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성휘의 행방을 알아낸 후, 여준재는 즉시 사람을 보내 구출했다.그런데도 채성휘는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았다.응급실로 이송됐을 때는 40도 고열에다 머리에 타박상을 입었는데 녹슨 금속에 상처가 난 후 감염됐다.이 소식을 들은 고다정은 여준재와 함께 황급히 병원으로 달려갔다.고다정은 걱정돼서 복도에서 끝없이 왔다갔다했다.의사인 그녀는 녹슨 금속에 상처가 난 후 감염되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안다.여준재는 고다정이 자기 앞에서 다른 남자를 걱정하자 단지 책임 때문인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다소 불편했다.하지만 그는 지금 질투할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녀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겨서 어이없는 듯 말했다.“당신이 너무 왔다갔다해서 어지럼증이 나요. 채성휘는 괜찮을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그리고 안에 있는 의사들이 그를 구할 수 없으면 운산 최고 명의인 당신이 있잖아요.”“지금이 어느 때인데 나한테 농담해요?”고다정은 그를 째려보았지만 그래도 위로는 좀 됐다.녹슨 금속에 상처를 입은 후 감염되면 좀 까다롭긴 하지만 현재의 의료수준으로 치료할 수 없는 것은 아니며, 기껏해야 후유증이 남기 쉬울 뿐이다. 하지만 그녀와 스승님이 있는 한 채성휘에게 그런 상황이 나타나게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다행히 30분 후 응급 처치가 끝났다.의사와 간호사가 혼수상태인 채성휘를 응급실에서 밀고 나왔다.“치료는 잘됐어요. 상처 부위의 녹은 깨끗이 씻어냈고, 앞으로 상처 부위에 2차 감염이 나타나지 않게 주의하면 후유증이 없을 겁니다.”주치의가 채성휘의 상황을 대충 설명했다.고다정은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뒤이어 주치의는 몇 마디 당부하고는 간호사더러 채성휘를 병실로 옮기라고 했다.모든 것을 처리하고 나니 거의 점심이 됐다.여준재는 시간을 보더니 아침 일찍 경찰서에 가느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것이 생각나서 먼저 입을 열었다.“이쪽은 간호사더러 지키라 하고 우리 먼저 식사하러 가요. 오후에 기자회견도 해야 하니 좋은 정신상태를 유지해야죠.”사건 조사가 이미
발표회는 계속 진행 중이다.모든 기자는 잇달아 스크린을 향해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고 있었다.이윽고 구남준이 계속하여 말했다.“모두 다 보고서에서 보았다시피, 사망자는 알 수 없는 독으로 인해 사망했습니다. 게다가 이런 독은 사망자의 시체가 어떤 독에 중독되었는지 맨눈으로 보이지도 않고요.”“그렇다면 유족이 초심연구소를 의도적으로 음해한 것인가요?”한 기자가 묻자, 구남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굉장히 좋은 질문입니다. 다음은 형사님이 여러분께 사건에 대해 설명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마이크를 여준재 옆에 있는 형사에게 건네주었다.“이 사건에 관하여 유족의 자백에 의하면, 그들은 사망자의 사주를 받아 사망자가 죽은 후에 초심연구소를 고발하여 배상금을 요구하게 했습니다.”형사님이 대개 적으로 상황에 관해 설명했다.기자들은 이를 듣고 의구심을 품으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그러면 사망자는 왜 초심연구소를 모함하는 건가요? 사모님과 사망자 사이에 원한이라도 있나요?”“사망자와 관련해서 저는 모르는 사이입니다. 주변 사람들한테도 물었는데, 다들 사망자를 모른다고 했고요.”고다정이 테이블 위의 마이크를 집어 들며 간단하게 답했다.하지만 기자들은 그 답안에 만족하지 못했고, 다시금 이어 물었다.“사모님은 진짜로 사망자와 모르는 사이인가요? 만약 진짜 모르는 사이라면, 사망자는 왜 아무 이유 없이 자기 죽음으로 사모님을 모함하는 거죠?”“…”그 질문을 들은 고다정은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몰라 침묵했다.만약 배후에서 누가 지시했다고 하면, 기자들은 배후의 그가 누구인지, 증거는 어디 있는지 계속 물을 것이다.이 질문이야말로 그녀가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한참 동안 아무런 답이 없는 고다정을 본 기자들은 그걸 핑계로 따져 묻기 시작했다.“왜 조금 전 질문에 대해 답을 해주지 않는 거죠?”“이유에 대해 찾지 못한 건가요?”“조금 전 사모님이 답한 건 거짓인가요? 사실 사모님과 사망자는 서로 아는 사이인 거죠?”그들 질문
한동안 인터넷에는 전부 고다정에 대한 사과뿐이었다. 심지어 이 일로 인해 하락하였던 여씨 그룹 주식도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상황이 좋게 역전된 걸 본 구남준은 이 소식을 얼른 여준재와 고다정에게 알려주었다.이윽고 구남준이 웃으며 말했다.“인터넷에서 어떤 사람들은 사모님네 연구소에 장식 재료를 보내주겠대요.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공짜로 사모님네 연구소를 장식해 주겠다는 분들도 있고요. 사모님이 계속하여 연구소를 하면서 더욱 가성비도 좋은 약을 만들어 달래요.”그 말을 들은 고다정은 다소 혼란스러웠다.전에 그녀를 욕한 것도 이 네티즌들이었고, 현재 지지하는 것도 그 네티즌들이니 말이다.진짜 말 그대로 아주 변덕스럽기 그지없다.그런 고다정의 마음을 눈치라도 챈 듯 여준재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네티즌들 신경 쓸 필요 없어요. 그냥 다정 씨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돼요.”“네, 저도 알아요.”고다정은 여준재를 향해 달콤하게 웃어 보였다.여준재와 고다정이 옆에 있는 사람은 신경 쓰지 않고 서로 알콩달콩한 분위기를 뽐내자, 구남준은 두 사람만 남겨두고 사무실을 나갈 준비를 했다.다만 그가 나가기도 전에 갑자기 채성휘가 깨어났다는 병원에서의 전화가 걸려 왔다.그는 전화를 끊고 얼른 그 소식을 고다정에게 알려줬다.“사모님, 금방 병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채성휘가 깨어났대요.”“진짜요?”고다정은 기쁜 마음으로 그를 쳐다봤다.그녀는 구남준이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고개를 돌려 여준재에게 말했다.“나 병원 좀 갔다 올게요. 가서 채 선생님께 무슨 일이 생겼는지도 묻고요.”“그럼 나도 같이 가요.”고다정의 말에 여준재는 바로 같이 가주겠다고 답했다.비록 고다정이 채성휘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다는 걸 알고는 있어도, 채성휘가 고다정의 관심에 괜히 마음이 생길까 봐 겁이 났다.하지만 고다정은 그의 생각은 눈치채지 못한 채 머뭇거리며 답했다.“나랑 같이 가면 회사 쪽 일은 어쩌려고요?”“괜찮아요. 구 비서가 있는데요, 뭘.”
누가 봐도 대답을 회피하고 있는듯한 친구를 보며 고다정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녀는 조금 전 임은미가 물은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오히려 계속하여 캐물었다.“은미야, 혹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지? 내가 도울 거라도 있어?”그 말에 임은미는 잠시 멈칫하더니 곧 다시 무언가가 생각난 듯 어색한 모습으로 괜찮은 척 웃어 보였다.“내가 뭔 일이 있겠어. 나 진짜 아무런 일도 없으니까, 나보다는 너를 더 걱정하는 건 어때? 할머니한테서 들어보니 이번 일은 배후에서 누가 지시한 거라며? 그 배후는 찾았어?”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친구를 보며 고다정은 그녀가 무언가는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걸 눈치챘지만 더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어쨌든 누구한테나 말 못 할 비밀은 있는 거니 말이다.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고다정이 그녀의 말에 답했다.“그거 관련해서는 경찰 측에서 아직 아무런 소식도 없어. 찾기 어려운가 봐.”이미 며칠이나 지났지만, 경찰서에서는 어떠한 단서도 없었기에 그녀는 이미 희망 따위는 품고 있지 않았다.그 말에 임은미가 깜짝 놀라 하며 물었다.“여준재 씨 쪽에도 아무런 소식이 없는 거야?”“없어.”고다정이 고개를 저으며 답하자, 임은미가 혀를 끌끌 찼다.“여준재 씨도 거기에 대해 단서를 찾지 못한 거면, 상대 쪽도 여준재 씨와 막상막하 아니야? 너 앞으로 조심해, 아니면 그 연구소 일은 멈추는 거 어때? 전에 보니 네가 개발한 그 약들이 너무 좋은 정도까지는 아니더구먼. 그러니 이제는 할머니와 두 아이한테 더 신경 쓰는 건 어때? ”그녀가 이 말을 하는 이유 또한 고다정의 안전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다.임은미가 봤을 때, 여준재도 찾아내지 못한 배후면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닐 거 같았다. 그녀는 자기 친구가 어렵게 얻은 좋은 생활을 망치지 않았으면 했다. 고다정 또한 그녀의 뜻에 대해 잘 알고 있다.사실 임은미가 조금 전 말했던 일은 고다정도 생각을 해봤던 일이다. 다만 달갑지 않을 뿐이다.연구소는 비록 스승님이 그녀더러 관리해달라고 부탁한
그렇게 고다정은 거의 저녁까지 바쁘게 움직이며 자료들을 정리했다.그 시각, 여준재가 두 아이를 데리고 돌아왔다.한 가족이 온화하게 저녁 식사를 마친 뒤, 고다정은 두 아이와 조금 놀아주었다.전에 연구소 일 때문에 두 아이와 별로 놀아주지 못한지라, 이번 기회를 빌려 그걸 다 채워줄 셈이었다. 다행히 두 아이는 그녀에 대해 불만 없이 아주 얌전했다.빨간 석양 아래 정원을 걷고 있는 한 가족은 그림 속의 화면처럼 아름다웠다.두 아이는 손을 잡은 채 뛰어다니며 고다정과 여준재를 향해 말했다.“아빠, 엄마. 우리 숨바꼭질해요.”그들은 아이들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한참 뒤, 정원에서는 두 아이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소리는 해가 진 후에야 사라졌다.고다정은 두 아이를 씻기고 잠들기 전 이야기도 해준 뒤에야 아이들 방을 나갔다.아이들 방에서 나온 그녀는 안방으로 가지 않고 오히려 서재로 갔다.서재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책상 앞에 앉은 여준재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여기 있을 줄 알았어요.”“아이들은 자요?”여준재가 부드럽게 고개를 들어 그녀를 향해 물었다.고다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답했다.“네, 자요.”말을 마친 뒤 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대화 주제를 돌리며 재차 입을 열었다.“내일 채 선생님이 퇴원하는데 저 가보려고요. 준재 씨도 저랑 같이 갈래요?”고다정이 그렇게 물은 이유는 여준재가 또 알 수 없는 질투심에 불탈까 봐 걱정돼서이다.하지만 그 제안을 동의할 줄 알았던 여준재가 예상외로 거절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저 내일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같이 가줄 수 없어요.”여준재도 같이 가고 싶었지만, 현실이 그걸 허락해 주는 건 아녔다.고다정도 의외이긴 했지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쨌든 일이 중요하니 말이다.이윽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에 연구소가 겨냥당한 일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다.“벌써 며칠이 지났는데도 경찰 측에서는 아무런 단서가 없어요. 제 생각에는 단서를 못 찾을 것 같아요. 혹
전화기 너머로의 소리가 너무 다급했던지라 고다정은 무의식적으로 답을 했다.“자료는 아직 있어요. 그때 시간이 아직 남은 것 같아서 몰래 사무실에 돌아가 중요한 자료는 전부 빼 왔어요.”“자료가 아직 있으면 됐어.”그 말에 고다정의 스승 성시원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때 고다정도 그제야 뭔가를 깨우친 듯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선생님의 말씀은 우리 연구실의 사람들을 모함한 게 특효약 자료를 위해서라는 건가요?”그 말을 들은 성시원은 한참을 침묵했다. 그 모습에 고다정도 전혀 조급해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그녀는 스승님이 꼭 자신한테 답변을 줄 거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한참의 침묵 끝에, 성시원은 결정을 내린 듯 입을 열었다.“미안하다, 다정아. 내가 너한테 이렇게 폐를 끼칠 줄 몰랐어. ”“선생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괜히 저랑 소원해 보이잖아요.”고다정은 다소 불만족스러운 듯 답했다.그러자 성시원은 한숨을 내쉬더니, 오히려 대화 주제를 돌리며 다시금 사과의 인사를 전했다.“그리고 내 신분에 대해서도 널 속였어. 너 은둔 가문이라고 들어봤니?”“네, 들어봤어요. 그래서 선생님은 은둔 가문의 사람이란 말씀이시죠?”비록 그렇게 묻긴 했지만, 그녀는 사실 그 답에 대해 알고 있다.곧이어 성시원의 목소리가 다시금 울려 퍼졌다.“난 은둔 가문 성씨 집안의 주인 성시원이야.”말을 마친 뒤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금 자책감에 빠졌다.“이번 일은 내가 널 끌어들인 것이다. 원래는 너까지 끌어들일 생각이 없었는데 이 특효약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너무도 중요한 거라… 난 이미 해외 세력과 기타 은둔 가문에게 찍혔어. 그래서 사적으로 연구를 할 방법이 없어 널 부른 거야. 만약… 겁이 난다면 여기서 발 빼도 돼. 너 뭐라 하지 않을 테니까 그냥 이 일은 없던 일로 하고 연구소도 해산시켜. 특효약에 대해서는 또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 테니까.”“선생님, 이 제자를 너무 얕잡아 보는 거 아닌가요?!”그녀는 성시원이 자신을 일부
전화를 끊은 뒤, 고다정은 한 절반 멍해진 상태였다.한 통의 전화를 하는 사이에 갑자기 신분이 하나 더 생겨날 줄 생각지도 못했으니 말이다.하지만 스승님이 그녀를 제자의 신분으로 인정 해줬을 뿐만 아니라, 귀국 후 정식으로 선포하겠다고 한 말이 그녀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여준재는 그런 고다정을 신기한 듯 바라보며 눈썹을 치켜세웠다.“대체 선생님이랑 어떤 이야기를 했기에 표정이 이렇게 복잡해 보여요?”“선생님이 절 정식 제자로 받아주셨어요.”고다정은 신나서 그 사실을 여준재에게 공유했다.그러자 여준재는 미간을 살짝 펴 보였다.“연구소 일 때문에요?”“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요.”고다정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가로 저어 보였다.스승님이 본인과의 대화는 여준재에게 알려줘도 된다고 했기에, 그녀는 여준재가 묻기도 전에 적극적으로 그 일에 관해 설명했다.“지금까지 저를 정식 제자로 삼을지 말지 고민 많이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가 이번 연구소에서 발생한 일 때문에, 제 몸에서 강인함과 두려움 없는 모습을 보았대요. 그래서 저를 정식 제자로 삼아 후계자로 만들 예정이래요.”말이 끝나기 바쁘게 여준재는 미간을 찌푸려 보였다.“다정 씨 스승님 신분에 대해서는 물어봤어요?”“네, 물어봤어요.”고다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스승님의 정보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선생님은 은둔 가문의 성씨 집안 가주래요. 성함은 성시원 이고요.”그 이름을 들은 여준재는 깜짝 놀라 물었다.“그 사람이라고요?!”“왜요? 제 스승님에 대해서 들어본 적 있어요?”고다정은 여준재의 심상치 않은 표정을 보며 눈을 깜빡이며 바라봤다.그 말을 들은 여준재도 고다정을 바라보며 눈빛에는 복잡함이 가득했다.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힘들게 찾던 신의가 이렇게 가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다정 씨네 스승님 이름은 국내에서도 모르는 사람 몇 없을걸요.”“아, 선생님이 그렇게나 대단해요?”고다정이 깜짝 놀라 묻자, 여준재는 바보 같은 그녀의 모습에 웃어 보였다.
고다정도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 걸 느끼고는 괜히 찔려서 물었다.“화났어요?”“다정 씨가 봤을 때는요?”여준재가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자, 고다정이 답했다.“이건 그냥 가짜에 불과해요. 내가 특효약을 개발 완료하고, 이 위기만 넘기면 우리 다시 합치면 되는 거잖아요.”여준재는 끝까지 헤어진 척하자며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그녀를 보며 더욱 표정이 굳어졌다.그는 단숨에 고다정의 손목을 잡아 품으로 끌며 강압적으로 그녀가 자신을 보게 했다. 그러고는 한 글자씩 또박또박 그녀에게 말해줬다.“그게 가짜라 할지언정, 그래도 안 돼요!”그녀는 그제야 여준재가 화났다는 것을 느끼며 낮은 목소리로 자신을 위해 변명했다. “저도 모든 사람을 위해서 그런 거라고요.”“그렇게 약혼자에게 자신이 없어요? 내가 한 가족도 지키지 못할 것 같냐고요?”여준재가 답하자 고다정이 진지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준재 씨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에요. 그리고 준재 씨가 저를 보호할 능력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요. 하지만 준재 씨만 저를 위해 생각하는 게 아니라, 저도 준재 씨를 위해 생각하고 전체 여씨 그룹을 위해 생각하는 거라고요. 특히 이번은 상대가 어떻게 손을 썼는지도 우리는 모르고 있잖아요. 우린 이미 다른 사람의 계략에 말려든 거라고요. ”그 말에 여준재는 감동하였다.이윽고 그는 고다정의 두 손을 잡으며 조용히 말했다.“그러니 우리 더욱더 마음을 합쳐야 한다고요. 그리고 혹시나 헤어진 척했다가 다정 씨한테 일이라도 생겨봐요. 제가 그걸 처리해 줄 수도 없잖아요? 제가 도와주면 그 배후의 능력으로 단번에 우리가 헤어진 척 연기를 했다는 걸 알 수 있을 텐데, 그러면 이게 의미가 없잖아요.”그 말에 고다정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왜냐하면, 여준재가 한 말이 너무도 정확한 말이었기 때문이다.그러다가 그녀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그의 말에 답했다.“그래요, 그 말은 제가 안 한 거로 해요.”그 모습을 본 여준재는 화가 나기도 하며 웃기기도 했다.하지만 그래
“하윤 씨, 좋아해요. 제 여자친구가 되어줄래요?”임지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여자애를 바라보며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하윤은 잠깐 얼떨떨해하더니 이내 환한 웃음을 지었다.“네.”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예쁜 미소를 보고 임지호도 해맑게 웃었다.햇빛 아래 선남선녀는 너무 잘 어울렸다.임은미와 고다정은 구석에 숨어 이를 지켜보며 들떠서 소곤거렸다.“하윤이 저렇게 활짝 웃는 걸 보니 서로 고백한 것 같아.”“고백한 게 맞아. 둘이 같이 앉은 걸 봐.”“역시 내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어. 내가 나서면 안 맺어지는 커플이 없다니까.”임은미는 마침내 자화자찬하기 시작했다.고다정은 그녀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 저 남자애가 하윤을 좋아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모하게 나섰다가 맺어주는 게 아니라 끝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한참 더 보다가 호기심이 충족된 듯 제대로 자리에 앉아 요리를 주문했다.기왕 온 김에 뭘 좀 먹어야지.식사하면서 고다정이 감탄했다.“애들이 어느새 커서 애인까지 생겼네.”“그러게. 우리도 늙었어.”임은미도 같이 탄식했다.뒤이어 그녀는 맞은편의 절친을 바라보며 물었다.“앞으로 무슨 계획 있어?”“보름 동안 쉬면서 준재 씨랑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후 새로운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거야.”고다정은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임은미는 이 말을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너 점점 일벌레가 되어가는 것 같다.”“그건 내가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야.”고다정이 웃으면서 말했다.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청아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전을 때렸다.“여하준 씨, 거기 서요.”이 소리를 듣고 눈빛을 주고받는 고다정과 임은미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이런 우연이! 이 작은 레스토랑에서 두 남매를 모두 만난다고?’하윤도 너무 뜻밖이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하준 쪽을 바라보았다.“오빠?!”“하윤?!”여하준도 이때 하윤과 그 옆의 청년을 발견하고 미간을
하윤은 정말 돌아오지 않았다.하민이 가지 못하게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여준재에게는 무척 즐거운 밤이었다....이튿날 아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금빛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이불 밖에 나온 고다정의 피부에 내려앉았다.피부에 생긴 흔적에서 어젯밤에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여준재는 일찍 깼지만 아침의 따스함을 놓치기 싫어 고다정을 안고 만족스럽게 침대에 누워있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누군가가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엄마, 일어나요.”하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여준재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자식은 빚쟁이라는 말이 맞다. 이전에 좋아했던 만큼 지금은 싫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품속의 여인이 깨어났다.고다정이 정신이 흐릿한 상태로 물었다.“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려요?”“하윤이에요. 내가 돌려보낼 테니 자요.”여준재가 그녀를 풀어주고 일어나려 했다. 너무 졸렸던 고다정은 막지 않았다.그녀는 오후까지 자고 임은미가 전화해서야 겨우 일어났다.30분 후 두 사람은 시내 중심의 쇼핑몰에서 만났다.임은미는 잠이 덜 깬 것 같은 고다정을 보고 놀려댔다.“너랑 여 대표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좀 절제해.”“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너도 절제해. 목에 난 흔적이 가려지지도 않아.”지금의 고다정은 약간 야한 농담에도 얼굴을 붉히던 10년 전의 고다정이 아니다.지금의 그녀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역습한다.임은미도 말문이 막히지 않았나.그녀는 채성휘와 자주 싸우지만 둘 사이의 감정에는 조금도 영향이 없었다.그녀가 코웃음을 쳤다.“네가 이겼어. 이제 너를 쉽게 놀리지 못하겠어.”그녀는 말하면서 고다정과 어느 가게에 들어갈지 사방을 둘러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다정아, 저기 하윤이 아니야?”“하윤이?”고다정이 놀라며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정말 멀지 않은 곳의 레스토랑에 하윤과 깔끔해 보이는 잘생긴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이 말을 들은 하윤은 즉시 고다정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저, 오빠, 그리고 이모 세 사람 외에 또 있어요?”그녀는 의문스레 고다정을 쳐다보았다. 설마 그때 아빠, 엄마를 맺어주려고 애쓴 사람이 또 있나?그런데 그녀가 말하자마자 고다정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일 줄이야.“그래, 너와 오빠, 이모가 도와준 걸 말하는 거야. 그때 너희 셋이 나랑 너희 아빠를 맺어주려고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어? 그러니까 너 혼자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다니면 이뤄지기 힘들지 않겠어?”“좀 일리가 있네요.”갑자기 엄마한테 설득당한 하윤이 무심코 말했다.“그럼 엄마랑 이모가 좀 방법을 생각해 주세...”‘요’자를 내뱉기 전에 그녀는 씩씩거리며 또 한 번 엄마를 째려보았다.“또 엄마한테 걸려들었어요.”고다정은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어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계집애, 어렸을 때와 똑같이 잘 속아.”그녀는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나왔다.이를 보고 화가 난 하윤이 손을 뻗어 고다정을 간지럽히려 했다.“엄마 나빠요.”그렇게 모녀는 온천에서 웃고 떠들었다.이쪽의 따뜻한 분위기와 달리 남자 노천탕은 썰렁했다.“자식, 어렸을 때는 귀여웠는데 크면 클수록 얄미워.”옆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여준재는 눈앞의 두 아들이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렸다.하준이 판에 박은 것 같이 똑같은 표정으로 아빠를 힐끗 쳐다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피차일반입니다.”하민은 형과 아빠가 티격태격하자 조용히 구석에 숨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지위가 가장 낮다는 것을 알았다.여준재는 막내아들의 속마음을 모른 채 자기한테 말대꾸하는 큰아들을 보며 문득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허구한 날 남의 마누라를 생각하지 말고 네 마누라를 찾아. 아니면 네 할머니한테 맞선을 주선하라고 할까?”그렇다. 여준재가 생각해 낸 방법은 하준을 결혼시키는 것이다.‘이 자식이 자기 마누라가 생기면 더 이상 내 마누라를 생각하지 않겠지.’하준이 그의 생각을 모를
그날 저녁 여씨 삼남매는 결국 남아서 고다정을 축하해 주었다.식사가 끝난 후 임은미는 두 딸을 데리고 떠나갔다.가기 전에 그녀는 고다정과 내일 오후에 같이 쇼핑하기로 약속했다.임은미를 보낸 후 다섯 식구는 남녀가 분리된 온천 노천탕에 갔다.고다정은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느긋한 시간을 보낸 게 얼마 만인가.그녀가 눈을 감고 즐기고 있을 때 어깨 위에 갑자기 손이 올라오더니 그녀의 어깨를 주물렀다.고개를 돌려 보니 둘째 딸이 그녀의 뒤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엄마...”“왜?”고다정이 나지막이 묻자 하윤이 바짝 붙으며 말했다.“엄마가 아빠한테 사정 좀 해 주시면 안 돼요?”그녀는 고다정의 환심을 사려고 방긋 웃었다.“오늘 엄마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는 아빠의 계획을 제가 망쳤으니 아빠가 틀림없이 내일 저한테 일을 시킬 거예요.”그녀가 이렇게 단언하는 원인은 그동안 이런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학교 다닐 때는 그녀가 엄마한테 너무 달라붙는다고 아빠가 그녀를 속여 공부를 많이 시켰다.후에 점차 크고 오빠가 폭로해서야 그녀는 아빠의 꾀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고다정은 고민 가득한 딸애 얼굴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이 계집애는 어릴 때부터 말을 잘 듣지 않았는데, 매번 아빠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결국 비참하게 혼쭐이 나고 불쌍한 모습으로 엄마를 찾아왔다.“이제야 두려워? 이모를 꼬드길 때는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생각 안 했어?”“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엄마가 원래 여가 시간이 많지 않은데 아빠가 항상 엄마를 차지하니까.”계집애는 말하면서 고다정의 어깨를 껴안고 또 응석을 부렸다.애교 공세에 당할 수 없는 고다정은 이내 동의했다.하윤은 기쁜 나머지 고다정을 안고 뽀뽀하더니 배시시 웃었다.“역시 엄마밖에 없어요.”“너도 참, 빨리 온천에 몸을 담가.”고다정이 말하면서 그녀를 잡아당겨 노천탕에 앉혔다.그러나 하윤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그녀는
한편, 서쪽 외곽에 위치한, YS그룹에서 개발한 온천 리조트에 세련된 곡선미를 자랑하는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도착했다.차가 천천히 입구에 멈춰 서더니 검은색 수작업 맞춤 양복을 입은 여준재가 차에서 뛰어내렸다.똑바로 선 후 그는 돌아서서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차 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준수한 얼굴에서는 꿀 뚝뚝 다정함이 넘쳐흘렀다.“부인, 도착했습니다.”검은색 여성 정장 차림의 고다정이 가늘고 예쁜 손을 우아하게 여준재의 손바닥 위에 얹더니 차에서 내렸다.지금의 그녀는 풋풋함을 벗은 대신 카리스마와 여유가 넘쳤다.옆에 있던 매니저가 알랑거리며 그녀를 맞이했다.“사모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건 저와 직원들의 작은 성의입니다. 인류 의학에 공헌한 사모님께 감사드립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넸다.사방에서 박수와 축하가 쏟아졌다.“축하드립니다, 사모님.”“사모님, 진짜 대단하십니다!”“사모님은 제 롤모델입니다!”이 말을 듣고 고다정은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옆에 서 있는 여준재도 눈에 자랑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뒤이어 두 사람은 매니저의 안내로 룸에 들어섰다.룸에는 이미 고다정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두 사람이 오붓하게 식사하고 있을 때 가방 속에 있는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임은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은미야, 무슨 일이야?”고다정이 전화를 받았다.옆에 있던 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고다정을 쳐다보던 그는 그녀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고다정의 표정을 보니,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제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은미가 축하 파티를 준비했다고 오래요.”“은미 씨는 인터넷을 안 본대요?”여준재가 답답한 듯 한마디 했다. 그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분명 고다정은 그의 아내인데, 지난 12년간 그는 아내와 단둘이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궐에서 전하를 만나는 것보다 어려웠다.안팎에 강적이 있는 데다 고다정이 그동안 암세포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느새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12년간 지도층이 바뀌고, 많은 연예인이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심지어 국제 정세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등 많은 일들이 발생했지만 여준재와 고다정의 애정 전선은 변함이 없었다.현재 두 사람은 주변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잉꼬부부가 됐다.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금실이 좋은 것도 있지만 잘생기고 철이 든 아들딸을 두었기 때문이다.지금 여씨 가문의 큰 도련님, 아가씨, 작은 도련님 얘기가 나오면 엄지척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특히 여하준은 19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도와 두 회사를 관리하고 있다.물론 여하윤도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의 콘서트홀에서 연주했을 정도로 뛰어나다.그리고 여씨 가문의 작은 도련님은 형, 누나만큼 대단하지는 않지만 어려서부터 말솜씨가 좋아 많은 귀염을 받았고, 지금은 연예계 인기 아역 스타다....운산공항 로비의 스크린에 최신 국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12년 만에 암세포를 죽이는 약을 개발해 낸 고다정 교수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는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연구 성과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암을 두려워할 필요도, 암 얘기에 놀랄 필요도 없게 됐습니다.”뉴스 진행자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최근 몇 년 고다정 연구팀의 약물 연구 덕분에 암세포 억제제가 꾸준히 개진되긴 했지만 암세포를 철저히 소멸할 수는 없어 암에 걸린 후 결국 치료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이 뉴스는 방송되자마자 많은 행인의 주의를 끌었다.인터넷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고다정에 대한 축복이 쏟아졌다.[고 원장님이 해낼 줄 알았어!][너무 기쁜데 어떡하지? 우리나라를 빛낸 고 원장님을 지지하기 위해 약방에 가서 그 회사 약들을 대량 구매할 거야.][나도. 우리 집에는 환자가 없지만 이 약들을 필요한 기관에 기증할 수 있어!][하하하, 속이 다 시원하네. 그때 고 원장님이 안 된
열 몇 시간 후 비행기는 드디어 평온하게 착륙했다. 여준재가 낮은 소리로 옆에서 달게 자는 아내를 깨웠다.“여보, 일어나요.”그 소리에 고다정이 눈을 뜨더니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낯선 환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여기 어디예요?”“아직 비밀이에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알 거예요.”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비행기에서 내린 후 공항을 나섰다.그들을 마중 나온 차량이 벌써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탄 후 고다정이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 지금 어디 가요?”“먼저 밥 먹으러 가요. 지금 너무 배고프죠?”여준재가 기사에게 근처의 가장 좋은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말했다.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할 때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다 이렇게 장시간 비행한 까닭에 확실히 배가 고팠다.레스토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룸에 들어갔다.주문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레스토랑 직원이 예쁘게 플레이팅된 음식들을 들여왔다.훈훈하고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여준재가 고다정의 식사를 챙겼다.이때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국내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엄마, 아빠랑 같이 어디 갔어요?”쌍둥이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이 목소리를 들은 고다정은 갑자기 뜨끔했다.“컥컥, 엄마랑 아빠가 일이 있어서 외출했어. 며칠 뒤에 돌아오니까 집에 얌전히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잘 듣고. 알았지?”“흥! 엄마랑 아빠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몰래 나간 거잖아요.”쌍둥이가 직접 고다정의 거짓말을 폭로했다.고다정은 무안해하며 도와달라는 듯 여준재를 바라보았다.당연히 아내 편인 여준재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말했다.“아빠와 엄마가 신혼여행 중이야. 돌아갈 때 너희 선물을 사 갈게.”말하고 나서 그는 직접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 건너편에서 신호가 끊긴 스마트워치를 바라보는 쌍둥이의 앳된 얼굴에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아빠 나빠.”“너무 나빠!”쌍둥이는 아빠한테 잔뜩 화가 났다.이때 임은미가 오더니 그들의 안색이 안 좋은
이 말이 나오자 고다정과 임은미는 서로 마주 보며 웃더니 손을 잡고 무대 옆으로 나와 하객들을 등지고 섰다.“부케를 받은 사람은 내년에 솔로 탈출합니다.”두 사람이 부케를 던진 후 뒤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부케를 누가 받았는지 신부님들 뒤를 돌아보세요.”고다정과 임은미는 두 젊은 아가씨가 부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축복의 말을 건넸다.“두 분도 내년에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두 아가씨가 감사 인사를 했다.사람들 뒤에 서 있던 구남준은 속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분명 자기도 동작이 빠른데 부케를 하나도 받지 못하다니. 설마 평생 혼자 살 운명인가?...결혼식이 끝난 후 신혼방으로 돌아온 두 사람.“피곤하죠? 좀 쉴래요?”여준재가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아니요. 방금 결혼식장에서 잠깐 쉬었더니 지금 괜찮아요. 당신 먼저 옷부터 갈아입어요.”고다정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고생했어요, 여보.”순간 여준재가 고다정을 꽉 껴안더니 다정하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여준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고다정은 황급히 그의 입술을 피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아직 밤도 아닌데, 이미지에 좀 신경 쓰세요.”“당신 앞에서 무슨 이미지에 신경 써요? 당신을 안고 자려는 것뿐인데.”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억울한 표정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알았어요. 놀리지 않을게요.”여준재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고다정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당신은 웃을 때 진짜 예뻐요.”여준재가 넋이 나간 듯 고다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당신도 참.”그의 칭찬에 고다정은 얼굴이 더 빨개졌다.여준재는 고개를 숙이더니 고다정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고다정은 피하려고 했지만 여준재가 그녀를 꽉 껴안고 반항하지 못하게 했다.키스는 오랫동안 지속됐고, 고다정이 호흡 곤란이 올 정도가 돼서야 여준재는 그녀
결혼식 현장은 환상적이었다.전 세계 명문가에서 대표를 파견해 참석했다.이렇게 많은 유명인들 앞이라 고다정과 임은미는 몹시 긴장했다.“준재 씨, 좀... 긴장돼요.”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여준재를 쳐다보는 고다정의 눈에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 감돌았지만 수줍음과 기대감도 보였다.“괜찮아요. 제가 항상 곁에 있을게요.”여준재가 약간 차가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긴장 풀어요. 당신은 신부 노릇만 잘하면 돼요. 다른 건 다 저한테 맡겨요.”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마음이 놓이는 대신 열정이 넘치고 약간 기대도 됐다.“신부가 진짜 예쁘네.”“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신부네 집안도 보통이 아니래. 여씨 가문이 더 번창하겠어.”하객들이 쑥덕거렸다. 그중 고다정을 부러워하는 상류층 부잣집 따님도 적지 않았다.오늘 여준재는 유난히 멋있었다. 매끈한 양복 차림에 준수한 외모가 불빛 아래에서 유달리 돋보였다.고다정은 여준재와 팔짱을 끼고 사람들의 부러운 눈빛 속에서 천천히 버진로드의 종점을 향해 걸어갔다.두 사람이 무대에 선 후 채성휘와 임은미가 뒤늦게 입장했다.이들 둘도 버진로드를 따라 행진해 여준재와 고다정의 옆에 섰다.결혼식 사회자는 두 쌍의 신랑 신부가 모두 입장한 것을 보고 결혼식의 시작을 알렸다.“존경하는 하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결혼식을 시작합니다!”이 말이 끝나자 무대 아래의 하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하객분이 증인이 되어 두 쌍의 신랑 신부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도록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사회자의 말에 무대 아래에서 또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여준재 씨는 옆에 있는 아름답고 우아한 신부를 아내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고 돌보기를 원합니까?”사회자가 웃음 띤 얼굴로 무대 위에 서 있는 여준재를 보며 물었다.“물론입니다!”여준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 후 확고한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