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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2화

작가: 유애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09-14 17:25:24
민씨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정말 요청했다고요? 아니면 속이기 위해 그리 말씀하신 겁니까? 당신도 장군부 사람인데 어찌 당신에게 요청한다는 말입니까?"

"왜 요청하면 안 된다는 거지? 장군부 사람이라고 해서 다 양심이 없는 것도 아니고."

둘째 노부인은 뿌듯해하며 말했다.

"돌아가서 소환이한테 네 시어머니께 전하려고 하렴. 이 소식을 들으면 속이 괴로울 테지."

이 말을 들은 민씨는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 어머님과 반대편에 서실 생각이십니까?"

이에 둘째 노부인이 싸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누가 반대편에 서겠다고 했니? 난 단지 그 사람이 탐욕스럽고 무정하며 은혜를 모르는 게 싫은 거란다. 듣기 싫을 수도 있으나 들어두렴. 넌 누가 네게 잘 해주고, 잘 못 해주는 지도 모를 만큼 어리석어."

"제가 어찌 모를 수가 있겠습니까? 저도 다 알고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제 친정은 유능하지 않습니다. 서방님도 저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지만 시어머니께서는 저를 더욱 좋아하지 않으시고요. 이런 상황에서 제가 뭘 어찌 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뭘 어찌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나쁜 짓은 돕지 않는 게 좋을 게야."

둘째 노부인이 말을 이었다.

"네 시어머니, 왕청여, 이방, 그리고 네 시누이는 모두 좋은 사람이 아니다. 넌 그 사람들이 석석이를 괴롭히려는 걸 도와주지 않으면 된단다."

"그건 당연합니다."

민씨가 얼른 대답했다.

"가끔은 모르는 체 하는 것도 좋은 법이지."

둘째 노부인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민씨는 조금 둔한 터라 한참을 생각하고서야 깨달았다.

"요즘 몸이 안 좋아서 한동안 안정을 취해야 할 것 같습니다."

둘째 노부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한 번 가보렴. 의관을 찾아 맥을 짚어 보도록 하거라. 그들이 뭘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민씨는 알겠다고 대답한 뒤 물러갔다.

민씨가 떠난 뒤 둘째 노부인이 첩지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사실 그녀는 처음부터 갈 생각이 없었다.

송석석이 옛 정을 그리고 있다는 건 잘 알지만, 그렇다고 감정에 휩쓸려 가서는 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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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날씨는 정말 좋았다. 날씨도 덥지 않고 나뭇가지 사이에 비치는 햇빛이 사람을 따뜻하게 비춰 마음이 편안해지게까지 했다. 혜 태비는 의자에 단정히 앉아 손님들의 축하를 받았다. 노 집사는 하인들을 데리고 축하 선물을 받으며 다음에 같은 가치의 선물을 주기 위해서는 어느 집에서 어떤 선물을 보냈는지 반드시 기록해야 하므로 책에 적었다.오늘 온 손님들은 모두 귀한 신분의 사람들이었다.모든 부인과 처녀들이 분칠을 하고 값비싼 보석으로 장식을 했는데, 한 눈에 봐도 보통 신분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하도 웃느라 얼굴이 굳어진 혜 태비는 얼굴이 조금도 굳어지지 않은 채 정말 진심으로 웃는 것처럼 사람들을 맞이하는 송석석을 보고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 큰 장소에서도 조금도 주눅이 들지 않고 대처하다니. 정말 대단하군.'남자 손님들은 사여묵과 염선생이 맞이했는데 그들은 모두 본관의 회객청에 앉아있었다. 오늘은 태비의 생일이므로 대청은 태비와 여인들의 것이기 때문이었다.태비의 신분이 특수하기도 해서 그들은 오늘 정원을 대청으로 썼다.곧이어 민지 공주와 미우 공주, 목씨 부인, 병부 상서의 부인이 도착하고 전강후부 노부인도 며느리와 손주 며느리를 데리고 왔다.그들이 도착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장공주도 가의 군주를 데리고 연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이때, 들어오는 사람들을 한 번 보다가 송석석은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전소환이 장공주와 가의 군주를 따라왔어? 허, 좀 재밌네.'전강후부 노부인이 도착하자 송석석은 혜 태비를 부축해 함께 그녀를 맞이했다.연세가 많으셔서 이런 연회에 잘 오지 않는 사람이 이렇게 왔으니 예의상 혜 태비가 직접 맞이해야 했기 때문이다. 전강후부 노부인은 한 무리의 며느리들과 함께 들어왔는데 전강후부의 가업이 크지는 않을 수 있으나 사람이 많아 더 힘이 있어보였다.아흔이 넘은 노부인의 등장에 자리에 있던 모두가 일어나 허리를 숙이고 인사했다. 장공주 등 공주들조차도 말이다."다들 왜 이러십니까?" 전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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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 귀태비는 자리에 앉은 뒤 웃으며 말했다."복이 있는 걸 따지자면 전강후부 노부인 보다는 제가 못하지요."이에 전강후부 노부인이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모두가 복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덕 귀태비는 물론 혜 태비도 그렇지요. 현모양처 며느리를 얻고 북명왕께선 큰 군공까지 세웠으니 모두 복이 있지요."혜 태비는 이 말을 듣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 것을 느꼈다. '역시 인생을 더 살아온 사람은 다르구나. 한마디로 사람의 기분이 풀리게 만들다니.'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저는 오히려 여묵이가 진왕처럼 진성에서 편안히 첩들을 들이고 자식들을 낳았으면 좋겠습니다. 제 아들이 바쁘게 살아야만 하는 명인 것이 아니라 그저 아침일찍 나가 해시에 돌아오는 걸 보면 마음이 아파서요."이에 덕 귀태비가 웃으며 말했다."그건 여묵이가 능력이 출중해서가 아니겠습니까!"이어 그녀가 손자를 품에 안고 뽀뽀 하자 아이가 통통한 작은 손으로 그녀의 목을 잡고 귀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할머니." 이 한 마디에 사람들은 마음이 녹는 것 같았다. 방금 전까지 득의양양하던 혜 태비도 다시 질투가 났다.장공주는 그런 그녀의 안색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석석이가 들어온지 몇 달이나 지났는데 아직 소식이 없답니까?"이 말을 듣자마자 전소환은 고개를 들어 도발하는 눈빛으로 송석석을 째려보았다. 송석석도 그런 그녀의 눈빛을 보았지만 담담하게 웃기만 할 뿐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장공주가 차를 마시며 느릿느릿 말했다."황실의 남자들은 일찌감치 대를 이어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황실의 피를 이어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인데요. 일 따위는 널린 게 문관인데, 누가 한들 다르겠습니까?"이 말이 나오자 혜 태비의 얼굴은 더욱 굳어져 버렸다. 지금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도 공주가 북명왕비가 아이를 못 가진 걸 말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 양쪽 모두 미움을 사기 싫었던 터라 그들은 아예 말을 꺼내지 않았다.이때, 평양후부 부인이 싸늘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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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을 타고 저택으로 달려온 송석석은 도착하자마자 바로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왕비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저택 앞을 지키던 하인 한 명이 그 모습을 보고 큰소리로 외쳤다. 조금 전 시만자가 송석석이 오면 바로 보고를 하라고 명했기 때문이다. 송석석이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 갑자기 나타난 모신신은 송석석을 향해 풀쩍 뛰어올랐고 화들짝 놀란 송석석은 재빨리 모신신을 꽉 끌어안았다.“왜 이제야 왔어! 우리 송 대감! 진짜 너무 보고 싶었어!”신난 모신신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자 송석석은 모신신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뒤 손으로 모신신의 볼을 마구 만졌다.“신신아, 너 살이 좀 찐 거 같구나.”송석석을 확 밀어낸 모신신은 입을 삐죽 내밀며 반박했다.“너 진짜 이럴 거야? 어떻게 만나자마자 내 아픈 곳을 그렇게 콕콕 찌르지?!”“아니야, 아니야! 안 뚱뚱해! 딱 보기 좋아, 여전히 예뻐!”송석석이 피식 웃으면서 말하자 모신신은 송석석의 팔짱을 끼고는 안으로 걸어갔다.“네가 완전 뚱뚱한 사람을 아직 못 봐서 그래.”이때, 시만자와 만두가 맞은편에서 걸어왔다. 만두는 살이 찐 건 아니지만 몸매가 전보다 훨씬 건장하고 튼튼해 보였다. 그리고 저번에 봤을 때보다 훨씬 차분해진 모습으로 송석석을 보며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왜 이제야 돌아와? 공사가 다망하네.”“만두야!”송석석은 만두의 가슴팍을 툭 치다가 건실한 근육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너 이제 무술 실력도 고수 수준에 도달한 거 아니야?”만두가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대답했다.“고수까지는 모르겠는데 전보다는 훨씬 늘었지. 이제 너랑 싸우면 지지 않을 자신 있어.”“오, 그래? 그럼 조만간 제대로 한 번 겨뤄봐야겠네?”송석석이 피식 웃으면서 대꾸하자 모신신이 어이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됐거든. 네가 우리 석석이를 이길 수 있다는 게 말이 돼? 그러다가 강냉이 다 털린다? 무술을 고작 2년 배우고 천하무적이라도 되는 줄 알아? 내가 다 창피하거든.”모신신과 만두는 예전부터 티격태격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39화

    조금 뒤, 숙청제는 세 사람을 불러들여 크게 혼을 냈고, 광릉후와 제 상서는 무릎을 꿇은 채 연신 사죄를 했지만 유독 송석석만은 입을 꾹 닫고 있었다.숙청제는 그런 송석석을 보며 다시 버럭 소리를 질렀다.“너도 전혀 억울한 게 아니다! 넌 제 제사가 남풍관에 자주 오가는 사실을 알고도 짐에게 미리 보고를 하지 않았다.”송석석은 밤새 잠도 못 잔 탓에 피곤했는데, 황제에게 혼까지 나고 있으니 마음속에 불만이 차올라 반문했다. “소인이 폐하께 미리 보고를 했다면 폐하께서 남풍관을 수사하지 않으셨을 것입니까?”“수사할 건 당연히 수사를 해야겠지. 하지만…”숙청제는 언성을 높였지만 바로 말문이 막혔다. 미리 알았다면 몰래 제 제사에게 얘기해줬을 거라고 말을 할 수는 없었다.더군다나 제 제사가 어젯밤 남풍관에 찾아갈지 확실하지 않는 상황에서 송석석이 남풍관에서 제 제사를 본 적이 있다고 보고를 해도 숙청제는 절대 믿지 않을 것이다.체포되기 전까지 이 사실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제 제사는 하늘이 무너져도 절대 그런 곳에 갈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신분 지위가 높고 백성들의 존경과 찬양을 한 몸에 받고 있으며 모든 이의 모범인 사람이 어떻게 그런 곳에 갈 리가 있단 말인가!송석석이 미리 이 사실을 보고했다면 숙청제는 송석석을 무고죄로 벌했을 것이었다.송석석은 목청 높여 말을 이어갔다.“이 큰 제씨 가문에 노비와 시녀들이 얼마나 많은데 아무도 제 제사께서 남풍관에 오갔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게 말이 됩니까? 소인은 그저 수사만 했습니다. 누가 언제 남풍관에 나타날지 소인도 예측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남풍관에 제 제사만 있었던 게 아니라 관원들과 세가 자제들도 많았습니다.”송석석의 말은 다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화가 나 있는 숙청제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리가 없었다.“아무튼 네 일 처리가 확실하지 못했던 건 사실이야. 그러니 변명할 것도 없어!”“네, 모든 게 소인의 잘못입니다. 소인은 지금 당장 경위부로 돌아가서 제 제사를 풀어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38화

    한참 동안 버티고 있던 제 상서는 결국 경위부를 떠났고, 송석석은 몸을 잔뜩 움츠린 채 걷고 있는 제 상서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평소에 기세 등등하던 제 상서의 모습은 사라져.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너무도 비참해 보였다.제 상서 때문에 잠이 완전히 깬 송석석은 감옥을 한 바퀴 더 순찰한 뒤, 필명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사실 대감님께서 이만 댁으로 돌아가셔도 됩니다. 소관 혼자서도 잘 지킬 수 있습니다.”“괜찮다. 어차피 이제 곧 날이 밝을 때도 됐어. 경위부 밖에 지키고 있는 세가들이 많아. 그 사람들이 난동을 부리면 네 힘으로는 절대 제지하지 못할 거야. 그리고 황제 폐하께서도 그자들 신분을 외부에 알릴 생각이 없는데 만에 하나 문제가 생기면 폐하께 상황을 설명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어.”“맞는 말씀이십니다.”필명도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다음날 아침, 제 상서와 송석석보다 더욱 이른 시간에 황제를 찾아간 사람은 다름아닌 광릉후였다. 그는 숙청제를 보자마자 무릎을 털썩 꿇곤, 눈물을 뚝뚝 흘리며 구구절절 얘기했다.처음 남풍관을 만든 건 사온이었고 사온이 망한 뒤로 남풍관을 닫으려고 했지만 제 제사의 제안과 설득에 넘어가 남풍관을 이어서 계속 운영하게 되었다고 했다.간단하게 얘기하자면 광릉후는 제 제사를 모함하고 팔아버린 것이다.이런저런 방법을 많이 생각해봤지만 결국 제씨 가문을 원수로 등지는 방법을 선택했다. 사국 정탐조에 대해 깊이 알아본 광릉후는 대신 이 죄를 뒤집어쓸 희생양이 필요했고 제 제사를 끌어내려야만 자신의 가문을 지킬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그 대가는 제씨 가문과 원수 사이가 되는 것이지만 이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제 제사는 더 이상 남풍관을 자주 찾는 손님뿐만이 아니라 남풍관을 계속 운영할 수 있었던 장본인이 되었기에 문제의 성질이 바뀌었다.하지만 숙청제는 선황제의 체면을 고려해서라도 이 사건을 조용하게 처리할 것이다.조금 뒤, 제 상서가 궁에 찾아왔을 때 그를 맞이한 건 숙청제의 들끓는 분노였다.숙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37화

    결국 곁방에서 나온 제 상서는 정당을 지나가다가 불 앞에 앉아 몸을 녹이고 있던 송석석을 발견하게 되었다. 제 상서는 그녀와 마주하기 싫었지만 마음과 다르게 발길은 이미 송석석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만약 송석석이 이곳을 지키고 있지 않았었다면 제 상서는 강제로 아버지를 데리고 갔을 수도 있을 것이며 이런 행동으로 황제 폐하께 벌을 받는다고 해도 아버지가 이곳에서 창피를 당하게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시간도 늦었는데 제 상서께서는 댁으로 돌아가지 않으십니까?”송석석이 물었고 제 상서는 기가 확 죽은 채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으며 겁이 나서 경위부 문턱을 나설 수가 없었다.밖에 나가면 어떠 상황을 마주하게 될지 감도 잡히지 않고, 너무 두려웠다.오늘밤 경위부에 처음 찾아왔을 때, 제 상서는 송석석과 담판할 준비를 철저하게 했는데 송석석은 이 사건으로 이익을 얻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높은 관직으로 수많은 관원들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제 상서는 평소에 권력과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으며 심지어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추태를 부리는 사람들도 있었다.하지만 송석석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황제가 북명왕을 경계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정에 인맥이 있어야 나중에 문제가 터졌을 때 편들어줄 사람이 있을 텐데 송석석은 그런 걱정을 하지 않는 듯했다.이런저런 생각들이 제 상서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지만, 조금 전에 본 아버지의 허연 얼굴과 알록달록한 의상은 계속 생각이 났다. 제 상서는 괴로워서 미쳐버릴 지경이었다.“대감님께서는 오늘밤 계속 이곳을 지킬 생각이십니까?”“네, 오늘밤은 계속 이곳에 있을 겁니다.”송석석의 대답에 제 상서는 괜히 그녀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이젠 왕비님께서 댁으로 돌아가셔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송석석은 제 상서를 힐끔 쳐다보며 대답했다.“제가 이곳을 떠나면 누군가가 권력의 힘을 이용하여 옥에 갇힌 자들을 데리고 갈 수도 있습니다.그런 상황이 벌어지기라도 한다면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36화

    송석석은 이내 곁방을 나서자, 뒤따르는 양기웅이 문을 굳게 닫았다.그렇게 곁방 안에는 부자 두 사람만 남게 되었고 한참 동안 침묵을 유지한 채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그러다가 결국 먼저 아버지에게 다가간 제 상서는 제 제사 머리에 씌워진 천을 거두려고 했지만 제 제사는 두 손으로 천을 꼭 잡은 채 놓지 않았다.제 상서는 한숨을 푹 내쉬며 이불과 의상을 아버지 곁에 내려 놓았고 뒤로 돌아서며 말했다.“일단 의상부터 갈아입으세요. 전 돌아서서 보지 않을게요.”한참 뒤, 옷을 벗는 소리가 들렸고 제 상서는 갑자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으며 코끝이 찡해진 채 눈물도 글썽였다.이 감정이 서러움인지 분노인지 아니면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어서 생긴 건지 제 상서 자신조차도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제 제사는 아들 앞에서 늘 위엄이 넘치는 모습을 보였었고, 심지어는 사람들의 존경과 찬송을 한 몸에 받는 권위의 상징이었다. 제 제사의 말 한 마디면 문단 전체가 흔들릴 정도였기에, 지금 이 모습이 외부에 전해지기로 한다면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충격을 받을 것이다.한참 뒤, 제 상서가 물었다.“다 갈아입으셨습니까?”제 제사는 아무 대꾸도, 움직임도 보이지 않자 제 상서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제 제사는 이불로 얼굴과 몸을 가린 채 합쳐 놓은 의자에 누워 있었고 그의 옆에는 조금 전까지 입고 있었던 의상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제 상서는 화려한 색감의 의상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결국 꾹 참고 있던 눈물을 뚝뚝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도대체 왜 그러신 겁니까…?”자신의 아버지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불을 꽉 잡고 있던 제 제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제 상서는 곁방에 들어와서 지금까지 제 제사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으며 제 제사도 아들이 무슨 생각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아들마저 지금의 자신을 창피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제 상서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의자에 털썩 앉았고 방을 떠날 생각이 없어 보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35화

    조용하게 지켜보던 송석석이 순방영 경위에게 일단 열 냥을 챙기라고 명했다.“이걸로 일단 모든 사람들이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음식을 샀다가 나중에 풀려나면 이 사람들끼리 알아서 돈 계산하라고 하면 돼.”송석석은 일부러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들으라고 말했다. 이곳에 잠깐 갇혀 있는 것이니 난동을 부리지 말고 조용하게 버티라는 뜻이다.밤이 깊어지자 송석석은 다시 한번 순찰에 나섰는데, 이번에 본 제 제사는 조금 전보다 더 심하게 떨고 있었다.그러자 주위를 경계하던 양기웅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대감님, 혹시 덮을 것 하나만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저희 어르신께서 추위에 많이 약하십니다...”송석석은 제 제사를 힐끗 쳐다보았다. 제 제사는 이상한 자세로 움츠리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온몸이 점점 더 굳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계속 이대로 뒀다가는 동상으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송석석은 결국 지시를 내렸다.“여봐라. 이 자를 데리고 가서 따로 가두거라. 이대로 두면 동상으로 사망할 수도 있으니 덮을 것도 하나 내어주거라.”양기웅은 얼른 무릎을 꿇은 채 훌쩍이면서 머리를 조아렸다.“감사합니다!”스스로 일어설 힘도 없는 제 제사는 양기웅 등에 업혀 옥에서 나갔고 이를 지켜보던 나머지 사람들은 불만이 생겼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뒷모습으로 보았을 때 업혀 나간 늙은이는 곧 죽을 사람처럼 보였기에 이곳에서 죽은 사람과 함께 갇혀 있고 싶지는 않았다.경위부는 매우 커 정당 옆에는 곁방도 하나 있었다. 곁방은 평소에 송석석이 쉬는 곳으로 공간은 작지만 아늑하고 따듯했다.송석석은 양기웅과 제 제사를 곁방에 안치한 뒤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의자는 마음껏 사용해도 되지만 침대에 누우면 안 됩니다. 이곳은 제가 평소에 잠깐 휴식을 취하는 공간입니다.”송석석의 말에 양기웅이 사정하기 시작했다.“저희 어르신은 몸이 약해서 밤새 앉아 계실 수 없습니다. 저희 어르신께서 일단 이 침대에 며칠만 신세를 지고 나중에 새것으로 사드리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34화

    그러자 찻잔을 손에 들고 있던 송석석이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제 상서께서 제게 무엇을 주실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혹은 스스로의 힘으로 얻을 수 없는 물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송석석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제 상서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자 송석석은 이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얼른 저택으로 돌아가십시오. 오늘밤은 제가 직접 이곳을 지키고 있을 겁니다.”“그럼 왕비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게 무엇인지 솔직하게 얘기해줄 수 있으시겠습니까?”제 상서가 집요하게 묻자 송석석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대답했다.“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전 그저 선황제의 체면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모든 일에 이익 관계가 따르는 건 아닙니다. 아 참, 경위부에서 음식을 공급하지 않으니 저택 하인들을 시켜 음식을 보내오세요. 혹은 저희 경위부에서 음식을 살 수 있게 은화를 남기고 가셔도 됩니다.”제 상서는 여전히 송석석의 속을 알 수 없어서 고개를 갸우뚱거린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송석석은 제씨 가문과 깊은 원한 관계가 있는 건 아니지만 서로 그리 우호적이지는 않았기에 이렇게 조건 없이 제씨 가문을 도와준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송석석이 선황제의 체면을 위해 제씨 가문을 돕는 거라고 했지만 제 상서는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대감님, 혹시 제 곁에 능력 있는 자가 생기면 제가 북명왕에게 소개를…”“제 상서, 멀리 나가지 않겠습니다.”송석석은 재빨리 제 상서의 말을 끊었고 잠시 고민하던 제 상서는 자신의 몸을 뒤적이다가 은화를 챙겨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저택으로 돌아가서 음식을 준비해오겠다고 얘기한 뒤 떠났다.제 상서가 떠나자마자 시만자가 잔뜩 들뜬 얼굴로 달려왔다.“나 먼저 돌아갈게. 조금 전에 황실에서 말을 전해왔는데 신신과 만두가 곧 도착할 거라고 했어서. 넌 오늘밤 이곳을 지키고 있을 거지? 그럼 나 먼저 갈게?!”그러자 송석석이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물었다.“그게 정말이야?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33화

    비록 갈증이 심했지만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뜨거운 찻물을 보자 제 상서는 마시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송석석이 여학에 관한 화제에 관심이 없어 보이자 제 상서는 이내 다른 얘기를 꺼냈다.“북명왕 곁에 유능한 조력자가 한두 명밖에 없다고 들었는데 제가 실력 있는 사람을 소개해드릴 수도…”제 상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송석석이 손을 내두르며 말했다.“제 상서님, 괜히 화제를 돌릴 필요 없으십니다. 현재 이곳에서 제 제사의 신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남풍관에서 나오기 전에 제가 천으로 제 제사의 얼굴을 가렸습니다. 그리고 옥에서도 천을 쓰고 계시니 염려 마십시오.”단도직입적인 송석석의 말에 제 상서는 순간 당황해서 말을 잇지 못했으며 얼굴도 벌겋게 달아올랐다.제 상서는 지금 이 상황이 너무 창피해 난감했다.만약 옥에 갇힌 사람이 아버지가 아니라 가문 중 다른 사람이었다면 그자가 누구든 제 상서는 직접 다리를 부러트려 가문에서 쫓아냈을 것이다.잠시 침묵하던 제 상서는 한참 지나고 나서야 낮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대감님, 혹시 제 아버지를 풀어줄 수 있으십니까? 제 아버지는 연세도 높고 건강도 안 좋으셔서 오랫동안 옥살이를 할 수가 없습니다.”“제 상서, 전 황제 폐하의 어명을 받고 남풍관을 조사하고 있는 겁니다. 남풍관 현장에 있었던 자들은 이틀 뒤면 바로 풀려날 것입니다. 조사 목적이 남풍관을 찾은 손님들이 아니라 남풍관에 숨어 지내는 사국 정탐조들이니까요. 제 상서께서 아직 모르고 계실 수도 있는데 남풍관 몇 군데에 사국 사람들이 열 명도 넘게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국 사람들은 전부 사온이 진성에 데리고 와서 남풍관에 몰래 숨긴 자들이죠. 제 상서의 부친께서도 이 사국 사람들과 시간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제 상서의 얼굴은 점점 하얗게 질렸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만약 송석석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이 일은 그저 도덕에 어긋나는 정도로 쉽게 끝나지 못할 것이다.아버지께서 대체 이런 바보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32화

    광릉후가 떠난 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제 상서는 이내 부하를 시켜 공주부에게 가서 제수찬을 데리고 오라고 명령했다.하지만 일은 제 상서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며칠 전에 한녕 공주와 함께 강남으로 구경을 떠난 제수찬이 3월 달이 되어서야 돌아올 거라는 말을 전해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그 놈은 맨날 머릿속에 놀고먹는 생각밖에 없어! 제씨 가문 세력 덕분이 아니었으면 그 놈이 한녕 공주와 혼인을 할 수 있었을 것 같아?”제 상서가 씩씩거리면서 테이블을 내리치자 곁에 있던 하인이 제안했다.“대인님, 셋째 어르신과 그 부인께 부탁을 드려보는 건 어떻습니까?”“둘 다 멍청해서 오히려 일을 더 그르칠 수도 있어. 전혀 도움이 안 될 것이야!”제 상서가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만약 사여묵이 진성에 있다면 제 상서는 남자끼리 잘 얘기해서 부탁을 하기도 쉬웠을 텐데 하필 사여묵이 집을 비운 지금, 여인에게 이런 부탁을 하기엔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그렇다고 이 일을 내일까지 끌 수는 없었기에, 오늘밤 반드시 아버지를 옥에서 빼내야 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그가 추운 경위부 옥에서 오랫동안은 버티지 못할 게 분명했다.제 상서는 부탁할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섣불리 아무한테나 얘기할 수 없는 것이다.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이런 취향을 가지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으며 지금까지 아버지는 단 한번도 아들 앞에서 티를 낸 적이 없었다.혼인을 하고 자식까지 낳은 제 제사는 늘 엄숙하고 정의로운 사람이었으며 송석석이 소주방을 운영한다고 했을 때에도 크게 비판을 했었다.더군다나 제 제사는 평소에 가문 제자들에게도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늘 경고를 하고 주의를 줬었는데, 본인이 이렇게 큰 사고를 칠 줄은 상상치도 못했다.한숨을 푹 내쉰 제 상서는 부하에게 가마를 준비하라고 명령한 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경위부로 향했다.오늘밤 남풍관을 조사했고 많은 사람들을 체포했으니 송석석은 아직 경위부에 남아있을 것이다.경위부에 도착한 제 상서는 가마에서 내렸고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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