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깊은 잠에 빠졌다가 유라의 상태가 걱정돼서인지 날이 밝자마자 눈을 떴다.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고다정의 얼굴을 보고 여준재가 안타까워하며 말했다.“좀 더 자요. 진현준이 있으니 문제없을 거예요.”“그래도 가봐야 해요.”고다정이 고개를 저으며 여준재의 호의를 거절했다.여준재는 어쩔 수 없이 고다정과 함께 일어나 씻고 유라가 있는 임시 병실로 향했다.병실에는 진현준과 그의 조수, 그리고 성시원이 있었다.“스승님, 왜 여기 계셔요?”고다정은 성시원이 진현준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다소 의외라는 듯 물었다.성시원이 대답하기 전에 진현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새벽 3~4시쯤에 환자분이 고열 증상을 보였어요. 원래 고 선생님을 부르려 했는데, 마침 성시원 선생님이 듣고 부르지 말라고 하셨어요.”이 말을 듣고 고다정은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스승님은 그녀와 여준재가 너무 오래 헤어져 있었기에 방해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스승님 수고하셨어요. 지금 유라 씨 상태는 어때요?”고다정이 성시원에게 감사를 표시한 후 걱정스레 물었고, 여준재도 많이 신경 쓰이는지 그를 쳐다보았다.성시원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열은 내렸어. 오늘만 잘 버티면 큰 문제는 없을 거야.”“그럼, 나머지는 저에게 맡기고 스승님은 쉬세요. 진 선생님도요.”고다정은 스승님이 유라를 돌보느라 밤을 지새운 것이 가슴 아파 쉬러 가라고 재촉했다.여준재도 동의했다.“가서 쉬세요. 구 비서한테 YS 산하 병원의 간호사를 보내라고 했어요. 그들이 유라를 돌보면 돼요.”이 말을 들은 성시원과 진현준은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다.진현준이 먼저 자리를 떴다.성시원은 고다정과 여준재를 훑어보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다.“다정아, 나 좀 보자.”“왜요? 스승님.”고다정이 궁금해하며 그를 쳐다보았다.그러자 여준재가 고다정을 가볍게 밀며 미소를 지었다.“스승님이 당신한테 할 얘기가 있겠죠. 가 봐요.”성시원은 두 사람의 잔동작을 보고 코웃음을 치더니 돌아서서 방에서 나갔다
성시원은 갑자기 말머리를 돌려 고다정의 몸에 아직 미해결로 남은 문제를 언급했다.“다른 세 가문이 진술한 바에 따르면, 너에게 최면을 건 사람은 손씨 장남 집안 사람이래. 너에게 쓴 약은 약효가 1년 정도 유지되고 해독약은 손씨 장남 집안에만 있는데, 약효를 제거해야만 너의 최면 암시를 없앨 수 있어.”“고작 1년인데, 괜찮아요. 평소에 조심하면 별일 없을 거예요.”고다정은 시간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성시원은 그녀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어떤 일은 막으려야 막을 수가 없어. 요행을 바라면 안 돼.”그는 고다정이 다른 말을 하기 전에 말을 이었다.“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어. 나랑 준재가 전 세계에서 손씨 장남 집안 사람들을 잡고 있으니까.”“걱정하지 않아요. 스승님과 준재 씨를 믿어요.”고다정이 성시원을 향해 간드러지게 웃었다.두 사람은 몇 마디 더 얘기를 나눈 후 헤어졌다.고다정이 다시 임시 병실에 돌아왔을 때, 여준재는 혼자 소파에 앉아있었고 앞에는 노트북 한 대가 놓여있었다.그녀는 속상해하며 말했다.“당신은 잠시도 쉬지 않으려 하네요.”“왔어요?”여준재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둘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에 관해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여준재는 회사의 다음 분기 계획서를 보고 있었다. 회사 기밀 유출 사건이 생각난 고다정은 눈에 미안한 기색이 감돌았다.“컴퓨터에 비밀번호를 설정해 놓고 저한테 비밀로 해요. 스승님 말로는, 최면이 당분간 풀리지 않는대요. 다시는 당신을 해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아요.”그녀는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리면서 미안함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자 여준재는 그녀를 와락 품에 끌어안더니 사랑 가득한 손길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돌아왔으니 다시는 그런 것에 걸려들지 않을 거예요.”“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없어요. 내 말 들어요.”고다정은 여전히 공적인 일에서는 자기를 경계해야 한다고 고집했다.심지어 이 시각 그녀는 다른 한 가지 상황도 머리에 떠올랐
아침을 먹은 후, 고다정은 강말숙이 자기들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것이 싫어 이상철한테 부탁해 그녀를 이전에 자주 가던 노인회관에 보냈다.거실에는 그녀와 여준재만 남았다.“준재 씨, 오늘은 일정이 어떻게 돼요?”고다정이 옆에 있는 여준재를 바라보며 묻자, 여준재가 미안해하며 대답했다.“집에서 며칠 당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회사에 밀린 일이 너무 많아요. 이후에 보상할 수밖에 없겠어요.”“그게 뭐 어때서요? 제가 그런 사소한 것을 따지는 사람도 아니고.”고다정이 활짝 웃자, 생얼마저 예쁜 그녀의 용모에 홀딱 반한 여준재는 그녀의 뽀얀 얼굴에 살짝 뽀뽀했다.“집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그리고 유라를 부탁할게요.”“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 돌볼게요.”고다정이 빙그레 웃으며 여준재를 바라보았다.잠시 후 그녀는 여준재를 문밖까지 배웅했고, 그가 탄 차가 멀리 갈 때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얼마 안 지나 여준재는 회사에 도착했다.구남준이 그가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즉시 마중하며 업무를 보고하기 시작했다.“회장님께서 30분 후 이사회와 지역 자회사를 포함한 원격회의를 개최한다고 발표했어요. 그리고 대표님이 오시면 바로 회장 사무실로 오라고 하셨습니다.”“알았어.”여준재는 대답하고 나서 회장 사무실로 향했다.사무실에서 여진성이 서류를 처리하고 있었다.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머리를 든 여진성은 여준재가 밖에서 걸어 들어오자 그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다행이야. 살만 좀 빠지고 사지는 멀쩡하니 네 어머니한테 알릴 수 있겠어.”“저 때문에 걱정 많으셨죠?”여준재가 미안해하며 여진성의 맞은편에 앉았다.그러자 여진성이 웃으며 말했다.“나는 괜찮았는데, 네 어머니와 새아가가 처음에 걱정이 많았지. 바쁜 시기가 지나가면 두 사람 곁에 있어 줘.”여준재는 알았다고 대답하고는 말머리를 돌려 물었다.“요즘 회사 상황은 어때요?”“두 번의 회사 기밀 유출로 핵심 프로젝트가 하마터면 중단될 뻔했는데, 네 할아버지가 나서서 모든 것을 제 자리
이상철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안색이 안 좋아졌지만 그래도 안으로 들이라고 했다.물론 그녀는 고경영이 왜 왔는지도 잘 안다.심여진은 고경영이 혼수 상태로 있을 때 고경영에게 지분 양도 계약서는 물론 이혼 협의서까지 사인을 받아냈다.게다가 협의서에는 고경영 명의로 된 모든 자산을 심여진에게 넘긴다고 명확히 적혀 있었다.다시 말하면, 병원에서 깨어난 후 고경영은 주머니에 한푼도 없는 빈털터리가 돼버렸다.사실상 고경영의 상황은 고다정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안 좋았다.그는 고씨 집안의 모든 자산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건강 상태도 엉망이었다.특히 그는 며칠 전 퇴원한 후 진씨 저택에 가서 소동을 일으켰다가 진시목의 부하에게 맞아 원래 시원찮은 몸에 또 상처가 생겼다.고다정의 이름을 대지 않았다면 병원에서 치료해 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소파에 앉아 성공자 기세를 물씬 풍기는 고다정을 보며 고경영은 여태 느껴보지 못했던 후회의 감정을 느꼈다.‘그때는 무엇에 홀려 심여진 그년이 고다정을 마음대로 괴롭히게 둬서 이 돈줄을 잃었지?’이런 생각을 하며 그는 진심으로 고다정 앞에 털썩 무릎을 꿇고 통곡했다.“다정아, 아버지가 잘못했어. 잘못했어...”고경영이 이렇게 나올 줄 전혀 생각지 못한 고다정은 잠깐 멍해졌다가 즉시 일어나 옆으로 비켜섰다.어쨌든 고경영은 그녀의 아버지인데, 딸로서 이걸 받을 수는 없다.그리고 옆에 경찰도 있기에 사람들에게 가십거리를 제공하고 싶지 않았다.“고경영, 당신이 무슨 목적으로 여기 왔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식으로 나오면 우리 사이에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어요. 지금 당장 나가주세요.”고다정은 옆에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두 경찰을 향해 겸연쩍게 말했다.“부끄럽네요. 저의 집안일 때문에 공공자원을 점용해서 미안합니다. 앞으로 또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상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두 경찰이 눈을 마주치더니, 그중 나이가 좀 더 많은 경찰이 사무적인 말투로 말했다.“별말씀을요. 다른 문제가 없으면 저희는 이만 가
고다정은 눈앞의 남자를 빤히 쳐다보다가 갑자기 비꼬듯이 웃었다.“당신 말이 맞아요. 법적으로 확실히 당신을 부양할 의무가 있지.”그녀는 말하면서 옆에 있는 소파로 가더니 위에 놓여있던 휴대폰을 들고 뭔가 검색하는 듯했다.그녀가 뭐 하는지 모르는 고경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캐물었다.“너 뭐 하는 거야?”“현재 국내에서 부모에게 주는 평균 부양비가 얼마인지 알아보고 있어요.”고다정은 머리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이 대답을 들은 고경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잠시 후 고다정은 휴대폰을 내려놓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국가에서 발표한 수치를 봤는데, 최근 몇 년 노인들이 받은 부양비는 매달 40만 내지 60만이에요. 저는 매달 60만씩 줄게요.”“60만? 날 거지 취급하는 거야?”고경영은 고다정의 말을 듣고 화를 내며 펄쩍 뛰었다.그는 고다정이 이렇게 부자인데 매달 부양비로 수천만은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다정이 싸늘하게 웃더니 비아냥거렸다.“가능하다면 정말 이 돈을 거지한테 주고 싶네요. 당신처럼 감사는커녕 적다고 나무라지는 않을 테니까.”이 말을 들은 고경영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했다.그가 입을 열기 전에 고다정이 말을 이었다.“60만이 적어서 받기 싫다면 저는 필요한 사람에게 기부할 거예요.”“누가 싫대? 이달 부양비를 줘.”고경영이 이 돈을 남에게 주게 할 사람인가.무일푼인 그에게 60만이 비록 적은 돈이지만 아껴 쓰면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을 것이다.고다정은 고경영을 아니꼽게 힐끗 보더니 바로 입금하지 않고 말했다.“이 돈을 줄 수는 있는데, 먼저 부양 협의서부터 작성해요. 앞으로 당신을 자주 보고 싶지 않으니까.”그녀는 고경영을 너무 잘 안다. 60만은 이 남자에게 한 끼 식사비로도 모자란 돈이다. 이 남자가 계속 물고 늘어지지 않게 하려면 협의서를 체결해야 한다.고경영은 그녀가 자기를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 방법도 없기에 분노를 억누르고 협의서를 체결한 후 60만을 받고 떠났다.산 아래에 도
그날 한밤중에 여준재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집에 돌아왔다.그는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잠옷 차림으로 소파에 앉아 끄덕끄덕 졸고 있는 여인을 발견했다.불빛 아래서 고다정의 모습은 약간 초췌해 보였지만, 곳곳에 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따뜻함이 묻어났다.여준재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다가갔다.그가 허리를 굽혀 안으려는데, 손이 몸에 닿는 순간 그녀가 놀라 깨어났다.“왔어요?”남자를 반기는 고다정, 그녀는 눈을 비비더니 허우적거리며 소파에서 일어섰다.그녀는 옆에 놓인 휴대폰을 들고 새벽 2시가 된 것을 확인하고는 가슴 아픈 듯 말했다.“왜 이렇게 늦었어요?”여준재는 약간 수줍은 표정을 지었다.“어쩌다 보니 우리들의 아버지랑 일 얘기에 빠져서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우리들의 아버지라니요?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고다정은 화난 듯 그를 흘겨보았다. 그녀는 이 남자가 곤란한 상황에서 빠져나가려고 말장난을 한다는 것을 안다.하지만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보고 그녀는 차마 심한 말을 하지 못했다.“한 번만 용서할게요. 다음에는 이러면 안 돼요. 당신 몸이 견뎌낼 수 있는지는 생각해 봤어요?”“알았어요. 다음에는 이러지 않을게요.”여준재는 잘 넘어가서 다행이라는 듯 고다정의 손을 잡고 거듭 맹세했다.고다정은 입을 오므리고 웃으며 손을 빼내고는 그의 등을 떠밀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으니 그만하고 올라가 씻어요. 야식 만들어 줄게요.”“그럼 수고해요, 여보.”정말로 배고팠던 여준재는 고개를 숙여 고다정의 얼굴에 살짝 뽀뽀한 후 서류 가방을 들고 위층에 올라갔다.잠시 후 그가 씻고 나오니 고다정의 야식이 이미 준비됐다. 색과 향, 맛이 모두 완벽한 칼국수였다.“맛있겠다. 해외에 있을 때 저녁이면 늘 당신이 만든 음식이 생각났어요.”여준재는 탁자 옆에 와 앉더니 꿀 발린 멘트를 날렸다.고다정도 이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았지만 얼마 안 가서 표정이 싸늘해졌다.여준재가 방금 한 말에서 그녀는 여준재와 아직 못다 한 중요한
그 후 이틀 동안 유라는 생명에 지장은 없었지만, 반복적인 고열에 시달리며 깨어나지 못했다.하여 고다정과 진현준은 서로 교대해가며 그녀를 간호했고, 성시원 또한 가끔은 그들을 도와주었지만, 더 많은 시간은 병원에서 채성휘를 치료하는 데에 쓰곤 했다.한편, 기밀이 노출되어 많은 프로젝트 경영 방식이 수정된 탓에 여준재는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이렇게 각각 한 주를 보낸 뒤에야 상황이 조금은 호전되었다.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고다정은 유라를 간호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웬 힘없는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물…”미간을 찌푸린 채 힘없는 목소리로 유라가 중얼거렸다.만약 고다정이 그녀 가까이 붙어있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 소리를 들을 수조차도 없었을 것이다.“유라 씨 깨어났어요?!”고다정이 격동된 소리로 물었다.하지만 유라는 별다른 반응 없이 ‘물’이라는 똑같은 단어만 되뇌었다.그 모습에 고다정은 엄청 기뻐하며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 옆 탁자 위의 물잔에 면봉을 적신 뒤, 유라의 입술을 조금씩 적셔주었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고다정의 귓가에 다시금 힘없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게다가 이번에는 다소 놀라움까지 섞여 있는 말투였다.“고다정 씨, 왜 당신이 여기에?!”고다정을 제외하고 병실에 아무도 없는 걸 발견한 유라는 누가 봐도 실망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물론 고다정도 그걸 눈치채긴 했지만, 그녀가 여준재를 살려준 걸 고려해 그녀에게 설명해주었다.“다른 사람들에게 노출되기에는 그쪽 신분이 너무 특별하잖아요.”“그럼 여준재는요? 나를 이렇게 혼자 내버려 두어도 걱정 안 된대요?”유라는 직설적으로 그녀에게 물었고, 자신의 옆에 여준재가 없는 것을 발견하고 기분이 좋지 않은듯했다.그런 그녀의 속마음을 고다정 또한 모르는 건 아녔다. 고다정도 속으로는 불편하긴 했지만, 그래도 일단은 참을성 있게 그녀에게 말했다.“준재 씨는 회사에 갔죠. 남자가 이런 곳에 계속 남아 있다는 거도 말이 안 되잖아요? 그리고 내가 여기
“됐어요. 나 그만 겁줘요. 내 몸에 대해서 내가 모를까 봐요?”유라는 고다정의 말을 가로채며 그녀를 흘겨보았다.그 말에 고다정이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유라가 이어서 캐물었다.“조금 전에 통화하는 거 들어보니 내 정황에 대해 어쩌고 하던데요? 그게 뭔 말이에요?”둘은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침대 쪽까지 걸어갔다.유라는 고다정의 힘으로 다시 침대에 누웠지만, 시선은 고다정에게 고정된 채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고다정은 비록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얼굴이 창백한 그녀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다.“그게…”그녀는 몇 초간 머뭇거리다가 결국은 두 눈을 꼭 감은 채 그 잔인한 진실에 대해 입을 열었다.“너무 심하게 다쳐서 자궁 전체가 큰 상처를 입었대요. 의사 선생님도 별다른 방법 없이 그걸 끄집어낼 수밖에 없었고요.”마지막 한마디까지 전부 내뱉고 나서야 고다정은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그녀는 제자리에 선 채 차마 유라의 표정을 쳐다볼 수 없었고,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유라가 화내기만 기다렸다.그렇게 몇 분을 기다렸지만, 유라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하여 너무도 궁금해 난 그녀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유라가 넋이 나간 채 침대에 앉아있었다. 유라는 조금 전 그 소식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듯한 모습이었다. 자신이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소식을 들으면 누구나 다 똑같은 반응일 것이다.이런저런 생각을 마친 고다정은 다시금 입을 열었다.“이런 결과에 대해 저랑 준재 씨 모두 미안할 따름이에요. 유라 씨가 준재 씨를 구해준 거에 대해서도 엄청나게 감사하고요. 그래서 유라 씨가 어떤 조건을 제시하든, 저랑 준재 씨의 능력 안에서 책임지고 들어주려고요.”“책임이요? 어떻게 책임질건데요?”유라는 정신을 차리고 음울한 눈빛으로 고다정을 바라봤다.고다정 또한 그녀와 시선을 마주했지만, 그녀의 말투에서 갑자기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곧 그 좋지 않은 예감이 진짜가 되었다.유라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내뱉은 그 말은 듣는 사람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