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아침, 고다정은 여전히 약재가 걱정되어 날이 밝기도 전에 잠에서 깨어났다.그녀는 곁에 아직 잠들어 있는 여준재를 보며, 깨우지 않으려고 살금살금 침대에서 내려와 씻고 연구소로 가려고 했다.그런데 뜻밖에도 그녀가 침대에서 내리기도 전에, 곤히 자고 있던 여준재가 갑자기 눈을 떴다.창밖이 아직 밝지도 않은 것을 보고 여준재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상체를 들고 일어났다.“날이 아직 밝지도 않았는데 왜 벌써 일어났어요?”“연구소 일 때문에 잠이 안 와서요. 당신 깨울 생각은 없었는데, 얼른 더 주무세요.” 고다정은 미안해하며 여준재를 바라봤다.비록 어제저녁에 해결 방안에 관해서 얘기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최후의 노력을 하여 약재가 부족한 문제를 해결해 보고 싶었다.어찌하였든 이건 스승님이 자신한테 정식으로 맡긴 첫 번째 일인데, 완벽하게 처리를 못하여 스승님한테 실망을 안겨드리고 싶지 않았다.여준재도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바가 아니라서, 마음이 아팠지만 말리지 않았고, 오히려 그녀와 같이 갈 생각으로 침대에서 일어났다.“내가 다정 씨를 연구소로 바래다줄게요.”고다정은 원래 거절하려고 했다.이 남자가 자신을 아끼는 만큼 그녀도 그한테 마음이 쓰였기에, 그를 좀 더 쉬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그녀가 아무리 설득해도 여준재를 꺾을 수가 없어, 결국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연구소에 도착했을 때, 안에는 청소부 외에 아무도 없었다.아직 출근 시간 전이기 때문이다.고다정은 사무실로 가려는데, 문득 실험실 A 구역의 기기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보고 거기로 걸어가 그 안에서 분주히 돌아치고 있는 채성휘의 뒷모습을 보았다.고다정은 뜻밖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채성휘가 열심히 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돌아섰다.아침 출근 시간이 돼서야 채성휘는 고다정이 연구소에 있었다는 걸 알고 급히 찾아왔다.“고 선생님, 약재 공급업체는 소식이 좀 있나요?”“제 쪽은 아직 없어요. 다른 사람한테도 가능한 찾아달라고
저녁에 여준재는 고다정을 데리러 왔다.그녀의 미간에는 어느새 걱정이 사라지고 예쁜 얼굴에 홀가분하고 유쾌한 웃음기만 가득했다.“기분이 그렇게 좋아요? 내가 한번 맞춰 볼까요? 약재 일이 잘 해결됐어요?”“딩동댕. 정답입니다. 맞췄지만 장려는 없어요.”그녀는 애교 섞인 깜찍한 표정을 지으며 여준재를 쳐다봤다.여준재는 눈썹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그녀의 손목을 확 잡아당겨 자신의 품속으로 안기게 했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얼굴로 가까이 다가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누가 그래요, 없다고?”거의 말이 끝나기도 바쁘게 그는 머리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머금었다.앞에서 운전하던 구남준은 눈치 있게 가림막을 내렸다.한참 동안의 키스 후에 입술이 떼어지자 고다정은 온몸이 나른하여 숨을 헐떡이며 여준재의 품에 안겨 있었다.여준재도 별로 좋은 낯빛은 아니었다. 이마의 핏줄이 뚜렷해지고 무언가를 참는 내색이 여실하게 나타났다.다행히 집에 거의 도착했을 때 두 사람은 모두 숨을 가다듬었고, 여준재는 그제야 궁금하여 물었다.“약재 문제는 어떻게 해결된 거예요?”“이 일은 다 채 선생님 덕분이에요. 채 선생님 친구분이 임시로 우리한테 약재를 빌려줘서 이번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어요.”고다정은 숨김없이 사실대로 얘기했고, 주말에 채성휘와 함께 식사하고 나들이 나가기로 한 것도 털어놓았다.“채 선생님이 운산에 와서 한 번도 제대로 놀아 본 적이 없다고 해서요. 내가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뭐라도 해드려야 되지 않나 싶어서, 주말에 같이 나가서 놀자기에 그러기로 했어요.”그리고 그녀는 여준재가 질투할까 봐 뒤에 말을 덧붙였다.“물론 당신이 이곳 남자 주인이니까, 꼭 같이 가야 해요. 놀고먹는 일은 약혼자분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예비 신부님께서 직접 분부를 내리셨는데, 여부가 있겠어요?”여준재는 총애의 눈길로 고다정을 바라보며 그녀의 부탁에 수응했다.......눈 깜짝할 사이에 주말이 되었다.채성휘와 놀러 가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고다정과 여준재는
이런 생각은 온천 산장에 도착하면서 더욱 뚜렷해졌다.그들은 더 좋은 구경을 하기 위해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도보로 산기슭에서부터 산 정상에 있는 온천 산장으로 올라갔다.전에 고다정과 여준재가 같이 왔을 때는 한 가을이라 올라가는 길에는 단풍잎들이 울긋불긋 물들어 한 폭의 아름다운 유화와 다름없었는데, 지금은 갓 여름이 시작되어 사방이 봄꽃으로 단장되고 산 좋고 물 맑은 초여름의 완연한 풍경이 마치 인간 절경을 보는 것 같아 그야말로 힐링이 따로 없었다.아이들은 눈앞의 경치에 한껏 들떠서 고다정과 여준재를 팔을 끌어당기며 활짝 웃었다.“엄마 아빠, 우리 사진 찍어요.”여준재도 당연히 그들의 요구에 응하여 고다정의 허리를 껴안고 두 아이한테 사진을 부탁했다.“아빠, 엄마 좀 더 가깝게 껴안아 봐요.”“엄마, 아빠 좀 보세요.”두 아이는 그들한테 포즈를 잘 취하라고 진두지휘하고 있었다.나무 아래에서 다정하게 붙어서 사진을 찍고 있는 고다정과 여준재를 보며 채성휘는 가슴이 답답해지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아예 눈길을 돌려 보지 않고 생각지도 말자고 하는 그때, 두 아이는 일부러 찍은 사진을 들고 와 보여주며 그한테 잘 찍었는지 평가를 요구했다.“아저씨, 우리가 찍은 이 사진, 어때요? 잘 찍었어요?”두 아이는 말하며 폴라로이드로 찍은 사진을 채성휘한테 들이밀었다.피할 수 없어 그는 사진을 대충 한번 쳐다보고는 입꼬리를 힘겹게 끌어당겨 고개를 끄덕였다.“예쁘네.”“저도 너무 예쁜 거 같아요. 아빠랑 엄마랑 너무 잘 어울리죠. 아저씨?”하준은 작은 머리를 뒤로 젖혀 채성휘를 똘망똘망하게 쳐다봤다.마치 채성휘가 맞장구를 치지 않으면 계속 뚫어지게 그를 쳐다볼 것처럼 말이다.채성휘는 눈앞의 요 꼬마를 깊이 들여다보며, 이 녀석이 일부러 그러는지 아니면 그저 무심코 하는 얘기일지를 생각했다.하지만 그는 후자의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애가 몇 살밖에 안 되었는데, 설마 어른들의 일을 어떻게 알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그는 진
채성휘의 말과 소탈한 얼굴 기색에 여준재는 그가 이미 마음속 집념을 내려놓았다는 것을 알고, 저도 모르게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했다.“전 당연히 다정 씨를 저버리는 일은 없을 겁니다.”말을 마친 여준재는 고개를 숙여 품속에 있는 여자를 다정하게 바라보았다.마침 그때 고다정도 고개를 들어 여준재를 쳐다보았고, 두 사람의 눈길은 서로 마주치며 달콤한 분위기가 그들 주변을 감돌았다.곁에서 보는 채성휘는 마음이 조금 상했지만, 끝내는 생각을 비워 내어 전처럼 괴로워하지는 않았다.그는 옆에 있는 두 아이를 향해 손짓하며 조용히 말했다.“하준아, 하윤아. 아저씨가 너희들이랑 같이 먼저 올라갈까? 아빠랑 엄마는 뒤에서 천천히 오라고 하자.”두 아이는 이 말에 그를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지만 거절하지는 않았다.어쨌든 이 아저씨를 데려가면 아빠와 엄마가 같이 시간을 보내며 감정을 더 싹틔울 수 있으니 차라리 잘된 일이라 생각했다.채성휘는 두 아이의 마음을 모르고, 그저 그 둘이 자기를 따라나서자 한 손에 한 아이씩 잡고 산꼭대기를 향해 걸어 올라갔다.올라가는 길에 하준은 자주 고개를 들어 채성휘를 힐끔힐끔 쳐다봤다.그의 눈빛을 채성휘는 진작에 발견하고, 아이가 또다시 한번 훔쳐볼 때 얼른 고개를 돌려 웃으며 물었다.“너 이 녀석, 아까부터 왜 자꾸 날 힐끔힐끔 쳐다봐? 무슨 할 말이 있어?”하준은 눈을 깜박거리며 앙증맞은 소리로 물었다.“아저씨, 아저씨 집에는 아이가 있어요?”채성휘는 어리둥절해서 의문스레 쳐다봤다.“왜 갑자기 나한테 그런 걸 물어봐?”“보니까 아저씨가 우리 아빠랑 나이가 비슷한데, 결혼하셨을 거 같아서요. 우리 아빠처럼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나 해서요.”하준은 행복한 가정이라는 다섯 글자를 강조하며 말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채성휘는 알아듣지 못하고 실소를 터뜨렸다.“아저씨가 너희 아빠랑 나이가 비슷한 건 맞지만, 아저씨는 실험실에서 계속 일만 하다 나니 아직 결혼도 못했고 여자친구도 없어.”“네? 여자친구도 없다고요? 그
지난 한 달 동안 진씨 집안과 고씨 집안은 확실히 힘든 시간을 보냈다.그러나 경제적 기반이 좀 더 탄탄했던 진씨 집안은 그래도 고씨 집안보다는 훨씬 나았다. 진씨 집안에서 고경영의 회사에 일부 자금을 불어넣지 않았더라면, 고씨 집안 회사는 아마 진작에 파산을 선고했을 것이다.근황을 전하며 심여진은 자신이 마중 나온 진짜 목적도 잊지 않고 얘기했다.“너 돌아가서 시부모님께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는 말썽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약속해. 그 집안에서 우리 집에 돈을 더 투자 안 하면 네 아버지 회사가 망해버릴 거야. 그럼 너나 나나 그날로 끝장인 거야, 내 말을 잘 알아듣겠니?”“네, 알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시부모님이 저를 못마땅해하는데, 우리 집이 파산하면 더 이혼하라고 난리 칠 걸 저도 알아요.”고다빈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모녀는 다정한 말을 주고받으며 고씨 집안 저택으로 돌아갔다.고경영은 저택 안에 없었고, 심여진은 고다빈을 씻으라 하고 또 한참을 쉬고 난 후에야 기사 편에 집으로 돌려보냈다.고다빈이 진씨 집안 저택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저녁 무렵이었다.그녀는 거실에 들어서자 진씨 일가 사람들이 한창 식사 중인 걸 보았다.진씨 집안 두 어르신은 고다빈을 차갑게 흘겨보더니 상대할 마음이 없다는 듯 계속하여 밥을 먹었다.진시목은 그래도 그녀를 본체만체하지는 않았고, 미간을 찌푸리더니 나지막하게 말했다.“점심때 나오는 거 아니었어? 왜 이제야 집에 돌아와? 그리고 너 얼굴에 상처는 어떻게 된 거야?”비록 그의 안색은 좋지 않았지만, 관심이 담긴 그의 말에 고다빈은 그나마 마음이 따뜻해졌다.“제가 걱정되어 엄마가 절 친정집에 데려갔었어요. 얼굴은... 그 안에서 실수로 부딪힌 거니까 괜찮아요.”고다빈은 말을 마치고 얼굴에 부드러운 웃음을 띠며 시부모님을 향해 인사를 드렸다.“어머님, 아버님. 저 왔어요.”그녀가 먼저 인사를 건넸는데도 시부모는 여전히 차가운 낯빛을 하고 있었다.“돌아오든 말든. 뭐 일어나서 환영식이라도 열
“무슨... 일인데요?”고다빈은 진시목의 말을 듣고 왠지 불안했다.그러나 진시목은 그저 그녀를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 마음속의 불안감은 더 깊어졌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10여 분이 지나자 식구들은 전부 식사를 마쳤다.고다빈은 진시목을 따라 서재로 들어갔다.진시목은 들어가자마자 책상 쪽으로 향해 걸어갔고 고다빈은 입술을 깨물고 그의 뒤를 바짝 따라붙으며 물었다.“오빠, 방금 할 말 있다 그러지 않았어요? 이제 우리 둘 남았는데, 얘기해도 되지 않아요?”“여기다 사인해.”진시목은 말하며 종잇장 하나를 내밀었다.고다빈은 의심스러운 눈길로 그 문서를 들여다봤는데, 순간 동공이 움츠러들었다.이혼 합의서라는 글자가 바로 눈에 띄었다.“난 사인 안 해!”고다빈은 자지러지게 소리 지르며 크게 한 발 뒤로 물러섰다.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진시목을 바라보며 눈가에는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리고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오빠, 우리 이혼하지 말아요. 내가 잘못했어요. 내가 정말로 잘못했어요.”진시목은 무표정으로 그녀를 보기만 하며 그의 태도를 충분히 밝혔다.고다빈은 그의 이혼을 결심한 듯한 모습을 보며 당황하기 시작했다.“몰라, 난 이혼 안 해요! 그리고 오빠가 전에 시부모님께 말했다며, 나랑 이혼하지 않을 거라고. 왜 이제 와서 또 그러는데!”“그 전에 안 하겠다고 한 건 우리 집안이 너무 야박하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였어. 네가 이제 출소했으니 당연히 이혼해야지. 널 남겨둬서 우리 집안을 말아먹게 할 일 있어?”진시목은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는데 말투는 매우 거칠었다.“네가 우리 집안에 시집오고 나서 우리 집안을 위해 한 일이 뭐가 있어? 그동안 계속 우리 집안이 너를 위해서, 너희 고씨 집안이 싸지른 똥이나 닦아주고 있었잖아. 이제 너 때문에 우리 집안 근간이 다 흔들리고 있는데, 이만하면 할 도리 다 한 거 아니야? 너 무슨 자격으로 나랑 이혼을 안 하겠다 버티는데?”이 말이 나오자
“무... 무슨 물건이요?”고다빈은 무의식적으로 물으며 마음이 더 불안해졌다.진시목은 그녀를 빤히 노려보며 냉랭하게 말했다.“이번에 우리 가문에서 본 손실은 대략 16억이야. 네가 16억에 상당한 물건만 내놓는다면 이번 일은 없었던 걸로 해.”16억?!고다빈은 이 숫자에 놀랐다.그녀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자금을 다 합쳐도 6억밖에 안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 돈은 자신이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갖고 있던 돈인데, 절대로 건드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오빠, 내가 그렇게 많은 돈이 어디 있어요? 아니면 일단 빚지는 걸로 하고, 내 평상시 용돈에서 까는 건 어때요?”고다빈은 이 돈을 그냥 얼렁뚱땅 떼먹으려는 심산이었다.하지만 진시목은 그걸 허락할 리가 없었다. 왜냐면 이것이 그가 고씨 집안 회사를 잠식하기 위한 첫걸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는 단칼에 거절했다.“그건 안 돼.”끝으로 그는 또 한마디 덧붙였다.“물론, 네가 돈이 없으면 다른 하나의 합의서를 선택하면 돼.”그는 진씨 가문에 손해를 끼치는 여자는 절대로 남겨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고다빈도 그의 말뜻을 알아듣고 얼굴이 다시 창백해졌다.그녀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고민하다가, 문득 아이디어 하나가 머릿속을 스쳤다.“아뇨, 저한테 돈이 있어요, 제 수중에 GS그룹 지분 10%가 있어요. 비록 지금 주가가 좀 내려가긴 했어도 환산하면 십사억에서 십육억 정도는 될 거예요.”말을 마친 그녀는 매우 흥분된 표정으로 진시목을 쳐다보며 머릿속에서는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사실 그녀는 일부러 이렇게 말했다. 주식을 팔아도 진시목과 이혼하지 않는 한, 그 주식은 자기 것과 다름이 없다고 생각했고, 집안 회사에도 도움이 될 거라 여겼다.왜냐면 진시목이 주식을 갖고 있으면, 주가가 떨어지는 걸 손 놓고 볼 수는 없을 것이고, 어떻게 해서라도 주가를 살릴 방법을 찾을 테니 말이다.그러나 그녀의 이런 잔꾀가 진시목한테는 매우 좋은 인수합병의 디딤돌이 되었다.진시목은 안색이 누그러
그다음 날 고다빈은 아침 일찍 진시목이 불러 회사로 가서 주식양도서에 서명했다. 계약서가 효력을 발생하는 그 순간, 진시목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는 전에 그 많은 것을 투자하고 자신의 혼인 생활까지 희생 한 보람이 있구나 하며 생각했다.그러나 그는 이 정도에 만족하지 않았다.그는 맞은편에서 기뻐하는 고다빈한테 시선을 주며 일부러 귀띔을 해주었다.“이제 계약서에 서명까지 했는데, 너희 부모님께 알려야 하지 않아? 나중에 GS그룹에 갔을 때 날 괜히 오해하면 안 되잖아.”“오빠 말이 맞아요. 근데 이건 전화로 얘기하기가 좀 그런데, 내가 직접 가서 얘기를 드려도 될까요?”고다빈은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며 진시목의 허락을 기다렸다.아직도 그녀는 어젯밤에 진시목과 한 약속을 잊지 않았다.진시목은 당연히 허락했고, 운전기사까지 딸려 보내 GS그룹에 실어다 주라고 했다.GS그룹 내, 고경영은 한창 비서의 보고를 듣고 있는데, 고다빈이 왔다는 통보를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걔가 왜 왔어?”의문이 들었지만 비서를 시켜 일단 들여보내라고 했다.고다빈은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아버지의 안색이 좋지 않자 어색하게 아버지를 불렀다.“아빠.”“네가 여기 왜 왔어?”고경영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볼 뿐만 아니라 말투까지 짜증이 넘쳤다.고다빈은 입술을 좀 축이고, 고경영이 앉으라는 소리를 하기도 전에 소파에 가서 앉으며 찾아온 용건을 설명했다.“엄마가 그러던데, 요즘 회사가 좀 힘들다면서요? 그래서 제가 회사를 살릴 방법을 생각해 냈어요.”“네가 무슨 방법이 있어?”고경영은 시큰둥해하며 아예 그녀의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고다빈은 아버지의 태도에 개의치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내가 갖고 있던 주식을 시목 오빠한테 넘겼어요. 그가 이제 이 회사 주식이 생겼으니 진씨 집안에서... ““너 방금 뭐라고 했어?!”고다빈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고경영은 경악한 얼굴로 그녀의 말을 잘랐다.고다빈은 거기에 더욱 놀라 살짝 겁에 질린 표정으
“하윤 씨, 좋아해요. 제 여자친구가 되어줄래요?”임지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여자애를 바라보며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하윤은 잠깐 얼떨떨해하더니 이내 환한 웃음을 지었다.“네.”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예쁜 미소를 보고 임지호도 해맑게 웃었다.햇빛 아래 선남선녀는 너무 잘 어울렸다.임은미와 고다정은 구석에 숨어 이를 지켜보며 들떠서 소곤거렸다.“하윤이 저렇게 활짝 웃는 걸 보니 서로 고백한 것 같아.”“고백한 게 맞아. 둘이 같이 앉은 걸 봐.”“역시 내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어. 내가 나서면 안 맺어지는 커플이 없다니까.”임은미는 마침내 자화자찬하기 시작했다.고다정은 그녀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 저 남자애가 하윤을 좋아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모하게 나섰다가 맺어주는 게 아니라 끝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한참 더 보다가 호기심이 충족된 듯 제대로 자리에 앉아 요리를 주문했다.기왕 온 김에 뭘 좀 먹어야지.식사하면서 고다정이 감탄했다.“애들이 어느새 커서 애인까지 생겼네.”“그러게. 우리도 늙었어.”임은미도 같이 탄식했다.뒤이어 그녀는 맞은편의 절친을 바라보며 물었다.“앞으로 무슨 계획 있어?”“보름 동안 쉬면서 준재 씨랑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후 새로운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거야.”고다정은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임은미는 이 말을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너 점점 일벌레가 되어가는 것 같다.”“그건 내가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야.”고다정이 웃으면서 말했다.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청아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전을 때렸다.“여하준 씨, 거기 서요.”이 소리를 듣고 눈빛을 주고받는 고다정과 임은미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이런 우연이! 이 작은 레스토랑에서 두 남매를 모두 만난다고?’하윤도 너무 뜻밖이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하준 쪽을 바라보았다.“오빠?!”“하윤?!”여하준도 이때 하윤과 그 옆의 청년을 발견하고 미간을
하윤은 정말 돌아오지 않았다.하민이 가지 못하게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여준재에게는 무척 즐거운 밤이었다....이튿날 아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금빛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이불 밖에 나온 고다정의 피부에 내려앉았다.피부에 생긴 흔적에서 어젯밤에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여준재는 일찍 깼지만 아침의 따스함을 놓치기 싫어 고다정을 안고 만족스럽게 침대에 누워있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누군가가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엄마, 일어나요.”하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여준재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자식은 빚쟁이라는 말이 맞다. 이전에 좋아했던 만큼 지금은 싫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품속의 여인이 깨어났다.고다정이 정신이 흐릿한 상태로 물었다.“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려요?”“하윤이에요. 내가 돌려보낼 테니 자요.”여준재가 그녀를 풀어주고 일어나려 했다. 너무 졸렸던 고다정은 막지 않았다.그녀는 오후까지 자고 임은미가 전화해서야 겨우 일어났다.30분 후 두 사람은 시내 중심의 쇼핑몰에서 만났다.임은미는 잠이 덜 깬 것 같은 고다정을 보고 놀려댔다.“너랑 여 대표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좀 절제해.”“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너도 절제해. 목에 난 흔적이 가려지지도 않아.”지금의 고다정은 약간 야한 농담에도 얼굴을 붉히던 10년 전의 고다정이 아니다.지금의 그녀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역습한다.임은미도 말문이 막히지 않았나.그녀는 채성휘와 자주 싸우지만 둘 사이의 감정에는 조금도 영향이 없었다.그녀가 코웃음을 쳤다.“네가 이겼어. 이제 너를 쉽게 놀리지 못하겠어.”그녀는 말하면서 고다정과 어느 가게에 들어갈지 사방을 둘러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다정아, 저기 하윤이 아니야?”“하윤이?”고다정이 놀라며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정말 멀지 않은 곳의 레스토랑에 하윤과 깔끔해 보이는 잘생긴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이 말을 들은 하윤은 즉시 고다정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저, 오빠, 그리고 이모 세 사람 외에 또 있어요?”그녀는 의문스레 고다정을 쳐다보았다. 설마 그때 아빠, 엄마를 맺어주려고 애쓴 사람이 또 있나?그런데 그녀가 말하자마자 고다정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일 줄이야.“그래, 너와 오빠, 이모가 도와준 걸 말하는 거야. 그때 너희 셋이 나랑 너희 아빠를 맺어주려고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어? 그러니까 너 혼자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다니면 이뤄지기 힘들지 않겠어?”“좀 일리가 있네요.”갑자기 엄마한테 설득당한 하윤이 무심코 말했다.“그럼 엄마랑 이모가 좀 방법을 생각해 주세...”‘요’자를 내뱉기 전에 그녀는 씩씩거리며 또 한 번 엄마를 째려보았다.“또 엄마한테 걸려들었어요.”고다정은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어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계집애, 어렸을 때와 똑같이 잘 속아.”그녀는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나왔다.이를 보고 화가 난 하윤이 손을 뻗어 고다정을 간지럽히려 했다.“엄마 나빠요.”그렇게 모녀는 온천에서 웃고 떠들었다.이쪽의 따뜻한 분위기와 달리 남자 노천탕은 썰렁했다.“자식, 어렸을 때는 귀여웠는데 크면 클수록 얄미워.”옆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여준재는 눈앞의 두 아들이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렸다.하준이 판에 박은 것 같이 똑같은 표정으로 아빠를 힐끗 쳐다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피차일반입니다.”하민은 형과 아빠가 티격태격하자 조용히 구석에 숨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지위가 가장 낮다는 것을 알았다.여준재는 막내아들의 속마음을 모른 채 자기한테 말대꾸하는 큰아들을 보며 문득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허구한 날 남의 마누라를 생각하지 말고 네 마누라를 찾아. 아니면 네 할머니한테 맞선을 주선하라고 할까?”그렇다. 여준재가 생각해 낸 방법은 하준을 결혼시키는 것이다.‘이 자식이 자기 마누라가 생기면 더 이상 내 마누라를 생각하지 않겠지.’하준이 그의 생각을 모를
그날 저녁 여씨 삼남매는 결국 남아서 고다정을 축하해 주었다.식사가 끝난 후 임은미는 두 딸을 데리고 떠나갔다.가기 전에 그녀는 고다정과 내일 오후에 같이 쇼핑하기로 약속했다.임은미를 보낸 후 다섯 식구는 남녀가 분리된 온천 노천탕에 갔다.고다정은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느긋한 시간을 보낸 게 얼마 만인가.그녀가 눈을 감고 즐기고 있을 때 어깨 위에 갑자기 손이 올라오더니 그녀의 어깨를 주물렀다.고개를 돌려 보니 둘째 딸이 그녀의 뒤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엄마...”“왜?”고다정이 나지막이 묻자 하윤이 바짝 붙으며 말했다.“엄마가 아빠한테 사정 좀 해 주시면 안 돼요?”그녀는 고다정의 환심을 사려고 방긋 웃었다.“오늘 엄마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는 아빠의 계획을 제가 망쳤으니 아빠가 틀림없이 내일 저한테 일을 시킬 거예요.”그녀가 이렇게 단언하는 원인은 그동안 이런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학교 다닐 때는 그녀가 엄마한테 너무 달라붙는다고 아빠가 그녀를 속여 공부를 많이 시켰다.후에 점차 크고 오빠가 폭로해서야 그녀는 아빠의 꾀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고다정은 고민 가득한 딸애 얼굴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이 계집애는 어릴 때부터 말을 잘 듣지 않았는데, 매번 아빠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결국 비참하게 혼쭐이 나고 불쌍한 모습으로 엄마를 찾아왔다.“이제야 두려워? 이모를 꼬드길 때는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생각 안 했어?”“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엄마가 원래 여가 시간이 많지 않은데 아빠가 항상 엄마를 차지하니까.”계집애는 말하면서 고다정의 어깨를 껴안고 또 응석을 부렸다.애교 공세에 당할 수 없는 고다정은 이내 동의했다.하윤은 기쁜 나머지 고다정을 안고 뽀뽀하더니 배시시 웃었다.“역시 엄마밖에 없어요.”“너도 참, 빨리 온천에 몸을 담가.”고다정이 말하면서 그녀를 잡아당겨 노천탕에 앉혔다.그러나 하윤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그녀는
한편, 서쪽 외곽에 위치한, YS그룹에서 개발한 온천 리조트에 세련된 곡선미를 자랑하는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도착했다.차가 천천히 입구에 멈춰 서더니 검은색 수작업 맞춤 양복을 입은 여준재가 차에서 뛰어내렸다.똑바로 선 후 그는 돌아서서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차 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준수한 얼굴에서는 꿀 뚝뚝 다정함이 넘쳐흘렀다.“부인, 도착했습니다.”검은색 여성 정장 차림의 고다정이 가늘고 예쁜 손을 우아하게 여준재의 손바닥 위에 얹더니 차에서 내렸다.지금의 그녀는 풋풋함을 벗은 대신 카리스마와 여유가 넘쳤다.옆에 있던 매니저가 알랑거리며 그녀를 맞이했다.“사모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건 저와 직원들의 작은 성의입니다. 인류 의학에 공헌한 사모님께 감사드립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넸다.사방에서 박수와 축하가 쏟아졌다.“축하드립니다, 사모님.”“사모님, 진짜 대단하십니다!”“사모님은 제 롤모델입니다!”이 말을 듣고 고다정은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옆에 서 있는 여준재도 눈에 자랑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뒤이어 두 사람은 매니저의 안내로 룸에 들어섰다.룸에는 이미 고다정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두 사람이 오붓하게 식사하고 있을 때 가방 속에 있는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임은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은미야, 무슨 일이야?”고다정이 전화를 받았다.옆에 있던 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고다정을 쳐다보던 그는 그녀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고다정의 표정을 보니,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제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은미가 축하 파티를 준비했다고 오래요.”“은미 씨는 인터넷을 안 본대요?”여준재가 답답한 듯 한마디 했다. 그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분명 고다정은 그의 아내인데, 지난 12년간 그는 아내와 단둘이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궐에서 전하를 만나는 것보다 어려웠다.안팎에 강적이 있는 데다 고다정이 그동안 암세포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느새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12년간 지도층이 바뀌고, 많은 연예인이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심지어 국제 정세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등 많은 일들이 발생했지만 여준재와 고다정의 애정 전선은 변함이 없었다.현재 두 사람은 주변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잉꼬부부가 됐다.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금실이 좋은 것도 있지만 잘생기고 철이 든 아들딸을 두었기 때문이다.지금 여씨 가문의 큰 도련님, 아가씨, 작은 도련님 얘기가 나오면 엄지척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특히 여하준은 19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도와 두 회사를 관리하고 있다.물론 여하윤도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의 콘서트홀에서 연주했을 정도로 뛰어나다.그리고 여씨 가문의 작은 도련님은 형, 누나만큼 대단하지는 않지만 어려서부터 말솜씨가 좋아 많은 귀염을 받았고, 지금은 연예계 인기 아역 스타다....운산공항 로비의 스크린에 최신 국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12년 만에 암세포를 죽이는 약을 개발해 낸 고다정 교수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는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연구 성과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암을 두려워할 필요도, 암 얘기에 놀랄 필요도 없게 됐습니다.”뉴스 진행자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최근 몇 년 고다정 연구팀의 약물 연구 덕분에 암세포 억제제가 꾸준히 개진되긴 했지만 암세포를 철저히 소멸할 수는 없어 암에 걸린 후 결국 치료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이 뉴스는 방송되자마자 많은 행인의 주의를 끌었다.인터넷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고다정에 대한 축복이 쏟아졌다.[고 원장님이 해낼 줄 알았어!][너무 기쁜데 어떡하지? 우리나라를 빛낸 고 원장님을 지지하기 위해 약방에 가서 그 회사 약들을 대량 구매할 거야.][나도. 우리 집에는 환자가 없지만 이 약들을 필요한 기관에 기증할 수 있어!][하하하, 속이 다 시원하네. 그때 고 원장님이 안 된
열 몇 시간 후 비행기는 드디어 평온하게 착륙했다. 여준재가 낮은 소리로 옆에서 달게 자는 아내를 깨웠다.“여보, 일어나요.”그 소리에 고다정이 눈을 뜨더니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낯선 환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여기 어디예요?”“아직 비밀이에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알 거예요.”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비행기에서 내린 후 공항을 나섰다.그들을 마중 나온 차량이 벌써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탄 후 고다정이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 지금 어디 가요?”“먼저 밥 먹으러 가요. 지금 너무 배고프죠?”여준재가 기사에게 근처의 가장 좋은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말했다.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할 때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다 이렇게 장시간 비행한 까닭에 확실히 배가 고팠다.레스토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룸에 들어갔다.주문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레스토랑 직원이 예쁘게 플레이팅된 음식들을 들여왔다.훈훈하고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여준재가 고다정의 식사를 챙겼다.이때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국내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엄마, 아빠랑 같이 어디 갔어요?”쌍둥이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이 목소리를 들은 고다정은 갑자기 뜨끔했다.“컥컥, 엄마랑 아빠가 일이 있어서 외출했어. 며칠 뒤에 돌아오니까 집에 얌전히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잘 듣고. 알았지?”“흥! 엄마랑 아빠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몰래 나간 거잖아요.”쌍둥이가 직접 고다정의 거짓말을 폭로했다.고다정은 무안해하며 도와달라는 듯 여준재를 바라보았다.당연히 아내 편인 여준재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말했다.“아빠와 엄마가 신혼여행 중이야. 돌아갈 때 너희 선물을 사 갈게.”말하고 나서 그는 직접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 건너편에서 신호가 끊긴 스마트워치를 바라보는 쌍둥이의 앳된 얼굴에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아빠 나빠.”“너무 나빠!”쌍둥이는 아빠한테 잔뜩 화가 났다.이때 임은미가 오더니 그들의 안색이 안 좋은
이 말이 나오자 고다정과 임은미는 서로 마주 보며 웃더니 손을 잡고 무대 옆으로 나와 하객들을 등지고 섰다.“부케를 받은 사람은 내년에 솔로 탈출합니다.”두 사람이 부케를 던진 후 뒤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부케를 누가 받았는지 신부님들 뒤를 돌아보세요.”고다정과 임은미는 두 젊은 아가씨가 부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축복의 말을 건넸다.“두 분도 내년에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두 아가씨가 감사 인사를 했다.사람들 뒤에 서 있던 구남준은 속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분명 자기도 동작이 빠른데 부케를 하나도 받지 못하다니. 설마 평생 혼자 살 운명인가?...결혼식이 끝난 후 신혼방으로 돌아온 두 사람.“피곤하죠? 좀 쉴래요?”여준재가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아니요. 방금 결혼식장에서 잠깐 쉬었더니 지금 괜찮아요. 당신 먼저 옷부터 갈아입어요.”고다정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고생했어요, 여보.”순간 여준재가 고다정을 꽉 껴안더니 다정하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여준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고다정은 황급히 그의 입술을 피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아직 밤도 아닌데, 이미지에 좀 신경 쓰세요.”“당신 앞에서 무슨 이미지에 신경 써요? 당신을 안고 자려는 것뿐인데.”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억울한 표정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알았어요. 놀리지 않을게요.”여준재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고다정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당신은 웃을 때 진짜 예뻐요.”여준재가 넋이 나간 듯 고다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당신도 참.”그의 칭찬에 고다정은 얼굴이 더 빨개졌다.여준재는 고개를 숙이더니 고다정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고다정은 피하려고 했지만 여준재가 그녀를 꽉 껴안고 반항하지 못하게 했다.키스는 오랫동안 지속됐고, 고다정이 호흡 곤란이 올 정도가 돼서야 여준재는 그녀
결혼식 현장은 환상적이었다.전 세계 명문가에서 대표를 파견해 참석했다.이렇게 많은 유명인들 앞이라 고다정과 임은미는 몹시 긴장했다.“준재 씨, 좀... 긴장돼요.”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여준재를 쳐다보는 고다정의 눈에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 감돌았지만 수줍음과 기대감도 보였다.“괜찮아요. 제가 항상 곁에 있을게요.”여준재가 약간 차가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긴장 풀어요. 당신은 신부 노릇만 잘하면 돼요. 다른 건 다 저한테 맡겨요.”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마음이 놓이는 대신 열정이 넘치고 약간 기대도 됐다.“신부가 진짜 예쁘네.”“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신부네 집안도 보통이 아니래. 여씨 가문이 더 번창하겠어.”하객들이 쑥덕거렸다. 그중 고다정을 부러워하는 상류층 부잣집 따님도 적지 않았다.오늘 여준재는 유난히 멋있었다. 매끈한 양복 차림에 준수한 외모가 불빛 아래에서 유달리 돋보였다.고다정은 여준재와 팔짱을 끼고 사람들의 부러운 눈빛 속에서 천천히 버진로드의 종점을 향해 걸어갔다.두 사람이 무대에 선 후 채성휘와 임은미가 뒤늦게 입장했다.이들 둘도 버진로드를 따라 행진해 여준재와 고다정의 옆에 섰다.결혼식 사회자는 두 쌍의 신랑 신부가 모두 입장한 것을 보고 결혼식의 시작을 알렸다.“존경하는 하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결혼식을 시작합니다!”이 말이 끝나자 무대 아래의 하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하객분이 증인이 되어 두 쌍의 신랑 신부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도록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사회자의 말에 무대 아래에서 또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여준재 씨는 옆에 있는 아름답고 우아한 신부를 아내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고 돌보기를 원합니까?”사회자가 웃음 띤 얼굴로 무대 위에 서 있는 여준재를 보며 물었다.“물론입니다!”여준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 후 확고한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