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은미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뜻밖에도 매우 기뻐했다.“민재 아저씨와 은자 아줌마가 돌아왔다고? 언제 적 일이야?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빨리 뵙고 싶다.”당시 고다정에게 사고가 났을 때 임은미를 제외하고도 그녀의 부모님인 담은자와 노민재의 도움을 많이 받았었다.특히 아이를 낳을 때, 담은자 아줌마의 살뜰한 보살핌이 없었다면 아마 그녀는 산후조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병을 달고 살았을 것이다.하여 고다정은 두 사람에게 더욱 각별한 존경심과 애정을 느꼈다.하지만 두 사람 모두 업무상의 이유로 줄곧 해외에서 지냈기에 고다정은 그들에게 보답할 기회가 많이 없었다.그러나 임은미는 이러한 고다정의 마음을 알 리가 없었다.고다정의 말을 들은 임은미가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아가씨, 저 좀 살려주시죠. 네가 우리 집에 오면 난 앞으로 집에 더 못 들어간단 말이야.”“그렇게 심각하다고? 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고다정은 호기심이 가득한 어투로 물으며 한편으로는 임은미의 작은 두 손을 꼭 잡고 거실의 소파로 데려가 앉았다.그러자 임은미도 여전히 입술을 삐죽이며 얌전히 따라와 소파 위에 앉았다.“난 아무것도 한 거 없어. 그냥 너도 이제 결혼하는데 난 아직도 솔로니까 또 마음이 급해져서 나더러 소개팅이라도 해보라고 닦달하셨지. 그거 알아? 요 며칠 동안 내가 본 남자만 거의 100명은 될걸? 우리 엄마 진짜 소개팅에 제대로 미치신 것 같아.”말이 거의 끝나갈 무렵 임은미가 참지 못하고 다시 한번 투덜거렸다.고다정도 그의 말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그녀도 자신의 베프에게 이런 비참한 시련이 닥칠 줄은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겠지만 동정심은커녕 오히려 웃음이 절로 나오는 기분이다.임은미 역시 고다정의 얼굴에 띈 미소를 바라보며 단번에 자신을 비웃고 있음을 깨닫자 순식간에 화가 치밀어올랐다.“잘한다. 감히 날 비웃어? 내 우주 최강 간지러움 손맛을 맛보거라!”말을 이어가며 임은미가 고다정에게 덮쳤다.무방비 상태로 임은미의 공격을
“이렇게 보니 내 베프는 평생 혼자 살다가 가겠네요.”고다정이 여준재의 품에 안긴 채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여준재는 그녀의 말을 듣고 고개를 숙여 그녀를 힐끔 쳐다보고는 다시 화면 속에 있는 임은미를 바라보며 눈썹을 치켜들었다.“마음속에 이미 품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죠.”그 말을 듣자 고다정은 그대로 넋을 잃고 말았다.이건 그녀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가능성이었다.“한번 제대로 날 잡고 얘기를 나눠봐야겠어요. 나만 인생 대사를 해결하고 은미는 짝사랑의 고통을 맛보게 놓아둘 수는 없어요.”말을 마친 고다정이 손을 비비며 입맛을 다셨다. 그녀는 지금이라도 당장 뛰쳐나가 임은미를 붙잡고 제대로 캐묻고 싶은 심정이었다.여준재는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자신의 품 안에서 익살스러운 표정을 하는 귀여운 여인을 바라보았다.두 사람은 계속하여 소개팅 현장을 조금 살피고는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다시 월요일이 되었다.고다정은 이른 아침부터 연구소로 향했다.직원들은 그녀를 보고는 모두 열정적으로 인사를 건넸다.“고 원장님, 좋은 아침입니다.”“네. 모두 좋은 아침이에요.”인사말에 대답하고 나서 고다정은 주말에 있었던 소개팅을 다시 떠올리고는 직원들을 둘러보며 싱긋 웃으며 물었다.“저번 주에 소개팅하고 솔로 탈출한 사람 있어요?”그러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얼굴을 붉혔다.고다정은 굳이 대답을 듣지 않고도 직원들의 분위기만 보고 바로 그들의 답안을 눈치챘다.“오. 좋은 소식이 꽤 있나 본데요. 안정적으로 다음 단계에 진입하면 저한테 청첩장 보내는 것도 잊지 말아요.”“절대 안 까먹죠.”그중 대담한 직원 한 명이 즉시 대답했다.그들이 시끌벅적하게 담소를 나눌 때, 채성휘도 연구소에 도착했다.그러나 다른 직원들의 얼굴에 활짝 핀 웃음꽃과는 달리 채성휘의 얼굴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고다정과 다른 직원들도 그의 어두운 안색을 눈치챘고 저마다 가까이 다가가 상황을 물었다.“채 선생님,
김창석은 두 사람이 떠나는 것을 배웅한 뒤 다급히 사무실로 돌아와 성시원에게 전화를 걸었다.“큰일 났습니다, 선생님. 아가씨께서 경찰에게 잡혀갔습니다.”“뭐? 무슨 일이야?”고다정의 스승인 성시원의 심각한 목소리가 전화 건너편에서 전해져 왔다.김창석도 숨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자초지종을 사실대로 전부 털어놓았다.“병원 측에 아가씨께서 개발하신 현양4호를 복용하고 쇼크로 인해 숨진 환자가 있다고 가족이 책임을 묻겠다고 신고를 했습니다.”김창석의 말이 끝나자마자 성시원이 부정했다.“그럴 리가 없어. 현양4호는 내가 이미 심사를 거친 약이야. 상극 약제를 잘못 먹은 게 아니면 절대 쇼크로 인해 죽을 수는 없어... 잠깐만, 뭔가 이상해. 창석아, 지금 당장 그 병원, 그리고 가족도 전부 조사해봐. 좋기는 해부해서 사망원인 알아보고.”“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사람을 불러 조사하겠습니다.”김창석이 바로 명을 받들었다.그가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 전화 건너편에서 성시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난 아직 돌아갈 수 없어. 다정이의 일은 너한테 전적으로 부탁할게.”같은 시각, 소담으로부터 소식을 접한 여준재도 고다정이 경찰서에 잡혀간 것을 알게 되었다.그때 그는 마침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절반 정도 연 회의를 신경 쓸 새도 없이 바로 구남준에게 차를 준비하도록 분부하고 경찰서를 향해 바람을 가로지르며 달렸다.경찰서 안, 고다정은 경찰의 심문을 받고 있었다.다행히도 그녀의 자격증과 증명서류가 충분하였기에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여준재가 경찰서에 막 도착했을 때 고다정은 심문을 마치고 심문실에서 나오고 있었다.“괜찮아요?”여준재가 성큼성큼 걸어가 고다정의 손을 꼭 붙잡고 위아래를 훑었다.고다정은 잠깐 멈칫하고는 눈앞의 사람이 여준재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무의식 간에 물었다.“여기에는 어떻게 왔어요?”“소담이 보고해줬어요. 당신이 경찰서에 갔다고. 이렇게 큰일이 났는데 내가 어떻게 안 와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여준재가 관심 어
기자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안색이 흐려지고 말문이 막혔다.사람이 죽은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니 말이다.그러나 고다정은 자신의 주장을 고수했다.“현양4호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복용한다면 절대 문제없습니다. 믿기지 않는다면 저와 함께 부검 결과를 기다리시죠.”고다정은 말을 마친 뒤 더는 기자들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그들 앞에서 말을 많이 해봤자 괜히 트집만 잡힐 테니 말이다.채성휘는 상황을 살피다가 고다정처럼 침묵을 지켰다.다행히 잠시 뒤 구남준이 경호원들을 데리고 왔다.그들은 몸으로 기자들과 고다정 일행을 떼어 놓았다.차에 오르자 여준재는 비참한 모습의 고다정을 바라보며 물었다.“어디로 갈 생각이에요?”“연구소로 가요.”고다정은 단호한 눈빛을 한 채 입을 열었다.그녀는 그들이 개발한 현양4호에는 아무 문제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앞으로 입장을 밝힐 때 유용하게 쓰일 데이터를 준비해야 했다.여준재는 그녀의 마음을 읽고는 구남준에게 눈치를 줬다.구남준은 고개를 끄덕인 뒤 차에 시동을 걸어 연구소로 향할 생각이었다.그런데 이때 채성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고다정 씨는 연구소로 가서 약 데이터를 준비할 생각이라면 전 병원으로 가서 환자분 가족들을 만나볼게요. 어쩌면 사망자의 몸에서 뭔가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비록 그는 법의관이 아니지만 법의관도 일반 의사들과 유사한 점이 있었다.채성휘가 제대로 된 의사는 아니더라도 상식은 잘 알고 있었다.고다정과 여준재는 반대하지 않았다.나눠서 움직이면 더 빨리 일을 해결할 수 있다.고다정은 사망자의 가족들을 떠올리고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당부했다.“병원에 가게 되면 꼭 조심해야 해요. 사망자의 가족이 뭐라고 하든 간에 최대한 그들과 충돌하지 않도록 해요.”“걱정하지 말아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니까.”채성휘는 고다정이 걱정하는 바를 이해했기에 무모하게 굴지 않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차는 곧 병원 앞에 멈췄다.채성휘는 고다정과 작별한 뒤 곧장 차에서
고다정은 누리꾼들이 무리를 지어 연구소를 부수겠다고 찾아올 줄은 몰랐다.그녀는 실험실에서 현양4호 데이터를 다시 얻고 있었다. 그녀는 최신 데이터로 그들의 약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걸 증명해 보일 셈이었다.고다정은 그사이 이따금 친구들에게서 안부 전화를 받았는데 그러다가 인터넷에서 난리가 났다는 걸 알게 되었다.사람들이 걱정해 주자 고다정은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그들에게 상황을 간단히 설명해 줬다.그러면서 마지막에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전화를 끊은 뒤 고다정은 계속 실험했다.이때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고 김창석이 초조한 얼굴로 실험실 밖에 서 있는 게 보였다.고다정은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황급히 실험을 중단하고 밖으로 나갔다.“아저씨, 무슨 일이세요?”“아가씨, 큰일이에요. 밖에 사람들이 몰려와서 다짜고짜 연구소에서 깽판을 쳤어요. 1층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2층 통로는 제가 막아두긴 했는데 그들이 쓰는 도구를 보니까 오래 버틸 수 없을 것 같아요.”김창석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고다정은 놀랍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미쳤대요?”그녀가 말을 이어가기도 전에 소담이 허둥대며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게 보였다.소담은 원래 김창석을 도와 폭도들이 연구소를 때려 부수는 걸 막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실력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폭도들 수가 워낙 많다 보니 그녀가 김창석을 도와 폭도들이 2층으로 올라오는 걸 막았지만 폭도들은 결국 2층까지 뚫고 올라왔다.소담은 결국 어쩔 수 없이 연구소 사람들에게 계속해 위층을 지키라고 했다.그러고는 고다정이 걱정되어 황급히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왔다.“2층은 이미 뚫렸어요. 3층 잠금장치도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아요. 대표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다른 곳에 가지 말고 실험실에만 계세요.”소담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다정에게 당부했다.실험실은 연구소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었기에 방어 시스템이 매우 완벽했다. 폭탄으로 공격하지 않는 한, 비밀번호 없이는 누구도 들어갈
바로 도착한다고 했지만 여준재는 가는 데 거의 10분이 걸렸다.YS그룹에서 여기까지 거리가 몇 km밖에 되지 않지만, 아침에 고다정을 데려다주고 돌아와서 YS 산하 계열사를 둘러본 탓이다.더욱이 그는 불과 2~3시간 사이에 이렇게 악질적인 사건이 발생하리라 생각지도 못했다.무장한 특수경찰도 여준재와 함께 도착했다.폭도들이 공구를 들고 있어 일반 경찰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그들의 출현은 위층에 있는 폭도들을 놀라게 했다.“큰일났어요. 경찰이 왔어요. 빨리 철수합시다.”이 소리에 조금 전까지 기고만장하던 사람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일부 담이 작은 사람들은 냉정을 되찾은 후 방금 한 일을 돌이켜보고 후회가 막심했다.분명 초심연구소의 해명을 들으러 온 것뿐인데, 어쩌다 연구소를 때려 부수는 방향으로 번졌을까?사람들이 순순히 나가서 경찰을 따라가려고 할 때 그들의 귓가에 마음을 현혹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한 사람씩 나가지 마세요. 우리가 한 사람씩 나가면 무조건 경찰에게 잡혀갈 거예요. 그들은 우리를 가두고 배상하라 할 것이고, 그 돈은 속이 검은 초심연구소에 들어가겠죠. 우리가 피땀 흘려 번 돈을 이런 사람에게 줄 수 없어요.”“맞아요. 초심연구소같이 사람을 죽인 쓰레기 연구소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에게 배상을 요구해요?”“다수인이 저지른 범행은 처벌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우리 다 같이 뛰쳐나가요. 우리가 빨리 뛰기만 하면 경찰은 우리를 잡지 못할 거예요.”이 말을 듣고 겁먹었던 사람들이 또다시 선동당해 흥분하며 소리 질렀다.“좋아요. 우리 같이 뛰쳐나가요.”선동당한 사람들을 보면서, 그중에서 이목구비가 뚜렷한 남자 몇 명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이들을 데리고 아래층을 향해 돌진했다.아래층에서 무장경찰이 폭도들에게 무기를 내려놓고 자수하라고 소리칠 준비를 했지만, 그들이 입을 열기도 전에 연구소에서 한 무리가 새까맣게 뛰쳐나왔다.그들이 나타나자 무장경찰과 여준재 측 사람들은 이내 그들의 속셈을 알아챘다.이들은 ‘다수인이
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회상했다정말 여준재가 말한 것처럼 병원에서 사고가 난 후 정신없을 정도로 사건이 줄줄이 터졌다.“그러니까 이번 일은 사고가 아니라 누군가가 뒤에서 저를 공격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고다정의 의심에 찬 눈빛에 마주한 여준재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건 단지 제 추측일 뿐이에요. 최근에 누군가에게 미움을 샀다거나 연구소에 누가 찾아와서 협력을 제안했는데 당신이 거절했다거나 그런 일이 없는지 생각해 봐요.”최근 고다정의 연구소는 저렴하고도 약효가 좋은 약품을 10종 개발해 국내에서 화제가 되고 있었다.연구소 배후에 YS그룹이 없었다면 연구소를 넘보는 사람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이는 여준재가 방금 그렇게 말한 원인이기도 하다. 어쨌든 상업계에는 비열한 인간도 많으니까.고다정은 여준재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없어요. 그간 병원에서 약품 구매와 관련해 협상하러 온 것 외에 다른 협력 제안은 없었어요. 그리고 병원과의 협상도 거절한 적인 한 번도 없어요.”“그럼 이상한데.”여준재는 이 일이 미스터리하다고 느끼며 미간을 찌푸렸다.두 사람이 깊은 사색에 잠겨 있을 때 차가 경찰서에 도착했다. 그런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또 기자들에게 둘러싸일 줄이야.“고다정 씨, 정의로운 누리꾼들이 연구소를 때려 부쉈다고 들었는데,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생각인가요? 누리꾼들의 책임을 물으실 건가요?”“개인적인 관점인데, 누리꾼들의 행동이 좀 과격하긴 했지만 그들은 피해자를 위해 정의를 구현하려 했다고 생각해요.”“누리꾼들이 연구소에 가서 항의하고 때려 부순 것으로 볼 때, 이 사건은 이미 대중의 분노를 산 것 같은데 고다정 씨는 어떻게 대중의 분노를 가라앉힐 건가요?”이 질문들은 정말 까다롭고 심지어 악의적이라 할 수 있었다.거의 모든 질문이 연구소를 범죄자 위치에 세웠다.고다정과 여준재는 바보가 아닌 만큼 이 말들에 숨은 함정을 모를 리 없었다.여준재는 위협적으로 눈을 찌푸리더니
폭도들은 고다정이 감히 자기들을 욕하니 화가 날 대로 났다.순식간에 별의별 듣기 거북한 욕들이 쏟아졌다.그 말들을 들은 여준재는 온몸에서 당장 살인이라도 할 것 같은 살기를 뿜어냈다.고다정도 그의 변화를 눈치채고 자기를 위해 그런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의 손등을 토닥이며 그를 달랬다.“이런 사람들 때문에 화낼 필요 없어요. 이 사람들은 그들이 응당 받아야 할 벌을 받을 거에요.”여준재는 그녀가 주변의 소리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을 보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다만 그는 고다정이 보지 못하는 각도에서 옆에 있는 구남준에게 눈짓했다.평소에 그는 고다정에게 차마 심한 말도 못 하는데, 이들이 그녀에게 욕설을 퍼부어 모욕하는 것을 어떻게 용납하겠는가.구남준이 여준재의 뜻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두 시간 정도 지난 후, 고다정과 여준재는 경찰서에서 나왔다.두 사람은 경호원의 호위를 받으며 차를 타고 떠났다.원래 경찰서에 남아 직접적인 기삿거리를 확보하려던 기자들은 아무런 쓸만한 소식도 확보하지 못하자 달갑지 않아서 계속 경찰서 앞에 죽치고 있었다. 안에서 경찰이나 다른 사람이 나오면 사건에 대해 취재하려고 했다.고다정은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여준재와 함께 연구소로 향했다.연구소에 도착해보니 청소는 거의 끝났고, 파손된 물건들을 전부 들어내니 공간이 엄청나게 커 보였다.김창석은 고다정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위층에서 내려왔다.“아가씨, 괜찮아요?”“전 괜찮아요. 이쪽 정리는 어떻게 됐어요?”고다정이 상황을 묻자 김창석이 사실대로 말했다.“정리는 거의 다 끝났어요. 꼭대기 층 실험실을 제외하고, 다른 층은 다시 리모델링해야 해요. 괘씸한 놈들이 벽에다 페인트까지 뿌렸어요.”이 말을 들은 고다정은 안색이 어두워졌다.그녀가 이 연구소를 세우기 위해 많은 심혈을 기울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파괴됐다.하지만 그 사람들이 곧 벌을 받고 배상도 할 것을 생각하니 화가 좀 풀렸다.“괜찮아요. 그 사람들은 결국 응당 받아야 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