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준재는 있었던 일을 간단히 구남준에게 말해줬다.구남준은 마음이 착잡해졌다. 그는 도무지 기뻐해야 할지 우울해야 할지 몰랐다.대표가 자신의 감정 문제를 분석해달라고 그에게 맡긴다는 건 비서인 그에 대한 인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그러나 그는 여준재에게 자신이 연애를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모솔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하지만 구남준이 속으로 아무리 불만이 있다고 해도 전문가같은 태도로 여준재를 위해 분석하기 시작했다.“사모님께서 화를 내시는 게 유라 씨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모님도 유라 씨 주치의잖습니까. 환자가 자신이 힘들게 구해준 목숨을 아끼지 않는 걸 허용하는 의사는 없을 것입니다. 대표님이 유라 씨 친구라서 불똥이 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대표님께서 유라 씨를 치료해 달라고 사모님께 부탁하셨잖습니까.”“...”여준재는 현재 자신의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그는 고다정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그였다면 그도 화냈을 것이다.여준재는 속으로 이미 해결방법을 생각해두었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잘했어. 이번 달 보너스를 더블로 해줄게.”그는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은 후 여분의 열쇠를 가지고 침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물론 그의 행동은 고다정의 눈을 피할 수 없었다.그러나 고다정은 그를 개의치 않고 누워 자는 척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누군가가 침대 옆에 앉는 걸 느꼈다. 이어 그녀는 따뜻한 품에 안겼다. 머리 위에서는 남자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화내지 마요. 유라한테 이미 경고했어요. 몸을 아끼지 않으면 다시 돌려보낸다고.”“그럼... 상처를 찢은 이유는 알려줬어요?”여준재는 그녀를 보며 아까 했던 대화 내용을 말해주고 자신의 평가를 보태었다.“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데 나도 탄복할 정도예요.”그러나 그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마음이 더 불편해졌다.그녀는 유라가 이런 핑계를 댈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리고 여준재는 그 핑계를 믿은 모양이다.왠지 모르게 그녀는
고다정과 성시원은 다 반대하지 않았다.채성휘도 의학지식을 꽤 많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엇이 자신에게 좋은지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간단히 한담한 후 채성휘의 표정이 엄숙해졌다.그는 고다정과 성시원을 보며 물었다.“이렇게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는데 연구소 사고에 관한 조사는 당연히 다 끝났겠죠?”“조사는 확실히 끝났어. 4대 가문의 짓이야. 시리우스도 4대 가문에게 매수된 것이고. 하지만 아직 시리우스에 관한 소식은 없어. 그런데 걱정하지 않아도 돼. 우리 성씨 가문에서 꼭 끝까지 조사할 테니까. 동시에 보상으로 성씨 가문 본가 장서각에 가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허락해줄게.”성시원이 말했다.그 말을 들은 채성휘는 흥분하기 그지없었다.“어르신, 정말인가요?”“당연하지. 하지만 그 전에 먼저 몸부터 잘 회복하도록 해.”성시원은 고개를 끄덕였다.옆에 있던 고다정도 장서각이라는 말을 듣고 설렜다.그녀는 전에 성시원이 성씨 가문 본가에 3층짜리 장서각이 있는데 그곳에 고대부터 지금까지 500년 된 옛 의서와 절필서들이 보관되어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고다정의 눈빛을 감지한 성시원은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콧방귀를 뀌고 말했다.“날 쳐다볼 필요 없어. 너도 당연히 따라가야 하니까. 장서각의 책들을 다 익히는 건 성씨 가문 미래 가주로서의 기본이야.”“알겠습니다. 절대 스승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고다정은 웃으며 대답한 후 채성휘를 보았는데 그가 계속 임은미를 바라보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임은미에게 할 말이 있는 게 분명했다.고다정은 눈동자를 굴리더니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스승님, 채 선생님은 괜찮으신 것 같은데 우리도 채 선생님이 푹 쉴 수 있도록 이만 돌아가는 게 어때요?”“그래, 편히 쉬는 게 중요하지. 은미가 성휘를 잘 보살펴줘.”성시원도 고다정의 뜻을 알아차리고 일부러 허허 웃으며 임은미에게 부탁했다.볼이 빨개진 임은미는 거절하려고 했지만 고다정과 성시원은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뒤돌아 병실을
그날 밤, 고다정이 두 아이와 놀아주고 있을 때, 갑자기 임은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다정아, 너 내 친구 맞지?”“당연하지. 왜 그래?”고다정은 임은미의 물음을 듣고 약간 어리둥절해졌다.이어 임은미가 이를 갈며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내 베프가 맞으면 채성휘가 퇴원하고 엿 먹이려고 하는데 좀 도와줘. 비겁한 자식, 내가 좋은 마음에 보살펴줬더니만 어떻게 은혜를 원수로 갚을 수 있어?”그 말을 들은 고다정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오늘 나랑 스승님이 떠난 후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보네.’“채 선생님이 뭘 했는데? 왜 이렇게 화나 있어?”고다정이 호기심에 찬 말투로 물었다.임은미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끝내 있었던 일을 고다정에게 말하지 않고 화내며 얼버무려버렸다.“아무튼 내가 한 말을 기억해둬. 내 친구가 맞으면 꼭 채성휘 그 자식한테 엿 먹여줘야 해.”“그래, 알겠어.”임은미가 말하려고 하지 않자 고다정도 더는 캐묻지 않았다.언젠가는 알게 될 테니까.두 사람은 몇 마디 더 주고받고는 전화를 끊었다.고다정은 전화를 끊자마자 호기심 어린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는 두 아이를 발견했다.“엄마, 은미 이모가 뭐라고 했어요?”그들은 방금 전화 너머에서 임은미가 아우성치는 걸 다 들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는 듣지 못했다.그 물음을 들은 고다정은 아까 통화 내용을 떠올렸다. 그녀는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은미 이모가 곧 남자친구 생길 것 같아. 너희들한테는 양아빠가 되는 셈이지.”“양아빠요?”두 아이는 잠시 멍해 있다가 이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고 고다정에게 다가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녀를 뚫어지라 쳐다보았다.고다정은 당연히 그들이 묻고 싶은 게 뭔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이 입을 열기도 전에 먼저 자발적으로 알려줬다.“별문제가 없으면 너희가 만났었던 채성휘 아저씨가 곧 너희 양아빠가 될 거야.”“와, 은미 이모가 이제야 솔로 탈출하는 거예요?”두 아이는
여준재의 말을 들은 구남준은 직업적 미소를 띠고는 다가가 말했다.“진 이사님께서 모르시나 본데, 10% 이상의 YS 그룹 주식을 가진 분들은 회사 임원으로서 이사회에 참석하실 수는 있지만 아무런 회사 직위도 가질 수가 없습니다.”구남준은 한 마디만 남기고 진시목의 표정이 어떻게 변했는지 상관하지도 않은 채 여준재 뒤를 쫓아갔다.진시목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계속 웃고 있었지만 그가 기분이 좋지 않음을 한눈에 알아차릴 수 있다.같은 시각, YS 그룹 이사회에 새로운 성원이 생겼다는 소식이 인터넷에 퍼졌다.그의 사진이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되어 있었는데 사진 속 그는 블랙 슈트 차림을 하고 있었고 귀족 같은 느낌을 주었다.사진 밑에는 진시목의 인적사항과 그가 이룬 성과가 적혀있었다.많은 여성 네티즌들은 그의 사진을 보고 그의 외모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러나 그에 관해 깊이 알아감에 따라 마음이 복잡해졌다.돈도 많고 능력도 출중한 재벌가 상속자가 YS그룹 대표처럼 이미 오래 전에 가정을 이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결혼 상대가 그들이 잘 알고 있는 연예계에서 매장당한 고다빈이었기 때문이다.여론이 점점 더 커져갔다.고다빈도 덕분에 다시 관심을 받게 되었다.그러나 고다정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그녀는 유라를 돌보아야 했고 또 연구소에서 보내온 문제를 처리해야 했기 때문에 다른 일을 관심을 쏟을 겨를이 없었다.그러나 그녀가 보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도 그녀에게 알리지 않은 건 아니었다.임은미는 인터넷 소식을 보자마자 고다정에게 전화를 걸었다.“다정아, 큰일 났어. 진시목 그 쓰레기 놈이 YS그룹 이사회 성원이 되었어.”“은미야, 오늘 만우절 아니야.”고다정은 임은미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그녀는 진시목이 십 년을 더 분투한다고 해도 절대 YS그룹 이사회 성원이 될 수 없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YS그룹의 주식을 매수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는 둘째치고 여준재가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임은미도 그녀가 믿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다급
고다빈의 말을 들은 심여진도 웃음을 드러냈다.딸이 잘 살면 그녀도 따라서 잘 살 수 있었으니까.그러나 심여진의 좋은 기분은 오래 가지 못했다. 그녀는 한 가지 중요한 일을 떠올렸다.“다빈아, 먼저 너무 기뻐하지 말고 조금 있다 시목이에게 저녁에 돌아와서 밥 먹으라고 전화해. 그리고 다른 여자한테 뺏기지 않게 잘 달래.”심여진은 고다빈에게 진지하게 말했다.그녀의 말을 들은 고다빈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너무 기쁜 나머지 그녀는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그녀와 진시목은 현재 자칫하면 이혼할 수도 있는 관계라는 걸 말이다.심지어 두 사람 사이에는 이미 제삼자가 존재했다.이를 떠올린 고다빈의 마음에는 역겨움이 일었다.그러나 진시목의 손을 놓아주고 지금 누리고 있는 부귀영화를 포기하고는 싶지 않았다.YS 그룹 이사회 성원 변동으로 운산 비지니스계가 며칠 동안 떠들썩했다.진시목이 새로운 비지니스계 샛별이 된 덕분에 진씨 가문도 재벌가 순위 5위 안에 들었다.인터넷, 티비에도 온통 진시목에 관한 기사로 가득했다.고다정은 진시목에 관한 일로 기분을 잡치고 싶지 않았기에 매번 그와 관련된 기사를 볼 때마다 바로 꺼버렸다. 그러나 반면 고경영은 그녀처럼 차분하지 못했다.그는 나날이 잘 나가는 진씨 가문을 볼 때마다 마음속에서 들끓고 있는 분노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그는 진시목이 GS그룹을 밑거름으로 삼았기에 저 자리까지 올라가게 된 것이라고 믿었다.‘이 모든 게 다 심여진과 고다빈 그 두 천한 년 때문이야!’‘딱 기다려.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진씨 가문에 관한 여론도 잠잠해져 갔다.그와 동시에 진시목이 사용한 자금에 관한 조사결과도 나왔다.“대표님, 두 달 전부터 5개 해외 계좌가 익명으로 간헐적으로 JS 그룹에 송금한 기록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한 주일 전에 진시목이 스위스 은행에 2400억에 달하는 황금을 입금한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2400억 원어치 황금? 그 많은 황금을 어떻게 얻은 거야?”요점을
"조금 전에 대저택에 가서 저녁을 먹는다고 말하는 걸 들었어요. 나도 함께 갈래요."유라가 자신의 목적을 솔직하게 말했다.그녀의 말을 들은 고다정의 미간이 다시 찌푸려졌다."오늘은 집안 모임이에요. 유라 씨가 참석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자리예요. 어머님이 뵙고 싶다면 유라 씨 몸에 난 상처가 다 나을 때까지 기다려요. 그때 가서 내가 사람을 보내 유라 씨를 대저택에 데려다줄게요.""집안 모임이면 뭐요? 난 생명의 은인인데 가면 안 되나요?"고다정의 거절에 유라가 매우 불만스러워하는 게 보였다.고다정도 유라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잠시 후 고다정은 숨을 크게 들이쉬며 여준재에게 이 일을 떠넘겼다."그래요, 가고 싶다면 여준재에게 먼저 물어봐요. 오늘은 준재 씨 집안 모임이라서 나에게는 동의도 거절도 할 권한이 없어요.""준재는 무조건 동의할 거예요. 나도, 준재도 이미 서로를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어요."유라는 고다정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것이 아니었지만 일부러 그녀가 오해할 만한 말을 했다.그녀와 몇 번 접촉해 본 고다정도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말이 신경 쓰였지만,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고다정은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 띤 얼굴로 부드럽게 말했다."네, 생각해보니 준재 씨도 허락할 것 같네요. 다음 명절부터 유라 씨가 여준재 친척으로 그 집에 오는 거라고 생각할게요. 제가 바빠서 이만 먼저 가볼게요."말을 마친 그녀는 유라의 굳은 표정을 뒤로 한 채 자리를 떠났다.방을 나서는 고다정의 기분이 좋아 보였다.유라는 말로 그녀를 자극하려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본국의 말이 심오하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그날 저녁, 고다정은 먼저 유치원에 가서 두 아이를 데려왔다. 고다정이 두 아이를 돌보고 있을 때 여준재가 마침내 돌아왔다.그들은 외할머니에게 작별인사를 건네고 다섯 명이 차를 탈 준비를 했다.이때 유라가 또 말썽을 피웠다."조수석에 앉고 싶지 않아. 준재야, 다정 씨더러 조수석에 앉으라고 하면 안
인사를 나눈 뒤 그들은 거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유라는 고다정이 준비한 보양식을 보고는 자신이 준비한 선물을 먼저 꺼냈다."아주머니 아저씨, 이것은 제가 준재에게 물어보고 준비한 선물이에요. 마음에 들길 바랍니다.""아휴, 그냥 와도 되는데 뭘 선물을 가지고 왔어?"심해영이 유라를 바라보며 말했다.이에 유라는 어수룩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당연히 사와야 야죠. 준재 씨 집에 처음 오는 건데 빈손으로 오는 건 예의가 아니죠.""예의가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넌 우리 준재를 구해준 사람이야. 아저씨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너에게 고마워하고 있어. 앞으로는 선물 같은 거 사지 말고 그냥 와. 안 그러면 집에 들여놓지 않을 거야."심해영이 엄숙한 척하며 말했다. 보아하니 유라를 아주 이뻐하는 것 같았다.유라의 얼굴에 핀 웃음꽃이 더욱 찬란해졌다.반면 고다정은 이 장면을 보고 마음이 씁쓸해졌다.고다정은 심해영이 유라를 이뻐하는 것이 여준재를 구해줬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심해영과 처음 만났던 날을 회상했다.그때 그녀도 여준재를 구하고 있었지만, 심해영은 그녀에게 불만이 많았었다.고다정의 표정이 눈에 띄게 변했다. 이를 눈치챈 여준재가 머리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두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물었다."왜 그래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제가 가져온 선물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제가 가져온 선물이 유라 씨가 가져온 것보다 귀중하지 않은 것 같아서요. 어머님께서 싫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여준재의 물음에 고다정은 핑곗거리를 찾아 대답했다.그녀는 여준재에게 자신의 이런 마음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여준재는 별 생각 없이 웃으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우리 부모님은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게다가 우린 가족이잖아요. 다정 씨가 무슨 선물을 샀든 다 부모님에 대한 효도예요. 부모님도 무조건 기뻐하실 거예요.""네, 준재 씨 말이 맞아요."고다정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이 많이 좋아진 것 같아 보였
고다정은 금세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졌고 유라도 음침한 얼굴로 이내 자리를 떠났다.그녀들이 자리를 떠난 뒤, 화장실 옆에 있던 작은 문을 열고 어두운 표정의 심해영이 나왔다. 심해영의 손에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상자가 들려있었다. 심해영이 이곳에 나타난 이유는 자신들이 어른으로서 유라에게 아무것도 해준 게 없었기에 사례를 하고 싶어서였다.여 씨 대저택에는 귀중품을 보관하는 곳이 따로 있었는데 방금 심해영이 나온 그 문은 귀중품을 보관하는 곳으로 가는 통로 중 하나였다.물론 그 안에는 수많은 귀중품이 들어있었다.가까운 길을 선택하여 그곳으로 내려왔던 심해영은 그녀들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고 생각지도 못한 일에 마음이 복잡했다.심해영은 유라가 자기 아들한테 그런 마음을 품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평소에 그녀와 접촉할 때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었다.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니 목숨 바쳐 자기 아들을 구하는 일은 의리만 가지고는 하기 힘든 일이었다.유라가 본 모습을 아주 잘 감추고 있었기에 여준재도 심해영도,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 거였다.방금 고다정과 유라의 대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유라가 평소에 일부러 고다정을 난처하게 하는 일이 많은 것 같았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심해영은 금세 유라에 대한 호감이 많이 떨어졌다.유라가 아무리 여준재를 좋아한다고 해도 고다정에게 이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더욱이 자기 아들과 고다정은 곧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유라가 더는 말썽을 피우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심해영은 금세 결단을 내리고는 상자를 들고 거실로 돌아왔다.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고 있었다.유라와 고다정도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녀가 돌아오자 고다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심해영이 없을 때 고다정은 이 집안의 작은 사모님으로서 심해영을 대신해서 유라를 접대해야 했다.사실 고다정은 지금 유라와 한마디도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유라도 고다정과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자기 속마음을 알아채지 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