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 파악이 된 듯한 부자를 보며 고다정이 찾아온 목적을 얘기했다.“이 사람을 본 적이 있어요?”그녀는 휴대전화를 꺼내 채성휘의 사진을 보여주었다.부자는 그 사진을 보더니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본 적이 있는 게 분명하지만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부인했다.“본 적 없어.”당연히 그들이 거짓말한다는 걸 알아차린 고다정은 눈빛이 차가워졌다.“한 번 더 기회를 줄게요. 정말 본 적이 없어요?”“본 적 없다고. 이 여자가 왜 이래? 말귀를 못 알아들어?”말이 많으면 착오가 많을까 봐 그러는지 중년 남자는 성내는 척하며 그녀를 노려보았다.이를 본 고다정은 저절로 화가 치밀어올랐다.옆에 있던 여준재도 안색이 어두워진 채 차갑고 매서운 목소리로 말했다.“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된 모양이군.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마. 이들을 잘 감시하고 있어.”이 말을 남기고 그는 부자가 어떤 표정인지 거들떠보지도 않고 고다정을 끌고 돌아서서 가버렸다.예상대로 그들이 몇 걸음 가지 않았을 때 뒤에서 포효하는 듯한 부자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젠장, 당신들이 뭔데 우릴 감시해?”“우리를 풀어주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할 거야.”그러나 고다정과 여준재는 그들의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고다정은 자기를 끌고 가는 남자를 보며 물었다.“어떻게 하려고요?”“채성휘가 병원에서 실종됐다면 아직 병원에 있을 거예요. 이들 부자가 어디다 숨겨놨는지 모를 뿐이죠. 병원 측에 연락해 우리가 수색할 수 있게 허락받을 거예요.”여준재가 자기 생각을 말했다.고다정도 일리가 있다고 느껴 여준재에게 감사를 표시했다.“그럼 부탁드릴게요.”“우리 사이에 이렇게 예의를 차릴 필요 있어요?”여준재가 불만 있는 척하며 눈을 흘겼다.이 말을 들은 고다정은 당연히 남자의 뜻을 알기에 눈을 깜박거리며 비위를 맞춰주었다.“당연히 필요 없죠. 그냥 말이 빗나갔어요.”“당신은 내가 벌주지 못하는 걸 너무 잘 알아.”여준재가 사랑스럽다는 듯 고다정의 이마를 톡톡 치더니 말을 이었다.“시간이 늦었
고다정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여준재를 바라보았다.그러나 여준재는 휴대폰을 보더니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왜 그래요?”고다정은 그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진 것을 보고 걱정스레 물었다.여준재도 그녀의 걱정을 알기에 숨기지 않고 사실대로 말했다.“병원 쪽에서 채성휘를 찾지 못했대요.”“어떻게 그럴 수 있죠?”고다정은 의외라고 생각했다.참다못해 그녀는 추측하기 시작했다.“혹시 우리가 잘못 생각한 걸까요?”여준재가 무슨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말했다.“어쩌면요. 근데 그 부자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그들이 말할까요?”고다정은 어젯밤에 그 부자가 했던 행동으로 미루어 볼 때, 그들이 사실대로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여준재는 고다정의 생각을 알아채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더니 코웃음을 쳤다.“골탕을 좀 먹이면 자연히 뭐든 다 말하게 되어 있어요.”그는 한 번밖에 보지 못했지만 그 부자가 속 빈 강정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봤다.고다정은 그의 이 말을 듣고 다소 주저했다.“사사로이 고문하는 것은 안 돼요. 만에 하나 그들이 나가서 말하면 당신과 YS그룹 이미지에 좋지 않아요.”그러나 여준재는 개의치 않았다.그에게는 그 부자의 입을 막을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다만 그가 이 말을 하기 전에 휴대전화가 울렸는데, 구남준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대표님, 부검 결과가 나왔습니다.”“어떻게 나왔어?”여준재가 표정이 엄숙해지더니 즉시 캐물었고, 구남준이 상황을 보고했다.“사망자는 작은 사모님 연구소의 약품을 먹고 죽은 것이 아니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독소에 중독된 것입니다. 그 독소에 중독되면 시체가 아무런 이상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의사들이 중독된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약을 먹고 죽은 줄로 알았나 봅니다. 경찰은 어젯밤에 그 부자가 시신을 화장하려 했던 행동을 떠올리고 그들이 뭔가 알고 있다고 의심해 체포하러 나섰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제가 대표님 허락 없이 그들을 기절시켜 돌려보냈습니다.”“잘했
경찰은 소년의 말을 듣고 순식간에 얼굴빛이 엄숙해지더니 다시 물었다.“사망자가 왜 스스로 독약을 주사했어? 아는 것이 있으면 사실대로 진술해. 협조하는 정도에 따라 형벌을 줄여줄 수 있으니까.”“경찰 아저씨, 저는 정말 잘 몰라요. 사촌 형이 우리를 불러놓고 자기가 오래 살지 못할 거라며 부자가 될 기회가 있다고 말했어요. 자기가 죽은 후 그 연구소 약품을 먹고 죽었다고 인터넷에 글을 올려 일을 크게 만들고, 그 연구소 책임자를 찾아가 배상을 요구하라고 했어요.”소년은 울상이 되어 자기가 아는 상황을 전부 털어놓았다.그래도 경찰은 그가 일부 단서를 숨겼다고 의심하며 거듭 취조했다.소년은 취조하는 경찰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다.“제가 아는 건 다 말했어요. 이것밖에 없어요. 믿지 않으면 저도 방법이 없어요.”소년에게서 더 이상 아무것도 알아낼 것 같지 않았다. 그러자 취조하던 경찰 두 명이 눈을 마주치더니 그중 한 명은 물건을 챙겨 나가버렸다.그가 나가니 소년의 머리도 빠르게 돌아갔다.그는 남은 한 명의 경찰에게 물었다.“경찰 아저씨, 진술이 필요한 건 다 진술했는데, 언제 저를 풀어줄 수 있나요?”“나가고 싶어? 사건이 종결된 후 네가 이 사건과 연관이 없는 것이 확인되면 풀어줄 수 있어. 지금은 여기 조용히 있어. 소리 지르며 힘을 빼지 말고.”소년이 하려는 말을 눈치챘는지 경찰은 경고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날카로운 눈빛에 마주한 소년은 떠들려던 마음을 접고 바로 조용해졌다.여유로운 이쪽과 달리 중년 남자 쪽은 분위기가 무거웠다.중년 남자가 어떤 질문에도 대답을 거부하며 고집을 부리고 있어 취조가 교착 상태에 빠졌다.이때 문이 열리면서 소년 쪽에서 나온 경찰이 이쪽 취조실에 걸어 들어왔다.그는 취조하고 있는 경찰 옆에 가더니 고개를 숙이고 몇 마디 귀엣말을 했다. 그러자 약간 조급했던 그 경찰은 눈이 반짝 빛나더니 다시 중년 남자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당신 아들이 이미 자백했어요. 사망자가 초심 약품을 먹고 죽은
채성휘의 행방을 알아낸 후, 여준재는 즉시 사람을 보내 구출했다.그런데도 채성휘는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았다.응급실로 이송됐을 때는 40도 고열에다 머리에 타박상을 입었는데 녹슨 금속에 상처가 난 후 감염됐다.이 소식을 들은 고다정은 여준재와 함께 황급히 병원으로 달려갔다.고다정은 걱정돼서 복도에서 끝없이 왔다갔다했다.의사인 그녀는 녹슨 금속에 상처가 난 후 감염되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안다.여준재는 고다정이 자기 앞에서 다른 남자를 걱정하자 단지 책임 때문인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다소 불편했다.하지만 그는 지금 질투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녀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겨서 어이없는 듯 말했다.“당신이 너무 왔다갔다해서 어지럼증이 나요. 채성휘는 괜찮을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그리고 안에 있는 의사들이 그를 구할 수 없으면 운산 최고 명의인 당신이 있잖아요.”“지금이 어느 때인데 나한테 농담해요?”고다정은 그를 째려보았지만 그래도 위로는 좀 됐다.녹슨 금속에 상처를 입은 후 감염되면 좀 까다롭긴 하지만 현재의 의료수준으로 치료할 수 없는 것은 아니며, 기껏해야 후유증이 남기 쉬울 뿐이다. 하지만 그녀와 스승님이 있는 한 채성휘에게 그런 상황이 나타나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다행히 30분 후 응급 처치가 끝났다.의사와 간호사가 혼수상태인 채성휘를 응급실에서 밀고 나왔다.“치료는 잘됐어요. 상처 부위의 녹은 깨끗이 씻어냈고, 앞으로 상처 부위에 2차 감염이 나타나지 않게 주의하면 후유증이 없을 겁니다.”주치의가 채성휘의 상황을 대충 설명했다.고다정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뒤이어 주치의는 몇 마디 당부하고는 간호사더러 채성휘를 병실로 옮기라고 했다.모든 것을 처리하고 나니 거의 점심이 됐다.여준재는 시간을 보더니 아침 일찍 경찰서에 가느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것이 생각나서 먼저 입을 열었다.“이쪽은 간호사더러 지키라 하고 우리 먼저 식사하러 가요. 오후에 기자회견도 해야 하니 좋은 정신상태를 유지해야죠.”사건 조사가 이미
발표회는 계속 진행 중이다.모든 기자는 잇달아 스크린을 향해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고 있었다.이윽고 구남준이 계속하여 말했다.“모두 다 보고서에서 보았다시피, 사망자는 알 수 없는 독으로 인해 사망했습니다. 게다가 이런 독은 사망자의 시체가 어떤 독에 중독되었는지 맨눈으로 보이지도 않고요.”“그렇다면 유족이 초심연구소를 의도적으로 음해한 것인가요?”한 기자가 묻자, 구남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굉장히 좋은 질문입니다. 다음은 형사님이 여러분께 사건에 대해 설명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마이크를 여준재 옆에 있는 형사에게 건네주었다.“이 사건에 관하여 유족의 자백에 의하면, 그들은 사망자의 사주를 받아 사망자가 죽은 후에 초심연구소를 고발하여 배상금을 요구하게 했습니다.”형사님이 대개 적으로 상황에 관해 설명했다.기자들은 이를 듣고 의구심을 품으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그러면 사망자는 왜 초심연구소를 모함하는 건가요? 사모님과 사망자 사이에 원한이라도 있나요?”“사망자와 관련해서 저는 모르는 사이입니다. 주변 사람들한테도 물었는데, 다들 사망자를 모른다고 했고요.”고다정이 테이블 위의 마이크를 집어 들며 간단하게 답했다.하지만 기자들은 그 답안에 만족하지 못했고, 다시금 이어 물었다.“사모님은 진짜로 사망자와 모르는 사이인가요? 만약 진짜 모르는 사이라면, 사망자는 왜 아무 이유 없이 자기 죽음으로 사모님을 모함하는 거죠?”“…”그 질문을 들은 고다정은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 침묵했다.만약 배후에서 누가 지시했다고 하면, 기자들은 배후의 그가 누구인지, 증거는 어디 있는지 계속 물을 것이다.이 질문이야말로 그녀가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한참 동안 아무런 답이 없는 고다정을 본 기자들은 그걸 핑계로 따져 묻기 시작했다.“왜 조금 전 질문에 대해 답을 해주지 않는 거죠?”“이유에 대해 찾지 못한 건가요?”“조금 전 사모님이 답한 건 거짓인가요? 사실 사모님과 사망자는 서로 아는 사이인 거죠?”그들 질문
한동안 인터넷에는 전부 고다정에 대한 사과뿐이었다. 심지어 이 일로 인해 하락하였던 여씨 그룹 주식도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상황이 좋게 역전된 걸 본 구남준은 이 소식을 얼른 여준재와 고다정에게 알려주었다.이윽고 구남준이 웃으며 말했다.“인터넷에서 어떤 사람들은 사모님네 연구소에 장식 재료를 보내주겠대요.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공짜로 사모님네 연구소를 장식해 주겠다는 분들도 있고요. 사모님이 계속하여 연구소를 하면서 더욱 가성비도 좋은 약을 만들어 달래요.”그 말을 들은 고다정은 다소 혼란스러웠다.전에 그녀를 욕한 것도 이 네티즌들이었고, 현재 지지하는 것도 그 네티즌들이니 말이다.진짜 말 그대로 아주 변덕스럽기 그지없다.그런 고다정의 마음을 눈치라도 챈 듯 여준재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네티즌들 신경 쓸 필요 없어요. 그냥 다정 씨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요.”“네, 저도 알아요.”고다정은 여준재를 향해 달콤하게 웃어 보였다.여준재와 고다정이 옆에 있는 사람은 신경 쓰지 않고 서로 알콩달콩한 분위기를 뽐내자, 구남준은 두 사람만 남겨두고 사무실을 나갈 준비를 했다.다만 그가 나가기도 전에 갑자기 채성휘가 깨어났다는 병원에서의 전화가 걸려 왔다.그는 전화를 끊고 얼른 그 소식을 고다정에게 알려줬다.“사모님, 금방 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채성휘가 깨어났대요.”“진짜요?”고다정은 기쁜 마음으로 그를 쳐다봤다.그녀는 구남준이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고개를 돌려 여준재에게 말했다.“나 병원 좀 갔다 올게요. 가서 채 선생님께 무슨 일이 생겼는지도 묻고요.”“그럼 나도 같이 가요.”고다정의 말에 여준재는 바로 같이 가주겠다고 답했다.비록 고다정이 채성휘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걸 알고는 있어도, 채성휘가 고다정의 관심에 괜히 마음이 생길까 봐 겁이 났다.하지만 고다정은 그의 생각은 눈치채지 못한 채 머뭇거리며 답했다.“나랑 같이 가면 회사 쪽 일은 어쩌려고요?”“괜찮아요. 구 비서가 있는데요, 뭘.”
누가 봐도 대답을 회피하고 있는듯한 친구를 보며 고다정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녀는 조금 전 임은미가 물은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오히려 계속하여 캐물었다.“은미야, 혹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내가 도울 거라도 있어?”그 말에 임은미는 잠시 멈칫하더니 곧 다시 무언가가 생각난 듯 어색한 모습으로 괜찮은 척 웃어 보였다.“내가 뭔 일이 있겠어. 나 진짜 아무런 일도 없으니까, 나보다는 너를 더 걱정하는 건 어때? 할머니한테서 들어보니 이번 일은 배후에서 누가 지시한 거라며? 그 배후는 찾았어?”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친구를 보며 고다정은 그녀가 무언가는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걸 눈치챘지만 더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어쨌든 누구한테나 말 못 할 비밀은 있는 거니 말이다.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고다정이 그녀의 말에 답했다.“그거 관련해서는 경찰 측에서 아직 아무런 소식도 없어. 찾기 어려운가 봐.”이미 며칠이나 지났지만, 경찰서에서는 어떠한 단서도 없었기에 그녀는 이미 희망 따위는 품고 있지 않았다.그 말에 임은미가 깜짝 놀라 하며 물었다.“여준재 씨 쪽에도 아무런 소식이 없는 거야?”“없어.”고다정이 고개를 저으며 답하자, 임은미가 혀를 끌끌 찼다.“여준재 씨도 거기에 대해 단서를 찾지 못한 거면, 상대 쪽도 여준재 씨와 막상막하 아니야? 너 앞으로 조심해, 아니면 그 연구소 일은 멈추는 거 어때? 전에 보니 네가 개발한 그 약들이 너무 좋은 정도까지는 아니더구먼. 그러니 이제는 할머니와 두 아이한테 더 신경 쓰는 건 어때? ”그녀가 이 말을 하는 이유 또한 고다정의 안전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다.임은미가 봤을 때, 여준재도 찾아내지 못한 배후면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닐 거 같았다. 그녀는 자기 친구가 어렵게 얻은 좋은 생활을 망치지 않았으면 했다. 고다정 또한 그녀의 뜻에 대해 잘 알고 있다.사실 임은미가 조금 전 말했던 일은 고다정도 생각을 해봤던 일이다. 다만 달갑지 않을 뿐이다.연구소는 비록 스승님이 그녀더러 관리해달라고 부탁한
그렇게 고다정은 거의 저녁까지 바쁘게 움직이며 자료들을 정리했다.그 시각, 여준재가 두 아이를 데리고 돌아왔다.한 가족이 온화하게 저녁 식사를 마친 뒤, 고다정은 두 아이와 조금 놀아주었다.전에 연구소 일 때문에 두 아이와 별로 놀아주지 못한지라, 이번 기회를 빌려 그걸 다 채워줄 셈이었다. 다행히 두 아이는 그녀에 대해 불만 없이 아주 얌전했다.빨간 석양 아래 정원을 걷고 있는 한 가족은 그림 속의 화면처럼 아름다웠다.두 아이는 손을 잡은 채 뛰어다니며 고다정과 여준재를 향해 말했다.“아빠, 엄마. 우리 숨바꼭질해요.”그들은 아이들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한참 뒤, 정원에서는 두 아이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소리는 해가 진 후에야 사라졌다.고다정은 두 아이를 씻기고 잠들기 전 이야기도 해준 뒤에야 아이들 방을 나갔다.아이들 방에서 나온 그녀는 안방으로 가지 않고 오히려 서재로 갔다.서재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책상 앞에 앉은 여준재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여기 있을 줄 알았어요.”“아이들은 자요?”여준재가 부드럽게 고개를 들어 그녀를 향해 물었다.고다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답했다.“네, 자요.”말을 마친 뒤 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대화 주제를 돌리며 재차 입을 열었다.“내일 채 선생님이 퇴원하는데 저 가보려고요. 준재 씨도 저랑 같이 갈래요?”고다정이 그렇게 물은 이유는 여준재가 또 알 수 없는 질투심에 불탈까 봐 걱정돼서이다.하지만 그 제안을 동의할 줄 알았던 여준재가 예상외로 거절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저 내일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같이 가줄 수 없어요.”여준재도 같이 가고 싶었지만, 현실이 그걸 허락해 주는 건 아녔다.고다정도 의외이긴 했지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쨌든 일이 중요하니 말이다.이윽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에 연구소가 겨냥당한 일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다.“벌써 며칠이 지났는데도 경찰 측에서는 아무런 단서가 없어요. 제 생각에는 단서를 못 찾을 것 같아요. 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