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목암 얘기가 나오자 연왕 일가의 얼굴이 급변했다.자리에 앉으려던 사여령이 그 말을 듣고 물었다.“청목암이요? 어마마마의 병세는 어떻게 되었나요?”“뭘 어떻게 되긴요!”송석석은 사여령을 보며 싸늘하게 답했다.“그렇게 걱정되면 왜 한 번도 찾아가 보지 않았나요?”사여령은 연왕의 눈치를 힐끗 살폈다. 연왕은 싸늘한 얼굴로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저는… 글공부하느라 바빠서 시간이 나지 않습니다.”그가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그래요? 연왕부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여유가 남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단 말입니까? 시종만 보내면 다인가요? 단 신의의 두 제자가 아니었으면 청목암에서 며칠이나 더 버틸 수 있었을까요?”옥영 현주는 안 그래도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는 재가한 사촌 형님의 말에 불쾌감을 드러냈다.“형님께서 우리 집안일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 줄은 몰랐네요.”송석석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옥영 현주를 노려보며 말했다.“나도 세간에 이런 불효녀가 있는 줄은 몰랐네요!”“뭐라고요?”옥영 현주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정말 근거도 없는 소리를 하네요. 제가 불효를 저질렀다고 어떻게 그렇게 속단해요? 제가 어머니께 효도하는 걸 보지도 못하셨잖아요?”“당연히 못 봤지요. 하지민 연왕비 마마가 돌아가실 때 당신들 중 아무도 자리에 없었다는 건 압니다.”사여령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물었다.“뭐라고요?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단 말씀인가요?”그는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이 눈물을 흘렸다.송석석이 보기에 한심했지만 그 눈물은 연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옥영과 옥경 두 사람도 멈칫하더니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아무리 쥐어짜도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연왕이 가슴을 치더니 한숨을 쉬며 한탄하듯 말했다.“몸이 안 좋은 걸 알면서도 청목암에 요양하러 가겠다고 고집을 피웠었지. 과거에 이루지 못한 소원을 이루러 가는 거라고 했어. 하늘에 계신 송 부인을 위해 기도하러 간다고 했지.”송석석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시만자가 버럭 화를
순간 연왕의 안색이 급변했다.‘이혼서가 남아 있었어?’그는 속으로 심부름을 보냈던 하인들을 저주했다.‘멍청한 놈들, 이런 것 하나 제대로 처리 못 하다니.’사여령은 떨리는 손으로 이혼서를 받아서 펼쳤다. 그 위에는 부친의 친필 필적이 남아 있었다.그는 고개를 들고 주먹을 꽉 쥔 채로 연왕을 바라보며 물었다.“아버지, 이게 어떻게 된 거지요?”연왕은 불쾌한 기색으로 입술을 앙다물고 아들을 노려보기만 했다.김 측비가 다급히 분위기를 무마하려 나섰다.“이게 어떻게 네 아버지가 쓴 거겠어? 분명 누군가가 네 아버지의 필적을 모방하여 우리 집안을 이간질하려는 거야. 네 아버지가 네 어머니를 내칠 리 없잖느냐.”그녀는 대놓고 송석석을 비난하지 못하니 시만자에게 화풀이를 했다.“이혼서 네가 가져온 거지? 우리 연왕부와 무슨 원한이 있기에 가짜 이혼서를 들고 가서 왕비를 자극한 게야? 왕비께서 돌아가신 것도 다 네 잘못이다!”시만자가 싸늘하게 말했다.“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우리 집에 와서 날 며느리로 들이고 싶다고 했군요? 난 연왕 전하와 안면식도 없는 사이인데 전하의 필체를 어떻게 모방합니까? 모방했다고 하더라도 매일 전하의 옆에 있는 측비께서 하셨겠죠. 설마 왕비를 죽이려고 전하의 필체를 모방한 이혼서를 청목암에 보냈나요?”연왕과 김 측비의 시선이 일제히 시만자에게 닿았다.연왕은 그녀가 시만자라는 말에 눈을 반짝 빛냈다.반면 김 측비의 표정은 어두웠다.송석석은 대공자인 사여령을 제외하고 전혀 슬픈 표정이 없는 연왕부 일가족을 둘러보았다.어쩌면 이들에게 연왕비는 청목암으로 떠날 때 이미 죽은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사여령의 눈물이 진심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적어도 그는 눈물이라도 흘렸다.송석석은 이모의 처지가 가엽고 한탄스러웠다. 그리고 부군을 잘못 만난 여인의 처지가 참으로 기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싸늘한 시선으로 두 현주를 바라보며 말했다.“생모가 죽었는데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네요.”옥경 현주는 급기야 가련한 표정을 지
이때 사여령이 눈물을 글썽이며 사여묵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연왕은 짜증스럽게 소리를 질렀다.“못 들었느냐? 우리한테 나가라고 하지 않았느냐!”사여령은 눈물을 흘리며 사여묵과 송석석에게 예를 취하고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갔다.나머지 사람들도 콧방귀를 뀌며 밖으로 나가고 측실 김씨는 여전히 우아함을 유지한 채 예를 올렸다.“태비마마, 안녕히 계십시오. 소첩 이만 물러가겠사옵니다.”김 측비는 나가기 전 시만자에게 묘한 눈빛을 주었다. 시만자는 심드렁한 얼굴로 대꾸도 하지 않았다.혜태비는 여전히 혼란스러워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조금 전까지도 화기애애한 분위기였고 예의 바르고 착실한 아이들이라 생각했는데 이처럼 양심을 상실한 인간들일 줄은 생각도 못 했다.연왕비가 죽었다는 소식에 사여령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은 슬픈 내색 하나 비추지 않았다.그리고 옥영과 옥경 현주는 친모가 청목암에서 고독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혜태비는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출궁하여 아들과 며느리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아갈 생각이었고 당연히 자식들이니 효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만약 자식들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면?사여묵은 혜태비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존재였다.혜태비는 다급히 일어나 송석석을 거들며 연왕 일가에게 욕설을 퍼부었다.그러고는 다가가서 며느리의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그런 인간들 때문에 화낼 거 없다. 연왕비가 그들을 용서하지 않을 거고 그들은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대가를 치를 거야. 너무 상심하지 말거라.”송석석은 시어머니의 위로를 받고 갑갑했던 속이 그나마 풀렸다.“가서 좀 씻고 준비되면 입궁하자구나.”혜태비는 어린애 달래듯이 송석석을 달래다가 멀뚱멀뚱 서 있는 아들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넌 왜 가만히 서 있는 게야? 어서 같이 들어가지 않고. 석석이 손 차가운 것 좀 봐. 부군인 네가 챙겨야지, 누가 챙기겠어?”사여묵은 처음 보는 어머니의 모습에 순간 당황했다.어릴 때도 꾸중은 많이 들었지만 그가 무
목욕을 마친 뒤, 송석석은 화려한 예복으로 갈아입었다.그리고 분을 얇게 발라 창백한 안색을 가렸다.황가의 연회이고 종친들이 모두 모이는 자리였기에 지켜야 할 예법도 많았다.그녀는 거울 앞에서 길게 심호흡하면서 심란한 마음을 달래려고 애썼다.‘이 슬픔 역시 지나갈 거야. 적응해야 해.’그녀는 그렇게 속으로 되뇌었다.거울 속에는 화려한 비녀에 빛나는 목걸이까지 착용한 아름다운 여인이 앉아 있었다.사부님이 혼수로 준비해 주신 장신구들이었다. 값비싼 동주로 만들어진 장신구들을 상자째 보내오신 분이었다.귀걸이 역시 같은 계열인 동주 귀걸이로 착용해서 귀티가 풍겼다.눈가의 미인점은 오늘따라 더 선혈처럼 빨갛게 돋보였다.그녀는 시선을 내리깔아 분노로 폭발할 것 같은 살기를 감추었다.사여묵은 그녀의 손을 잡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가자.”예복을 갖추어 입은 사여묵은 훤칠한 키에 준수한 용모를 남김없이 자랑하고 있었다. 송석석은 그를 향해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예, 어머님을 오래 기다리시게 하면 안 되지요.”혜태비는 평소에 비해 단촐하게 단장했다. 연한 색상의 옥비녀에 붉은 산호 목걸이를 착영하려다가 돌아간 연왕비가 떠올라 목걸이를 내려놓고 평소에 늘 하고 다니던 옥팔찌도 뺐다.한녕은 사랑스럽게 단장한 서우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연붉은 치맛자락은 그녀의 사랑스러운 용모에 빛을 더했다. 그녀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서우의 손을 잡은 채 다가와서 차례로 혜태비와 사여묵, 송석석에게 인사를 올렸다.처음 만났을 때와는 완전히 다르게 서우의 얼굴에 비친 천진난만한 미소를 보며 송석석은 위안을 삼았다.“부상이 나은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뛰지 말고 천천히 걸어 다니렴.”태비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며칠 함께 지내다 보니 혜태비는 예의 바르고 온순한 서우에게 호감을 느꼈다.“예, 태비마마.”서우는 그제야 뛰던 것을 멈추고 공손히 말했다. 사실 이제 뛰는 것 정도는 거뜬했지만 태비마마의 말씀을 거스를 필요는 없었다.고모가 출가할
혜태비에게 계속 위로의 말을 듣는 것도 죄송스러운 일이었다.그녀는 서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괜찮다. 기분이 좀 안 좋은 일이 있었는데 연회에 가면 맛있는 것들도 많이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어.”그녀는 일부러 가벼운 우스개로 분위기를 띄웠다.혜태비와 한녕마저 그녀의 거짓말에 속은 듯했다.매년 있는 궁중 연회이지만 그 규모가 상당하니 매번 설레고 기대가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곳곳에 채색등이 걸려 있고 복도에는 유리등으로 대낮처럼 궁궐을 밝혔다.연왕은 일가족들과 함께 태후와 황제 내외를 알현했다. 황태후는 선황의 동생인 연왕이 그리 반갑지 않았다. 그가 첩을 총애하고 정실을 홀대했다는 소문이 이미 경성까지 퍼진 탓이었다.연왕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다들 그녀가 병세가 깊어 못 온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단 신의가 친히 보살피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만약 연왕과 김 측비에게만 맡겼더라면 아마 진작에 명을 달리했을 것이다.황태후는 넌지시 연왕비의 안부를 물었다.당연한 인사말이고 황태후도 이들이 진실을 말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연왕의 태도가 이상했다. 그는 우물쭈물하며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송석석이 연왕비의 죽음을 까발리기 전이었다면 예전처럼 그냥 병이 깊어 외출이 힘들다는 핑계를 댔겠지만 북명 왕부 사람들이 다 알게 된 이상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궁중 연회에서 송석석이 갑자기 이 일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겠지만 이 일이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였다.그는 나오지도 않는 눈물을 억지로 쥐어짜며 슬픈 표정으로 말했다.“마마, 경성에 도착하자마자 왕비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달받았사옵니다.”순간 태후가 들고 있던 찻잔을 놓치며 바닥에 떨어졌다.“뭐라?”황제와 황후도 당황한 얼굴로 연왕에게 시선을 보냈다.게다가 왕비가 사망했는데 바로 돌아가지 않고 일가족을 데리고 경성에 머무르는 연왕의 행동도 이상했다. 궁중 연회보다는 당연히 왕비의 장례가 먼저가 되어야 하지 않은가!“그럼 어서 연주로 돌아
선황 문제는 의귀비를 총애했기에 그녀의 자식인 장공주도 무척 총애했다. 영비는 장공주를 맡아서 돌보게 되면서 수많은 하사를 받았다.지금은 영태비가 되어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다른 태비들에 비하면 존재감이 별로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선황이 세상을 떠나고 같이 순장하거나 절에 보내진 다른 비빈들보다는 나았다.품계로 따지면 윗순위에 속했지만 후궁은 품계만 가지고 살아가는 곳이 아니었다.선황은 연왕에게 영지를 내려 멀리 보내고 영태비는 궁에 남겼다. 그것은 연왕을 견제하기 위함이었다.현재까지 연왕은 무능하고 미색을 좋아하는 별 볼일 없는 친왕이었다.그래서 황제는 은혜를 베풀어 영태비를 연왕부에 보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었다.하지만 연왕비의 부고 소식을 듣자 그럴 마음이 싹 사라졌다.어차피 궐에는 장공주도 있고 장공주도 영태비의 자식이니 그리 급하게 서두를 건 없었다.연왕은 일가족과 함께 대전을 나와 영태비를 뵈러 장수궁으로 갔다. 마침 장공주도 그곳에 있었다.이미 백발이 된 영태비는 아들을 보자 반가운 마음에 달려 나왔다.그들이 큰절을 올린 뒤, 영태비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안부를 물었다.연왕은 장공주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건넸다.“오랜만이구나.”사실 남매라고는 하지만 연왕과 장공주는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나 날짜도 이틀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장공주가 말했다.“3년 만인가요, 오라버니?”“그래. 지난번에 왔을 때는 왕비의 친척인 송가 여식의 혼사 때문이었지.”연왕은 송석석을 떠올리자 음침한 표정으로 말했다.송석석 얘기가 나오자 장공주도 불쾌한 표정으로 망토를 여미고는 밖으로 나갔다.연왕은 그녀의 뒤를 따르며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송가의 여식이 마음에 안 들어?”장공주가 싸늘하게 말했다.“마음에 안 들기만 하겠어요? 죽이고 싶을 정도로 거슬리는 계집이에요.”연왕이 묘한 표정으로 말했다.“그 아이는 송회안의 여식이야.”송회안 얘기가 나오자 장공주의 두 눈이 증오로 가득 물들었다. 가
연왕도 몹시 화가 났다."그년이 언제 죽든 상관없다. 만약 죽었다고 해도 한참 후에 알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송석석이 이 모든 것을 망쳐버려서 태후와 황제께서 이 모든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제 나는 어떻게 진성에서 머리를 쳐들고 다닐 수 있겠냔 말이다!"장공주도 화가 치밀어 올라 이를 갈고 있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저 그를 달랠 수밖에 없었다. "당장은 건드리지 말고 참으시지요. 그들이 막 공을 세우고 돌아온 상태라 조정과 민간에서 명망이 높으니 예봉은 피하고 조용하게 군사를 모아야 하옵니다. 그리고 시씨 가문과의 혼사는 서두르세요. 시만자는 남강 전장에 나선 적 있는 자이니, 만약 그녀를 얻는다면 군사를 모으는 일이 한결 쉬워질 것입니다. 게다가 시씨 가문이란 배경에 적염문까지 돕는다면 언젠가 반드시 대성을 거두게 될 겁니다."그러자 연왕이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시철진은 무성의해 보였다. 시만자는 만인의 사랑을 받는 자인데 그런 그녀를 첩으로 삼아 내 곁에 두겠다는 건 어려워 보인다. 게다가 그 어리석은 여인이 청목암에서 있었던 일도 알고 있을 터이니, 그녀 또한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시만자를 얻지 못한다면, 시씨 가문의 다른 딸을 얻으세요. 그들도 그 도망간 고모가 남긴 치욕을 씻어내고자 할 것입니다. 무기와 갑옷에 목표를 두세요. 게다가 시씨 가문은 북쪽 초원에 말 사육장도 소유하고 있사옵니다."거사를 치루려면 군과 말은 필수였다."지금은 비록 방탕하게 지내고 있지만 황제의 눈에 띄지 않고 있으니 시씨 가문의 여인을 얻더라도, 재물만을 탐하는 무능한 번왕이라고만 생각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주색재기중 하나도 빠져서는 안 된다는 인상을 심어야 하옵니다. 저는 먼저 사여묵을 의심하도록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왕씨 가문은 지금 북명군을 장악하고 있으니..."장공주는 잠시 멈칫하다 다시 말을 이었다. "황제께서 왕씨 가문을 중용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아 전북망을 키우려는 것 같으니, 전북망의 부인 쪽으로 손을
잠시후 진성에 있는 황족 친척들도 차례대로 궁에 도착했다. 회왕과 회왕비 그리고 장공주들도 부마와 자녀들을 데리고 왔기에 궁은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졌다. 그다음으로는 이미 시집간 장공주, 민지와 미우가 들어섰다. 그들은 모두 황제의 자매로, 민지 공주는 태후의 여식이고 황제의 누나였다. 미우 공주는 제귀태비의 딸로 황제의 여동생이었다.민지 공주는 어사대부의 차남 허낙천에게 시집갔다. 허낙천은 이름 그대로 낙천적인 인물로 예부에서 한직을 맡고 있었다. 허씨 가문은 목 승상 부인의 친정집으로 시와 예를 이어오는 가문이다. 강직하고 고집이 있었던 허창진은 황제와도 맞서 싸울 정도의 대단한 인물이었다. 공주에게는 공주 저택이 있었지만,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는 허씨 가문에 가서 안부를 전해야 했다. 이는 며느리로서의 응당한 예의라며 허창진은 공주가 황족의 신분을 내세워 특별 대우를 받으려 하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그러나 민지 공주는 부마와 금실이 좋았고 게다가 태후의 가르침 덕에 조금의 거만함도 없어 허씨 가문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미우 공주는 병부상서 이덕회의 조카 이유에게 시집갔다. 이유는 한직에 있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공주를 도와 토지와 가게를 관리하고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 상업에 능한 인물이었다.송석석은 주위를 둘러보며 란이를 찾고 있었지만, 란이는 보이지 않았다.란이는 군주였지만 출가 후에는 시댁에서 설을 보내야 했다. 그 남편이란 작자는 고리타분한 성격의 소유자로 란이가 고생을 많이 했을 것이다. 송석석은 그 사람을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그녀가 한창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태후의 목소리가 들렸다."영안군주의 얼굴을 본지도 꽤 된 것 같구나."그러자 회왕비가 웃으며 대답했다.“란이가 곧 기쁜 소식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한창 태교 중이옵니다.""정말인가? 너무 잘 되었다." 태후는 몹시 기뻐했다."나도 어의를 보내 맥을 짚어보라고 하려던 참이었다. 식을 올리고도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길래
향병은 비록 중요한 여관은 아니었지만 장공주의 믿음을 얻었고 방금도 그녀가 극구 반대를 해서 원래 지지하던 사람들까지도 따라서 반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홍려사경을 비롯한 두 세 사람은 여전히 상국의 단신의를 청하는 것을 지지했다. 단신의의 명성은 서경에까지 퍼졌다. 애초에 선제의 병이 위독했을 때 조정의 신하도 단신의에게 치료를 청하겠다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선제는 스스로 상국인의 손에 목숨을 맡기기 싫다며 결국엔 포기했다. 그들은 또다시 말다툼을 벌였는데 송석석과 평무종은 상황을 보더니 단신의를 모시고 곧장 동원으로 달려갔다. “막아라!!” 향병이 소리쳤다. “저기요, 내 말 좀 들어보십시오……” 시만자는 서둘러 앞으로 다가가 향병의 손을 잡고 애원했다. “우리도 장공주님을 위해서 이러는 것입니다. 장공주님의 시녀가 옆에 있으니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몽동이도 수란석을 가로막고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저 맥만 짚어보는 것입니다. 당신들의 태의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얼른 들어가서 지켜보라고 하십시오.” 태의는 진작에 뛰어 들어갔다. 비록 장공주의 곁에는 두 명의 의사가 간호하고 있었지만 상국의 사람이 들어가자 태의는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바로 따라 들어갔다. “놔, 이거 놔주십시오.” 향병은 시만자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뭐 하는 것입니까? 날 해치려는 것입니까?” 그러자 시만자는 그녀와 충돌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런 게 아닙니다. 들어가려는 거면 같이 들어가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몽동이도 말을 덧붙였다. “맞습니다. 다 같이 들어갑시다! 모두들 장공주의 건강을 위해서 이러는 것이니 같이 들어갑시다.” 경위들도 송 대인이 손찌검을 하지 말라고 분부해서 밀치락달치락 하며 공격을 어깨로 되받아 칠 수밖에 없었다.현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혼란스러웠지만 몽동이가 수란석을 잡고 있기 때문에 시만자는 힘껏 향병의 손을 잡고 동원 쪽으로 움직였다.
잠시 후, 평무종이 회동관 입구에 나타났는데, 혼자 온 게 아닌 것 같았다.방금 송석석이 그녀를 보았을 땐 야행복을 입고 있었는데 지금은 평범한 복장을 입고 있었고 야행복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사저, 무슨 상황입니까?”송석석은 얼른 마중 나가서 물었다.그러자 평무종이 답했다.“내가 장공주 방의 옥상에서 잠깐 들었는데 장공주가 혼수상태에 빠진 것 같더라고.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시녀 몇 명이 지키고 있었는데 그들의 말에 의하면 장공주가 미친 듯이 발광하다가 사람까지 물고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하더군.”시만자는 의아해서 물었다.“미친 듯이 사람을 물었다고요? 설마 정신이 이상해진 건 아니겠지요?”이때 송석석이 다시 물었다.“혹시 정원에서 들었습니까? 그들이 뭐라고 하던가요?”“그들이 정원에서 다투고 있었는데 태의나 단백부를 모시러 가자는 사람도 있었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어. 하지만 난 옥상에서만 듣고 있었기 때문에 반대하고 지지하던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라.”“그럼 신의를 모시러 간다는 의견에 반대하던 사람 중 여자의 목소리가 있었습니까?”“있었다.”평무종이 몽동이를 만났을 때 이미 여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하지만 향병은 아니었다.”“반대하던 사람이 많았습니까?”“서너 명인 것 같았는데 그들도 침착하게 분석할 뿐이지, 무작정 반대했던 건 아니다. 유독 한 여자의 반대가 심했는데 그녀는 우리 상국의 태의와 의사들은 그들이 수행하는 어의보다 못하며 가해할 위험이 있다고 생각했지.”“그러니까 그녀를 따라 반대하던 사람들은 장공주가 자신들 때문에 문제가 생겨 책임을 질까 봐 걱정하는 것이었군요.”평무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다고 할 수 있지.”그러자 송석석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다.“그럼 쳐들어갑시다!”이때 몽동이가 걱정하며 말했다. “왕야님께 알려서 결정지으라고 하는 게 낫지 않을까?”“아니, 이건 내 개인적인 결정이지 왕야와는 상관없는 일이야.”송석석은 밤을 지키고 있는 경위를 불러
송석석은 잠깐 망설이다가 말했다. “넌 일단 가서 단백부를 모시고 와. 내가 방법을 찾아서 들어가 볼 테이니.” 그녀는 어찌 되었든 간에 단신의를 모셔오는 게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시만자가 말했다. “알겠어, 내가 지금 바로 가서 모셔올게.” 시만자는 방을 나가서 말을 타고 달렸다. 밤이 되자 날씨가 쌀쌀해져 그녀는 단신의를 귀찮게 하는 건 아닌지 문득 걱정이 됐다. 그녀가 반쯤 갔을 때 몽동이를 만났다. 몽동이는 그녀를 보지 못한 듯 그저 지나쳤는데 시만자가 몇 번을 불러서야 한참 후에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송석석은 경위에게 입구를 지키라고 하고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게 계략일지도 모르니 조심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녀도 방을 나가 회동관 주의를 돌아다녔다. 회동관 밖엔 모두 송석석의 사람들이라 밖에서 돌아다니는 건 큰 문제가 없었다. 잠깐 돌아다니다 그녀는 뒷마당의 담벼락으로 날아들었다. 내부의 수비는 외부처럼 엄격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의로 빈틈을 남겼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녀는 장공주가 동쪽 마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있는 동원과는 거리가 있어 조심스럽게 수비를 피해야 했다. 중원으로 넘어가자 경비원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송석석은 회랑에 올라가 벽에 붙어 걸었는데 다행히도 빛이 밝지 않았고 그녀의 발자국 소리도 가벼워서 경비원의 주의를 끌지 못했다. 경비원들은 뭐라고 말을 하고 있었는데 송석석은 알아듣지 못했다. 그녀는 평 사저가 여기에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평 사저는 서경어, 사국어, 북당어 등 여러 가지 방언에 능통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옥상으로 올라가 위로 지나가려고 했는데 올라가자마자 한 그림자가 낙엽처럼 동원의 옥상에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거리가 먼 데다가 빛이 지붕까지 비추지 못한 탓에 눈 깜짝할 사이에 그림자는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은근히 놀란 것 같았다. ‘설마 그들이 정말 사람을 들여보낸 건 아
북명황실 의사당. 염 선생은 향병, 안운여, 그리고 곽아정, 이 세 여관에 대한 자료를 모두 내놓았다. “이 세 사람은 모두 장공주의 심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경의 여자들은 중요한 벼슬을 맡을 수 없는데 향병은 첫 번째로 5품으로 올라간 여관입니다. 장공주의 마음에 가장 드는 사람이 바로 그녀였고 그다음이 곽아정이었습니다. 그녀는 서경 곽 씨 가문의 적녀였는데 수란키의 아내가 바로 그녀의 고모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이 안운여였는데, 안운여는 평민 출신이지만 급제를 해서 장공주를 따라다니며 정무를 처리했습니다. 그 세 사람은 모두 선제가 있을 때부터 장공주를 따라다녔는데 그들은 장공주에게 늘 엄청난 충성을 보였습니다.” 사여묵은 세 사람의 이름, 나이, 성격, 출신, 호적, 혼가, 가문, 그리고 언제 벼슬을 땄고 무슨 일을 했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자료를 다 본 후엔 다시 고개를 돌려 향병의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염 선생이 말했다. “그녀는 장공주에게 가장 충성을 다하기도 했고 장공주와 시간을 가장 오래 보냈던 사람입니다.” 이때 사여묵이 고개를 들고 답했다. “동궁에서 2년 동안 궁녀로 일했었군.” 염 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녀는 장공주가 뽑은 인재로 동궁으로 보내졌었습니다. 서경은 우리 상국과 마찬가지라 태자는 자신의 작은 조정에서 정무를 처리해야 해서…… 아 참!” 말을 하다가 깜짝 놀란 염 선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동궁에서 2년 동안 일을 했으니 선 태자에게 충성을 다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녀가 정원제와 수란석을 지지했을 주전파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자 사여묵이 물었다. “몽동이는 어디 있느냐? 그에게 회동관으로 가서 왕비와 시 아가씨에게 이 일을 알려 향병의 행동에 주의하도록 하거라. 그리고 장공주의 상황을 주의 깊게 관찰하도록 하거라.”그는 협상의 주관으로서 회동관에 나타난다면 서경의 사신들이 경계할 것이기 때문에 직접 갈 수 없었다.몽동이는 의사당 문 앞에 있었는데
사여묵이 바로 의사당으로 가자 사부가 정좌에 앉아 모두들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염 선생에게 이번에 온 세 여관의 자료를 조사해 보라고 했다. …회동관, 자시. 시만자는 차를 많이 마신 탓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서경에 주돈 하고 있는 시위에게 화장실로 가겠다고 했고 송석석도 함께 일어났다. 서경 시위는 상국어를 할 줄 아는 시녀를 찾아 그들에게 길을 인도했다. 회동관 안 마당을 지날 때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다툼 소리가 들려와서 송석석은 안으로 쳐다보았는데 글쎄 사신들이 거의 모두 안에 앉아 있었고, 장공주를 따르던 여관들도 있었다. 열댓 명이 모두 안에서 떠들었는데, 비록 소리가 크진 않았지만 어떤 사람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어떤 사람은 분노의 기색을 띠고 있었다. 송석석은 서경 말을 몇 마디밖에 할 줄 몰라서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고, 무엇인가 위험하다는 것만 알아들었다. 송석석이 자세히 들으려고 발걸음을 멈추자 시녀는 계속 재촉했다. 송석석과 시만자는 할 수 없이 화장실로 향했고 안 마당과 점점 멀어져 다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마주 보았다. 그들은 이게 모레 협상하는 일을 상의하는 것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냉옥 장공주는 자리에 없었고 그녀의 시위와 시녀만 있었는데 의관 모자를 쓴 사람도 한 명 있었다. 송석석이 풍등의 빛을 빌어 그 시녀를 한 번 보았는데 바로 정원에서 끌려 나온 모습이 분명했다. 계속 무언가 초조한 안색을 보였다.송석석은 냉옥 장공주가 몸이 좋지 않았던 것이 생각났다. 오늘 협상할 때 구토까지 했다고 들었는데 병세가 심해진 건 아닌지 몰랐다. 그녀는 시녀에게 물었다. “냉옥 공주는 좀 괜찮아졌습니까? 아직 편찮으신 거라면 우리 진성에 단신의라는 분이…….” 송석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녀의 눈빛이 밝아지더니 물었다. “단신의 말입니까? 그분이 지금 진성에 있습니까?” “네, 단신의는 지금 진성에 있습니다.”
전북망은 여전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장공주는 전쟁을 반대했는데 옆에 있는 여관이 그렇게 했다면 장공주의 주장과 배치되는 것이 아닌가? 장공주는 절대 동의하지 않을 것이오.” 그러자 이방이 냉소하며 말했다. “결국엔 그녀도 어쩔 수 없겠지요.” 그러자 전북망이 놀라서 물었다. “그게 대체 무슨 뜻이오? 그들이 장공주를 속이기라도 하려는 것이란 말이오?” 그러자 이방도 잘 모른다는듯 되물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임 부인이 그렇게 말했을 뿐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여관의 신원도 저는 모릅니다. 저는 그녀가 믿기지 않아서 그렇게 많은 것을 물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제가 협조하기만 하면 도망갈 때 저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신 때문에 소승까지 물고 늘어질 수 없으니 그들이 날 도와줄지 말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내가 어떻게 자백하든 간에 그들의 계획은 실행될 것이니 나에게도 기회가 있는 것이지요.” 전북망은 놀라움을 거두고 이방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은 나 때문에 진술을 바꾼 것이 아니오. 당신은 그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까 봐 나까지 연루시킨 것이오. 그러니 모든 게 나를 위해서 그런 것이라고 말하지 말고 돈을 원래 계획대로 받으시오. 그렇지 않으면 나도 당신을 도울 수 없소.” 이방은 비록 속마음을 들켰지만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고 말했다. “이 모든 건 당신이 나에게 빚진 것입니다. 전북망, 천하엔 공짜가 없듯이 당신이 나를 건드렸으니 나에게 책임을 져야 합니다.” 전북망은 마음이 얼음장같이 차가워졌다. “내가 먼저 당신을 건드렸단 것이오? 그리고 내가 당신을 책임지지 않았소? 남강 전장에서 당신이 포로로 잡혀갔을 때 난 몇 번이고 송석석의 명령을 어기고 당신을 구하러 갔소. 당신이 맞을 때도 내가 대신 맞지 않았소? 사람이 어떻게 이 정도로 염치가 없을 수 있소?” 하지만 이방은 여전히 차갑게 말할 뿐이었다. “옛날 일 들출 필요 없습니다. 이 모든 건 당신이 초래한 일이지
이방은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를 살짝 떨었다. 그녀는 확실히 모아둔 돈이 있었다. 집안을 누가 책임지든 그녀는 늘 돈을 챙겼고 혼수로 받은 돈도 챙겼다. 어떻게 집안에 모두 줄 수 있겠는가?적은 혼수에 돈도 주지 않는다면 그녀도 절대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녀는 모아둔 돈을 이후에 쓰려고 했다."제 돈은 모두 챙기십시오. 하지만 그래도 돈을 빌려야 합니다. 도망친 후 혈혈단신으로 돈도 없이 길거리에 나앉을 수도 없지 않습니까?"전북망은 일단 돈 얘기부터 꺼냈다. 만약 바로 묻는다면 추궁을 듣고 이방이 의심할 수도 있었다. "얼마가 있소? 조금 남기고 먼저 사람을 찾아야겠소. 정 부족하면 그때 다시 빌리는 것이 나을 것 같소."이방이 곰곰이 생각했다. 돈을 쓰지 않고 왕청여에게 빌려도 아마 많이 빌리지는 못할 것이다. 그는 비록 백부 출신이지만 매우 인색한 사람이기 때문이다.이삼천냥은 있습니다. 하지만 천 냥만 가져다 쓰십시오."전북망은 이천 냥을 달라고 했고, 두 사람은 계속 흥정을 하다가 결국 천오백 냥으로 결정을 내렸다. 돈 얘기를 끝내고 전북망은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무슨 계략을 쓰려는 것인지 물었다. 말하지 않으면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앞날과 목숨을 거는 중요한 일이니, 자신감이 없으면 동의할 수 없었다.그러자 이방은 그를 한참 빤히 보다가 물었다."장군. 설마 저를 배신하려는 건 아니시지요?"전북망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흥정으로 가득했다. 그는 영리한 편이 아니었고 심지어 반응도 둔한 편이었다. 한바탕 흥정을 하고 나니, 그는 정말 그녀를 위해 계획하고 있다고 믿은 듯했다.그녀가 그렇게 묻자, 그는 경악하며 고개를 돌리면서 분노와 억울함으로 가득 찬 말투로 화를 냈다. "지금 뭐라 한 것이오?! 나를 믿지 않으면 어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맡기는 것이오? 목숨을 바쳤는데, 나를 의심하는 것이오?"이방은 전북망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전북망에 대해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남자를 모
전북망은 무의식 중에 문 앞을 바라보았다. 일부러 하려고 한 동작이 아니라, 마음에 걱정이 많아 무슨 일을 하든 들키는 것이 제일 걱정되어 더욱 조심스러워졌다.전북망의 움츠린 모습에 이방의 경계는 조금 더 줄었다. 전북망은 맑은 물처럼 속이 훤히 보여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그날 말한 일을 돌아가서 심사숙고해 봤지만, 승산이 적다고 느꼈소. 게다가 서경 사람들이 어떻게 소 대장군을 데리고 가는지, 무슨 방법이 있는지도 알려주지 않았소. 북명왕부에서 손을 쓸지 우리가 그 기회를 이용할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오."그는 낮은 소리로 이방의 눈빛을 살짝 피하며 말했다. 어쨌든 부부 사이에 이렇게 그녀를 속이고 그녀에게서 단서를 얻으려는 것은 그녀를 팔아먹는 것이다. 그는 비록 마음이 괴로웠지만 장군부를 연루시키지 않기 위해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이방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제가 할 수 있다고 했으니, 분명 될 것입니다. 무엇을 걱정하시는 것입니까? 나가서 준비만 하시면 됩니다.""말을 참 쉽게 하오. 홀로 어찌 구한다는 말이오? 사람을 더 찾아 돈을 더 써야 할 것 아니오? 하지만 성사될지 모르는 일에 어찌 돈을 쓴다는 말이오? 돈을 아까워한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지금 장군부가 무슨 상황인지 알지 않소?"집안 처지를 말하고 나니, 전북망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사람을 찾다니요? 무슨 사람을 찾습니까? 이 일에 어찌 함부로 사람을 찾을 수 있습니까?"사람을 찾는 것은 위험이 너무 컸기에 이방은 쉽게 승낙하지 않았다. "그들이 사람을 구할 때 기회를 틈타 움직이면 되지 않습니까? 장군의 무공도 충분하니 말입니다."전북망이 말했다."나를 매정하다 탓하지 마시오. 이 일은 내가 나서서 구할 수 없소. 그저 밖에서 도울 수 있을 뿐이오. 자네를 위해 위험을 무릅쓸 수 있지만 장군부와 목숨을 버릴 순 없소."이방은 갑자기 안색을 바꾸었다."어찌 그리 모질고 매정하신 것입니까?""장군의 목숨만 중요하고, 제 목숨은 보잘것없는 것입니까?
사여묵은 평서백 부인이 도와 조사한 결과를 먼저 그에게 알려주고 확신을 내렸다."배후에 숨은 사람이 임가를 통해 이방에게 연락한 것은 확정할 수 있소. 상대는 시녀를 시켜 그녀에게 알리고 자네 어머니의 빈소에 가게 했소. 그러면 임 부인도 빈소로 가서 그녀와 따로 얘기할 기회가 있는 것이오. 임 부인과 말을 마치자마자 그들 부부는 죽임을 당했소."전북망은 깜짝 놀랐다."정말입니까?""그러면 나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소. 사온의 역모를 조사할 때, 대리사에서 임가도 조사하고 있었소. 하지만 역모에 참여했다는 증거가 없어 줄곧 건드리지 않았소. 임 부인에게 이방을 찾으라 시킨 배후가 사온의 배후기도 하고 역모의 진정한 주모자요."사여묵이 그를 보며 말을 이었다."이방은 이 사건에 연루되어서 서경으로 끌려갔소. 자네는 이방의 남편이오. 역모 사건이 조사되면 장군부가 어떤 벌을 받을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오."전북망은 입술을 살짝 떨었다. 그는 과거 황제의 곁에서 일한 적 있기에 황제가 역모 사건을 중시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로 인해 크게 화를 내신 것도 알고 있었다. 역모는 황제의 역린이다. 누구든지 역린을 건드린 자는 아무도 도망갈 수 없을 것이다."전북망. 자네는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없소. 공을 세워야 죄를 면할 수 있소."공을 세우고 죄를 묻고 면한다는 이 말들이 전북망의 심장을 조여오는 것 같았다. 그는 갑자기 호흡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숨이 막혀왔다.그때의 결정으로 인해 집안이 이런 꼴을 당했으니, 이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이를 악물을 뿐이었다. "무엇을 시키려는 것입니까? 얼마든지 분부하십시오."사여묵은 그를 보며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임 부인에게서 서경인이 누구인지 들은 적 있는지 이방에게 물으시오. 어떻게 물을지 무슨 방법을 써서 답을 얻어낼지는 자네의 능력에 달렸소."전북망은 침묵을 지키다 답했다."예!"집안사람의 목숨이 달린 이상 전북망은 반드시 갈 것이다. 답을 얻어낼지 말지는 둘째 치고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