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여준재는 회사로 고다정을 데리러 왔다. 집에 돌아가며 그는 물었다.“지선우한테 부지를 구해오라 했다면서요? 연구소 짓는다고.”“네, 맞아요.”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이자 여준재는 다그쳐 물었다.“왜 연구소 지을 생각을 했어요? 회사에 새로운 프로젝트가 생긴 거예요?”그제서야 고다정은 사실을 말했다.“회사 일이 아니고요, 오늘 선생님이 저한테 전화가 왔어요. 국내에 연구소를 설립하고 싶으신데 모든 일을 저한테 일임할 거라고요. 나중에 연구소 관리와 신약 개발하는 것까지 전부 다요.”“그렇군요. 저도 적당한 부지나 기성 연구소가 있는지 알아봐 줄게요.”여준재는 자진해서 돕겠다고 했고 고다정도 그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여준재의 인맥이나 정보가 자신보다 훨씬 더 넓고 빠르니 말이다. 문득 그녀는 스승님이 배치해 주신 또 다른 연구개발원이 생각나, 잠깐 고민 끝에 말을 꺼냈다.“저, 그게...선생님께서 저 말고도 실험실에 조수 한 명이랑 연구개발원을 한 명 더 구해 주셨거든요.”그녀의 말을 들은 여준재는 마치 텔레파시라도 통한 것처럼 그녀의 말뜻을 단번에 알아챘다.“혹시 그 연구개발원이 저번 해주시 그 사람 맞나요?”“네, 맞아요. 절대 다른 생각 하면 안 돼요.”전에 해주시에서 돌아오고 나서 여준재한테 한바탕 괴롭힘을 당했던 생각이 떠올라, 고다정은 서둘러 해명하느라 바빴다. 누군가의 질투심이 불타올라 또 험하게 시달려 침실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까 두려웠다.여준재는 자신한테 쌩긋쌩긋 웃으며 살살 비위를 맞추는 그녀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그건 다정 씨가 어떻게 하는지에 달렸죠.”“무조건 잘할게요.”고다정은 또다시 활짝 웃으며 그를 보았다.그 모습에 여준재는 웃으며 말머리를 돌려 물었다.“그 사람 언제 오는데요? 도착하면 제가 호스트로서 단단히 접대를 해드려야겠는데.”말은 그럴싸하게 해도 그가 무슨 꿍꿍인지 훤히 꿰뚫고 있는 고다정은 웃으며 눈을 가늘게 뜨고 여준재를 곁눈질했다.그
”날 믿어준 건 너무 고마운데, 이 연구소는 그래도 다정 씨가 직접 와 보는 게 좋겠어요.”여준재는 고다정이 꼭 현장에 가봐야 한다고 고집했다. 가서 둘러보는 것도 좋은 생각이겠다 싶어 고다정도 동의했고, 그리하여 십 분 뒤에 여준재는 고다정을 데리러 왔다.가는 길에 여준재는 그 연구소에 관해 설명했다.“그 연구소는 사실 박재경 명의로 되어 있는 건물이에요. 그 자식이 평소에는 좀 빈둥빈둥 놀러 다니기만 하는 것 같은데, 사실 계속 뭐라도 성과를 내고 싶어 했거든요. 근데 이상하게도, 태생이 마이너스의 손인지, 걔가 손대는 사업마다 말아먹거든요. 심지어 우리랑 같이 해도, 우린 돈을 벌었는데, 걘 이상하게 손해를 보더라고요.”말끝에 그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고다정도 듣고 매우 놀랐다.“그렇게나 신기해요?”“허허, 네. 재경이는 워낙에 이렇게 신기한 녀석이에요. 이번 연구소만 해도 그래요. 다른 사람들이 돈 버는 걸 보고 그 녀석도 하고 싶어 했는데, 그 녀석 집에서는 이미 걔 속성을 간파한 거죠. 그래서 어차피 말아먹을 돈, 주지 않았어요. 적은 액수도 아니었고요. 그러다 그 자식이 우릴 찾아온 거예요. 자기를 좀 도와 달라고요. 그래서 각자 자금을 내서, 협력하는 방식으로 이 연구소를 운영하기 시작했어요.”여준재는 이 연구소에 깃든 ‘역사’를 털어놓았다. 고다정은 다 듣고 눈을 깜박이며 의문이 풀리지 않아 물었다.“준재 씨랑 친구들이 투자했는데, 어떻게 돼서 이 연구소가 또 망해버렸죠?”“그건 뒷이야기인데, 연구소가 처음 지어졌을 때는 투자한 돈을 날려버리지 않기 위해 우리 셋이 주요 경영을 맡았고, 재경이가 곁에서 거들었어요. 그러다 나중에 연구소가 점점 정상궤도에 들어서고 성과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장기간 관계를 유지하는 거래처도 생겼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재경이를 단련시키려고 그 자식한테 맡기고 점점 손을 놓기 시작했는데, 결국...”결국 어떻게 됐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고다정은 충분히 이해했다. 결과가 잘 됐으면 그녀한테 연구
한 바퀴 둘러본 일행은 연구소 사무실로 향했다.박재경은 여준재와 고다정을 자리에 앉히며 직접 차를 대접했다.“형수님, 여기가 마음에 드시나요?”“마음에 들긴 하는데, 가격은 얼마에요?”고다정은 사무적인 눈빛으로 박재경한테 물으며 문득 뭐가 더 생각이 났는지 한마디 덧붙였다.“이건 비즈니스니까 개인적인 친분은 내려놓고 얘기하는 게 어때요?”이 말에 멍한 얼굴로 바라보다 박재경은 여준재한테 눈길을 돌렸다. 그랬더니 여준재도 그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날 볼 거 없어. 난 관여하지 말라고 네 형수님이 그랬거든. 너희들이 얘기 나눠.”박재경은 시선을 거두고 마음속으로 고다정에 대한 호감도가 더 상승했다.“형수님 멋지십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성의를 표해야죠. 이 금액만 주세요.”그는 말하고 나서 손가락으로 16을 그렸다.고다정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넌지시 떠보았다.“160억이요?”“160억이라뇨, 여긴 그 정도 안 해요.”박재경은 고다정이 묻는 가격에 깜짝 놀라 얼른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16억이요, 16억. 그 안에 여기 있는 기구들 전부 포함해서요. 준재 형님이 말씀드렸죠? 이건 형수님이 직접 처리해야 한다고요.”“네, 그 얘기는 들었어요.”고다정은 고개를 끄덕이는 동시에 16억이라는 가격에 매우 만족했다. 물론 그녀도 이 가격이라면 박재경이 매우 큰 혜택을 준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성남구에 위치한한 부지가 얼마나 비싼지는 둘째 치고, 이 안에 들어있는 기구들만 해도 10억 이상은 할 것이다.여기까지 생각하자 고다정은 진지하게 말했다.“그 가격도 재경 씨가 이미 매우 손해를 본다는 걸 알아요. 이럽시다, 160억은 제가 내드릴 순 없겠지만, 20억은 가능해요. 이 가격은 어때요?”그녀의 말이 끝나자, 박재경과 여준재는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 고다정이 이렇게 나올 줄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박재경은 다시금 여준재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여준재가 웃으며 말했다.“내가 말했잖아, 이 일은 네 형수 말대로 하
“여긴 왜 왔어요?”고다정은 생각지도 못한 여준재를 보게 되니 의아해하며 물었다.여준재는 손에 든 도시락 통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고다정이 아직 다 검토 못한 서류에 시선을 떨구며 눈살을 찌푸렸다.“아직도 안 끝났어요?”“네, 아직 조금 남았어요. 요즘 회사 기술팀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려고 하는데, 내가 데이터 같은 건 잘 모르니 천천히 볼 수밖에요.”고다정은 기운 빠진 소리로 말했다.매번 이런 데이터를 검토할 때마다 너무 힘들어 자신이 대체 비즈니스에 적합하기나 한 건지 의문이 들곤 한다. 여준재는 도중에 그녀 회사 일을 넘겨받아도 척척 잘만 해내는데 자신은 늘 버벅대기만 하니깐 말이다. 가끔, 자신의 모든 재능이 오로지 약을 연구하는 데만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여준재는 그녀가 지금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는지 몰랐지만, 그녀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일단 밥부터 먹어요. 그러고 나서 회사 일에 대해 다시 의논을 해보자고요.”그는 책상 위의 서류를 치우고 도시락 속의 음식을 꺼냈다.고다정 역시 배가 고팠고, 눈앞에 있는 자상한 남자에게 빙그레 웃더니 밥을 먹기 시작했다.여준재는 그녀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시선을 옆에 있는 서류에 떨어뜨리더니 그것을 향해 손을 뻗었다.“왜 그래요?”고다정은 그가 뭘 하려는지 의문을 품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의혹에 찬 눈빛을 보며 여준재는 엷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별거 아니에요, 내가 좀 봐주려고요.”그 말에 고다정은 막아서지 않았다. 여준재가 그 서류들을 전부 소파로 가져가는 걸 보고 그녀는 식사 속도를 더 빨리했다.몇 분 안 되어 식사를 마친 그녀는 수저를 내려놓고, 일어나 사뿐사뿐 소파 쪽으로 걸어갔다. 여준재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런 것인데, 그녀가 다가가자마자 여준재는 그녀를 발견하고 하던 일을 멈춰 고개를 돌려 물었다.“밥 다 먹었어요?”고다정은 한편으로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길은 여준재가 결재하고 있는 서류를 주시하며 눈살을
그다음 날부터 고다정은 회사에 나가지 않고 지선우한테 사내에 공지를 띄우라 했다. 한동안은 회사의 모든 사무를 여준재가 대신하여 처리할 것이고, 전체 직원들이 그한테 협조하길 바란다는 내용의 공지였다.아침, 여준재와 두 아이를 보내고 고다정도 연구소로 갈 준비를 했다.오늘 인테리어 회사에서 현장 실사를 하고 나면 설계 도면을 만들 것이다. 그녀도 같이 현장에서 디자이너와 방안을 토론해야 한다.시간이 좀 지난 후에 그녀는 연구소에 도착했고, 인테리어 시공팀은 벌써 와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여기저기서 데이터를 재는 작업자들을 보며 고다정은 옆에 서서 지휘하는 팀장 같아 보이는 사람한테 다가가 물었다.“현재 어떤 상황인가요?”“아, 고객님 오셨습니까.”팀장은 고다정을 보고 매우 공손히 인사를 한 뒤 현재 작업의 진행 상황에 관해 설명했다.“고객님이 저번에 몇 군데 리모델링해야 한다고 해서, 제가 작업자들한테 데이터를 좀 재보라고 시켰고, 또 어떤 곳이 내 하중 벽인지 확인하라고 했습니다. 내 하중 벽이 있는 곳은 리모델링할 수 없어요. 건물 근간에 손상 가서 나중에 허물어질 위험이 있으니깐요.”그 점에 대해서 고다정은 잘 알고 있는 터라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녀는 팀장 곁에 서서 측정 결과를 기다렸다.한 10분 정도 지나자, 흩어졌던 작업자들이 데이터를 기록한 노트를 하나씩 들고 한 자리로 모였다.“팀장님, 고객님, 저희가 측정을 다 끝냈습니다.”작업자들이 공손하게 두 사람을 바라보았고, 고다정은 입을 열지 않고 곁에 있는 팀장을 쳐다봤다. 그러자 팀장이 체크하기 시작했다.“그쪽 상황은 어때? 하중 벽은 몇 군데야?”“하중 벽은 모두 일곱 곳인데요, 그 중 세 군데가 고객님이 개조하고 싶어 하는 곳입니다.”작업자가 상황을 보고하자 고다정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어떤 세 곳 말씀이세요?”“여기, 여기, 그리고 여기입니다.”작업자는 연구소의 평면도를 꺼내 그 위에 세 곳을 가리키며 고다정한테 알렸다. 그러자 고다정은 미간이
그 말에 고다정은 살짝 의아했다. 그녀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김창석을 보며 물었다.“그래요? 선생님이 보통 저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시는데요?”“어르신은 늘 아가씨가 학습 능력이 뛰어나다고 말씀하시죠. 늘 이 말로 실험실의 그 사람들한테 자극을 주곤 합니다. 그 바람에 실험실 사람들은 모두 아가씨를 궁금해하고 있어요. 다들 아가씨가 언제 해외 연구소로 가게 되어 아가씨의 실물을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말끝에 김창석의 얼굴에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고다정은 듣고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스승님이 집에 계실 때는 그녀한테 엄격하시기만 하더니, 밖에서는 오히려 칭찬을 끊임없이 해댄다니, 칭찬을 받아서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남한테 괜한 미움을 사서 난처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고다정의 말문이 막힌 표정을 읽고 김창석은 웃으며 말했다.“어르신이 아가씨를 매우 아낀다는 걸 제가 곁에서 봐서 잘 압니다. 다만 몇 년 전에는 어떠한 사정 때문에 어르신이 아가씨와 연락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다행히 지금은 모든 일이 다 잘 해결되었고, 이쪽 연구소가 완성되면 오래 지나지 않아 어르신이 아가씨와 곧 만날 수 있을 겁니다.”“그랬으면 좋겠네요.”고다정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 김창석을 데리고 공항에서 나왔다.돌아가는 길에 그녀는 김창석이 하루 꼬박 비행기를 탄 걸 생각해 몸이 몹시 피곤할 것 같아 그한테 말했다.“제가 먼저 선생님 집으로 모실게요. 거기서 일단 푹 쉬시고, 저녁에 제가 다시 모시러 가서 식사를 같이하는 건 어떠세요? 연구소는 저랑 내일에 가기로 하고요.”“아가씨 말대로 하겠습니다.”김창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고다정에 대한 인상이 한층 더 좋아졌다. 그도 고다정이 자신에 대한 배려와 존중을 느낄 수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옛 시가지가 있었던 성북구, 스승님의 집에 도착했다.차에서 내리자, 김창석은 눈앞의 낡은 저택을 바라보며 감탄했다.“이 집이 아직도 있었네요.”“창석 아저씨도 이 집을 아세요?”고다정은 호
고다정은 문을 밀고 들어갔다.여준재는 책상 앞에 앉아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그는 들어온 사람이 고다정일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 하고 구남준인가 하여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분부를 내렸다.“서류는 책상 위에 올려놓고 나가봐.”고다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그를 향해 걸어갔다.그렇게 책상 앞까지 왔는데 여준재는 여전히 고개를 들 생각이 없어 보이자 고다정은 눈썹을 살짝 추켜세웠다.결국 어쩔 수 없이 그녀는 침묵을 깼다.“정말 이것만 놓고 가라고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준재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다정 씨, 어떻게 왔어요?”여준재는 너무 갑작스럽기도 하고 반갑기도 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고다정은 일부러 그 물음에 즉시 대답하지 않고 사무적으로 문서를 건네면서 말했다.“서류 전달하러 왔죠. 분부대로 서류 여기 내려놨으니, 전 이만 나가볼게요.”말을 마치고 그녀는 떠나갈 시늉을 했다. 그러나 그녀가 앞으로 한 발 내디디려고 할 때 여준재는 벌써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남준 인줄 알았잖아요.”여준재는 싱글싱글 웃으며 고다정을 보다가 그녀를 이내 끌어당겨 무릎 위에 앉혔다.“왜 왔어요? 오늘 연구소 설계 방안을 정하러 가는 거 아니었어요?”그러자 고다정이 대답했다.“오늘에는 연구소에 가서 데이터만 측정했어요. 설계 도면은 빨라도 저녁에 돼야 나온대요. 마침 할 얘기가 있는데, 점심때가 다 되고 하니, 같이 밥이나 먹으면서 얘기할까 했죠.”그 말에 여준재는 대뜸 물었다.“무슨 일인데요? 지금 얘기하면 안 돼요?”“뭐, 못 할 것도 없는데... 그냥 제 스승님이 저한테 보내신 조수, 창석 아저씨가 오늘 도착했거든요. 그래서 저녁에 환영하는 자리를 마련할까 해서요, 당신이랑 애들도 같이. 서로 인사도 나누고요.”고다정은 자신이 오게 된 용건을 그한테 다 얘기했다.여준재는 그걸 듣고 애정이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 그렇구나. 그럼 식당은 예약했어요?”“그건 아직이요, 당신이 저녁에 시간이 있는지도 모르잖
점점 다가오는 남자의 얼굴을 마주한 고다정은 마음속에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그녀는 알고 있었다. 만약 이 남자를 달래지 못한다면 곧 자신이 고생하리라는 것을.“내가 잘못 말했어요. 당신이 뻔뻔한 게 아니라 제가 그래요, 헤헤.”고다정은 여준재에게 아첨하는 미소를 지었고 여준재는 그녀의 반응을 보고 눈가에 미소가 번졌지만, 표정에는 드러내지 않은 채 여전히 매우 진지하고 다루기 어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그는 눈썹을 추켜세우며 일부러 물었다. “하지만 방금 내가 들은 건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요.”“방금은 방금이고, 지금은 지금이에요. 게다가 방금은 당신이 잘못 들었을 수도 있어요. 어쨌든 시간이 늦었어요. 저 배고파요. 밥 먹으러 가요.”고다정은 억지로 화제를 돌리며 여준재를 끌고 떠나려고 했다.여준재는 양심이 찔려하는 고다정의 모습을 보며 눈가의 미소가 더욱 분명해졌다.물론, 그녀의 꼼수를 막지 않았다. 그가 더 이상 문제를 삼으면 그녀가 화를 낼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두 사람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식사했고 점심을 먹은 후 고다정은 곧바로 떠나지 않고 여준재를 따라 YS그룹으로 돌아가 사무실 휴게실에서 낮잠을 잤다.약 한 시간 넘게 자고 나자 여준재가 깨어났고 그는 여전히 잠들어 있는 고다정을 바라보며, 요즘 바쁘게 돌아친 여인을 깨우고 싶지 않았다.그는 조용히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는 살금살금 침대에서 내려 휴게실을 떠났다.하지만 그가 간 직후, 침대에서 고이 잠들었던 다정이 눈을 떴다.고다정은 미소를 띤 눈으로 여준재가 떠난 방향을 바라보며, 몸을 웅크리고 이불을 끌어안았다. 이불 위에는 여전히 여준재의 향기가 남아 있었다.다정은 몸을 뒤척이며 이불을 안고 다시 잠에 빠졌다.하지만 잠든 지 얼마 되지 않아 휴대전화 벨 소리에 깨어났다.전화는 지선우가 걸어온 것으로, 연구 장비 구매 상황을 보고하는 것이었다.“회장님, 주문하신 기계들은 PHG 4세대를 제외하고 모두 주문이 완료되었습니다."“PHG 4 세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