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주는 두 아이의 시선을 느끼고 그들에게 바보같이 순수한 미소를 지었다.그 빛나고 순수한 미소를 본 두 아이는 태양 빛에 눈이 부셔서인지 모르겠지만, 최우주와 친구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좋아, 엄마가 너랑 놀라고 하니까 우리가 잠시 너를 받아들이기로 할게. 하지만 우리 친구가 되려면 바보 같으면 안 돼.”“맞아, 우리는 바보하고 안 놀아.”하윤이가 오빠의 말을 따라 했다.최우주는 드디어 두 사람과 놀 수 있게 되었던지라 기뻐하며 대답했다.“하준이, 하윤이, 나 바보 아니야. 지난 학기에 반에서 48등 했어!”이 말을 들은 우주 엄마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들의 유치원 고급반에는 총 50명의 아이들이 있었다.그녀의 아들은 반에서 두 번째로 낮은 성적을 받고도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있었던 것이다.두 아이도 입꼬리를 꿈틀거리며 최우주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이 녀석, 진짜 바보 같은 거 아닐까?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든, 그들은 결국 이 조금은 둔한 친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그때, 귓가에 선생님의 집합 소리가 들렸다.집합을 마친 후, 선두에 선 선생님이 큰 바위 위에 서서 부모님들에게 계획을 발표했다. “여러분도 보셨듯이, 여기가 우리가 앞으로 2박 3일을 보낼 곳입니다. 저희가 이미 민박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이제 저에게 와서 이름을 등록하고 방 열쇠를 받아가세요. 지금부터 이 3일 동안 우리가 할 활동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첫째 날, 많은 분들이 주변을 둘러보고 싶어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등산을 할 예정입니다. 현지인들에 따르면 산에는 야외 온천이 있다고 하니 거기도 가보실 수 있습니다.”“둘째 날의 활동은 논에 가서 벼를 심는 체험입니다. 이미 이곳 마을 사람들과 협의를 마쳤고, 우리가 심은 벼가 익으면 학교로 보내줄 겁니다. 하반기에 우리는 자신이 심은 쌀을 먹을 수 있습니다.”이 활동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일부 귀하게 자란 부모님들은 논에서 일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불
고다정은 그 여자의 말을 듣고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그녀는 여자의 말속에 숨겨진 함정을 금방 알아차렸던 것이다.하지만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우주 엄마가 참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학교가 이런 결정을 내렸다면 분명히 아이들을 고려한 것일 겁니다. 우리는 학교를 믿고, 그들이 아이들에게 좋은 결정을 내리리라 생각해야죠. 그렇지 않나요?”‘이 아첨꾼은 입 닥치고 말하지 않는 게 좋을 텐데!' 여자는 마음속으로 분노하며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티 내지 않고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맞아요, 학교를 믿어야죠.”그러다가 그녀는 갑자기 화제를 바꾸며 여준재와 고다정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표님과 사모님, 두 아이를 데리고 식사하러 가시는 건가요? 이번 점심은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사모님께 사과하는 차원에서요.”여자는 열정적으로 고다정을 바라보며 그녀가 승낙하기를 희망했다.그녀가 여씨 가문과 연결되면 집에 돌아가서 자랑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계획은 성공하지 못했다.“죄송하지만, 우리는 식사할 때 낯선 사람이 있는걸 좋아하지 않아요.”고다정은 이런 간신배 같은 여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바로 거절했고 말을 마치자마자 여준재와 우주 엄마를 데리고 자리를 떴다.여자는 멀어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불만스러운 눈빛을 보냈다.‘나는 외부인인데, 우주네 엄마는 뭐 가족이란 말이야?'한편, 고다정 가족은 식사를 마치고 나서 학교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메시지의 내용은 오후 1시에 마을의 댐에서 모이고, 그 후 산을 오르고, 밤에는 산에서 야외 요리를 할 것이라고 했다. 부모님들은 저녁에 먹고 싶은 식자재를 가져오라고 했고, 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마을에 계속 머물 수 있다는 뜻이었다.메시지를 읽은 후, 고다정은 여준재와 두 아이에게 산에 오를지를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평소 두 아이가 놀기를 좋아하는 성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분명히 갈 것이라고 확신했다.“좀 이따 우리 민박집 주인을 찾아 이 근처에
약 십 분간의 휴식 후, 선생님들은 다시 모두를 모아 출발하기로 했다.너무 오래 휴식 시간을 주었다간, 이 까다로운 부모와 아이들이 더 걷기를 꺼릴까 봐 걱정했던 것이었다.실제로도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선생님, 여기서 말씀하신 온천까지 얼마나 멀어요?”한 부모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선생님도 그 말에 섞인 기분을 읽어냈지만, 여전히 인내심을 가지고 대답했다. “사실 도착지와 별로 멀지 않아요. 우리 속도로, 반 시간만 더 걸으면 도착할 겁니다.”“아직도 반 시간이나 더 걸어야 해요...”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심지어 몇몇은 산행을 포기하겠다고 소리쳤다.선생님은 이들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산에 계속 오르고 싶지 않으면, 두 명의 경비원을 여기에 남겨 놓아 여러분이 충분히 쉬고 나면, 마을로 돌려 보낼 겁니다. 다른 부모님들과 어린이들 중에 저와 함께 산에 오르고 싶은 분들이 계신다면, 제 곁에 모여 주세요. 인원을 확인하고 출발할 겁니다.”이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앞의 공터를 가리키며 다른 사람들을 훑어보았다.하지만 몇 초가 지나도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고다정은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멈춰선 선생님들을 보며 그들을 도우려고 먼저 앞으로 나갔다.솔직히 말해서, 이번 학교 행사는 그녀에게 매우 의미 있었을뿐더러, 이 귀하게 자란 까다로운 사람들 때문에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우리 여기 네 명인데, 선생님, 저희 등록 좀 해주세요.”“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선생님은 서둘러 대답하고, 고개를 숙여 등록하기 시작했다.고다정은 이를 보고 옆에 있는 우주 엄마에게 물었다. “여러분도 같이 등산하실 건가요?”“갈 거예요.”우주 엄마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녀의 말이 끝나자, 이전에 사과하러 온 그 여자도 지지하는 목소리를 냈다. “사모님이 산에 계속 오르고 싶다면, 저도 사모님과 함께 걷고 싶어요.”이 말을 듣고 고다정은 미간을 찌푸렸다.
선생님의 호출에 따라 고다정은 일어나 준비하려 했지만, 여준재에 의해 제지당했다.“당신은 그냥 앉아서 움직이지 말아요. 하준이 하윤이 옆에 있어요. 내가 나가서 식자재 정리할게요.”“괜찮아요, 저 이미 충분히 쉬었어요. 오히려 당신이 좀 쉬어야 할 것 같은데요.”고다정은 여준재의 제안을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그녀는 이 남자가 그녀의 피로를 걱정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녀 또한 그를 걱정했다.다정은 여준재를 끌어다 자신이 앉았던 곳에 앉혀놓고는, 두 아이에게 말했다. “아빠를 잘 감시해. 아빠가 잘 쉬게 해.”“알겠어요, 엄마.”두 아이는 순순히 대답했다.우주 엄마가 고다정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일어나며 말했다. “저도 함께 가겠어요. 제 아들 우주는 여 대표님에게 부탁할게요.”여준재는 우주 엄마가 고다정을 도울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거절하지 않았다.한편, 그들을 따라온 한 모녀는 제 자리에 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여자가 고다정이 떠나는 모습을 보더니, 시선을 돌에 앉아 있는 여준재에게 돌리더니 눈빛을 번뜩였다.몇 분 후, 핑크색 캐주얼을 입은 어린 소녀가 비닐봉지를 들고 여준재에게 다가갔다. “삼촌, 과일 드실래요?”이 말을 들은 여준재와 세 아이들이 모두 그쪽을 바라보았다.“넌 누구야, 왜 내 아빠한테 과일을 주려고 해?”하윤이가 경계하는 눈빛으로 묻자 작은 소녀는 눈을 깜빡이며 순진하게 말했다. “우리 엄마가 삼촌에게 이걸 전해달라고 했어.”그녀가 말을 마치자, 뒤에 있는 여자가 나서야 할 시간이라는 걸 알고, 옷을 정돈하고 웃으며 다가왔다. “제가 제 딸을 시켜 여 대표님에게 과일을 전해달라고 했어요. 아이들이 먹으면서 놀라고요.”그녀는 항상 아이의 이름을 빌려 자신이 접근하고 싶은 사람에게 접근했고, 매번 성공적이었다.하지만 이번에 그녀가 만난 사람은 여준재였기에 그녀의 실패는 이미 정해진 것이었다.여준재는 차갑게 거절했다. “필요 없어요. 우리도 이미 갖고 왔어요.”여자는 여준재가 예의를 차리는 것이
해가 지고 날이 점점 어두워졌다.아직 어슴푸레한 빛이 남아있는 틈을 이용해 선생님들은 학부모들을 모아 하산하기 시작했다.어쩌면 모두 휴식을 원했기 때문인지, 하산할 때는 유난히 협조적이었고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그들은 마을로 돌아와 각자 민박집으로 돌아갔다.돌아온 후 고다정은 소파에 앉아 움직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지쳐있었다.그저 나들이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피곤할 줄 몰랐다.두 아이는 소파에 지쳐 앉아 있는 엄마를 보고 알아서 다가와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우리가 마사지해줄게요.”“엄마는 필요 없어. 너희도 앉아서 좀 쉬어. 엄마가 좀 회복되면 씻으러 가자.”고다정은 지쳤지만, 아이들이 자신을 돌보는 건 원치 않았다.오늘 그녀들이 걸어온 모든 길을 두 아이도 스스로 걸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서로를 믿고 사랑하는 모자 셋을 바라보며, 여준재는 두 눈 가득 부드러움을 담고 조용히 말했다. “나가서 목욕물을 준비할게요.”목욕을 마치고, 아마도 너무 지쳐서인지, 일가족은 곧 깊은 잠에 빠졌다....다음날, 동이 터올 새벽 무렵 닭의 울음소리에 고다정과 여준재가 일찍 깨어났다.회색빛으로 물든 창밖을 보며, 그들은 시선을 맞추며 웃었다. 다만 바로 일어나지는 않고 서로를 끌어안고 침대에서 조금 더 애정을 나누었다.거의 7시가 되어서야 두 사람은 일어나 씻고 옆방에서 자고 있던 두 아이를 깨웠다.어제 공지한 대로, 오늘 아침 8시쯤 태양이 그리 뜨겁지 않을 때 농부 아저씨들을 도와 모내기를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곧 일가족은 준비를 마치고 아침 식사를 한 뒤 집합장소에 모였지만 막상 도착한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알아챘다.고다정은 이 상황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고 앞에 있는 선생님의 표정도 굳어졌다.봄나들이의 목적을 출발 전에 분명히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이 학부모들이 이렇게 협조적이지 않다니, 앞으로 학생 교육을 어떻게 진행할 수 있을까.하지만 불만이 있어도 그들은 보이콧한 학부모들을 감히 부를 수는 없
최우주가 고다정 일행 뒤에서 몸을 흔들거리며 따라가고 있었다. 다소 뚱뚱한 체형 때문에 한 걸음 한 걸음이 매우 깊게 파이면서 걷기 더 힘들게 만들었다.지금도 한눈판 사이에 발을 빼내지 못하고, 바로 논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큰 물보라를 일으켰고 얼굴과 머리카락에도 진흙이 묻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두 아이가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최우주, 얼굴에 뭐가 묻었어.”“최우주가 얼룩 고양이가 됐어.”최우주는 자신을 놀리는 두 아이를 보며 눈살을 찌푸리며 기분이 상했는지 입을 삐죽이며 고다정을 쳐다보고 애처롭게 말했다. “이쁜 아줌마~”그 모습은 정말 사람의 마음을 녹이기에 충분했다.고다정은 두 장난꾸러기의 뒤통수를 가볍게 두드리며 타이르듯 말했다. “다른 사람을 놀리면 안 돼. 너희는 친구잖아. 서로 도와주고 사랑해야 해. 최우주를 일으켜 세워 줘.”“나는 아직 쟤를 친구라고 인정한 적 없어요!”하준이는 코를 찡그리며 반박했지만, 몸은 솔직하게 최우주를 도와주기 위해 나섰다.하윤이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입으로는 불평하면서도 행동은 오빠보다 느리지 않았다.고다정은 입과 행동이 다른 두 아이를 보며 웃음을 참지 못하고 피식 웃었고 옆에 서 있던 우주 엄마도 잠깐 눈빛을 반짝이더니 입꼬리를 올려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곧 두 아이가 최우주를 일으켜 세웠다.고다정은 그 모습을 보고는 그들이 손을 잡고 서로를 지탱하며 논에서 일하게 했다.세 아이의 일은 가장 쉬운 것이었는데, 그저 선생님이 나눠준 모종을 부모님들에게 건네주는 것이었다.고다정과 여준재는 처음으로 이런 농사일을 해보았지만, 두 사람 모두 진지한 태도로 임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 비해 그들의 동작은 꽤나 전문적으로 보였다.잠시 후, 두 사람은 큰 면적의 모종을 심었고, 그 성과에 매우 만족했지만, 몸은 조금 버티기 힘들었다.고다정은 오랜만에 이렇게 무거운 일을 하니 허리가 아팠다.여준재는 그녀가 가끔 허리를 펴고 마사지하는 것을 보고 허리가 아플 것이라 생각하고 걱정했
3일간의 수학여행은 금요일에 막을 내렸다.선생님들은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데리고 돌아왔고 월요일에 정식으로 수업을 재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빌라에서 강말숙은 그들이 돌아온 것을 보고 걱정스럽게 물었다. “3일 동안 즐거웠니?”“즐거웠어요, 할머니. 우리는 논에서 직접 벼를 심었어요. 아빠가 말씀하셨어요. 올해 하반기에 우리가 직접 심은 쌀을 먹을 수 있다고요.”하준이는 이 3일 동안 있었던 일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했고 하윤이도 옆에서 끼어들더니 열심히 손짓, 발짓 동원해가며 흥분된 듯 이야기했다.잠시 후, 두 아이가 하품하며 졸음을 참기 시작했다.아침 일찍 차를 타고 돌아온 데다 길이 험했던지라 몸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고다정은 이를 보고 도우미들에게 아이들을 방으로 데려가도록 부탁했고 자신은 외할머니와 잠깐 수다를 떨 기회를 얻었다.“집에 별일은 없었어요?”“아무 일도 없었어. 네 예비 시어머니가 너희들이 집에 없다는 걸 알고 며칠 동안 매일 날 보러 왔어. 내일 주말인데, 하준이, 하윤이를 데리고 한번 놀러 가 봐. 두 부부가 아이들을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아.”강말숙은 이 며칠 동안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고 고다정은 이 말을 듣고 조금 놀랐다.그녀는 심해영이 외할머니를 돌보러 왔다는 사실에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끼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내일 주말인데, 준이, 윤이를 데리고 이틀 정도 머물러야겠어요. 외할머니도 같이 갈래요?”“나는 안 갈래. 이곳 환경에 익숙해져서 다른 곳으로 옮기면 또 잠 못 이룰까 봐.”강말숙은 손을 흔들며 거절했다.고다정은 외할머니의 이 습관을 알고 있어 더는 고집하지 않았다....다음날, 주말이 되었다.고다정과 여준재는 두 아이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한 후, 외할머니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저택으로 향했다.저택에 도착하자, 심해영은 네 명의 가족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놀라워하며 말했다. “너희들 돌아왔구나, 미리 전화해서 준비할 시간을 줬으면 좋았을 텐데.”“무슨 준비를 해야 해요? 우
큰 어르신은 고다정에게 할 말을 다 한 후, 찌푸렸던 얼굴을 펴더니 상냥한 표정을 지으며 자애로운 눈빛으로 쌍둥이를 바라보았다.“이건 증조할아버지가 너희들이 무사히 잘 크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특별히 주문 제작한 평안패야. 그러니까 엄마 말을 들을 필요 없어. 알았지?”쌍둥이는 갑자기 받아야 할지 거절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며 고다정을 쳐다보았다.도움을 청하는 그들의 눈빛에 고다정은 큰 어르신의 고집이 꺾일 것 같지 않아 결국 동의했다.“증조할아버지께서 너희를 위해 특별히 주문 제작한 것이라고 하니 증조할아버지께 제대로 감사 인사를 올리고 받으렴.”“감사합니다, 증조할아버지. 너무 맘에 들어요.”쌍둥이는 기뻐하며 큰 어르신께 감사 인사를 올렸다.말랑말랑 귀여운 목소리에 큰 어르신은 주름의 골이 더 깊어질 정도로 활짝 웃었다.뒤이어 그는 쌍둥이를 붙잡고 소풍이 어땠는지 물었다.쌍둥이는 싫증 내는 것도 없이 다녀온 얘기를 했고 감격스러운 대목에서는 손발까지 써가며 설명했다.한순간 거실은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식사할 때도 유쾌한 분위기는 계속됐다.쌍둥이가 예쁜 말로 살살 녹여주니 여준재 부모님과 할아버지까지 얼굴에서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그렇게 함께 지내며 고다정은 점점 여씨 집안사람들과 한집안 식구가 되어갔다.여준재와의 감정도 점점 깊어지고 갈수록 달콤해졌다.이날 고다정이 가족들과 식사하고 있는데, 휴대폰이 갑자기 울려서 보니 해외의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여보세요.”“다정아, 나야.”맑고 시원한 여자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들려왔다.고다정은 멍해졌다가 제정신이 돌아온 후 반갑게 인사했다.“스승님!”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그녀의 놀란 듯한 목소리에 잇달아 시선을 그녀에게로 돌렸다.“엄마, 스승님이세요?”“그래, 스승님한테 인사할래?”고다정이 이렇게 묻자 쌍둥이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네, 좋아요. 저희도 스승님과 통화하고 싶어요.”전화 너머로 이 말을 들은 성시원은 싱긋 웃더니 말했다.“휴대폰을 준이와 윤이
“하윤 씨, 좋아해요. 제 여자친구가 되어줄래요?”임지호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여자애를 바라보며 긴장해서 손에 땀을 쥐었다.하윤은 잠깐 얼떨떨해하더니 이내 환한 웃음을 지었다.“네.”그녀의 얼굴에 피어난 예쁜 미소를 보고 임지호도 해맑게 웃었다.햇빛 아래 선남선녀는 너무 잘 어울렸다.임은미와 고다정은 구석에 숨어 이를 지켜보며 들떠서 소곤거렸다.“하윤이 저렇게 활짝 웃는 걸 보니 서로 고백한 것 같아.”“고백한 게 맞아. 둘이 같이 앉은 걸 봐.”“역시 내 실력이 아직 녹슬지 않았어. 내가 나서면 안 맺어지는 커플이 없다니까.”임은미는 마침내 자화자찬하기 시작했다.고다정은 그녀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속으로 저 남자애가 하윤을 좋아해서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모하게 나섰다가 맺어주는 게 아니라 끝내버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한참 더 보다가 호기심이 충족된 듯 제대로 자리에 앉아 요리를 주문했다.기왕 온 김에 뭘 좀 먹어야지.식사하면서 고다정이 감탄했다.“애들이 어느새 커서 애인까지 생겼네.”“그러게. 우리도 늙었어.”임은미도 같이 탄식했다.뒤이어 그녀는 맞은편의 절친을 바라보며 물었다.“앞으로 무슨 계획 있어?”“보름 동안 쉬면서 준재 씨랑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후 새로운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거야.”고다정은 자기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임은미는 이 말을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너 점점 일벌레가 되어가는 것 같다.”“그건 내가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야.”고다정이 웃으면서 말했다.둘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청아한 목소리가 그들의 귓전을 때렸다.“여하준 씨, 거기 서요.”이 소리를 듣고 눈빛을 주고받는 고다정과 임은미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이런 우연이! 이 작은 레스토랑에서 두 남매를 모두 만난다고?’하윤도 너무 뜻밖이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여하준 쪽을 바라보았다.“오빠?!”“하윤?!”여하준도 이때 하윤과 그 옆의 청년을 발견하고 미간을
하윤은 정말 돌아오지 않았다.하민이 가지 못하게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여준재에게는 무척 즐거운 밤이었다....이튿날 아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했다.금빛 햇살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와 이불 밖에 나온 고다정의 피부에 내려앉았다.피부에 생긴 흔적에서 어젯밤에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수 있었다.여준재는 일찍 깼지만 아침의 따스함을 놓치기 싫어 고다정을 안고 만족스럽게 침대에 누워있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갑자기 누군가가 방문을 쾅쾅 두드렸다.“엄마, 일어나요.”하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여준재는 순식간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역시 자식은 빚쟁이라는 말이 맞다. 이전에 좋아했던 만큼 지금은 싫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품속의 여인이 깨어났다.고다정이 정신이 흐릿한 상태로 물었다.“누가 밖에서 문을 두드려요?”“하윤이에요. 내가 돌려보낼 테니 자요.”여준재가 그녀를 풀어주고 일어나려 했다. 너무 졸렸던 고다정은 막지 않았다.그녀는 오후까지 자고 임은미가 전화해서야 겨우 일어났다.30분 후 두 사람은 시내 중심의 쇼핑몰에서 만났다.임은미는 잠이 덜 깬 것 같은 고다정을 보고 놀려댔다.“너랑 여 대표님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좀 절제해.”“나한테만 그러지 말고 너도 절제해. 목에 난 흔적이 가려지지도 않아.”지금의 고다정은 약간 야한 농담에도 얼굴을 붉히던 10년 전의 고다정이 아니다.지금의 그녀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역습한다.임은미도 말문이 막히지 않았나.그녀는 채성휘와 자주 싸우지만 둘 사이의 감정에는 조금도 영향이 없었다.그녀가 코웃음을 쳤다.“네가 이겼어. 이제 너를 쉽게 놀리지 못하겠어.”그녀는 말하면서 고다정과 어느 가게에 들어갈지 사방을 둘러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다정아, 저기 하윤이 아니야?”“하윤이?”고다정이 놀라며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정말 멀지 않은 곳의 레스토랑에 하윤과 깔끔해 보이는 잘생긴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것이
이 말을 들은 하윤은 즉시 고다정의 말에 흥미를 보였다.“저, 오빠, 그리고 이모 세 사람 외에 또 있어요?”그녀는 의문스레 고다정을 쳐다보았다. 설마 그때 아빠, 엄마를 맺어주려고 애쓴 사람이 또 있나?그런데 그녀가 말하자마자 고다정이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일 줄이야.“그래, 너와 오빠, 이모가 도와준 걸 말하는 거야. 그때 너희 셋이 나랑 너희 아빠를 맺어주려고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어? 그러니까 너 혼자 좋아하는 사람을 쫓아다니면 이뤄지기 힘들지 않겠어?”“좀 일리가 있네요.”갑자기 엄마한테 설득당한 하윤이 무심코 말했다.“그럼 엄마랑 이모가 좀 방법을 생각해 주세...”‘요’자를 내뱉기 전에 그녀는 씩씩거리며 또 한 번 엄마를 째려보았다.“또 엄마한테 걸려들었어요.”고다정은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어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계집애, 어렸을 때와 똑같이 잘 속아.”그녀는 너무 웃어서 눈물까지 나왔다.이를 보고 화가 난 하윤이 손을 뻗어 고다정을 간지럽히려 했다.“엄마 나빠요.”그렇게 모녀는 온천에서 웃고 떠들었다.이쪽의 따뜻한 분위기와 달리 남자 노천탕은 썰렁했다.“자식, 어렸을 때는 귀여웠는데 크면 클수록 얄미워.”옆방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여준재는 눈앞의 두 아들이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렸다.하준이 판에 박은 것 같이 똑같은 표정으로 아빠를 힐끗 쳐다보더니 시큰둥하게 말했다.“피차일반입니다.”하민은 형과 아빠가 티격태격하자 조용히 구석에 숨었다.그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지위가 가장 낮다는 것을 알았다.여준재는 막내아들의 속마음을 모른 채 자기한테 말대꾸하는 큰아들을 보며 문득 한 가지 꾀가 떠올랐다.“너도 이제 나이가 있는데 허구한 날 남의 마누라를 생각하지 말고 네 마누라를 찾아. 아니면 네 할머니한테 맞선을 주선하라고 할까?”그렇다. 여준재가 생각해 낸 방법은 하준을 결혼시키는 것이다.‘이 자식이 자기 마누라가 생기면 더 이상 내 마누라를 생각하지 않겠지.’하준이 그의 생각을 모를
그날 저녁 여씨 삼남매는 결국 남아서 고다정을 축하해 주었다.식사가 끝난 후 임은미는 두 딸을 데리고 떠나갔다.가기 전에 그녀는 고다정과 내일 오후에 같이 쇼핑하기로 약속했다.임은미를 보낸 후 다섯 식구는 남녀가 분리된 온천 노천탕에 갔다.고다정은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느긋한 시간을 보낸 게 얼마 만인가.그녀가 눈을 감고 즐기고 있을 때 어깨 위에 갑자기 손이 올라오더니 그녀의 어깨를 주물렀다.고개를 돌려 보니 둘째 딸이 그녀의 뒤에서 얼쩡거리고 있었다.“엄마...”“왜?”고다정이 나지막이 묻자 하윤이 바짝 붙으며 말했다.“엄마가 아빠한테 사정 좀 해 주시면 안 돼요?”그녀는 고다정의 환심을 사려고 방긋 웃었다.“오늘 엄마랑 단둘이 시간을 보내려는 아빠의 계획을 제가 망쳤으니 아빠가 틀림없이 내일 저한테 일을 시킬 거예요.”그녀가 이렇게 단언하는 원인은 그동안 이런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학교 다닐 때는 그녀가 엄마한테 너무 달라붙는다고 아빠가 그녀를 속여 공부를 많이 시켰다.후에 점차 크고 오빠가 폭로해서야 그녀는 아빠의 꾀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았다.고다정은 고민 가득한 딸애 얼굴을 보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이 계집애는 어릴 때부터 말을 잘 듣지 않았는데, 매번 아빠의 권위에 도전했다가, 결국 비참하게 혼쭐이 나고 불쌍한 모습으로 엄마를 찾아왔다.“이제야 두려워? 이모를 꼬드길 때는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생각 안 했어?”“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요. 엄마가 원래 여가 시간이 많지 않은데 아빠가 항상 엄마를 차지하니까.”계집애는 말하면서 고다정의 어깨를 껴안고 또 응석을 부렸다.애교 공세에 당할 수 없는 고다정은 이내 동의했다.하윤은 기쁜 나머지 고다정을 안고 뽀뽀하더니 배시시 웃었다.“역시 엄마밖에 없어요.”“너도 참, 빨리 온천에 몸을 담가.”고다정이 말하면서 그녀를 잡아당겨 노천탕에 앉혔다.그러나 하윤은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그녀는
한편, 서쪽 외곽에 위치한, YS그룹에서 개발한 온천 리조트에 세련된 곡선미를 자랑하는 검은색 마이바흐 한 대가 도착했다.차가 천천히 입구에 멈춰 서더니 검은색 수작업 맞춤 양복을 입은 여준재가 차에서 뛰어내렸다.똑바로 선 후 그는 돌아서서 허리를 살짝 굽히더니 차 문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준수한 얼굴에서는 꿀 뚝뚝 다정함이 넘쳐흘렀다.“부인, 도착했습니다.”검은색 여성 정장 차림의 고다정이 가늘고 예쁜 손을 우아하게 여준재의 손바닥 위에 얹더니 차에서 내렸다.지금의 그녀는 풋풋함을 벗은 대신 카리스마와 여유가 넘쳤다.옆에 있던 매니저가 알랑거리며 그녀를 맞이했다.“사모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건 저와 직원들의 작은 성의입니다. 인류 의학에 공헌한 사모님께 감사드립니다.”말하고 나서 그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건넸다.사방에서 박수와 축하가 쏟아졌다.“축하드립니다, 사모님.”“사모님, 진짜 대단하십니다!”“사모님은 제 롤모델입니다!”이 말을 듣고 고다정은 얼굴에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감사합니다.”옆에 서 있는 여준재도 눈에 자랑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뒤이어 두 사람은 매니저의 안내로 룸에 들어섰다.룸에는 이미 고다정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준비돼 있었다.두 사람이 오붓하게 식사하고 있을 때 가방 속에 있는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다.임은미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은미야, 무슨 일이야?”고다정이 전화를 받았다.옆에 있던 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두 눈을 가늘게 떴다.고다정을 쳐다보던 그는 그녀와 시선이 딱 마주쳤다.고다정의 표정을 보니,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제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은미가 축하 파티를 준비했다고 오래요.”“은미 씨는 인터넷을 안 본대요?”여준재가 답답한 듯 한마디 했다. 그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분명 고다정은 그의 아내인데, 지난 12년간 그는 아내와 단둘이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 궐에서 전하를 만나는 것보다 어려웠다.안팎에 강적이 있는 데다 고다정이 그동안 암세포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느새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12년간 지도층이 바뀌고, 많은 연예인이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심지어 국제 정세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 등 많은 일들이 발생했지만 여준재와 고다정의 애정 전선은 변함이 없었다.현재 두 사람은 주변에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잉꼬부부가 됐다.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금실이 좋은 것도 있지만 잘생기고 철이 든 아들딸을 두었기 때문이다.지금 여씨 가문의 큰 도련님, 아가씨, 작은 도련님 얘기가 나오면 엄지척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특히 여하준은 19세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도와 두 회사를 관리하고 있다.물론 여하윤도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의 콘서트홀에서 연주했을 정도로 뛰어나다.그리고 여씨 가문의 작은 도련님은 형, 누나만큼 대단하지는 않지만 어려서부터 말솜씨가 좋아 많은 귀염을 받았고, 지금은 연예계 인기 아역 스타다....운산공항 로비의 스크린에 최신 국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12년 만에 암세포를 죽이는 약을 개발해 낸 고다정 교수님의 교베르 의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는 우리 인류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연구 성과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암을 두려워할 필요도, 암 얘기에 놀랄 필요도 없게 됐습니다.”뉴스 진행자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최근 몇 년 고다정 연구팀의 약물 연구 덕분에 암세포 억제제가 꾸준히 개진되긴 했지만 암세포를 철저히 소멸할 수는 없어 암에 걸린 후 결국 치료하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다.이 뉴스는 방송되자마자 많은 행인의 주의를 끌었다.인터넷에서도 큰 화제가 됐고 고다정에 대한 축복이 쏟아졌다.[고 원장님이 해낼 줄 알았어!][너무 기쁜데 어떡하지? 우리나라를 빛낸 고 원장님을 지지하기 위해 약방에 가서 그 회사 약들을 대량 구매할 거야.][나도. 우리 집에는 환자가 없지만 이 약들을 필요한 기관에 기증할 수 있어!][하하하, 속이 다 시원하네. 그때 고 원장님이 안 된
열 몇 시간 후 비행기는 드디어 평온하게 착륙했다. 여준재가 낮은 소리로 옆에서 달게 자는 아내를 깨웠다.“여보, 일어나요.”그 소리에 고다정이 눈을 뜨더니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눈앞의 낯선 환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여기 어디예요?”“아직 비밀이에요. 비행기에서 내리면 알 거예요.”여준재는 그녀의 손을 잡고 비행기에서 내린 후 공항을 나섰다.그들을 마중 나온 차량이 벌써 길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탄 후 고다정이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물었다.“우리 지금 어디 가요?”“먼저 밥 먹으러 가요. 지금 너무 배고프죠?”여준재가 기사에게 근처의 가장 좋은 레스토랑으로 가자고 말했다.고다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할 때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데다 이렇게 장시간 비행한 까닭에 확실히 배가 고팠다.레스토랑에 도착한 두 사람은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룸에 들어갔다.주문한 후 얼마 되지 않아 레스토랑 직원이 예쁘게 플레이팅된 음식들을 들여왔다.훈훈하고 달콤한 분위기 속에서 여준재가 고다정의 식사를 챙겼다.이때 고다정의 휴대폰이 울렸는데, 국내에서 걸려 온 전화였다.“엄마, 아빠랑 같이 어디 갔어요?”쌍둥이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흘러나왔다.이 목소리를 들은 고다정은 갑자기 뜨끔했다.“컥컥, 엄마랑 아빠가 일이 있어서 외출했어. 며칠 뒤에 돌아오니까 집에 얌전히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 말을 잘 듣고. 알았지?”“흥! 엄마랑 아빠가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몰래 나간 거잖아요.”쌍둥이가 직접 고다정의 거짓말을 폭로했다.고다정은 무안해하며 도와달라는 듯 여준재를 바라보았다.당연히 아내 편인 여준재는 휴대폰을 받아 들고 말했다.“아빠와 엄마가 신혼여행 중이야. 돌아갈 때 너희 선물을 사 갈게.”말하고 나서 그는 직접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기 건너편에서 신호가 끊긴 스마트워치를 바라보는 쌍둥이의 앳된 얼굴에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아빠 나빠.”“너무 나빠!”쌍둥이는 아빠한테 잔뜩 화가 났다.이때 임은미가 오더니 그들의 안색이 안 좋은
이 말이 나오자 고다정과 임은미는 서로 마주 보며 웃더니 손을 잡고 무대 옆으로 나와 하객들을 등지고 섰다.“부케를 받은 사람은 내년에 솔로 탈출합니다.”두 사람이 부케를 던진 후 뒤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부케를 누가 받았는지 신부님들 뒤를 돌아보세요.”고다정과 임은미는 두 젊은 아가씨가 부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축복의 말을 건넸다.“두 분도 내년에 행복을 찾길 바랍니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두 아가씨가 감사 인사를 했다.사람들 뒤에 서 있던 구남준은 속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분명 자기도 동작이 빠른데 부케를 하나도 받지 못하다니. 설마 평생 혼자 살 운명인가?...결혼식이 끝난 후 신혼방으로 돌아온 두 사람.“피곤하죠? 좀 쉴래요?”여준재가 애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다.“아니요. 방금 결혼식장에서 잠깐 쉬었더니 지금 괜찮아요. 당신 먼저 옷부터 갈아입어요.”고다정이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고생했어요, 여보.”순간 여준재가 고다정을 꽉 껴안더니 다정하게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여준재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고다정은 황급히 그의 입술을 피하더니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주의를 주었다.“아직 밤도 아닌데, 이미지에 좀 신경 쓰세요.”“당신 앞에서 무슨 이미지에 신경 써요? 당신을 안고 자려는 것뿐인데.”여준재는 이 말을 듣고 억울한 표정으로 고다정을 바라보았다.“알았어요. 놀리지 않을게요.”여준재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고다정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당신은 웃을 때 진짜 예뻐요.”여준재가 넋이 나간 듯 고다정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당신도 참.”그의 칭찬에 고다정은 얼굴이 더 빨개졌다.여준재는 고개를 숙이더니 고다정의 입술에 키스를 퍼부었다. 고다정은 피하려고 했지만 여준재가 그녀를 꽉 껴안고 반항하지 못하게 했다.키스는 오랫동안 지속됐고, 고다정이 호흡 곤란이 올 정도가 돼서야 여준재는 그녀
결혼식 현장은 환상적이었다.전 세계 명문가에서 대표를 파견해 참석했다.이렇게 많은 유명인들 앞이라 고다정과 임은미는 몹시 긴장했다.“준재 씨, 좀... 긴장돼요.”가볍게 입술을 깨물며 여준재를 쳐다보는 고다정의 눈에는 약간 당황한 기색이 감돌았지만 수줍음과 기대감도 보였다.“괜찮아요. 제가 항상 곁에 있을게요.”여준재가 약간 차가운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더니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긴장 풀어요. 당신은 신부 노릇만 잘하면 돼요. 다른 건 다 저한테 맡겨요.”여준재의 말을 들은 고다정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마음이 놓이는 대신 열정이 넘치고 약간 기대도 됐다.“신부가 진짜 예쁘네.”“정말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신부네 집안도 보통이 아니래. 여씨 가문이 더 번창하겠어.”하객들이 쑥덕거렸다. 그중 고다정을 부러워하는 상류층 부잣집 따님도 적지 않았다.오늘 여준재는 유난히 멋있었다. 매끈한 양복 차림에 준수한 외모가 불빛 아래에서 유달리 돋보였다.고다정은 여준재와 팔짱을 끼고 사람들의 부러운 눈빛 속에서 천천히 버진로드의 종점을 향해 걸어갔다.두 사람이 무대에 선 후 채성휘와 임은미가 뒤늦게 입장했다.이들 둘도 버진로드를 따라 행진해 여준재와 고다정의 옆에 섰다.결혼식 사회자는 두 쌍의 신랑 신부가 모두 입장한 것을 보고 결혼식의 시작을 알렸다.“존경하는 하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결혼식을 시작합니다!”이 말이 끝나자 무대 아래의 하객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오늘 이 자리에 계신 모든 하객분이 증인이 되어 두 쌍의 신랑 신부가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도록 축복해 주시길 바랍니다.”사회자의 말에 무대 아래에서 또 한 번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여준재 씨는 옆에 있는 아름답고 우아한 신부를 아내로 맞아 평생 사랑하고 아끼고 보호하고 돌보기를 원합니까?”사회자가 웃음 띤 얼굴로 무대 위에 서 있는 여준재를 보며 물었다.“물론입니다!”여준재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한 후 확고한 눈빛으로