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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4화

Author: 유애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09-06 20:00:00
경성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섣달그믐달이 다 되었다.

설날은 일 년 중에 백성들이 제일 기뻐하고 기대되는 명절이다. 집집마다 다과와 다양한 음식들을 준비해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이런 화목한 날에 연왕비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녀의 죽음은 연왕부에서조차 파문을 일으키지 못했다. 연왕 일가가 경성에 도착하여 아직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한편, 송석석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연왕 일가가 방문하여 혜 태비가 접대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시만자는 말채찍을 마차꾼에게 건네면서 이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주먹을 꽉 쥐고는 지금이라도 연왕에게 주먹을 내려치고 싶었다.

사여묵은 옆에서 미간을 찌푸리고는 혼잣말을 했다.

“외출할 때 진성에 도착하지 않은 걸 생각해 보면 아마도 방금 진성에 도착했다는 건데… 태후에게 문안을 드리지 않고 바로 북명황실을 찾는다니, 내가 연왕을 너무 얕잡아 봤군.”

송석석도 미간을 찌푸렸다.

“북명황실에 먼저 문안을 드린 것은 황제에게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상국에는 북명왕만 있고 황제는 없다는 뜻이 담겨 있지요.”

사여묵은 송석석의 슬픔을 알고 있었다. 동시에 그 일가의 사람들은 보기 싫은 마음이 클 것이라 생각했다.

“그대는 일단 매화원에서 쉬는 게 나을 듯하오. 상황은 내가 잘 살펴보겠소.”

하지만 송석석의 눈빛에 살의가 서렸다.

“아니요. 제가 직접 말씀드릴 겁니다. 연말에 부고 하나 전해 드리면 무척이나 좋아하실 겁니다.”

사여묵은 그녀의 팔목을 잡으며 걱정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이러지 마시오. 그냥 차라리 우는 게 어떻겠소.”

연왕비가 죽고 나서 송석석은 눈물을 단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었다. 돌아오는 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연왕과 장공주의 관계를 알려 주었을 때도 침착을 유지했다.

사여묵의 말에 송석석은 고개를 저었다.

‘울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지 않은가.’

울면 이미 상처 난 마음에 다시 살점을 도려내는 것과 같았다. 눈물을 흘린다 하여 가족을 잃은 아픔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니.

송석석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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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앞의 이야기꾼들을 쫓아내고 나니 또 다른 골칫거리가 생겼다.이번에는 중매쟁이들이 번갈아가며 안여옥을 위한 것이랍시고 혼담을 들고 찾아온 것이다.그들이 말하는 혼처들은 안여옥의 부모의 얼굴을 울긋불긋하게 만들 정도로 황당한 인물들이었다. 평소에는 청혼은커녕 길에서 마주치더라도 침을 뱉고 지나갔을 법한 이들이었다.집안 배경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들의 품행이 바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통방과의 사이에서 이미 서장자와 서장녀를 둔 사람이었고, 어떤 이는 매일 도박장에 들러 두 눈이 빨개지도록 돈을 탕진하면서도 자리를 떠나지 않는 자였다. 또 어떤 이는 기루의 단골 손님이거나, 바깥에 첩을 둔 사람이었다.이들은 평소라면 감히 청혼하러 올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같이 은혜라도 베풀듯 거만하게 굴며 안여옥이 자신들과 혼인하지 않으면 다른 길은 없을 것처럼 굴었다.안태부는 평생 이렇게 큰 화를 내본 적이 없었다. 그는 빗자루를 집어 들고 사람들을 쫓아냈지만, 결국 또 새로운 구설수만 만들어졌다.이 일에 대한 세간의 반응은 단 한 마디로 요약되었다.‘웃음거리.’"마치 그녀가 아직 선택할 여유가 있는 것처럼 굴지만, 누군가 그녀를 아내로 맞아주겠다고 나선 것만으로도 조상님 덕분이지.""그 더러운 남자에게 안겨 순결도 잃은 주제에 여전히 체면 따위를 챙기겠다고?""평생 시집가지 못할 팔자지. 누가 그녀를 데려가겠어? 빨리 머리 깎고 여승이나 되라지. 여자들 얼굴에 먹칠하지 말고."남자도, 여자도 가리지 않고 이런 말들을 쏟아내기 바빴다. 본인들이 당하는 일이 아니기에, 모두혀끝으로 상대를 아프게 하며 즐거워했다.이 모든 상황 속에서 가장 즐거워한 사람은 바로 제자예였다. 그녀는 원래부터 안여옥을 몹시 싫어했다. 황후가 그녀에게 안여옥을 괴롭히고 골칫거리를 만들라고 했을 때, 그녀는 이미 안여옥을 자신의 적으로 삼았다.그래서 이번에 안여옥에게 일이 터졌다는 소식을 들은 그녀는 친구 주창우를 찾아가 함께 안여옥 이야기를 하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04화

    연말이 다가오자 백성들은 설 맞이 장을 보느라 바빴다. 각 집안은 일손이 부족할 정도로 분주했다.하지만 분주한 만큼 사람들 사이의 교류도 늘어나게 되면서 온갖 소문이 무성하게 퍼졌다. 태후가 안여옥을 칭찬하며 내린 하사도 효과가 크지 않았고, 오히려 태후가 직접 칭찬한 것이 안여옥이 단순히 모욕만 당한 것이 아닐 거라는 의혹으로 이어졌다.심지어 이 의혹은 점점 사실로 되는 것 같았다.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이 방향으로 여론을 몰아가는 듯했다. 북명황실이 나서서 공정한 말을 하거나, 당시 현장에 있던 이들이 나와 안여옥이 학생들을 보호하다가 그 인간에게 잠시 몸이 닿은 것뿐이라고 해명했지만, 백성들은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백성들은 신을 만들어내기를 좋아했고, 신을 무너뜨리는 일에는 더욱 열광했다.과거 안여옥의 규수로서의 명성, 아름다운 외모와 뛰어난 재능, 훌륭한 집안 출신을 부러워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만큼 배로 그녀에게 악의를 퍼부었다.그녀의 과거까지 들춰내며 사실 그녀는 고고하고 자만하여 사람을 깔보고 학문이 부족한 동료들과는 어울리지 않았다고 말하거나, 장공주의 연회에서 사슴을 말이라 지칭하며 분명 그 그림이 심청화 선생의 작품이 아님에도 우긴 적이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돌았다. 그 당시 안태부가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에 할 수 없이 사슴을 말이라 칭했고 또 그것이 심청화 선생의 작품이라 주장했지만, 사실 현장에 있던 이들은 모두 비웃었다는 것이다. "심청화의 인장도 아니었는데, 그때 현장에 있던 사람들 중 누가 비웃지 않았겠어? 다만 체면을 봐서 들추지 않았을 뿐이지.”또한 그녀의 시와 그림이 명백히 표절이며, 이는 안태부가 그녀의 명성을 높여 북명왕과의 혼인을 성사시키기 위해 꾸민 일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러나 그 희망은 물거품이 되었고, 북명왕은 차라리 재혼한 여성을 선택할지언정 그녀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소문이 돌았다.그녀는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차선책으로 방시원에게 시집가기를 꿈꿨으나, 방시원은 어리석지 않아 그녀의 속셈을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03화

    송석석이 궁에서 돌아온지 얼마되지 않아, 시만자가 급히 들어와 그녀를 한쪽으로 데려갔다.“여학 사건 말이야, 황제와 황후의 짓인 것 같아.” 시만자의 표정은 심각했고 눈에는 은근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송석석은 뜻밖의 소리에 깜짝 놀라며 물었다.“황제와 황후? 누가 그런 말을 했어?”“장기문이. 그가 황제가 황후에게 멋대로 굴었다고 꾸짖는 소리를 들었대. 황후는 변명하며 황제도 여학을 좋아하지 않으니 네가 진성의 권력 있는 명부들을 끌어들이지 못하도록 자신이 황제의 걱정을 덜어드린 거라고 했다는 거야.”송석석은 이 말을 듣자마자 온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냉정을 잃으면 안 돼. 이 일을 장기문에게서 들었다는 걸 들키면 그의 앞날이 망가질 거야.” 시만자가 말했다.송석석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그녀도 과감한 추측을 해본 적이 없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황제를 의심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비록 황후에 대해서는 의심한 적이 있었지만 말이다.그리고 황후는 지금쯤 대황자를 위해 계략을 꾸미고 있어야 했다. 이럴 때 이렇게 세가를 적으로 돌려서 무슨 이익을 본단 말인가? 비록 이번 일이 매우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애초에 이런 일을 계획했다면 그 결과도 충분히 예측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만약 그 작업반장이 죽지 않았다면? 혹은 그 작업반장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말해버렸다면?장기문이 한 말을 잠시 생각해보니, 황제 역시 여학의 존재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다. 그는 황후가 여학을 공격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황후를 꾸짖은 이유는 여학을 공격한 행위가 아니라 그 방식 때문이었다.즉, 그가 화를 낸 건 수단 때문이지 황후의 행동 자체는 아니었던 것이다.송석석은 순간 자신의 마음이 차갑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황제의 생각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지금도 사여묵을 부려 명절에 그를 노주로 보내면서, 그는 황제임에도 정작 그녀가 서원의 훈장이 되어 세가의 명부들과 교류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더욱 받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02화

    태후는 평소 정사에 크게 관여하지 않았으나 오직 이 여학만은 특별히 신경 쓰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가 직접 명을 내려 세운 것이니 말이다.“혹시 여학에 다니는 학생들의 집안 내부에서 벌어지는 다툼일 수도 있지 않을까?”송석석이 묻자 염선생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범위가 너무 넓어지겠지요. 하지만 가능성이 없지는 않습니다.”많은 집안이 겉으로 보기엔 본처와 첩의 사이가 화목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겉모습일 뿐이었다. 첩은 아무리 귀한 첩이라도 본처 앞에서는 감히 건방진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 단,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주군이 첩을 편애해 본처의 지위가 흔들릴 때이다. 이럴 때면 본처와 첩 사이의 갈등이 극에 달하고, 온갖 더러운 수단이 동원되기도 한다.본처와 첩이 각각 딸을 두었는데, 본처의 딸은 아군여학에 들어가고 첩의 딸은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는 아군여학에 정원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첩이 본처의 딸의 명예를 망가뜨리기 위해 다른 이들까지 엮어서 함께 수치를 당하게 만드는 일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이는 인식의 한계가 상황 판단을 흐리게 하고, 심지어는 자신이 하는 일을 완벽히 감춰졌다고 믿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도 꽤 은밀히 움직이기도 했다. 그러니 입막음으로 살인까지 한 것이 아니겠는가.만약 이러한 상황일 경우엔 조사해야 할 범위가 너무나 넓어진다.송석석이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우선 경조부에게 그 작업반장을 조사하게 해야겠다. 그가 평소 어떤 사람들과 어울렸는지, 누구의 일을 봐준 적이 있는지 전부 다 알아보게 말이야. 그때 가서 상황을 좀 더 지켜보도록 하지. 그리고 여론도 안여옥을 도와줘야 하니, 내가 옷을 갈아입고 입궁해 태후께 이 일을 아뢰고 오겠다.”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덧붙였다.“죄를 씻기 위해 찾아뵙는 셈이지.”유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송석석이 입궁해 죄를 청하겠다고 하자, 혜 태비가 나서며 함께 가겠다고 말했다.“내가 함께 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01화

    그녀는 돌아오는 길에 백성들이 이미 삼삼오오 모여 오늘 아군여학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여학과 공방은 원래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이런 큰일이 터졌으니 떠들썩 하지 않을 수 없었다.더군다나 이 일은 태부의 손녀의 명예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 귀하디귀한 여인이 한 상스럽고 천한 자에게 농락당했으니, 앞으로 어느 집안의 자제가 감히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려 하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어리석다고 말했다. 고귀한 집안의 규수로서 조용히 살면 될 것을 굳이 여부자가 되겠다고 나서더니, 이제 평생을 망쳐버렸다고 말이다.송석석은 일부러 말을 천천히 몰며 백성들 입에서 안여옥이 학생을 보호했다는 칭찬의 말을 듣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그런 말은 한마디도 들을 수 없었다.그녀는 마음이 몹시 아프기 시작했다. 현갑군 지휘사를 맡게 된 이후로 그녀는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암살을 당할 뻔한 적도 있었으며 모든 일을 늘 완벽하게 해낼 수 있던 것도 아니었다. 공방 역시 수많은 난관에 부딪혔지만, 그 모든 일에도 그녀는 무너지지 않았다. 뭐든 서두르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나아질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번 일은 그녀의 정신을 송두리째 무너뜨려 버렸다. 이건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기에 그녀는 자신이 한없이 원망스러워 스스로 자책했다. ‘조금만 더 잘 대비했더라면...... 어쩌다 이렇게 경계심을 놓아버린 걸까? 사여묵이 진성을 떠난 이후 이별의 슬픔에 잠겨 마음이 흐트러져서 경계를 소홀히 했던 걸까?’그녀는 개인적인 감정에 휘둘려 발생할 수 있는 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예측했음에도 예방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황실로 돌아온 그녀는 홀로 의사당에 앉아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염선생이 급히 돌아왔다. 그 역시 이 일을 듣고 경조부에 가서 알아보았다. 왕비가 이렇게 빨리 돌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황실에 도착하니 왕비가 의사당에 쓸쓸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염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00화

    범인들은 겁에 질려 덜덜 떨고 있었으며 특히 안여옥을 침범하려고 했던 진한은 통곡하면서 부러진 다리로 무릎을 꿇은 채 송석석과 공 대인에게 애원했다.“소인이 잘못했습니다. 소인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다시는 돈 때문에 이런 짓을 저지르지 않겠습니다. 제발 한 번만 너그럽게 용서해 주십시오. 집에 아픈 아버지도 있고 셋째를 임신한 아내도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끌려가면 제 가족들은 어떡합니까?”진한은 절망스러운 목소리로 울부짖었지만 공 대인은 차갑게 명령할 뿐이었다.“끌고 가!”아무리 힘들고 괴로운 사연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건 절대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가 될 수 없었다.그렇게 잔뜩 모여 있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여학은 다시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으며 한데 둘러앉은 사람들은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홍현은 말없이 난로를 피웠고 서원 안은 순식간에 따뜻해졌다. 서원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국태 부인과 정씨 부인 그리고 무씨 아가씨와 안여옥, 송석석에 이어 홍현까지 말이다. 한편, 송석석은 이내 죄책감에서 벗어나 정신을 번쩍 차렸으며 계속 미안해하고 있기만 해서 해결될 일은 아니다. 너무 많은 명문 가문과 관직자의 딸이 연루되어 있기에 반드시 확실하게 처리하여 하루 빨리 그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유일하게 피해를 입은 안여옥도 떠나지 않고 함께 방법을 고민했다.사실 송석석은 조금 전에 사람들에게 일단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고 자신은 염 선생에게 찾아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상해를 최소한으로 낮출 수 있는지 상의해보려고 했지만 다들 끝까지 서원에 남아 있겠다고 했다.안여옥의 마음도 위로해야 할 뿐더러 어떻게든 힘을 보태서 곧 외부에 터진 소문을 막고 싶었다.이 일이 안여옥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입힐지 다들 잘 알고 있었으며 내일만 되면 안여옥에게 악언과 유언비어들이 폭우처럼 쏟아질 것이다.안여옥이 피해자라는 사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었다. 그저 그녀가 남자에게 몹쓸 짓을 당할 뻔했고 순정을 잃었다는 말만 떠돌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99화

    송석석은 속으로 너무 미안한 기분이 들었다. 며칠 동안 남풍관 일로 밤에도 외출해야 했기에 아군 서원에 신경을 많이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청화는 전에도 계속 여학을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한다고 당부했는데 송석석이 여학에 사람 몇 명만 더 보냈어도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경조부의 공 대인이 직접 현장에 출동한 걸 보면 경조부에서는 이 일을 매우 중시한다는 뜻이다.총 여섯 명의 범인은 전부 밧줄에 묶여 있었고, 뺨 몇 대를 때리자 안여옥을 침범하려고 했던 남자를 제외하고는 다들 정신을 번쩍 차리고 사실대로 순순히 자백했다.범인 여섯 명은 부둣가에서 막노동을 하는 사람들이었고 매일 무거운 물건을 나르면서 돈을 벌었지만 한 달 내내 쉬지 않고 일을 해도 푼돈밖에 받지 못했다.어젯밤, 부둣가 주인장이 작은 술자리를 마련했고 아홉 명이서 둘러 앉아 술을 마셨으며 그러던 중, 누군가가 그들에게 맡길 일이 있다고 하면서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인당 50냥을 줄 수 있다고 했다.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아군 여학에 쳐들어가 난동을 부리는 것이며 딱히 할 것도 없이 그저 여학생들에게 겁만 주고 뒷문으로 빠져나가면 된다고 했다.매일 부둣가에서 일하고 있는 남자들도 마냥 순진하지는 않았기에 이렇게 쉬운 일을 하고 많은 돈을 준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50냥이란 그들이 하루도 쉬지 않고 2년을 넘게 무거운 물건을 날라야 벌 수 있는 돈인데 여학에 쳐들어가는 것만으로 그 큰돈을 준다고 하니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그들 중에서 두 명은 거절했고 부둣가 주인도 당연히 거절했으며 나머지 여섯 명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동의했다.그렇게 하룻밤이 흘렀고 여학으로 쳐들어오기 전에 부둣가 주인은 그들에게 술 한 잔씩 먹였으며 절대 긴장하지 말라고 그들을 다독였다.그들 중에는 진한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평소에도 겁이 제일 많았기에 불안한 마음에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아버지가 병상에 누워있고, 아내는 셋째를 임신한 상태라 진한은 돈이 매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98화

    송석석은 차분하게 질서를 잘 정돈한 뒤, 학생들과 부모님들을 저택으로 돌려보냈고 비밀을 지켜달라는 얘기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일은 언젠가 소문이 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그러고는 홍현에게 청작과 경조부의 사람을 불러오라고 했다.이 범인은 약을 먹은 게 확실하기에 반드시 매달아서 심문해야 하며 청작을 통해 무슨 약을 먹었는지 확실하게 알아내야 한다.한편, 도망친 범인들도 오진에게 전부 잡혀왔고 그들은 묶여 있는 중년 남성보다 정신이 훨씬 멀쩡해 보였지만 송석석과 홍현을 쳐다보는 눈빛은 여전히 야릇하고 이글거렸다.송석석은 안여옥을 살포시 안아주었고, 이제서야 평정심을 되찾은 안여옥이 되레 송석석을 위로했다.“괜찮아요. 저 괜찮습니다.”“왜 그런 말을 했어요? 선생님은 지금 자신을 망가트린 거라고요.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요?”국태 부인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얼굴이 창백한 안여옥은 가까스로 미소를 지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국태 부인께서 제 걱정을 이리 하시니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 애초부터 혼인할 생각이 없었고 저에게 있어서 명성은 그저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이제 그 짐을 벗어 던졌으니 차라리 잘 된 일이지요.”“그렇지만 모든 화를 혼자서 떠안겠다고 하시니… 사람들이 선생님을 어찌 얘기하고 다닐지 걱정됩니다. 선생님 조부께도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국태 부인은 안씨 어르신과 오랜 인연을 이어왔다. 이번에 안여옥을 여학 선생으로 데리고 올 때에도 안여옥을 잘 보살피겠다고 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안 그래도 몸이 허약하신 안씨 어르신이 이 얘기를 들으면 충격에 쓰러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다들 안여옥을 위로하기 바빴고 안여옥은 많은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쳤다는 생각에 얼른 웃으면서 말했다.“전 정말 괜찮습니다. 그리 큰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이 살면서 더한 일도 경험하게 될 텐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안여옥은 연신 괜찮다고 했지만 사람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97화

    이때, 송석석이 서원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조금 전 밖에 있을 때부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있었다.송석석이 나타나자 부인들은 우르르 몰려가 송석석에게 이제 어떻게 해야 하냐고 닥달했다. 감히 대놓고 따져 묻지는 못했지만 송석석에게 합리적인 설명을 내놓으라는 뜻으로 말하고 있었다.송석석은 겉으로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분통이 터졌다. 여학 마지막 날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오늘 서원 대문이 열려 있었던 이유는 학생들과 데리러 온 가문 사람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나올 때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인데 범인들이 이 틈을 노리고 학교 안으로 들이닥칠 줄은 몰랐다.이 일은 분명 여학을 겨냥해서 벌인 일이었다.“이 일은 제가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송석석의 말에 부모들이 너도나도 한 마디씩 보탰다.“왕비님,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실 겁니까?”“그러게요.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고 쳐다보는 눈이 이렇게 많은데 이 많은 입들을 다 단속할 수 있습니까? 소문이 이상하게 퍼지면 없는 사실도 있는 일처럼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여학에 호위병을 좀 많이 세워둬야 하는 거 아닙니까?”한편, 안여옥은 송석석이 궁지로 몰리자 얼른 눈물을 닦은 뒤, 벌떡 일어나 큰소리로 말했다.“여러분, 걱정하시 마십시오. 한 명도 다친 학생이 없습니다. 저 범인은 그저 저를 잠깐 껴안았을 뿐이지 다른 학생을 해치지 못했습니다.”안여옥의 말에 현장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다들 안여옥이 이 일을 이렇게 대놓고 얘기할 줄은 몰랐다.범인이 안여옥을 껴안은 게 사실이라고 해도 이를 숨겨야 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얘기한단 말인가?그러다가 소문이라도 나면 안여옥은 평생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살게 될 수도 있다.이때, 정신을 번쩍 차린 국태 부인이 다급하게 부인했다.“선생님은 범인에게 당하지 않았습니다. 함부로 그런 얘기하지 마세요. 범인은 선생님에게 손을 댈 기회가 없었습니다.”하지만 안여옥은 국태 부인의 말을 따르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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