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124화

작가: 유애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42:56
전북망의 안색이 변했다.

“산에 있는 걸 어떻게 알았소? 뭘 갚아준다는 거요?”

송석석은 걸음을 옮겼다. 전북망이 절뚝거리며 그녀를 따라갔다. 그렇게 송석석이 멈춰 설 때까지 그녀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바람 소리 때문에 그녀의 목소리가 매우 낮게 들렸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귀를 기울이세요. 바람 소리 외의 다른 것이 들릴 겁니다.”

전북망은 마음을 진정하고 경청했지만 바람 소리 외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송석석보다 무공이 약하고 내공도 부족하고, 바람 소리가 이리도 큰데 1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숨결을 전북망이 들을 리가 없었다.

그는 송석석이 자기를 놀린다고 여겼다. 그래서 울화가 치밀었다.

“말씀하시오, 도대체 뭘 되찾는다는 거요?”

“생각해 보세요. 10만 명의 병사들이 왜 산에서 철수하지 않을까요? 왜 이 장군을 잡았을까요? 평화 협정을 체결한 뒤, 협정을 어기면서 남강에 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말을 마친 송석석은 몸을 돌려 떠났다.

전북망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석양이 구릿빛 피부의 전북망을 비췄다. 아름다운 얼굴선이 도드라졌다. 전북망은 조각처럼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송석석은 이미 두 번이나 암시했다.

그는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믿기지 않았던 전북망은 성큼성큼 송석석을 따라갔다. 그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두 사람 사이엔 사내 문제밖에 없잖소. 그래서 이방을 위험에 빠뜨린 거잖소. 당신은 정말 끔찍하게 지독한 사람이오.”

전북망의 말을 들은 시만자가 허리춤에서 채찍을 꺼내려는 순간, 송석석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렸다.

“신경 쓰지 마. 우리가 먼저 거리를 두자.”

시만자는 채찍질로 분풀이를 풀려고 했으나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그래, 네 말이 옳아. 똥이 무서워서 피해? 더러워서 피하지.”

전북망이 아무리 화를 내봤자 그들은 어떤 타격도 받지 않았고 도리어 그를 무시했다.

그들은 입에 담기도 험한 말들로 전북망에게 모욕감을 줬다.

한편, 오두막에 갇힌
잠긴 챕터
앱에서 이 책을 계속 읽으세요.

관련 챕터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5화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전군 하산을 했다.그들이 움직이자마자 송석석과 시만자가 눈빛을 주고받았다.송석석이 자리에서 일어서 명을 내렸다. “전군은 경비태세를 갖춘다! 무기를 절대 놓으면 안 된다!”현갑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패와 무기를 들었다. 그들은 신속하게 대열을 맞춰 섰다.서경 병사들의 행군 속도는 아주 빨랐다. 산에서 내려온 그들은 세 줄로 서서 이동했다.맨 앞에 선 사람은 손에 횃불을 들고 있었다. 열 명씩 간격을 두고 횃불을 들고 있었다. 덕분에 다른 병사들도 쉽게 행진할 수 있었다. 산길은 얼음 때문에 빨리 걸을수록 미끄러지기 쉬웠다. 나란히 줄지어 걷는 행군에서 한 명이 넘어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앞줄과 뒷줄로 가기 마련이었다.그럼에도 아주 빠르게 행군할 수 있었던 것은 신발이 특수 재질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서경은 경제가 활발해 재력이 좋았다.서경인들과 대규모적인 전쟁을 하면 상국인들인 어떤 이득도 보지 못할 것이다. 곧 10만 명의 서경 병사들은 초원에서 현갑군과 대치하게 되었다.그러나 누구도 먼저 나서지 않았다.전북망이 고함을 치며 달려들었다. “이 장군은 어디에 있소?”수란키가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양측의 제일 앞줄은 10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전북망은 현갑군의 앞에 달려갔다. 그러나 수란키에게 직접 따지지는 못했다.수란키는 전북망을 힐끗 쳐다보더니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의 시선이 송석석에게 닿았고, 눈빛이 매우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송 장군, 단둘이 얘기할 수 있겠소?” 수란키가 물었다.송석석이 도화창을 잡으며 말했다. “네.”수란키는 그녀의 손에 들린 도화창을 힐끗 쳐다보더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무기는 두시죠. 정 걱정이 되면 호위병을 한 명 데리고 가시죠. 전 혼자 가겠습니다.”시만자가 끼어들었다. “내가 갈게.”송석석은 도리어 전북망을 바라보았다. “장군, 같이 가시죠.”전북망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는 얼떨떨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전북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6화

    수란키의 차가운 눈빛에 전북망은 등골이 서늘했다. 자기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수란키도 그와는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송석석을 바라보며 복잡한 얼굴을 했다.“송 장군, 서경 정탐꾼이 장군의 가문을 몰살하라는 명령을 내린 건 내가 아니오. 그들이 녹분성의 여러 마을이 이방이 이끈 군대에 의해 학살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정탄꾼의 우두머리가 직접 내린 명령이오. 서경의 폐하께서 국경의 문제 때문에 양국의 백성을 학살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확고한 뜻을 밝혔소. 물론 그쪽 무장이 협정을 어기고 학살을 했으나 서경 정탐꾼도 잘한 게 없다는 걸 잘 아오 그래서 내가 대신 송 장군에게 사죄하고 싶소.”옆에서 듣고 있던 전북망은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것이오?”수란키는 그를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 “폐하와 공신들은 송회안 원수님을 매우 존경했소. 일찍이 군을 이끌고 서경 전쟁을 했으나 양국의 협정을 엄격히 준수하며 나라의 백성을 해치지 않으셨지요. 전쟁을 벌일 때마다 국경선을 엄격히 지키셨오. 그래서 송씨 가문의 참사에 저도 큰 죄책감을 느꼈소. 서경이 송씨 가문에 큰 빚을 진 거요.”잠시 침묵하던 수란키가 말을 이었다. “오직 송씨 가문에 진 빚이란 말이오.”그는 끝까지 서경 태자가 이방에게 모욕을 당해 자살을 했다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다만 이방이 민가를 침입해 백성을 학살한 것만 문제로 삶았다.서경인은 상국에 빚을 진 게 아니었다. 서경인은 송씨 가문에 빚을 진 것이다.이방은 무장의 신분으로, 병사의 신분으로 녹분성의 백성을 죽였다.그러나 송씨 가문 역시 남녀노소 불문하고 전부 죽임을 당했다. 수란키는 서경의 황자가 이방에게 잔인한 학대를 당한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송씨 가문과 연관된 모든 사람이 죽임을 당한 것 역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수란키는 송석석에게 뒤늦은 사과라도 했으나, 그들의 황자는 이방의 사과를 받기도 전에 떠났다.남강 전쟁에서 상국 병사를 죽인 것을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7화

    수란키와 3황자가 10만 명의 서경 병사들을 이끌고 떠났다. 송석석이 전북망에게 말했다.“이 장군을 구하고 싶으면 심복(心腹)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세요.”혼자 가라고 하는 이유는 이방에게 최소한 체면을 지켜주기 위해서다. 서경 태자가 당했던 수치를 그들이 그대로 겪었다면 눈 뜨고 볼 수 없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송석석의 배려다.그러나 전북망은 산에 남아있을 서경 병사들이 걱정돼 현갑군을 같이 데려갈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송석석이 전북망을 잠시 쳐다봤다. “진심입니까?”전북망은 그녀의 눈빛이 가슴이 떨렸다. “이방이 백성을 학살한 게 사실이오?”“수란키 장군에게 왜 안 묻고...” 송석석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 장군을 직접 만나서 물으세요. 수란키 장군이 이 장군을 죽이진 않았을 겁니다.”전북망은 이방이 그런 일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그는 수란키가 한 말을 곱씹었다. 모욕과 학살에 관한 얘기는 잠깐 했고 나머지 대화는 송석석에 대한 사과뿐이었다.만약 이방이 마을 사람을 학살한 게 사실이라면 송씨 가문의 멸문에 이방이 간적접으로 관여한 것이다. 이방은 송서석의 가족을 죽이고 송석석의 지아비를 빼앗았다.전북망은 가슴이 꽉 막히는 것 같았다. 무거운 돌덩이가 가슴 한 켠을 꾸욱 짓누르는 것 같아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믿을 수 없어, 직접 물어볼 거야.’“수란키 장군의 말을 전부 믿을 수 없소. 송 장군이 나랑 같이 가주시게. 이방이 인정하면...”전북망의 얼굴이 점점 굳었다. ‘이방이 인정하면 어떻게 하지? 내가 뭘 할 수 있지?’돌이킬 수 없는 잘못이고 되찾을 수 없는 목숨이다.송석석은 잠시 고민하더니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전북망은 수란키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서경인이 산에서 매복하고 빈틈을 노릴 수 있었기에 현갑군도 동행하게 했다.그는 포로들의 상황을 알지 못했다. 기껏해야 몇 대 얻어맞았을 거라고 짐작했다.그래서 아무것도 모른 채 현갑군까지 대동해 산에 올랐다.그러나 송석석은 아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8화

    이방은 정신을 잃었다. 그녀는 수란키에게 목을 졸렸다. 생사를 오갔고 몸, 얼굴, 귀가 한 조각씩 잘려있었다. 그래서 전북망의 품에 안겼을 때, 이방은 구조되었다는 안도감에 겨우 붙잡고 있던 정신을 놓았다.그러나 전북망은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이렇게 그녀를 안고 나가면 그녀가 바지를 입고 있지 않다는 걸 모두에게 보여주기 때문이다.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그녀의 다리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봤다.그녀가 어떤 수모를 당했는지 분명 알고 있었다.얼굴이 파랗게 질린 전북망은 그제야 송석석이 두 차례 확인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에게 심복 한 명만 데리고 가라고 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송석석에게 화가 난 전북망은 밖으로 나가며 송석석을 흘겨봤다. 이방이 직접 입을 열기 전까지 그는 수란키의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이방과 송석석 사이에서 발생했던 일을 믿고 싶지 않았다.송석석은 전북망이 겁먹은 것을 눈치챘다. 그래서 전북망의 의견을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가 다른 포로들을 구하라고 명을 내렸다.안에 있는 포로들을 구하기 위해 병사들이 들어갔다. 오두막에는 횃불을 켠듯한 흔적이 있긴 했으나 서경인들은 하산을 하기 전 그것들을 전부 꺼버렸다.그들은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그럼에도 얼어 죽지 않은 것은 오두막의 온기가 그들의 목숨줄을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어떤 병사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솜옷을 벗어 포로들에게 입힌 뒤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시몬으로 돌아가 군의관을 청했다. 전북망은 직접 이방에게 탕약을 먹였다. 악취 나는 그녀의 몸을 씻기고 입안의 똥을 조금씩 퍼냈다. 그 과정에 몇 번이나 구역질했는지 모른다.그리고 다리 사이의 상처를 감히 자세히 들여다볼 수 없었던 그는 눈을 돌리고 약가루를 마구 뿌렸다. 그곳을 제외한 다른 상처들은 세심하게 치료했다. 그녀의 얼굴에 새겨진 천할 '천(賤)'자는 불에 달궈진 쇠로 지져서 없앴다.그녀의 얼굴을 절반 흉측하게 만들지언정, 글자는 남기고 싶지 않았다.이방은 상처를 치료받으며 정신을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29화

    그는 낯선 사람을 보는 듯 이방을 바라보았다.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그가 사랑하던 이방과 다른 사람 같았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악귀처럼 보였다.그는 오롯이 이방을 위해 자신의 모든 전공을 포기하고, 송석석을 저버렸다.세상에서 가장 멍청했다.여자는 집에서 집안일을 하는 게 아니라 나가서 가정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는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 시절 대의를 논하던 이방의 눈에는 지금과 달리 총기가 있었다.허탈해진 전북망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우는지, 웃는지 알 수 없는 감정으로 미친 듯이 폭소했다.깜짝 놀란 이방은 전북망의 몸을 잡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장군님... 왜 이러세요? 무섭게 왜 이래요.”전북망의 눈에서 눈물이 또르르 떨어졌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뒤,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흘렸다. 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흘러나왔다.한참이 지났을까, 전북망은 얼굴을 가렸던 두 손을 내리고 이방을 살벌하게 노려봤다. “송 장군 일가를 몰살하고 포로를 괴롭히고 마을의 백성을 학살한 게 당신이었군.”이방은 그의 눈빛에 놀라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서경인들이 죽인 겁니다. 저랑 상관없어요.”“왜 이런 사람이 되었소? 언제부터 이리 잔인해진 것이오? 무고한 백성을 왜 죽인 거요?”이방은 여전히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다. “서경 무장이 민가에 숨어 있었고, 그를 찾기 위해... 장군님, 왜 절 잔인하게 여기세요? 마을 사람들을 죽인 건 사실이지만, 그 마을 사람들도 서경의 백성입니다.”“양국은 교전 중 백성이나 포로를 죽이지 않소.” 전북망은 핏기가 보이는 눈빛으로 이를 악물었다. “이건 우리와 서경이 맺은 협정이오. 성릉관 전쟁 전에 내가 수차례 말했고 당신도 알겠다고 했잖소.” 전북망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마에 핏줄이 튀어나왔다. “말해보시오, 왜 지키지 않았는지. 포로를 학살한 것뿐만 아니라 민가의 백성까지 학살했소. 사람이긴 하오?”무섭게 다그치는 그의 모습에 이방은 깜짝 놀랐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0화

    전북망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이방은 초조해서 해명했다. “절 때렸지만 절대 유린을 하지 않았어요. 맹세코 절대 그런 일 없었어요. 믿기지 않으면 그들에게 물어보세요.”전북망의 얼굴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뭐라고 물어야 하오? 부끄럽지도 않소?”“절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전북망이 허탈하게 웃었다. “어떻게 믿겠소? 내게 한 말 중에 진실이 있긴 하오? 성릉관에 대해 물었을 때, 북명왕이 전쟁터로 직접 출두한다는 거짓말로 평화협정을 체결했다고 하지 않았소? 그래서 수란키가 철수를 했다고? 이렇게 큰일도 내게 숨겼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을 믿을 수 있겠소?”“제가 말하지 않은 건 장군께서 싫어하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이방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눈을 굴리며 변명을 했다. “장군께서 양국의 백성을 절대 해치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그들이 민가에 숨어든 게 확실한 상황에서 포기할 수 없잖아요? 녹분성에 온 이상, 반드시 수확이 있어야 합니다. 전 그저 마을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서경인들이 죽인 병사들 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전북망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우리가 녹분성에 왜 갔소?”“양식 창고에 불을 지르기 위해서요.” 이방이 말했다.“내가 양식 창고에 불을 지르러 가면 후방 지원을 맡아달라고 말하지 않았소? 그런데 그 젊은 장수를 왜 쫓아간 것이오? 우리가 양식 창고에 불을 지르는 사이 서경 병사들이 나타나면 어떻게 될지는 생각지도 않은 것이오?”“하지만 제가 공을 세웠잖아요.” 이방은 얼굴에서 느껴지는 통증 때문에 더는 그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 “됐습니다. 장군님과 전 생각이 다릅니다. 제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것처럼 저도 장군님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 얘기는 하면 할수록 서로에게 상처만 줍니다. 그런 일로 부부 사이의 감정을 상하게 할 필요 있나요? 이 얘기 그만 해요.”전북망은 그녀에게 실망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지적을 했지만, 그녀는 서경 백성의 목숨을 전혀 아까워하지 않았다.더는 그녀와 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1화

    송석석은 그릇을 들고 국물을 들이켰다.털털한 모습에 사여묵은 눈썹을 들썩이며 키득거렸다.“그나저나 서경 태자가 녹분성에 왜 왔어요?” 서경 태자는 현명하고 용맹하며 백성들의 사랑을 받기로 유명했다.그런 사람이 녹분성에 나타났으니, 송석석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하물며 태자는 무장이 아니다. 직접 전쟁에 나올 만큼 싸움 실력이 훌륭하지 않다는 뜻이다.여러모로 태자의 행보는 수상했다.“서경 황실에 내란이 일어났고 2황자가 꾸민 모략에 의해 어쩔 수없이 전쟁에 나오게 됐소. 수란키는 태자를 위험천만한 곳에 차마 보낼 수 없어 안전한 녹분성에서 몸을 피신하게 했지. 헌데 그곳에서 이방을 마주치게 될 줄이야…”“2황자가요?” 송석석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태자가 죽었으니 남은 황자들끼리 자리 쟁탈을 하겠네요. 2황자가 차기 태자로 선발되면 결코 우리에게 우호적이지 않을 거예요.”서경의 2황자는 상국을 향한 적대감과 악의로 가득 차 있었다.송석석은 2황자가 서경의 다음 태자가 될까 봐 걱정이 되었다.“수란키는 3황자쪽에 섰소. 3황자와 돌아가신 태자는 태황후의 뱃속에서 태어난 친형제이기에 명분이 확실하오. 그러나 3황자는 아직 태자가 될 정도로 뛰어나지 않소. 황제도 병세가 심해져 오래는 버티지 못할 것 같소만...”송석석은 그제야 태자의 신분으로 위험한 전쟁에 나온 상황이 이해되었다.“2황자와 수란키에게 이번 기회는 전환점이 되겠군요. 그들은 태자의 복수를 한 뒤 신속히 철수하여 내란에 맞설 생각으로 여기 온 거였어요. 그간 태자의 죽음을 백성들에게 알리지 않은 게 바로 명분을 만드는 것 때문이었네요. 이제 서경으로 돌아가 태자의 부고를 온 세상에 알리고 자신들이 추대한 3황자가 친형인 태자의 복수를 한 사실을 알려 민심을 달래고 3황자의 입지를 굳건히 만드는 게 수란키의 계획이었네요.”“무수한 이유들 중 하나겠지오. 한 나라의 내정을 우리가 어찌 다 파악하겠소? 서경 같은 대국은 더 복잡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사여묵의 말에 그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32화

    남강을 수복했다는 승전보가 진성 곳곳에 퍼졌다. 승전보를 들은 황제는 눈물을 주룩 흘렸다. 황제는 만조 문무를 향해 무릎을 꿇고 만세를 외쳤다.온 나라가 흥에 겨워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어느 나라나 그러하듯, 마을에는 황실이나 민간의 소문을 전하는 설화 선생이 존재한다. 진성의 설화 선생도 인맥이 넓었다. 벼슬아치 댁에서 일하고 있는 몸종들은 설화 선생에게 이러저러한 소식들을 팔아넘겼다.이번에도 사람들은 공을 세운 게 북명왕, 사여묵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리와 시몬을 수복한 여장군이 있다는 소문도 순식간에 퍼졌다. 그녀가 현갑군을 이끌고 파죽지세를 모아 사국인을 내쫓았다는 것도 모두가 알게 되었다.설화 선생은 영웅 서사를 가장 좋아했다. 이번에도 송석석을 천하의 여전사로 만들어 이야기를 팔았다.고난 속에서 사여묵 휘하의 여전사가 용맹스럽고 지혜롭게 적군 수장의 목을 베냈다는 소문은 진성 곳곳에 퍼졌다.설화 선생의 이야기에 따르면 여전사는 아주 위험하고 위태로운 상황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평범하고 지루한 삶을 사는 백성에게 영웅 이야기는 언제나 인기가 있었다. 다방(茶房)이나 주막(酒館), 시장 거리, 백성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이 여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었다.그러나 아무도 이 여장군의 출신 배경을 알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여장군을 이방으로 추측했다. 이방은 일찍이 성릉관에서 공을 세웠고 전북망과 함께 원군을 데리고 전쟁에 나갔기 때문이다.현갑군을 이끌고 성을 무너뜨린 여장군은 이방이라는 소문이 사람들 사이에서 퍼졌다.그러나 명문 세가나 정5품의 관료들은 이런 민간설화를 믿지 않았다.다방이나 주막에서 나온 소리 중 절반은 과장되었거나 왜곡된 것이기 때문이다.그럼에도 장군부의 사람들은 사실 여부가 확실하지 않은 헛소문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들은 이방이 큰 공을 세운 줄 알았다.전북망의 어머니, 김순희는 아들 내외가 출정한 뒤로 줄곧 염불을 올리며 그들이 군공을 세워 금의 귀환하기를 바랐다. 바람대로 아들 내

최신 챕터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981화

    향병의 행동에 장공주는 결심을 더욱 굳히고 그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고는 겉옷을 걸친 채로 의자에 앉아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내일 오후에 다시 협상을 재개할 것이니, 조건은 협상 가능하도록 하지요. 너무 고집부릴 필요는 없습니다.”수란석은 눈을 크게 뜨며 반발했다. “협상이라? 어떻게 협상한단 말이오? 설마 그들이 국경을 물러서라고 해도 그걸 가만히 받아들이란 말이오?”장공주는 이미 결심이 선 듯 단호하게 말했다. “국경 문제는 일단 보류할 것입니다. 내일이나 모레 협정을 체결하고 즉시 귀국하는 것이 목표지요.”“그건 안 되오…” 수란석이 강하게 반발하자 장공주는 그를 냉랭한 눈빛으로 노려보았다.“의견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내 결정이니 불만이 있어도 모두 삼가세요.”수란석은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는 소리쳤다. “이건 독단이오! 국경 문제를 보류하면 황제와 조정의 문무백관들, 그리고 백성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이오?”장공주는 위엄 있는 눈빛으로 그를 단숨에 제압했다. “설명은 내가 하면 되지 수 상서가 할 일이 아닙니다.” 그녀는 조정을 오랜 시간 이끌어온 인물로서 항상 권위와 기세가 넘쳤다. “당장 나가서 초안을 다시 작성하고 상국에 더 많은 보상을 요구하는 대신 국경 문제는 제외하십시오. 그리고 2년 후에 이 문제로 다시 협상하는 것으로 하지요. 나는 협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습니다.”수란석은 이를 악물며 불만을 드러냈다. “나약하오, 정말 나약하오!” 그는 장공주가 서둘러 귀국하려는 이유를 알고 있었기에 속으로 향병을 원망했다. “난 동의할 수 없소. 국경 문제는 분명히 해야 하오.”장공주는 화가 나 향로를 내던지며 강하게 명령했다. “당장 나가서 다시 작성하십시오.”한편, 북명황실의 의논 자리에서는 새로운 국면이 펼쳐졌다. 단신의는 정좌에 앉았고 무소위조차도 그 옆에 앉아 있었다. 만종문의 구성원들은 세력을 등에 업고 몸을 꼿꼿이 세우며 잘난 척했다.그러자 단신의가 설명했다. “이번에 사용된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980화

    향병은 뺨을 맞은 얼굴을 가린채 억울함과 분노를 모두 토해냈다. “장공주님. 태자 전하께서 얼마나 비참하게 사망하셨는지 잊으셨습니까? 그건 우리 서경 백성들의 영원한 고통인데 어찌 원수를 갚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태자 전하는 장공주님의 친동생이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모진 선택을 할 수가 있습니까?” 장공주가 움켜쥔 손바닥은 젖어 있었고 불빛에 비친 그녀의 창백한 얼굴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너는 내가 그를 위해 복수를 하지 않으려고 전쟁을 반대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장공주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더니 눈빛에 노기로 가득 찼다. 그녀는 아직 허약하지만 손을 뻗어 향병을 가리키며 말했다. “향병, 다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이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난 내 모든 계획과 절차를 너에게 말했고, 내가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느냐? 나를 가장 잘 알아야 하는 사람이 복수에 눈이 멀어 정세를 조금도 파악하지 않다니. 넌 경역에게 충성을 다했으니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거라. 그가 지금 상국과 전쟁이 일어나기를 바라겠느냐?” 그러자 향병이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복수를 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저도 지금 내우외환의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식량 30만 석과 소성을 요구하시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승리할 수 있으니까요. 장공주님, 저희는 지금 승리로 하늘에 계신 태자를 위로해야 합니다.” 장공주는 오열하는 향병을 보며 말할 수 없는 분노와 침통함을 느꼈다.그녀는 안운여와 곽아정을 올려다보더니 말했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희도 향병의 말에 동의하느냐? 뒤에서 나를 모해할 생각 하지 말고 이 참에 다 말하거라.” 곽아정과 안운여는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 “장공주님, 동의할 수 없습니다.” 향병은 고개를 돌려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안운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안운여, 너도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이냐? 넌 전하의 보살핌을 잊었느냐? 복수할 생각이 전혀 없다니.”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979화

    단신의는 독충을 가져가지 않고 향로 안에 남겨두었는데 독충은 약의 피비린내를 탐내 평생 안에 있을 수 있지만 몸에서 꺼낸 독충은 오래 살 수 없었다. 그래서 단신의가 말했다. “바로 향로 안에 있으니 가져가서 장공주께 보여드리거라.” 독충은 작지만 무서운 존재라 금태의는 손을 뻗었다가 허공에서 멈추고 물었다. “이 독충이 다시 인체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까?” 평무종은 금태의가 감히 들지 못하는 것을 보고 다가가 향로를 들고 뚜껑을 열어 장공주에게 가져가 보여주었다. 독충을 본 장공주는 헛구역질을 하며 토할 뻔했다. 그녀는 한참동안 눈을 감고 있어서야 토하고 싶은 마음을 겨우 참았다. “반 시간을 넘기지 못하고 독충은 죽을 것이오. 독충이 몸에서 나오면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소.” 그러자 장공주는 다시 한번 감사의 의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송석석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사람들을 데리고 떠났다. “그러니 결국엔 누군가가 독을 탔다는 것이겠지?” 수란석도 참지 못하고 화를 내며 물었다. “자백할지 본관이 직접 조사할 때까지 기다릴지 결정하거라.” 장공주는 답답한 가슴을 누르며 힘없이 말했다. “작은 외삼촌, 먼저 나가십시오. 향병, 운여, 곽아정만 남고 모두 나가거라.” 그러자 수란석이 말했다. “냉옥아, 무리하지 말고 독을 탄 사람부터 밝혀내거라. 감히 네 목숨을 해치려 하다니 간덩이가 부었지.”그러자 냉옥이 손을 흔들며 말했다. “먼저 나가십시오. 채희야, 사람들을 배웅해드리거라.” 채희가 그들에게 나가라고 청하자 수란석는 채희를 보고 다시 향병을 보더니 역시 향병의 혐의가 가장 크다고 생각했다. “그래, 물어보고 못 찾으면 내가 직접 심문하러 가겠다.” 수란석은 말을 마치자마자 사람들을 데리고 나갔다. 장공주는 채희에게 등잔을 두 개 더 켜라고 분부했다. 등불이 그녀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자 방금 이상할 정도로 붉었던 윤기는 물러가고 눈엔 피로밖에 남지 않았다. 장공주는 억지로 정신을 차리고 침대에 앉았다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978화

    총 네 마리의 선충이 있었는데 마지막 두 마리의 선은 색깔이 조금 달랐다. 피를 빨아서인지 앞부분은 붉은색을 띠었고, 뒷부분은 옅은 붉은색이었다. 이때 단신의는 담담하게 말했다. “만약 네 마리의 선충이 모두 피를 빨아들였다면 장공주는 살 수 없었을 것이오.” 그가 향로를 한쪽에 놓자 사람들은 모두 한 발짝씩 물러섰다. 그들은 본 적이 없는 선충에 겁을 잔뜩 먹었다. 송석석과 시만자는 서로 바라보더니 구역질이 나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향병은 놀라서 거의 서 있지 못하고 한 손으로 탁자를 받치고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떨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단신의는 담담하게 말했다. “조금 있으면 장공주가 깨어날 것이오. 금태의, 당신은 지금 가서 자공주가 아직 혈맥이 막혔는지 맥을 짚어보오.” 수란석은 멍하니 보고 있다가 금태의를 밀며 말했다. “가서 맥 짚어보거라.” 금태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맥을 짚어보더니 한참 후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심호흡을 했다. “이럴 수가? 맥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독충이 이렇게 많이 나온 걸 보면 변한 게 당연합니다.” 안운여는 침대 옆에 앉아 채희에게 따뜻한 물을 준비하라고 분부하고는 잠시 후 장공주가 깨어나면 따뜻한 물을 먹이라고 했다. 그러자 단신의가 말했다. “장공주에게 설탕 소금물을 준비하오.”그의 약상자에는 약이 아주 많이 구비되어 있었다. 그중 일부는 장공주가 복용하기에 적합했지만, 장공주가 깨어나기 전에는 주지 않을 것이었다. 장공주가 깨어나 그에게 치료를 부탁해야만 약을 처방할 것이었다. 채희는 서둘러 설탕 소금물을 준비했고, 당황한 나머지 발걸음이 흐트러져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는데 송석석이 부축하고 나서야 제대로 설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왕비님.” 채희의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는 처음에 그들이 기회를 틈 타 소란을 일으킬까 봐 화장실에서 장공주의 일을 북명왕비에게 알린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그들이 침입하는 모습을 보고 더욱 두려웠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977화

    수란석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이 일은 그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그도 향병의 문제를 발견했지만 향병이 무슨 짓을 했든 장공주가 협상에 참여할 수만 없다면 결정권은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에게는 전제가 있었는데 바로 냉옥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왜냐하면 냉옥은 그의 조카딸이기 때문이었다. 경역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냉옥은 그가 전쟁을 벌이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목숨만큼은 보호해야 했다.그가 이상한 건 냉옥의 심복이었던 향병이 왜 그녀를 배신했냐는 것이었다.‘혹시 전쟁을 지지하게 된 건가? 하지만 처음엔 분명 반대했는데. 냉옥을 죽게 하기는 싫고 여기서 포기하는 것도 싫은 것인가? 이건 그녀 혼자 한 일이 아닐 것이야. 그녀에게 냉옥을 배신하라고 지시한 사람이 있을 텐데 누구일까? 설마 황제는 아니겠지?’많은 의혹이 수란석의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그는 정확한 답을 얻지 못했다.그는 회왕과 결탁했기 때문에 향병에게 문제가 있다고 추측한 것이었다. 향병이 줄곧 냉옥의 충실한 심복이었으니 다른 사람은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수란석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평무종이 향병에게 말했다.“우리가 여기에 있는 한 독이 있으면 우리도 함께 중독될 것이다.”그러자 향병이 반박했다.“당신들이 독을 탔는데 무슨 해독제가 없습니까?”그러자 평무종이 물었다.“우리가 왜 그렇게 해야 하는데? 우리 상국 진성에서 당신들을 독살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무엇이냐는 말이다.”사신들도 상국이 그렇게 할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 모두 금태의를 바라보았다. 금태의만 동의한다면 그들도 믿고 향을 피울 것이었다.금태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도 묘독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본 적도 없고 해독법도 몰랐다. 그리고 장공주가 구혼선충의 독에 중독된 것인지 확신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작은 것이 장공주를 깨울 수 있다는 것은 더욱 확신할 수 없었다.그들이 모두 말하지 않자 단신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장공주가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976화

    사신들은 금태의를 보고, 다시 단신의를 보더니 마음이 금태의에게로 기울은 듯했다. 단신의의 의술도 뛰어나 서경에서 명성이 자자했지만, 금태의는 장공주를 오랫동안 치료해 온 태의인 데다가 지극히 충성적이라 자연스럽게 그를 믿는 것 같았다. 평무종이 금태의의 말을 번역하자 단신의는 맥을 짚던 손을 떼고 평무종이게 말했다. “중독된 것이라고 알리거라.” “우리도 다 알아들으니 굳이 번역할 필요 없습니다.” 이때 고공이 급히 물었다. “장공주님께서 무슨 독에 중독된 것입니까?” 그러자 단신의는 송석석을 보았는데 송석석도 비주의 사건이 생각난듯 했다. 구혼선충의 독에 중독되었던 나약했던 부인이 힘이 세지고 발광했던 사건을 말이다. 하지만 서로 다른 점은 그 부인은 성공적으로 조종되었고, 장공주는 혼수상태에 빠져서 결단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인 것이었다. 금태의는 여전히 자신의 견해를 주장했다. “장공주는 원래 몸이 허약한 데다 두통 고질병까지 있습니다. 혈기와 혈맥이 막히고 두통이 심한 것으로 보아 머리에 혹이 생긴 것이 틀림없습니다.” 평무종이 금태의의 말을 단신의에게 전하자 단신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머릿속에 혹이 난 건 아니지만 혈맥이 막힌 것은 맞소. 그건 장공주의 머릿속에 독충이 있어서 그런 것이기 때문인데 내가 중독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한 건 독충도 독이지만 사람에게 중독되었다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었소. 독충은 중독자의 심신을 방해해서 두통을 악화시킬 뿐이지만 너무 오랫동안 머릿속에 있으면 생명에 위험이 있을 수도 있소.” “그럴 리가 없습니다…!” 향병은 손수건을 집어 들고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단신의를 노려보며 상국어로 욕설을 퍼부었다. “독충은 무슨, 헛소리하지 마십시오! 장공주의 생명에 위험이 있을 수 있다니요? 내가 보기엔 당신은 그저 돌팔이 의사인 것 같은데 감히 신의라고 자칭하다니. 황당하기 그지없군요.” 단신의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봐 온 덕분에 한눈에 향병이 무언가를 들킬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는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975화

    향병은 침실로 들어가 장공주의 커튼이 걷어진 것을 보고 얼굴을 붉히며 안운여를 꾸짖기 시작했다. “어떻게 외간 남자에게 장공주가 자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느냐?!” 그녀는 앞으로 가서 커튼을 내리고 단신의를 쫓아내려고 했지만 안운여에게 가로막혔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진단해 봅시다.” “안운여! 너 너무 건방진 것 아니냐?” 향병은 목소리를 내리깔고 노호했다. 안운여는 출신이 좋지 않은 데다 관직도 그녀보다 높지 않아 잠깐 망설이다가 확고하게 말했다. “장공주님의 옥체보다 더 종요한 건 없습니다. 장공주님께서는 이미 두 시간이 넘도록 혼미했으니 당장이라도 원인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옥체에 큰 해가 될 것입니다.” 여관인 곽아정도 안운여를 지지했다. “온 김에 진단을 받아보겠다는 것인데 넌 왜 계속 반대를 하는 것이냐? 내가 보기엔 넌 장공주를 걱정하는 게 아닌 것 같다.” 그러자 향병이 다짜고짜 소리쳤다. “헛소리하지 마. 내가 장공주를 걱정하지 않는다니? 상국인들이 얼마나 악랄했는지 잊었어? 그들이 마을 백성들을 학살한 일을 잊었냔 말이야!” 평무종은 그들의 대화를 듣더니 즉시 서경어로 반격했다. “백성들을 학살한 것은 바로 이방이다. 그것 때문에 모든 상국인들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너희 서경의 정찰이 송 씨 가문을 도륙했는데, 그럼 모든 서경인들이 나쁜 사람이라는 것이냐?” 대학사 고공은 상황을 보더니 얼른 말했다. “장공주의 옥체가 중요하니 다들 그만합시다. 금 태의도 장공주가 왜 혼미에 빠졌는지 알아내지 못했으니 단신의에게 진단을 받아봅시다.” 그러자 홍려사경도 말했다. “그래, 그래. 이왕 들어왔으니 맥을 짚어 일단 중독의 가능성을 배제해야 한다.” 이때 금태의가 말했다. “장공주님께선 중독되지 않으셨습니다.” 향병은 단신의의 얼글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금 태의의 말을 그냥 믿기로 했다. 한편, 송석석과 시만자는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974화

    향병은 비록 중요한 여관은 아니었지만 장공주의 믿음을 얻었고 방금도 그녀가 극구 반대를 해서 원래 지지하던 사람들까지도 따라서 반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홍려사경을 비롯한 두 세 사람은 여전히 상국의 단신의를 청하는 것을 지지했다. 단신의의 명성은 서경에까지 퍼졌다. 애초에 선제의 병이 위독했을 때 조정의 신하도 단신의에게 치료를 청하겠다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선제는 스스로 상국인의 손에 목숨을 맡기기 싫다며 결국엔 포기했다. 그들은 또다시 말다툼을 벌였는데 송석석과 평무종은 상황을 보더니 단신의를 모시고 곧장 동원으로 달려갔다. “막아라!!” 향병이 소리쳤다. “저기요, 내 말 좀 들어보십시오……” 시만자는 서둘러 앞으로 다가가 향병의 손을 잡고 애원했다. “우리도 장공주님을 위해서 이러는 것입니다. 장공주님의 시녀가 옆에 있으니 우리가 무슨 짓을 해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몽동이도 수란석을 가로막고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저 맥만 짚어보는 것입니다. 당신들의 태의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얼른 들어가서 지켜보라고 하십시오.” 태의는 진작에 뛰어 들어갔다. 비록 장공주의 곁에는 두 명의 의사가 간호하고 있었지만 상국의 사람이 들어가자 태의는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바로 따라 들어갔다. “놔, 이거 놔주십시오.” 향병은 시만자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뭐 하는 것입니까? 날 해치려는 것입니까?” 그러자 시만자는 그녀와 충돌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부드럽게 속삭였다. “그런 게 아닙니다. 들어가려는 거면 같이 들어가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몽동이도 말을 덧붙였다. “맞습니다. 다 같이 들어갑시다! 모두들 장공주의 건강을 위해서 이러는 것이니 같이 들어갑시다.” 경위들도 송 대인이 손찌검을 하지 말라고 분부해서 밀치락달치락 하며 공격을 어깨로 되받아 칠 수밖에 없었다.현장은 아수라장이 되고 혼란스러웠지만 몽동이가 수란석을 잡고 있기 때문에 시만자는 힘껏 향병의 손을 잡고 동원 쪽으로 움직였다.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973화

    잠시 후, 평무종이 회동관 입구에 나타났는데, 혼자 온 게 아닌 것 같았다.방금 송석석이 그녀를 보았을 땐 야행복을 입고 있었는데 지금은 평범한 복장을 입고 있었고 야행복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사저, 무슨 상황입니까?”송석석은 얼른 마중 나가서 물었다.그러자 평무종이 답했다.“내가 장공주 방의 옥상에서 잠깐 들었는데 장공주가 혼수상태에 빠진 것 같더라고.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시녀 몇 명이 지키고 있었는데 그들의 말에 의하면 장공주가 미친 듯이 발광하다가 사람까지 물고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하더군.”시만자는 의아해서 물었다.“미친 듯이 사람을 물었다고요? 설마 정신이 이상해진 건 아니겠지요?”이때 송석석이 다시 물었다.“혹시 정원에서 들었습니까? 그들이 뭐라고 하던가요?”“그들이 정원에서 다투고 있었는데 태의나 단백부를 모시러 가자는 사람도 있었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어. 하지만 난 옥상에서만 듣고 있었기 때문에 반대하고 지지하던 사람이 누구인지는 몰라.”“그럼 신의를 모시러 간다는 의견에 반대하던 사람 중 여자의 목소리가 있었습니까?”“있었다.”평무종이 몽동이를 만났을 때 이미 여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하지만 향병은 아니었다.”“반대하던 사람이 많았습니까?”“서너 명인 것 같았는데 그들도 침착하게 분석할 뿐이지, 무작정 반대했던 건 아니다. 유독 한 여자의 반대가 심했는데 그녀는 우리 상국의 태의와 의사들은 그들이 수행하는 어의보다 못하며 가해할 위험이 있다고 생각했지.”“그러니까 그녀를 따라 반대하던 사람들은 장공주가 자신들 때문에 문제가 생겨 책임을 질까 봐 걱정하는 것이었군요.”평무종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다고 할 수 있지.”그러자 송석석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했다.“그럼 쳐들어갑시다!”이때 몽동이가 걱정하며 말했다. “왕야님께 알려서 결정지으라고 하는 게 낫지 않을까?”“아니, 이건 내 개인적인 결정이지 왕야와는 상관없는 일이야.”송석석은 밤을 지키고 있는 경위를 불러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