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다정도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 걸 느끼고는 괜히 찔려서 물었다.“화났어요?”“다정 씨가 봤을 때는요?”여준재가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자, 고다정이 답했다.“이건 그냥 가짜에 불과해요. 내가 특효약을 개발 완료하고, 이 위기만 넘기면 우리 다시 합치면 되는 거잖아요.”여준재는 끝까지 헤어진 척하자며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그녀를 보며 더욱 표정이 굳어졌다.그는 단숨에 고다정의 손목을 잡아 품으로 끌며 강압적으로 그녀가 자신을 보게 했다. 그러고는 한 글자씩 또박또박 그녀에게 말해줬다.“그게 가짜라 할지언정, 그래도 안 돼요!”그녀는 그제야 여준재가 화났다는 것을 느끼며 낮은 목소리로 자신을 위해 변명했다. “저도 모든 사람을 위해서 그런 거라고요.”“그렇게 약혼자에게 자신이 없어요? 내가 한 가족도 지키지 못할 것 같냐고요?”여준재가 답하자 고다정이 진지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준재 씨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에요. 그리고 준재 씨가 저를 보호할 능력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요. 하지만 준재 씨만 저를 위해 생각하는 게 아니라, 저도 준재 씨를 위해 생각하고 전체 여씨 그룹을 위해 생각하는 거라고요. 특히 이번은 상대가 어떻게 손을 썼는지도 우리는 모르고 있잖아요. 우린 이미 다른 사람의 계략에 말려든 거라고요. ”그 말에 여준재는 감동하였다.이윽고 그는 고다정의 두 손을 잡으며 조용히 말했다.“그러니 우리 더욱더 마음을 합쳐야 한다고요. 그리고 혹시나 헤어진 척했다가 다정 씨한테 일이라도 생겨봐요. 제가 그걸 처리해 줄 수도 없잖아요? 제가 도와주면 그 배후의 능력으로 단번에 우리가 헤어진 척 연기를 했다는 걸 알 수 있을 텐데, 그러면 이게 의미가 없잖아요.”그 말에 고다정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왜냐하면, 여준재가 한 말이 너무도 정확한 말이었기 때문이다.그러다가 그녀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그의 말에 답했다.“그래요, 그 말은 제가 안 한 거로 해요.”그 모습을 본 여준재는 화가 나기도 하며 웃기기도 했다.하지만 그래
이튿날 아침, 예외 없이 고다정은 늦게 일어났다.일어나보니 여준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고다정은 일어나 침대에 앉았고, 온몸은 차 바퀴에 깔린 듯 여기저기 쑤시고 아파 났다.“젠장——”그녀는 허리를 어루만지며 여준재의 베개를 한번 쳐다보더니, 그 베개가 여준재 인 것처럼 주먹으로 마구 내리쳤다.그렇게 잠시 화를 표출한 후, 무심결에 침대 옆의 알람 시계를 보니 거의 10시가 되어가고 있었다.채성휘의 퇴원을 도와주기로 약속한 그녀는 얼른 다급히 일어나 준비를 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그녀를 보고 강말숙이 친절하게 물었다.“일어났어? 네 밥 남겨뒀다.”“할머니, 저 밥은 안 먹을래요. 이미 채 선생님 퇴원하는 거 도와주기로 해서 지금 빨리 가봐야 해요.”말을 마친 뒤 그녀는 얼른 현관으로 달려가 신발을 바꿔 신고 가방을 든 채 집을 떠났다.그렇게 병원에 도착하니 시간이 이미 반 시간 뒤였다.그래도 채성휘가 짐을 정리한 채 아직 병원은 떠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늦게 도착한 고다정을 본 채성휘가 농담 섞인 어조로 말했다.“저는 다정 씨가 오늘 안 오는 건 줄 알았어요.”“어제저녁 늦게 자서 오늘 알람 소리를 못 들었어요.”고다정은 진실 반 거짓 반으로 답하며 곧바로 되물었다.“지금 갈까요?”그러자 채성휘가 고개를 저어 보였다.“잠시만요. 병원에서 아침에 저보고 검사 좀 받아보라고 해서요. 그 검사결과가 나와야 갈 수 있어요.”그 말을 들은 고다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있는 소파에 가서 휴식을 취하려 했다.눈 밑이 다크서클로 검게 된 그녀를 보고 채성휘가 걱정스레 말했다.“연구소 일도 중요하지만, 다정 씨 건강도 중요해요. 너무 무리하지 마요.”“걱정해 줘서 고마워요.”별로 좋지 않은 그녀의 얼굴색 때문에 채성휘가 오해를 한듯하다.하지만 그녀는 더는 해명하고 싶지 않았다.이때 채성휘의 목소리가 다시금 울려 퍼졌다.“연구소 쪽은 지금 어때요?”“아직도 인테리어중에 있어요. 연구원 빼고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다 재택근무
“그동안 특효약은 해외에서 단속했던지라 우리 국내에서는 값비싼 돈을 팔아야만 그걸 구할 수 있었잖아요? 만약 우리한테 그 특효약이 있다면, 그런 상황은 다시는 없을 거예요!”고다정은 말을 하면 할수록 흥분되어 눈빛이 반짝였다.그 말을 듣고 있던 채성휘는 가슴속으로 뜨거운 피가 들끓는 느낌이 들었으며 단번에 결정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고다정 씨가 남는 걸 선택했다면, 저도 포기할 수 없죠. 우리 같이 그 특효약을 개발해 해외 놈들한테 한번 본때를 보여주자고요!”“그래요. 그때 가서 특효약 가격도 낮추고 그거로 돈 벌려 하는 외국인들에게 한번 보여줘야겠어요!”고다정 또한 의기양양해 말했다.그렇게 두 사람은 점차 농담도 서로 주고받았고, 무거웠던 분위기도 이제는 말끔히 사라졌다.중요한 이야기를 끝내고 나니 채성휘의 검사 결과 보고서도 나왔다.검사결과는 별문제 없었고, 퇴원해도 된다는 말에 그는 곧장 병원에서 나왔다.밖으로 나온 뒤, 고다정은 채성휘를 집으로 데려다주었다.가는 길, 채성휘는 갑자기 뭔 일이 생각난 듯 고다정을 바라보다가 다시 말을 삼켰다.하지만 고다정 또한 그의 표정을 눈치챌 수 있었기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채 선생님, 혹시 뭐 하실 말 있으세요?”“그 다름이 아니라 고다정 씨. 듣자 하니 다정 씨한테 임은미라는 친구분이 있다면서요?”채성휘는 몇 초를 뜸 들이더니 결국은 입을 열었다.그 말에 고다정은 다소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네, 맞아요. 제 친구 중에 임은미라고 있어요. 근데 채 선생님은 어떻게 아셨어요?”“아, 그게 전에 사교모임 때 임은미 씨와 몇 마디 나눴거든요... 혹시, 임은미 씨 연락처 좀 알려줄 수 있을까요?”채성휘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었다.그 사교모임 저녁때, 채성휘와 임은미는 몇 마디 말을 나눴을 뿐만 아니라 예상치도 못한 상황이 벌어졌었다.하지만 고다정은 채성휘의 표정을 눈치채지 못했고, 며칠 전 임은미의 그 어색했던 행동이 떠올랐다.‘보아하니 둘이 내가 모르는 뭔가 있나
고다정은 자신이 했던 행동을 그녀에게 한번 말해주었다.그러자 임은미는 만족한 듯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도 다행히 내 연락처 안 알려줬네. 너 만약 알려줬으면 내가 너 가만 안 뒀을 거야.”그 말을 들은 고다정은 마음속으로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왜? 채 선생님께 아무 감정 없는 거야?”“응, 감정 없어.”임은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승인했다.하지만 어쩌겠는가, 고다정이 친구 대신 채성휘를 거절해줄 수밖에.고다정에게서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채성휘는 표정이 다소 복잡해졌다.‘할 수 없지. 피해자로서 그런 일을 당하고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긴 하지. 임은미 씨가 안정되면 그때 다시 찾아뵐 수밖에.’고다정은 이 모든 걸 모르고 있다.임은미네 집에서 나온 뒤 그녀는 바로 별장으로 돌아갔다.원래는 서재로 가서 계속 자료들을 정리하려 했지만, 문 앞까지 간 순간 머릿속에 갑자기 병원에서의 그 CCTV 장면이 떠올라 소름이 돋아났다.“소담 씨, 서재로 가서 혹시 누가 CCTV 설치하지 않았는지 한번 검사해줘요.”그녀가 소담에게 지시를 내리자, 소담이 고다정을 안심시키며 답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사모님. 별장은 대표님이 계속 사람 시켜서 지키고 있으니 누가 잠입할 수 없을 것입니다.”고다정도 당연히 여준재의 능력을 믿고는 있지만, 그 배후의 세력 또한 만만치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하여 그녀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소담 더러 가서 한번 검사해보라고 했다.그 모습에 소담도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고 결과로 사모님을 안심시켜주기로 했다.하지만 결과는 그녀를 충격에 빠뜨렸고 분노하게 했다.그 이유는 소담이 서재와 거실에서 각각 두 개의 최신형 CCTV를 발견했기 때문이다.그 물건을 발견하자마자 소담은 곧바로 여준재에게 전화를 걸었다.30분 뒤, 여준재가 냉기를 내뿜으며 걸어들어왔다.그전까지 당황스러웠던 고다정의 마음은 여준재를 보니 한껏 편안해졌다.“준재 씨.”“무서워하지 말아요. 내가 있잖아요
고다정은 그 생각을 여준재에게 알려주었다. 그러고는 한마디 더 보충해서 말했다.“이렇게 하면 나도 그 배후자의 시선을 돌릴 수 있고, 할머니와 아이들도 조금 더 안전할 거예요.”여준재는 그 말에 원래는 부인하려고 했지만 결국은 다시 말을 도로 삼켰다.“그러면 나도 여기로 옮길게요.”“준재 씨도 오면 아이들은요?”고다정은 눈썹을 찌푸리며 찬성하지 않는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여준재는 전혀 그걸 신경 쓰지 않았다.“아이들도 이미 컸으니까 우리를 이해할 거예요. 그리고...”그는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고다정의 귀 가까이에 다가가서는 둘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다정 씨가 다른 남자랑 한 지붕 아래 같이 사는 걸 제가 보고만 있을 것 같아요?”“…”거기에 고다정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그러다 결국은 여준재와 고다정 모두 여기 별장에 남아있기로 했다.그날 오후, 그들은 짐 정리를 했고, 필요한 기계들도 전부 담았다.게다가 연구실에 대해서 많은 사람이 알면 좋지 않을 것 같아 고다정, 여준재, 채성휘만 거기를 정리하고 청소했다.청소를 다 끝내고 나니 이미 저녁 시간이었다.다행히 별장에는 모든 게 준비되어 있어, 고다정이 직접 저녁준비를 했다.식사하면서 그들 분위기는 서로 차가운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밝은 분위기는 아녔다.밥을 먹은 뒤 여준재는 회사일 때문에 서재로 들어갔고, 고다정과 채성휘는 실험실에서 특효약의 코드에 대해 분석하기 시작했다.그러다 보니, 시간도 어느덧 깊은 저녁이 되었다.회사 일을 마친 여준재가 방에 들어가 보니 고다정이 보이지 않자, 곧바로 지하에 실험실로 발걸음을 향했다.시간을 보니 시간은 거의 12시가 되어갔고, 눈빛에서는 불쾌함을 뿜어내며 지하로 걸어갔다.도착 후, 그는 유리창으로 고다정과 채성휘가 열띤 토론을 하는 걸 보았다.비록 토론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미 늦은 시간이기에 고다정이 힘들까 봐 얼른 손을 들어 유리 창문을 두드렸다.그 소리를 들은 고다정과 채성휘는
나머지 날은 고다정과 채성휘, 그리고 김창석까지 모두 별장에 남아서 특효약의 코드에 대해 분석했다.빠른 시일 내로 특효약을 연구해내야 그 위험의 경지를 벗어날 수 있기에 고다정은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도 포기했다. 단지 매일 여준재에게서 두 아이의 정황에 대해 듣기만 하였다.그들의 노력 끝에 결과적으로는 굉장히 인상적인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다.고다정에게 있는 자료도 거의 다 분석을 해냈고 말이다.그녀는 현재의 속도에 매우 만족하며 채성휘와 김창석을 향해 웃어 보이며 말했다.“이틀만 지나면 특효약의 모든 성분에 대해 다 분석이 끝나고 정식으로 특효약을 제작할 수 있게 됐어요!”“진짜 좋은 소식이네요. 다정 씨네 스승님한테도 알려줘야겠어요.”채성휘가 그녀를 바라보며 제안하자, 고다정도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꺼내 들고 스승님께 연락했다.전화는 곧 연결되었고, 전화기 너머로는 성시원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다정아, 뭔 일이야?”“선생님, 이틀만 더 있으면 특효약 모든 성분의 분석이 다 끝나요.”고다정이 그 좋은 소식을 그에게 알리자, 성시원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오, 그거 진짜 좋은 소식이구나.”그러더니 그는 대화 주제를 돌렸다.“아 맞다. 전에 내가 한 팀을 너에게 보내준다고 했지? 어제 이미 출발했어. 아마 오늘쯤 도착할 거야. 저녁쯤에 누가 너한테 연락이 갈 거야.”“오늘 도착해요? 모두 몇 명이에요? 이따가 묵을 수 있는 곳 마련해볼게요.”고다정이 놀라서 묻자 성시원이 해명했다.“별로 많지 않아. 10명 밖에 없어. 그리고 다들 엘리트야.”그 말을 들은 고다정 또한 그들에 대해 모르는 건 아니지만, 스승님이 괜히 자신을 위해 엘리트들만 뽑아서 보냈을까 봐 겁이 났다.그녀는 입꼬리를 올리며 찬란한 미소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당부했다.“선생님도 몸조심해요. 저 선생님 오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거니까요.”“그래, 걱정하지 마. 특효약이 세상에 나올 때만 모든 건 끝났어. 그때면 나도 귀국할 수 있고 말이야.”성시
숙소 배치하러 들어간 화영 등을 보며 김창석은 눈빛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재빠르게 스쳤다.뜻밖에도 어르신이 트리플 엑스 호위대를 보낼 줄이야. 이건 고다정을 진짜로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다는 메시지였다. 그 생각에 그는 고다정에 대해 은근히 질투가 나기 시작했다.‘고다정 이 여자가 뭔데 운이 저렇게 좋아.’그러나 이내 마음을 감추며 정상적인 안색으로 돌아왔다.운이 아무리 좋아도 일이 결판나기 전에는 자기도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다.없으면 만들어라도 낼 판이었다.그가 십여 년 동안 도모해 온 일인데, 감히 누가 언감생심, 자신의 것을 넘보게 허락할 수는 없었다.하나 이런 복잡한 김창석의 생각을 고다정은 알 리 없었다.그녀는 휴대전화를 들고 스승님께 화영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메시지를 보냈다.하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고다정은 스승님이 바쁘실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개의치 않았다.화영 등 사람들을 안착시키고 나니 여준재도 밖에서 돌아왔다.집안에 낯선 사람들이 몇몇 보이자 그도 고다정을 보호하기 위해 성시원이 보낸 사람들이겠거니 대충 짐작을 하였다.그는 곧바로 고다정의 곁에 가서 그녀의 끼니를 걱정했다. “밥은 먹었어요?”“네, 그나저나 당신은요?”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여준재한테 관심을 보였다.그러자 여준재도 웃으며 대답했다.“나도 먹었어요.”입술을 오므리고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고다정은 자기 옆에 꼿꼿한 자세로 붙어 서 있는 화영을 곁눈질로 보고는 어쩔 수 없이 여준재한테 일단 소개부터 하기로 했다“참, 여기는 제가 미리 말했듯이, 스승님이 절 보호하라고 보낸 사람들이에요. 이분이 팀장 화영이구요.”“앞으로 많은 수고 부탁드립니다.”여준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화영한테 인사를 했다.화영은 흔적 없이 조직 후계자의 약혼자라는 사람을 한번 훑었다.“별말씀을요, 저희도 명령대로 움직이는 것뿐입니다. 그 밖에 어르신이 서방님께 따로 선물을 준비하셨습니다.”“선물을요?”고다정이 약간 의아해서 물었다. 그에 대해 들은 바가 없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 여준재는 일찍부터 잠에서 깨어났다.품에서 편안히 잠들지 못하고 있는 여자를 아련하게 쳐다보며 그녀 이마에 가볍게 키스하고는 살금살금 일어나 세수를 하러 갔다.정리를 마친 그가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거실에는 채성휘와 김창석이 앉아있었다.“여 대표님, 좋은 아침입니다.”“서방님, 좋은 아침입니다.”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입을 열어 여준재한테 아침 인사를 건넸다.여준재도 그들을 향해 예의 있게 고개를 끄덕이고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다정 씨가 아직 일어나지 않았어요. 요즘 컨디션이 별로인 거 같아 오늘 하루 쉬라고 했는데, 두 분도 쉬시죠, 사적인 일도 좀 볼 겸.”“아가씨는 괜찮으십니까?”김창석은 걱정이 된다는 듯 여준재를 바라봤다.고다정 그 여자가 무슨 일이 난 게 아니면 그 성격에 이런 시기에 쉬려고 하지 않을 텐데 하며 의구심이 들었다.채성휘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역시 관심하는 눈빛이 훤하게 드러났다.이 두 사람한테 숨길 생각도 없었던 여준재는 사실대로 얘기했다.“괜찮아요, 아무 일 없어요. 그저 요즘 연구 진척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밤마다 잠도 잘 못 자고 악몽을 꿔서 제가 하루 쉬라고 그랬어요, 긴장 좀 풀라고.”“아, 그런 거군요. 아가씨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긴 했죠.”김창숙은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감탄을 내보였다.여준재도 더는 말없이 다이닝룸으로 향했다.식사가 끝난 뒤에 그들은 각자 빌라를 떠나 볼일을 보러 갔다.김창석은 연구소로 갔고, 채성휘는 바깥 구경을 좀 하려고 했다.요즘 그는 맨날 빌라에만 있다 나니 생각이 얽매이는 느낌이 들었다.그리하여 고다정이 깨났을 무렵에는 집안에 그녀 혼자만 남아 있었다.아침 식사를 하며 그녀는 소담한테 물었다.“채 선생님과 창석 아저씨는요?”“창석 아저씨는 연구소로 가셨고, 채 선생님은 바깥에 머리를 좀 식힌다고 나가셨습니다.”소담이 솔직하게 대답했다.고다정은 알겠다는 표정을 하며 식사를 계속했다.식사를 마치니 임은미가 마침 집에 도착했다.일
“하윤 씨, 좋아해요. 제 여자친구가 되어줄래요?”임지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여자애를 바라보며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하윤은 잠깐 얼떨떨해하더니 이내 환한 웃음을 지었다.“네.”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예쁜 미소를 보고 임지호도 해맑게 웃었다.햇빛 아래 선남선녀는 너무 잘 어울렸다.임은미와 고다정은 구석에 숨어 이를 지켜보며 들떠서 소곤거렸다.“하윤이 저렇게 활짝 웃는 걸 보니 서로 고백한 것 같아.”“고백한 게 맞아. 둘이 같이 앉은 걸 봐.”“역시 내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어. 내가 나서면 안 맺어지는 커플이 없다니까.”임은미는 마침내 자화자찬하기 시작했다.고다정은 그녀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 저 남자애가 하윤을 좋아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모하게 나섰다가 맺어주는 게 아니라 끝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한참 더 보다가 호기심이 충족된 듯 제대로 자리에 앉아 요리를 주문했다.기왕 온 김에 뭘 좀 먹어야지.식사하면서 고다정이 감탄했다.“애들이 어느새 커서 애인까지 생겼네.”“그러게. 우리도 늙었어.”임은미도 같이 탄식했다.뒤이어 그녀는 맞은편의 절친을 바라보며 물었다.“앞으로 무슨 계획 있어?”“보름 동안 쉬면서 준재 씨랑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후 새로운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거야.”고다정은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임은미는 이 말을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너 점점 일벌레가 되어가는 것 같다.”“그건 내가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야.”고다정이 웃으면서 말했다.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청아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전을 때렸다.“여하준 씨, 거기 서요.”이 소리를 듣고 눈빛을 주고받는 고다정과 임은미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이런 우연이! 이 작은 레스토랑에서 두 남매를 모두 만난다고?’하윤도 너무 뜻밖이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하준 쪽을 바라보았다.“오빠?!”“하윤?!”여하준도 이때 하윤과 그 옆의 청년을 발견하고 미간을
하윤은 정말 돌아오지 않았다.하민이 가지 못하게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여준재에게는 무척 즐거운 밤이었다....이튿날 아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금빛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이불 밖에 나온 고다정의 피부에 내려앉았다.피부에 생긴 흔적에서 어젯밤에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여준재는 일찍 깼지만 아침의 따스함을 놓치기 싫어 고다정을 안고 만족스럽게 침대에 누워있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누군가가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엄마, 일어나요.”하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여준재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자식은 빚쟁이라는 말이 맞다. 이전에 좋아했던 만큼 지금은 싫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품속의 여인이 깨어났다.고다정이 정신이 흐릿한 상태로 물었다.“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려요?”“하윤이에요. 내가 돌려보낼 테니 자요.”여준재가 그녀를 풀어주고 일어나려 했다. 너무 졸렸던 고다정은 막지 않았다.그녀는 오후까지 자고 임은미가 전화해서야 겨우 일어났다.30분 후 두 사람은 시내 중심의 쇼핑몰에서 만났다.임은미는 잠이 덜 깬 것 같은 고다정을 보고 놀려댔다.“너랑 여 대표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좀 절제해.”“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너도 절제해. 목에 난 흔적이 가려지지도 않아.”지금의 고다정은 약간 야한 농담에도 얼굴을 붉히던 10년 전의 고다정이 아니다.지금의 그녀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역습한다.임은미도 말문이 막히지 않았나.그녀는 채성휘와 자주 싸우지만 둘 사이의 감정에는 조금도 영향이 없었다.그녀가 코웃음을 쳤다.“네가 이겼어. 이제 너를 쉽게 놀리지 못하겠어.”그녀는 말하면서 고다정과 어느 가게에 들어갈지 사방을 둘러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다정아, 저기 하윤이 아니야?”“하윤이?”고다정이 놀라며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정말 멀지 않은 곳의 레스토랑에 하윤과 깔끔해 보이는 잘생긴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이 말을 들은 하윤은 즉시 고다정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저, 오빠, 그리고 이모 세 사람 외에 또 있어요?”그녀는 의문스레 고다정을 쳐다보았다. 설마 그때 아빠, 엄마를 맺어주려고 애쓴 사람이 또 있나?그런데 그녀가 말하자마자 고다정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일 줄이야.“그래, 너와 오빠, 이모가 도와준 걸 말하는 거야. 그때 너희 셋이 나랑 너희 아빠를 맺어주려고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어? 그러니까 너 혼자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다니면 이뤄지기 힘들지 않겠어?”“좀 일리가 있네요.”갑자기 엄마한테 설득당한 하윤이 무심코 말했다.“그럼 엄마랑 이모가 좀 방법을 생각해 주세...”‘요’자를 내뱉기 전에 그녀는 씩씩거리며 또 한 번 엄마를 째려보았다.“또 엄마한테 걸려들었어요.”고다정은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어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계집애, 어렸을 때와 똑같이 잘 속아.”그녀는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나왔다.이를 보고 화가 난 하윤이 손을 뻗어 고다정을 간지럽히려 했다.“엄마 나빠요.”그렇게 모녀는 온천에서 웃고 떠들었다.이쪽의 따뜻한 분위기와 달리 남자 노천탕은 썰렁했다.“자식, 어렸을 때는 귀여웠는데 크면 클수록 얄미워.”옆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여준재는 눈앞의 두 아들이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렸다.하준이 판에 박은 것 같이 똑같은 표정으로 아빠를 힐끗 쳐다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피차일반입니다.”하민은 형과 아빠가 티격태격하자 조용히 구석에 숨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지위가 가장 낮다는 것을 알았다.여준재는 막내아들의 속마음을 모른 채 자기한테 말대꾸하는 큰아들을 보며 문득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허구한 날 남의 마누라를 생각하지 말고 네 마누라를 찾아. 아니면 네 할머니한테 맞선을 주선하라고 할까?”그렇다. 여준재가 생각해 낸 방법은 하준을 결혼시키는 것이다.‘이 자식이 자기 마누라가 생기면 더 이상 내 마누라를 생각하지 않겠지.’하준이 그의 생각을 모를
그날 저녁 여씨 삼남매는 결국 남아서 고다정을 축하해 주었다.식사가 끝난 후 임은미는 두 딸을 데리고 떠나갔다.가기 전에 그녀는 고다정과 내일 오후에 같이 쇼핑하기로 약속했다.임은미를 보낸 후 다섯 식구는 남녀가 분리된 온천 노천탕에 갔다.고다정은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느긋한 시간을 보낸 게 얼마 만인가.그녀가 눈을 감고 즐기고 있을 때 어깨 위에 갑자기 손이 올라오더니 그녀의 어깨를 주물렀다.고개를 돌려 보니 둘째 딸이 그녀의 뒤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엄마...”“왜?”고다정이 나지막이 묻자 하윤이 바짝 붙으며 말했다.“엄마가 아빠한테 사정 좀 해 주시면 안 돼요?”그녀는 고다정의 환심을 사려고 방긋 웃었다.“오늘 엄마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는 아빠의 계획을 제가 망쳤으니 아빠가 틀림없이 내일 저한테 일을 시킬 거예요.”그녀가 이렇게 단언하는 원인은 그동안 이런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학교 다닐 때는 그녀가 엄마한테 너무 달라붙는다고 아빠가 그녀를 속여 공부를 많이 시켰다.후에 점차 크고 오빠가 폭로해서야 그녀는 아빠의 꾀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고다정은 고민 가득한 딸애 얼굴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이 계집애는 어릴 때부터 말을 잘 듣지 않았는데, 매번 아빠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결국 비참하게 혼쭐이 나고 불쌍한 모습으로 엄마를 찾아왔다.“이제야 두려워? 이모를 꼬드길 때는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생각 안 했어?”“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엄마가 원래 여가 시간이 많지 않은데 아빠가 항상 엄마를 차지하니까.”계집애는 말하면서 고다정의 어깨를 껴안고 또 응석을 부렸다.애교 공세에 당할 수 없는 고다정은 이내 동의했다.하윤은 기쁜 나머지 고다정을 안고 뽀뽀하더니 배시시 웃었다.“역시 엄마밖에 없어요.”“너도 참, 빨리 온천에 몸을 담가.”고다정이 말하면서 그녀를 잡아당겨 노천탕에 앉혔다.그러나 하윤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그녀는
한편, 서쪽 외곽에 위치한, YS그룹에서 개발한 온천 리조트에 세련된 곡선미를 자랑하는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도착했다.차가 천천히 입구에 멈춰 서더니 검은색 수작업 맞춤 양복을 입은 여준재가 차에서 뛰어내렸다.똑바로 선 후 그는 돌아서서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차 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준수한 얼굴에서는 꿀 뚝뚝 다정함이 넘쳐흘렀다.“부인, 도착했습니다.”검은색 여성 정장 차림의 고다정이 가늘고 예쁜 손을 우아하게 여준재의 손바닥 위에 얹더니 차에서 내렸다.지금의 그녀는 풋풋함을 벗은 대신 카리스마와 여유가 넘쳤다.옆에 있던 매니저가 알랑거리며 그녀를 맞이했다.“사모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건 저와 직원들의 작은 성의입니다. 인류 의학에 공헌한 사모님께 감사드립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넸다.사방에서 박수와 축하가 쏟아졌다.“축하드립니다, 사모님.”“사모님, 진짜 대단하십니다!”“사모님은 제 롤모델입니다!”이 말을 듣고 고다정은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옆에 서 있는 여준재도 눈에 자랑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뒤이어 두 사람은 매니저의 안내로 룸에 들어섰다.룸에는 이미 고다정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두 사람이 오붓하게 식사하고 있을 때 가방 속에 있는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임은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은미야, 무슨 일이야?”고다정이 전화를 받았다.옆에 있던 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고다정을 쳐다보던 그는 그녀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고다정의 표정을 보니,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제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은미가 축하 파티를 준비했다고 오래요.”“은미 씨는 인터넷을 안 본대요?”여준재가 답답한 듯 한마디 했다. 그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분명 고다정은 그의 아내인데, 지난 12년간 그는 아내와 단둘이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궐에서 전하를 만나는 것보다 어려웠다.안팎에 강적이 있는 데다 고다정이 그동안 암세포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느새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12년간 지도층이 바뀌고, 많은 연예인이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심지어 국제 정세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등 많은 일들이 발생했지만 여준재와 고다정의 애정 전선은 변함이 없었다.현재 두 사람은 주변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잉꼬부부가 됐다.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금실이 좋은 것도 있지만 잘생기고 철이 든 아들딸을 두었기 때문이다.지금 여씨 가문의 큰 도련님, 아가씨, 작은 도련님 얘기가 나오면 엄지척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특히 여하준은 19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도와 두 회사를 관리하고 있다.물론 여하윤도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의 콘서트홀에서 연주했을 정도로 뛰어나다.그리고 여씨 가문의 작은 도련님은 형, 누나만큼 대단하지는 않지만 어려서부터 말솜씨가 좋아 많은 귀염을 받았고, 지금은 연예계 인기 아역 스타다....운산공항 로비의 스크린에 최신 국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12년 만에 암세포를 죽이는 약을 개발해 낸 고다정 교수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는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연구 성과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암을 두려워할 필요도, 암 얘기에 놀랄 필요도 없게 됐습니다.”뉴스 진행자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최근 몇 년 고다정 연구팀의 약물 연구 덕분에 암세포 억제제가 꾸준히 개진되긴 했지만 암세포를 철저히 소멸할 수는 없어 암에 걸린 후 결국 치료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이 뉴스는 방송되자마자 많은 행인의 주의를 끌었다.인터넷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고다정에 대한 축복이 쏟아졌다.[고 원장님이 해낼 줄 알았어!][너무 기쁜데 어떡하지? 우리나라를 빛낸 고 원장님을 지지하기 위해 약방에 가서 그 회사 약들을 대량 구매할 거야.][나도. 우리 집에는 환자가 없지만 이 약들을 필요한 기관에 기증할 수 있어!][하하하, 속이 다 시원하네. 그때 고 원장님이 안 된
열 몇 시간 후 비행기는 드디어 평온하게 착륙했다. 여준재가 낮은 소리로 옆에서 달게 자는 아내를 깨웠다.“여보, 일어나요.”그 소리에 고다정이 눈을 뜨더니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낯선 환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여기 어디예요?”“아직 비밀이에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알 거예요.”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비행기에서 내린 후 공항을 나섰다.그들을 마중 나온 차량이 벌써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탄 후 고다정이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 지금 어디 가요?”“먼저 밥 먹으러 가요. 지금 너무 배고프죠?”여준재가 기사에게 근처의 가장 좋은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말했다.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할 때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다 이렇게 장시간 비행한 까닭에 확실히 배가 고팠다.레스토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룸에 들어갔다.주문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레스토랑 직원이 예쁘게 플레이팅된 음식들을 들여왔다.훈훈하고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여준재가 고다정의 식사를 챙겼다.이때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국내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엄마, 아빠랑 같이 어디 갔어요?”쌍둥이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이 목소리를 들은 고다정은 갑자기 뜨끔했다.“컥컥, 엄마랑 아빠가 일이 있어서 외출했어. 며칠 뒤에 돌아오니까 집에 얌전히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잘 듣고. 알았지?”“흥! 엄마랑 아빠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몰래 나간 거잖아요.”쌍둥이가 직접 고다정의 거짓말을 폭로했다.고다정은 무안해하며 도와달라는 듯 여준재를 바라보았다.당연히 아내 편인 여준재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말했다.“아빠와 엄마가 신혼여행 중이야. 돌아갈 때 너희 선물을 사 갈게.”말하고 나서 그는 직접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 건너편에서 신호가 끊긴 스마트워치를 바라보는 쌍둥이의 앳된 얼굴에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아빠 나빠.”“너무 나빠!”쌍둥이는 아빠한테 잔뜩 화가 났다.이때 임은미가 오더니 그들의 안색이 안 좋은
이 말이 나오자 고다정과 임은미는 서로 마주 보며 웃더니 손을 잡고 무대 옆으로 나와 하객들을 등지고 섰다.“부케를 받은 사람은 내년에 솔로 탈출합니다.”두 사람이 부케를 던진 후 뒤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부케를 누가 받았는지 신부님들 뒤를 돌아보세요.”고다정과 임은미는 두 젊은 아가씨가 부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축복의 말을 건넸다.“두 분도 내년에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두 아가씨가 감사 인사를 했다.사람들 뒤에 서 있던 구남준은 속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분명 자기도 동작이 빠른데 부케를 하나도 받지 못하다니. 설마 평생 혼자 살 운명인가?...결혼식이 끝난 후 신혼방으로 돌아온 두 사람.“피곤하죠? 좀 쉴래요?”여준재가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아니요. 방금 결혼식장에서 잠깐 쉬었더니 지금 괜찮아요. 당신 먼저 옷부터 갈아입어요.”고다정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고생했어요, 여보.”순간 여준재가 고다정을 꽉 껴안더니 다정하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여준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고다정은 황급히 그의 입술을 피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아직 밤도 아닌데, 이미지에 좀 신경 쓰세요.”“당신 앞에서 무슨 이미지에 신경 써요? 당신을 안고 자려는 것뿐인데.”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억울한 표정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알았어요. 놀리지 않을게요.”여준재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고다정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당신은 웃을 때 진짜 예뻐요.”여준재가 넋이 나간 듯 고다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당신도 참.”그의 칭찬에 고다정은 얼굴이 더 빨개졌다.여준재는 고개를 숙이더니 고다정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고다정은 피하려고 했지만 여준재가 그녀를 꽉 껴안고 반항하지 못하게 했다.키스는 오랫동안 지속됐고, 고다정이 호흡 곤란이 올 정도가 돼서야 여준재는 그녀
결혼식 현장은 환상적이었다.전 세계 명문가에서 대표를 파견해 참석했다.이렇게 많은 유명인들 앞이라 고다정과 임은미는 몹시 긴장했다.“준재 씨, 좀... 긴장돼요.”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여준재를 쳐다보는 고다정의 눈에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 감돌았지만 수줍음과 기대감도 보였다.“괜찮아요. 제가 항상 곁에 있을게요.”여준재가 약간 차가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긴장 풀어요. 당신은 신부 노릇만 잘하면 돼요. 다른 건 다 저한테 맡겨요.”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마음이 놓이는 대신 열정이 넘치고 약간 기대도 됐다.“신부가 진짜 예쁘네.”“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신부네 집안도 보통이 아니래. 여씨 가문이 더 번창하겠어.”하객들이 쑥덕거렸다. 그중 고다정을 부러워하는 상류층 부잣집 따님도 적지 않았다.오늘 여준재는 유난히 멋있었다. 매끈한 양복 차림에 준수한 외모가 불빛 아래에서 유달리 돋보였다.고다정은 여준재와 팔짱을 끼고 사람들의 부러운 눈빛 속에서 천천히 버진로드의 종점을 향해 걸어갔다.두 사람이 무대에 선 후 채성휘와 임은미가 뒤늦게 입장했다.이들 둘도 버진로드를 따라 행진해 여준재와 고다정의 옆에 섰다.결혼식 사회자는 두 쌍의 신랑 신부가 모두 입장한 것을 보고 결혼식의 시작을 알렸다.“존경하는 하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결혼식을 시작합니다!”이 말이 끝나자 무대 아래의 하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하객분이 증인이 되어 두 쌍의 신랑 신부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도록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사회자의 말에 무대 아래에서 또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여준재 씨는 옆에 있는 아름답고 우아한 신부를 아내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고 돌보기를 원합니까?”사회자가 웃음 띤 얼굴로 무대 위에 서 있는 여준재를 보며 물었다.“물론입니다!”여준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 후 확고한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