을 감수하며 약초를 캐러 가셨잖아. 나는 그들이 명희를 팔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믿어. 아니었으면 명희를 서원에 보내지 않았을 테니까."시만자가 말했다."하지만 명희의 큰오빠와 큰형수는 책임을 지고 싶어 하지 않았고, 셋째 오빠는 결혼을 위해 명희를 팔았어. 정말 다들 너무 이기적인데, 명희가 그들을 미워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어?"송석석은 대답했다. "가족과 단절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야. 특히 명희는 앞으로 배워야 할 것도 많고, 부모님의 상태도 걱정해야 하잖아. 아직 열한 살 밖에 되지 않았으니 이 많은 것을 감당할 수 없을거야. 우리는 지금 명희의 마음속에 증오를 심을 필요가 없어. 나이가 들고 조금 더 성장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모든 것을 분
송석석은 몇 가지를 더 물어보고 나서야 대충 상황을 정리할 수 있었다.명희의 부모는 셋째 아들의 혼사를 준비하기 위해 산속으로 약초를 캐러 갔다. 겨울철이라 산짐승이 동면에 들어간 틈을 타 가파른 산속으로 들어간 것이었다.좋은 약초는 대부분 험준한 산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며칠간 연달아 산에 오르다 보니 부부는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피로에 지쳐 있었다. 그러던 중 명희의 어머니가 발을 헛디뎌 미끄러졌고, 이를 붙잡으려던 명희의 아버지마저 함께 굴러 떨어졌다.다행히 약초를 캐던 사람이 마침 그 길을 지나가 그들을 발견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산속에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한 사람은 허리를 다쳤고 다른 사람은 다리가 부러졌다. 앞으로는 일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누군가가 간호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치료도 계속 받아야 했고,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게다가 셋째 아들의 혼례가 다가오면서 그 입버릇처럼 가족의 단합을 말하던 명희는 결국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명희의 부모님께서 이 사실을 알고 계셔?" 송석석이 물었다."아니, 그들은 몰라. 그녀의 부모님은 기와집에 살지 않고, 낡은 헌 집으로 실려 가서 거기서 요양하고 계시대.""다른 가족들은 그녀를 파는 것에 동의했어?" "모르겠어. 다만 그녀의 큰오빠가 이미 5냥으로 거래를 끝냈다고 하더군. 그 사람이 이미 집에 찾아왔었는데, 내가 발 빠르게 먼저 데려온 덕에 다행히 막을 수 있었어."송석석이 다시 말했다."이 일은 양 마마에게 맡기자. 양 마마가 가서 처리하게 하고 너는 따라가기만 하면 돼. 절대 그들에게 화를 내지 말고 다투지도 마. 알겠지?"신신은 황실에 있는 동안 시만자가 그들에게 몇 번이고 당부했던 말이 있었기 때문에 이 점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아무리 때리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대낮에 공개적으로 때리면 안 된다. 반드시 몰래 때리고, 누가 때렸는지 모르게 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말이 나오지 않는다."신신이 대답했다."오늘은
송석석은 훈장으로서 다른 것은 가르칠 수 없어도 무술을 가르치는 것은 가능했기에, 아이들에게 기본적인 무술을 배울 의향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자신을 방어할 수 있고 신체도 건강하게 할 수 있는 무술 말이다.그 말을 듣자, 절반이 넘는 학생들이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무술은 타고난 자질이 중요한 법이기에 배우고 싶다고 해서 누구나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송석석은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을 보고, 차라리 수업을 하나 더 만들어 힘과 민첩성을 키우는 연습을 하도록 해주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아이들이 자신을 방어하는 일에 쓸 수도 있기 때문이다.진정으로 무술을 배우고 싶은 학생들은 신중히 선발할 필요가 있었다. 마침 신신이 시만자가 현갑군을 지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송석석을 졸라댔다.“나도 여학에 와서 가르치면 안돼? 나를 여교두로 임명해줘. 응? 제발!”송석석은 신신의 바람대로 해주었고,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며 가르치기로 했다. 평소 수업 중 한 시간 정도는 신신도 충분히 가르칠 수 있었다. 내용도 크게 어렵지 않았다.무술을 배울 열 명의 학생들을 선발하였는데 이들은 대부분 농가 출신이었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었고, 다만 나중에 생계가 어려워질 경우 아가씨들의 호위로 나서도 괜찮겠다는 생각이었다. 몸을 팔지 않아도 되고, 월급도 적지 않다는 이유였다.그중 명십칠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소녀가 있었다. 그녀의 집안은 대대로 농사를 지었고, 집안에 글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녀의 이름조차도 형제자매의 순서에 따라 지어진 것으로, 사촌들과 합쳐 총 열일곱명이 있는 집안에 막내였기 때문에 명십칠이라 불렸다.원래 그녀의 집에서는 딸에게 글을 배우게 하겠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장사를 하다 늘 계산을 제대로 하지 못해 속는 일이 많아진 뒤로, 글을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마침 이런 기회가 생기자 당연히 망설임 없이 딸을 여학에 보낸 것이다.명십칠은 올
제상서는 방문객을 모두 사양했지만, 직접 대부인과 함께 송석석을 방문했다.송석석은 평소처럼 그들을 맞이했다. 제상서와는 별다른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대신 염선생이 그와 대화를 나눈 후, 대부인을 곁채로 안내하여 차를 대접했다.대부인은 지난 일년여 동안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아 많이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마음은 평온해 보였다. 그녀는 더 이상 이전처럼 고집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는 자신이 상서부의 살림을 책임지는 종부로서 품격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내색하지 않으려 애썼다.늘 자신을 억누르며 스스로를 괴롭혔던 그녀가 지금은 많이 내려놓은 듯했다. 지나치게 완벽을 추구하지 않고 적당히 넘기는 법을 배운 것이다.대부인은 딸을 잘 교육하지 못한 것에 대해 송석석에게 사과하며 말했다."저는 한평생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제대로 해낸 일이 거의 없더군요.”"하지만 이제는 상관없습니다. 평생 단 한 가지라도 잘해내서 스스로 만족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습니까?"송석석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누구에게나 인생의 결핍은 있기 마련이지요. 앞으로는 자신을 더 잘 돌보면 될 일입니다."제대부인은 깊이 있고 차분한 눈빛으로 답했다."그렇습니다, 스스로를 더 잘 돌보는 것이 곧 삶을 마음 가는 대로 살아가는 방법이니까요."송석석은 과거의 자신을 완전히 부수고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금 느꼈다. 그리고 제대부인이 이를 해냈다는 사실이 정말로 대단하게 여겨졌다."참, 제제사께서 찾으라고 하신 분은 제가 이미 수소문 중입니다. 소식이 생기면 바로 알려드리겠다고 전해주세요."제대부인은 그녀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과감함과 약속을 지키는 굳건함에 깊은 감탄을 표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낮추어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왕비님."사실 제제사가 찾고자 한 사람을 송석석이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미 홍현과 그들을 시켜 그 사람의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