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준재 씨, 약혼자에 대해 혹시 얼마나 알고 계세요?”채성휘는 진지한 얼굴로 여준재에게 물었고, 그 모습에 여준재는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채성휘 씨가 말하고 싶은 게 뭔데요?”“고다정 씨는 제가 본 사람 중에서 연구원이 가장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약을 제조하기도 굉장히 좋아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고요. 하지만 외부 요소 때문에 다정 씨가 꿈을 제대로 펼칠 수 없는 것 같은데, 혹세 제 뜻 알아들으셨을까요?”말을 마친 채성휘는 여준재와 눈을 마주 보았다.그 순간 그 둘의 눈에서는 불꽃이 튀는 것만 같았다.게다가 여준재는 더욱 차가워진 얼굴이었다.원인은 채성휘가 감히 자기 면전에서 약점을 끄집어내며 그를 힘들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여준재는 조롱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채 선생님은 제가 제 약혼자에 대해 잘 모른다고 생각하시나 봐요. 그대로 말씀드릴게요. 이 세상에서 저만큼 다정 씨를 잘 아는 사람은 없어요. 그리고 만약 다정 씨가 연구하고 싶다면, 저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기계과 연구소를 제공해서 언제든지 연구할 수 있게 만들어줄 거고요.”“…”그 말에 채성휘는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의 난처한 표정을 본 여준재는 차가웠던 얼굴에서 금세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바뀌었다.이윽고 그는 곁눈질로 고다정이 새우를 짚은 걸 보더니 얼른 막아 나서며 부드럽게 말했다.“내가 대신 까줄 테니까 일단 다른 거 먹고 있어요.”말을 마친 뒤 여준재는 큰 새우를 그릇에 집어서는 새우를 까기 시작했다.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은진은 부러움이 가득 찬 말투로 입을 열었다.“여준재 씨가 진짜 잘해주네요.”고다정은 여준재의 그 친절한 모습에 행복에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하지만 채성휘는 마음속으로 여간 좋은 게 아니었다.그렇게 그 식사 자리는 채성휘와 여준재를 제외한 고다정과 서은진만 즐거운 자리였다.서로 작별인사를 할때 고다정이 서은진을 향해 말했다.“시간 나면 운산으로 놀러 와요.”비록 서은진과 긴
여준재는 고다정을 꼭 끌어안은 채 말했다.“그냥 다정 씨를 집에만 가두고 싶어요. 그 누구도 다정 씨가 이렇게 좋은 사람인 걸 발견 못하게요. 그렇게 하면 그 누구도 저랑 뺏으려고 하지도 않을 거잖아요.”고다정은 눈을 깜빡이며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누가 준재 씨랑 절 뺏으려 해요?”“굳이 그걸 왜 물어요? 일부러 나 화나게 하려고 그래요?”여준재는 고다정을 안았던 팔을 풀며 고개를 숙인 채 그녀를 바라봤다. 그의 얼굴에는 누가 봐도 질투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그 모습을 본 고다정은 더욱 어리둥절해 억울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내가 언제 화나게 했어요?”“…”그 말에 여준재는 갑자기 마음이 힘들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설마 눈치채지 못한 거예요? 그 채씨 성을 가진 사람이 다정 씨에게 다른 감정 품고 있는 거 몰랐어요?”“아, 혹시 뭐 오해한 거 아닌가요?”고다정은 자신이 미녀도 아니고, 게다가 채성휘와 안지도 고작 4일 정도라 그가 자신을 좋아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다.게다가 채성휘는 서은진 같은 미녀도 차버리는데 자기 같은 여자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을 거로 생각했다.여준재는 고다정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가볍게 콧방귀를 끼었다.“오해 같은 거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남자는 남자가 가장 잘 아니까요. 그 사람이 다정 씨를 보는 눈빛이 전에 내 눈빛과 똑같았다고요. 게다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다정 씨 데려다주는데 진짜 별 감정이 없으면 그렇게 부지런하겠냐고요?”그 말을 들은 고다정은 그대로 멍해졌다.여준재가 조금 전 말한 자신을 보는 눈빛에 대해서는 진짜 신경 쓰지 못했었다.하지만 일단 이 일에 대해 해명은 해야겠다 싶었다.“채 선생님이 매일 절 데려다주고 한 건 제 사부님과 절 잘 돌보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에요.”“잘 돌보는 게 매일 데려다주고 아침까지도 사줘요?”여준재는 점점 더 질투가 가득한 모습이었다.그녀는 그런 여준재를 바라보며 일부러 손을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며 농담 섞인 어조로 말했다. “어
고다정은 많은 사람이 자기 몰래 이렇게 큰일을 벌이는 걸 알지 못했다. 그녀는 간만에 한가한지라 일찍 퇴근해서 두 아이도 집에 데려다주려고 했다.하지만 퇴근하려고 하던 찰나 임은미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다정아 뭐해?”“그냥 있어. 퇴근하고 아이들 데리러 가려고. 넌 갑자기 웬일이야? 뭔 일 있어?”고다정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어쨌든 오늘은 출근일이고, 임은미의 평소 생활패턴대로라면, 이 시간에 그녀는 야근하고 있었을 것이다.이때 임은미가 장난스레 답했다.“별일 아니고 그냥 우리 나가 논지도 오래된 것 같아서 말이야. 그래서 너랑 나가 놀려고.”“나가 논다고? 내 기억이 맞다면 오늘 너 출근하는 날이잖아?”고다정이 이상하다는 듯 묻자, 임은미가 답했다.“출근하면 왜? 출근한다고 나가놀지 말라는 법 있냐? 아무튼 나와 놀아줄 거지?”그 말을 들은 고다정은 당연히 거절하지 않았다.게다가 친구의 갑작스러운 이상에 그녀는 다소 걱정이 되기까지 했다.그렇게 그 둘은 약속 장소를 정하고 전화를 끊었다.고다정은 전화를 끊은 뒤 바로 여준재에게 전화를 걸었다.곧 전화기 너머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뭔 일이에요?”“은미가 오늘저녁 저랑 밥 먹자고 해서요. 같이 나가서 놀아야 하니까 조금 늦을 거예요. 만약 예외가 있다면 아마 집에 들어가지 않을 거예요.”고다정이 솔직하게 여준재에게 상황에 대해 말하자 여준재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잠깐만요, 예외가 뭐죠? 안 들어온다고요?”그 말을 들은 고다정이 바로 해명했다.“은미의 말투를 들어보니 뭔 일이 있는 것 같아서요. 만약 심각하면 그냥 은미랑 같이 있어 주려고요.”지난 몇 년 동안 고다정이 가장 힘들 때 언제나 임은미가 그녀 옆을 지켜주었으며 언제나 지지해 주었다. 만약 임은미에게도 무슨 일이 생긴 거면, 그녀도 임은미 옆에서 지켜줄 참이었다.여준재는 몇초간 멈칫하더니 그제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래요, 그때 가서 만약 못 들어오면 나한테 말해요.”“그래요, 고마워요. 내
고다정의 말을 들은 임은미는 속으로 불만을 금치 못했다.여준재가 아직 청혼하지도 않았으니 도울 수 없다는 거 당연히 알고 있다.이윽고 임은미는 일부러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에이, 설마. 여 대표님이 아직 너한테 청혼하지 않은 거야?”“응… 청혼하진 않았지만 이게 뭘 의미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나랑 그 사람 사이에 그런 것 따위는 생략해도 된다고 생각하거든.”고다정은 무의식적으로 여준재를 생각해 말했다.그녀는 여준재같은 상남자가 적극적으로 자신한테 고백한 것도 이미 대단한거라고 생각했다다. 거기에 로맨틱한 청혼을 한다는 건 그를 난처하게 하는 것뿐이라고 말이다.임은미는 고다정의 마음속 생각을 모른 채 눈빛을 반짝이며 그 말에 찬성했다.“네 말이 맞아. 너랑 여 대표 사이에 아이도 있고 곧 결혼도 할 텐데 청혼은 그냥 겉치레일 뿐이지. 그럼 난 어떡해? 내일 방안을 제출해야 하는데, 나 또 매니저님한테 욕먹을 것 같아.”그 말을 들은 고다정은 자기 친구를 걱정하기 시작했다.하지만 그녀가 방법을 생각하기도 전에 귓가에는 또다시 임은미의 소리가 들려왔다.“다정아, 아니면 네가 청혼 기획에 대해 나 좀 도와줘.”“나도 도와주고 싶은데 내가 경험을 해본 적이 없잖아.”고다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어떻게 친구를 도와야 할지 생각에 잠겼다.이때 임은미가 말했다.“경험해 보지 못해도 괜찮아. 그냥 만약 여대표가 너한테 청혼한다면 어떻게 해줬으면 좋을지만 얘기해 봐. 어쨌든 넌 연애도 해봤으니까 그런 로맨틱한 세포도 남아있을 거잖아? 우리 매니저님이 말했어. 로맨틱하면 할수록 좋다고.”그러면서 그녀는 핸드백에서 종이와 연필을 꺼내 고다정을 바라보았다.그 모습을 본 고다정도 거절할 수 없어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만약 여준재가 나에게 청혼한다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만약 내 스타일대로 라면 나는 너무 복잡한 건 싫어. 그냥 간단하게 서프라이즈로 가장 친한 사람들만 모아서 하는 게 좋은 것 같아. ”말하면서 고다정은 미소를 지으며
저녁 늦게 여준재는 차로 고다정을 데리러 왔다.차에서 여준재가 내려오는 모습을 본 임은미는 미소를 지으며 고다정을 앞으로 밀었다.“이젠 각자 헤어질 시간이니까 둘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을게.”말을 마친 뒤 그녀는 손을 흔들며 자리를 떠났다.고다정은 떠나가는 친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실소를 터뜨렸다.이때, 그녀의 귓가에서 여준재의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자, 우리도 가요.”“네.”고다정은 머리를 끄덕이며 여준재를 따라 차에 탔다.가는 도중 여준재에게는 문자 한 통이 왔고, 그는 한번 흘깃 살피더니 말없이 메시지를 삭제한 뒤 구남준에게 지령을 보냈다.그날 저녁, 고다정은 샤워를 마친 뒤 침대에서 핸드폰을 하고 있다가 갑자기 임은미가 인스타에 올린 게시물을 보게 되었다.임은미:「고마운 내 친구, 끝내 나도‘남편’과 집을 갈 수 있게 되었네.」그 글과 함께 임은미가 고풍스러운 남자모형 피규어와 함께 찍은 사진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고다정은 조금 웃겼다.그녀는 임은미가 연초부터 한정판 피규어가 갖고 싶다고 말한 걸 들은 적 있었다. 하지만 가격도 비싼지라 임은미는 결국 손에 넣지 못했다.여기까지 생각한 그녀는 그 게시물 아래에 댓글을 달았다.「결국, 가지게 된 거야?」임은미는 칼답으로 그녀에게 답했다.「응, 가지게 됐어. 이게 다 네 덕분이야. 흐흐.」「내 덕분이면 나 밥이라도 사줘야 되는 거 아니야?」고다정은 전에 자신이 임은미 더러 얼른 사라고 설득했기 때문에 그녀가 마음먹고 산 줄로만 알고 있다.이윽고 임은미가 답했다.「그래, 내가 뒤에 시간 있으면 너 밥 한번 사줄게!」그 답장을 본 고다정은 그걸 장난으로만 여겼다.이때 마침 여준재가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었다.그는 고다정의 웃는 얼굴을 보고 물었다.“왜 웃어요?”“별거 아니에요. 은미가 올린 최신 게시물을 봐서요. 얘가 장난감 모형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근데 조금 전에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그 값비싼 모형을 사게 된 거예요. 가격이 천만 원대예요.”고다정은
고다정이 한참 의심을 품고 있을 때 갑자기 임은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다정아, 여기야!”멀지 않은 곳에서 임은미는 꽃으로 만들어진 아치 아래에 서서 고다정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조명 아래 새하얀 장미 꽃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고다정은 깜짝 놀라 앞으로 걸어가며 웃어 보였다.“왜 나왔어?”“육성준이 나에게 문자를 해서 너 데리러 나오라고 했어. 여기 너무 크니까 네가 길을 잃을 수도 있고 말이야.”임은미는 굳이 그녀에게 설명하며 친절히 고다정의 팔을 끌며 안으로 들어갔다. 고다정은 별 의심 없이 그녀 따라 걸어가며 물었다.“여기 새로 오픈한 레스토랑이야? 환경도 아주 로맨틱하고 예쁘다. 얼마 안 지나 바로 유명한 가계가 될 것 같아.”그 말을 들은 임은미는 참지 못하고 웃어 보였다.그녀의 이상함을 눈치챈 고다정이 입을 열었다.“은미야, 왜 웃어?”“아니, 아니야.”임은미는 당연히 사실대로 말해줄 수 없었고, 최대한 웃음을 참고 있었다.하지만 고다정도 점점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다.“이렇게나 오래 걸었는데 아직도 도착하지 못한 거야? 아직도 얼마나 가야 해?”“아, 거의 다 왔어.”임은미는 말하며 걸음에 속도를 가했다.하지만 그렇다고 고다정의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의문이 남아있었다.그녀가 다시 입을 열기도 전에 익숙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할머니?!”“다정아.”강말숙은 미소를 띠며 고다정을 바라봤다.그 순간 고다정은 더욱더 멍해졌다.그녀가 계속하여 이어 물으려던 찰나, 임은미가 갑자기 손을 놓으며 찬란하게 웃어 보였다.“됐다, 난 임무 완성했어. 다음은 할머니가 널 데리고 들어갈 거야. 다정아, 꼭 행복해야 해!”임은미는 두 팔을 뻗으며 고다정과 포옹한 뒤 자리를 떠났다.그녀가 점점 멀어지는 모습을 본 고다정의 눈에는 의문이 가득했다.“할머니,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이에요?”말을 마치고 난 뒤 그녀는 갑자기 전에 임은미에게 말했던 그 장면이 떠올랐고 살짝 짐작이 갔다.강말숙은 고다정이
그 소리에 여준재는 고다정을 풀어주며 같이 하늘을 바라보았다.화려한 불꽃은 하나씩 하늘에서 터지며 각종 모양으로 변했다.하트 모양도 있고, LOVE이니셜도 있고, 별똥별 같기도 해 아름답기 그지없었다.“아름다워요.”고다정이 감탄하며 말했다.여준재는 그 말을 듣고 그녀를 품에 끌어안은 채 부드럽게 말했다.“좋아요?”고다정은 있는 힘껏 고개를 끄덕이며 속으로 생각에 잠겼다.이런 청혼이라면 그 어떤 여자라도 다 좋아할 것이다.여준재는 고다정의 달콤한 웃음을 보며 눈에서는 꿀이 떨어지는 듯했다.그는 더 이상 고다정을 방해하지 않고 그녀 옆에 서서 같이 불꽃을 감상했다.거의 10분이 지나서야 불꽃놀이가 드디어 종료되었다.고다정은 얼른 시선을 거두고, 옆에 있는 여준재를 바라보며 행복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고마워요.”‘날 위해 해준 모든 게 고마워요.’여준재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고다정을 바라보며 눈에는 애정이 가득했다.그 둘은 시선을 마주하며 서로를 바라봤고, 주변의 사물들이 시선에서 점점 사라지고 둘만 남아있는 듯한 느낌이었다.게다가 공기는 더욱더 그들을 중심으로 에워싼 것만 같았고 사랑의 달콤한 기운이 풍겼다.나머지 사람들은 그 둘 분위기에 끼어들지 못하고 눈치껏 자리를 떠났다.임은미는 강말숙을 부축하며 말했다.“할머니, 제가 부축해드릴게요.”“고마워.”강말숙은 허허 웃어 보이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임은미는 괜찮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이윽고 그녀가 강말숙을 데리고 자리를 떠나려던 찰나, 육성준이 아직도 조금 전의 자리에 서 있는걸 발견했다. 그는 고다정과 여준재를 어두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몇 분 뒤 육성준의 귓가에 갑자기 임은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왜? 아직도 다정이를 놓아줄 수 없는 거야?”“내가 다정이를 알았을 때는 이미 약혼자가 있을 때였어. 그래서 나는 그 감정을 속으로 억누를 수밖에 없었고. 하여 나한테는 기회조차 없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다정이가 파혼했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 기회가 온줄 알았
정자 쪽은 정교하게 천으로 둘러싸였고 바람에 펄럭일 때마다 시원해 보였다.여준재는 고다정과 함께 거기에 착석했고, 곧 직원이 그들에게 저녁 식사를 준비해왔다.밥을 먹는 동안 고다정은 오늘 저녁 왠지 모르게 어딘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곰곰이 생각한 끝에 그제야 그게 뭔지 떠올랐다.“준재 씨, 준이와 윤이는요? 나 오늘 저녁 아이들의 그림자조차도 본적 없는 것 같은데요?!”고다정은 걱정되는 듯 여준재를 바라보았다.그러자 여준재는 웃으며 그녀에게 곧이곧대로 말해주었다.“우리 부모님께 맡겼어요. 오늘 같은 날에는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말아야 하니까요.”고다정은 그의 속셈이 무엇인지 당연히 알아차렸고, 그게 웃기기도 하면서 어이가 없었다.“그러다 뒤에 가서 애들이 알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 또 떼쓰고 난리일 텐데?”“괜찮아요, 이미 선물도 다 준비했는걸요.”여준재는 자신 있게 답했고 이미 그 최악의 결과까지도 예상한듯했다.그의 대답에 고다정은 잠시 말문이 막혔고 여기에 대해서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그녀는 오늘 여준재가 마련해준 이 서프라이즈를 망치고 싶지 않았으니 말이다.밥을 먹다 여준재가 갑자기 손가락을 튕기니, 아름다운 바이올린 음악이 흘러나왔다.그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천천히 고다정에게 다가갔다.“식후 운동해야죠. 아름다운 고다정 씨, 이 꽃으로 도배된 곳에서 저랑 한 곡 추실래요?”“이렇게 진심으로 초대하는데 제가 어떻게 거절하겠어요? 나의 약혼자님.”고다정은 그 마지막 호칭을 더할 나위 없이 온화하게 말했고, 그걸 들은 여준재의 마음도 사르르 녹는듯했다.그는 고다정의 손을 힘껏 잡아당기며 자신의 품에 안았고, 정자 밖으로 나가 꽃으로 수 놓인 곳에서 그녀와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달빛 아래 두 사람이 춤추는 모습은 아름답기 그지없었고, 꽃들과 불빛까지 곁들여져 더욱 환상적으로 보였다.한 곡이 끝나자 고다정은 약간 숨이 찬 듯 여준재의 품에서 휴식을 취했다.그녀는 그의 심장 박동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오늘 저녁 자
“하윤 씨, 좋아해요. 제 여자친구가 되어줄래요?”임지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여자애를 바라보며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하윤은 잠깐 얼떨떨해하더니 이내 환한 웃음을 지었다.“네.”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예쁜 미소를 보고 임지호도 해맑게 웃었다.햇빛 아래 선남선녀는 너무 잘 어울렸다.임은미와 고다정은 구석에 숨어 이를 지켜보며 들떠서 소곤거렸다.“하윤이 저렇게 활짝 웃는 걸 보니 서로 고백한 것 같아.”“고백한 게 맞아. 둘이 같이 앉은 걸 봐.”“역시 내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어. 내가 나서면 안 맺어지는 커플이 없다니까.”임은미는 마침내 자화자찬하기 시작했다.고다정은 그녀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 저 남자애가 하윤을 좋아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모하게 나섰다가 맺어주는 게 아니라 끝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한참 더 보다가 호기심이 충족된 듯 제대로 자리에 앉아 요리를 주문했다.기왕 온 김에 뭘 좀 먹어야지.식사하면서 고다정이 감탄했다.“애들이 어느새 커서 애인까지 생겼네.”“그러게. 우리도 늙었어.”임은미도 같이 탄식했다.뒤이어 그녀는 맞은편의 절친을 바라보며 물었다.“앞으로 무슨 계획 있어?”“보름 동안 쉬면서 준재 씨랑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후 새로운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거야.”고다정은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임은미는 이 말을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너 점점 일벌레가 되어가는 것 같다.”“그건 내가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야.”고다정이 웃으면서 말했다.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청아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전을 때렸다.“여하준 씨, 거기 서요.”이 소리를 듣고 눈빛을 주고받는 고다정과 임은미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이런 우연이! 이 작은 레스토랑에서 두 남매를 모두 만난다고?’하윤도 너무 뜻밖이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하준 쪽을 바라보았다.“오빠?!”“하윤?!”여하준도 이때 하윤과 그 옆의 청년을 발견하고 미간을
하윤은 정말 돌아오지 않았다.하민이 가지 못하게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여준재에게는 무척 즐거운 밤이었다....이튿날 아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금빛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이불 밖에 나온 고다정의 피부에 내려앉았다.피부에 생긴 흔적에서 어젯밤에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여준재는 일찍 깼지만 아침의 따스함을 놓치기 싫어 고다정을 안고 만족스럽게 침대에 누워있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누군가가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엄마, 일어나요.”하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여준재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자식은 빚쟁이라는 말이 맞다. 이전에 좋아했던 만큼 지금은 싫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품속의 여인이 깨어났다.고다정이 정신이 흐릿한 상태로 물었다.“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려요?”“하윤이에요. 내가 돌려보낼 테니 자요.”여준재가 그녀를 풀어주고 일어나려 했다. 너무 졸렸던 고다정은 막지 않았다.그녀는 오후까지 자고 임은미가 전화해서야 겨우 일어났다.30분 후 두 사람은 시내 중심의 쇼핑몰에서 만났다.임은미는 잠이 덜 깬 것 같은 고다정을 보고 놀려댔다.“너랑 여 대표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좀 절제해.”“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너도 절제해. 목에 난 흔적이 가려지지도 않아.”지금의 고다정은 약간 야한 농담에도 얼굴을 붉히던 10년 전의 고다정이 아니다.지금의 그녀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역습한다.임은미도 말문이 막히지 않았나.그녀는 채성휘와 자주 싸우지만 둘 사이의 감정에는 조금도 영향이 없었다.그녀가 코웃음을 쳤다.“네가 이겼어. 이제 너를 쉽게 놀리지 못하겠어.”그녀는 말하면서 고다정과 어느 가게에 들어갈지 사방을 둘러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다정아, 저기 하윤이 아니야?”“하윤이?”고다정이 놀라며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정말 멀지 않은 곳의 레스토랑에 하윤과 깔끔해 보이는 잘생긴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이 말을 들은 하윤은 즉시 고다정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저, 오빠, 그리고 이모 세 사람 외에 또 있어요?”그녀는 의문스레 고다정을 쳐다보았다. 설마 그때 아빠, 엄마를 맺어주려고 애쓴 사람이 또 있나?그런데 그녀가 말하자마자 고다정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일 줄이야.“그래, 너와 오빠, 이모가 도와준 걸 말하는 거야. 그때 너희 셋이 나랑 너희 아빠를 맺어주려고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어? 그러니까 너 혼자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다니면 이뤄지기 힘들지 않겠어?”“좀 일리가 있네요.”갑자기 엄마한테 설득당한 하윤이 무심코 말했다.“그럼 엄마랑 이모가 좀 방법을 생각해 주세...”‘요’자를 내뱉기 전에 그녀는 씩씩거리며 또 한 번 엄마를 째려보았다.“또 엄마한테 걸려들었어요.”고다정은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어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계집애, 어렸을 때와 똑같이 잘 속아.”그녀는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나왔다.이를 보고 화가 난 하윤이 손을 뻗어 고다정을 간지럽히려 했다.“엄마 나빠요.”그렇게 모녀는 온천에서 웃고 떠들었다.이쪽의 따뜻한 분위기와 달리 남자 노천탕은 썰렁했다.“자식, 어렸을 때는 귀여웠는데 크면 클수록 얄미워.”옆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여준재는 눈앞의 두 아들이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렸다.하준이 판에 박은 것 같이 똑같은 표정으로 아빠를 힐끗 쳐다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피차일반입니다.”하민은 형과 아빠가 티격태격하자 조용히 구석에 숨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지위가 가장 낮다는 것을 알았다.여준재는 막내아들의 속마음을 모른 채 자기한테 말대꾸하는 큰아들을 보며 문득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허구한 날 남의 마누라를 생각하지 말고 네 마누라를 찾아. 아니면 네 할머니한테 맞선을 주선하라고 할까?”그렇다. 여준재가 생각해 낸 방법은 하준을 결혼시키는 것이다.‘이 자식이 자기 마누라가 생기면 더 이상 내 마누라를 생각하지 않겠지.’하준이 그의 생각을 모를
그날 저녁 여씨 삼남매는 결국 남아서 고다정을 축하해 주었다.식사가 끝난 후 임은미는 두 딸을 데리고 떠나갔다.가기 전에 그녀는 고다정과 내일 오후에 같이 쇼핑하기로 약속했다.임은미를 보낸 후 다섯 식구는 남녀가 분리된 온천 노천탕에 갔다.고다정은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느긋한 시간을 보낸 게 얼마 만인가.그녀가 눈을 감고 즐기고 있을 때 어깨 위에 갑자기 손이 올라오더니 그녀의 어깨를 주물렀다.고개를 돌려 보니 둘째 딸이 그녀의 뒤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엄마...”“왜?”고다정이 나지막이 묻자 하윤이 바짝 붙으며 말했다.“엄마가 아빠한테 사정 좀 해 주시면 안 돼요?”그녀는 고다정의 환심을 사려고 방긋 웃었다.“오늘 엄마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는 아빠의 계획을 제가 망쳤으니 아빠가 틀림없이 내일 저한테 일을 시킬 거예요.”그녀가 이렇게 단언하는 원인은 그동안 이런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학교 다닐 때는 그녀가 엄마한테 너무 달라붙는다고 아빠가 그녀를 속여 공부를 많이 시켰다.후에 점차 크고 오빠가 폭로해서야 그녀는 아빠의 꾀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고다정은 고민 가득한 딸애 얼굴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이 계집애는 어릴 때부터 말을 잘 듣지 않았는데, 매번 아빠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결국 비참하게 혼쭐이 나고 불쌍한 모습으로 엄마를 찾아왔다.“이제야 두려워? 이모를 꼬드길 때는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생각 안 했어?”“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엄마가 원래 여가 시간이 많지 않은데 아빠가 항상 엄마를 차지하니까.”계집애는 말하면서 고다정의 어깨를 껴안고 또 응석을 부렸다.애교 공세에 당할 수 없는 고다정은 이내 동의했다.하윤은 기쁜 나머지 고다정을 안고 뽀뽀하더니 배시시 웃었다.“역시 엄마밖에 없어요.”“너도 참, 빨리 온천에 몸을 담가.”고다정이 말하면서 그녀를 잡아당겨 노천탕에 앉혔다.그러나 하윤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그녀는
한편, 서쪽 외곽에 위치한, YS그룹에서 개발한 온천 리조트에 세련된 곡선미를 자랑하는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도착했다.차가 천천히 입구에 멈춰 서더니 검은색 수작업 맞춤 양복을 입은 여준재가 차에서 뛰어내렸다.똑바로 선 후 그는 돌아서서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차 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준수한 얼굴에서는 꿀 뚝뚝 다정함이 넘쳐흘렀다.“부인, 도착했습니다.”검은색 여성 정장 차림의 고다정이 가늘고 예쁜 손을 우아하게 여준재의 손바닥 위에 얹더니 차에서 내렸다.지금의 그녀는 풋풋함을 벗은 대신 카리스마와 여유가 넘쳤다.옆에 있던 매니저가 알랑거리며 그녀를 맞이했다.“사모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건 저와 직원들의 작은 성의입니다. 인류 의학에 공헌한 사모님께 감사드립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넸다.사방에서 박수와 축하가 쏟아졌다.“축하드립니다, 사모님.”“사모님, 진짜 대단하십니다!”“사모님은 제 롤모델입니다!”이 말을 듣고 고다정은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옆에 서 있는 여준재도 눈에 자랑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뒤이어 두 사람은 매니저의 안내로 룸에 들어섰다.룸에는 이미 고다정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두 사람이 오붓하게 식사하고 있을 때 가방 속에 있는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임은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은미야, 무슨 일이야?”고다정이 전화를 받았다.옆에 있던 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고다정을 쳐다보던 그는 그녀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고다정의 표정을 보니,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제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은미가 축하 파티를 준비했다고 오래요.”“은미 씨는 인터넷을 안 본대요?”여준재가 답답한 듯 한마디 했다. 그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분명 고다정은 그의 아내인데, 지난 12년간 그는 아내와 단둘이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궐에서 전하를 만나는 것보다 어려웠다.안팎에 강적이 있는 데다 고다정이 그동안 암세포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느새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12년간 지도층이 바뀌고, 많은 연예인이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심지어 국제 정세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등 많은 일들이 발생했지만 여준재와 고다정의 애정 전선은 변함이 없었다.현재 두 사람은 주변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잉꼬부부가 됐다.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금실이 좋은 것도 있지만 잘생기고 철이 든 아들딸을 두었기 때문이다.지금 여씨 가문의 큰 도련님, 아가씨, 작은 도련님 얘기가 나오면 엄지척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특히 여하준은 19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도와 두 회사를 관리하고 있다.물론 여하윤도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의 콘서트홀에서 연주했을 정도로 뛰어나다.그리고 여씨 가문의 작은 도련님은 형, 누나만큼 대단하지는 않지만 어려서부터 말솜씨가 좋아 많은 귀염을 받았고, 지금은 연예계 인기 아역 스타다....운산공항 로비의 스크린에 최신 국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12년 만에 암세포를 죽이는 약을 개발해 낸 고다정 교수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는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연구 성과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암을 두려워할 필요도, 암 얘기에 놀랄 필요도 없게 됐습니다.”뉴스 진행자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최근 몇 년 고다정 연구팀의 약물 연구 덕분에 암세포 억제제가 꾸준히 개진되긴 했지만 암세포를 철저히 소멸할 수는 없어 암에 걸린 후 결국 치료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이 뉴스는 방송되자마자 많은 행인의 주의를 끌었다.인터넷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고다정에 대한 축복이 쏟아졌다.[고 원장님이 해낼 줄 알았어!][너무 기쁜데 어떡하지? 우리나라를 빛낸 고 원장님을 지지하기 위해 약방에 가서 그 회사 약들을 대량 구매할 거야.][나도. 우리 집에는 환자가 없지만 이 약들을 필요한 기관에 기증할 수 있어!][하하하, 속이 다 시원하네. 그때 고 원장님이 안 된
열 몇 시간 후 비행기는 드디어 평온하게 착륙했다. 여준재가 낮은 소리로 옆에서 달게 자는 아내를 깨웠다.“여보, 일어나요.”그 소리에 고다정이 눈을 뜨더니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낯선 환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여기 어디예요?”“아직 비밀이에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알 거예요.”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비행기에서 내린 후 공항을 나섰다.그들을 마중 나온 차량이 벌써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탄 후 고다정이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 지금 어디 가요?”“먼저 밥 먹으러 가요. 지금 너무 배고프죠?”여준재가 기사에게 근처의 가장 좋은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말했다.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할 때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다 이렇게 장시간 비행한 까닭에 확실히 배가 고팠다.레스토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룸에 들어갔다.주문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레스토랑 직원이 예쁘게 플레이팅된 음식들을 들여왔다.훈훈하고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여준재가 고다정의 식사를 챙겼다.이때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국내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엄마, 아빠랑 같이 어디 갔어요?”쌍둥이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이 목소리를 들은 고다정은 갑자기 뜨끔했다.“컥컥, 엄마랑 아빠가 일이 있어서 외출했어. 며칠 뒤에 돌아오니까 집에 얌전히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잘 듣고. 알았지?”“흥! 엄마랑 아빠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몰래 나간 거잖아요.”쌍둥이가 직접 고다정의 거짓말을 폭로했다.고다정은 무안해하며 도와달라는 듯 여준재를 바라보았다.당연히 아내 편인 여준재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말했다.“아빠와 엄마가 신혼여행 중이야. 돌아갈 때 너희 선물을 사 갈게.”말하고 나서 그는 직접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 건너편에서 신호가 끊긴 스마트워치를 바라보는 쌍둥이의 앳된 얼굴에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아빠 나빠.”“너무 나빠!”쌍둥이는 아빠한테 잔뜩 화가 났다.이때 임은미가 오더니 그들의 안색이 안 좋은
이 말이 나오자 고다정과 임은미는 서로 마주 보며 웃더니 손을 잡고 무대 옆으로 나와 하객들을 등지고 섰다.“부케를 받은 사람은 내년에 솔로 탈출합니다.”두 사람이 부케를 던진 후 뒤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부케를 누가 받았는지 신부님들 뒤를 돌아보세요.”고다정과 임은미는 두 젊은 아가씨가 부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축복의 말을 건넸다.“두 분도 내년에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두 아가씨가 감사 인사를 했다.사람들 뒤에 서 있던 구남준은 속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분명 자기도 동작이 빠른데 부케를 하나도 받지 못하다니. 설마 평생 혼자 살 운명인가?...결혼식이 끝난 후 신혼방으로 돌아온 두 사람.“피곤하죠? 좀 쉴래요?”여준재가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아니요. 방금 결혼식장에서 잠깐 쉬었더니 지금 괜찮아요. 당신 먼저 옷부터 갈아입어요.”고다정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고생했어요, 여보.”순간 여준재가 고다정을 꽉 껴안더니 다정하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여준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고다정은 황급히 그의 입술을 피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아직 밤도 아닌데, 이미지에 좀 신경 쓰세요.”“당신 앞에서 무슨 이미지에 신경 써요? 당신을 안고 자려는 것뿐인데.”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억울한 표정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알았어요. 놀리지 않을게요.”여준재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고다정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당신은 웃을 때 진짜 예뻐요.”여준재가 넋이 나간 듯 고다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당신도 참.”그의 칭찬에 고다정은 얼굴이 더 빨개졌다.여준재는 고개를 숙이더니 고다정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고다정은 피하려고 했지만 여준재가 그녀를 꽉 껴안고 반항하지 못하게 했다.키스는 오랫동안 지속됐고, 고다정이 호흡 곤란이 올 정도가 돼서야 여준재는 그녀
결혼식 현장은 환상적이었다.전 세계 명문가에서 대표를 파견해 참석했다.이렇게 많은 유명인들 앞이라 고다정과 임은미는 몹시 긴장했다.“준재 씨, 좀... 긴장돼요.”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여준재를 쳐다보는 고다정의 눈에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 감돌았지만 수줍음과 기대감도 보였다.“괜찮아요. 제가 항상 곁에 있을게요.”여준재가 약간 차가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긴장 풀어요. 당신은 신부 노릇만 잘하면 돼요. 다른 건 다 저한테 맡겨요.”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마음이 놓이는 대신 열정이 넘치고 약간 기대도 됐다.“신부가 진짜 예쁘네.”“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신부네 집안도 보통이 아니래. 여씨 가문이 더 번창하겠어.”하객들이 쑥덕거렸다. 그중 고다정을 부러워하는 상류층 부잣집 따님도 적지 않았다.오늘 여준재는 유난히 멋있었다. 매끈한 양복 차림에 준수한 외모가 불빛 아래에서 유달리 돋보였다.고다정은 여준재와 팔짱을 끼고 사람들의 부러운 눈빛 속에서 천천히 버진로드의 종점을 향해 걸어갔다.두 사람이 무대에 선 후 채성휘와 임은미가 뒤늦게 입장했다.이들 둘도 버진로드를 따라 행진해 여준재와 고다정의 옆에 섰다.결혼식 사회자는 두 쌍의 신랑 신부가 모두 입장한 것을 보고 결혼식의 시작을 알렸다.“존경하는 하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결혼식을 시작합니다!”이 말이 끝나자 무대 아래의 하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하객분이 증인이 되어 두 쌍의 신랑 신부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도록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사회자의 말에 무대 아래에서 또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여준재 씨는 옆에 있는 아름답고 우아한 신부를 아내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고 돌보기를 원합니까?”사회자가 웃음 띤 얼굴로 무대 위에 서 있는 여준재를 보며 물었다.“물론입니다!”여준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 후 확고한 눈빛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